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 - 한국 근대 예술사진 아카이브 (1910~1945)
이경민.사진아카이브연구소 엮음 / 아카이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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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네 사진은 예술이었을까
 [찾아 읽는 사진책 27] 이경민, 《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아카이브북스,2010)


 나한테 사진기가 없던 때이든 나한테 사진기가 있는 때이든, 사진찍기를 예술이라 여긴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쓰던 자동사진기를 빌려 수학여행 때에 사진을 찍었든, 후배한테서 빌린 수동사진기로 처음 작품사진을 찍었다 하든, 어떠한 사진이라 하더라도 예술이라 느낀 적이 없습니다.

 사진을 바라볼 때에 그저 사진이라 느끼지 예술이나 문화나 다른 무엇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그저 사진이라 여기지 예술이든 문화이든 다른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진예술을 말하거나 사진문화를 다루는 일은 이 나름대로 뜻과 값과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나오는 대중노래를 놓고 노래예술을 말하거나 노래문화를 다루는 일 또한 이 나름대로 뜻과 값과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놓고 영화예술이라든지 영화문화를 밝힌다 할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슨무슨 예술이나 문화를 들려주거나 살피는 일은 언제나 이 나름대로 뜻이나 값이나 보람이 있어요.

 다만, 하루하루 아름다이 살아가면서 따로 예술이나 문화를 잘라서 밝히거나 따지거나 살펴야 할까 궁금합니다. 송두리째 껴안을 수 있고 남김없이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에 사진 그대로 껴안으면 즐겁습니다. 사진은 사진인 만큼 사진다이 살아내면 아름답습니다.

 이경민 님이 엮은 사진책 《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아카이브북스,2010)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은 사진 발자취를 학문으로 파고듭니다. 학문으로 이렇게 파고드는 사진책은 이 나름대로 뜻과 값과 보람이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사진이 맨 처음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퍼졌으며 뿌리내렸는가를 들여다보면서 오늘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어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을 견주면서 우리 사진삶이 어떻게 영글면 좋을까를 곱씹는 밑거름이 됩니다.

 “결국 살롱사진은 사진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예술사진의 제도화 과정에서 오인된, 그리고 공모전 명칭에서 비롯된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살롱사진이라는 명칭으로부터 비롯된 예술사진에 대한 단선적인 이해를 넘어 다양한 예술사진의 생산 맥락을 밝히는 작업이 요구된다(11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면서 한국 사진밭에서 흔히 쓰는 낱말이 얼마나 알맞을까 곱씹고, 얼마나 사진다울까 헤아립니다. 이윽고, “살롱사진은 앞서 언급했듯이 해방 공간의 좌우 대립 속에서,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에 사진계의 패권을 잡기 위해 호명된 용어라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며(12쪽).” 같은 말마디를 되뇌면서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 한국사진을 하는 길이란 어떻게 나아가는 길인가 톺아봅니다.

 참말로 어떻게 걷는 내 사진길이 가장 나답다 할 사진이면서 가장 한국사진답다 할 한국사진이 될까요.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일구거나 가꿀 때에 내 사진밭을 알뜰히 여미면서 알차게 북돋울까요.

 2011년에 되돌아볼 때에 일흔두 해를 먹은 글월, “사진은 있는 그대로 백여 내인다고 하지만 촬영하는 그 자신의 눈을 통하여 마음에 비치우는 것을 백는 것인 만큼 사진 작품에는 작자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의도가 없어서는 더 발전할 수 없는 줄 압니다(200쪽/박필호 1938.6.30.).”를 되읽습니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담깁니다. 글에는 글을 쓴 사람 마음이 담깁니다. 노래에는 노래를 부른 사람 마음이 담깁니다.

 가장 좋은 사진이나 글이나 노래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장 흐뭇하게 받아들일 사진이나 글이나 노래란 없습니다.

 누구한테는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누구한테는 이 글이 가장 마음에 찹니다. 누구한테는 이 노래가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다.

 더 하지 않되 덜 하지 않습니다. 더 낫지 않되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 좋지 않되 더 나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찾아 일굴 노릇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어깨동무하며 살아갈 노릇입니다. 나는 내가 믿는 고운 보금자리를 돌보며 두 다리 느긋하게 뻗을 노릇입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진기를 마련해서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내 이야기를 담아 사진으로 찍을 노릇입니다.

