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 3

 


  옆지기가 공부하는 방으로 쓰는 끝방을 치우다가, 2011년 가을에 이곳 고흥 시골집으로 들어온 뒤 아직 끈을 끌르지 않은 상자가 나왔다. 상자 겉에는 ‘은경 장난감’이라면서 옆지기 이름을 적었다. 무엇을 담았더라. 옆지기가 상자를 끌른다. 안에서 플라스틱 소꿉놀이 장난감이 쏟아진다. 옆지기는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이라 치우려 했고, 나는 큰아이가 잔뜩 어지르기만 해서 치우려 했던 장난감이다. 이제 이 장난감이 여러 해만에 아이들 품에 안긴다. 아이들은 방바닥이며 마룻바닥이며 잔뜩 늘어놓고 논다. 발 디딜 자리가 사라진다. 어젯밤에도 잔뜩 늘어놓고는 잠이 들었으니, 방바닥에는 아직 이 플라스틱 소꿉놀이 장난감이 고스란히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곰곰이 생각한다. 나도 어릴 적에 ‘나한테 사랑스러운 장난감’을 방바닥에 잔뜩 펼쳐서 놀기를 즐기지 않았는가. 비록 플라스틱덩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두 아이가 입에 물 일은 없으니, 그래도 아이들이 플라스틱을 만지도록 하는 일이 달갑지는 않지만, 한동안 늘어놓으며 갖고 놀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리도록 놀고 나서 슬쩍 다시 상자에 담아 치우면 되지.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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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01) 나의 40 : 나의 물감 상자

 

아직도 나의 물감 상자를 간직하고 있는 줄리아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김상희 옮김-줄리엣과 물감 상자》(미래M&B,2006) 4쪽

 

  “간직하고 있는”은 “간직하는”으로 손봅니다. ‘-고 있다’와 같은 말투가 우리 말투가 아닌 줄 못 느끼는 분이 많지만, 생각을 차근차근 기울여 우리 말투를 되살릴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과 동화책부터 우리 말투를 알뜰살뜰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물감 상자
→ 내 물감 상자
→ 물감 상자

 

  이 자리에서는 ‘내’로 다듬어야 알맞을 텐데, ‘내’조차 덜어도 됩니다. 어릴 적에 선물받은 물감 상자를 나이가 제법 든 뒤까지 알뜰히 챙겨 간직하는 누군가를 이야기하는 글이기에, 다른 꾸밈말을 넣어 “물감 상자를 알뜰히 간직하는”이나 “물감 상자를 고이 간직하는”이나 “물감 상자를 사랑스레 간직하는”처럼 적어도 돼요. 이 자리에 나오는 “내 물감 상자”란 ‘나한테 보배라 할 만한 물감 상자’입니다. 그래서 “내 아름다운 물감 상자”라든지 “내 즐거운 물감 상자”라든지 “내 사랑스러운 물감 상자”처럼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6.11.10.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직도 물감 상자를 고이 간직하는 줄리아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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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다 소년사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1

 


산 사람들과 죽은 넋
― 하나다 소년사 1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2004.10.13.

 


  깊은 밤에 문득 깹니다. 작은아이 칭얼거리는 소리 듣고는 반듯하게 누이고 이불을 새로 여밉니다. 큰아이도 다독입니다. 쉬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고무신에서 철벅 소리가 납니다. 응, 뭔가? 발을 빼내고 들여다보니 고무신에 빗물이 고여 찰랑거립니다. 우리 식구 잠든 뒤에 비가 퍽 몰아쳤구나 싶습니다. 섬돌이 폭삭 젖고 신도 모두 젖었습니다.


  깊은 밤, 비가 그친 하늘에 별 몇 자그맣게 보입니다. 비는 그쳤는가 보구나. 늦가을 비가 내렸으니 앞으로는 날이 퍽 썰렁하겠구나 싶습니다. 이제부터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다니려면 장갑을 끼워야겠습니다. 아이들 장갑이 제자리에 잘 있나 살펴야겠고, 아이들 겨울옷 모두 꺼내야겠습니다.


  아이들 여름옷을 언제 꺼냈고 겨울옷은 언제 치웠는가 돌아봅니다. 얼마 안 된 일 같습니다. 앞으로 몇 달 지나면 새삼스레 아이들 여름옷을 도로 꺼내고 겨울옷은 다시 집어넣겠지요.


