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일으켜 걸리는 어린이

 


  마당에서 둘이 놀다 보면, 누나가 동생을 일으켜서 걸리기도 한다. 동생은 누나가 일으키려 할 때에 다리에 힘이 남았으면 일어나고, 다리에 힘이 없으면 손사래를 치며 기겠다고 한다. 동생이 얼른 걷고 뛰고 날며 함께 놀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릴까.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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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섰어요

 


  둘째 아이가 곧잘 서지만, 스스로 걸을 생각을 웬만해서는 안 한다. 걸어 주면 오죽 좋으랴 싶지만, 둘째 아이는 둘째 아이 결과 무늬에 맞게 천천히 다리힘을 기르며 천천히 걸을 테지. 왜 이렇게 걸으려 하지 않을까 싶어 다리를 만지고 살피고 보면, 아직 다리에 힘살이 덜 붙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서 즐겁게 놀렴. 하루하루 누리다 보면 어느 날 기쁘게 달리기를 하며 네 누나하고 예쁘게 뛰어놀 수 있겠지.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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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03 11:00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야 천천히 서고 천천히 걷고 싶은게구나
천천히 하면서 남들이 못보던 것들을 보고 남들이 못한 생각을 하고
그래도 서서 똑바로 세상을 보렴
아름다운 게 더 잘 보일테니

파란놀 2012-06-03 11:08   좋아요 0 | URL
곧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널리 보여주리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죽에서 밥으로 넘어가는 징검돌이
참 고단하네요 @.@
 

굳이 밝힐 까닭이 없다 할 테지만,

내 알라딘서재 이웃은

거의 '아줌마'이다.

아줌마 아닌 아저씨가 쓴 글은

참 따분하며 읽을 맛이 안 난다고 느낀다.

 

요 한동안 알라딘서재에서 이루어진 논쟁에

한 마디를 붙인다.

 

아줌마(또는 아줌마 나이인 여자)를 괴롭히거나

엉뚱한 샛길로 빠지는 모든 아저씨들 읽으라는 뜻에서,

또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대로 아줌마 삶을 사랑하는

예쁜 글을 아껴 주십사 하는 뜻으로,

이 글을 바친다.

 

......

 


 아줌마 글, 아저씨 글

 


  금을 긋자는 얘기가 아니라, 나는 아줌마가 쓴 글이 아저씨가 쓴 글보다 한결 재미나고 반가우며 좋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모든 아줌마가 다 그러하지는 않을 테지만, 이 나라이든 옆이나 다른 나라이든, 지구별 아줌마들은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일을 거의 도맡거나 아주 도맡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나라이든 이웃한 나라이든, 지구별 아저씨들은 집안에서 나눌 숱한 일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글은 삶이다. 말도 삶이고 책도 삶이다. 저마다 제 삶에 걸맞게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책을 읽는다. 살아가는 결이 글을 쓰는 결이다. 살림을 꾸리는 무늬가 글을 쓰는 무늬이다. 집안일을 하거나 바깥일을 하는 빛깔이 고스란히 글을 쓰는 빛깔이다.


  집에서 살아가며 맡아야 할 일을 맡는 아줌마가 쓰는 글이란 ‘살림글’이기 일쑤이다.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으레 맡는 아저씨가 쓰는 글이란 ‘지식글’이기 일쑤이다.


  지식글은 언뜻 보기에 대단하거나 놀라울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식글은 목숨이 짧다. 지식글은 한때 조회수가 높을는지 모르나, 이런 조회수는 반짝 하고 그친다. 살림글은 언뜻 보기에 하찮거나 흔해빠졌다 여길는지 모른다. 그러나, 살림글은 목숨이 한결같으며 오래오래 고이 이어진다. 살림글은 조회수가 높든 낮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나라 어느 사람이 읽더라도 가슴을 적시고 마음을 움직인다. 조회수나 이런저런 껍데기나 겉치레하고 동떨어진다.