 굳이 갈라야 하지 않으며, 애써 갈라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늘 사진이었고, 사진을 예술로 바라보고 싶으면 언제나 예술이 됩니다. 사진은 한결같이 사진이었으며, 사진을 문화로 바라보고 싶다면 노상 문화가 됩니다.

 사진은 사진이기에 예술이나 문화가 됩니다. 사진은 사진이면서 삶이나 꿈이 됩니다. 사진은 사진이라는 알몸뚱이로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손길이 됩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는 사진이 없이 예술과 문화만 판치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는 예술과 문화는 없이 사진만 예쁘게 감도는지 모릅니다. (4344.8.16.불.ㅎㄲㅅㄱ)


― 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 (이경민 글,아카이브북스 펴냄,2010.9.15./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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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 숙제 책읽기


 여름과 겨울을 맞이하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독후감 숙제를 낸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책읽기를 하도록 이끌면서 느낌글을 쓰라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늘 독후감 숙제를 낼 뿐이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내가 쓴 느낌글을 읽고는 ‘독후감 숙제에 도움이 되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퍽 자주 남기곤 한다. 여름방학이 곧 끝날 즈음이 되어서인지, 요즈음 들어 이런 인사말을 자주 듣는다. 참으로 철없이 숙제를 내고 숙제를 하는구나 싶어, 내 누리사랑방이나 누리모임에 올린 느낌글을 ‘갈무리 못하게’ 할까 싶기도 하지만, 구태여 울타리를 치고 싶지는 않다. 숙제를 하려고 내 느낌글을 읽어 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저희 느낌글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렇지만, 숙제에 얽매인 아이들로서는 저희 느낌을 헤아릴 겨를이 없겠지. 바삐바삐 숙제를 마쳐야 할 테지. 점수를 따져야 하고, 눈치를 보아야 하며, 시험에 휘둘려야 할 테지. 이 아이들은 독후감 숙제가 걸린 책을 제대로 읽기는 했을까. 독후감 숙제가 걸리는 책은 얼마나 읽을 만할까. 학교 교사는 아이들한테 내주는 ‘독후감 숙제’가 걸리는 책을 찬찬히 읽었을까. 교사들부터 이 책들을 차분히 읽으면서 사랑스레 느낌글을 쓴 적이 있을까. 아이들이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한다면, 교사 또한 방학 동안 어떠한 책을 읽었는가를 아이들 앞에서 밝히며 교사 나름대로 적바림한 느낌글을 교실 뒤쪽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이 아파도 다시 끄적이지만, 독후감은 글이 아니고 느낌글 또한 아니다. 독후감 숙제를 한다며 읽는 책이란 책이 아닐 뿐 아니라, 책읽기가 될 수 없다. 독후감을 쓰는 사람은 바보가 되려는 사람이며, 독후감 숙제를 내거나 독후감 숙제를 하는 사람 모두 삶을 뒷전으로 미루면서 아름다운 길하고 등지는 셈이다. (4344.8.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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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물짜기


 아이들 외삼촌이 놀러왔다. 아이들 외삼촌이 빨래를 해 주었다. 살짝 만져 보니 축축하다. 물이 방울져 떨어지겠구나 싶어 얼른 집어서 슬슬 비트니 물이 주르륵 흐른다. 열여섯 외삼촌은 아직 손빨래를 잘 해내지 못한다. 물이 방울져 떨어질 만큼 얕게 짜면 안 되지만, 얼마만큼 더 짜야 하는가를 느끼지 못한다. 날마다 빨래를 하다 보면, 또, 이렇게 빨래를 날마다 하면서 살다가 빨랫대 밑으로 흥건히 고인 물에 책이 젖는다든지 옷이 젖어 보아야 비로소 빨래를 마치고 나서 물짜기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겠지. 끝까지 짜서는 안 되는 옷가지는 빨랫대에 넌 다음 밑에 그릇이나 걸레를 받쳐야 하는 줄을, 웬만하면 물이 방울져 떨어져도 괜찮을 너른 마당이나 흙땅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 줄을, 앞으로 언제쯤 어떻게 깨우칠 수 있을까. 스스로 느껴서 알아야 한다. (4344.8.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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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수리 부엉이의 호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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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수리부엉이한테 도시는 메마르면서 외딴 곳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8] 테지마 케이자부로오(데지마 게이자부로), 《섬수리부엉이의 호수》(창비,2008)



 기저귀와 옷가지를 빨아서 통에 담아 마당으로 나옵니다. 빨랫줄을 바라봅니다. 잠자리가 줄줄이 앉았습니다. 빨랫줄에는 열 마리 남짓 앉았습니다. 밤새 내린 빗물이 남긴 자국을 닦으려고 손으로 문지르니 그제서야 날아오르지만, 몇 마리는 날아오르지 않고 그대로 앉습니다. 코앞까지 손을 뻗어도 얌전히 있습니다.

