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즐거워

 


  집안일은 즐거워. 아침 일찍부터 똥 뽀지작 하며 바지랑 기저귀랑 기저귀싸개랑 한꺼번에 푸진 똥내음 가득 풍기는 둘째 아이 옷가지 빨래하는 집안일은 즐거워. 붕붕 방방 뛰고 놀고 닫고 노래하는 첫째 아이 먹일 밥을 하는 집안일은 즐거워.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 안팎을 쓸고닦는 집안일은 즐거워. 그러나 나는 아직 집안일 건사를 잘 하지는 못해. 참 더디게, 참 천천히, 참 느릿느릿 하나씩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


  손에서 물이 마를 새 없어. 손에서 일을 놓는 겨를 없어. 눈에서 아이들 모습이 사라지는 적 없어. 눈에서 일거리 놓치는 틈 없어. 숨을 돌리지 못하다 싶도록 복닥이느라 한 달이 어찌 지나고 한 철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깜빡 잊기도 하니, 어느새 감자 심는 때이고, 어느새 감꽃 필락 말락 하는 때로구나.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른들도 튼튼하게 큰다. 바람은 맑고 햇볕은 따스하며 냇물은 고즈넉하네. 들새와 제비가 마음을 달래 주고, 개구리와 풀벌레가 생각을 어루만져 준다.


  식구들 다 함께 들마실을 나온다. 식구들 나란히 멧마실을 다닌다. 식구들 어깨동무하며 밤하늘 누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4345.5.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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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6 11:11   좋아요 0 | URL
늘 집안 일 하기 싫어 툴툴거리는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들마실 하기 정말 좋은 날씨입니다

파란놀 2012-05-07 06:01   좋아요 0 | URL
그저 즐겁게 마주하셔요~
 


 나무 책읽기

 


  시골에서 열 해쯤 살아야 시골사람이 된다고들 말합니다. 사진을 한다 할 때에 열 해쯤 해야 비로소 눈이 트인다고들 말합니다. 인천에서 살 적에 인천물을 열 해쯤 먹어야 바야흐로 인천사람이라 할 만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 열 해가 지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당신 시골사람이요, 당신 사진하는 사람이요, 당신 인천사람이요, 하고 받아들이는 듯하지는 않습니다. 울타리 하나를 세워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이 울타리를 넘으면 다른 울타리를 세워 다시 몰아붙이며, 이 울타리를 또 넘으면 새삼스러운 울타리를 거듭 마련해 자꾸 닦달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하루를 살아도 시골사람입니다. 사진기를 갓 장만했어도 사진으로 바라보는 눈을 새로 틉니다. 인천에서 한나절을 보냈어도 인천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스무 해를 살아야 시골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마흔 해를 뿌리내려야 토박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순 해 한길을 걸어야 사진빛을 뽐내지 않습니다. 시골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시골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할 사람은 꼭 한 번 사진기를 손에 쥐어도 좋은 빛과 사랑스러운 그림을 빚습니다.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릴 삶을 헤아린다면, 어디이든 이녁한테 고향이 되고 보금자리가 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며 늘 나무를 바라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나무입니다. 도시로 마실을 나오며 나무만 바라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높고낮은 건물과 아스팔트와 자동차로 득시글거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나무만 한껏 들어옵니다. 나무가 숨쉬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노래하거나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웃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잠을 자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꿈을 꾸는 소리를 듣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무는 참으로 가녀립니다. 늘 아프고 늘 콜록거립니다. 도시에서 뿌리내린 나무는 참으로 앙상합니다. 잎이 시들시들하고 힘알이가 없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모두 나무입니다. 모두들 봄맞이 푸른 잎사귀 달려고 힘쓰는 나무입니다.


  도시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처럼 힘알이가 없으며, 갖은 때와 먼지를 잔뜩 머금었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뿌리내려야 하는 나무처럼 가냘프고 아프며 힘들구나 싶습니다.


