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재미나게 읽는 책

 


  사진책은 누가 읽는 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요. 만화책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고, 시집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며, 소설책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즐겁게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사람이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사진기를 새로 갖추거나 더 낫다 하는 장비로 옮기는 데에 사로잡힐 뿐, 사진책을 알뜰살뜰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좀처럼 늘지 못해요.


  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시읽기뿐 아니라 시쓰기도 해 봅니다.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소설읽기를 하는 만큼 소설쓰기까지 나아가기는 어렵다 할 테지만, 글쓰기는 즐겁게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좋아한다는 분은 여러 갈래로 나눌 만해요. 첫째, 사진기를 좋아하는 사람, 둘째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셋째 사진에 찍히기 좋아하는 사람, 넷째 사진책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째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얼추 이렇게 나누어 봅니다. 이 가운데 넷째와 다섯째에 드는 사람이 가장 적지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손길이 얕구나 싶습니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나온 사진책 가운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어느 사진책이라고 안 아름답지 않으며, 어느 사진책이라고 내 마음으로 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진책이든 재미난 삶을 보여줍니다. 어느 사진작가이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사진이든 맑고 밝은 빛과 그늘을 보여줍니다.


  몽골에서 마주한 독수리사냥 이야기를 엮은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을 읽으며 눈과 마음을 탁 틀 수 있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일흔 고개를 넘으며 들려준 사진 이야기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은 애틋한 사랑노래로 읽었습니다. 김민호 님이 차분한 빛으로 그린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는 따사로운 볕살과 같았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삶을 어린이 눈높이로 엮어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만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는 아이들 가슴을 부풀게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이 내놓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과 같은 책을 읽으며 삶을 이루는 바탕과 우리 이웃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두 사람이 쓴 《뱅뱅클럽》(월간사진,2013)은 인종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삶터에서 사랑을 지키며 사진을 찍는 고단함과 보람을 알려줍니다. 탈북청소년과 이주노동자와 고려인에 이어 재일조선인과 어깨동무한 김지연 님이 선보인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를 보며 나라이름이란 대수롭지 않고, 오직 마음속 빛을 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안에서 전주로 사진터를 옮긴 김지연 님이 지난 삶 갈무리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은 우리한테 보배는 늘 곁에 있다고 보여줍니다.


  손승현 님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과 강영희 님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와 박진영 님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는 여느 책방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들은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을 찾아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손승현 님 사진에서는 빛을, 강영희 님 사진에서는 넋을, 박진영 님 사진에서는 숨을 찬찬히 느낍니다. 빛으로 삶을 읽고, 넋으로 삶을 마주하며, 숨으로 삶을 헤아립니다.


  올해에 비로소 알아보고 즐긴 사진책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이 사진책들은 그동안 얼마나 사랑받았을까 궁금합니다. 인병선 님 《짚문화》(대원사,1989)는 삶과 밥과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기식 님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은 잉카 문명을 구경꾼이나 관광객이나 방관자 아닌 ‘이웃’으로서 만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베 사토루 님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은 바로 우리 삶이 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와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를 드디어 올해 장만해서 읽습니다. 미국으로 배움길 다녀온 옆지기가 들고 온 유진 스미스 님 사진빛을 바라보며 참 따스하다고 느꼈어요. 유리 꾸이진 님은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로 핵무기와 핵발전소 문제를 낱낱이 밝힙니다. 시마 유키히코 님은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에서 바람과 같이 흐르는 삶과 사랑을 살며시 붙잡는 손길을 보여줍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을 느껴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 다 다른 사진은 다 다른 출판사에서 다 다른 손길로 어루만져 다 다른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사진책에서 읽으며 재미납니다. 나도 내 삶을 내 깜냥껏 찍고 엮어 내놓으면 이 재미난 사진책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 들려줄 수 있겠지요. 재미난 삶에서 재미난 사진 태어나고, 재미난 웃음 나누려는 손길에서 재미난 이야기 샘솟습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여느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
아라키 노부요시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
김민호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
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뱅뱅클럽》(월간사진,2013)
김지연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
김지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


** (따로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손승현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
강영희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
박진영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