 천천히 빨래를 넙니다. 빨래를 다 널고 집으로 들어와서 마당을 내다 보니, 날아오른 잠자리가 조용히 빨랫줄에 다시 앉습니다. 빨래집게에 앉고 빨래에 앉습니다. 이 가운데 한 마리를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얇은 날개가 찢어졌고 구멍이 났으며 지저분합니다. 끝없이 퍼붓는 비를 맞는 바람에 날개가 찢어졌을까요. 쉴새없이 쏟아지고 또 쏟아지는 비를 그을 길 없어 날개가 다쳤을까요.

 잠자리들을 살펴봅니다. 하나같이 꼬리가 홀쪽합니다. 잠자리 꼬리가 이렇게까지 홀쪽했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빗줄기가 멈추지 않으니 먹이를 찾기 어려워 잠자리들이 하도 굶은 탓인가 궁금합니다.

 나는 숲속 짐승과 벌레 살림살이를 모릅니다. 무더운 날 숲속에서는 짐승과 벌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춥디추운 날 숲속에서는 짐승과 벌레가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장마철 숲속에서는 짐승과 벌레가 어떻게 견디거나 비를 긋는지, 사람들이 새 자동차길이나 기차길을 놓는다 할 때에 숲속 짐승과 벌레는 어떻게 살림살이를 옮기는지 알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 숲속에서 짐승이나 벌레하고 똑같이 지낸다면 알겠지요. 시멘트나 쇠붙이를 섞어서 후다닥 짓고는 돈을 들여 사고파는 부동산이 아니라, 숲속에서 얻어 숲속으로 돌아갈 만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조용히 숲속 품에 안긴다면, 숲속 짐승이나 벌레 한삶과 죽음을 알겠지요.


.. 호수는 거울처럼 조용했습니다. 호수에 산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아빠 섬수리부엉이도 비쳤습니다. 아빠는 소리 없이 날았습니다 ..  (11∼12쪽)


 길디긴 장마가 이어졌을 때, 우리 집 둘레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고운 울음소리를 베풀던 멧새는 어떻게 먹고사는지 내내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읍내에 나가 먹을거리를 장만할 수 있고, 셈틀을 켜서 먹을거리를 살 수 있습니다. 들이붓는 비 때문에 텃밭이 휩쓸리거나 논밭이 떠내려 가더라도 읍내 가게나 누리장터에 물건이 떨어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든, 무더위나 강추위가 찾아오든, 가게에서 손쉽게 먹을거리를 사다 먹을 수 있는 사람 삶터입니다.

 그러니까, 막비가 어마어마하게 퍼붓더라도 사람 삶터는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막비가 퍼부을 때마다 멧새 삶터가 걱정스럽고 벌레 삶터가 근심스럽습니다. 천성산을 꿰뚫을 굴 때문에 도룡뇽이 걱정스럽다 말씀한 분이 있듯, 수많은 고속도로와 고속국도 때문에 개구리와 뱀이 근심스럽습니다.

 그림책 《섬수리부엉이의 호수》(창비,2008)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섬수리부엉이가 살아가는 깊은 숲속 못물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습니다. 사람들 숨소리가 깃들지 않습니다. 이 깊은 숲속 못물 둘레에 아파트나 공장을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깊은 숲속 못물까지 고속도로를 내거나 고속철도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항을 만들거나 우주정거장을 만들거나 관공서나 기업 새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깊디깊다는 숲속 못물은 ‘숲속 못물 둘레에서 살아가는 짐승과 벌레’한테는 ‘하나도 안 깊은’ 숲속 못물입니다. 숲속 짐승과 벌레한테는 ‘수수한 삶터요 여느 보금자리’예요. 숲속 못물 둘레 짐승과 벌레 눈길에서 바라보자면, 크나큰 도시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깊디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목숨붙이요, 풀포기 하나 나지 않는 ‘메마르며 슬픈 데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스러운’ 목숨붙이라 할 만합니다. ‘누구나 알 만한’ 도시라는 곳은 섬수리부엉이를 비롯해서 메뚜기라든지 사마귀라든지 방아깨비라든지, 숲속 짐승이나 벌레한테는 조금도 살아갈 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많이 살아가는’ 도시에서는 참새와 비둘기조차 보금자리 마련하기 벅찹니다. 도시에서 꾀꼬리나 제비가 살아가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도룡뇽이나 개구리나 뱀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벼나 보리나 밀이 자라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귤이나 능금이나 버섯이 자라지 못합니다.


