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2.3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도서관과 라이브러리, 책과 리브로
 [책읽기 삶읽기 101] 도서관미디어연구소,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

 

 

 


  도서관과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를 읽습니다. 2012년 3월에 33호이니 아직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부터 꾸준히 내놓을 수 있으면 머잖아 50호를 넘고 100호를 넘으며 200호를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내놓은 책이기에 뜻있거나 값있지 않고, 새로 내놓는 책이기에 어설프거나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따사롭고 사랑스레 글 하나 빚을 수 있느냐에 따라 뜻이랑 값이 달라집니다.


.. 도서관은 독서실 정도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곳인 동시에,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곳이 도서관이다. 이 두 속성을 공간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도시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  (12쪽/독일 건축가 이은영)


  대학교에 문헌정보학과가 있습니다. 사서자격증이 있고,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도서관이 섭니다. 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인 한편 크고작은 도서관을 이럭저럭 갖춥니다. 초등학교에 도서관 마련하는 일이 널리 퍼졌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한켠에도 아이들 읽힐 책을 꽂곤 합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에는 으레 도서관이나 책꽂이를 갖춥니다. 책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책을 들어 사람을 배웁니다. 곧, 책 하나는 이야기 하나 담는 그릇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틀과 흐름과 넋을 보여주는 길동무나 길잡이 구실을 함께 합니다.


  사람은 어린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배웁니다. 어린이도 서로서로 가르치고, 어른도 서로서로 가르칩니다. 나이 다섯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마흔다섯 살이든 여든다섯 살이든, 싱그러이 살아가는 넋이라면 언제나 배우고 늘 가르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무엇이든 기쁘게 배우고 예쁘게 가르칩니다. 오늘 하루 어제 하루 고맙고 즐겁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느 것도 가르치지 못해요.


  스스로 즐거울 때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스스로 고마울 때에 스스로 고맙게 가르칩니다. 어떤 지식이라서 배우지 않고, 어떤 지식이기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자격증을 배우지 않으며, 어떤 자격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워요. 삶을 느끼고 삶을 좋아해요.

 

 


.. 좋은 시는 우리를 무감하게 길들이지 않고 매일 새롭게 아파하며 신생하게 한다 ..  (26쪽/이은정의 시읽기)


  날마다 즐거이 누릴 삶인 줄 느낄 때에는 시를 읽으며 내 넋이 온통 시가 됩니다. 언제나 고맙게 누리는 사랑이라고 느낄 때에는 그림 하나 읽으며 내 얼이 가득 그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 한 줄은 글 한 줄이 되어 즐겁습니다. 노래 한 가락은 노래 한 가락이 되어 기쁩니다. 그림 한 장은 그림 한 장이 되어 아름답습니다.


.. 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 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 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  (29쪽/류대성의 청소년책 읽기)

 


  논밭에서 땀흘리기를 아까워 할 때에는 곡식이든 푸성귀이든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땀방울 알뜰히 흘릴 때에 맛나게 먹을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둡니다. 나무는 언제나 힘껏 길어올린 밥과 물을 가지마다 골고루 보내며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랑스레 여길 때에 아이가 씩씩하고 맑게 자랍니다. 아이하고 부대끼는 하루를 살가이 보듬을 때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큽니다.


  책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책으로 일굴 넋이 말라비틀어집니다. 품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내 삶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마실을 다니거나 아이하고 밭고랑이 나란히 앉아 김매기를 싫어할 때에는 내 밥그릇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고운 말 어여쁜 말 섞기를 귀찮다 여길 때에는 내 말이 말라비틀어집니다.

 


.. 지난 2월 24일 ‘손바닥TV’에 출연해서는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왜 그런 곳에 가 있느냐고 하는데, 이게 모두 시”라며 웃었다 ..  (39쪽/송경동 시인 만나기)


  모든 하루가 모든 책입니다. 모든 삶이 모든 이야기입니다. 시가 아닌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태어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빚지 못할 삶은 없습니다. 시로 영글 수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소설로 태어납니다. 모든 이야기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다른 이름 다른 옷을 입고 태어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며 시를 쓸 줄 알기에 삶을 쓸 줄 압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할 줄 알기에 시를 쓰며 삶을 누릴 줄 압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며 끙끙 앓기에 시를 쓰고 삶을 읽을 줄 압니다.