** (올해 내가 새로 알아보며 좋아한 사진책) **
인병선 《짚문화》(대원사,1989)
이기식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
아베 사토루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
유진 스미스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
유진 스미스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
유리 꾸이진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
시마 유키히코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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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며 밥과 집과 옷, 이 세 가지를 늘 건사하고 돌본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밥과 집과 옷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 밥도 집도 스스로 장만하거나 돌보지 못하고, 옷조차 스스로 못 지을 뿐 아니라, 빨래마저 못 하기 일쑤이다. 곰곰이 돌아보면,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빨래를 하지 않는다. 기계가 빨래 일감을 맡을 뿐이다. 빨래를 하는 보람과 고단함과 즐거움과 재미가 불현듯 사라졌다. 그림책 《빨래하는 날》은 손으로 빨래하던 삶을 아마 조선 무렵 즈음으로 맞추어 보여준다. 우리 겨레가 예부터 돌보던 빨래살이를 찬찬히 보여주는 예쁜 그림책이다.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그림책인데, 막상 어른들은 이러한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베풀지 않았다. 어른들 스스로 빨래살이와 동떨어진 채 살아온 탓이다. 나라밖 명작그림책만 읽힌들 삶을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먹고 자고 입는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빨래하는 모습을 예쁘장하게 그리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대목이 드러난다. 예부터 빨래는 ‘손빨래’이다. 빨래하는 ‘손길’이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그림책에 나오는 사람들(캐릭터)을 예쁘게 그리기는 했으나, 정작 빨래를 주무르고 깁으며 손질하는 ‘손 모습’이 너무 작다. 여느 그림에서도 손과 발은 얼굴 크기만 하게 그려야 옳은데, 더욱이 빨래 그림책에서 손이 너무 작다. 이래서야 빨래가 무언지 제대로 밝힐 수 있겠는가. 게다가, 늦가을에 이불빨래를 하는데, 나뭇잎에 노란 물이 거의 안 들었다. 냇가에서도 나뭇가지에서 톡톡 떨어지는 잎이 노란잎 아닌 푸른잎이다. 냇둑에서 자라는 풀도 모두 푸른 잎일 뿐, 누렇게 시든 잎이 하나도 없다. 마당에서 피어나는 맨드라미가 구월께에 꽃이 벌어지는 하지만, 가랑잎이 지는 철에도 이렇게 꽃송이가 벌어질까. 기와집인데, 대청마루가 너무 낮다. 기둥을 받치는 돌보다 낮은 자리에 대청마루를 그리기까지 했다. 잘못 그린 그림을 따지면 너무 많다. 판화 기법을 쓰든 어떤 기법을 쓰든 좋다만, 시골집, 시골마을, 기와집, 가을날, 풀과 나무와 꽃, 일하는 사람 모습과 손놀림, 냇가와 냇둑, …… 제대로 살필 대목은 제대로 살피면서 예쁘게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사람들은 빨래살이를 잊었으니 이렇게 손빨래 하던 삶을 새롭게 이 책에서 배울는지 모른다만, 막상 손발을 써서 이불빨래 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아마, 이 그림책에 나오는 잘못된 그림을 알아차리는 이도 드물겠다고 느낀다. 이제는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4346.11.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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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날
홍진숙 글, 원혜영 그림 / 시공주니어 / 2013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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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정’이라는 분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딘가 낯익다고 느꼈다. 그러나 왜 낯익었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나갔다. 오늘 〈고흥뉴스〉라는 전남 고흥 조그마한 시골에서 나오는 작은 누리신문에 목수정 님 이야기가 올라왔다. 무슨 일이고 누구인가 하며 글을 읽다가, 목수정 님 아버님이 ‘목일신’인 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렇구나. 고흥에서는 “목일신 동요제”를 한다. 동요잔치 가운데 제법 크고 뜻있는 자리이다. 목수정 님은 바로 이러한 아버지한테서 넋을 물려받으면서 새롭게 사랑을 키우며 살아가는 분이었구나. 고흥에서 서울까지 참 멀고, 고흥에서 프랑스는 더 멀다. 참으로 머나먼 나라에서 살아가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시는구나 싶은데,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마음은 한 갈래가 되리라 느낀다. 가슴속에 숲을 안고 푸른 넋이 되면, 글에도 그림에도 푸른 물이 짙게 들면서 지구별을 따사롭게 품는 이야기가 솟으리라 본다. 책읽기란 숲읽기이다. 숲읽기란 삶읽기이다. 삶읽기란 사랑읽기이다. 울타리를 훌훌 넘나들면서 울타리가 담 아닌 오솔길 되도록 하려는 발걸음을 돌아본다. 4346.11.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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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독서- 감성좌파 목수정의 길들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세상 읽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8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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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1-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그 분이시죠? 목일신님이요.

파란놀 2013-11-12 11:4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예전에는 누가 지은 노래인지 몰랐는데,
고흥에 와서 비로소 알았어요.
참말... '일베'라고 하는 곳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나
몇몇 국회의원이나... 정신머리가 없는 이들이로구나 싶어요...
 