.. 물결은 호수 가득히 퍼졌습니다. 물고기를 먹는 섬수리부엉이들의 모습도 달빛에 흔들렸습니다 ..  (35쪽)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사람들한테부터 얼마나 살아갈 만한 터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가 와도 걱정스럽지 않은 도시는, 눈이 와도 근심할 일이 없는 도시는, 비와 눈이 내릴 때에 기껏 근심걱정한다는 일이란 길이 막혀 자동차가 다니기 힘들다는 한 가지뿐인 이 도시는, 사람이 얼마나 사람다이 살아갈 만한 보금자리가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섬부리부엉이는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또 ‘사람 발길이 닿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섬수리부엉이한테 잡아먹히는 숲속 못물 물고기 또한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목숨결대로 살아갑니다. 저마다 제 목숨무늬대로 어우러집니다. 고맙게 살아서 고맙게 죽습니다. 고맙게 태어나서 고맙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너른 자연은 넉넉한 품이기에 너른 자연입니다. 사람은 사람값을 할 때에 사람입니다. 너른 자연을 무너뜨려 넉넉한 품을 찢어발길 때에 자연이 자연 구실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이 사람값을 하기보다 돈값을 하거나 돈벌이에 얽매일 때에 사람다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사람은 무슨 보람으로 살아가나요. 사람은 무슨 사랑을 나누는가요. 사람은 무슨 꿈을 키우는가요. 그림책 《섬수리부엉이의 호수》에 나오는 섬수리부엉이 한식구는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애틋하게 하루하루 즐깁니다.


 아무도 모르는 호수가 (3쪽) → 사람들이 모르는 호수가
 섬수리부엉이 가족이 (7쪽) → 섬수리부엉이 한식구가
 물고기를 잡으러 온 것입니다 (7쪽) → 물고기를 잡으러 왔습니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빛났습니다 (8쪽) → 초승달이 가늘게 빛났습니다
 엄마는 아기 옆에 남았습니다 (9쪽) → 엄마는 아직 어린 새끼 옆에 남았습니다
 날개를 접고 있을 때도 (17쪽) → 날개를 접을 때도
 새벽이 가까운 것입니다 (38쪽) → 새벽이 가깝습니다
 작은 새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습니다 (39쪽) → 작은 새들이 한꺼번에 웁니다
 오늘도, 호수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39쪽) → 오늘도, 호수는 새 하루를 엽니다



 그림책을 덮으려다가 다시 펼칩니다. 아무래도 이 그림책에 적힌 글줄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이한테 이 그림책 글월을 그대로 읽혀도 좋을는지 두렵습니다. 아이한테 읽히기 앞서 아버지 먼저 조용히 읽으면서 글줄에 까만 줄을 여럿 그은 다음 아래쪽에 새로운 글월을 적어 넣습니다.

 아름다운 목숨붙이 보금자리를 살그머니 보여주는 그림책이라 할 텐데, 아름다운 말빛을 빛내어 아름다운 넋빛을 돌보도록 이끈다면 훨씬 좋겠지요.

 그러고 보니, 《섬수리부엉이의 호수》를 펴낸 ‘창비’ 출판사는 그린이 이름을 ‘테지마 케이자부로오’로 적습니다. 이분 그림책은 1996년에 ‘보림’ 출판사에서 먼저 옮겼습니다. 이때에 보림 출판사는 ‘데지마 게이자부로’로 적습니다. 누리책방에서 그린이 이름을 살피니, 둘이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듯, ‘테지마 케이자부로오’로 살피면 창비 그림책 두 가지만 나오고, ‘데지마 게이자부로’로 살피면 보림 그림책 두 가지만 나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일군 분 이름은 한글로 어떻게 적어야 좋을까요. 어느 쪽이 옳게 적은 이름이라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만, ‘테지마 케이자부로오’로 살피든 ‘데지마 게이자부로’로 살피든, 한국말로 나온 이분 그림책을 한눈에 살피도록 두 출판사가 마음을 기울일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먼저 그림책을 낸 출판사보다 나중에 그림책을 낸 출판사에서 마음을 더 기울여야겠지요. (4344.8.15.달.ㅎㄲㅅㄱ)


