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정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꽤 사랑받아 오고 있다. 나도 이 책을 읽었고 잘 간직하고는 있으나, 이 책을 읽던 지난날이나 이 책을 책꽂이에 모셔 놓고 있는 오늘날이나 그다지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숲이나 나무나 도시나 시골 살림살이를 제대로 모르며 지내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한테는 책이름이 퍽 충격스럽다든지 남다를 뿐더러,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새롭거나 놀랍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 숲살림을 다루고는 있어도 우리 숲살림 밑바탕을 밝히거나 보듬고 있지는 못하다.

 한젬마라는 분이 쓴 《그림 읽어 주는 여자》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은 이제 헌책방에서 사랑받지 못한다. 2006년까지는 새책으로만이 아니라 헌책으로도 몹시 사랑받던 책인데, 2006년부터는 헌책방에서 이보다 더 막대접인 책이 드물다. 스스로 옳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거짓말을 일삼았던 발자취가 드러났으니, 헌책방으로 다리품을 팔며 책을 찾아 읽는 분들한테 겉발린 빈 껍데기 이야기가 사랑스럽거나 살갑게 스며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침묵의 봄》이라든지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든지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든지 《녹색세계사》라든지 하는 책하고는 견줄 수 없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하거나 괜찮다 할 만한 환경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2010년 5월 17일에 차윤정 씨가 보여준 모습을 보니 이 책이 앞으로는 더는 살아남을 까닭이 없겠구나 싶다. 빈 껍데기 지식조각으로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허울좋은 이름을 찾아 높은자리에 올라서려는 사람들이 읊는 책으로는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굴 수 없기 때문이다.

 ‘4대강본부 환경부본부장’이라는 이름이란 얼마나 놀라운 공무원 직책인가. ‘전문계약직 1급’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리인가. 4대강 사업 일자리가 32만 개나 나온다고 하는데, 하나같이 이런저런 일자리란 셈이 아닐까 궁금하다. 아마 31만 개는 삽질하는 일자리일 테고 1만 개는 차윤정 씨처럼 홍보하는 일자리일 테지.

 차윤정 씨는 스스로 ‘굳은 심지’에 따라 4대강 사업을 널리 알리는 일자리를 함께 누리겠다고 밝히는데, 바로 이 ‘굳은 심지’로 높이높이 올라설 차윤정 씨 일자리란 얼마나 오래가는 맑고 밝으며 고울 내음일는지 머잖아 스스로 느끼는 날을 맞이하리라 본다. 착하지 않고 참되지 않으며 곱지 않은 사람은 생태와 자연과 사람을 입에 담을 자격이 어림 반 푼어치조차 없다. (4343.5.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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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5-29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기사 보고, 근래 들어 최고로 웃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요. 좋다 좋다 이야기만 듣고 벼르고 있었던 '신갈나무..'는 영원히 보관함에서 아웃.

파란놀 2010-05-29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기사를 볼 때에 '그럴 만한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하고 다시금 생각했기에 이런 어줍잖은 글이나마 끄적이면서, 우리 스스로 옳고 착한 길을 잃지 않기를 다짐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샘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곡학아세...라고... 대학에서 공부 깨나 한 사람들이 돈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들어가는데 1억/마리당...이라잖아요. 근데, 1급 공무원 어쩌고 제의가 들어오면, 까짓거 돈벌러 가는 거죠. 변절자 더러운 거야, 친일파 놈들이나 김문수나 그게 그건거죠. 신갈나무들이 4대강물 쪽쪽 빨아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윤정이야 뭐 차,버리면 그만이구요.