  아줌마들이 떠든다는 수다는 시끄럽다고들 깎아내리지만, 아줌마들 수다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다만, 모든 아줌마 모든 수다가 귀를 기울일 만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내몰면서 학원이나 시험공부 따위 이야기로 날을 지새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하고 슬프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들 돌보는 삶을 이야기한다면, 이 이야기는 언제 누구한테서 들어도 솔깃하며 재미나다. 서로서로 웃고 떠들 만하다. 아저씨들 수다라 하더라도 이렇게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놓고 수다를 떤다면 되게 재미나다.


  이와 달리, 오늘날 여느 아저씨들이 떠든다는 수다는 조용하거나 차분하다 하더라도 졸립다. 군대에서 공 차는 이야기이든, 정치 이야기이든, 회사나 공무원 이야기이든, 하나같이 골이 아프고 따분하다고 느낀다. 지식이나 정보로 흘러넘치는 이야기라 하면, 언제나 더 새로운 지식이나 더 돋보인다 싶은 정보로 빠지기 마련이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못 하고, 오늘 한 이야기는 글피에 할 수 없는 틀이 바로 아저씨들 이야기이자 글이라고 느낀다.


  아줌마들 이야기는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같은 이야기감’이라 하더라도 늘 새롭다고 느낀다. 아줌마들 글은 어제나 오늘이나 글피나 ‘같은 이야기거리’라 하더라도 언제나 새삼스러우면서 싱그럽구나 싶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아이들 밥상을 차리며, 아이들 씻기고 입히며 재우는 아줌마들은 아이들과 하루 스물네 시간을 꼬박 붙어서 살아낸다. 집안에서 하루 내내 이것저것 돌보고 추스르며 살아낸다. 곧, 아줌마들 이야기나 글이란, 아줌마들 스스로 느끼든 못 느끼든,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과 빛을 새록새록 차근차근 담기 마련이다.


  아저씨는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 못할 뿐더러, 아기나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는 일조차 드물 뿐 아니라, 빨래를 해서 옷을 입히거나 날마다 틈틈이 씻기고 놀아 주고 하는 일이 드물다.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글’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나눌 때에 비로소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아줌마들은 아줌마들 삶을 빛낼 책을 홀가분하게 즐기며 읽으면 된다. 괜히 ‘아저씨들이나 기웃거릴 지식조각 책’을 어깨너머로 넘겨볼 까닭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과 그림책과 만화책을 함께 읽으면 즐겁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동화책과 그림책과 만화책을 읽으라 하고,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대로 잡지책을 읽든 뜨개책을 읽든 문학책을 읽으면 즐겁다.


  아저씨들은 동화책도 그림책도 읽지 않으니 따분하다. 아저씨들이 어쩌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더라도 ‘지식 어린 눈길과 손길’로 마주하니까 더더욱 따분하다. 게다가 아저씨들이 좋아한다는 만화책은 얼마나 지저분하고 자질구레한가.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듯, 오직 사랑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오로지 사랑이 아이들을 먹여살릴 수 있듯, 오직 사랑이 책을 감싸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저씨들은 참 모른다. 오늘날은 아줌마들도 제법 모른다 싶은데, 지식이나 정보를 글에 담거나 이야기에 실으려 하면 참말 지겹고 어수선할 뿐이다. 아이들한테 지식이나 정보를 주워섬긴대서 아이들이 따르겠나. 아이들한테 고운 사랑과 맑은 꿈을 들려줄 때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줌마들은 아줌마들 가슴속 사랑과 꿈을 기쁘게 꽃피우면 된다. 아저씨들은 가슴속에 사랑과 꿈이 없는 만큼, 스스로 사랑과 꿈을 북돋우거나 가꾸거나 일구도록 땀을 흘려야 한다. 아저씨가 아줌마보다 ‘힘살이 단단히 붙는 까닭’은 마음으로는 깨우치지 못하니까 몸으로 깨우치라는 뜻이다. 아저씨들은 돈벌이 바깥일에 덜 힘을 쓰고, 사랑살이 집일에 더 힘을 쓰면서 글을 쓰고 얘기를 나누며 책을 읽어야 아름답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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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02 09:11   좋아요 0 | URL
어제 집에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정류장 뒤에 이 꽃을 보았어요. 무슨 꽃이지? 명자나무인가? 비슷한 것 같은데 좀 다른 것 같기도 해서 앙증맞은 꽃을 버스 올때까지 들여다보았답니다.
작은 꽃등이 켜진 것 같지요? ^^

파란놀 2012-06-02 10:17   좋아요 0 | URL
오, 이 꽃을 보셨어요?
이 꽃은 '석류꽃'이랍니다!