  모두들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저마다 아름다이 뿌리내리며 어깨동무하기를 바랍니다.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하면서 고운 나날을 빛내는 꿈을 꿉니다. 내 시골집 나무를 그립니다. 내가 나들이를 온 도시에서 가만가만 바라보는 나무를 떠올립니다. 이 나무들과 함께 내가 살아가고, 내 목숨과 함께 나무들이 숨을 쉽니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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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5 10:05   좋아요 0 | URL
어릴때부터 보아온 커다란 나무 혹은 추억이 깃든 나무는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에 안식이 될 것같아요. 존재감만으로도 힘이되는 게 나무네요. 전 딱이 생각나는게 없지만 집에 있었던 작은 포도나무 하나가 생각나네요

파란놀 2012-05-05 11:28   좋아요 0 | URL
좋은 나무 한 그루가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이어가리라 믿어요~

순오기 2012-05-05 12:3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러 주욱 훑어봤습니다~~~~ 요즘 서재 마실도 못했거든요.
네식구가 파주로 마실 하셨네요~~ ^^

파란놀 2012-05-06 07:41   좋아요 0 | URL
네, 처가 식구 있는 일산 거쳐
오늘 시골집 고흥으로 돌아간답니다 !!!
@.@
 

[함께 살아가는 말 91] 나중에 내요

 


  파주책도시로 마실을 나옵니다. 파주 책도시에서 사진잔치를 열기에 전남 고흥에서 퍽 먼 마실을 나옵니다. 바깥으로 나온 만큼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고, 잠을 잘 자리를 따로 얻습니다. 이틀을 묵은 파주에서 나오며 1층 손님맞이방에 열쇠를 돌려주는데 “‘바우처’로 하시면 되지요?” 하고 묻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되묻습니다. 문득, ‘바우처라 하는 말이 나중에 다른 분이 삯을 치르도록 하는 일을 가리키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 님이 나중에 돈을 치러 주신다는 말이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식구 함께 짐을 꾸려 나오며 다시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인데 한국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쓰지 않는 일이 너무 흔한 이 삶이 얼마나 좋거나 얼마나 아름답거나 얼마나 즐거웁다 할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한국에 호텔이라는 곳이 옛날부터 있은 적이 없으니 ‘호텔’이라는 이름부터 영어에서 가져다 쓴다 하지만, 이런 낱말 저런 낱말 몽땅 영어로 적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를 한국에서 처음 만들지 않았으니 자동차를 이룬 곳곳을 가리키는 이름도 한국말로 따로 없을밖에 없으나, 굳이 ‘백미러’라 할 까닭 없이 ‘뒷거울’이라 하면 됩니다. 내 이웃을 생각하고 내 삶을 사랑할 줄 안다면, 잠을 자는 호텔 이름부터 이곳에서 쓰는 숱한 말마디를 한결 예쁘며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겠지요. 아이들한테 물어 보셔요. 아이들하고 좋은 말을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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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빨래

 


  식구들 함께 움직이는 나들이를 할 때에는 언제나 빨래비누 한 장 챙긴다. 어디에 묵든 어디로 움직이든 늘 빨래를 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하루치 옷가지를 몽땅 빨래하기도 하지만, 갓난쟁이가 내놓는 기저귀를 틈틈이 빨래한다. 비누를 꺼낼 겨를이 되면 비누로 빨고, 비누를 꺼낼 겨를이 안 되면 물로만 헹구어 빨래한다. 빨래한 옷가지는 비닐봉지에 담기도 하고, 가방에 걸치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눈치껏 옷걸이에 꿰에 손잡이에 걸기도 한다.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길에는 짐받이 아래쪽에 빨래를 잔뜩 널기도 했다.


  둘째 아이가 아침마다 똥을 푸지게 눈다. 아주 고맙다. 집에서는 하루에 너덧 차례 똥을 누더니, 마실길에는 하루에 한 차례 아침에 몽땅 내놓는다. 아이도 집이 아니라 길에서 움직이는 줄 알기 때문일까. 아이 몸이 느끼고 아이 마음이 생각하면서 이렇게 될 테지.


