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살림집 마지막 빨래를 앞두고


 인천살림집을 옮기기까지 며칠 안 남았다. 오늘 저녁 거의 마지막으로 짐을 다 꾸려 놓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날씨를 보아 가며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간다. 부엌 살림을 거의 다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고, 이불은 오늘 덮을 담요 한 장만 남기고 모두 이불 가방과 큰 보따리에 담아 묶었다. 새 살림집으로 옮기며 흩어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책 겉그림을 스캐너로 긁고 이래저래 갈무리를 마쳐서 끈으로 묶으면 이제는 더 묶어 놓을 살림거리가 없다. 바야흐로 마지막 빨래 몇 점을 해 놓으면 집 옮길 일손은 마무리가 된다. 밀린 ‘필름 긁기’를 하려고 스캐너에 필름을 앉히고 짐을 꾸리며 생각한다. 짐을 꾸려서 옮기려 하면 이동안 다른 일을 거의 못할 뿐 아니라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렇다고 힘들거나 벅찬 적은 아직 없다. 이제 이 살림집하고는 헤어지는구나 싶은 아쉬움이 새록새록 솟고, 또다시 한 곳에서 오래오래 깃들지 못하고 옮겨야 하는구나 싶은 서러움이 슬며시 꾸물거리기는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만한 살림집 보증금을 내고 달삯을 치르며 버티는 데에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까. 도서관 달삯은 지난달 치와 이달 치를 보증금에서 뺀 다음, 남은 보증금으로 짐차와 사다리차 부를 돈으로 써야 하는데. 살림집 달삯도 매한가지이고. 집식구 앞에서는 웃고, 바깥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웃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빠듯하고 힘겨웠던 살림 꾸리기였다. 이제 다달이 70만 원씩 내던 달삯 짐을 훌훌 털어낼 수 있으니 얼마나 후련한지 모른다. 말이 70만 원이지, 느긋하게 돈 벌며 이름값 떨칠 수 있는 자리를 모두 마다 하고 골목동네 한켠에서 쭈그리고 앉아 글쓰고 사진찍고 애랑 복닥이며 지내는 가운데 달삯 치르고 책값 치르며 사진값 치르는 가운데 몸아픈 옆지기를 돌볼 여러 가지를 장만하는 데에 들어갈 돈을 다달이 벌어들이기란 참 터무니없는 노릇이다. 그야말로 억지스럽고 고단한 일을 웃음을 지으면서 해야 할 뿐더러, 내 삶에서 내가 붙잡으며 일구어야 할 일거리를 뒷전으로 젖혀 놓아야 할 때가 얼마나 잦았는가. 이제 차분하게 지난 나날을 돌아보노라면 고되고 힘들던 나날이라 해서 그때에나 이때에나 고되고 힘들기는 했어도 싫거나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고될 뿐이요 그예 힘들 뿐이다. 고되다고 나쁘지 않으며 힘들다고 슬프지 않다. 고된 일이니 아이구야 고되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힘드니까 어이구 힘들어 죽겠네 하고 허리를 토닥인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이야 참 좋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기쁜 일이 있으면 더없이 기쁘네 하면서 받아들인다. 어여쁜 골목동네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어여쁘네 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줄거리 담은 책을 읽으며 가없이 아름답군 하고 느끼며 책장을 넘긴다. 맨 처음 했던 빨래라 해서 더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란 없고, 마지막 하는 빨래라 해서 남달리 새삼스러운 느낌이란 없다. 똑같은 빨래이다. 이제 이곳에서는 더 빨래할 일이 없겠네 하고 느낀다. 자, 좀 숨을 돌리면서 쉬자. 땀 꽤나 뺐으니까 한 번 찬물로 씻고 보리술 한잔 걸친 다음 새로 힘을 내어 마지막 짐을 다 싸 놓고 새벽녘에 잠들자. (4343.6.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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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
조지 풀러 / 눈빛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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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전쟁을 빛깔사진으로 담은 미군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5] 조지 풀러,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예순 해를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 책과 사진자료가 빛을 봅니다. 이 가운데 지난 5월 10일에 나온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존 리치 사진,서울셀렉션 펴냄,2010)은 무척 돋보이는 사진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맨 앞자리에 실린 추천글을 쓴 사람은 백선엽 씨입니다. 백선엽 씨 이름 밑에는 ‘대한민국 육군협회 회장’과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고문’이라는 직책이 달려 있습니다. 