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김삼웅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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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별 삶자국을 톺아본다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9] 김삼웅,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 책이름 :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 글 : 김삼웅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4.25.)
- 책값 : 13800원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배워야 하던 한국역사나 세계역사가 참 따분했습니다. 교과서에 적히고 시험문제로 풀어야 하던 한국역사나 세계역사 가운데 ‘역사’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이야기는 한 가지조차 없었다고 느끼기에 따분했습니다.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또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요즈막 시골집에서도, 역사 교과서나 역사책은 ‘사람들 참삶 이야기’를 오롯이 들려주지 않는다고 느껴요. 교과서이든 여느 책이든 온통 ‘임금님 이야기’나 ‘권력자 이야기’나 ‘땅따먹는 전쟁 이야기’나 ‘서양 신 이야기’에 그칠 뿐이라고 느껴요.


  내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도 책에서도 찾아 읽지 못합니다. 내 아버지가 꿈꾸던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든 책에서든 찾아 읽지 못합니다. 이러하니, 나로서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오늘날 숱한 역사책이 몹시 따분합니다.


.. 이것은 맹자의 폭군방벌 사상의 핵심이다. 인의와 왕도를 저버리고 백성을 학대하는 패도를 행할 때는 천자나 군주라도 서슴지 않고 쫓아내거나 교체해야 한다는 혁명 사상이었다. 조선왕조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500년 동안 사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유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공자는 숭배하면서 맹자는 배척했다. 그의 혁명 사상을 배척한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이에 더해서 “아테네 시민 여러분, 죽음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훨씬 어려운 것은 악을 피하는 것인데, 까닭은 악이 죽음보다 빠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 자리를 나감으로써 진리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  (17∼18, 35쪽)


  중학교 적이나 고등학교 때나, 역사 수업을 할 때면 ‘한문으로 적힌 옛책에 바탕을 두어 캐낸 이야기’라는 말을 듣습니다. 책에 적혀야 비로소 역사가 되어 오늘날 우리들이 배울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역사 수업을 하는 교사한테 곧잘 여쭙곤 했습니다. ‘책에 안 적힌 역사는 배울 수 없나요?’ 하고.


  교과서에 적힌 역사는 오직 시험문제라고만 느꼈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역사는 권력자가 백성을 짓밟으면서 비틀거나 꾸며낸 이야기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학교에서든 교과서에서든 학교 바깥 역사책에서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적힌 이야기는 ‘그무렵 권력자가 바라던 입맛’에 맞추어 적바림했다고 말합니다. 이들 책이름부터 ‘네 나라’ 아닌 ‘세 나라’라고만 적는걸요.


  제도권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에는 으레 정치·경제·사회·문화로 갈래를 나누어 이무렵에는 어떠하고 저무렵에는 저떠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먼먼 옛날이라던 옛조선이든 고구려이든, 좀 가까운 옛날이라 하는 고려이든 조선이든,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온통 임금님 둘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만 다룹니다. ‘정치권력 = 역사’인 듯 가르쳐요. 게다가, 임금님 둘레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정작 임금님이 어떤 밥을 먹고 어떤 반찬을 먹었으며 어떤 옷을 입고 궁궐 뒷간은 어떠하며 궁궐에서 겨울에 불은 어떻게 땠는가 하는 이야기는 들려주지 못합니다. 흔한 말로, 예전에는 ‘보일러도 없’는데, 추운 겨울에는 임금님이랑 신하가 어디에서 모여 어떻게 정치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하지만, 딱히 알려주는 교사도 책도 없습니다. 아흔아홉 칸짜리 권력자 집안은 겨울날 불을 때느라 나무를 얼마나 하고, 나뭇짐은 누가 해서 어떻게 때는가를 밝히거나 알려주지 못합니다.