그런데 이 꽃하고 비슷하지만,
자그마한 꽃송이인 '명자나무'가 있어요.
제가 앞에서 찍어서 그렇지,
'석류꽃'은 앞으로 길쭉하게 나온답니다.

기다리는여자 2012-06-02 15:3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미미한 블로거입니다. 별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열심히 남기지도 않고요. 제 서재는 그냥 놀죠. 에브리데이 놀토랄까요? ㅎㅎ 그저 서평이나 가끔가다 싸질러 놓을 뿐입니다. 알라딘 서재 페이퍼는 가끔 눈팅만 하는데요, 최근 일어난 알라딘 논쟁도 어떤 의견을 개진한 적은 없지만 어떤 의견이 오고갔는지, 어떻게 일이 진행됐는지 정도만은 파악하고 있었답니다. 오늘 알라딘 서재에 된장님의 페이퍼가 상위에 올라와 있어서(또 알라딘 논쟁에 대한 제목이 달려 있어서) 읽었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초면에 댓글을 남겨요. 아, 저는 아저씨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랍니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고, 알라딘 논쟁에 관여된 사람도 아니지만 쭉 바깥에 서 있었던 사람의 입장으로 글을 남겨요.

우선 글을 읽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은 것을 사과합니다. 불쾌하게 들리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왜 이상하게 느꼈는지 말씀드리면 조금이나마 제 감상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 글을 어떻게 읽었느냐하면요,

아저씨=이성적=지식추구적 성향 = 잘난 척
아줌마=감성적=감정적인 성향 = 진솔하고 사랑이 넘침
지식과 정보를 담는 글 = 지루함
일상이 묻어나는 감성적인 글 = 가치 있는 글

이렇게 대강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 아줌마만이 감정에 호소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아저씨만이 지식으로 허세부리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므로 조금 의아했던 겁니다. 또한 지식 글은 허세고 살림 글은 진솔하므로 더욱 가치 있다는 논조도 좀 그래요. 아줌마와 아저씨의 독서취향을 딱 잘라 나눠놓고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경제서적이나 인문서적을 즐겨 읽는 아줌마들도 많고, 소설을 좋아하는 아저씨들도 어마무지하게 많잖아요. 결정적으로 아줌마들은 안 그런데 아저씨라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사랑과 꿈이 없다고 단정하시는 발언은 아저씨들에게 상처가 될 수 도 있겠네요.

왜 알라딘 논쟁이 이렇게 또다시 아줌마 아저씨 논쟁으로 번져가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논쟁이 오갔던 글들만 본다면 어떤것이 남자의 글이고, 어떤 것이 여자의 글인지 알기 어려웠거든요. 그게 아저씨인지, 아줌마인지 짐작도 안됬기에 이제사 남자와 여자, 아줌마를 괴롭히는 아저씨 같은 이야기가 나오니까 어리둥절해졌던 겁니다.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신참의 눈에는 그저 어떤 분이 알라딘 당선작에 대해서 나름의 논리로 문제제기를 하셨고 그에 대해 수많은 알라디너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갔고(때로는 조금 과격해 지기도 했고;;)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사이에 논의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확장되기는 했지만, 또 어떤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저 살벌한 분위기가 가라않은 상황 아닌가요? 어째서 아줌마와 아저씨 이야기로 튀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순수한 의문이에요) 논쟁에 참여하지 않은 눈팅족들은 모르는 흑막의 이야기가 있는 거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만약에 특정한 몇몇 사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그것을 싸잡아서 ‘아저씨들이란...ㅉㅉ’ 하신 거라면 그건 좀 보기 그렇습니다. 엄한 아저씨 알라디너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이 밑으로 냉랭한 댓글을 달고, 또 그 밑으로 누군가 반박 글을 달고, 달고, 달고, 달고, 달고 해서 또다시 논쟁이 일어난다면 조금 씁쓸할 것 같아요. 알라딘 서재가 이렇게 살벌한 곳이었다니..ㅜㅠ 아니지 않나요? 아닌가?;;;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 거라면 차라리 그 분에게 직접 의견을 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하셨던 바를 진솔하게 적으신 거라면 또 다른 엉뚱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글이니 내용을 조금 순화하신 다거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괜한 참견을 더하고 갑니다.