파란놀 2010-05-29 17: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분은 교수 신분인 한편, 여러 방송에도 나가고 이런저런 강연도 많이 해서 벌이가 꽤 많을 텐데, 이만한 벌이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큰 '욕심'을 어찌하지 못하셨는가 봐요. 참 불쌍하고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공기를 팝니다 -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케빈 스미스 지음, 이유진.최수산 옮김 / 이매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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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삶터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6] 케빈 스미스, 《공기를 팝니다》



 다가오는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를 생각할 때마다 슬프고 괴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몇 달 앞서부터 선거하는 날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 ‘후보자가 내놓는 공약’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에서 듣는 이야기라든지 신문과 방송에 가득 넘치는 이야기라든지 선거운동원이 내미는 이름쪽에 담긴 이야기라든지, 어느 대목을 보더라도 이이는 무엇을 이루고자 하며 저이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무슨 정당 후보가 뽑혀야 한다거나 안 뽑혀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무슨 연합이니 대연합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 다음으로 많습니다. 연합을 한다면 왜 연합을 하고, 연합을 하며 내놓으려는 정책이 무엇이며, 이 정책은 우리들한테 어떻게 도움이 되거나 피와 살이 될는지를 밝힐 노릇입니다. 하다못해 ‘4대강 반대’를 하더라도 ‘그러면, 4대강을 반대한 다음 무얼 하려고?’ 하는 생각조차 듣기 어렵습니다. 4대강 반대를 이룰지라도, ‘4대강 사업과 맞먹는 또다른 큰돈 들일 토목공사 계획’만 춤을 추고 있습니다.

 머나먼 다른 동네보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시장 후보로 네 사람이 나왔는데 5월 28일까지 후보자 공약집이 집으로 오지 않고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 담벼락에 후보자 포스터가 붙은 지 며칠 되지 않습니다. 시장 후보자 운동원이든 구청장 후보자 운동원이든 정당에 따라 수십 사람이 줄을 맞춰 늘어서면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면서 ‘기호 몇 번’만 외치고 있습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름쪽하고 정책홍보지를 주워서 들여다봅니다. 지난 여덟 해에 걸쳐 시장이 된 분하고 새롭게 시장을 맡겠다고 하는 분하고 정책이 똑같습니다. 다른 대목이라면 예전 시장님은 ‘뉴타운 재개발’을 외치고, 새로 시장이 되고자 하는 분은 ‘웰타운 재정비’를 외칩니다. 두 분 모두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어딘가에서 뽑아내어 ‘동네를 온통 아파트로 바꾸는 토목공사’를 벌이려는 꿈이 당신들 공약이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전 시장님은 인천이 교육성취도가 3위라고 내세우며 당신이 교육을 아주 잘 이끌었다고 밝히고, 새로 시장이 되고자 하는 분은 인천이 교육성취도가 뒤에서 2등이라고 말하며 당신이야말로 인천 교육을 책임질 사람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이런 수치이든 저런 통계이든 두 분 모두 다시금 몇 조를 들여 사교육을 뜯어고치고 교육지원금을 마련하며 ‘학력성취도’를 높이려는 데에만 눈길을 둡니다. 그러니까, ‘전국 일제고사 성적’이 인천이 1등을 거머쥘 수 있도록 모든 뒷배를 아끼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두 분 공약집에 실려 있습니다.


.. 오늘날, 시장에는 탄소 상쇄라는 새로운 면죄부가 등장했다. 현대의 면죄부 판매인인 클라이미트케어, 카본뉴트럴컴퍼니, 카본클리어 같은 탄소 상쇄 기업들이다. 스스로 자신을 ‘생태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프로젝트로 ‘착한 기후 보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매로 발생한 배출권은, 다시 말해 상쇄 기업이 만들어낸 ‘착한 행위’는 돈은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책임질 시간과 여유가 없는 오늘날의 죄인들에게 소매가격으로 팔려 나간다 ..  (14∼15쪽)