.. 고든 차일드를 비롯한 일군의 인류학자들은 농업을 발명한 것이 여성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곡물 채집이 중요해짐에 따라 여성들은 곡물의 발아와 번식주기에 주목한다. 더불어 여성들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주도했다. 곡식을 찧기 위한 돌절구 제작, 곡물을 보존하기 위한 용기의 제작 등이 그것이다 … 아나키즘이 아시아에 소개되면서 일본 관학자가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여 마치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곡해되었다. 하지만 아나키즘의 본질은 강제가 없는 자유사회 ‘무강권주의’로 번역되어야 한다. 아나키즘의 본질은 자연론적 사회관, 개인의 자주성, 권위에 대한 저항이다 ..  (115, 229쪽)


  한겨레 살림집에는 ‘방’이 없습니다. 방(房)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중국말입니다. 한겨레 살림집에는 방이 없으니 ‘방’이라고 가리킬 낱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중국 사회·문화에서 들어왔기에 방입니다. 안방도 사랑방도 건넌방도 한겨레 문화는 아닙니다. 나중에 천천히 한겨레 나름대로 삭혀 받아들인 삶일 뿐입니다.


  이 대목, 한겨레 살림집에는 ‘방’이 없다는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 때에 배운 적 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방’ 없는 한겨레 살림집에 무엇이 있는가를 뽀족히 다루거나 알뜰히 짚어 주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러한 대목은 입시문제에 안 나오니까요.


  오늘날은 이제 서양 문명과 온갖 나라밖 문명이 어지럽게 뒤섞여 한겨레 문화나 삶이라 할 만한 모습을 딱히 그릴 수 없이 되었는데,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그러니까 새마을운동이랍시고 온 나라를 들쑤시기 앞서까지, 한겨레 여느 살림집은 모두 ‘칸(간)’이었습니다. 한겨레 여느 살림집은 칸으로 나누었어요. 이른바, ‘뒷간’이나 ‘곳간’이나 ‘정짓간’처럼 ‘간(칸)’을 나누었습니다. ‘초가삼간’이라는 이름처럼, 한겨레 여느 흙일꾼 살림집은 ‘풀로 지붕을 잇고(초가)’, ‘세 칸으로 나눈(삼간)’ 집이에요. ㄱ꼴이든 ㄴ꼴이든 ㄷ꼴이든, 한겨레 여느 흙일꾼 살림집은 칸으로 나누어 삶을 일구었어요.


  주춧돌을 깔고 기둥이 될 나무를 세웁니다. 기둥나무에 홈을 파서 도리를 끼웁니다. 서까래를 얹고 지붕을 잇습니다. 흙을 일구던 이들은 기와를 바랄 수 없고, 바라지 않습니다. 흙을 일구던 이들은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습니다. 나무로 기둥을 삼고 뼈대를 이루며, 나무로 불을 때고 밥을 짓습니다. 나무로 베틀을 만들고, 나무와 흙에서 옷감이 될 실을 얻습니다. 흙일꾼 삶에 환경운동도 사회운동도 정치운동도 노동운동도 평화운동도 민주운동도 없습니다. 그예 흙과 한몸이 되고 나무와 한마음으로 얼크러지며 꾸리던 삶입니다.


  나는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을 받는 동안 언제나 꿈을 꾸었습니다. 교과서 지식이야 시험을 치르기 앞서 외우면 그만이요, 내 마음으로는 교과서에 안 실린 ‘지난날 내 옛 어버이’들 삶이 어떤 그림이었는가를 천천히 꿈으로 꾸었습니다. 어떻게 밥을 얻고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며 어떻게 오순도순 살림을 이끌었을까 하고 꿈을 꾸었습니다.


