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 한자말 180 : 전시戰時


심지어 전시戰時에조차 영역을 가르는 것을 자연스럽거나 당연하거나 혹은 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헤르만 헤세/두행숙 옮김-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문예춘추사,2013) 20쪽


  ‘심지어(甚至於)’는 ‘더구나’나 ‘더욱이’나 ‘게다가’로 다듬고, “영역(領域)을 가르는 것을”은 “금을 가르는 짓을”이나 “이쪽 저쪽 가르는 짓을”로 다듬으며, ‘당연(當然)하거나’는 ‘마땅하거나’로 다듬습니다. ‘혹(或)은’은 ‘또는’으로 손보고, “성(聖)스러운 것으로”는 “거룩하다고”로 손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 “자연스럽거나 당연하거나”라 나오는데, ‘자연스럽다’ 말뜻 (2)은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입니다. 곧, 이 보기글에서는 같은 말을 잇달아 적어 겹말이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거나 당연하거나”는 “올바르거나 마땅하거나”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한자말 ‘전시(戰時)’는 “전쟁이 벌어진 때”를 가리킵니다. ‘전쟁’은 한자말이라고 하지만, 전쟁이 벌어진 때는 ‘전쟁통’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낱말은 사람들이 널리 쓰는 데에도 국어사전에는 안 실려요. ‘난리통’이라는 말도 사람들이 익히 쓰지만 국어사전에는 없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흐름이나 모양새”를 가리키는 ‘통’은 “어수선한 통에 잃어버렸다”라든지 “반가운 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처럼 쓰기도 하지만, ‘북새통’뿐 아니라 ‘전쟁통·난리통’처럼 쓰기도 합니다. ‘-통’은 뒷가지로도 얼마든지 쓰는 낱말인 만큼, 국어사전에서도 이 대목을 슬기롭게 다루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전시戰時에조차
→ 전쟁통에서조차
→ 전쟁이 벌어진 때에조차
→ 전쟁 때에조차
→ 싸움통에서조차
 …

 

  국어사전에서 ‘전시’라는 낱말을 살피면, 모두 열한 가지 한자말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쓰는 ‘전시’는 “도서 전시회” 같은 자리에 쓰는 ‘展示’ 한 가지입니다. 다른 한자말 ‘전시’는 쓸 일이 없고, 쓰일 일조차 없습니다. 안 쓰는 한자말을 잔뜩 실은 국어사전이니 국어사전이라기보다 한자말사전 같구나 싶기도 한데, 보기글을 보면 ‘展示’하고 ‘戰時’가 헷갈릴 일은 없으리나 느낍니다. 그러나, 이 글월을 못 알아들을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면, 번역을 다시 해야지요. 쉽고 바르며 또렷하고 알맞게 다시 풀어서 적어야지요.


  적어도 “전쟁 때”로 풀어서 쓰고, “전쟁통”으로 고치거나 “전쟁이 벌어진 때”처럼 조금 길더라도 제대로 드러나도록 써야 합니다. ‘전쟁’을 ‘싸움’으로 고쳐써도 돼요. 학교나 사회에서 말을 올바로 쓰지 않으니, 사람들도 말을 올바로 배우지 못하는데, ‘전쟁하다’와 ‘싸우다’는 뜻 테두리가 같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일도 ‘싸움’이지 ‘전쟁’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경제 전쟁·순위 전쟁·입시 전쟁”이라고만 쓸 말은 아니에요. “경제 싸움·순위 싸움·입시 싸움”이라고도 쓸 수 있습니다. 4346.10.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더구나 전쟁통에서조차 이쪽 저쪽 가르는 짓을 올바르거나 마땅하거나 거룩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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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95) 그녀의 7 : 그녀의 동그란 어깨

 

그녀의 동그란 어깨 위로 오후의 겨울 햇살이 내린다
《레아·여유-따뜻해, 우리》(시공사,2012) 16쪽

 