 요즈음 도시 초등학교는 한 반 아이들 숫자가 서른∼서른다섯쯤이라고 합니다. 아직 아이들 숫자가 더 줄어야 하지만 이만 한 숫자라 하더라도 고작 열 몇 해 앞서를 헤아리면 대단히 발돋움한 셈입니다. 우리는 얼마 앞서까지 한 반에 쉰 예순 일흔 여든을 때려넣고 몽둥이찜질로 아이들을 닦달해 왔습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숙제와 성금걷기와 체벌로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못하게 짓눌러 왔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지난날과 견주면 몽둥이찜질과 손찌검에서 홀가분합니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드물었던 갖가지 과외와 학원과 영어와 한자와 방과후수업 따위로 놀 겨를이 없습니다. 그나마 집안일 거들기에 짬을 낼 수조차 없습니다. 초등학교라면 초등교육을 할 노릇이지만, 뒷날 더 나은 일류대학에 들어갈 예비 수험생이 되도록 내몰기만 합니다. 중학교라면 중등교육을 하고 고등학교라면 고등교육을 할 노릇인데, 어김없이 대학교만 바라보는 수험생이 되도록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일류대학교 학생이 되어 졸업장을 움켜쥐도록 등을 미는 까닭이란, 나중에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 연봉 많이 받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착하고 참되고 고운 어른으로 크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1등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뽑든 시장을 뽑든 국회의원을 뽑든, 우리들은 늘 ‘1등만 생각하는’ 틀에 맞추어지고 맙니다. 반드시 1등이 되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듯 생각합니다. 1등이 안 되어 떨어지더라도 ‘생활정치’를 알차게 하면서 ‘정치꾼이 제몫을 하도록 지켜보는 민주주의’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허울좋은 사탕발림처럼 들먹이는 ‘아름다운 꼴찌’입니다. 좋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야 사회가 나아질 줄 알고 있는데, 좋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면 나쁘지는 않으나, 우리가 정작 해야 할 일이란 우두머리보다 바로 우리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거듭나는 일입니다.


.. 영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흡수하려면 해마다 새로운 플랜테이션이 1만 제곱킬로미터나 필요하다 … 북반구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립화’하려고 남반구에 대규모 단일 조림 플랜테이션을 조성하는 것을 두고 ‘탄소 식민주의’라고 꼬집었다. 이것은 마치 북반구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를 유지하려고 남반구를 착취하는 것하고 같다 … 기후변화에서 가장 정의롭지 못한 일은 기후변화 책임이 작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 불평등한 세계 경제 구조 안에서 북반구 기업들은 남반구 프로젝트를 수행해 수출 보조금 같은 더 큰 재정적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 또 값싼 토지와 노동력, 원자재도 이용할 수 있다 … 결국 탄소 상쇄 프로젝트는 덜 ‘개발된’ 남반구를 ‘개선’시킨다고 선전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  (53, 58, 64∼65, 66쪽)


 《공기를 팝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자그마한 이 책에는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하고 적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갈무리하자면,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미친날씨를 막을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나라가 더 망가지는 듯 보이지만, 이명박 씨 아닌 다른 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4대강이라는 이름이 아닐 뿐 수많은 토목공사 재개발 계획이 공약으로 가득 넘치고 있는 탓’에 이 나라는 언제나 망가지는 길을 걷습니다. 우리 스스로 탐욕을 부리고 있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욕심을 줄이지 않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연봉을 꿈꾸고, 나 홀로 정규직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브래드 피트한테 ‘나무심기 쇼’나 ‘환경사랑 퍼포먼스’ 같은 잔재주를 부리라고 등을 떠밀 노릇이 아니라, 브래드 피트한테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당신 스스로 조용하면서 아름다이 할 만한 참된 ‘나무심기(또는 텃밭 일구기)’를 하거나 ‘자가용 덜 타기나 안 타기’를 하는 데부터 올바르게 살도록 손을 맞잡을 노릇입니다.

