큰큰아이

 


  머리카락 좀 짧게 깎은 옆지기를 데리고 아이들과 다니노라면, 가끔 ‘애 엄마’ 어디 있느냐 묻는 소리를 듣는다. 옆지기가 옆지기 아닌 ‘큰아이’처럼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참 딱하구려, 하고 대꾸할 수는 없어, 그저 빙그레 웃고 만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 집일 저런 집살림 꾸리노라면, 옆지기는 옆지기이면서 우리 집 큰큰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곧, 이 집 아버지는 아이 둘 아닌 아이 셋 거느리면서 살아간달까. 이 집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돈을 벌러 바깥일을 한다며 먼 마실 다녀올라치면, 옆지기가 아이들 보살피도록 맡긴다기보다, 큰큰아이한테 아이들 맡기는 셈이라고 할까.


  큰큰아이인 터라 이모저모 맡기기 어려울 수 있다. 큰큰아이라서 이모저모 알뜰살뜰 하라 이를 수 없다. 한편, 큰큰아이라니까 작은 일 하나 하더라도 어여쁘고 반갑다. 큰큰아이인 만큼 아이들하고 한결 가까우면서 살가이 삶을 누리고 환하게 빛나기도 한다고 느낀다.


  큰큰아이가 미국으로 람타 공부를 하러 스물이틀 다녀오고 나서 스무 시간 즈음 고요히 잔다. 아무렴, 잠을 거의 못 자며 공부를 하고 돌아왔으니 이만큼 잘 만하다. 이듬날에도 또 이렇게 잘는지 모른다. 큰아이가 저녁밥 먹으며 아버지한테 여쭌다. “왜 어머니는 잠만 자? 같이 안 놀고?” 큰아이야, 네 큰큰언니는 많이 힘들어서 그런단다. 그래서 저녁도 못 먹고 저렇게 드러누워 몸을 쉰단다. 밥 잘 먹고 조금 더 논 다음, 우리 같이 즐겁게 자자꾸나. 4346.4.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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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에서 계남정미소를 사진터로 일군 김지연 님이 얼마 앞서 전북 전주 골목길 한켠으로 옮겨 새롭게 사진터를 일군다.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은 계남정미소를 사진터로 일군 발자국을 알뜰히 보여준다. 아름다운 사진책 하나 이 땅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축하합니다. 전주에서도 결 겨운 사진밭 일굴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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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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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고향나라로 삼으며 지낸 사람이 바라본 한국 이야기를 사진으로 만난다. 외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한국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면 모두 한국사람이다. 내가 태어난 데는 인천이지만 오늘 고흥에서 뿌리내려 살아가니 나로서는 고흥사람이듯, 박로랑이라는 분도 그저 한국사람이라고 느낀다. 내가 고흥에서 고흥을 사진으로 담든, 고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고흥을 사진으로 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박로랑 님 '한국 이야기 사진책'에는 이녁 어떤 사랑과 삶이 가만히 배었을까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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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코레- 박로랑 사진집
박로랑 지음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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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2월 2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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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으려는가

 


  겉말을 하는 책이 있고, 속말을 하는 책이 있다. 겉말을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누구라도 이 책에서도 아름다운 넋이나 꿈이나 사랑을 길어올릴 수 있다. 책쓴이 스스로 비록 겉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더라도, 읽는이 스스로 속넋과 속꿈과 속사랑 헤아리려는 매무새라면, 얼마든지 아름답게 읽을 수 있다. 거꾸로, 속말을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책쓴이가 들려주는 속넋과 속꿈과 속사랑을 못 받아먹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왜냐하면 읽는이 스스로 겉넋에 매인 채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책 하나 코앞에 놓았어도 어떠한 마음밥도 못 얻는다.


  곰곰이 따지면, ‘읽을 만한 책을 제대로 못 골랐’대서, 읽는이 스스로 마음밥을 못 얻지 않는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어떠한 책을 골라서 손에 쥐더라도 이녁 마음밭 살찌우는 밑거름 되는 이야기를 만나거나 깨우친다. 이런 책을 고르거나 저런 책을 쥐어야 하지 않다. 읽는이 스스로 어떤 마음가짐인가부터 슬기롭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읽는이 스스로 늘 눈을 밝히고 마음을 밝히면서 사랑을 밝힐 노릇이다. 이러는 동안 천천히, 그러니까 시나브로, ‘어느 책을 읽어도 마음을 살찌울 수 있기’는 하더라도, ‘겉말 아닌 속말 들려주는 책으로 읽는이 마음밭 살찌우는 길을 걸어간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속말을 들려주려고 책을 쓰는 사람 가운데 살림돈 넉넉하게 다스리는 사람이 퍽 적다. 책에 담을 속말을 알뜰살뜰 빚느라 다른 데에는 거의 마음을 안 쏟기 일쑤이다. 아니, 마음을 쏟을 수 없으리라. 책쓴이 스스로 이녁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글·그림·사진이 무엇인 줄 깨달았으니, 이 길로 씩씩하게 걸어갈 뿐, 샛길로 빠질 수 없으리라. 한길을 걸어가니 뒷길을 갈 까닭 없다. 한길을 걸어가기에, 숲길로도 접어들고 들길로도 접어든다. 하늘길이나 바닷길이나 가리지 않는다. 오솔길도 좋고 골목길도 좋다. 그저, 뒷길로는 안 갈 뿐이다.