  새벽바람으로 둘째 아이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빨래하는 김에 내 머리도 감는다. 시골집에서는 여러 날에 한 번 감지만, 도시에서는 먼지를 많이 먹는 만큼 날마다 감아야 한다고 느낀다. 아이들도 옷을 자주 갈아입히며 틈틈이 빨래한다. 시골집은 한결 따스한 날씨이지만 후덥지근하지는 않다. 시골집에서는 아이들한테 긴소매옷을 입혔는데, 도시로 오니 푹푹 찌는 날씨인 터라 몽땅 반소매옷으로 입힌다. 아침에 입힌 옷은 낮에 갈아입혀 빨고, 낮에 입던 옷은 저녁에 다시 갈아입히며 빤다. 푹푹 찌는 날씨인 만큼 빨래는 참 금세 마른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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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 만한 책이 있을까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으레 ‘읽을 만한 책’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 말마디 ‘읽을 만한 책’을 들을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다. 온누리에는 ‘읽을 만한’ 책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찍을 만한’ 사진이나 ‘그릴 만한’ 그림이나 ‘부를 만한’ 노래도 없다고 느낀다. 나로서는 ‘읽을’ 책과 ‘찍을’ 사진과 ‘그릴’ 그림과 ‘부를’ 노래가 있다. ‘먹을 만한’ 밥을 먹으면 혀와 목구멍과 배 모두 아프거나 쓰리다. ‘먹을’ 밥을 먹으면 혀도 목구멍도 배도 모두 즐겁다. ‘살 만한’ 집이라면 이럭저럭 두 다리 뻗고 잘 만하다 여길 테지만, 나로서는 ‘살’ 집에서 살아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즐거우면서 환하게 웃음꽃 피운다고 느낀다.


  내 하루는 아름답다. 내 옆지기 하루는 아름답다. 내 아이들 하루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하루는 ‘지낼 만한’ 하루가 아니라 ‘즐거이 지내며 누리는’ 하루이다. 곧, 우리들은 ‘할 만한’ 일이나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할’ 일과 놀이를 하며 즐기고 누린다.


  더도 덜도 아니라 생각한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또 내 좋은 동무와 이웃한테도 ‘읽을 만한 책’이란 썩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조금도 사랑이 될 수 없으리라 느낀다. 서로서로 ‘읽을 책’을 기쁘게 손에 쥐고는 ‘누릴 삶’을 예쁘게 건사할 때에 빛나는 하루가 되리라 느낀다.


  그러나 ‘읽어야 하는 책’은 반갑지 않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할 일’을 한다.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니라 ‘먹을 밥’을 먹는다. 읽을 책을 읽을 뿐이다. 사랑해야만 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날이 아니라, 사랑할 사람을 즐거이 사랑하는 나날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장만하며 책을 읽고 책을 즐기는 내 삶을 톺아본다. 나는 ‘이럭저럭 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읽으며 즐겁던 적이 한 차례조차 없다. 나는 ‘참말 읽을 책’을 읽을 때라야 비로소 즐겁다고 느낀다.


  읽은 책에 별점을 붙이는 일은 부질없겠지만, 별 다섯 만점에 별 다섯을 붙일 만한 책이어야 나한테 ‘읽을 책’이 되겠지. 누군가는 ‘아니 왜 별 다섯짜리 책만 읽나요? 별 하나짜리 책도 읽을 수 있지 않아요?’ 하고 물을는지 모르는데, 나는 ‘내 하루를 늘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삶’으로 누리고 싶다. 나는 내 주머니를 털어 장만하려는 책이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책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가슴으로 스며들 이야기 깃든 책이라 한다면 노상 별 다섯짜리 예쁘고 해맑은 책이기를 꿈꾼다.


  읽을 책을 읽는다. 읽을 책을 누린다. 읽을 책을 사랑한다. 읽을 책을 말한다. 읽을 책을 나눈다. 읽을 책을 읽어 느낌글 하나 갈무리한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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