  아이한테는 어버이 말 한 마디가 사랑밥입니다. 어버이한테는 아이 말 한 마디가 믿음밥입니다.

 


..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영어를 쓰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담으며 사랑할 말을 이렇게 놓치거나, 잃거나, 버렸구나’ 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넋으로 곱게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  (42쪽/《뿌리깊은 글쓰기》 소개)


  좋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좋은 넋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밥상을 차리지 못합니다. 좋은 꿈이 아니고서는 좋은 말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을 책 하나로 꽃피우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할까요. 삶을 책 하나로 갈무리하며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할까요.


  다달이 나오는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는 어떤 사람들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까요.

 


.. 우리 도서관(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의 요즘 동향을 보면 교과 과정에 연계된 책들이 가장 많이 대출된다. 다른 도서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몇 학년과 연계된 문학 읽기라든가, 과학 교과서와 연계된 과학 원리와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보는 입장에서 문학이나 학습 원리를 순수하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  (84쪽/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 대표 김윤순)


  아이들이 학교 교과서를 더 잘 외우도록 돕는 부교재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다 하면, 도서관이 설 뜻은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지식을 외우고 점수를 따는 시험만 치르도록 하는 학교라면, 학교가 설 값어치는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하며 아이들 꿈을 밝히는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이들 믿음과 이야기를 북돋우는 어버이하고 하루하루 예쁘게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도서관은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동무를 곱게 사귀며 즐거이 어깨동무하지 않고서,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점수따는 겨루기를 일삼는다면, 학교란 이 지구별에서 아무 값어치를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98쪽짜리 조그마한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하나로 어떤 삶을 밝힐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는 사람들 삶에 얼마나 스며들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에 서린 이야기 하나는 우리들 아름다운 터전을 얼마나 따사로이 품을 만한 손길이 될까요.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잉글리쉬 존’처럼, ‘코리아’ 아닌 한국땅이지만, 도서관보다는 ‘라이브러리’를 말해야 합니다. 책을 책이라 적기보다는 ‘冊’으로 적어야 맛이라 여기는 지식인이 꽤 많고, ‘book’으로 적는 기자가 무척 많으며, 그예 ‘리브로’를 이야기하는 책일꾼이 많습니다. (4345.3.16.쇠.ㅎㄲㅅㄱ)


―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 (도서관미디어연구소 엮고 펴냄,2012.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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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민방위 소집, 마늘밭, 한미자유무역협정

 


  시골마을 민방위 소집을 이태째 치른다. 지난해에는 충청북도에서 치렀고 올해에는 전라남도에서 치른다. 지난해에 민방위 소집을 치를 때에는 ‘리’를 아울러 사람들이 모였고, 올해에 민방위 소집을 치를 때에는 ‘면’을 아울러 사람들이 모인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내가 모르는 젊은 분이 한 사람 왔다. 누구일까. 어느 집 젊은 분일까. 주소는 이쪽으로 되었으나 광주라든지 순천이라든지 광양에서 살아가는 분일까. 고흥군 도화면을 통째로 아울러 민방위 소집을 한다고 느낀다. 민방위 소집을 하는 이웃마을 회관에서, 이웃마을 이장님이 이름 적으라고 내민 종이에 찍힌 소집자 주소를 보니, 도화면 맨 아래쪽 지죽리까지 있다. 지죽에서 면 소재지까지는 면 소재지부터 읍내까지 될 만큼 먼 길인데.