 우리 삶은 ‘쇼’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하루하루 더없이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언제나 고마움과 기쁨을 듬뿍 느끼면서 내 둘레 터전을 곱게 가다듬을 일입니다.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탄소 상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골머리 앓지 말고, 내 삶에서 ‘쓸데없는 탄소 만들기’를 안 하자면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내 이웃과 동무 삶을 어떻게 껴안아야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 탄소 상쇄처럼 가짜 해결책에 스타가 동원되면서, 효과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사회 변화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인식하는 의식의 전환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탄소 상쇄에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해 버리는 것이다 … 탄소 상쇄 프로그램이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정부와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아주 쉽게 희석시키면서 시종일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 기업이나 개인이 스스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의심스러운 ‘숫자 놀음’과 ‘상쇄’를 통한 그린워시가 아니라 에너지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활동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훨씬 낫다 ..  (104, 107, 125쪽)


 열 해쯤 지난 일인데, 지난날 ㅁ방송국에서 ‘책을 읽자’는 교양홍보 방송을 하면서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도서관’은 방송국이 시청율을 높이고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거두어들여서 세울 시설이 아닙니다. 지자체마다 엉뚱하게 ‘보도블록 갈아엎기’를 하지 않아도 이 돈만으로 넉넉히 도서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보도블록 갈아엎을 돈이면 해마다 온 나라에 도서관 수천 곳을 세울 수 있어요. 자전거길은 마땅히 내야 하지만 인천시처럼 잘못된 계획을 얄궂게 밀어붙이며 수백 억을 길바닥 갈아엎기에 쏟아부으면 안 됩니다. 수백 억이란 돈(500억이 조금 넘는 줄 압니다)은 도서관뿐 아니라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어느 만큼 이룰 수 있는 몹시 큰돈입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토목공사를 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환경 무너뜨릴 탄소’는 얼마나 많았을까요. 환경사랑을 외치며 밀어붙인 ‘자전거길 토목공사’는 외려 환경을 무너뜨립니다. 4대강 사업이 큰 말썽거리라면, 겉으로는 환경사랑이요 일자리 만들기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구석 환경사랑이 아닐 뿐더러 올바르지 못한 일자리 만들기인 데다가 일자리란 고작 ‘삽 들고 땅 파헤치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살리지 못하고 사람을 살리지 못하며 사랑을 살리지 못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붓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아주 몹쓸 짓거리입니다.

 《공기를 팝니다》라는 작은 책은 바로 이 대목을 짚는 살뜰한 읽을거리입니다. ‘탄소 배출권’이라는 새로운 장사거리만 만드는 자본주의 얼거리에서는 우리 삶과 삶터와 사람이 하나도 아름다워질 수 없음을 까밝히는 읽을거리입니다.

 다만, 아쉬우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공기를 팝니다》라는 책은 ‘탄소 배출권’ 장사를 하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 장난질을 찬찬히 파헤치며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회 지식을 얻은 우리들은 우리 삶을 어떻게 돌보거나 가꾸면서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가를 일깨우지 못합니다. 거짓스러운 ‘환경사랑 장사꾼’ 검은 속셈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기 때문에, 이 읽을거리 하나에 매여서는 안 되고, 이 읽을거리를 덮고 나서 내 터전을 헤아리고 내 동네를 살피며 내 나라를 돌아보도록 눈길을 틔워야 합니다. 나 스스로 ‘1등주의 경쟁’에 파묻히지 않도록 내 삶을 다스리면서, 다가오는 선거에서라도 한 표 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표 권리를 쓴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여느 때 여느 자리에서 올바른 민주주의 길을 걸어가도록 내 삶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깨끗한 삶터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은 돈으로 베풀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돈으로 키울 수 없습니다. 착한 책은 돈으로 엮을 수 없습니다. 몸에 알맞을 밥 한 그릇은 돈으로 장만할 수 없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돈으로 심거나 가꿀 수 없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은 돈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4343.5.28.쇠.ㅎㄲㅅㄱ)


 ┌ 《공기를 팝니다》(이매진,2010)
 ├ 글 : 케빈 스미스
 ├ 옮긴이 : 이유진, 최수산
 └ 책값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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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터리 정치꾼을 왜 자꾸 뽑는가


