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밭 놀이터

 


  헌책방 할배가 사다리를 타고 높은 책시렁에 꽂힌 책을 끄집어 낸다. 세 살 아이가 헌책방 할배 꽁무니를 좇아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 한다. 헌책방 할배가 넌 여기 올라오지 말고 아래에 있으렴, 하고 말하니, 아래에서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세 살 아이는 사다리 함께 타고 싶다. 저도 영차영차 올라가서 더 높은 데 올려다보고, 높은 자리에서 아래쪽 내려다보고 싶다. 올라가고 싶지? 그러면 밥 즐겁게 먹으며 몸 튼튼히 자라면 돼. 하루하루 개구지게 뛰놀면서 팔도 다리도 몸도 씩씩하게 크면 돼. 그러면 머잖아 너도 이 책밭에서 책놀이 한껏 즐기는 책아이 될 테지.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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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만 마치고 사회로 나온 젊은이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담은 책 하나를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만 마쳤고 옆지기는 중학교만 마쳤는데, 우리 식구와 같은 학력자를 요즈음 둘레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못 볼는지 모르지. 대학교를 간대서 집일을 더 알뜰히 하지 않고, 대학교를 다녔기에 아이들을 살가이 사랑하지는 못하며,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랑을 빛내지는 않는다. 이 작은 책에서 이런 대목까지 슬기롭게 짚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런 대목까지 못 짚더라도, 사회 틀거리에 맞추어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로서는 굳이 대학교까지 가야 할 까닭이 없는 줄,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으면 제값 다 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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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삶이 길이 되고 꿈이 땀이 된 고졸 청년들의 이유 있는 선택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2년 1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5월 0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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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빛

 


  다 다른 해에 태어난 다 다른 책이 다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다 다른 크기와 다 다른 모양새로 나온 책들이 알록달록 빛나는 책탑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인다. 높다라니 쌓인 책탑 뒤에는 어떤 책들이 어떤 무늬와 빛깔로 있을까. 책탑 뒤에는 어떤 책들이 오래도록 숨죽인 채 책손 손길을 기다릴까.


  책은 책으로 있는 동안에도 빛난다. 책은 책손 손길을 타면서 새롭게 빛난다. 책은 책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이끌려 새로운 책시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삼스럽게 빛난다.

  읽힐 때에 비로소 책이라 하는데, 읽히지 않을 때에도 모두 책이다. 왜냐하면, 읽히지 않은 책은 없으니까.


  읽혔다 하는 책 가운데 속내와 사랑과 마음까지 샅샅이 읽힌 책은 얼마나 될까.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다. 줄거리 줄줄 꿰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다. 책에 서린 삶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책에 깃든 숨결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책에 감도는 사랑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몇 줄을 읽든 대수롭지 않다. 여러 차례 읽거나 스물 서른 마흔 차례 읽든 대단하지 않다. 가슴으로 읽고, 마음으로 새기며, 사랑으로 헤아릴 때에, 비로소 책읽기가 이루어진다. 책빛은 책읽기를 누리는 사람들 눈망울에서 곱게 드러난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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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나오는 아이들과

 


  어린이날 맞추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으로 찾아간다. 나는 밤새 집안일 한다. 새벽에 빨래를 하고 밥을 한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잔다. 자다가 칭얼거리는 아이들 쉬를 누인 다음 토닥토닥 재우고는, 다시 이것저것 일손 붙잡는다. 고흥부터 일산까지 가는 길에 아이들 먹을 밥이랑 이것저것 꾸린다. 아침 여덟 시 십오 분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짐 다 꾸린 아침 여덟 시에 아이들 깨운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 입으라 하고, 작은아이는 바지 갈아입히고 양말 신긴다.


  부랴부랴 마을 어귀 버스터로 나온다. 한참 기다려도 군내버스 안 온다. 왜 오는가 싶더니, 내가 버스때를 잘못 읽었다. 여덟 시 십오 분 아닌 여덟 시 사십오 분 버스였다.


  아이들이 배고프다 한다. 시외버스에서 주려 하던 빵을 꺼낸다. 잼병도 꺼낸다. 달기잼을 발라 두 장씩 준다. 시골마을 아침볕 받으며 나무걸상에 앉아 군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빵조각 먹는다. 아이들 곁에 내가 짊어질 가방을 놓고 바라보니, 내가 짊어질 가방은 아이들 몸피보다 크고 아이들 몸무게보다 무겁다. 서울 가는 시외버스 탈 때까지 졸음을 참자.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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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못한 책을 사다

 


  처음 만난 지 일곱 달 지나도록 사들이지 못하고 멀거니 구경만 하던 사진책을 드디어 다른 헌책방에서 만난다. 참 뜻밖에, 아주 뜻밖에 만난다. 그런데, 다른 헌책방에서 만난 이 사진책을 가만히 올려다보니, 꽂힌 모습으로 보건대 퍽 여러 해 그 자리에 있은 듯하다. 몇 해쯤 먼지 먹으며 있었을까. 다섯 해? 열 해? 열다섯 해?


  예전에 이 헌책방에 찾아왔을 적에도 이 사진책은 저 자리에 멀쩡히 있었을 테고, 내 눈이 요 사진책을 여태 못 알아보았을 뿐이로구나 싶다.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서 받침대 구실을 하며 먼지만 먹던 책을 꺼낸다. 헌책방 일꾼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천천히 꺼내어 준다. 이 사진책 위에 얹힌 무거운 다른 책을 옆으로 옮긴 뒤 내려 준다.


  겉상자를 하나씩 연다. 두 겹으로 된 겉상자를 벗기니 서른 해 남짓 묵었어도 빛 하나 바래지 않은 예쁜 알맹이 나온다. 얼른 겉상자 다시 입힌다. 셈대 옆에 살짝 세운다. 이리 보아도 좋고 저리 보아도 좋구나. 이 책 하나 내 품에 들어오면서 내 마음 조금 더 연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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