  살아가는 동안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새로 맞이합니다. 살아가면서 아침과 낮과 저녁을 새삼스레 마주합니다. 시간과 날짜는 똑같다 할 만하지만, 언제나 다른 때와 곳입니다. 나는 올 2013년을 끝으로 서른아홉 살이 저뭅니다. 지난 2012년에는 서른여덟 살을 지났어요. 다가오는 2014년에는 마흔 살이 됩니다. 서른아홉 살도 서른여덟 살도, 또 마흔 살도 나한테는 꼭 한 번 찾아와서 누리는 나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아, 여섯 살도 다섯 살도 일곱 살도 꼭 한 번만 누리는 나이예요.


- ‘아, 난 이대로 죽는 걸까? 아직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됐는데. 역시, 벌을 받은 거야!’ (6∼7쪽)
- “말도 안 돼. 그건 내가 봤을 때 이미 차에 깔려서 죽은 거였다고! 그치 소타?”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야. 죽은 생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게 얼마나 큰 죄인 줄 알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난 모른다.” (11쪽)

 

 


  아이들을 아무런 시설이나 학원이나 학교에 안 보내는 뜻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교에 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넋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살아가는 넋’을 가르치지 못해요. 아니, ‘살아가는 넋’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합니다. 유치원 교사는 교사로서 훌륭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교사이기 앞서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을 줄 아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에 기대지 않고서, 스스로 삶을 일굴 줄 아는 사람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날에는 시골사람조차 스스로 우뚝 서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거의 모두 농약과 비료에 기댑니다. 시골사람 모두 기계와 자동차에 기댑니다. 시골사람 누구나 석유와 전기에 기댑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고작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헤아리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제법 많습니다. 1960년대까지 살피면 어떤 굴레나 틀이나 제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두 손과 두 다리로 삶을 지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머리와 마음과 가슴으로 삶을 일구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지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말을 짓고 생각을 지었어요.


- “귀신이 나타나면 다 엄마 때문이라고요!” “네가 항상 나쁜 짓만 하니까 귀신 같은 게 무서운 거야.” (16쪽)
- “이치로.” “왜요, 귀신 누나. 난 지금 누구와도 얘기할 기분이 아니니까 방해하지 마요.” “이치로, 도와줘.” “시끄러워요. 난 누굴 도울 수 있는 애가 아니라니까요. 치로조차 구하지 못한 내겐 그 무슨 일도 무리라고요.” “새로운 생명을 구해냈잖아!” (50∼51쪽)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됩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됩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가게를 차리거나 회사를 엽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장사를 하거나 작가가 됩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아이들 가운데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에서 물을 만지는 아이는 없어요. 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아이들 사이에서 삶을 스스로 지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아이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워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을 해요. 일본사람이니 일본말을 해요. 베트남사람이니 베트남말을 해요. 티벳사람이니 티벳말을 해요. 영국사람이니 영국말을 해요. 그렇지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국말도 중국말도 일본말도, 또 미국말이나 영국말도 아닌, 어설픈 뒤죽박죽 얄딱구리한 말을 합니다.


  교과서 아닌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요. 참고서 아닌 책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요. 교재 아닌 책은 무엇을 밝히는가요. 자기계발서 아닌 책은 무엇을 드러내는가요.


  삶에서 빛을 읽을 때에 책입니다. 삶에서 꿈을 찾을 때에 사랑입니다. 삶에서 이야기를 엮을 때에 말입니다.


  머리나 생각이 아닌 손으로 숟가락을 쥐어 밥을 떠서 입으로 먹습니다. 온몸으로 살아내는 하루입니다. 온마음을 기울여 씩씩하게 살아내는 나날입니다. 모든 것은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 아닌 죽음에서 비롯하는 것은 없습니다. 삶 아닌 지식이나 책이나 학교에서 비롯하는 것조차 없습니다.


- “태어났을 때부터 의사가 10살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대요.” “그럼 지금으로도 꽤 득 본 거네.” “네?” “7년이나 더 살았잖아.” (70쪽)
- “고, 고마워요.” “수제품은 수제품이지만, 그래 봤자 그냥 잡동사니잖아.” “잡동사니가 아니에요!” “잡동사니야.” “아녜요.” (72∼73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하나다 소년사》(삼양출판사,2004)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을 잇습니다. 《하나다 소년사》에 나오는 아홉 살짜리 머스마 ‘하나다’는 누구도 못 말릴 말썽쟁이입니다. 언제나 말썽을 일으킵니다.


