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손은 닳지 않는다. 일하고 또 일해도 손가락과 손바닥에 손그림이 그대로 있다. 그런데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나무를 만지고 풀을 만지는 사이 꾸덕살이 잡히고 뭉툭해진다. 아주 커다란 손이 된다. 그리고 기계를 만지고 만지다 보면 손그림이 지워지곤 한다. 기계는 여느 연장과 달리 손그림이 닳아서 사라지도록 한다. 왜 그럴까? 서정홍 님이 쓴 동시를 모은 《닳지 않는 손》을 읽는다. 서정홍 님이 쓰는 동시는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나 이제나 동시를 쓰는 어른 가운데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아주 드물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은 으레 ‘일 안 하는 사람 이야기’만 담았다. 그도 그럴 까닭이, 동시를 쓰는 어른 스스로 으레 ‘일 안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떠한가? 소설을 쓰거나 동화를 쓰는 사람은 어떠한가? 일이란 무엇일까? 놀이란 무엇일까? 삶을 밝히거나 가꾸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 땅에서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목소리가 생생하게 시와 동시와 소설과 동화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빈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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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지 않는 손- 서정홍 동시집
서정홍 지음, 윤봉선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5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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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복원’과 ‘어린이도서관 철거’



  문화재청은 서울 종로에 있는 사직단을 옛모습대로 되살리려 하면서, 사직단 둘레에 있는 ‘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 두 곳을 허물어 없앤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 가을에 있던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바깥에 거의 안 알려졌다.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는다. 이런 계획이 나오고 나서 거의 한 해가 지난 오늘에서야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직단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옛사람은 왜 사직단이라는 곳을 마련했을까.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살찌울 뿐 아니라, 앞으로 이 땅을 가꾸는 아이들 마음을 북돋우는 ‘도서관’을 허물어 없애면서까지 사직단이라는 곳을 옛모습대로 되살려야 할까 궁금하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슬기로운 어른이라면, 사직단 자리를 통째로 ‘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을 더 넉넉하게 둘 수 있도록 내어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무덤자리라도 파서 아이들이 뛰놀 터와 아이들이 책을 누릴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리라 생각한다. 서울도서관과 교육부는 무엇을 하는지, 또 청와대와 서울시청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네이버 카페: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지키기 3차 시민운동 http://cafe.naver.com/keeplibraryfchildren (2014년 7월 1일 ~ )
다음 카페 : 어린이도서관을 되돌려주세요 http://cafe.daum.net/librarylibrary (2005년 8월 21일 ~ )
트위터 :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지키기 https://twitter.com/keeplibrary (2014년 7월 24일 ~ )

페이스북 :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지키기 시민운동 https://www.facebook.com/kplibrary (새 계정 2014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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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 카르페디엠 28
셸리 피어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5



자유를 모르는데 자유로울 수 있는가

―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

 셸리 피어설 글

 홍한별 옮김

 양철북 펴냄, 2012.1.2.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람은 자유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평화를 누리지 못한 사람은 평화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평등이나 민주를 누리지 못한 사람은 평등이나 민주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농구를 보지 못한 사람은 농구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낫질이나 호미질을 보지 못한 사람은 호미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보지 못한 사람은 자전거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기차를 보지 못한 사람은 기차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입시지옥을 겪지 않은 사람은 입시지옥을 모릅니다.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겪지 않은 사람은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모릅니다. 가난한 삶이나 부자인 삶을 겪지 않은 사람은 두 삶이 어떠한지를 모릅니다.



.. “왜 도망가시는 건데요?” 내가 물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개들이 쫓아올 거예요. 세스 도련님이 도망간 노예를 끝까지 쫓아갈 수 있는 개들이 있다고 했어요. 떠난 지 이틀이 지난 뒤에도요. 물을 건너갔더라도 소용없다고 했어요. 개들이 쫓아오면요? 개한테 갈가리 찢기고 말 거예요.” … “자유로운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 새뮤얼?” 해리슨 할아버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 “크고 파란 여름 하늘이 북쪽 땅끝에서 끝까지 이어져 있다. 상상해 봐라. 그리고 흑인들이 모두 그 하늘에서 날아다니지. 꽤 볼 만한 광경이 아니겠느냐?” ..  (35, 37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짚어 보았어요.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노느라 바빠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늘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8∼1993년에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면 모두 끽소리를 못하다가, 교사가 없으면 아주 미친 듯이 어지럽거나 시끄럽거나 싸움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실에 교사가 없이 ‘자율학습’을 시킬 적에 말 그대로 ‘스스로 조용히 배우는’ 동무를 보기 몹시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머리를 빡빡 밀듯이 깎으라 시키면 으레 모두 이런 말을 따릅니다. 학교에서 무슨무슨 성금을 내라고 시키면 으레 모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가져옵니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숙제를 내면 용을 써서 숙제를 합니다. 뭐, 숙제를 안 하면 ‘숙제를 끝까지 다 할 때’까지 ‘까무라치지 않을 만큼’ 두들겨패니, 다른 동무 숙제라도 베껴서 할밖에 없습니다만.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본 모습은, 그저 길들거나 뒤따르는 모습들입니다. 남이 시키면 하되, 스스로 무엇을 해야 즐거울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들입니다.