  “어깨 위로”는 “어깨에”로 다듬습니다. 햇살은 어깨에 내리고, 땅에 내리며, 나무에 내리고, 꽃송이에 내립니다. “위에” 내리지는 않아요. 위와 아래로 따지지 않습니다. “오후(午後)의 겨울 햇살”은 “한낮 겨울 햇살”이나 “겨울 한낮 햇살”이나 “겨울 낮 햇살”로 손질합니다. 겨울에 드리우는 햇살은 아침에는 아직 포근하다고 느끼기 어렵고, 낮이 되어야 비로소 포근한 줄 느낍니다. 그러니, 이 글월에서는 “포근한 겨울 햇살”로 손질할 수 있어요.

 

 그녀의 동그란 어깨 위로
→ 자는 아이 동그란 어깨에
→ 조그맣고 동그란 어깨에
→ 동그란 아이 어깨에
 …

 

  새근새근 자는 아이 어깨에 햇살이 내린다고 합니다. 자는 아이는 가시내입니다. 아이도 사내와 가시내로 나누어 ‘그녀’로 가리킬 만하지 않느냐 물을 수 있지만, 아이는 아이요 어른은 어른입니다. 가시내는 가시내요 사내는 사내예요. 여러모로 ‘그녀’를 곳곳에서 흔히 쓴다 하더라도, 잘못 쓰거나 올바르지 않게 쓰는 말투는 살포시 털거나 덜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 아이들 가리키는 이름이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곱고 맑은 바람과 물을 누리면서 곱고 맑은 넋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그대로, 곱고 맑은 말로 곱고 맑은 생각을 빛내도록 하기를 빕니다. 4346.10.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는 아이 동그란 어깨에 포근한 겨울 햇살이 내린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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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번쩍 어린이

 


  맨발로 마당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놀던 사름벼리가 갑자기 두 팔 번쩍 치켜들더니 노래노래 부르면서 다시금 휘젓는다. 이를 본 동생도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누나를 따른다. 얼마 앞서까지 머리 위로 손이 안 올라가던 세 살 동생이지만, 이제 제법 손을 치켜드는 티가 난다.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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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누나 따라 소리지르기

 


  목청껏 소리지르며 놀기 좋아하는 누나 곁에서 누나 따라 소리를 지르는 산들보라. 우리 시골집에서는 너희가 목청껏 소리지를 수 있단다. 다른 어디에서도 못 하는 놀이일 테지. 신나게 놀며 소리를 지르고 노래도 부르렴.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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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취재 (도서관일기 2013.10.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으로 방송취재를 나온다. 곰팡이 핀 책꽂이를 바꾸고 니스를 바르느라 부산한 만큼, 이래저래 어지럽지만, 얼추 치워 놓는다. 작은아이가 똥을 스스로 다 가릴 줄 안 뒤로 도서관으로 함께 나와서 일할 적에 한결 수월하다. 앞으로 작은아이가 더 크면, 두 아이가 도서관에서 한창 뛰놀다가도 조용히 걸상에 앉아 그림책을 읽겠지. 그러면 이동안 아버지는 더욱 느긋하게 오래도록 도서관 책꽂이를 손질하고 청소도 하겠지.


  둘이 잡기놀이를 하더니, 어느새 조용하다. 큰아이는 만화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읽는다. 작은아이는 바퀴인형을 들고 책꽂이 사이를 누비는 기차놀이를 한다. 방송국 피디한테서 전화가 온다. 마을회관 앞에 왔단다. 마을회관 앞으로 가서 도서관으로 함께 돌아온다. 한국방송에서 〈스카우트〉라는 이름으로 푸름이들 나오는 풀그림을 찍는다고 한다. 올 한글날에 맞추어 한글과컴퓨터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는 푸름이 넷이 저마다 다른 솜씨를 뽐내며 겨룬다고 한다.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온 푸름이는 열아홉 살 아이. ‘순 우리 말 가로세로 낱말풀이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