 선거를 앞둘 때마다 언론에서 으레 하는 말이 ‘찍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소리입니다만, 찍을 사람이 없다기보다 우리들 가운데에 옳고 바르며 곱게 살아가는 사람이 드문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후보자들이 당신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는 일뿐 아니라 땅장사에 돈장사에 나쁜 짓을 일삼고 있으면서 버젓이 선거 후보자로 나오는 까닭이란, 다름아닌 여느 우리 삶에서 이처럼 법을 어기거나 짓밟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요, 이들한테서 콩고물을 얻어먹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낮에 아이를 데리고 바깥바람을 쏘인다면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두 시간 남짓 돌아다니는데, 엊그제에도 그랬지만 사람들 복닥이는 자리에서는 한 가지 빛깔로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동안에도 바깥에서 울리는 노래소리 때문에 아이가 잠을 제대로 못 들기까지 했습니다. 후보자들이 나누어 주는 이름쪽을 뒤집으면 몇 가지 공약 사항이 보이는데, 이 공약 사항은 어김없이 숫자놀음을 하는 재개발 이권과 일류대학 학벌 높이기와 무슨무슨 복지에 더 많은 돈을 바치겠다는 글월일 뿐입니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우리 터전을 살찌우거나 돌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력ㆍ경쟁력ㆍ학력ㆍ얻으려는 예산 따위를 온통 숫자로 발라 놓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서 숫자란 더없이 큽니다.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득권과 광고지 같은 무슨무슨 신문만이 아닙니다. 진보를 밝히는 지식인마저 1등 싸움을 하고, 개혁을 외치는 정치꾼 또한 1등 다툼을 벌이며, 환경을 사랑한다는 우리들까지 1등을 거머쥐려는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입으로는 ‘아름다운 꼴찌’를 외치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이 아름다운 꼴찌가 되어 사랑과 믿음을 착하고 참되며 곱게 가다듬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라고 썩 나은 사람이 못 된 터라 2002년까지는 ‘1등 뽑는 선거’에 목매달았습니다. 그무렵까지 아직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못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부질없는 1등 뽑는 선거가 아닌 ‘아름다운 사람 찾는 선거’를 생각하고, 하다못해 ‘몹쓸 사람 솎는 선거’를 헤아립니다. 텔레비전과 세탁기와 냉장고를 버리고 자동차와 아파트와 높은 연봉을 처음부터 들여놓지 않을 수 있으면, 누구나 아름다운 삶을 꾸리며 아름다운 선거를 이룰 수 있습니다. (4343.5.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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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청한 정치꾼은 누가 왜 뽑는가


 내 한 표를 받은 사람이 시장이나 구의원이 되는 일은 놀라우며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내 한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이 시장이 되든 구의원이 되든 우리가 곁에서 꼼꼼하게 지켜보고 따스하게 어루만지면서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정책을 마련해서 꾸릴 수 있도록 이끈다면 더욱 놀라우며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한 표 권리를 쓰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한 표 권리란 민주주의로 가는 아주 작은 단추꿰기입니다. 단추 하나를 꿰었다고 옷을 입은 셈이 아닐 뿐더러, 웃도리나 바지 한 벌 입은 차림새 또한 아닙니다. 단추를 꿰고 볼 일이지만, 옷을 제대로 차려입어야 하고, 위아래와 속옷하고 신을 골고루 갖출 노릇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정치를 비롯해 사회ㆍ경제ㆍ문화ㆍ환경ㆍ교육 모두 다른 사람 손에 돈을 들여 맡겨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란 참다운 자유와 평화와 통일과 복지와 예술이 살아숨쉬어야 합니다. 어느 당 후보를 안 찍는다고 4대강이나 경인운하 물길이 꺾이지 않습니다. 엊그제 신포시장에 먹을거리 장만하러 갔다가 받은 어느 야당 선거공약집을 들추니, 이분이 내놓은 공약은 온통 ‘또다른 모습으로 밀어붙일 개발’투성이입니다. ‘뉴타운’도 재개발이지만 ‘웰타운’도 막개발입니다. 우리는 국립공원만 깨끗이 지켜서는 안 됩니다. 국립공원부터 깨끗이 지키며 여느 사람 살아가는 도시가 막개발 아닌 오래도록 스스로 손질하고 조그맣게 가꾸는 작고 고운 마을 삶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동화 쓰던 할배는 죽음을 앞두고 우리들한테 자동차를 버리며 전쟁을 막자고 외쳤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자동차를 버릴 줄 알아야 한 표 권리를 누구한테 써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고, 두 다리와 자전거로 살아가고 있으면 어느 누가 정치꾼으로 뽑히더라도 우리 마을은 우리 손으로 사랑스럽고 넉넉하며 빛깔 곱게 가꿀 수 있습니다. 이놈 저놈 다 몹쓸 놈이 아니라, 이놈 저놈 모두 더 큰 돈과 빠른 차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도록 처음부터 다스릴 2010년 6월 2일을 맞이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4343.5.26.물.ㅎㄲㅅㄱ) 