  이 아이는 왜 말썽을 일으킬까요. 이 아이는 왜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는 삶 아닌, 말썽을 피우는 짓을 서슴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삶과 밝은 웃음과 사랑스러운 노래를 싫어하는 아이일까요.


  하나다네 어버이가 하나다와 함께 조용히 흙을 만지면서 흙을 사랑하는 나날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다가 이녁 어버이와 함께 시골마을에서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물려받아 찬찬히 나눌 적에도 말썽쟁이 짓을 똑같이 할까 궁금합니다.


  하나다는 왜 학교에서 시험을 봐야 하고, 시험은 으레 0점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다는 왜 짓궂은 짓을 일삼고, 텔레비전에 목을 매며, 집식구들한테서 걱정을 한몸에 살까요.


- “아냐! 나한테 부탁을 하려고 멋대로들 찾아오는 거라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안 보이니까 말해 봤자 모르잖아. 그래서 나한테 오는 거라고.” (141쪽)

 

 


  온갖 잘못과 말썽을 일삼던 하나다는 이웃집 자전거를 훔쳐 꽁무니를 빼다가, 그만 외딴길에서 짐차와 박습니다. 하나다는 하늘로 붕 날며 죽는 길로 갑니다. 하나다는 참말 죽습니다. 그런데 함께 죽음길 저승나라로 가던 어떤 예쁜 누나가 ‘넌 아직 이 길로 오려면 멀었다.’고 말하면서 이승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하나다는 ‘죽은 넋’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요.


- “응? 이치로. 우리 엄마를 도와줘! 우리 엄마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전해 줬으면 해.” (151쪽)
- “엄마, 제발 다시 건강해지세요! 나는 죽었지만 언제나 엄마 곁에 있으니까.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가시게 되면 나도 엄마가 계신 곳에 다시 태어날게요. 나는 엄마가 좋으니까 다시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러니 건강하게 사세요! 난 괜찮으니까!” (170∼171쪽)


  하나다는 죽는 자리에서 ‘이제 죽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여태껏 저지른 엄청난 말썽 때문에 값을 치른다’고 깨닫습니다. 두 가지를 깨달은 하나다는 ‘예전 삶’이 죽어서 시나브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삶’이 깨어나 시나브로 나타납니다.


  죽은 넋은 그동안 하나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둘레에도 늘 있었지만, 하나다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죽은 넋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죽은 넋을 알아볼 마음이 없기도 했고, 죽은 넋을 알아본들 무엇을 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다는 이제까지 말썽만 저지르면서 ‘안 본 모습’을 새롭게 봅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모습을 차분히 들여다봅니다. 잔꾀를 부리려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마음’으로 달라집니다. 아홉 살짜리 철부지가 열 살을 앞두고 철을 살살 벗습니다. ‘산 사람’을 돌아보고 ‘죽은 넋’을 뒤돌아봅니다. 살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죽은 넋이 되었다고 해서 슬프거나 서운하거나 아프지 않구나 하고 찬찬히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넋은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다부터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셈이니까요.


  목숨을 얻어야 삶이 아니라, 사랑을 얻을 때에 삶입니다. 목숨을 더 이어야 삶이 아니라, 사랑을 기쁘게 나눌 때에 삶입니다. 하나다를 저승나라에서 이승으로 돌려보낸 누나는 바로 이 대목을 하나다가 스스로 깨달으며 앞으로는 아름답게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바랐지 싶어요. 하루하루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를 깨달아, 언제나 맑은 웃음과 밝은 노래 부를 수 있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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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책, 왠지 그림결부터 재밌어 보이고
이야기도 좋습니다. ^^

파란놀 2013-11-10 10:14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절판되었답니다!
저도 1권과 2권만 사 놓고... 뒤엣권은 없어서 못 봐요 ㅠ.ㅜ

<피아노의 숲> 연재할 때에 함께 나온 책인데,
이 책이 이렇게 일찍 절판될 줄은 몰랐어요... 에구... ㅠ.ㅜ

<피아노의 숲>을 그린 분이 함께 그린 짧은 작품이랍니다.
모두 다섯 권이에요.
 

