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어린이

 


  택배를 받으면 집에 상자가 생깁니다. 상자 가운데 꽤 큰 녀석이 있으면, 작은 아이는 큰 상자에 살며시 들어갑니다. 제 몸에 꼭 맞는 좋은 쉼터입니다. 머잖아 둘째 아이도 이 상자에 함께 들어가 둘이 같이 놀겠지요. (4345.3.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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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26 07:36   좋아요 0 | URL
참 신기해요. 상자를 보면 꼭 저렇게 그 속에 들어가보고 싶어하더라고요. 제 아이도 그랬거든요.
둘째 아이는 언니가 하는 것을 보면 또 꼭 따라서 해보려고 해요. 그것도 신기해요.

파란놀 2012-03-26 07:50   좋아요 0 | URL
hnine 님도 어릴 적에 이렇게 놀지는 않으셨나요?
저도... 우리 아이들처럼 놀았어요 ^^;;;;;

순오기 2012-03-26 21:10   좋아요 0 | URL
애들은 다 상자 속에 들어가나 봐요.
<네모 상자 속의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파란놀 2012-03-27 05:57   좋아요 0 | URL
어쩌면 어른도
또 다른 모습인
상자에 들어가서
살아가지 않나 싶기도 해요~
 
캣 스트릿 4
카미오 요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내 좋은 벗님과 하루하루
 [만화책 즐겨읽기 129] 카미오 요코, 《캣 스트릿 (4)》

 


  아이들은 연예인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노래꾼이나 축구선수가 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교수나 교사나 박사나 석사나 장군이나 국회의원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예쁜 꿈을 가슴에 안고 태어납니다. 이 예쁜 꿈은 예쁘게 이루어질 수 있고, 이 예쁜 꿈은 슬프게 꺾일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 두 아이가 있고, 나와 옆지기는 어린이 나날을 보내 아이들 어버이로 살아갑니다. 나와 옆지기가 아이로 살던 나날이 아스라이 먼 옛일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일는지 모릅니다. 몸뚱이가 커진 오늘날까지 서로 똑같이 어린이로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란다고 하지만, 아이일 적에나 어른이라 할 적에나 늘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자라고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사람은 바람을 들이쉬며 목숨을 잇습니다. 밥·물·바람만 먹고마실 수 있대서 목숨을 예쁘게 건사하지 않습니다. 밥·물·바람을 아주 좋게 먹고마실 수 있다지만 쇠창살 드리운 곳에 가두어 햇볕 한 조각조차 쬐지 못하도록 할 때에도 내 목숨을 예쁘게 건사할 수 있을까요. 밥·물·바람은 걱정없이 먹고마신다지만, 스스로 꿈을 꽃피우지 못하도록 짓눌리거나 억눌린 곳에서 내 목숨을 예쁘게 건사할 수 있을까요.


- “여긴 모두 평등한 곳이잖아? 친구가 되고 싶다는 거면 몰라도, 사진∼ 사진∼ 하고 쫓겨다니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뭐야, 재수없게. 비싸게 구네. 겨우 사진 갖고. 가자.” (14쪽)
- “케이토, 어젠 미안. 어쩐지 갑자기 우울해졌어. 기쁘긴 한데, 케이토가 멀게 느껴져서.” “아냐, 아냐.” “근데 그게 아니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케이토 편이거든.” (33쪽)

 

 


  지난날 내가 먹고마신 밥·물·바람이 고맙고, 오늘 이곳에서 먹고마실 수 있는 밥·물·바람이 고맙습니다. 여기에, 내 어버이가 물려주는 사랑이 고맙고,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나눌 사랑이 고맙습니다. 아무리 무언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밥·물·바람만 넉넉하고 사랑이 넉넉하지 않다면 무척 고단합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밥·물·바람은 알뜰히 챙겨 베푼다 하더라도 사랑을 담아 이야기를 꽃피우지 않거나 사랑을 실어 따스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 삶은 하나도 즐거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하고 어떻게 살아가면 사랑스러울까를 생각합니다. 옆지기와 어떻게 지내면 사랑스러울는지 헤아립니다. 내가 좋은 보금자리를 마음껏 누리는 나날을 맞이하고 싶다면, 나는 오직 하나, 내가 나누며 함께할 사랑을 돌아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떤 마음으로 식구들과 마주하는지, 어떤 손길로 식구들을 어루만지는지, 어떤 눈길로 식구들을 바라보는지, 어떤 목소리로 식구들과 말을 섞는지 찬찬히 살필 일입니다. 옷차림이나 겉모습이나 지갑 부피나 다른 것들은 대수롭지 않아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떻게 어우러지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 “천천히 하자. 복잡한 일도 많지만 소중한 걸 잃지 않도록.” (22∼23쪽)
- ‘이곳에 있는 시간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 회전목마가 한 바퀴 도는 것만큼 짧겠지.’ (34∼35쪽)