 

(가톨릭환경연대에서 부탁을 받고 신나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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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가는 길과 책으로 가는 길
 ― 좋은 영화와 책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이탈리아 영화 〈길(라 스트라다)〉을 보았습니다. 이와 함께 〈바드다드 카페〉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영화도 보았습니다. 오늘날은 나라 안팎 좋은 영화를 집에 앉아 내리 여러 편을 볼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보든 비디오로 보든 디브이디로 보든 인터넷으로 보든 아주 손쉽게 옛날 영화부터 요즈음 영화까지 볼 수 있습니다. 자그마치 쉰여섯 해를 묵은 영화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봅니다. 퍽 어린 아이를 키우는 우리 식구로서는 극장마실을 할 수 없는 터라, 집에서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대목이 몹시 고맙습니다. 더구나, 비디오나 디브이디를 갖고 있으면 한 번 보고 나서 가슴이 젖어든 영화를 잇달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극장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자잘한 곳까지 눈여겨보는 맛하고 견줄 수 없습니다만, 집에서 여러 차례 볼 때에는 극장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이 있습니다. 오줌 마려운 아이한테 오줌을 누이느라 살짝 멈추었다가 다시 보아도 되고, 배고픈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며 밥을 먹이는 가운데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세 편을 보고 나서 소설 《모비딕》을 펼칩니다. 《모비딕》을 손에 쥔 지 석 달째입니다. 아직 이 책 하나를 다 끝내지 않고 있습니다. 휙 읽어치울 수 있습니다만, 허먼 멜빌이라는 분이 한 땀 두 땀 이루어 낸 결을 헤아리면서 찬찬히 읽습니다.