  겉말을 하는 책이란, 뒷길로 가는 책이겠다고 느낀다. 뒷길로 간대서 꼭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지름길이나 에움길이라면 재미있는 길이 될 테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언제까지 뒷길을 갈 수 있을까. 책을 쓰는 어른으로서 한때 뒷길을 간다 하더라도, ‘어른인 이녁이 아이를 낳아서 살아간다’고 하면, ‘이녁 아이한테도 뒷길로 가는 삶’을 물려줄 만하겠는가.


  책은 늘 오늘 읽는다. 오늘 읽을 책을 장만해서 오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노자이건 루소이건 소쿠리이건, 이들 이야기 읽는 사람들은 옛날 옛적 이야기 아닌 오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읽는다. 헌책방에서 사들여 읽건 도서관에서 빌려 읽건 새책방에서 장만해 읽건, 모두 읽는이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로 스며드는 책이 된다. 그러니까, 오늘 이곳에서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어떤 책을 읽으려 하는가. 어느 책을 읽더라도 읽는이 스스로 매무새 슬기로이 다스리면 모두 마음밥이 되니까, 겉말이건 속말이건 굳이 안 가리고 책을 집어들어도 되는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고운 이웃과 예쁜 아이들한테 물려줄 책들을 우리 집에 어떻게 갖추려고 하는가. 내가 읽은 책은 ‘나 혼자 읽는 책’이 아니다. 내가 장만해서 읽은 책은 먼 뒷날 다른 누군가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새롭게 만나 읽을 책이 된다. 먼 뒷날 살아갈 우리 이웃과 아이들은 앞으로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만날 때에 즐겁고 흐뭇하며 아름답게 삶을 일굴 만할까.


  어제 오늘 앞날은 모두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내가 오늘 읽는 책 하나는 앞으로 이 땅 아이들이 새롭게 만나서 읽을 책 된다. 나는 오늘 어떤 책을 읽으려 하는가. 우리들은 오늘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가. 4346.4.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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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8 09:35   좋아요 0 | URL
책은 늘 오늘 읽는다. 오늘 읽을 책을 장만해서 오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파란놀 2013-04-18 10:07   좋아요 0 | URL
책으로 적힌 모든 이야기는 '어제'이지만, 어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는 사람은 늘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말넋 11. 바람소리와 숨소리
―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치는 사람

 


  시골마을에서는 으레 마루문이나 창문을 열고 하루를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사람 귀를 거슬리는 소리는 웬만해서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에, 장사꾼 짐차 알리는 소리, 마을방송 소리, 이런저런 자동차와 방송 소리 있지만, 이들 몇 가지 소리를 빼면 고즈넉한 시골소리 살그마니 스며듭니다. 이를테면,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들새와 멧새가 노랫소리 들려줍니다. ‘새소리’이지요. 문을 열고 바깥바람 들어오도록 하면, 바깥소리 함께 들리는데, 시골마을 감도는 새소리는 한두 가지나 몇 가지 아닙니다. 종달새인가 찌르레기인가 아직 알쏭달쏭하다고 느끼지만, 아마 종달새도 찌르레기도 맞구나 싶은 새소리를 듣고, 뻐꾸기 노래를 들으며, 박새와 동고비 노래를 듣습니다. 노랑할미새 노래를 듣고, 직박구리 노래를 들어요. 제비와 멧비둘기와 까치와 까마귀와 참새도 여러 새소리 사이에 노랫소리 섞습니다. 저녁에는 소쩍새와 휘파람새 노래를 들려주고,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설 무렵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한껏 무르익을 테지요.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지내더라도 마루문을 열지 않으면 새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시골 들판에서 일하고, 시골 밭자락에서 일하며, 시골 숲속에서 마실을 누리지 않으면 새소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시골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버스나 자가용 타고 학교를 오가면, 시골을 온통 채우는 새소리하고 멀어져요. 버스 구르는 소리와 자가용 달리는 소리를 내내 듣겠지요. 버스나 자가용을 안 타더라도 손전화 매만지거나 귀에 소리통 꽂고 대중노래를 들으면, 이때에도 시골소리하고는 멀찍이 떨어질 테고요.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를 건드립니다. 바람이 동백잎과 동백꽃을 건드립니다. 사월에 흐드러진 풀빛 꽃망울 한가득 터뜨리는 느티나무는 꽃잎과 나뭇잎이 사르락사르락 부대끼면서 새로운 풀노래 들려줍니다. 느티꽃이 지는 오월되면 짙푸르게 빛나는 느티잎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풀노래 들려주지요. 가을에는 붉게 물드는 잎사귀 얼크러지는 새로운 풀노래 들려줍니다. 철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른 소리예요.