.. “알짜배기 7백 달러짜리지.” 내가 지나가자 주인님이 이렇게 말했다. “튼튼하게 잘 자란 흑인 사내놈.” 하루 종일 나는 릴리 할머니가 크리스마스에 받은 달러가 내 온몸에 발라진 것 같은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릴리 할머니한테 해클러 주인님이 한 말씀을 들려주자 릴리 할머니는 내 뺨을 세게 때렸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새뮤얼. 그런 일을 가지고 자랑스러워 하다니. 맙소사, 너와 네 가엾은 네 엄마 영혼을 용서해 주시길.” … “너 정도 나이였을 때 말이다. 주인이 어느 날 밤 코가 비뚤어지게 취해 집에 와서는 벽에서 널빤지 하나를 떼어 내더니 내 몸에 피가 강처럼 흐를 때까지 때렸다.” ..  (63, 117쪽)



  자유를 모르니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자유를 모르는 사람은 자유를 억누르는 법이나 제도가 있어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자유를 짓밟거나 까부수는 독재정권이 태어나도 자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김영삼 같은 독재자가 나왔어도 이를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게다가, 이런 독재자 뒤를 이은 사람도 독재자보다 그리 나을 대목이 없었지만, 자유를 자유롭게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누리거나 겪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느끼고 못 생각하고 못 보았습니다.


  국가보안법이나 국가정보원은 이 나라 독재자가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 군대’를 흉내내어 한국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잇달아 나타난 수많은 독재자를 물리치고 ‘민주 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국가보안법이나 국가정보원을 없애지 않았어요. 권력을 손에 쥐니 똑같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이들 스스로 자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찾으려고 싸우기’는 했지만, 정작 ‘자유로운 삶을 누린 적’은 없었던 탓에, ‘자유를 억누르는 이들을 물리쳤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자유로운 나라가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느끼지 못했습니다.



.. “백인이 죽으면 행복하다는 말씀이에요?” 해리슨 할아버지가 내 팔을 찰싹 쳤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곧장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느냐? 맙소사,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웃옷에서 빵가루를 털었다. “내 말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슬퍼할 일이 많은데, 전에 만나 본 적도 없는 백인 부인과 죽은 남편 일까지 슬퍼할 겨를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죽는다면 그 부인네가 내 검은 몸뚱이를 가엾게 여겨 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를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할 성싶으냐?” … 해리슨 할아버지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손가락으로 종이를 찔렀다. “흠, 그럼 그 멋진 종이에다가 내 등짝이 어떻게 흉터로 갈라져 있는지 적고 회중들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내 등에 떨어진 채찍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를 거요. 직접 맞아 보지 않았다면. 안 그렇소?” ..  (144, 166쪽)



  셸리 피어설 님이 쓴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양철북,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셸리 피어설 님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녁이 어릴 적에 누린 삶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모르겠으나, 이 청소년소설에 나오는 ‘해방 흑인’ 여러 사람들 모습과 말을 엿보면, 글쓴이 셸리 피어설 님은 ‘자유를 맛본’ 일이 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에서는 자꾸자꾸 묻습니다. 자유라는 말조차 모르고 살던 ‘노예 흑인 어린이’한테 ‘너 말이야, 자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하고 자꾸 물어요.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노예 주인 백인’이 ‘노예 흑인 어린이’를 보면서 ‘네 몸값이 비싸다’ 하고 비웃으며 하는 말을 마치 자랑스러운 말인 줄 잘못 받아들이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자유를 찾아 백인 주인한테서 내빼는 일’을 못 받아들이는 모습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자유를 모르니 ‘백인 주인’한테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자유를 생각한 적도 없고 누린 적도 없기 때문에, 지구별에서 누구나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자유로운 숨결이 되어야 하는 줄 알 길이 없습니다.