길어졌네요. 댓글민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습니다.ㅜㅠ

파란놀 2012-06-02 20:45   좋아요 0 | URL
무슨 뜻으로 쓴 글인가를 '알아듣지' 못했으면
알아듣지 못하면 그만입니다.
그뿐이에요.

못 알아듣는다고 잘못일 까닭이 없고,
못 알아듣는다고 '못 살지'도 않아요.

즐겁게 알아들을 수 있으면 즐겁게 살고,
못 알아듣는다면, 그저 그런 대로 님 삶을 누리면 됩니다.

..

덧붙이면,
님처럼 어떤 도식으로 따지려고 이런 글을 쓰지 않았어요.
글이름 그대로 '아줌마 삶'과 '아저씨 삶'이 다르다는 뜻일 뿐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아줌마'였고, 나 또한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줌마' 같은 어버이입니다.

다락방 2012-06-02 17:20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집오리님과 같은 의미로 이 글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쁜 단어들만으로 이루어진 무서운 글로 읽혀요.

파란놀 2012-06-02 20:36   좋아요 0 | URL
스스로 무섭다고 생각하면
그저 무서울 뿐입니다.

나는 시골 어두운 밤길이 하나도 안 무서워요.
밤이니 마땅히 어두울 뿐이고,
어두우니 별이 잘 보여 좋아요.

그러나, 밤이 무섭다고 여기면 그저 무서울 뿐이에요.

(더구나, '예쁜' 낱말은 뭘까요?)

하이드 2012-06-02 19:36   좋아요 0 | URL
워낙 우리말 지킴이시라,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아줌마'도 '아저씨', 특히 '아줌마'라는 말은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에, 단어 사용부터 불편하게 읽히구요,

그걸, 속으로 '여자'와 '남자'로 바꾸어 읽어도, 이런 일반화는 좀 무섭네요.

파란놀 2012-06-02 20:38   좋아요 0 | URL
나는 '우리 말 지킴이'가 아닙니다.
뭘 잘못 알고 함부로 말하시는군요?

왜 '아줌마'를 나쁘게 여길까요?
100 사람 가운데 90 사람이 나쁘게 여긴다 한들,
10 사람이 좋게 여기면,
또 이 10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하나도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편견을 품고 살아간다면
하이드 님 스스로
모든 삶 구석구석에 편견이 드러날 뿐입니다.

글은 글 그대로 헤아리면 좋을 뿐입니다.

..

한 마디 덧붙이면,
하이드 님은 바로
'나쁜 의미로 쓰이는 아줌마'가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워서
오늘처럼 살아가고 글을 씁니다.

그럼. 이만.

Fenomeno 2012-06-03 00:08   좋아요 0 | URL
왜 '지식글(아저씨 수다, 만화책)'을 나쁘게 여길까요?
100 사람 가운데 90 사람이 나쁘게 여긴다 한들,
10 사람이 좋게 여기면,
또 이 10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하나도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편견을 품고 살아간다면
된장 님 스스로
모든 삶 구석구석에 편견이 드러날 뿐입니다.

글은 글 그대로 헤아리면 좋을 뿐입니다.

..