 

 


  카미오 요코 님 만화책 《캣 스트릿》(서울문화사,2006) 넷째 권을 읽습니다. 《캣 스트릿》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크고작게 마음이 다쳤습니다. 《캣 스트릿》 아이들은 집안에 돈이 모자라거나 밥을 굶거나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어느 하나 아쉽지 않고 슬프지 않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제 어버이한테서 살뜰히 사랑받지 못했어요. 이 아이들을 둘러싼 또래동무들한테서 곱게 사랑받지 못했고요. 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어깨동무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그만 서로 아끼지 못하고 보듬지 못해요. 하루하루 즐겁게 누릴 삶이지만, 하루하루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아요. 언제나 사랑을 빛낼 나날이지만, 어느 하루도 사랑을 누리지 못해요.


  꼭 만화책 아이들한테만 얽히는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아요. 《캣 스트릿》 아이들을 비롯해, 오늘날 숱한 한국 아이들은 새벽녘 희뿌윰하게 밝으면서 차츰 노랗고 발갛게 물드는 하늘가 햇살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며 이른새벽에 깨고 이른아침에 우중충한 옷가지를 걸치며 학교로 가서 시험공부만 하도록 내몰리는데, 이 아이들이 푸르고 해맑아야 할 나날, 푸르고 해맑은 하늘이나 물이나 바람을 맞아들이지 못해요.


  아무래도,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푸르고 해맑은 하늘이나 물이나 바람하고는 가까이 안 지내기 때문이지 싶어요. 어른들부터 회사일에 바쁘고, 집안일에 휘둘려요. 어른들부터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를 아끼지 않는 삶을 보내요. 어른들부터 풀내음과 새소리와 벌레소리하고는 동떨어진 곳에서 하루를 보내요.


  푸른 빛깔 풀잎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인 만큼, 아이 스스로 외따로 푸른 빛깔 풀잎을 찾아나서며 마음을 쉬거나 달랠 꿈을 키우지 못합니다. 파란 빛깔 하늘과 바람을 껴안지 못하는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인 만큼, 아이 스스로 햇살이나 별빛이나 달빛하고 노닐며 마음을 다스리거나 북돋울 사랑을 보살피지 못합니다.


- “아무 말도 안 해서 미안해요. 이제 걱정 끼칠 만한 일은 하지 않을게요.” (72쪽)
- “우리 집 마당에도 이 나무가 있는데, 창가에서 이 꽃향기가 나면 가을이구나 싶었어. 매일매일 방에만 있어서 계절 감각이 없었거든.” (91쪽)

 

 


  아이들은 그저 나이만 비슷하다는 또래동무하고 일찍부터 사귀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아이들이 사귈 또래동무는 맑은 넋과 밝은 얼로 고운 사랑을 꿈꾸는 또래동무여야 한다고 느껴요. 우리 집 아이부터 날마다 맑은 넋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어버이인 나부터 맑은 넋으로 생각을 품어야 한다고 느껴요. 우리 집 아이부터 밝은 얼로 꿈을 꿀 수 있도록, 어버이인 나부터 밝은 얼을 가다듬어 꿈을 꾸어야 한다고 느껴요. 어버이부터 맑지 못하고 밝지 못하다면, 아이들은 슬프거나 어두운 어버이 그늘에 눌리겠지요. 어버이부터 고운 사랑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차츰 밉고 괴로운 몸짓에 몸서리를 치겠지요.


  나부터 차근차근 하루를 되새깁니다. 나부터 언제나 새롭게 배우자고 다짐합니다. 나부터 내가 자꾸 잊거나 놓치는 사랑을 날마다 찬찬히 되살리자고 생각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이 아닌 싱그러운 몸과 마음으로 거듭나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걷고, 아이들과 풀포기를 함께 쓰다듬으며, 아이들과 흙을 함께 만지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노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아이들한테 한 마디 따숩게 건네며, 아이들과 좋은 노래를 기쁜 목소리로 부르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길어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랑을 하나씩 길어올려, 내 삶부터 좋게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 “집에 가는데 화악, 하고 가슴에서 열이 났어.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 뭐가 뭔지 몰라도.” “어떤 기분이었는데?” “분했어. 너무 화가 났어.” (78∼79쪽)
- ‘하느님, 내게 주신 선물을 제발 빼앗아 가지 말아 주세요.’ (131쪽)

 


  선물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요. 선물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 있다고 느껴요. 나한테 주는 선물은 언제나 내가 주고, 내가 기뻐할 선물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서 나 스스로 기쁘게 꺼내어 펼치기를 기다린다고 느껴요.