  재미있게 만들면 되지. ‘순 우리 말’이라고 하지만, 너희가 학교를 다니며 ‘순 우리 말’을 배운 적 있을까? 없을 테지. ‘순 우리 말’ 아닌 ‘우리 말’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걸. 교과서를 들여다보자. 어디 우리 말다운 우리 말이 있디? 낱말은 낱말대로 엉터리이고, 낱말을 엮는 글월도 글월대로 엉터리이다. 낱말을 놓고 일본 한자말이니 영어이니 하고 나무라면서 다듬느라 사람들이 퍽 애쓰지만, 정작 일본 말투나 영어 번역투에서 홀가분한 사람이 아주 드물다. 국어학자도 한글학자도 전문가도 모두 똑같다. 얼마 앞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꾸짖는 책이 새로 나왔는데, 이 책을 쓰신 분도 ‘일본 말투’와 ‘영어 번역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글월을 엮을 적에 올바르며 알맞고 아름답게 한국말다운 말투가 되지 못하면서, 낱말에만 눈길을 두어서 무엇이 될까.


  말은 ‘낱말’이 아니라 ‘말’인 줄 알아야 하는데, 방송 풀그림에 나오는 이 푸름이는 이 대목을 얼마나 짚을 수 있을까.


  가로세로 낱말풀이를 만든다 할 적에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로만 만들면 쉬 벽에 부딪힌다.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새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보기를 알려주었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들에서 새잡이를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집에서 파리를 잡고 모기를 잡아요. 그러니까 ‘파리잡이’에 ‘모기잡이’예요. 국어사전에는 이런 낱말 안 나오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늘 이런 ‘잡이’를 한단 말이지요. ‘내 밥을 몰래 핥아 먹으려 하는 벌레를 잡는 일’이라고 문제를 내면 재미있어요. 저 하늘에 뜬 구름 보았지요? 저 구름 어때요? 무슨 빛 같아요? ‘구름빛’ 아니고는 나타낼 길이 없겠지요? 구름은 하얀 구름도 있고 잿빛 구름도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하얀 구름만 생각해요. 그렇겠지요? 그러면, ‘파랗게 빛나는 하늘에 하얗게 물드는 빛’이라는 문제를 낼 수 있어요. 정답은? ‘구름빛’이에요. 생각하는 힘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지만, 생각하는 힘 키우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못 맞추겠지요.”


  요새는 도시 아이가 되든 시골 아이가 되든 ‘풀’이 왜 풀인 줄 알지 못하고, ‘푸르다’라는 낱말이 왜 ‘푸르다’인 줄 알지 못한다. ‘노랗다·누렇다·파랗다·빨갛다’가 어떻게 태어난 낱말인 줄 생각하거나 깨닫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말뿌리를 알려주어도 못 믿는 사람도 많다.


  방송국 피디가 오기 앞서 방송작가가 전화를 먼저 걸었는데,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묻더라.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뭐 그런 걸 묻더라. 피식 웃었다. 요새는 읍내나 면소재지에도 아파트나 빌라가 서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시골인데. 도시가 아닌데. “저희 집은 그냥 시골집입니다.” 하고 말하면서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참말 시골을 모를까? 시골은 생각한 적 없을까?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시골집이 아직도 시골에 있는 줄 모를까? 바닥과 벽을 시멘트로 새로 발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시골마을 시골집은 뼈대와 속살은 온통 나무와 흙과 돌이다. 시골을 하나도 모르는 도시사람이 방송을 찍고 신문을 엮을 텐데, 이러다 보니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온통 도시 이야기만 흐른다. 가끔 시골로 무언가 취재하러 나오더라도 시골빛을 제대로 모르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으니 뚱딴지 같은 말을 하기 일쑤이다. 하기는. ‘쌀’과 ‘벼’를 가리는 사람은 흙일꾼 아니고는 없다 할 만하고, ‘겨’가 무엇이요 ‘짚’이 무엇인 줄 가리는 사람도 흙일꾼 아니고는 이제 없지 않겠나. 학교에서도 안 가르치고 교과서에도 안 나올 테며 수학능력시험에도 이런 이야기는 안 물을 테니까.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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