백선엽 씨가 한국전쟁 때 거두었다는 ‘큰 성과(쥐잡기 작전)’를 헤아린다면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에 추천글을 쓸 만할 수 있으며, 한국전쟁을 기린다는 사업회 고문 자리를 맡을 만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선엽 씨 발자취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에 만주군관학교를 나왔고, 인천에서 당신과 동생 백인엽 씨 이름을 딴 ‘선인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만주군관학교라는 곳은 아무나 들어가는 여느 학교가 아닙니다. 인천에서 선인재단은 어마어마한 사학비리를 저지른 곳일 뿐 아니라 인천이라는 곳이 꼴통이 되도록 권력을 뒤흔들던 곳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일제강점기 발자취라든지 군사독재정권 무렵 사학비리를 저질렀다든지 하는 발자국이란 ‘한국전쟁 공로’에 견주면 아무것 아닐 수 있으며, 눈감을 만한 티끌로 삼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속이 갑갑하고 아찔합니다. 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외치며 두 주먹 불끈 쥐었던 사람이라면 전쟁을 마친 다음에도 나라를 지킬 수 있게끔 맑고 깨끗하며 정갈한 삶을 꾸려야 할 노릇이 아니냐 싶습니다. 전쟁 업적과 친일부역과 사학비리란 한 자리에 한 사람한테 나란히 놓일 만한 보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씁쓸한 추천글이 달린 사진책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추천글은 씁쓸하더라도 책에 담긴 사진이 씁쓸하지 않다면 이 사진책은 훌륭합니다. 아니, 이런저런 추천글하고는 아랑곳하지 않을 책 하나 알맹이입니다. 그런데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에 실린 사진들 또한 그리 달갑지 못합니다. ‘컬러로 보는’이라는 책이름답게 한국전쟁 모습을 빛깔사진으로 담은 드문 자료로 엮은 책이기는 하나, 한국땅에서 일어나 한겨레가 서로 치고박으며 숨을 거두고 괴로워 하던 나날을 읽을 수 없습니다. 또한, 총부리를 마주하며 다투는 가운데에도 여느 사람들은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여느 매무새로 꾸리고 있던 손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지난 1996년에 나온 작은 사진책 《끝나지 않은 전쟁》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든 《끝나지 않은 전쟁》이든 미군 사진기자가 찍은 빛깔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책은 한국땅과 한국전쟁과 한겨레붙이를 바라보는 눈매가 사뭇 다릅니다. 아니, 한국땅과 한국전쟁과 한겨레붙이를 바라보는 눈매가 다르다기보다 두 미군 사진기자 삶이 달랐겠지요. 사뭇 다른 삶에 따라 서로 다른 눈매가 되었을 테며, 서로 다른 눈매에 따라 서로 다른 눈썰미로 한국땅에서 한국전쟁을 부대끼고 한겨레붙이를 마주하면서 빛깔사진을 담았을 테지요.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사진책은 책이름 그대로 1950년 무렵이든 1996년 무렵이든, 또 2010년 무렵이든 끝나지 않았을 뿐더러 끝날 수 없어 보이는 싸움터 삶자락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지 않을 싸움터로 보이는 이 자그마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자그마한 사람들은 아기자기하며 앙증맞습니다. 군인들이 쏘아댄 총알과 폭탄 때문에 산과 들은 무너지고 나무는 꺾이고 풀과 꽃은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나 군인 아닌 여느 사람들, 또 군인으로 끌려간 여느 사람들은 빈 들판에 곡식을 심어 일구고 빈 멧부리에 나무가 자라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헌 옷가지이든 모포이든 무엇이든 그러모아 바느질을 하여 아이들 옷과 어른들 옷을 마련합니다. 쑥대밭이 된 마을에서 흙과 나무로 집을 다시 세우고, 이런 마을 한켠에서 아이들은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코를 흘리며 골목놀이를 합니다. 널뛰기를 하고 초콜릿을 얻으려고 미군한테 달려듭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작은 사진책을 덮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 사진책 하나로 엮인 전쟁 사진을 찍은 미군 사진기자 조지 풀러 님은 ‘전쟁과 자본주의 미국 문화와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 넋이 맑고 차분하고 깨끔한 사람과 삶’을 찾아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 하고. 왜냐하면 《끝나지 않은 전쟁》에 실린 한국땅 여느 한겨레붙이 모습을 보면, 오늘날 한국 사진쟁이가 인도이니 티벳이니 네팔이니 찾아가서 사진으로 담는 ‘거룩하고 수수하며 깨끗하고 착하다는 사람들’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에 실린 한국땅 한겨레붙이 모습을 볼라치면 한 마디로 ‘전쟁 난민’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으레 떠올릴 만한 ‘코소보 아이들’이라든지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라든지 ‘콩고 아이들’과 같은 느낌이 납니다.