  내가 나한테 선물을 주지 못할 때에는 내 아이들도 스스로 선물을 꺼내어 누리는 삶을 즐기지 못하겠지요. 내가 나한테 선물을 베푸는 삶을 짓지 못할 때에는 내 옆지기도 스스로 선물을 일구어 맛보는 삶을 빛내지 못하겠지요.


  사회를 일그러뜨리려는 슬픈 어른들이 있고, 사회를 망가뜨리며 제 뱃속을 채우려는 아픈 어른들이 있어요. 그러나, 이에 앞서 나 스스로 슬프거나 아프게 살아간다면 나부터 괴롭고, 내 아이들까지 고단해요. 오늘 아침 새 햇살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새로운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헤아립니다. 오늘 하루는 또다시 나한테 찾아온 참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4345.3.26.달.ㅎㄲㅅㄱ)


― 캣 스트릿 4 (카미오 요코 글·그림,배미선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6.8.30./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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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너머

 


  무지개 너머에는 어떤 누리가 있을까요. 무지개 너머에는 싸움과 다툼과 미움도 없는 누리가 있을까요. 무지개 너머에는 슬픔도 아픔도 고단함도 괴로움도 없는 누리가 있을까요.


  나는 무지개 너머가 어떤 누리인지 모릅니다.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살아가거든요. 나는 무지개 너머를 꿈꾸지 않습니다.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꿈을 꾸거든요.


  무지개 너머에서만 싸움과 다툼과 미움이 없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도 싸움과 다툼과 미움이 없어, 내가 바라보는 저 무지개 너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 곧 ‘저쪽 사람들한테는 무지개 너머’가 될 이곳이 사랑과 꿈과 믿음과 따스함과 너그러움과 포근함이 감돌 수 있으면 아주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래를 듣습니다. 무지개 너머 어떤 삶을 읊는 노래 하나를 듣습니다. 열여섯 살 한국 푸름이가 노래꾼이 되기를 바라며 어떤 무대에 서서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 부르는 매무새로 본다면 빈틈이 없구나 싶지만, 내 마음에 무언가 뭉클하고 움직이는 느낌이 샘솟지 못합니다. 한국 푸름이가 부른 이 노래를 ‘처음 부른 나라 노래꾼’은 어떻게 불렀을까 궁금하기에 요모조모 찾아서 세 가지 노래를 듣습니다. 먼저, 무척 오래된 영화에 나오는 노래 두 가지를 듣습니다. 두 가지 노래 모두 아주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산들바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유럽을 휩쓴 무시무시한 전쟁이 끝나고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을 웃음으로 얼싸안는 기쁨과 눈물이 고이 깃듭니다.


  아마 미국이구나 싶은 어떤 노래무대에 선 어린이가 부르는 무지개 너머 노래도 한 가락 듣습니다. 한국에서 요즈음 널리 퍼진 ‘노래꾼 뽑기’와 같은 자리로구나 싶은데, 서양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에는 ‘마음 한 자락’이 살포시 깃듭니다. 노래하는 마음이 묻어나고, 노래를 함께 들을 사람들이 나눌 마음이 묻어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들려주고픈 사랑 어린 마음이 묻어납니다.

 

 ......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꿈을 찬찬히 글로 적고 싶습니다. 사랑 스민 이야기를 펼치며 누리는 하루를 찬찬히 사진으로 찍고 싶습니다. 즐거이 얼크러진 하루 이야기를 보드라이 가락에 담아 내 살가운 사람들하고 기쁘게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무대에서 1등을 하려고 부르는 노래일 수 없어요. 글잔치에서 1등을 받으려고 쓰는 글일 수 없어요. 사진공모에서 1등을 얻으려고 찍는 사진일 수 없어요. 사랑하며 쓰는 글이고, 사랑을 꿈꾸며 부르는 노래이며, 사랑을 나누려고 찍는 사진이에요. (4345.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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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3-26 13:10   좋아요 0 | URL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꿈을 꾸거든요....