 다른 책을 읽다가 ‘《모비딕》이야말로 문학이란 이름이 어울린다’는 대목을 곧잘 만납니다. 우리 옆지기 또한 《모비딕》만 한 소설이 아니라면 읽을 만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얼마 앞서 새로운 번역으로 나온 《모비딕》인데, 언제가 될는지 모르나 이 책을 헌책방에서 영어판으로 찾아내어 영어로 읽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번역이 아주 나쁘지는 않으나 책을 읽는 사이사이 턱턱 막힌다거나 그리 알맞아 보이지 않는 대목이 눈에 뜨이기 때문입니다. 못한 번역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모비딕》이 훌륭한 문학이라 한다면, 훌륭한 문학에 걸맞을 훌륭한 번역이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자리에서는 고개를 젓겠습니다. 괜찮은 번역이지만 훌륭한 번역문학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맙니다. 이 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할 테지만, 번역을 할 때에도 번역쟁이 한 사람이 창작을 하던 글쟁이 한 사람만큼 품과 땀과 시간과 마음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번역쟁이한테 좀더 긴 시간을 좀더 나은 일삯을 내주어 문학 하나를 아름다이 꽃피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다면, 허먼 멜빌 《모비딕》 새로운 번역은 이름만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이름으로도 ‘아름다운’ 번역이거나 ‘훌륭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돈을 따지지 않을 수 없으니 더 넉넉히 일삯을 챙기지 못하는 한편, 번역할 시간을 넉넉히 마련하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번역을 내놓을 때에 ‘새 번역’이라느니 ‘완역’이라느니 하는 이름만 붙이는데, 정작 어느 새로운 완전번역 작품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번역이라는 이름이나 ‘훌륭한’ 번역이라는 이름은 못 붙입니다.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모비딕》을 우리 말로 옮기려 한다면 적어도 다섯 해쯤은 시간을 주어야 하며, 웬만하면 열 해쯤은 시간을 주되 오로지 이 하나에만 온힘을 쏟도록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낱말 하나 글월 하나 말투 하나 짜임새 하나 촘촘하면서 너르게 보듬는 옹근 번역이 되도록 북돋우자면 책 하나 섣불리 내놓지 말 노릇이라고 봅니다.

 1954년 이탈리아 영화 〈길〉을 보고 나서 세 식구는 잠자리에 듭니다. 고단하고 졸립고 힘들어, 누운 채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오늘 본 영화 모두 훌륭하기는 훌륭한데, 이 가운데 100번을 내리 볼 영화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길〉을 꼽겠다는 말을 나눕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님은 〈길〉이라는 영화에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슬프며 아름다운 길을 여러 갈래에서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슬픈 길이든 즐거운 길이든 어두운 길이든 밝은 길이든 저 멀디먼 구름 같은 나라에만 있지 않음을 수수하게 보여줍니다. 딱히 밑바닥 사람들 삶을 보여주지 않고, 굳이 잘난 사람들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예 사람 삶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걷는 길을 보여주고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예전에 자리가 될 때마다 보느라 네 번 본 장이모 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에서도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슬프며 아름다운 길이 여러 갈래로 나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굳이 어떤 장치를 쓰거나 따로 무언가 꾸며서 내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람들과 삶자락과 보금자리를 보여주는 가운데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 스스로 우러나오는 뭉클함을 보듬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어디 먼 남쪽나라이든 북쪽나라이든 밖에서만 길을 찾다가는 길이고 뭐고 볼 수 없음을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좋은 영화 세 가지를 하루 만에 보고 나서 날마다 야금야금 읽고 있는 《모비딕》을 바닥에 펼쳐 놓고 야금야금 읽는 동안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문학 《모비딕》이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작품이라 할 때에는 이 문학 하나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여러 갈래로 보여주되 따로 무슨 장치를 하거나 딱히 어떤 꾸밈거리가 가득하지 않기 때문이겠구나 하고. 사람들이 복닥이고 있는 결을 글쓴이부터 고스란히 껴안는 한편 깊이 삭이고 있으며, 사람들이 웃고 우는 삶을 글쓴이부터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는 한편 신나게 즐기고 있습니다. 따로 미움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삶을 바라봅니다. 굳이 기쁨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삶을 들여다봅니다. 좋은 영화이든 좋은 문학이든 바로 우리 곁에서 이야기를 얻고 있음을 말하고 있고, 좋은 영화나 좋은 문학이 나오는 샘터는 바로 우리 가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길〉이든 〈바그다드 카페〉이든 〈집으로 가는 길〉이든 《모비딕》이든, 참 쉬운 영화이고 쉬운 책입니다. 참 아무것 아닌 영화이고 아무것 아닌 책입니다. 참 흔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며 문학입니다. 참 가볍게 일군 영화이자 문학입니다.

