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아껴 오늘 저녁 8권을 다 읽고 이제 9권을 주문한다. 금세 읽기 싫어 아주 천천히 읽고 아주 천천히 다음 책을 주문한다. 농사일은 천천히 지어야 하듯 술빚기뿐 아니라 만화 그리기와 글 한 꼭지 쓰는 일 모두 천천히 하는 사람들이 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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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9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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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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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내 초등학교 사내아이 발차기

 


  읍내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초등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천 원짜리 얼음과자 하나를 산다. 마침 초등학교 마칠 무렵이라 아이들이 바글바글. 문득 생각하는데, 이 초등학교 앞 편의점은 예전에 편의점 아닌 작은 가게나 문방구가 아니었으랴 싶다. 편의점에서 파는 먹을거리 가운데 ‘초등학생한테 팔 만한 값싸고 작은 먹을거리’가 눈에 아주 잘 뜨이는 자리에 퍽 많이 놓였다.


  나는 갓난쟁이를 안고, 옆지기가 첫째 손을 이끌고 얼음과자를 산다.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린다. 초등학교 어느 사내아이가 동무인 듯한 가시내 가방에 발차기를 한다. 그런데 이 발차기가 바로 내 코앞에서 벌어졌다. 사내아이는 곧장 ‘어른인 내’ 눈치를 본다. 불쑥 한 마디를 내뱉으려다 꾹 참고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가 눈길을 홱 돌렸다.


  사내아이는 가시내한테 무어라 한 마디를 내뱉으려 한 듯한데 더는 무언가 말하지 못하고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가며 참 우악스러운 개구쟁이 짓을 한다. 이러면서 ‘어른인 내’ 눈치를 자꾸 본다.


  편의점 바깥으로 나온다. 초등학교 나들문을 바라본다. 읍내뿐 아니라 면내 초등학교도 이와 엇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골 초등학교뿐 아니라 도시 초등학교도 이와 매한가지 아니랴 생각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아이 아버지인 내가 짜증스럽거나 뭔가 골을 부릴 때 얼굴을 보면 되게 무서운 낯빛’이라고 옆지기가 들려주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아까 그 초등학교 사내아이도 제 가시내 동무 가방에 발차기를 하다가 코앞에서 ‘덩치 크고 갓난쟁이를 앞에 안은 어른’이 뻔히 쳐다보았으니 불벼락 같은 말에다가 꿀밤이 날아왔을까 하고 두려워하지 않았겠느냐 싶다. 게다가 내가 이 녀석을 바라보며 좀 많이 짜증스럽게 노는구나, 이 따위 녀석이 다 있나, 하고 생각했으니, 내 낯빛은 보나 마나 아주 사나웠겠지.


  그러니까,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뒤로 한몸을 빼기도 했지만, 저보다 기운센 사람 앞에서는 찍소리를 못하고, 저보다 여린 아이한테는 마구 발차기를 하는 꼴을 보면, 내가 무어라 말을 하거나 꿀밤을 먹이더라도 하나도 달라질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나쁜 일만 쳇바퀴처럼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한다. 읍내마실을 하다가 읍내 도서관 한쪽 걸상에 앉은 옆지기가 둘째한테 젖을 물리면서 나한테 하던 말을 되새긴다. 옆지기는 우리 시골마을에 학교를 하나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학교를 만들고 싶다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택시 일꾼한테 아무렇지 않게 ‘나(아버지)는 시골 도서관을 열고, 옆지기(어머니)는 시골 학교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골 도서관지기로 살아갈 테고, 옆지기는 시골 학교지기로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아주 굳어진다.


  우리 아이들부터 바보스레 자라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을 누리는 또래 아이들 누구나 바보스레 크기를 꿈꾸지 않으니까.


