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짓는 손길과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8] Jorma Komulainen 엮음, 《Vision of Finland》(Kirjayhtyma,1990)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나라밖 사진책을 기쁘게 장만하곤 합니다. 세계사진역사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한 이들이 빚은 사진으로 이루어진 숱한 사진책을 재미나게 만나 예쁜 꿈을 꾸면서 사들이곤 합니다. 나한테 돈이 퍽 많았다면 헌책방 나들이를 안 즐겼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러니까, 돈있는 집에서 태어나 돈을 실컷 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굳이 헌책방을 뒤지지 않으면서 지구별 숱한 사진책을 수만 수십만 권 장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있는 집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책길이나 사진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길을 걸을는지 몰라요. 돈을 펑펑 쓰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안 사랑하는 길에서 헤맬는지 몰라요.


  꼭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진책이 아닙니다. 반드시 돈이 넉넉해야 살 만한 사진기가 아닙니다. 돈이 적다면 적은 대로 사진책을 살 수 있습니다. 돈이 아예 없으면 얻어서 읽거나 빌려서 봅니다. 책방에 가서 선 채로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돈에 맞추어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아예 없으면, 남한테서 얻어서 쓸 수 있어요. 또는, 따로 기계를 써서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에 앉히지 않는 사진을 찍습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으로 아끼며 내 사랑으로 보듬을 사진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을 찾아가서 온갖 책을 신나게 들여다보다가 《Jorma Komulainen 엮음-Vision of Finland》(Kirjayhtyma,1990)라 하는 사진책 하나를 집어듭니다.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제 나라를 이웃에 널리 알리려 하는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는 으레 ‘나라이름’만 적습니다. 때때로 ‘beautiful’ 같은 이름을 붙여요. “Vision of Finland”처럼 ‘앞날을 꿈꾸는 생각’을 이야기하려는 사진책은 퍽 드뭅니다.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를 여러모로 좋아합니다. 가 본 적 없고, 참말 가 본 적 없으니 겪은 적 없을 뿐더러, 내 곁에는 핀란드 동무나 이웃이 없어요. 그런데 이래저래 듣거나 마주하는 ‘핀란드 문화와 삶과 사회’는 매우 살가우면서 예뻐요. 요즈막에는 한국땅에 ‘핀란드 교육 혁명’ 이야기가 들어오기도 해요. 곧, 거꾸로 생각해 보면 돼요. 핀란드에 ‘한국 교육 혁명’ 같은 이야기가 흘러들 수 있을까요. 핀란드 아이들이 한국 학교 아이들처럼 ‘시험공부에 시달리’도록 핀란드 어른들이 함부로 내몰까요.


  핀란드 아이들이 좋은 배움터와 삶터와 놀이터와 꿈터를 누릴 수 있다면, 핀란드 어른들 또한 좋은 일터와 만남터와 숲터와 사랑터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란히 누리는 핀란드 숲일 테지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 함께 즐기는 핀란드 책내음과 삶내음과 사랑내음일 테지요.


  사진책 《Vision of Finland》를 읽습니다. 핀란드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진쟁이들 사진을 아기자기하게 담습니다. 따로 어느 한 사람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은 아니요, 사진이 한결같이 포근하고 저마다 맑게 빛납니다. 모두들 어떤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떠한 삶터에서 어떠한 이웃을 사귀며 지내기에 밝은 빛살을 살뜰히 품는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고 가늠해 봅니다.

 


  한참 책장을 넘기다가, ‘무민’ 이야기를 쓰며 핀란드 어린이문학을 빛낸 ‘토베 얀슨’ 님 사진과 무민 모습이 두 쪽에 걸쳐 나오는 대목을 봅니다.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한국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려는 사진책을 정부이든 공공기관이든 문화부이든 개인이든 상업출판사이든 이럭저럭 애써 내놓는다 할 때에, ‘한국 아이들 꿈을 보살피고자 어린이문학을 빛낸’ 분들 모습과 이야기를 한 자리 살포시 꾸밀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껏 이렇게 해 보리라 생각한 사진쟁이나 책쟁이나 글쟁이가 있었나 궁금합니다. 지구별 어느 나라나 ‘글’이나 ‘문학’을 빛낸 사람을 손꼽으며 예쁘게 기릴 적에는 으레 ‘어린이문학’으로 꿈과 사랑을 돌본 이들 이름부터 적바림하는 줄 깨닫는 한국 문화쟁이나 예술쟁이는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책 《Vision of Finland》에는 숲에서 살아가는 곰 사진도 몇 장 깃듭니다. 참말 숲에서 곰이 홀가분하게 살아가니까 이런 사진을 찍어서 실을 만하겠지요. 참으로 핀란드는 자연이 넓고 아름답기에 너르며 아름다운 숲과 들판과 바다를 해맑게 보여주는 사진을 찍어서 실을 만하겠지요.