인사도 미처 못 드리고 왕래도 없던 분께 이런 복사글을 남기는 게 약간 겸연쩍지만, 본문보다도 된장님의 답글을 보니 자판에 손을 얹고 싶은 욕구를 참을 길이 없네요. 아무쪼록 넘치는 '사랑'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마디 덧붙이면,
된장 님은 바로
'나쁜 의미로 쓰이는 지식과 정보'가
토대가 되고 자양분이 되고 열매가 되어
오늘처럼 살아가고 글을 씁니다(물론, 어쩔 수 없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읽을 맛 안 나는 아저씨 글일지라도요).

그럼. 이만.

poe 2012-06-03 02:43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이 좀 돌려 말씀하셨는데 핵심을 못읽으신 듯하네요.
된장님은 전혀 느끼지 못하겠지만 된장님 발언은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 발언입니다. 저는 아줌마가 아니지만, 아줌마였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아요. 아저씨라면 그냥 '이 뭥미' 하고 말았을테지만요.

또 된장님은 이게 왜 성차별이냐, 라고 하시겠죠. 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못알아듣고 있는 게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oe 2012-06-03 02:29   좋아요 0 | URL
이 글도 폭력적이지만 된장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단 댓글들은 그야말로 폭력 그 자체입니다. 이번 사태 보면서 어지간한 것들은 꾹꾹 눌러 참았는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처음으로 한마디 남깁니다.

된장님에 대한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표현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된장님은 편견과 독선과 아집 그 자체입니다. 다락방님 말씀처럼 된장님은 그걸 고운 언어로 포장하고 있죠.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더 환장하겠어요. 열린 자세를 표방하며 '참말로 슬기로운' 것을 지향하시면서, 다른 사람들 말은 도통 들으려 하시지를 않아요. 된장님에게 슬기는 무엇인가요? 자신이 틀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1%도 고려하지 않고, 타인에게 "니가 내 말을 못알아들어 그렇지, 허허..." 하는 것이 슬기인가요? 다른 사람들에 된장님에게 하나같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런 니들이 문제'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한두번쯤은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가 되는 점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아무리 말씀드려도 타인의 문제로 치환하시니, 정말 소 귀에 경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말도 못알아들으시고 또 제가 폭력적이고, 제가 문제라고 하실텐데.... 저는 왜 이렇게 열을 내며 열심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 ㅠㅠ

네. 이 지겹고 어수선한 서재에서 곱고 아름다운 것 좋아하시는 분들과 곱게 곱게 참말로 건강한 삶을 슬기롭게 잘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헛수고를 한 기분이네요.

파란놀 2012-06-03 05:41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나날'을 함께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님들께서 제 서재에 올라오는 글을
얼마나 하나하나 살펴 읽으시는가 궁금하군요.

제가 쓴 이 글은
그동안 제 서재에 꾸준하게 쓰던
제 글하고 똑같습니다.

저는 '아줌마'로 살아가는 '두 아이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을 낳아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고스란히 '아줌마'입니다.

아마, '도시 아줌마'는 다르다 여길는지 모르나,
아줌마라는 이들은
'생명을 몸에 품고 낳아 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이라는 대목이
어떠한 '다른 허울을 붙이더라도 본질'일밖에 없습니다.

..

이 글이 왜 '알라딘서재 논쟁에 붙임'인가 하는 대목은
바로 이러한 곳을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럼 이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찬찬히 새겨 들어' 주시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글을 비롯해 다른 제 서재 글을
굳이 읽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파란놀 2012-06-03 12:10   좋아요 0 | URL
Fenomeno 님 보셔요.

인사도 없고 왕래도 없는 사람한테 섣불리 댓글 다는 일이 어떤 뜻인지는 님 스스로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 서재에 어떤 글을 어떻게 올리는가를 살피지 않고 이런 댓글만 올리는 일이란, 참말 어떤 뜻이 될는지 잘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100 사람 가운데 99 사람이 좋아한다 하더라도,
나 1 사람이 안 좋아하면,
내가 안 좋아하는 결대로 안 좋아합니다.