 한국전쟁이란 참으로 쓰디쓴 우리 옛 생채기입니다. 죽인 쪽이나 죽은 쪽이나 아프디아픈 자국입니다. 앞으로 마흔 해가 더 지나 한국전쟁 백 해를 맞이한대서 아물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은 왜 우리한테 생채기요 아픔이요 슬픔이 될까요. 한국전쟁을 떠올릴 때 곰곰이 살필 대목이란 북침이니 남침이니 전쟁 피해이니 하는 숫자셈이어야 할까요. 몇 백만이 죽거나 얼마나 많은 산과 들이 무너졌거나 얼마나 많은 들짐승이 나란히 숨을 거두었거나 하는 한국전쟁이 아닙니다. 이때 뒤로 남과 북이 서로서로 무기를 더 늘리려고 얼마나 큰돈을 쏟아부었으며 서로서로 독재 틀거리를 지키고자 반공과 반미를 왜 그토록 모질게 외쳤는가 하는 대목 또한 한국전쟁하고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이란 다름아닌 우리 아버지가 죽고 우리 어머니가 죽었으며 우리 누나가 죽는 가운데 우리 동생이 죽은 끔찍한 일입니다. 내 살붙이가 죽고 내 이웃이 죽었으며 내 동무가 죽은 끔찍한 일입니다. 고단하게 죽고 만 용산 철거민 또한 내 이웃이요, 미선이와 효순이 또한 내 동생이며, 한때 정치권력자와 언론들이 폭도로 내몰았던 광주사람 또한 내 살붙이입니다.

 어떤 전쟁이든 우리 삶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괴롭히며 짓밟습니다. 어떤 전쟁에서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느 사람들은 아프고 힘들며 고단해야 합니다. 어떤 전쟁이든 거룩하다거나 뜻깊다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어떤 전쟁에서든 권력자와 지휘자는 죽지 않으며, 전쟁이 끝났든 전쟁이 없는 동안에든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자면 모든 무기와 군인이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참된 힘이란 무기와 군대가 아닙니다. 나라를 지키는 참다운 힘이란 여느 사람들 따스한 사랑과 땀흘려 일하는 투박한 손에서 샘솟습니다. (4343.6.25.쇠.ㅎㄲㅅㄱ)


- 끝나지 않은 전쟁 (조지 풀러 사진,신광수 엮음,눈빛 펴냄,1996.6.3./1만 원)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으나, 사진책 《끝나지 않은 전쟁》을 엮은 신광수 님 또한 백선엽 씨한테서 도움을 받아 사진에 나온 곳이나 그무렵 이야기를 듣고 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지 풀러 - 끝나지 않은 전쟁]에 실린 사진들 





















 

[존 리치 -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에 실린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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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 2


 언제나 내 몸뚱아리가 되며 늘 함께하던 사진기가 망가진 어제 하루는 도무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슬픈 마음으로 잠들다가 깨어난 아침, 어쩔 수 없이 이래저래 빚을 내어 새 사진기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 장만할 사진기 값이 106만 원이요, 메모리카드를 두 장쯤 더 사야 하니 6만 원이 더 든다고 하는 돈셈을 하면서 괜히 울컥 성이 난다. 디지털사진기는 한 대 있는데 거의 비슷한 기능으로 새로 사야 할 뿐 아니라, 같은 디지털사진기를 사더라도 어차피 들어야 할 돈이면 훨씬 좋은 사진기를 살 돈을 모을 수 없는 때에 사야 하는데다가, 그토록 꿈에 그리고 있는 파노라마사진기를 사는 일은 멀리멀리 물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히유. 한숨을 몰아쉰다. 배가 꾸물꾸물하다. 뒷간에 가서 똥을 눈다. 똥을 누며 《내 멋대로 사진찍기》(들녘,2004)라는 책을 읽는다. 방으로 돌아온다. 하아. 다시 한숨을 몰아쉰 다음 생각을 추스른다. 망가진 디지털사진기를 고칠 수 있고, 고치는 값이 크게 들지 않는다면, 이 또한 나쁘게만 여기지 말자고 다짐한다. 고쳐 놓은 사진기는 아기랑 애 엄마가 쓰는 사진기로 삼으면 된다. 내 사진기는 그야말로 내 몸뚱이가 되어 낡고 닳도록 땀흘려 주었으니, 망가진 곳을 고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곱게 떠나 보내는 일이 옳다고 생각한다. 참말, 디지털사진기가 이렇게 낡고 닳아서 스스로 망가지는, 그러니까 숨을 거두도록 쓰는 사람이 우리 누리에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아니, 있을까? 디지털사진기뿐 아니라 필름사진기마저 하도 자주 많이 꾸준히 쓰다 보니 제풀에 지쳐서 망가져 버리지 않았던가. 내가 사진기를 어디 떨어뜨리거나 부딪혀서 망가뜨리지 않는다. 워낙 오래 많이 찍다 보니까 스스로 망가진다. 내가 타고다니던 자전거는 두 대가 제풀에 겨워 낡고 닳아 더 탈 수 없다. 내가 무슨 돈이 넘치거나 우악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쓰는 기계들은 사람처럼 굳은살이 박힌다든지 더 단단해진다든지 할 수 없다. 기계는 쓰는 만큼 낡고 닳아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 주어야 한다.