  핀란드에도 헬싱키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겨울올림픽이든 여름올림픽이든 퍽 커다란 행사나 경기를 치르곤 합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더 높이 세우는 건물’을 자랑하는 듯 보이지 않습니다. 핀란드 사진책에서는 ‘더 크거나 더 우람하거나 더 대단하다’고 내세울 만한 모습은 굳이 보여줄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키가 더 커서 더 멋지지 않습니다. 얼굴이 더 예쁘장하다 말하기에 더 즐거울 삶은 아닙니다. 머리가 똑똑하대서 누구 한 사람이 가장 돋보이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큰 키도 작은 키도 없고, 가난하거나 가멸찬 살림도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누리는 좋은 나날이요, 저마다 손수 빚는 좋은 삶입니다. 올림픽에서 보리빛 메달을 목에 걸어야 눈밭을 싱싱 잘 달리지 않습니다. 시험을 치러 1등이 되어야 대학교에 붙지 않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몇 분이나 몇 시간이나 몇 초라는 숫자에 맞추어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그릇에 밥알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 담지 않습니다.


  좋게 누릴 삶을 생각하면서 좋게 나눌 사랑을 좋게 바라보는 눈길로 얼싸안는 손길일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누군가는 눈물지으며 사진을 찍을 테고, 누군가는 웃음지으며 사진을 찍을 테지요. 괴롭거나 힘들다면 눈물바람 사진이 나올 만한데, 괴롭거나 힘든 나날에도 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참 꾀죄죄하거나 고달프다는 삶이라 하지만, 언제나 스스럼없이 웃음지으며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있어요.

 


  무엇일까요. 무엇인가요.


  사진은 무엇이고, 사진으로 담는 삶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어 빚는 책은 어떤 넋을 담으면서 사랑스러운가요. 책에 담으려 찍는 사진은 어떤 얼로 빚을 때에 아름다운가요.


  여기에서 누리는 삶을 여기에서 찍습니다. 여기에서 짓는 삶을 여기에서 사진책으로 짓습니다. 사랑을 짓는 손길이 사진을 짓는 손길입니다. 꿈을 짓는 손길이 사진을 짓는 손길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손길이 사진을 나누는 손길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밥 한 그릇 베푸는 손길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좋은 사진을 누리도록 베푸는 손길입니다. (4345.6.17.해.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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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 어린이

 


  맨발로 신나게 내달리며 놀던 아이 발을 씻기려고 빨래터로 보낸다. 아이 스스로 빨래터에 발을 담가 씻으라 말한다. 물을 집집이 쓰지 못하고 샘가나 우물가에서 따로 길어서 쓰던 지난날에는 빨래터를 마련해 빨래를 했지만, 집집이 빨래기계와 물꼭지 들어온 오늘날 빨래터는 텅 빈다. 아이한테 빨래터는 물놀이터가 된다. 아이는 발과 낯과 손을 씻고 나서 천천히 물살을 느끼며 빨래터를 누빈다. (4345.6.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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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17 10:09   좋아요 0 | URL
빨래터가 아직 남아 있었네요?
저 어릴적엔 집 앞에 개천 비슷하게 흐르고 있어 비가 많이 온 다음 다음날(흙탕물이 씻겨 내려가길 기다린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넙적하고 큰 돌을 하나 괴어서 빨래를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동네에 자그마하게 큰 pvc관 하나에 물이 계속 흘러나오게 만든 빨래터가 하나 있었어요. 그곳에서 두 세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빨래를 하던 풍경이 기억나네요.
저렇게 큰 빨래터면 여러명이서 할 수 있겠네요.
아마도 저곳도 먼저 온 순서대로 깨끗한 헹굼물쪽으로 자리를 옮겼겠죠?

사름벼리는 동네 모든 곳이 놀이터가 되고,배움터가 되네요.^^
또래 친구가 몇 더 있음 더 재미나게 놀 수도 있을텐데...