.. “캐나다에 가서 자유로워지면 가장 먼저 뭘 할 거니?” 벨 아줌마는 해리슨 할아버지 이마에 대줄 수건에서 물을 짜면서 묻곤 했다. “캐나다에 가면 어떨지 생각해 봤니? 평생 자유로 산다는 게 어떨 것 같아?” 나는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드넓은 텅 빈 들판뿐이었다 ..  (237쪽)



  한국 사회를 들여다봅니다. 대통령이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 지식인이나 여느 교사나 작은 시골 읍내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이나, 자유를 얼마나 알까요? 민주를 얼마나 알까요? 이 나라 경상도 사람들은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얼마나 알까요? 이 나라 전라도 사람들은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얼마나 알까요?


  선거철마다 독재자한테 표를 주는 사람은 무엇을 아는 사람일까요? 선거철이 아닌 여느 때에 끔찍한 폭력과 전쟁이 감도는 사회를 지켜보면서도 마음이 안 움직이는 사람은 무엇을 아는 사람일까요?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학교에서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안 가르칩니다. 이 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그대로 다니며 대학입시에 젖어드는 동안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제대로 알거나 느낄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여느 어버이도 똑같습니다. 모두들 쳇바퀴를 돕니다. 몸에 쇠사슬을 차지는 않았으나, 자유를 몰라 얽매인 노예와 똑같습니다. 한국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있는 사람 가운데 자유를 알거나 민주나 평화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유를 찾으려고 제도권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민주나 평화를 찾으려고 제도권을 깨부수거나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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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아끼는 동무는 서로 즐겁게 놀고 싶다. 서로를 아끼는 동무는 서로 아름답게 자라고 싶다. 서로를 아끼는 동무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삶을 누리고 싶다. 허물을 가려 준대서 서로 아끼는 동무가 되지 않는다. 동무 스스로 허물을 씻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울 때에 비로소 서로를 아끼는 동무라고 할 만하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모두 같다. 나이가 어리대서 서로를 아끼는 동무가 못 되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도 서로를 아끼는 동무가 못 되곤 한다. 이야기책 《내 친구 비차》에 나오는 ‘비차’라는 아이는 열 살을 지나 열한 살이 된다. 열한 살이 되는 비차는 마음으로 사귀면서 사랑으로 아끼는 동무란 누구인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한 해를 보낸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날 뿐 아니라, 동무도 아름답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생각하고 찾으면서 환하게 빛난다. 참으로 고운 이야기 하나를 우크라이나 아저씨가 썼다.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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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비차
니콜라이 노소프 지음, 엄순천 옮김 / 사계절 / 2004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14년 08월 3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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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슬기롭다'를 뒤로 밀고 한자말 '지혜롭다'만
자꾸 퍼지지 싶습니다. 그만큼 다들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똑똑하다'는 어떤 모습을 가리킬까요?

..

슬기롭다·똑똑하다
→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피는 마음가짐”을 ‘슬기’라고 해요. ‘똑똑하다’는 또렷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매무새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삶을 바르게 살필 줄 안다면 언제나 알맞거나 훌륭하게 일을 잘 하거나 말을 잘 합니다. 또렷하게 바라볼 줄 안다면, 제대로 살피는 모습이니, 일이나 말도 제대로 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리를 제대로 듣고 느낌도 제대로 알아차린다고 할 테지요.

슬기롭다
: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필 줄 알다
 - 나는 알쏭달쏭해서 모르겠는데, 누나는 슬기롭게 실마리를 잘 찾아낸다
 - 마을에서 다툼이 생기면 할아버지는 늘 슬기롭게 맺고 푸신다
 - 할머니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슬기롭게 일을 해내십니다

똑똑하다
1. 보이는 모습·됨됨이나 들리는 소리가 흐리지 않다
 - 날이 맑으니 저 먼 봉우리까지 똑똑하게 볼 수 있다
 - 네가 받고 싶은 선물을 똑똑히 알려주라
 - 메아리가 똑똑하게 잘 들린다
2.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리거나 알아듣거나 헤아리면서 일하거나 말할 줄 알다
 - 너희는 모두 똑똑한 아이들이야
 - 너는 그 말을 참 똑똑하게 잘 알아들었구나
 - 한 마디만 해도 척척 알아들으니 동생은 무척 똑똑하다
3. 생각이나 셈이 바르거나 알맞다
 - 너는 셈이 똑똑하니까 책값이 모두 얼마인지 알겠지
 - 아무리 어지러운 곳에 있어도 똑똑하게 살펴야지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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