.. 《백과전서》는 지배계급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1780년 35권의 초판이 완성되고, 1832년 총 166권으로 완간되었다. 프랑스혁명의 불씨이자, 혁명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 짐승을 잡거나 버들고리를 만들어 파는 일에 종사하는 백정들은 돈을 벌어서 기와집에 살아도 안 되고, 비단옷을 입어도, 갓을 쓰고 예복을 갖추어도 안 되며, 평민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셔도 안 될뿐더러, 일반 음식점의 출입조차도 거부되었다. 양반은 물론 평민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강상죄로 다스림을 받게 된다 ..  (135, 280쪽)


  대입시험을 앞두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로서는 대입시험보다 ‘대학교에 들어가는 시험에 붙더’라도 이윽고 나한테 날아올 ‘군 입대 영장’이 훨씬 근심스럽습니다. 내 아버지는 국회의원도 시장도 아니요, 내 어머니는 부잣집 딸도 아니며, 이렇다 할 내세울 무엇이 하나조차 없으니, 군대에 총알받이 땅개로 끌려가야 합니다. 한창 어떤 학문을 파고들 만하다 싶을 때에 세 해씩 총칼을 붙잡으며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싱그럽고 가장 푸르며 가장 아름다울 내 젊음을 군대와 전쟁과 바보짓으로 망가뜨려야 합니다. 이리하여, 고등학교 3학년 역사 수업 때에는 ‘조선과 고려와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와 옛조선 무렵 군역’이 얼마나 무서웠고 힘들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식구들 힘으로 흙을 일구어야 하는 마당에, 성곽을 쌓느니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느니 왜구를 막느니 무어니 하며, 젊은 사내는 죄 군대 병졸과 부역자로 붙잡으니까, 지난날 이 나라 여느 살림집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얼마나 고된 나날이었을까 돌아봅니다. 정치란 무엇이고 경제란 무엇이며 사회나 문화란 무엇이었을까 되뇝니다.


  예나 이제나 정부는 세금을 그토록 많이 거두면서 어떤 문화나 복지나 교육을 펼치는지 아리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흙일꾼 사내들을 온통 총알받이나 짐받이로 부리는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생각합니다. 작고 힘없는 내가 아름답게 살아가고 사랑스레 꿈꾸자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나처럼 군대에 끌려갈 다른 이웃과 동무를 떠올립니다. 나보다 먼저 군대에 끌려간 숱한 사람들을 되새깁니다. ‘민란’이나 ‘봉기’라는 이름으로 여느 흙일꾼이 똘똘 뭉쳐 낫과 쟁기를 들고 주먹을 흔들었다던 옛이야기를 곱씹습니다. 그래, 권력자가 바라보기에 ‘민란’이나 ‘봉기’였을 텐데, 권력자한테 짓눌리거나 짓밟히던 사람들 삶자리에서 바라보자면 ‘저항하며(맞서 싸우며)’ 살아남겠다는 몸부림이었겠지요.


.. 하지만 민주공화제는 이승만의 12년 장기 독재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되고 형태만 남게 되었다.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소수의 권력층이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여 귀속 재산을 차지하거나 원조 물자를 착복하면서 특권을 누렸다. 헌법은 이승만의 권력 유지를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선거는 관권·금권 부정으로 유린되었다 …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보다 더 잔혹한 살육과 탄압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그러나 국민은 굴복하지 않았다 … 왕조사와 민중사는 달랐다. 이 땅의 민중들은 지배층의 사대와 수탈에도 불구하고 의병·독립군·의열단·광복군·통일국가 수립운동·민주화운동·노동운동·평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줄기찬 항쟁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경제건설과 민주화를 추진해 왔다 ..  (283, 285, 289쪽)