 나를 탓할 까닭 없고 기계를 탓할 까닭 없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흐름이자 결이다. 그동안 살아내면서 자전거 두 대가 맛이 가 버린 일이라든지, 어느덧 필름사진기 한 대와 디지털사진기 한 대가 스스로 목숨이 끊어진 일이라든지, 짜증을 부리거나 골을 부리거나 할 일이 아니다. 자전거하고 사진기한테 고맙고 미안했다며, 여태껏 참으로 즐거웠고 반가웠다며, 고개숙여 인사를 할 노릇이요 절을 하고 향을 하나 피울 노릇이라고 여겨야지 싶다.

 내 몸이 되어 주던 사진기야, 이제는 푹 쉬렴. 느긋하게 쉬고 홀가분하게 누우렴. (4343.6.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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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


 보름쯤 앞서부터 내 디지털사진기가 오락가락했다. 이제 이 디지털사진기가 목숨을 다해 숨을 거두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렇게 간당간당하면서도 그럭저럭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수리점에 맡겨 보아야 알기는 하겠으나, 이제는 이 사진기 하나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여태껏 사진기 한 대만 갖고 가까스로 사진을 찍어 왔는데, 오늘부터는 아예 사진을 못 찍고 마는 셈이다.

 고마운 분이 필름사진기를 한 대 빌려 주어 필름사진을 찍고 있기는 하지만, 필름을 더 장만할 돈이 없어 아주 힘겹게 필름사진을 찍고 있는 한편, 그나마 애써 찍은 필름사진들은 현상하지 못한 채 모아 놓고만 있다. 필름사진은 필름사진대로 막혀 있고 디지털사진은 디지털사진대로 막다른 길에 몰렸다. 그렇다고 선뜻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 사진기 새로 사야 하는데 돈을 빌려 줄 수 있나요 하고 여쭐 수 없다. 지난해에 몇 차례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알아보면서 보았던 쓴맛이 생각나서 도무지 전화를 걸 수 없다. 괜히 사진기 새로 장만할 돈을 꾸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전화 받은 분이 어려워 한다면, 서로 서먹서먹해지면서 그동안 괜찮았던 사이가 흐리멍덩해져 버릴 수 있으니까 고단하다.

 살림집이 빠지고 시골로 옮기면, 살림집 보증금 300만 원을 받아 이 가운데 100만 원은 짐차 부르고 이것저것 뭐 하고 저거 하느라 나갈 테고 200만 원이 남아 이 돈 가운데 100만 원을 사진기 값으로 돌리고 100만 원은 살림 꾸리는 돈으로 쓸 수 있기는 한데, 살림집 옮기는 날까지는 인천 골목길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앞으로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 어려울 수밖에 없기에, 살림집 옮기기 앞서까지 짐을 꾸리다가 바람을 쐬러 살짝살짝 마실하면서 찍는 사진조차 더 담을 수 없고야 만다.

 그나마 벼랑 끝으로 사진기를 장만하는 길이라면, 어찌 되었든 맞돈이 아닌 카드로 사진기를 장만하는 길이 하나 있다. 사진기 값 결재를 일시불이 아닌 석 달쯤으로 나누어 갚도록 하면서, 석 달 사이에 내 책이 좀더 많이 팔려 주어 제발 처음으로 글삯이라는 돈을 받는다면 카드빚이 생기지 않게끔 할 수 있겠지. 그저 꿈일는지 그예 꿈일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까마득하기는 까마득하다. 그러나 까마득하면서 괴롭거나 슬프지는 않다. 이제는 괴로움도 슬픔도 없다. 다만 허전하다. 멍하다. 글쟁이한테서 종이와 볼펜을 빼앗듯 사진쟁이한테서 사진기와 필름(또는 메모리카드)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살아남거나 버틸까. 한숨은 나오지 않으나 한숨을 쉬지 못할 만큼 팍팍한 살림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젊은 전태일은 대학생 벗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나는 맞돈 100만 원을 빌어(그냥 달라는 돈이 아닌 빌렸다가 갚을) 사진기를 장만하든 책을 내든 책을 사든 할 만한 든든한 벗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지는 않으나, 오늘만큼은 이러한 꿈을 꾸고 싶다. (4343.6.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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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6-24 08:58   좋아요 0 | URL
이사간 곳 소식도 기다려집니다.
저도 어머니랑 이번 여름휴가엔 여행을 갈까 준비를 하다보니 좋은 곳에 척척 못모시고 가는게 속이 상하고 그렇습니다.
 