책아이 67. 2013.11.9.ㄴ

 


  손을 뻗어 책을 쥔다. 손을 놀려 책종이를 만진다. 손으로 책을 쓰다듬고, 손으로 책을 들어서 가슴에 안는다. 이 손은 밥을 먹는 손이고, 흙을 만지는 손이다. 이 손으로 얼굴을 씻고 빨래를 한다. 이 손으로 호미를 쥐고 삽을 쥔다. 이 손으로 풀을 뜯고 나무를 얼싸안는다. 삶을 하나하나 이루고 엮는 이야기가 손에서 비롯한다. 손으로 쓴 글을 손으로 엮고, 손으로 빚은 책을 손으로 읽는다. 책을 읽는 손은 책을 쓰고 엮은 사람들 손을 느낀다. 책방에서 책을 손질하고 다루는 사람들 손길도 책종이를 만지면서 살포시 느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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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43

 


삶을 읽는 문화
― 문화편력기
 요네하라 마리 글
 조영렬 옮김
 마음산책 펴냄, 2009.12.10.

 


  겨울은 천천히 찾아옵니다. 한겨울을 떠올리면 그닥 춥지 않다 할 만한 온도로 똑 떨어져서 아직 가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 찬기운 물씬 풍기더니 다시 따순 바람이 살살 불다가 천천히 찬바람이 불어 추위에 잘 견디도록 이끕니다.


  겨울 들머리에서 봄을 떠올립니다. 봄바람도 이렇게 찾아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폭 따스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따숩게 바람이 부는데, 이러다가도 다시 썰렁한 바람이 찾아들어요. 섣불리 봄을 노래하지 말라는 듯이, 봄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기 마련이니 서두르지 말라는 듯이, 따숩고 썰렁한 바람이 갈마듭니다.


.. 사람만 메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대지는 분홍빛이 도는 하얀 융단으로 뒤덮인다. 그 위를 온종일 꿀벌들이 분주히 날아다닌다 … 아침의 복닥거리는 통근 전철 안에서 독서가 어울리는 것은 아마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재미있는 책은 불쾌한 현실을 의식에서 쫓아내 준다 ..  (95, 141쪽)


  지구별에서 북반구에서 살아가기에, 북반구에서 남녘에서 지내는 사람은 따순 바람을 더 품으며 살아갑니다. 남반구에서 지내는 사람이라면 북녘에서 지내는 사람이 따순 바람을 더 누리며 살아가겠지요. 그런데, 더 따순 곳이라 해서 더 좋은 곳이 아닙니다. 더 추운 곳이라 해서 더 나쁜 곳이 아닙니다. 누군가한테는 추위가 추위 아닌 여느 날씨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더위가 더위 아닌 여느 날씨입니다. 푹푹 찌는 더위라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며 살아도 땀이 흥건하게 고이니 찝찝할 수 있습니다. 휘휘 매섭게 바람이 불지만, 서로 살을 맞대어 한결 가깝고 살가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는 알래스카대로 삶이 있습니다. 시베리아에서는 시베리아대로 삶이 있습니다. 적도에서는 적도대로 삶이 있어요. 쿠스코에서는 쿠스코대로 삶이 있지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삶이 있습니다. 함경도와 평안도와 경기도와 전라도는 저마다 다른 삶자리대로 삶이 다르게 있습니다.


  고장마다 누리는 즐거움이 다릅니다. 고을마다 빚는 맛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어깨동무하는 노래가 다릅니다.


  다 다른 마을이기에 다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삶터이기에 다 같은 길을 걷지 않습니다. 백이면 백, 만이면 만, 서로 다른 삶이요 길이며 일이자 놀이입니다. 다만, 살아가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요. 어깨동무하는 마음과 손잡는 마음은 같지요.


.. 일본의 학교에 돌아와 보니, 그저 지식은 조각나고 뿔뿔이 해체되어, 몽땅 암기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객관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 지식과 단어가 전체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괴로운 일이었다 … 그저 ‘부품이 되어라, 완전히 부품이 되어라’라고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내 인격 자체가 난도질당하고 해체되어 가는 공포를 느꼈다 … 공정한 평가 따위는 그럴듯한 말일 뿐이다. 지금의 방식이라면 기계로도 채점을 할 수 있으니 평가 기준이 획일화된 것뿐이다. 단순히 교사가 평가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을 뿐인 것으로 …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의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할 때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  (105, 176쪽)


  밥을 짓는 마음은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은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빛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다만, 삶자리에 따라 삶이 다르기에,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삶을 누려요.