  밭뙈기에 옹크리고 앉아 흙을 만지고 풀을 돌보노라면, 앉은뱅이 나즈막한 꽃대를 건드리는 바람을 쐽니다. 들바람이요 흙바람이자, 봄꽃바람입니다. 가느다란 냉이꽃대 건드리는 봄바람과 굵직한 유채꽃대 흔드는 봄바람은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다릅니다. 민들레꽃 건드리는 봄바람과 딸기꽃 건드리는 봄바람은 또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달라요. 탱자꽃 건드리는 봄바람과 찔레꽃 건드리는 봄바람은 또 이대로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다르지요.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감고 소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어떤 소리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참새는 ‘짹짹’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귀뚜라미와 풀무치와 방아깨비 풀벌레 풀노래 소리결 또한 모두 다르며, 어떤 틀에 박힌 글로 적바림할 수 없습니다. 왜가리는 어떤 소리를 내며 울까요? 제비는 어떤 소리를 내며 처마 밑 둥지에 깐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다 나를까요? 시골마을에 깃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맡아 가르치는 분들은 시골아이한테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어떤 빛깔을 보여주며, 어떤 무늬를 깨닫도록 북돋울까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어떤 소리·모습·빛깔·무늬를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밝힐 수 있을까요?


  강성미 님이 쓴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샨티,2013)라는 책을 읽다가, 217쪽에서 “난 속으로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는 대목을 보고, 234쪽에서 “어휴, 민주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하는 대목을 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강성미 님은 한숨소리를 아직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이 책을 내놓은 출판사 편집부 일꾼도 한겨레 한숨소리를 어떻게 적을 때에 알맞은가 하는 대목을 미처 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아예 모르지는 않는 한숨소리예요. 다만, 제대로 가르치는 어른 드물고, 올바로 이야기하는 어른 찾아보기 힘들며, 저마다 입시공부와 영어공부에 얽매여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는 길은 좀처럼 느긋하게 들려줄 틈이 없을 뿐이로구나 싶어요.


  자, 숨을 한 번 들이켜봐요. 어떻게 들이켜나요. 후우우욱 들이켜겠지요.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겨 봐요. 어떻게 생각에 잠기나요. 으흐흐흐흠 생각에 잠기겠지요. 아이들이 뭔가 잘못했을 때에 어떤 숨소리 새어나오나요. 아이구, 으이구, 아유, 같은 말이 절로 나오겠지요.


  예부터 한겨레 어느 누구도 숨소리를 잘못 적은 일 없어요. 왜냐하면, 어른들은 이녁 어버이한테서 말을 곱게 물려받았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이녁 스스로 어른 되어 아이들 낳으면 다시 곱게 물려주었어요. 이런 삶을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 이었어요. 이러다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미군정과 한국전쟁과 분단과 온갖 아프고 힘겨운 나날 이어지면서 ‘어른이 아이한테 말 슬기롭고 올곧게 물려주던 삶’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한국과 이웃한 일본에서는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휴’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후유’로 적습니다. 또는 ‘히유’로 적어요. 때로는 ‘어휴’나 ‘아휴’가 되지요. ‘으흠’이나 ‘에헴’처럼 숨소리를 내요.


  아주 조그마한 대목이라 할 숨소리예요. 아주 자그마한 자리라 할 새소리이고 벌레소리예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아주 조그마한 대목 올바로 들려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올바르지 않은 말을 늘 듣고 으레 따라해요. 우리 어버이들이 아이들 앞에서 아주 자그마한 자리 슬기롭고 해맑게 밝혀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한국말하고 자꾸 멀어져요. 집에서부터 어버이 누구나 알맞고 아름답게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 자리에 있는 분들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포근하고 넉넉한 넋으로 말과 글을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4.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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