  ‘면’을 아우른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민방위 소집에 나온 젊은 사람들, 이른바 서른 첫머리부터 막바지인 사람들은 대여섯. 소집자 이름에 올랐으나 안 나온 사람까지 치면 모두 열서넛 즈음. 면을 통틀어 민방위 소집을 받는 젊은 사람이 고작 이만큼이라 한다면, 젊은 사람이 참 없다는 뜻일 테지. 가만히 보면, 면내 우체국이건 면사무소이건 파출소이건 농협이건, 이런저런 데에서 일하는 마을 젊은이는 얼마 없다고 느낀다. 하나같이 순천에서 오고 광주에서 오며 여수나 광양 같은 데에서 온다. 그리고, 시골마을 젊은이는 순천으로 나가고 광주로 나가며 여수나 광양 같은 데로 나가지만, 이보다는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고 싶어 한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일하러 오고프다 하는 젊은 교사나 공무원이 있을까. 부산을 떠나거나 대구를 떠나거나 인천을 떠나거나 대전을 떠나면서, 전라남도 맨 끄트머리에 자리한 고흥으로 일하러 가겠다 하는, 또는 살림집을 옮기겠다 하는, 끝없는 가게와 아스팔트와 아파트 물결하고는 동떨어진 숲으로 들어가고 논밭 사이로 들어가며 바다를 품에 안는 터로 옮기겠다 하는, 이런 젊은 사람은 백만 사람 가운데 몇쯤 될까.


  앞으로 몇 해 더 지나면 내 민방위 소집은 끝난다. 나는 군대를 좀 일찍 갔으니 올해로 끝일는지 이듬해에 끝일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민방위 소집마저 끝날 무렵, 우리 면 테두리에서 민방위 소집을 받을 젊은 사람은 얼마나 남을까. 이 시골마을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더 젊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시골마을 젊은이 숫자로는 예비군 훈련은 못하지 않을까.


  날이 폭하다며,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마늘밭에 서서 허리 구부정하게 김을 맨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늘밭에서 김매기 하는 모습을 벌써 한 달째 바라본다. 농약을 안 치고 손으로 풀을 잡는다며 모두들 땀을 흘린다. 나이 일흔 여든에 옛날 옛적 흙일을 한다. 풀약 안 친 마늘을 거두려고 힘쓰는 2012년 3월 15일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바로 오늘 3월 15일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시골 면사무소도 조용하고, 시골신문도 조용하며, 시골 논밭도 조용하다. 그런 협정 한두 가지 때문에 갑자기 온누리가 달라지겠는가. 그러나, 이제 참말 도시사람들은 ‘풀약 안 친 마늘을 제값 치르며 사는 일’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채 ‘더 값싸게 사먹는 마늘’에 손이 갈 테지. 풀약 안 치며 거두는 쌀이나 보리나 밀이 아닌, 더 값싸게 사먹는 쌀이나 보리나 밀에 손이 갈 테고, 되도록 사료는 안 주고 짚과 소죽으로 키우는 소를 잡은 고기보다는, 관세가 사라져 아주 값싸게 사먹을 만하다는 소고기에 손이 가리라.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으니, 어느 곡식 어느 짐승한테 농약·비료·항생제·사료를 어떻게 얼마나 주는가를 어느 만큼 깨닫거나 느끼겠는가. 다 똑같다 여기며 값이 더 싸다는 쪽으로 손이 갈밖에 없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앞세우고, 돈벌기 힘겹다는 말을 들이밀며, 아이들한테 고기를 먹여야 키가 큰다는 말을 외치잖는가.


  보름달이 훤하게 마을을 비추다가는, 찬찬히 초승달로 이운다. (4345.3.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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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17 19:10   좋아요 0 | URL
이글을 읽으니 참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기 없네요.서울에서 귀농한다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만 다 자식 공부 다시킨 분들이 대다수니 시골은 나이드신 분들만 계시는것 같네요.

파란놀 2012-03-18 07:07   좋아요 0 | URL
서울이나 도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서로서로 사랑할 줄을 모르는구나 싶어요.
 

 


둘째 아이 씻긴 물로
첫째 아이 씻고,

 

첫째 아이 씻은 물로
내 몸 씻은 뒤,

 

내 몸 씻은 물로
네 식구 빨래를 한다.

 

빨래하던 물로
씻는방 바닥을 닦고
걸레를 빤다.

 

이 물은 개수구를 거쳐
도랑을 지나
냇물과 섞이며
바다로 흘러가거나
땅속으로 스미겠지.

 

머잖아 아지랑이 되어
하늘로 솔솔 올라가면
지붕을 때리다가는
빨래줄에서 살짝 쉬는
빗방울 되고,

 

봄까치꽃 별꽃
조그마한 잎사귀에
하나 둘 셋
찾아들겠지.