100 사람 가운데 99 사람이 싫어한다 하더라도,
나 1 사람이 좋아하면,
내가 좋아하는 결대로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며 즐기는가'를 살펴야지
다른 사람이 좋아하며 즐기는가를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좋아 시골마을에서 아이들하고 살아가는데,
누가 내 삶에 '토를 달' 수 있을까요?
 
칠색잉꼬 2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하고 싶은 일
 [만화책 즐겨읽기 153] 데즈카 오사무, 《칠색 잉꼬 (2)》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즐겁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에 안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루하루 누릴 때에 사랑스럽고, 하고 싶지 않으나 밥벌이나 돈벌이라서 놓지 못한다면 안 사랑스럽습니다.


- “잠깐, 비켜 줄래, 꼬마 아가씨. 사인은 못 해 줘. 난 대역이거든.” “선생님, 제자로 삼아 주세요!” (7쪽)
- “어떻게 여길 찾았지?” “온 도시의 호텔과 여관을 다 뒤져서. 선생님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손님이 있는지 물어 봤어요.” “저기 말이지, 난 선생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야. 스타를 뒤쫓아 다닐 생각이라면 헛다리를 짚은 거야. 사람 잘못 봤다고.” “선생님의 무대를 보고,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감동했어요! 전 배우가 되고 싶어요.” (9쪽)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살아가며, 옆지기와 살림을 꾸리고, 자전거를 타는 한편,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돌보고, 서재도서관을 꾸리며, 늘 풀숲과 멧자락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삶대로 내 하루를 느끼고, 내가 느끼는 대로 온누리를 톺아보며, 온누리를 톺아보는 결이 고스란히 내 눈길과 손길로 돌아옵니다.


  무엇보다 책으로 놓고 보자면, 나는 내가 읽고픈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고픈 책이 되어야 읽습니다. 아름답다 싶은 이야기를 다루든,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다루든, 내 마음속에서 어느 책 하나 읽고프다는 꿈이 피어올라야 비로소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읽기란 ‘줄거리 읽기’가 아닌 ‘삶읽기’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좋은 넋은 고스란히 내 삶으로 스며들어, 내 꿈과 넋과 말이 새삼스레 거듭나도록 이끌어요. 어떤 책을 읽고 싶다 할 때에는, 오늘 내 삶을 한결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빛날 수 있게끔 다스리고 싶다는 뜻이에요.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은 쓸 수 없습니다. 찍고 싶지 않은 사진은 찍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직업’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채 돈을 벌며 집식구 먹여살린다는 뜻을 내세워 스스로 길을 잃곤 합니다. 이를테면, 직업사진가라든지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이들은 ‘사진을 늘 찍’지만,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사진을 못 찍는 이가 너무 많습니다. 회사에서 바라는 사진, 주문한 손님이 바라는 사진, 신문사 편집장이나 사장이 바라는 사진 틀에 얽매이면서 ‘잘 팔릴 만하고 빈틈이 없으며 눈길 끌 만한 사진’으로 기울어져요. 즐겁게 찍는 사진이라거나 사진쟁이 삶을 밝히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기자들이 쓰는 글이나 작가들이 쓰는 글도 이와 비슷해요. 스스로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삶이 드러나는 글이 아니라면 글이라 할 수 없어요. 내 손가락 같은 글이요, 내 발가락 같은 글이고, 내 머리카락 같은 글이에요. 내 허파와 같은 글이며, 내 염통과 같은 글이고, 내 콩팥과 같은 글입니다. 남한테 보여주거나 읽히려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을 밝히면서 빛내는 글이에요.

 

 


- “부잣집 아가씨라는 건가. 좋은 신분이군. 하지만 명배우는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의사라면 돈의 힘으로 될 수 있겠지만.” (10쪽)
- “남의 흉내만으론 무엇으로도 될 수 없어. 내가 프로 배우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지. 나는 왕부터 거지까지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어떤 흉내라도 낼 수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배우라고 할 수 없어! 잉꼬나 앵무새처럼 … 흉내라도 감동은 시킬 수 있어. 하지만 너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아.” (16∼17쪽)


  누구나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할 때에 빛납니다.