글을 쓰는 까닭

 


  글은 읽히려고 쓸까? 맞다. 글은 틀림없이 읽히려고 쓴다. 그러면,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인가? 왜 읽히려고 쓰는가?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한테 이야기를 하고 나 스스로 읽으려고 쓰는 글이 된다고 느낀다. 껍데기인 나한테가 아닌 알맹이인 나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내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한테 참과 거짓을 밝혀 들려줄 이야기가 있기에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어느 글을 쓰든 거짓을 쓸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알아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거짓말을 쓰곤 한다. 왜냐하면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삶부터 거짓이니, 글이 저절로 거짓스럽게 나온다. ‘글은 거짓’이지만 ‘거짓을 글로 쓰는 그이 삶은 참’이다. 다시 말하자면, 거짓스레 살아가는 사람은 ‘거짓스레 글을 쓰는 일’이 그이한테는 ‘참모습’이고 ‘참삶’인 셈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이라면, 스스로 거짓스러운 삶인 줄 깨닫지 못하면서 거짓스러운 글을 쓰는 일이라고 느낀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이런 글은 쉬 알아채리라 느낀다. 이를테면, 독재정권을 휘두른 사람들이 뱉은 말과 쓴 글을 보라. 민주와 평화를 짓밟는 이들이 뱉는 말과 쓰는 글을 보라. 이러한 말과 글은 얼마나 거짓스러운가. 그렇지만, 이러한 말과 글을 내놓는 이들 스스로 참다운 삶이 아닌 거짓스러운 삶을 누리기에, 이들이 내놓는 말과 글은 온통 거짓투성이가 될밖에 없다.


  나는 참을 말하는가? 나는 참을 글로 쓰는가? 예배당에 있는 하느님한테 대고 다짐할 까닭은 없다. 언제나 나 스스로 내 가슴에 대고, 내 마음속에 있는 나한테 다짐을 할 노릇이다. 나 스스로 가장 맑고 밝은 넋이 되어 글을 쓰는가? 나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빛이 되어 글을 쓰는가?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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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10 15:0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문득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이 겹쳐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자기자신에게 씨없는 호도를 주지 않는 법

철학적 성찰에 있어서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 때문에 생각하고 탐구하고 한 자만이 뒤에 가서 타인의 이익도 되지만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정하여진 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탐구하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일반적인 성의(誠意)라는 성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고, 또 자기 자신에게 씨없는 호도(胡桃)를 주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궤변과 미사여구는 없어지고 그 결과 간단히 기록하여 둔 문장도 그것을 읽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중에서



파란놀 2013-11-10 15:1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쇼펜하우어라는 분이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렇게 들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저도 읽은 글이었을는지 모르지만,
oren 님이 이처럼 옮겨 주시니 더 즐겁고 반가워요~ ^^
 

내가 걷는 길 1. 큰 출판사와 싸우다
― 이오덕 님 책과 한길사·창비·보리

 


  내가 걷는 길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 말할 만한가 하고 헤아려 본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시골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한테, 따로 어디에 몸을 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한테, 이름도 힘도 돈도 없을 테니, 내가 걷는 길 이야기란 대수롭지 않을 만하다. 내가 걷는 길 이야기는 내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이면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들을 아버지 살아온 이야기이다.


  2003년 8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출판사 일에서 손을 뗀다. 1999년 8월 8일에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출판사에 첫발을 뗐고, 이곳에서 2000년 6월 30일까지 일했다. 이해 11월 30일까지 전화기를 끈 채 조용히 책만 읽으면서 살았고, 2001년 1월 1일부터 보리 출판사 계열사인 토박이 출판사에서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편집장 일을 했다.


  처음부터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갈 적에는 통역사나 번역가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내 전공 외국말을 너무 엉터리로 가르치는 바람에, 통역사 꿈도 번역가 꿈도 모두 접었다. 대학교는 다섯 학기만 다니고는 그만두었다.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통역사와 번역가 되는 공부를 하면서 한국말을 새롭게 배웠다. 다만, 나한테 한국말을 가르친 스승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다. 오직 혼자서 수백 권에 이르는 국어사전과 수천 권에 이르는 국어학 책을 살피고 뒤지고 읽고 하면서 스스로 가르치고 배웠다. 외국말은 외국말대로 제대로 배우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대로 제대로 익혀야 통역사나 번역가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말 배우는 길이 끊어졌다. 얼결에 한국말 공부만 그대로 했고, 이 공부가 오늘날 내가 하는 일이 된다.