  서로서로 좋은 사랑을 듬뿍 먹으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부터 어른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금자리 빛내고 어여쁜 믿음으로 마을을 살릴 수 있기를 꿈꾼다. 아이들아, 네 좋은 동무한테는 발차기가 아니라 따스한 손길이랑 보드라운 눈길이랑 살가운 마음길을 나누어야지. (4345.3.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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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7 : 어른이 되어 책읽기

 


  이 나라에 장애인이 470만 남짓 있다지만, 길거리를 나다니면서 ‘장애인 마주치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들이 길거리를 하루 내내 누빈다 하더라도 ‘이처럼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 스스로 동네마실을 하기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장날을 맞이해 두 아이를 데리고 네 식구 읍내마실을 합니다. 쉬가 마려울 때에 느긋하게 쉬를 할 만한 데를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갓난쟁이 안고 다리를 쉴 만한 걸상을 찾기 벅찹니다. 마땅한 쉼터나 공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여느 도시라 하더라도 걸상이나 쉼터나 공원을 찾기는 몹시 빠듯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한복판이나 부산 한복판에서 사람들 누구나 느긋하게 다리를 쉬며 아이들이 뛰놀 만하거나 어머니가 젖을 물릴 만한 곳은 얼마나 있을까요. 옆사람 담배내음이나  손전화 시끄러운 수다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한 쉼터는 얼마나 있을까요. 따사로운 햇살을 누릴 만한 눈부신 나무숲이나 풀숲은 어디에 있을까요.


  홍윤 님이 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을 읽습니다. “아침부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엄마는 활짝 핀 꽃이 눈에 띄어 집에만 있는 내게 보여준다며 사진을 잔뜩 찍어 오셨다(184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스물다섯 나이에 당신 몸이 몹시 아픈 줄 깨달은 홍윤 님은 다른 숱한 사람들처럼 쉬 바깥마실을 하지 못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머니가 일으켜세워 주고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홍윤 님 어머님은 마흔 먹은 딸아이를 마치 갓난쟁이 때처럼 알뜰히 보살핍니다.


  그래, 내가 이분 어머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새로 피는 꽃송이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집 바깥에서 겪은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이 땅에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겠지요.


  추리문학을 즐겨읽던 홍윤 님은 2010년 12월 13일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죽음길로 떠났습니다. 2011년이 저물던 12월 13일을 맞이해 《물만두의 추리책방》(바다출판사)과 《별 다섯 인생》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나는 이 두 권 가운데 《별 다섯 인생》을 먼저 장만해서 천천히 읽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픈 글을 꾸준히 적바림하는 홍윤 님 글을 읽으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픈 옆지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아픈 옆지기를 돌아보며 아끼는 사람일까요. 아이로 태어나 어른으로 살아가는 오늘, 나는 얼마나 어른다운 삶을 누리면서 내 살붙이를 아끼는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321쪽).” 하는 말처럼, 아름다운 책은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많듯, 아름다운 사람이 많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 마음밭에도 아름다운 사랑씨앗이 많이 자라겠지요.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책 한 권에서 길어올리며 살아가나요. (4345.3.9.쇠.ㅎㄲㅅㄱ)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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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꿉 책읽기

 


 나무로 깎은 소꿉을 선물받았다. 아주 마땅히 다섯 살 사름벼리가 갖고 논다. 돌이 안 된 두 살 산들보라는 소꿉놀이를 할 줄 모른다. 앞으로 산들보라 스스로 서고 걸으며 달리기까지 할 줄 알 무렵, 누나 따라 함께 소꿉놀이를 즐길 수 있으리라. 나무로 깎은 소꿉이니까 바닥에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겠지. 잘 건사하고 예쁘게 돌보면서 너희 손가락이랑 손아귀 힘을 씩씩하게 기르렴. 앞으로 너희들이 두 손으로 할 일과 놀이는 아주아주 많단다. (4345.3.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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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3-09 11:17   좋아요 0 | URL
너무 너무 귀여워요, 어쩜,,

파란놀 2012-03-09 16:21   좋아요 0 | URL
아주 깜찍한 선물인데,
나무 소꿉은
편해문 님이 '디자인'했고,
파키스탄 어린이가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고 해요.