  김삼웅 님이 쓴 인문책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서양, 이 가운데 서유럽에서 이루어졌다는 ‘진보와 저항’ 옛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책입니다. 지구별 삶은 권력자가 내리누르려 할 때마다 맞서 싸운 백성이 있었고, 권력자가 고리타분한 정치를 휘두르려 할 적마다 새롭게 거듭나려 힘쓴 백성이 있었다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그렇겠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서양에서든 동양에서든 정치권력자 고리타분한 정치권력 앞에서 떳떳이 고개를 들며 힘차게 맞서 싸운 발자국이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고개들기’와 ‘맞서 싸우기’와 ‘새로 거듭나기’가 얼마나 문화나 역사라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세계사 읽기’를 ‘진보 역사 읽기’나 ‘저항 역사 읽기’로 되새길 수 있을 텐데,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에 실린 이야기 또한 ‘어떤 권력자나 지식인이 책에 적바림한 이야기’를 간추려 적은 또다른 ‘역사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곧, 이 책에서도 ‘먼먼 옛날부터 슬기롭고 착하며 참답게 삶을 꾸리던 여느 사람들 수수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는 못 다루는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서유럽에서든 북유럽에서든 남유럽에서든 러시아에서든 아시아에서든 북중미에서든 한국에서든, 흙을 벗삼아 흙하고 어깨동무하던 사람들 삶과 발자국과 이야기는 ‘책에 안 적혔’으니까요.


  책을 덮습니다. 밤하늘 둥근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지구별 수수한 사람들 삶자국은 어떤 모습 어떤 그림 어떤 이야기였을까 하고 내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내 삶을 톺아보며 내 어버이 삶을 톺아봅니다.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 먼먼 옛사람들 삶자국을 하나하나 톺아봅니다. 그 먼 옛날에도 제비는 찾아들었겠지요. 올해 새끼를 깐 제비가 이듬해에 다시 찾아온다 했으니, 먼먼 옛날부터 ‘같은 제비’가 ‘같은 집’으로 날아들었겠지요. 제비들은 제 어미한테서 어떤 이야기를 물려받았을까요. 사람들이 날마다 나무를 하고 땔감을 땠을 적에, 사람들 살림집 둘레에서 자라던 우람한 나무는 사람들 보금자리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을까요.


  나는 ‘역사책을 쓴 옛날 권력자나 지식인’ 눈썰미가 아니라 ‘제비 한 마리’ 눈길과 ‘나무 한 그루’ 마음길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오랜 나날 한결같이 흐르던 ‘냇물 한 줄기’ 손길과 오래도록 꾸준하게 부는 ‘바람 한 가닥’ 생각길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내 삶은, 지구별 사람들 삶은, 내 아이들 삶은, 내 어버이들 삶은, 어떤 그림이요 어떤 사랑일까요.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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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빛 책읽기

 


  올여름에도 첫째 아이 이름이 된 ‘사름’을 맞이한다. 우리 집에는 논이 없으나 이웃 집에는 모두 논이 있으니, 날이면 날마다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먼저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반짝반짝 눈부신 논물이 푸른 숲 멧자락을 비춘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걸쳐 논물은 새삼스레 바뀌는 그림을 끝없이 그린다. 옮겨심은 모가 뿌리를 튼튼히 내린 논을 들여다보면 볏모 빛깔이 그지없이 푸르다. 그런데, 아직 옮겨심지 않은 모도 모판에 꽂힌 모습을 바라보면 가없이 푸르다. 마을 이장님 댁 모판을 나르는데, 모판 한복판에 참개구리 한 마리 떡하니 앉아 골골 노래를 부르던걸.


  다섯 살 첫째 아이 사름벼리는 제 이름 넉 자 가운데 첫 두 글자가 비롯한 ‘사름’을 날마다 마주한다. 날마다 마주하면서 아직 ‘낱말과 이름’을 서로 맞대어 헤아리지는 못한다. 한 해를 더 살고 또 한 해를 새로 살면 시나브로 알아채며 즐길 수 있겠지.