 


4345.3.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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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신문 읽기 2 : Hello 한미FTA, 광수생각

 


  전남 고흥군 도화면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간다. 우체국 일꾼이 우표딱지를 뽑는 동안 우체국 안쪽 홍보종이 꽂힌 자리를 두리번거리다가 〈FTA 소식〉 59호를 본다. 2012년 3월 5일에 나온 이 소식지는 무척 좋은 종이로 만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한국사람한테 옳게 알리겠다는 뜻으로 적잖은 돈을 들여 만드는 소식지라 할 텐데, 올 2012년 3월 15일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펼쳐진다지. 그러니까, 3월 15일에 발맞추어 만든 뜻깊은(?) 소식지라 할 만하다.


  〈FTA 소식〉 59호를 보면, 자유무역협정을 기다리는 사람들 애타는 목소리가 실린다. 이 목소리 가운데 “우리 농업의 미래는 현재 고령화된 노동력이 자연 도태되는 향후 5년이 결정할 것이다” 같은 이야기에 눈발이 퍼뜩 선다. 교육부 아닌 교육‘인적자원’부라 하는 만큼,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일꾼을 두고도 ‘고령화된 노동력’이라 하는구나. 그런데, 이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가리켜 ‘노동력’이라 하든 말든, 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 도태’된다고 한다니, 더구나 앞으로 ‘향후 5년’이면 다들 숨을 거둘 듯 이야기를 한다니, 그래 시골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빨리빨리 죽어야 한다는 소리일까.


  같은 2012년 3월 5일에 나온 〈한국농어민신문〉 2414호를 보면, 첫 쪽에 “이마트 물류단지 때문에 산지유통센터 벼랑에 몰려 존폐 걱정”이 나돈다는 이야기가 실린다. 3쪽에는 한중자유무역협정에 농업을 때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이야기가 실린다. 더없이 마땅할 테지만, 〈한국농어민신문〉 사설은 두 가지 모두 이명박 정부 농업정책이 아주 나쁘며 슬프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있대서 오늘날만 농업정책이 아주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예전 다른 대통령일 때에도 농업정책이 좋았던 적은 하루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FTA 소식〉 59호에는 〈조선일보〉에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를 싣던 박광수 씨 만화가 맨 뒤쪽에 큼지막하게 실린다. 이 만화는 “한미FTA! 멀리 보고, 따져 보면 우리 마을, 우리 가족 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하는 말로 맺는다. 만화에 적은 몇 가지 말을 옮기면,


ㄱ. 레몬, 오렌지, 체리 등을 착한 가격으로. 피부 좋아지고, 다이어트 하고∼♪
ㄴ. 미국산 의류, 화장품, 가방 등을 저렴하게. 마음껏 멋내고∼♪
ㄷ. 외국인 투자증대로 일자리가 늘어. 취업에 성공하고∼♪


  이렇게 나온다. 아마 이 세 가지가 달라질 수 있겠지. 그런데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시골 할머니들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여느 아이들은 여느 푸름이와 젊은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레몬과 오렌지와 체리를 ‘착한’ 값으로 사서 먹는다지만,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친 레몬과 오렌지와 체리를 ‘얼마나 착한’ 값으로 사서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니, 그리 궁금하지는 않다. 한국에서 만드는 화장품도 안 쓰고, 멋내는 가방이나 옷도 안 사 입는 우리 집에서는 ‘미국 옷·가방·화장품’ 어느 하나 부럽지 않고 바란 적조차 없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 따숩게 분다. 봄바람은 시골마을 논자락마다 푸르게 잎줄기 올리는 마늘 사이로 분다.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감귤도 잘 되고 유자도 잘 되며 참다래나 블루베리도 잘 된다. 석류도 잘 되고, 아마 올리브를 심어도 잘 되리라 생각한다. 오렌지나 레몬 또한 얼마든지 심어서 거둘 수 있을 테지. 이곳 시골마을은 해마다 차츰차츰 농약이든 비료이든 항생제이든 아무것 안 쓰는 흙일로 바뀐다. 이 나라에서 심고 거두어 이 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가 될 때에는, 멀리멀리 배로 실어 나를 일이 없다. 그날그날 실어 나를 수 있다. 굳이 방부제를 뿌릴 까닭마저 없다.