*.*

책읽는나무 2012-03-09 11:57   좋아요 0 | URL
나무로 만든 소꿉은 제가 다 쓰고 싶네요.@.@
사름벼리는 지금 수제비 같은 칼국수를 요리할 것같군요.음~

근데요.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정확한 뜻이 무언가요?
지난번부터 묻고 싶었는데...ㅡ.ㅡ;;

파란놀 2012-03-09 16:20   좋아요 0 | URL
사름 + 벼리,
산들 + 보라,
이렇게 됩니다~

뜻은 어떠할까요?
ㅋㅋㅋ
국어사전 뒤져 보시면 됩니다~~~ :)

'산들보라'는 생각하시는 그대로이고,
'사름벼리'는 국어사전 뒤지셔야 해요~~~~

페크pek0501 2012-03-09 13:12   좋아요 0 | URL
아휴, 귀여워~~~. 재밌겠는데요.
저도 어릴 적 소꿉놀이를 엄청 좋아했어요. 창피하게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키가 커서까지도 했지요. ㅋ 갖고 놀던 인형도 버리지 못하고 6학년까지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그 이후엔 기억에 없어요. 아마 누군가가 버렸겠죠. ㅋ

파란놀 2012-03-09 16:19   좋아요 0 | URL
흠...
그러고 보면,
소꿉놀이를 어머니가 아이한테 물려주고, 또 아이한테 물려주면
대단한 '문화유산'이 될 듯한데,
소꿉을 물려주는 어머니는 없겠지요... ㅠ.ㅜ
 

 

 


 사진으로 역사를 바꾸려는 손길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9]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1987)

 


  198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슬에다가 치안유지라는 허울이 너무 무시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시인 박용수 님이 사진책 《민중의 길》(분도출판사)을 내놓은 적 있으나 1989년이요, 사진기자 신복진 님이 《광주는 말한다》(눈빛)를 내놓았으나 2006년입니다. 1980년 광주를 말하는 ‘한국사람이 찍은 사진’은 아홉 해가 지나서야 겨우 조금 빛을 보고, 스물여섯 해를 훌쩍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이럭저럭 빛을 본 셈입니다. 이때 한국에 와서 취재를 하던 외국 기자들이 찍은 사진은 언제쯤 사진책 하나로 묶여 빛을 볼 수 있을까요. 한국사람이 미처 못 담은 모습, 한국사람한테는 꽁꽁 막혀 바라볼 수 없던 모습을 담은 외국 기자들 사진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는, 또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뒤에는 빛을 볼 만할까요.


  박도 님이 미국 어느 도서관에서 고이 잠자던 사진을 깨워 《지울 수 없는 이미지》(눈빛)를 내놓은 때는 2004년입니다. 한국전쟁 무렵 한국땅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인데, 이 사진들은 자그마치 쉰 해를 훌쩍 지나 빛을 봅니다. 그러니까, 1980년 광주 이야기라면 앞으로 2030년쯤은 되어야 어디에선가 먼지를 털며 겨우 빛을 드러내지 않으랴 싶어요. 다만, 이 모습을 잊지 않은 누군가 있어야 하고, 이 모습을 되찾으려는 누군가 있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난 한국은 기나긴 해를 군사정권 독재 그늘에 가려진 채 보내야 했습니다. 땅덩이는 남과 북으로 갈렸으나, 사람들 마음은 더 잘게 쪼개어져야 했습니다. 서로 믿고 서로 돕는 따스한 사랑보다는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노려보는 끔찍한 총부리가 으르렁거려야 했습니다. 평화도 통일도 민주도 자리잡기 힘들었습니다. 사랑도 믿음도 꿈도 섣불리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아픔과 응어리를 그대로 눌러둘 수 없기에 조금씩 불씨가 피어났고, 1980년대 끝무렵에는 남녘땅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몇 마디 아우성을 터뜨렸어요.


  이즈음, 붉은 빛으로 감싼 사진책 하나, 펴낸곳 이름 따로 없이, 어느 사진을 어디에서 얻어 누가 오리고 잘라 엮었는가 하는 이름 또한 없는 채,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출판사 이름 어느 한 가지조차 쓸 수 없던 그무렵, ‘종교는 건드리지 않는다’라 하는 금 안쪽에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름을 붙인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1987)이 나옵니다.


  여기저기에서 오려 붙인 사진을 그러모았으니, 오늘날로 말하자면 ‘저작권 도둑질’이라 할 만하겠지요.


  글로도 그림으로도 사진으로도, ‘하고픈 말’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던 때에 나온 사진책이니, 가슴에서 북받치며 터져나온 책 하나라 할 만하겠지요.