― 섬수리부엉이의 호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엄혜숙 옮김,창비 펴냄,2008.8.5./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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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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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녘이나 북녘이나 서로 머나먼 평화
 [만화책 즐겨읽기 53] 오영진, 《평양 프로젝트》



 두릅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팔월 한복판에 이르러 두릅나무 꽃을 구경합니다. 두릅나무는 한겨울에 아주 앙상한 모습으로 조용히 섭니다. 마치 막대기를 얼기설기 박은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멋모르는 사람은 참말 웬 막대기를 세웠나 하고 고개를 갸웃할 만하지만, 멋모르는 여느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싱싱 내달리며 지나칠 테니, 길가나 숲에 막대기가 서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아니 눈부신 광고판이 아니라면 애써 쳐다볼 까닭이 없습니다.

 사월에 새잎을 따서 먹는 두릅나무는 새잎을 빼앗기면서 더욱 가녀린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더는 새잎을 따먹지 못할 때부터 아주 힘차게 잎을 내고 가지를 뻗습니다. 두릅나무는 싱그러운 목숨을 마음껏 뽐내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금세 잎이 우거지고 키가 훌쩍 자랍니다. 사람들이 더는 새잎을 따먹지 않기를 바라듯 키를 높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또는 봄을 앞두고, 사람들은 두릅나무를 뎅겅뎅겅 자릅니다. 애써 가지를 뻗고 줄기를 굵혔지만, 두릅나무는 제 몸뚱이를 건사할 수 없습니다. 사월에 맛볼 싱그러운 두릅싹을 따먹으려는 사람들은 두릅나무가 스스로 키를 키우는 일을 반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가로막습니다. 늘 몸뚱이를 자릅니다.

 꽃을 피우는 두릅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두릅꽃을 예뻐 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팔월 한여름에 두릅꽃 하이얗게 노란 꽃망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애틋해 할 시쟁이가 있을까요. 우거진 잎사귀에 가려진 조그마한 꽃망울을 목이 꺾어져라 올려다볼 소설쟁이가 있을까요.


- “배 선생! 우리 편하게 갑시다.” (15쪽)


 오영진 님이 빚은 만화책 《평양 프로젝트》(창비,2006)를 읽습니다. 《남쪽 손님》(길찾기,2004)과 《빗장 열기》(길찾기,2004)라는 만화책 두 권으로 북녘사람 삶을 살포시 들여다본 이야기를 들려준 오영진 님이 새롭게 선보이는 《평양 프로젝트》를 읽습니다.

 오영진 님 만화책을 읽으면서 지난 1993년에 황석영 님이 내놓은 산문책 《사람이 살고 있었네》(시와사회)를 떠올립니다. 황석영 님은 책이름 그대로 당신이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남녘사람 누구라도 헤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혔던 ‘사람이 살아가던 북녘’을 몸으로 깨닫고 나서 ‘글을 쓰는 황석영’ 님인 만큼 글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북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지 않을’ 수 없기에 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오영진 님은 만화쟁이로서 ‘사람이 살아가는 북녘 이야기를 만화로 빚어서 풀어냅’니다. 머리에 뿔이 달린 도깨비가 아닌, 독재자 한 사람한테 넋이 나간 바보가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갛게 물든 머저리가 아닌, 날마다 밥을 먹고 빨래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을 마주한 이야기를 만화로 들려줍니다.


- “북측에서도 영어 교육을 강화한다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영어를 배우는 것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입네다. 또한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하지요. 기래서 우리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근데 이쪽 동네는 미제를 싫어하잖아요? 그런데도 영어 교육에 힘쓴다는 것이 좀 거시기하네요.” “하하! 선생께서 고저 모르셨구만기래요, 하하하!! 우리 공화국에서는 영어를 미제 식이 아닌 영국 식으로 가르치고 있습네다.” “그러니까, 여긴 원조로 가르친단 말이죠, 하하!” “고저 아새끼, 뭬가 웃을 일이라구서리…….” (39∼40쪽)


 북녘이 남녘보다 잘날 까닭이 없습니다. 남녘이 북녘보다 잘날 까닭이 없습니다. 북녘이 남녘보다 못날 까닭이 없습니다. 남녘이 북녘보다 못날 까닭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은 북녘에도 있고 남녘에도 있습니다. 못난 사람은 북녘에도 있으며 남녘에도 있습니다. 사랑꽃을 피우는 사람은 북녘과 남녘에 골고루 있습니다. 돈에 눈을 밝히면서 홀로 배부르려는 사람은 북녘이든 남녘이든 어김없이 있습니다.