  나중에 토박이 출판사에서 일할 적에 들은 이야기인데, 처음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힐 적에, 윤구병 선생이 나를 한 해만 책마을 현장과 실무를 겪게 한 뒤, 이듬해에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어린이 국어사전’을 만들자면, 대학 학벌에도 어떤 편견이나 주의주장에도 물들지 않은 젊은 사람이 편집장이 되어 자료를 모으고 갈무리하고 엮어야 한다고 했다.


  국어사전 만드는 일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직 섣부른 길이었을까. 더 배우고 갈고닦을 배움길이 있었을까. 토박이출판사 사장인 윤구병 님 옆지기 님하고 세 차례 실랑이가 있었다. 토박이출판사 사장을 맡기로 한 윤구병 님 옆지기 님은 회사 관리만 맡겠다 하셨으나 자꾸 편집 일을 넘보셨다.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며 두 차례 실랑이가 지나가고 세 차례 실랑이가 생기자, 나어린 내가 그만두어야겠다고 깨달았다.


  나이로 치면 책마을에서 더 일할 수 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간사 자리로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또 전화기를 끈 채 한 달을 살았다. 전화기를 다시 켠 날,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전화 한 통 왔고, 이튿날 충주 무너미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이오덕 님 큰아들인 이정우 님을 처음 만났고, 이 자리에서 “아버지 글을 맡아 줄 수 있겠나?” 하는 말씀을 들었다. “저는 실업자라서 벌이가 없어 이곳을 오가는 찻삯이 없어요. 버스삯만 주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했다.


  무너미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서울로 돌아갔다. 사흘쯤 서울 시내 헌책방들 다니면서 무척 오랫동안 책만 읽었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이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려 했지만, 갈피가 잡히지 않아, 무턱대고 온갖 책을 읽고 살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돌아가신 이오덕 님이 지내던 방에서 일을 했다. 이오덕 님이 지내던 방과 책을 둔 방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처음 일한 때부터 석 달 즈음, 먼지를 닦고 쓸며 치우는 일만 했다. 책에 묻은 곰팡이를 닦고 햇볕에 말렸다. 축축하고 눌러붙은 원고를 모두 바깥으로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켰다. 어릴 적부터 코가 나빴는데, 하루 내내 먼지를 마시다 보니 코가 더 나빠졌다. 그래도 시골바람 마시면서 코와 몸을 달랠 수 있었다.


  한창 먼지와 씨름하면서 이오덕 님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던 11월 10일, 갑자기 큰 일이 하나 터졌다. 큰 출판사 한길사에서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몰래 함부로 내놓았다. 가을걷이를 마쳤으나, 다른 일이 아직 많은 시골인데, 이정우 님은 열 일을 젖혀 놓아야 했다. 충주에서 안동까지 여러 차례 오가면서 권정생 님과 이야기를 하고, 또 전화로도 한참 이야기를 했다. 나도 원고 갈무리는 멈추었다. ‘말썽을 일으킨 한길사에 보낼 내용증명’을 쓰느라 여러 날 걸렸다. 내용증명을 쓰고 나서 권정생 님한테 전화를 걸어 이대로 할까요 고칠 곳 있나요 하고 여쭈었다. 내용증명을 다 쓰고 나서, 매체에 알릴 기사를 썼다. 기사를 다 쓰고 나서는 권정생 님을 찾아가서 보여 드렸다. 몇 군데를 손질해서 올리기로 했다. 오마이뉴스라는 데에 기사를 올리고, 다른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띄웠다.