  모 심는 기계에 모판을 실을 때에 일손을 살짝 거들며 어린 볏모가 얼마나 보드라운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이 보드라운 볏모가 보드라운 논흙에 뿌리를 내리고 보드라운 햇살을 먹는 한편 보드라운 바람을 누리면서 보드라운 꽃을 피우고 보드라운 열매를 맺는다. 여름빛은 사름빛이다.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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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내기 구경하는 어린이

 


  아침부터 사라진 아이를 찾으려고 부르지만 아무 대꾸 없는 첫째 아이. 어디로 갔나 싶어 대문을 열고 두리번두리번 살피니, 요 앞 논둑에 서서 모내기를 구경한다. 옆지기가 예전에 쓰던 손전화 기계를 들고,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진으로 찍는다며 한창 부산을 떤다. 할머니는 아이더러 옷에 흙 묻는다며 더 들어오지 말라 말씀한다. 파란 빛깔 하늘에 하얀 빛깔 구름이 알록달록 물들고, 논물에는 푸른 나무 우거진 멧자락이 어린다.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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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06 03:11   좋아요 0 | URL
옷 더러워진다고 들어오지 못하게 손사래를 치시는 마을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손주들한테 할머니랑 할아버지들..특히 할머니들은 그렇게들 말씀하시는 것같아요.
옷 더러워지니 밭에 들어오지말라구요.
아가들은 또 들어가고 싶어하고..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이 행복해보입니다.

파란놀 2012-06-06 03:36   좋아요 0 | URL
그저 같이 놀고 같이 씻어도 좋을 텐데,
시골 어르신들은 이렇게... 당신 딸아들한테도
흙일을 안 시키시려 하지 않았겠느냐 싶더라고요...
 


 마음껏 놀자
 [고흥살이 12] 여기는 우리 집이야

 


  첫째 아이는 곧잘 “여기 우리 집이야.” 하고 말합니다. 참말 여기 우리 집 맞아, 그러니 우리 집이지. 여태 다른 사람 집에서 살다가 이제 바야흐로 우리 집에서 살지. 마음껏 꾸미고, 즐겁게 누리며, 예쁘게 살아가지. 마당과 꽃밭에 풀이 제멋대로 자라도록 두기도 하다가, 이 풀섶에서 둘째 아이가 이리저리 기어다니기도 하고. “여기 우리 집이야.” 하는 네 말처럼 네 즐거움 누리며 살아가는 집이야.


  혼자 신을 꿸 줄 아는 첫째 아이는 짝신을 즐겨 신습니다. 아직 쌀쌀하던 때에는 짝양말 곧잘 신었고, 차츰 따스해지는 날이기에 맨발로 짝신을 신고, 때로는 맨발로 돌아다닙니다. 둘째 아이는 가고 싶은 데를 제 두 팔과 두 발을 써서 기어갑니다. 이제 슬슬 걸을 때도 되건만 좀처럼 안 걷고 기기만 하는데, 아직 둘째한테는 기기가 한결 빠르며 좋기 때문일 테지요. 시멘트로 덮인 마당도 기고, 아버지가 베지 않아 우거진 풀밭 사이도 깁니다.


  어디이든 우리 집입니다. 어느 곳이든 우리 마을입니다. 예쁘게 누리는 집입니다. 예쁘게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따순 햇살을 받으며 걷고, 하얀 햇볕을 받으며 깁니다. 고운 햇살을 쬐며 들새 노래를 듣고, 맑은 햇볕을 받으며 들바람 노래를 듣습니다. (4345.6.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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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07 11:29   좋아요 0 | URL
흙에서 마구 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
마음에서 흙냄새 풀냄새 풀풀 나겠지요
참 곱고 이쁩니다

파란놀 2012-06-07 12:12   좋아요 0 | URL
아주 땀냄새에
까망둥이가 된답니다~ ㅋㅋ
 
빛의 아이들 0100 갤러리 20
앨런 세이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마루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그림책은 아쉽게도 품절이로군요. 저는 지난 5월에 경기 파주 책도시에 갔을 때에 장만했습니다. 미처 사진을 찍어 놓지 못해, 겉그림 사진만 끝자락에 붙입니다 ㅠ.ㅜ

 