  농약도 항생제도 방부제도 안 쓰고 유기농으로 지은 오렌지와 레몬과 체리가 아니어도 ‘살빼기’ 하는 데에 도움이 될는지 잘 모르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외국 곡식이랑 열매 값이 더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농약이랑 항생제랑 방부제를 더 많이 먹는 셈일 텐데, 그러면 앞으로는 외국계 병원이 생겨서 외국 화학약품을 잔뜩 먹으면 되려나.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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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16 09:59   좋아요 1 | URL
글쎄 한미 FTA가 정부 말처럼 가족 경제에 큰 힘이 되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지는..^^;;;

파란놀 2012-03-16 16:11   좋아요 1 | URL
자유무역협정으로
이제 시골사람 삶은 더 나빠지고
도시사람도 도시사람대로 더 끔찍해질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5) 세일(sale)

 

며칠 전 슈퍼마켓에 가니까 먹음직한 딸기를 벌써 세일하고 있었다. 옥사나는 깜짝 놀랐다. 이 한겨울에 우크라이나 생각이 난다며 한 박스를 샀고
《한대수-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 132쪽

 

  “며칠 전(前)”은 “며칠 앞서”로 다듬고, “-하고 있었다”는 “-한다”로 다듬습니다. “한 박스(box)”는 “한 상자”로 손질합니다. 그나저나, 가게에서 일하며 파는 사람이나 가게를 찾아가서 사는 사람이나 모두 ‘박스’라 말하는 오늘날입니다. 이제 어느 가게에서는 ‘상자’라 말하면 못 알아듣는 일꾼이 있기도 합니다. 내가 입으로 ‘상자’를 말해도, 듣는 쪽에서는 “네, 박스요?” 하고 되묻기 일쑤예요.


  국어사전에서 영어 ‘세일(sale)’을 찾아봅니다. 워낙 널리 쓰는 낱말이 되다 보니, 이제 ‘세일’을 영어로 느끼는 도시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사람마저 이 영어를 흔히 쓸 테고요. 굳이 영어사전을 안 뒤지고 국어사전만 뒤져도 나오는 ‘세일’로, 낱말뜻은 “(1) 고객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파는 일. (2) 할인하여 판매함”이라고 해요.

 

 딸기를 벌써 세일하고 있었다
→ 딸기를 벌써 싸게 판다
→ 딸기를 벌써 값싸게 판다
→ 딸기를 벌써 싼값에 내놓는다
 …

 

  국어사전 뜻풀이를 더 헤아려 ‘할인(割引)’도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 뜻풀이는 “일정한 값에서 얼마를 뺌”이라고 해요. 이리하여, 한국말로 하면 ‘에누리’이고, 한자말로 하면 ‘割引’이요, 영어로 하면 ‘sale’입니다.

 

 그는 자동차 세일에 나섰다
→ 그는 자동차를 판다
→ 그는 자동차 파는 일에 나섰다
 봄맞이 세일
→ 봄맞이 에누리
 세일을 단행하다
→ 값을 내리다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주변의 교통이 혼잡하다
→ 백화점 에누리 철에는 둘레 길이 어지럽다
→ 백화점에서 에누리하는 철에는 둘레 길이 어수선하다

 

  ‘버스’나 ‘택시’를 가리켜 영어라 생각하는 한국사람은 아마 없지 싶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어려운 영어로 느끼는 한국사람 또한 아무래도 없으리라 봅니다. ‘세일’ 같은 낱말은 이러한 낱말과 한동아리로 여길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세일’ 같은 낱말을 굳이 써야 하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버스’나 ‘라디오’를 갈음할 만한 토박이말은 없어요. 이와 달리 예부터 ‘에누리’나 ‘깎다’ 같은 낱말로 우리 넋을 나타내고 서로서로 장사를 했어요.


  즐거이 쓸 만하다면 즐거이 쓰면 됩니다. 넉넉히 쓰고 싶다면 넉넉히 쓰면 됩니다. 우리가 곁에 두며 예쁘게 쓸 만한 낱말인가 아닌가를 곰곰이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서로서로 언제나 예쁘게 주고받으면서 말꽃을 피우고 말열매를 맺을 만하다고 느끼면 알차게 일구고 곱게 보듬을 말이요 글입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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