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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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52 ― 대학은 왜 대학다움을 잃었는가
 : 김예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책이름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글 : 김예슬
- 펴낸곳 : 느린걸음 (2010.4.14.)
- 책값 : 7500원


 (1) 이 나라에 무슨 배움터가 있는가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그림을 배우는 학과를 다녔다고 해서 그림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마친 사람이 글작가이지 않습니다. 대학생일 때에 빼어난 작품을 내놓았으면 이때부터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등학생 때에 작가 소리를 듣고, 어느 사람은 예순이나 일흔 나이에 비로소 작가 소리를 듣습니다.

 사진 강좌를 들었다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습니다. 출판 강좌를 들었다고 책을 잘 만들 수 없습니다. 요리 강좌를 들었다고 밥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 강의나 교육관 강좌란 지식을 차근차근 일러 주며 지식에 따라 하나하나 깨우치도록 이끄는 이야기나눔일 뿐입니다. 이러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어떠한 일을 잘 해내거나 훌륭히 해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가를 깨닫고 꾸준하게 한길을 걸을 때에 비로소 작가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책으로 담아야 하는가를 느끼며 차근차근 책을 만들어야 비로소 책쟁이입니다. 스스로 누구하고 어떻게 어느 자리에서 밥을 나누려 하는가를 살피며 국자나 칼을 들어야 비로소 밥하기(요리)를 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늘 우리 터전에서는 전문 직업인이 되자면 어쩔 수 없이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동네 한켠에서 조그맣게 도서관 하나를 열었습니다만, 우리 나라 법으로는 제가 연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을 뿐더러, 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도서관을 열고자 한다면 반드시 대학교 도서관학과를 마쳐야 하고 사서자격증까지 따 놓아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사랑하고 아끼며 깊이 보듬는 삶을 꾸린다고 해서 도서관을 열 수는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는 기자가 될 때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쳤으나 빛나는 넋과 밝은 눈과 굳센 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기자로 뽑아서 어깨동무하는 언론매체는 한 군데라도 있을는지요. 아무런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나 옳고 맑고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기자로 받아들여 손잡는 언론매체가 있는지요.

 의사라고 하는 일이든 법관이라 하는 일이든 공무원이라고 하는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내는 지식하고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만 참말로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지식을 다루는 마음이 없거나 지식을 펼칠 줄 아는 매무새를 살피지 않고 졸업장과 자격증만으로 전문 직업인을 쏟아내는 사회 얼거리란 얼마나 올바를는지 궁금합니다.

 교사를 가린다고 하는 교사 자격증이란 ‘어느 한 사람이 얼마나 교사다운가’ 하고 말해 주는 자격증이 될 만할까요.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옳고 바르고 아름다이 가르칠 수 있는가요. 교사 자격증이란, 교과서 지식을 학년과정에 맞추어 머리속에 알뜰히 집어넣을 수 있는 재주를 갖춘 사람임을 말하는 셈 아닌지요.