  어느 나무나 스스로 맺고픈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낼 때에 빛납니다. 뽕나무는 오디를 맺습니다. 감나무는 감을 맺습니다. 능금나무는 능금을 맺고, 살구나무는 살구를 맺어요. 저마다 스스로 가장 빛날 만하며 좋아할 만한 꽃과 열매와 씨앗입니다. 포도나무는 배를 맺지 않아요. 배나무는 복숭아를 맺지 않아요. 복숭아는 모과를 맺지 않아요.


  장미가 더 예쁘지 않습니다. 민들레가 더 곱지 않습니다. 원추리가 더 맑지 않습니다. 호박꽃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솜다리가 더 그윽하지 않습니다. 모든 꽃은 저마다 가장 빛나는 무늬요 빛깔이며 결이고 냄새입니다. 탱자꽃은 탱자꽃으로서 가장 아름다우며 빛나요. 찔레꽃은 찔레꽃으로서 가장 어여쁘면서 맑아요. 콩꽃은 콩꽃으로서 가장 아리따우면서 향긋해요.


  사람은 숫자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숫자로 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은행계좌 길이로 살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성적표 등수라든지 행동발달사항 점수로 매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 사랑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이제부터는 너 혼자의 힘으로 노력하는 거야. 너라면 분명 10년 후에는 대스타가 되어 있을 거야.” (28쪽)
- “자, 덤벼 보게. 알겠나, 응. 진정한 배우는 자신의 훈련을 위해 검술, 승마부터 발레까지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네.” (140쪽)


  나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좋아합니다. 지난겨울 된바람을 견디면서 봄철 개구리 노랫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마음속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렸습니다. 봄을 맞이해 여러 달째 보내며, 날마다 개구리 노랫소리를 마음에 담습니다. 아이 둘을 옆에 나란히 누여 재워 자장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귀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들판마다 거침없이 목청 높이는 개구리 노랫소리는 온 집안을 울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자장노래에 개구리 노랫소리를 나란히 듣겠지요. 개구리 노랫소리는 아버지 자장노래를 뒷받침하는 결 고운 가락일 테지요.


  나는 들새 노랫소리를 좋아합니다. 지난가을에도 올봄에도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쉬잖고 들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까치이든 까마귀이든 좋습니다. 참새이든 노랑할미새이든 좋습니다. 왜가리이든 해오라기이든 좋습니다. 제비도 직박구리도 동박새도 모두 좋습니다. 들새 스스로 가장 빛나는 목청을 돋우면서 들려주는 노래가 아주 좋습니다.


  나는 이 고운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을 다스려요. 나는 이 고운 소리로 내 마음을 다스리면서 내 곁 고운 살붙이를 아끼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개구리와 닮다가는 또다른 개구리처럼 노랫소리 읊을 수 있기를 빕니다. 내 말소리가 들새와 닮다가는 새삼스러운 들새와 같이 노랫소리 종알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후후, 일본은 신기한 나라군요. 증거만 없다면 나쁜 사람도 대낮에 활보하면서 살 수 있다니 말이죠.” “네, 정치가부터 재판관까지 도둑은 넘치니까요.” “우리 나라에서는 증거 같은 게 없어도 도둑은 바로 참수형이죠. 그래도, 일본은 좋은 나라예요. 누구든 자유롭고, 일본에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자유겠죠. 일본으로 유학 온 나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요.” “고국으로 돌아가면 결혼을 하십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말이죠, 아직 여자는 관습에 묶여서 자유가 없답니다. 좋아하는 연극도 아마 할 수 없겠죠. 이게 생에 마지막일 거예요.” (64∼65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 잉꼬》(학산문화사,2011)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칠색 잉꼬’는 스스로 하고 싶어 연극을 합니다. 언제나 대역 배우로 그치는 연극 일이지만, ‘칠색 잉꼬’는 어릴 적부터 ‘대역’이 될밖에 없는 삶을 스스로 굴레로 짊어졌어요. 대역을 훌훌 털고 ‘주역이나 조역이나 단역’과 같이, 무대를 함께 빛내는 자리를 찾아가지 못해요.