  오늘날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오늘날 우리 삶은 도시 물질문명입니다. 서울과 부산이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서울과 전주가, 서울과 옥천이, 서울과 통영이, 서울과 나주가, 서울과 고흥이, 서울과 양양이, 서울과 서천이, 서울과 함평이, 도무지 무엇이 다를까 알 길이 없습니다. 도시와 도시는 거의 똑같습니다.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사람들 하는 일은 거의 똑같습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 되려고 하는 공부도 거의 똑같습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학교를 가려 하든,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학교를 가려 하든, 아이들이 들추는 교과서가 똑같고 아이들이 머리에 넣는 지식이 똑같으며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마저 똑같은데다가 아이들이 먹고 입고 자는 삶마저 똑같습니다. 틀림없이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고을 다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는 다 다른 아이들인데, 머리에 든 지식이 모두 똑같고 말아요. 그저, 이 지식을 놓고 시험을 치러 다 다른 점수값만 낼 뿐입니다.


  둘레를 살펴보셔요. 전라도사람이라 하더라도 전라도말 제대로 못 합니다. 경상도사람이라지만 경상도말 제대로 모릅니다. 제주사람은 제주말 잊지 않았을까요. 울릉사람은 울릉말 고이 건사할까요. 전라도에서도 고흥사람은 고흥말을 남달리 지키는가요. 전라도 고흥에서도 도화사람은 도화말을 사랑스레 보듬는가요. 전라도 고흥 도화에서도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녁 마을말 알뜰살뜰 꽃피우는가요.


.. 일상적으로 수천, 수만 가지 식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 독성과 품질, 생산지 등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먹기 위해 일하지만,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음식물을 조달하는 삶의 방식을 취하면서도 식재료를 획득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는 않으니 무리도 아니다. 식재료 확보에서 음식물 섭취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표나 브랜드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바로 이때 … 아이들이 인생의 지혜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것은 격리된 교실에서 배우는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하는 노동을 통해서라는 점은 많은 교육학자가 지적해 온 사실인데, 이것은 새끼 고양이만 관찰해 보아도 알 수 있다 … 품과 시간을 들여 만드는 것이 기쁨이기도 할 텐데, 그것이 점점 생략되고 상품화되고 있다 ..  (154, 179∼180쪽)


  요네하라 마리 님이 쓴 《문화편력기》(마음산책,2009)를 읽습니다. 여러 나라, 또는 여러 겨레 문화를 찬찬히 살피면서 느낀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일본과 러시아, 일본과 동유럽, 또 일본과 여러 문명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문화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돌아보는 문화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문화’를 누리거나 돌아본다고 말하지만, 막상 우리들이 말하거나 누린다는 문화란 문화가 아닌 ‘도시문명’이나 ‘물질문명’은 아닐까요.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찍은 복제품을 놓고 문화라고 잘못 배우고 잘못 말하며 잘못 누리는 모습은 아닐까요. 공산품도 문화라면 문화라 할 테지만, 참말 공산품을 문화라고 말할 만할까요. ‘옷’이 아닌 ‘나이키 아디다스 베네통’과 같은 공산품 상표를 문화라고 말해도 될까요.


.. 차든 꽃이든 유파에 사로잡히지 말고, 맛있게 달이고 아름답게 꽂으면 되는 것이다 … 4월 말, 여섯 살 되던 생일에 어머니가 정원에 수유나무를 심어 주셨다. “이건 마리 네 나무야. 마리보다 딱 여섯 살 어리단다. 귀여워 해 주렴.” 이 말을 듣고 나니 피를 나눈 동생 같은 기분이 들어 내게는 정원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나무가 되었다 ..  (206, 219쪽)


  요네하라 마리 님은 《문화편력기》라는 책에서 문화를 말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요네하라 마리 님은 그저 이녁이 살아온 나날을 말할 뿐입니다. 마리 님을 둘러싼 어머니와 아버지 삶을, 또 마리 님 삶을, 마리 님과 마주한 동무와 이웃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이야기 한 자락으로 적바림하는구나 싶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읊지 않습니다. 학자나 전문가가 외는 이야기를 읊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문화는 교과서에도 학문에도 없어요. 문화는 바로 삶이고, 삶이 곧 문화예요. 삶을 말할 때에 문화를 말합니다. 삶을 누릴 때에 문화를 누립니다. 삶을 가꿀 때에 문화를 가꿔요. 삶이 없으면 문화가 없고, 삶을 잊으면 문화 또한 사라집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어떤 문화가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릴까요. 오늘날 이 땅 이 나라 이 고장 이 마을에는 문화가, 삶이, 어느 하나라도 똑똑하거나 맑거나 아름답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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