 북녘에도 남녘에도 군대가 있습니다. 북녘이든 남녘이든 군대는 권력을 누립니다. 북녘이나 남녘이나 군대를 이끄는 이는 몇몇 권력자입니다. 북녘과 남녘 모두 군대에서 휘둘리는 이는 수많은 서민·백성·민중·인민, 그러니까 여느 사람들입니다. 북녘은 군대 때문에 사람들이 굶주리고, 남녘은 군대 때문에 사람들이 다툽니다. 군대를 꾸려 군대로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 모두를 억누르는 북녘입니다. 군대를 꾸리느라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 모두 억눌릴밖에 없는 남녘입니다.

 전투기 한 대를 줄이면 북녘에서는 수만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전투기 한 대를 줄이면 남녘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학교에서 도시락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군함 한 대를 줄이면 북녘에서는 수십만 사람이 한결 넉넉하게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일굴 수 있습니다. 군함 한 대를 줄이면 남녘에서는 수십만 사람이 한껏 즐거이 아이를 보살피며 살림을 가꿀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전쟁무기부터 없애야 합니다. 전쟁무기를 호미와 낫과 쟁기로 바꾸어야 합니다. 전쟁무기 다스리던 군인한테 흙을 일구는 살림살이를 가르쳐야 합니다. 전쟁무기 만들던 과학자와 기업한테 손으로 빨래하고 손수 밥상을 차리는 집일을 일깨워야 합니다.


- “이건 정말 고급 정보인데, 그때 가면 낡은 아파트가 최고급 아파트로 둔갑하게 되거든요.” “오 선생이 뭘 모르시는구만기래요. 값비싼 아파트란 고저 항시 전기가 끊이지 않고 시원스레 공급되는 아빠트가 최곱네다. 중구나 평천 구역이 기렇지요.” “아이고, 참내, 전기는 나중에 다 들어오게 된다니까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무조건 제 말 듣고 낡은 아파트에 올인하세요!!” “이거 같이 말 못 하갔구만! 오데 상식이 통해야디!!” (145쪽)


 만화책 《평양 프로젝트》는 딱히 ‘다른 길(대안)’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만화책 《평양 프로젝트》는 책이름 그대로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고, 그저 ‘프로젝트’로나마 이루어지는 만남을 가까스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 만화책에는 북녘땅 평양마을 여느 사람들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꾸린 모임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느 살림집을 취재할 수 없고, 여느 살림집 여느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평양과 가까운 해주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평양 언저리 시골마을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평양하고 멀찍이 떨어진 멧골자락이든 바닷가이든 찾아갈 수 없습니다. 탄광이든 소금밭이든 찾아갈 수 있을까요.

 거꾸로 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북녘에서 남녘으로 찾아온 사람은 “서울 프로젝트”를 하겠지요. 그러면, 북녘에서 남녘으로 찾아온 사람한테 ‘남녘 정부 공무원’은 ‘북녘 취재진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사람을 만나도록’ 하려나요. 북녘에서 남녘으로 찾아온 취재진은 남녘에서 여느 살림집 여느 사람들을 스스럼없고 거리낌없이 마주하면서 깊디깊은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북녘에서 남녘으로 찾아온 취재진이 서울땅에서 용산 철거민을 만나도록 자리를 마련할는지요. 김진숙 님이나 지율 스님을 만나도록 ‘남녘 정부 공무원’이 다리를 놓을는지요.


- “동무 울지 마!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뭘!” (196쪽)


 더 보여줄 수 없지만, 덜 보여줄 수도 없는 만화책 《평양 프로젝트》를 덮습니다. 이 만화책 이야기는 참말 ‘프로젝트’로 끝날는지, 첫머리나 첫걸음이 될는지 아직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만화책 이야기가, 또 북녘과 남녘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가,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모든 이야기가 꿈이 아닌 빛나는 삶으로 꽃피우자면, 이 땅 사람들부터 하나하나 바꾸어야 합니다. 착한 삶길이 되도록 내 삶길을 바꾸어야 합니다. 돈벌이 아닌 사랑을 찾도록 내 눈길을 고쳐야 합니다. 겉모습이나 물질문명이 아닌 푸나무와 새소리를 아끼도록 내 손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4344.8.15.달.ㅎㄲㅅㄱ)


― 평양 프로젝트 (오영진 글·그림,창비 펴냄,2006.12.13./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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