 어디에서나 해맑은 얼굴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7] 앨런 세이, 《빛의 아이들》(마루벌,2007)

 


  지난날,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서른여섯 해를 모질게 괴롭히고 짓밟았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아직 백 해가 지나지 않았고, 역사책에든 사진책에든 잘 아로새겨졌으니 퍽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꽤 알려진 이야기라 하더라도 안 받아들이는 사람이 퍽 많아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식민지 이야기를 옳게 살피지 못하는 어른이 무척 많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지난날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괴롭힌 이는 ‘일본’이 아니라 ‘일본 권력자’입니다. ‘일본에서 총칼을 휘두르는 권력을 거머쥔 사람’이 한국땅 ‘여느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자는 한국 권력자를 괴롭히거나 짓밟지 않았습니다. 한국땅에서 권력이나 지식이나 돈을 누리거나 거머쥐던 이들은 한국땅이 식민지가 되든 아니든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이나 지식이나 돈을 누리거나 거머쥐었어요.


.. 그는 땅 밑 터널을 흐르는 물에서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희망이 사라져 갈 즈음 희미한 빛이 보였습니다. 빛은 천천히 밝아졌습니다 ..  (8쪽)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나라가 무너진다고 하는 목소리가 한때 드높‘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목소리는 거의 가라앉거나 안 들리거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제 한국사람들은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는지’를 들여다봅니다. 아마, 대통령으로 아무개가 뽑히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에 눈길을 돌릴 테지요. 새 논쟁거리를 찾고 새 기삿거리를 밝히며 새 논란거리를 만들겠지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기보다 참 마땅한 셈인데, 한국사람한테 자유무역협정은 살갗으로 안 와닿는 이야기요 마음으로 안 스며드는 이야기입니다. 삶과 동떨어진 이론이거나 논쟁이거나 지식이거나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푸성귀를 얻는다 할 때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다른 눈길로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스스로 흙과 벗삼으며 바람과 햇살과 나무와 풀과 꽃을 가까이 사귄다 할 때에는 4대강사업을 다른 눈길로 들여다볼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느낄 때에 비로소 알아차리는 삶입니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바야흐로 깨닫는 삶입니다.


.. 근처에 흙으로 지은 건물 몇 채가 무너진 채 있었습니다. ‘인디언 보호 구역인가 보다.’ 두 사람이 흙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  (12쪽)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무언가 빼앗거나 거머쥐려던 일본 권력자는 일본땅에서도 힘이 없고 돈이 없으며 이름이 없는 사람들을 짓누르면서 무언가 빼앗거나 거머쥐었습니다. 일본땅에서 일본 여느 사람들을 짓누르며 돈이든 힘이든 이름이든 빼앗거나 거머쥐며 콧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꾸자꾸 검은 생각이 커지며 더 큰 돈과 힘과 이름을 바라고, 시나브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갈 생각을 키웁니다. 한국땅이 식민지가 된 뒤에도 힘과 돈과 이름을 드날리는 사람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한국사람이건 일본사람이건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누가 우두머리로 있든 힘과 돈과 이름을 누리기만 하면 좋다고 여깁니다.


  나쁜 길을 걷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나쁜 길을 걷습니다. 착한 길을 걷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착한 길을 걷습니다. 시골에 살기에 더 슬기롭지 않고, 도시에 살아서 더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도시에 사니까 더 악착스럽지 않고, 시골에 사는 만큼 더 너그럽지 않아요. 늘 누리는 보금자리를 둘러싸고 어떤 이웃 목숨이 있는가를 대수로이 살펴야 하는 한편, 내 마음자리에 어떤 이야기가 깃드는가를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먼먼 지난날을 돌이킵니다. 역사책에 안 적힌 이 나라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떠올립니다. 이를테면, 조선왕조실록이라 하는 역사책은 있는데, ‘조선 백성 이야기’라는 역사책은 없습니다. 고려사라 하는 역사책은 있지만, ‘고려 백성 이야기’라는 역사책은 없어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라 하는 역사책은 있어도,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발해 무렵 여느 흙일꾼 이야기를 다룬 책은 없어요.