  어쩌면, ‘칠색 잉꼬’로서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대목이 ‘대역’이기 때문에 대역을 할는지 몰라요. 주역이나 조역이나 단역으로 얼크러지기보다는, 스스로 가슴이 불타오르는 때에 대역으로 살짝 찾아들어 녹아들다가는 다시 조용히 사라지는 삶을 사랑하는지 몰라요.


- “뭐야! 모처럼 내가 일부러 왔는데 도망가는 거야? 내 기분을 좀 알아주면 좋잖아, 이 둔탱아.” (135쪽)
- “아이들의 연극은 응, 어른들의 연극하고 달라서 어둠이나 우울함은 필요가 없는 거지, 응. 그 대신 영웅이 필요해. 아이들은 응, 영웅을 동경하고 있으니까. 피터 팬은 응, 강하고 마음 착한 소년이니까 말이지.” “그렇군요.” “자네는 저 아이들을 실망시켜선 안 돼, 응.” (143쪽)

 

 


  ‘칠색 잉꼬’는 슬픈 사람일까요. 어쩌면, 이이는 슬픈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슬픔에 젖고 스스로 슬픔에 갇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슬픔은 기쁨과 같습니다. 기쁨은 슬픔과 같습니다. 스스로 아끼는 삶이라 한다면, 기쁨이 되든 슬픔이 되든 좋은 벗님입니다.


  아픔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괴로움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웃음을 먹거나 이야기를 먹어도 좋을 텐데, 자꾸자꾸 고된 길로 나아가고야 마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길을 못 느끼거나 못 찾거나 못 알아본다 하겠지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갈 뿐이라 하겠지요.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긴 한삶이었습니다. 전쟁통에도 가난에도 고단한 일더미에도 늘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긴 한삶이었으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칠색 잉꼬’가 되든, 한국땅 아무개가 되든,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마을에서 살림을 꾸리리라 느낍니다.


  나로서는 자동차 소리와 배기가스가 싫어 자동차한테서 가장 멀찌감치 떨어질 만한 호젓한 시골에서 살붙이들과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개구리와 들새랑 예쁘게 사귈 만한 한갓진 시골에서 살붙이들과 도란도란 삶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참말 하고픈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혁명을 이루고픈 이는 혁명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옳다’거나 ‘바르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가장 ‘사랑하면서 즐기고 누릴’ 만한 일을 할 때에 활짝 웃고 빙그레 웃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4345.6.2.흙.ㅎㄲㅅㄱ)

 


― 칠색 잉꼬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1.1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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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 할머니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까지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할머니를 뵙는다. 할머니는 나뭇가지 지팡이를 왼손에 쥐며 땅을 당기고, 비료푸대를 오른손으로 끌면서 집으로 돌아가신다. 할머니는 당신 손에 흙이 묻어 지저분하다며 아이를 안기 꺼리신다. “뭘 줘야 하는데 줄 게 없네.” 하시더니, 나무를 쌓으며 덮은 비닐 한쪽을 북 뜯어, 비닐보자기를 만든 다음 여기에 콩꼬투리 몇 줌 싸서 아이한테 내미신다.


  비닐보자기에 싼 콩꼬투리를 품에 안은 첫째 아이는 아주 좋아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이는 혼자 콩을 까겠다 말한다. 빈 그릇 하나 아이한테 건넨다. 아이는 씩씩하게 콩을 깐다. 그릇에 콩을 제법 담고는 소꿉을 챙겨 그릇에 담고 붓고 옮기고 나르고 하며 논다. 날콩 하나 씹더니 “아이, 맛없어.” 한다.


  아이가 깐 콩으로는 이듬날 아침에 콩밥을 지어야지. 아이가 아직 안 깐 콩으로는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 몇 알 함께 심을까 싶다. 아이 스스로 심고, 아이 스스로 돌보아, 아이 스스로 거둘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가 콩을 이웃 할머니한테 선물할 수 있으리라.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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