  이때부터 여러 날 격려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비방선전도 들어야 했다. 내(최종규)가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고서 ‘잘난 척’한다는 비방선전이었다. 윤구병 님한테서 사랑을 받아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장’이 되더니, 이번에는 ‘이오덕 원고 정리 책임자’가 되어, 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분다’는 비방선전이 뒤따랐다. 이런 비방선전은 내 귀로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정우 님이 이녁한테 이런 비방선전을 알리는 전화가 온다고 말씀해 주었고, 책마을에 있는 선배들이 술 한잔 사 주겠다고 하면서 ‘누가 말했는지는 알려 하지 말고 이런 뒷소문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길사가 저지른 말썽은 열흘째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출고정지 안 하겠다’고 닷새를 버티었고, ‘출고정지 하겠다’고 했어도 닷새를 더 책을 팔았다. 이정우 님은 짐차를 손수 몰아 파주로 달려가서, 출고정지를 해서 창고에 그대로 남은 책을 짐칸에 싣고 돌아왔다. 이 책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려고 하다가, 권정생 님이 “정우야 태우지는 말아라. 책이 불쌍하다.” 하고 말씀해서 태우지 못했다. 이정우 님은 “그러면, 무너미에 아버지 생각하며 찾아오는 손님한테 한 권씩 드릴까요?” 하고 여쭈었고, “그렇게 해라. 그 책을 팔지는 마라.” 하고 말씀했다.


  말썽은 가라앉았지만, 책마을에서 나를 두고 입방아 찧는 엉뚱한 소문에 시달렸다. 게다가, 한길사 말썽이 가라앉은 뒤 ‘창작과비평사(창비)’ 말썽이 터졌다. 이오덕 님이 공책에 남긴 일기책을 어느 날 커다란 상자 하나에서 찾아냈는데, 이 일기책을 살피다가 창작과비평사에서 이오덕 님이 낸 ‘아이들 글모음’이 ‘인세 계약’이 아닌 ‘매절’로 낸 책인 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어느 해부터인가 창작과비평사는 《우리 반 순덕이》며 《이사 가던 날》이며 《웃음이 터지는 교실》이며, 모두 다섯 권에 이르는 책 간기(판권)에 저작권을 아예 ‘창비’라 적고, ‘이오덕’이라는 이름까지 지워 없앴다.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로구나 하고 느껴, 저작권심의협의회에 정식으로 여쭈었다. 창비 출판사에서 ‘인세 계약’ 안 한 잘못 하나, ‘저작권 표시 의무 위반’ 잘못 둘, ‘미지급 인쇄 소급 적용’ 안 한 잘못 셋, 이렇게 세 가지로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창비 어린이책 책임자로 있는 김이구 님한테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러한 일이 있으니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알렸다. 이때까지 지급을 하지 않은 인세를 지급할 것, 이제까지 몇 권 팔았는지 자료를 보낼 것, 이오덕 님한테서 저작권리 물려받은 이정우 님과 새 계약서 쓸 것, 이렇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창비 김이구 님은 ‘창비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법정에 소송을 걸기로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글쓰기연구회 교사들과 둘레 사람들이 ‘죽은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라면서 법정 소송을 하지 말라고 말렸다. 무엇이 먹칠일까. 잘못을 그대로 안고 가는 일이 먹칠일까, 잘못을 밝혀 바로잡는 일이 먹칠일까. 글쓰기연구회 교사들은 한길사에서 낸 책을 절판시킨 일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분들은 ‘잘못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 나온 책은 그대로 유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이었나 두 달이었나 석 달이었나, 이오덕 님 글 갈무리하는 일이 자꾸 뒤로 밀리면서 엉뚱한 소송글과 내용증명을 써야 하니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큰 출판사와 싸우려고 무너미마을에 오지 않았는데, 그동안 큰 출판사들이 이오덕 님 책을 놓고 벌인 잘못이 자꾸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맺고 풀 적마다 내 뒤에서 나를 나쁘게 말하는 소문이 커진다.


  창비 출판사는 드디어 편지를 보냈다. 인세 미지급금으로 500만 원을 주고, 새 계약으로 인세 3퍼센트를 주겠다고 말했다. 잘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너무 하잘것없는 보상금과 인세율을 말했기에, 이정우 님은 “그렇게 할 바에는 아버지 책을 모두 절판시키시오. 이제 창비에서 아버지 책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하고 말했다. 창비아동문고는 이오덕 님이 기획해서 염무웅 님과 함께 만들었지만, 어느새 이오덕 님 이름이 창비아동문고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모두 창비 출판사 스스로 훌륭하고 뛰어나서 이런 책들을 기획하고 어린이문학작가들 글을 모으거나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일하기도 한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이오덕 님 책 가운데 이오덕 님이 ‘출판사 편집부가 내(이오덕) 원고를 허락 안 받고 엉뚱하게 고친 곳이 200군데가 넘으니 바로잡으라’고 보낸 글과 ‘바로잡을 곳을 빨간 볼펜으로 적바림한 책’을 찾았고, 이 글을 바탕으로 보리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편집부 차장과 편집자 한 사람은 내 전화를 비웃으면서 ‘그렇게 안 하겠다’고 했다.