 

 

 


  펴낸곳도 지은이도 엮은이도 따로 없는 만큼, 이 책은 여느 새책방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느 도서관에도 이 책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주 숨죽인 채, 사람들 사이사이 손과 손을 거쳐 눈시울을 적시며 몰래 읽고 읽혔습니다.


  나는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자칫 헌책방 일꾼마저 ‘이런 책을 다룬다는 대목 때문에 경찰한테 붙들릴’ 수 있는데, 적잖은 헌책방 일꾼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 책을 조용히, 슬그머니 드러내어, 가만히, 말없이 번듯하게, 적잖은 사람들이 되읽고 돌려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군사정권 독재자들은 왜 글·그림·사진을 송두리째 걸어 잠갔을까요. 군사정권 독재자들은 왜 신문과 방송과 책이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맸을까요. 걸어 잠긴 글·그림·사진인데, 우리들은 이를 얼마나 느끼거나 생각했을까요. 얽어매인 나머지 제목소리 못 내던 신문과 방송과 책이었는데, 우리들은 이를 얼마나 알거나 깨달았을까요.

 

 

 


  사진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그림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글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사진도 그림도 글도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바뀝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역사를 바꾸지 못하지만, 사진 한 장에 온 눈물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담을 수 있으면, 이렇게 눈물을 담고 꿈을 담으며 사랑을 담는데다가 믿음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찍는 사진마다 내 온 눈물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담으려 해요. 집안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든, 마당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든, 언제나 내 마음속 모든 기운이 솟구쳐오르도록 이끌어 사진 한 장으로 영글어 놓고 싶어요.

 

 

 


  나한테 사진을 찍는 힘은 내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나한테 사진을 읽는 눈길은 내가 사랑하는 눈길입니다.


  사진책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한 권이 이 나라 역사를 바꾸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진책을 들여다본 사람들 가슴은 바꿀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날 그곳 그때 그이를 이 사진책 하나로 가만히 그리면서 함께 웃고 같이 울며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꿈 한 자락을 끌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워하지 말자.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한 마디로 끝맺은 사진책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넘기면, 여느 동네 여느 아주머니들이 시민군이 먹을 밥을 스스로 해서 스스로 챙기는 사진이 있습니다. 시민군한테 음료수 병을 갖다 안기는 사진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총칼을 무섭게 빼든 군인한테 밥 한 그릇이나 물 한 모금 선선히 갖다 바치는 모습은 어떠한 사진으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민군도 계엄군도 모두 사람인데, 계엄군이라는 허울을 쓰고 광주땅 사람들 수천을 아무렇지 않게 끔찍히 죽인 이들은 누가 심어 거두고 누가 차려서 내미는 밥을 먹었을까 궁금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는지 궁금합니다. 정권이란 무엇이고 독재란 무엇이며 정치란 무엇일는지 궁금합니다.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자유란 어떠한 모습과 이야기일는지 궁금합니다.


  왜 권력을 손아귀에 쥐려 하나요. 왜 돈뭉치를 뒷주머니에 챙기려 하나요. 왜 총칼로 사람들을 무릎 꿇리며 함부로 다루나요. 누구라도 하루 세 끼니 밥을 먹어야 하는 목숨이에요. 누구라도 논밭에 씨앗을 뿌려 알뜰히 건사해서 가을날 흐뭇하게 곡식과 열매를 얻어 어깨동무하며 누려야 할 이웃이에요. 살림을 즐거이 꾸리는 데에 마음·품·겨를·돈을 쓸 노릇이라고 느껴요. 군대를 만들거나 무기를 만들거나 4대강 삽질을 하는 데 따위에 어떠한 마음·품·겨를·돈조차 쓰지 않아야 한다고 느껴요.


  사진 한 장은 역사를 바꾸었을까요. 사진책 한 권은 삶을 바꾸었을까요. 사진기를 쥔 사람들은, 사진으로 담긴 사람들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사진책을 돌려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요. (4345.3.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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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3-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9년에는 가톨릭 사제들의 증언집인 <저항과 명상>(빛고을 출판사)이 나왔습니다.부록으로 독일 기자가 광주항쟁에 대해 쓴 글 세 편이 있죠.

파란놀 2012-03-09 17:21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음... 저희 집에도 있나 싶기도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