 초중고등학교를 열두 해 다닌 제 지난날을 헤아리면, 이동안 만난 교사들 가운데 몽둥이를 들지 않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은 교사란 다섯 손가락에 꼽기 어려울 만큼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인 우리한테 욕이나 거친 말을 쏟아내지 않은 교사 또한 다섯 손가락에 꼽기 힘들 만큼 아주 드뭅니다. 이들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모두 교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요, 교육대학교에서 교육을 배운 이들일 텐데, 아이와 마주한 자리에서 어른다움을 보여주며 스스로 본보기가 되지는 못했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름다운 스승으로 서고자 마음을 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열두 해에 걸쳐 학교라는 울타리 안쪽에서 아름다운 스승을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언제나 학교 안쪽에 머물 마음이 없었고 이무렵 학교에서 복닥인 이야기는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마음에 아로새겨질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학교에서는 느끼거나 얻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은 왜 교과서 진도에 발목이 잡혀 있어야 할까요. 교과서는 우리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하며 멋지고 사랑스러운 책일까요. 교사가 학생한테 할 일은 교과서 지식 집어넣기가 끝인가요. 교사란 어떤 사람이요 어떻게 살아갈 사람일까요. 교사들은 으레 우리들 앞에서 “교사도 사람이야!” 하고 외치며 성을 내고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러면 몽둥이에 얻어맞을 뿐 아니라 머리카락이 잘리고 욕설을 듣고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갇혀 지내야 하는 “학생도 사람”일 텐데, 학생도 사람이라고 여긴 교사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대로 접어든 오늘날, 학교라는 울타리가 지난날과 견주어 새롭게 바뀌었다거나 크게 달라졌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지난날 제 어릴 적에는 국민학생 때에 틈나는 대로 온갖 놀이를 즐겼습니다. 언니 오빠 형 누나 들한테서 온갖 놀이를 물려받으며 동생한테 온갖 놀이를 고스란히 물려주며 놀았습니다. 이 흐름은 중학교 문턱을 밟자마자 깨졌는데,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 놀이가 가로막히면서 푸름이들이 푸름이 놀이를 즐기지 못하도록 하는 굴레를 여섯 해나 보내다 보니,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동무들이 즐긴다는 놀이란 고작 술ㆍ담배ㆍ당구뿐이었고, 참다운 사랑이 아닌 아랫도리 사랑뿐이었습니다. 올바로 배우도록 이끌지 못한 학교인 까닭에 올바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즐겁게 놀도록 풀어놓지 않은 학교인 터라 즐거이 놀 줄을 잊은 한편, 참다운 사랑을 나누지 않은 학교였기에 참다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마음씨를 잃었다고 하겠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가 아름답고 즐거우며 슬기롭고 신나는 열두 해로 자리매기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리하여 고등학교를 마치고 들어간다는 대학교에서 아름답고 즐거우며 슬기롭고 신나는 새 배움과 새 사랑과 새 기쁨과 새 마음과 새 넋으로 이어지거나 거듭날 수 없구나 싶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갑작스레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간다고 사진작가가 되거나 예술가가 되겠습니까. 아름다운 밑바탕을 다지지 못한 지난 열두 해인데,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나누겠습니까. 마음껏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아랫도리) 사랑놀이에 빠질 줄은 알아도, 마음껏 배우고 실컷 (참) 사랑을 하며 기쁘게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어떻게 스스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대학교가 대학교다우려면 대학교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지만, 이에 앞서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가 올바르게 고쳐져야 합니다. 대학바라기 열두 해가 아닌, 초등은 초등대로 아름답고 알차며 즐거운 나날이요, 중등은 중등대로 훌륭하며 살갑고 기쁜 나날인 가운데, 고등은 고등대로 빛나며 멋지고 재미난 나날이 되도록 학교 얼거리가 싹 바뀌어야 합니다. 교과서란 교육과정을 돕는 교재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교사가 먼저 깨달아 학생한테 스스로 ‘책다운 책’을 찾아 읽도록 돕는 한편, 교사 또한 언제나 ‘책다운 책’을 바지런히 찾아 읽으며 슬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 너무 긴 나날을 보내지 않아야 하고, 학교 울타리 바깥쪽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과 동무를 널리 사귀고 마주하면서 우리 삶터를 깊고 넓게 헤아리는 눈썰미를 교사와 학생이 나란히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인 밥과 옷과 집을 내 손으로 스스로 일구어 얻을 수 있게끔 교사부터 살아내고 학생들 또한 집안에서 살림살이를 알뜰히 익히도록 어버이들이 가르치고 도와야 합니다. 교사와 어버이란 사람들은 이름만 ‘어른’이 아닌 속살 가득 참어른으로 살아내면서 아이들한테 좋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튼튼한 버팀나무이자 싱그러운 나무그늘 노릇을 하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교육이란, 그러니까 우리 말로 하자면 ‘배움’이란 바로 삶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어떻게 꾸리느냐가 바로 배움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을 어느 결에 따라 일구느냐가 바로 배움입니다. 우리 나라 교육기관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로 나뉘어 있지만, 정작 배움터다운 모습은 하나도 못 갖추고 있습니다.


 (2) 사람다이 살고픈 외침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 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13∼14쪽).”고 외친 김예슬 님이 당신 생각을 책 하나로 갈무리했습니다. 김예슬 님에 앞서 대학교를 그만둔 사람이 많았고, 김예슬 님 뒤에 대학교를 그만둘 사람도 많을 텐데, 사람들은 ‘김예슬 선언’이라는 이름을 붙여 김예슬 님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합니다.