  옛조선 이야기는 단군신화라 하는데, 정작 이무렵 여느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집을 지으며 어떤 옷을 깁고 어떤 삶을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는 대물림되지 않습니다. 옛조선이라는 나라가 서기 앞서, 이 땅 곳곳에서 조용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던 여느 사람들 꿈과 사랑과 빛과 믿음을 담은 이야기는 도무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 그들은 나무판자로 지은 건물이 늘어선 곳에 이르렀습니다. 창문은 전부 캄캄했습니다. “수용소예요.”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  (18쪽)


  누가 ‘있는’ 사람일까요. 누가 ‘없는’ 사람일까요.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임금님이나 신하나 사대부나 군인이나 모리배라 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일까요. 나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 여느 흙일꾼 어머니와 아버지는 ‘없는’ 사람일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해맑은 얼굴입니다. 내가 우리 집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적에도 언제나 해맑은 얼굴이었습니다. 내 어버이가 우리 집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도 늘 해맑은 얼굴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해맑은 얼굴이요 해맑은 목소리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어버이와 살아가더라도 해맑은 손길이요 해맑은 꿈길입니다.


  그래요, 식민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도 식민지 백성이던 여느 시골마을 흙일꾼 아이들 또한 해맑은 얼굴이었을 테지요. 식민지 조선을 짓누르던 일본 제국주의라 하지만, 일본에서도 시골마을 흙일꾼 집안 아이들은 해맑은 얼굴이었겠지요.


.. 아이들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꺼번에 작은 입을 열었습니다. “집으로 보내 줘요!”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어디선가 매서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모두 몸을 돌렸습니다. 아이들 뒤에 있는, 어두운 하늘 속의 감시탑 두 채가 빛을 내뿜었습니다 ..  (22쪽)


  앨런 세이 님이 빚은 그림책 《빛의 아이들》(마루벌,2007)을 읽습니다. 빛을 빼앗긴 아이들은 수용소에 갇힌 채 빛을 그리워 한답니다. 수용소에 갇힌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아이들은 수용소에 갇힐 만큼 무섭거나 무시무시할까요.


  제국주의 일본은 전쟁을 끔찍하게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미국에서 살던 일본 ‘여느 아이’들을 샅샅이 훑듯 사로잡아 외딴 두메에 수용소를 짓고 가두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미국땅을 미국 토박이한테서 빼앗으며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었듯,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일본에서 제국주의를 부르짖고 권력을 휘두르던 어른이지만, 애꿎게 ‘여느 아이’들이 웃음을 빼앗긴 채 시무룩하고 파리한 얼굴이 되어 수용소에서 옴쭉달싹하지 못합니다.


  한국 역사책에는 고구려가 땅을 무척 넓혔다고 적힙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먼먼 옛날, 고구려라는 나라가 칼을 휘두르며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을 넓힐 적, 고구려한테 땅을 빼앗기고 마을을 빼앗기며 식구들을 빼앗긴 ‘여느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느 사람들네 여느 아이들 얼굴은 어떤 빛이었을까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가 서로 툭탁거리는 동안, 이들 나라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다가 군인으로 끌려가 이웃 ‘흙일꾼 아저씨’를 칼로 베어 죽여야 하던 ‘여느 어른들’네 ‘여느 아이들’은 어떤 마음 어떤 얼굴 어떤 빛이었을까요.


  아이들은 웃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빛나는 목소리로 노래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누구하고라도 포근하게 얼싸안으며 예쁘게 놀고 싶습니다. (4345.6.5.불.ㅎㄲㅅㄱ)

 


― 빛의 아이들 (앨런 세이 글·그림,엄혜숙 옮김,마루벌 펴냄,2007.5.7./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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