 다만, 이렇게 좋은 영화나 책(문학)이란 영화쟁이나 문학쟁이가 당신 삶을 차곡차곡 바칠 수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얼마든지 일굴 수 있습니다. 품을 들이고 땀을 들이고 세월을 들이면 누구나 아름다운 영화와 책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엊그제 여든여덟 나이를 꾸리는 그림할머님을 뵈었습니다. 그림할머님은 “나도 다섯 살이었고, 나도 열다섯 살이었는데, 이제는 여든여덟이라우.” 하면서 “내가 돈을 숭배하는 사람이었으면 돈이 바라는 대로 따르며 살았겠지만, 나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이라서 하나님이 바라는 대로 따르며 살았다우.” 하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림할머님을 낳아 키운 박두성이라는 어른은 일제강점기에 ‘앞 못 보는 사람’한테 빛이 되고자 한글로 된 점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림할머님은 당신 아버님이 시키는 대로 손과 팔과 허리가 아프도록 송곳으로 꾹꾹 누르며 점글책을 만들어 앞 못 보는 사람한테 나누어 주는 일을 함께하셨습니다. 당신 아버님이 숨을 거두고 당신 남편 또한 저승사람이 된 뒤에는 당신이 당신 아이들하고 살고 있는 집에 ‘평안 수채화의 집’이라는 새 문패를 세우고는 아흔이 코앞인 나이에도 신나게 그림을 그리며 이웃사람들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있어요. 여든여덟이라는 길에서 당신이 걸어온 이야기와 삶이란 어느 하나 돈 될 구석이 없는데, 여든여덟 해에 걸쳐 밥을 굶지 않았을 뿐더러 둘레에 밥을 나누기까지 했습니다. 그림할머님 당신으로서는 돈이 아닌 믿음을 섬기고 사랑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영화 하나를 찍으면서 이 영화가 얼마나 사랑받거나 팔리는가를 헤아린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만큼 사랑받거나 웬만큼 팔리는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000만이 보는 영화가 될 수 있고 500만이 본 영화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2010년에 1000만이 본 영화를 2020년에는 몇 사람이나 다시 볼 만할까요. 2050년에는 몇 사람이나 다시 볼까요. 2100년을 맞이할 때에는 2010년에 1000만이 본 영화를 몇 사람이나 좋아하며 챙겨 볼는지요.

 2010년 오늘 100만 권이 팔리거나 10만 권이 팔리는 책이라고 하면 이 책에는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이 붙은 책은 역사에도 남아 길이길이 이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놓고 ‘가슴시린’ 문학이라 하거나 ‘아름다운’ 문학이라 하거나 ‘훌륭한’ 문학이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야 알맞으리라 봅니다. 많이 팔린 책이 훌륭한 책이지는 않으니까요. 훌륭한 책이면서 많이 팔릴 수 있으나, 훌륭한 책이기에 많이 안 팔리기도 하며, 많이 팔리지 않으려는 훌륭한 책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책이란 돈을 바라거나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책이란 처음부터 사랑과 믿음을 섬기고 아낍니다. 훌륭한 책 하나를 빚고자 땀흘리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문 열 사람이 사서 읽어 주기’조차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이 책 하나가 얼마나 내 한 사람이 고운 한 사람으로서 착하고 참되게 살아가는가’ 하는 뿌리를 캘 뿐입니다.

 영화로 가는 길이란 책으로 가는 길하고 같으면서 다릅니다. 영화나 책으로 가는 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길하고 같으면서 다릅니다. 농사짓는 길하고 같으면서 다른 영화길과 책길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뜻을 담으면 어떠한 영화이든 아름다울밖에 없고, 사람을 사랑하는 넋을 실으면 어떠한 책이든 훌륭할밖에 없으며, 사람을 아끼는 얼을 깃들이면 어떠한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참될밖에 없습니다. 영화쟁이이기 앞서 참사랑 나누는 수수한 한 사람이어야 하고, 책쟁이이기 앞서 참믿음 펼치는 조촐한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집살림을 꾸리든 돈벌이를 하든 참마음 고이 다스리는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4343.5.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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