  보리 출판사는 아직도 그 책 그 글을 출판사 편집부에서 임의로 고친 대로 낸다. 나는 많이 지쳤고, 큰 출판사하고 싸울 힘도 마음도 사라졌다. 이정우 님도 나더러 “이러다가 평생 출판사하고 싸우기만 하겠다”고 해서 이오덕 님이 남긴 글과 책을, 무너미마을에서 조그맣게 만들어서 ‘책방에는 배본을 안 하고’ 읽히는 길을 찾기로 했다. 보리 출판사는 이 책 말썽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책을 이정우 님 허락을 안 받고 계약서도 안 쓴 채 몰래 펴냈다(처음에는 보리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는 일을 허락하고 계약서를 썼지만, 출간약속을 오래도록 지키지 않아 계약파기를 했다. 계약파기를 한 뒤에 이정우 님이 자비출판으로 작은 책을 만들었는데, 보리 출판사에서 갑자기 무단출간을 해서 책방마다 배본을 했다).


  한길사가 무단출간 말썽을 일으킨 지 한 해가 채 안 되었는데,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네 권으로 나누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방학이 몇 밤 남았나》, 《꿀밤 줍기》, 《내가 어서 커야지》를 내놓았다. 보리 출판사 정낙묵 사장은 책을 내놓고 배본까지 다 끝낸 다음, 책을 들고 무너미로 왔다. 책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잘 만든 책이니 아이들한테 읽혀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훌륭한 글을 바탕으로 잘 만든 책이니 읽힐 값어치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러면, 제대로 허락을 받고 계약서를 쓸 일이다. 계약파기를 하기 앞서 책을 잘 만들어서 내놓을 일이었다. 책에 실은 그림도 ‘이런 그림을 싣겠습니다’ 하고 알려야 했다. 그러나, 이오덕 님이 아이들 가르치면서 그리도록 한 그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그림을 이 책에 끼워넣었다. 정낙묵 사장은 이정우 님한테 ‘우리는 출고정지도 절판도 안 합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길사는 출고정지와 절판을 시켰지만, 보리 출판사는 오늘(2013년)까지도 이 책들을 출고정지는커녕 절판조차 시키지 않는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떨치는 책마을이라면, 다시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탔다. 모든 일을 다 잊고 자전거를 탔다. 충북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를 탔다. 한 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전거로 충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꼭 한 해를 이렇게 지냈다. 나는 내가 살아갈 길을 다시 그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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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10 08:08   좋아요 0 | URL
사람사는 곳은 어디든지 그렇게 문제가 일어나고 계속 되는가 싶습니다. 언급하신 출판사도 좋은 책을 많이 내는 곳인데요. 님의 삶이 자유롭게 보여 부러운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협이 없는 삶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겠구나 싶습니다. 언제 뵙고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었으면 하는 맘입니다. 힘내세요.

파란놀 2013-11-10 09:33   좋아요 0 | URL
이런 이야기를 쓸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오늘 밤(1시)에 어느 분 서재에 올라온 어느 글을 읽다가
'이오덕-권정생 편지글을 묶은 책'과 얽힌 이야기를 얼핏 보면서
이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잘못 퍼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생각하며
몇 가지 글을 갈무리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저절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어요.

책마을 몇몇 사람들이 뒤에서 제 험담과 비방 늘어놓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갈 뿐이에요. 엉터리 길을 간다면
저 스스로 제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럽겠지요.

<이오덕을 읽는다>라는 책을 내려고 올해부터 원고를 모아요.
사람들이 이오덕 님 삶을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왜곡시키기도 하는데,
차근차근 다시 읽으면서 '삶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겠다고 느껴요.