 김예슬 님 생각이 담긴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125쪽짜리 작은 책입니다. 김예슬 님이 대자보 하나를 쓰고 1인시위를 하면서 그만둔 대학 삶을 ‘짤막한’ 대자보로는 모두 밝힐 수 없었기에 ‘조금 긴’ 글을 써서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자격증 장사를 하는 대학교이고, 소비중독으로 내모는 학습중독으로 젖어들도록 하며, 삶은 없이 학문만 가득한 지식인들 모습을 당신한테서 스스로 느끼는 가운데,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 없는데다가 우리들은 88만 원 세대가 아니라고 하는 외침을 한 올 두 올 담았습니다.

 작은 책, 그야말로 작은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은 책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도 새롭지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책에 담긴 줄거리는 어느 하나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이 수수한 책에 깃든 생각자락을 모르는 지식인은 하나도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조촐한 책에 서린 아픔과 생채기를 모를 여느 어른이나 교사나 어버이 또한 따로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고 하는 대학 문제는 그치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는 대학 문제는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다들 알고 있다고 하면서 대학 문제를 비롯해 교육 문제를 푸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지만 정작 몸으로는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더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팍팍해지는 대학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말글학자로만 알고 있으나, 교육학자로 오랜 나날을 보냈던 최현배 님은 일제강점기에 ‘페스탈로찌 논문’을 썼고, 해방 뒤에는 《나라 건지는 교육》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말글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최현배 님은 1950년대에 진작 ‘대학입시가 큰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대학입시뿐 아니라 국민학교 입시 또한 몹시 큰 말썽거리였다니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느니 뭐를 더 가르치느니 하면서 떠들썩한 모양새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지난날에는 국민학교 입시 때문에 어린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들볶여야 했고, 오늘날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알파벳을 가르친다고 법석이요 참다운 마음닦이를 하도록 이끌지 못하니, 예나 이제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들볶이기만 합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는 내내 최현배 님이 쓴 《나라 건지는 교육》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예순 해가 흐르는 동안 ‘먹고 입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물질문명은 더할 나위 없이 나아졌으나,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고 나누고 사랑하는’ 마음살이는 그지없이 뒷걸음을 치거나 나동그라지고 있구나 싶습니다. 참다이 나아지지 못하는 이 나라이니,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고,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는 판이기에 곱고 맑은 꿈이 꽃피우기 어렵습니다.

 대학교는 대학교다워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합니다.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살림집은 살림집다워야 합니다. 동네는 동네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새로워진다고 이 하나가 제대로 새로워진다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와 초중고등학교와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나란히 새로워지면서 올바른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교사만 훌륭해진다고 학생들이 좋을 수 없습니다. 교사를 비롯해 여느 어른 모두와 어버이들이 다 함께 훌륭해져야 하고,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훌륭히 가르친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엉망진창이라거나 동네 삶터는 엉터리라 한다면 모든 배움이란 도루묵이요 부질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동네 삶터는 아름답거나 집안 살림살이는 훌륭하달지라도 학교가 엉터리라면 아이들은 아주 힘들고 벅찹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와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는 교사를 비롯해 동네 어른이자 형이자 언니이자 누나이자 오빠인 사람 모두 참되고 착하고 고운 길을 살피고 찾고 느끼며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나라 건지는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에 바야흐로 “대학교를 다녀도 좋고 대학교를 안 다녀도 좋은”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3) 되새겨 읽는 배움말


 김예슬 님 앞서 대학교를 그만두거나 처음부터 안 다닌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김예슬 님은 숱한 ‘고졸자’나 ‘중졸자’나 ‘국졸자’나 ‘무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력을 으뜸으로 치면서 경쟁주의와 1등주의가 넘실거리는 한국땅에서는 졸업장 하나 안 가지면서 받아야 할 불이익과 손해가 제법 큽니다. 가방끈 짧은 사람한테는 전문 직업인 길이란 거의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 직업인이 아닌 살림꾼 자리는 가방끈하고 하나도 얽히지 않습니다. 가방끈이 길어야 사랑을 잘하겠습니까. 가방끈이 짧으면 믿음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가방끈이 길어야 아이를 잘 낳을까요. 가방끈이 짧으면 농사를 못 짓겠습니까.