너무 예쁜 글귀예요. 어떤 누리가 있는지 모른다, 어떤 세상이란 말에 비해서
빛나는 어떤 것처럼 느껴지네요.... 저 너머만 바라보며 동동 구르는 제 모습을 슬쩍 봅니다. 된장님, 즐거운 한주되셔요. 건강하시구요.

파란놀 2012-03-27 06:00   좋아요 0 | URL
나중에 인터넷에서 'over the rain' 노래를 찾아서 들어 보셔요.
미국 아주 어린 아이가 부른 노래가 있는데
k팝스타 박지민 같은 푸름이가 부른 노래하고 견줄 수 없이
아주 잘 불렀어요.

k팝스타이든 다른 경연 무대이든,
한국에서 가수 되려는 이들은
노래에 어떤 마음을 실어야 하는가를
영 모르더군요...
 

 


장작으로 삼을 나무를
멧골로 들어가서
도끼로 패어
지게에 짊어지고,

 

솥에 쌀이랑 안칠 물을
냇가로 가서
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조물딱조물딱 무칠 나물을
들판과 논둑에서
한 손 두 손 캐고 뜯어
소쿠리에 담고,

 

아삭아삭 씹을 무랑 배추를
밭뙈기에서
어여쁜 씨앗으로 심어
즐겁게 거두고,

 

어르신들
아이들
모두 불러
한 자리에 마주앉아,

 

한솥밥
한식구
한사랑
한삶.

 


4345.3.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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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으로 적든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글쓴이'와 '말하는이' 마음에 따라 달라요. 어느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느냐에 따라, 아주 쉬운 말글을 쓰더라도 '문자자랑질'이 돼요. 이를테면 '톺아보다'라는 낱말도 문자자랑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낱말을 처음 듣던 예전에는 문자자랑질이라고 느껴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낱말을 지식인 아닌 여느 흙일꾼 할아버지가 입으로 읊는 말을 한 번 들은 다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꼭 흙일꾼 할아버지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자리 어느 흐름에 맞추어 글을 쓰느냐에 따라 느낌과 결은 사뭇 달라져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때에는 '삶글'이라는 낱말을 아직 사람들 앞에서 쓰기 힘들어요. 이때에는 그냥 수필과 산문이라고 처음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사이사이 '삶글'이라는 낱말을 곁들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시나브로 '수필 = 산문 = 삶글'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요사이에는 '에세이'를 넘어 '르포'라는 말까지 들어와요. 수필이든 산문이든 자유롭게 쓰는 글이지만, 자꾸 영어를 끼워맞추면서 글 테두리를 넓힌다고 해요.

 

 이런 흐름에서는 한국말로 또 새로운 말을 빚을 수 있어야겠지요. 제가 이 책(뿌리깊은 글쓰기)에서 '글쓴이가 밝힌 풀이글이나 이야기'가 '대안'이나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까닭은, 이 책을 교과서로 삼지 말고, 스스로 말밭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삶이 달라, 스스로 좋아하며 받아들이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다 다른 결을 스스로 살피면서 날마다 내 넋을 북돋우면 스스로 어느 자리에 어떤 말을 넣을 때에 서로 즐거운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이 낱말은 써야 하고 저 낱말은 안 써야 한다는 틀이란 없습니다. 이런 틀이 있다면 굴레가 될 뿐이에요.

 

 님이 쓰신 이 글에서 한 가지를 짚어 보면, "-하고 계시다"라고 적은 대목이 있는데, "-하고 있다" 아닌 '계시다'를 넣는다고 높임말이 되지 않아요. 틀린 말법이랍니다. 더구나, "-하고 있다" 또한 영어 '-ing', 이른바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중(中)'으로 번역하면서, 이 말투가 한국말에 "-하고 있다"로 탈바꿈했어요. 그러니까, '계시다'를 '있다'로 고쳐야 알맞지만, 더 밑을 살피면 '있다'를 넣은 "-하고 있다"부터 잘못 쓴 말이에요. "적혀 있지요"부터 틀리게 쓴 글입니다. "적혔지요"라고만 적어야 올발라요.

 

 그러나, 올바르게 쓰든 잘못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내거나 나누려 하느냐'가 대수롭습니다. 대수로운 대목을 살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말을 새로 익히며 글로 사랑꽃을 피우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동의하든 동의 안 하든'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아요. 옳은 대목이 없고 그른 대목이 없어요. 동의하느냐 동의 안 하느냐로, 책을 따져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요. 스스로 아름답게 돌볼 내 말삶을 깨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으니, 이 대목을 짚지 못하면, 이 책을 읽었어도 안 읽은 셈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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