곰곰이 돌아보면, 한길사가 말썽을 일으킨 지 열 해가 된 오늘에서야
제 마음속 앙금과 생채기가 어느 만큼 아물었기에
이 글을 쓸 수 있다고 느껴요.

아직도 가슴은 찌릿찌릿 아프지만요..

그렇게혜윰 2013-11-10 18:24   좋아요 0 | URL
마음이 아프네요. 제가 읽은 책에서는 두 선생님들께 누가되는듯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출판사의 횡포를 알고 있는것같지는 않았어요. 작가들의 권리가 마땅히 지켜지는 출판문화를 보고 싶네요...

파란놀 2013-11-10 19:32   좋아요 0 | URL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독자인 우리들은 아름다운 삶을 읽을 수 있어 고마워요.

그러니, 이런 책이 나온 일로 더없이 고맙지요.
저부터 이오덕 님 원고를 정리할 적에
이러한 글과 책을 손으로 만지며 하나하나 오탈자 바로잡으면서
원고 입력을 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두 분이 편지를 주고받던
그 독재정권 차가운 때에
서로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은 이야기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고 한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이 '순수한' 마음일 수 없다고 하지만,
참말 '순수한' 마음이 아닌 채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도, 저로서는, 그무렵 돌아가신 한 분 삶을 원고로 만나고,
마지막 삶 잇던 다른 한 분 삶을 몸으로 만나면서,
두 분과 얽히는 책은 이렇게 나올 수 없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독자들은 책을 책으로만 만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책은 바로 '삶'에서 태어나기 마련이기에,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와 출판인 모두
삶이 아름다울 때에 아름다운 책으로 이루어진다고 느껴요.........

이와 같은 글을 써야 하는 저도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열 해 앞서를 헤아리면
조금은 생채기를 씻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못 다 한 이야기가 많아요...

oren 2013-11-11 13:5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신 바 그대로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게 잘 헤쳐오시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 지금은 그래도 한결 여유롭게 지나간 얘기를 풀어놓으실 수 있다고 하시지만 막상 그 당시로서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아닐까도 싶네요. 아무쪼록 앞으로는 그런 어려움들이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 보람있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고, 저도 마음으로나마 열심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덧) 함께살기 님의 글을 읽다가 '출판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경우가 겹쳐 떠올라 먼댓글을 하나 달아 봅니다.

파란놀 2013-11-11 19:47   좋아요 0 | URL
저는 딱히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러나 그무렵
'최종규는 출판계에 다시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뒷이야기를
여러 사람한테서 자주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 그런 뒷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 말썽 밑바닥까지 살피면서
'어느 한 사람을 출판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이들이
출판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찌 되든,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길을 가되,
내 길이 얼마나 올바르고 아름다운가를 늘 되새기면서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느껴요...

말씀 고맙습니다.

2013-11-11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1-11 19:51   좋아요 0 | URL
ㅇㄹㄷ뿐 아니라 ㅎㄱㅎ 같은 사람들이 올바르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때에는 그런 일을 뒷전에서 구경만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스스로 찾아서 해야지요.

법에 따라 지키는 양심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쉬운 한국말로 '착한 마음'에 따라 지키는 '착한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모든 삶을 아름답게 이어가며 가꿀 수 있으리라 느껴요.

나중에 [내가 걷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이 글에 쓸 텐데,
저는 언제부터인가 '나 스스로 1인 신문'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이러저래 해서 글쓰기도 글도 책읽기도 책도
꾸준하게 마음을 기울이면서 다룰밖에 없구나 하고 느껴요.

님도 늘 사랑스러운 마음을 따숩게 보듬으면서
하루하루 아름다운 나날 누리셔요~~ ^^

2013-11-12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2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2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2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13-11-16 13:17   좋아요 0 | URL
큰 일을 하려면 큰 시련이 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큰 일을 아예 도모하지 않나 보네요.
어디나, 언제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절이 싫으면 이렇게 중이 떠나는 건지.....
추운날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파란놀 2013-11-16 18:59   좋아요 0 | URL
음... 작은 일을 하려면 그때에도 똑같이 작은 시련이 올 테니,
어쨌든 시련이란 늘 오겠지요~ ^^;;

sayonara 님도 언제나 즐거우며 따스한 나날 누리면서
가을 끝자락 아름답게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