 김예슬 님으로서는 주류 권력층 자리에서 스스로 떨려 나왔는데, 주류 권력층을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낮은 자리와 가난한 자리를 헤아리면 한결 너르고 넉넉하며 너그러운 새 이웃과 동무를 만나고 사귈 수 있어 기쁠 수 있습니다. 주류를 살피지 않고 사람을 살피는 자리로 들어선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하고, 권력층을 기웃거리지 않고 못목숨을 사랑하는 자리에 한 발 디딘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한 발을 디뎠을 뿐이지, 걸음을 걷는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디딘 한 발이 튼튼한 걸음걸이가 될 수 있게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디디는 한 발 두 발이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스스로 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가난한 배움에 가난한 몸에 가난한 마음에 가난한 믿음에 가난한 말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마더 데레사 님은 ‘말이 가난해야 하느님 뜻을 알아듣고 하느님 뜻을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살림과 배움과 몸과 마음과 믿음뿐 아니라 말까지 가난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음고리를 곰곰이 되짚으며 스스로 가난한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나눌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알알이 실린 말마디 몇 가지를 추려서 되새겨 봅니다. (4343.6.22.불.ㅎㄲㅅㄱ)


[20, 45쪽] 이상했다.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은 사람은 없었다 … 이 졸업장과 자격증은 도대체 누가 요구하는가?

[28, 40∼41, 58∼59쪽] 초등학교 때는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중학교 때는 아직 평준화가 되기 전 명문고에 진입하기 위해 시험과 시험의 허들을 넘었다. 그렇게 들어간 명문고에서 다시 명문대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내달려 왔다 …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니 등록금 전쟁이 기다리고, 다시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 … 점점 늘어나는 영어 강의는 얼마나 학문을 이해했는가보다 얼마나 알아들었는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

[30, 43쪽] 쉽게 더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을 찾아 들으며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피곤하게 논쟁할 일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린 그냥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두기로 착하고 매너있게 관계를 유지하면 됐다. 대학생이 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그나마의 자유는, 그저 20년 동안 공부로 쌓인 것을 다 풀어내겠다는 듯 어른들의 밤거리를 닮은 대학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 …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세계화가 누구의 손에 돌아가고,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웰빙타령은 하면서도 내가 먹고 쓰는 게 어디에서 길러지고 누가 만드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제대로 연애할 줄도 모르고 자기를 성찰할 줄도 모른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삶에 닥친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에 우리는 얼마나 당혹하고 무지한가? … 돈을 벌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세상에 살면서, 그것 외의 모든 것에 스스로 무능해져 버렸다.

[52, 59, 62쪽] 대학은 이제부터 차라리 진리의 전당이기를 당당하게 포기 선언하고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천명해야 하지 않은가. 그리고 취직도 안 된 청년들을 리콜하든지 손해배상하든지 해야 하지 않은가 … ‘자격증 장사 브로커’인 대학의 실체를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똑똑한 불량품’들의 존재가 죽은 대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일 것이다 … 대졸자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기대치는 부풀려지고, 과시적인 소비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진다 … 더 기계화되고 도시화될수록, 고유의 개성을 살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는 점점 더 박탈되고 있다.

[57, 65쪽] 신문, TV, 인터넷은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전파하며 광범위하게 지식을 판매하고 있다 … 직접 시를 쓰고 봉사를 하면서 그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충만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면서 인생 전체에 걸쳐 더 발전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69∼71, 79쪽]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언론이 대응하는 방식과 차원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 사회과학적 진보는 있을지 몰라도 내 일상과 긴밀히 연결된 삶의 총제적 진보는 아닌 듯했다. 제도와 정책은 진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이루어질 삶의 내용과 생활문화는 한참 후진 듯 다가왔다. 무엇보다 주장은 옳을지 몰라도 내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과 사람의 향기는 느낄 수 없었다 … 왜 ‘진짜’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민생고통은 커져만 가는데 생활민심과 멀어지기만 하는 걸까? … 내가 접혀 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 지구 시대에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이 진정한 진보일까?.

[80, 94쪽] 대학을 나오지 않고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다른 삶이 존중되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대학을 거부한 나의 요구는 88만 원을 188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더 근원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 좋은 일로 성공까지 하겠다는 것도 또 하나의 성공경쟁이 아닌지. 기아 분쟁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그이들의 존엄한 감정이 자신의 맑은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선함을 일깨울 수 있도록 좀 나직하게 나아갈 수 없을까.

[86∼87쪽] 정말 인문학인가? 나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과 ‘삶’ 사이는 머리와 가슴보다 더 멀지 않은가. 아무리 사랑‘학’을 전공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사랑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자기중심주의를 깨뜨린 삶의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머리속에 집중적으로 집어넣는 인문학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나는 나 자신과 친구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접하며 절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인문지식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100쪽] 세상 모든 좋은 부모님들께 부탁 드린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님들께 말씀 드린다 …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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