파란놀 2012-06-17 19:58   좋아요 0 | URL
앞으로 좋은 이웃이 이곳에 둥지를 틀며
맑게 빛나는 마을이 되리라 믿어요~

hnine 2012-06-17 21:35   좋아요 0 | URL
엄마는 저 앞에 먼저 가시네요? ^^
저 웃음이, 저 즐거움이 아이 미래에 계속 함께 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파란놀 2012-06-18 04:28   좋아요 0 | URL
네, 부디 그렇게 잘 이어가리라 믿어요.
첫째 아이가 늦도록 잠을 참고 자더니
새벽에 바지에 쉬를 하는군요 -_-;;;;

덕분에 저도 새벽에 일어납니다...
 


 마늘쫑 뽑는 책읽기

 


  우리 집 대문을 열면 논이 넓게 펼쳐진다. 집 앞부터 논이요, 앞논을 지나 다시 논이고, 저 멀리 멧자락까지 그예 논이다. 왼쪽으로 이웃집을 지나 마을회관 옆으로도 온통 논이다. 논은 죽죽 돌로 쌓은 울에 맞추어 섬돌처럼 차곡차곡 포개어진다. 살림집에서 멧줄기 쪽으로 비탈이 진 자리에는 차곡차곡 밭이 이루어진다. 가을날 벼를 베고 난 뒤, 마을 안쪽 논은 마늘밭으로 바뀐다. 마늘이 한창 무르익던 오월 한복판, 마늘밭 할머님은 우리더러 마늘쫑 뽑아 가라 말씀한다. 나중에 마늘뽑기 일을 조금 거들며 살피니,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마늘쫑까지 따로 뽑아서 내다 팔 만큼 일손을 나누지 못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드실 만큼만 뽑고 나머지는 그냥 버린다. 마늘 꽃대라 할 마늘쫑을 뽑아서도 버리고 그냥 두었다가 마늘을 캐고.


  마늘쫑을 뽑을 때에는 땅속에 뿌리내린 마늘 알씨부터 올라오는 풀기운을 느낀다. 뽁 뽁 소리내며 뽑히는 마늘쫑 끝자락마다 물방울이 말갛게 진다. 마늘밭 둘레에 서기만 하더라도 마늘내음이 가득 퍼지는데, 마늘쫑을 뽑노라면 한결 짙은 마늘내음이 온 들판을 감돈다. 마늘쫑 뽑기는 다섯 살 아이도 어렵잖이 할 만하다. 한창 바쁜 일철에는 부지깽이마저 일손을 거든다 했으니, 다섯 살이든 여섯 살이든, 아이들은 얼마나 고마우며 놀랍고 멋스러운 두레 일꾼이었을까. 일을 한 가득 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조금 일을 바라보고 익히는 동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까르르 웃는다. 아이 몇이 논둑이나 밭둑에 얼크러져 서로 놀기만 하더라도 웬만한 장구잽이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신이 나고 재미있다. 노래하는 손이 노래하듯 마늘쫑을 뽑는다. 춤추는 손이 춤추듯 마늘쫑을 뽑는다. 웃음 어린 손이 웃음을 품으며 마늘쫑을 뽑는다. (4345.6.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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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5
손택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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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이끄는 삶과 사랑과 꿈
 [책읽기 삶읽기 110]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2010)

 


  새벽 네 시 갓 넘긴 아직 깜깜한 마을에서 저 멀리 싯누런 초승달을 바라봅니다. 들판마다 개구리 노랫소리 잦아드는 무렵, 밤을 밝히는 멧새 우는 소리 가늘게 들리고, 마당 한켠 후박나무 우거진 잎사귀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척 고요합니다. 바람은 자취를 감추었고, 이웃집 마늘밭은 말끔하게 텅 비었습니다. 곧 새로운 싹이 돋아 새로 심은 씨앗이 천천히 자라겠지요.


  엊그제까지 꽤 높다랗게 자라던 상추풀을 떠올립니다. 이웃밭 할머님은 골을 따라 상추를 심으셨는데, 상추는 줄기를 높이높이 올리고 꽃송이를 벌렸더랬습니다. 상추꽃마다 흰나비 찾아들어 반짝반짝 춤추더랬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잎사귀만 달랑달랑 달린 상추를 보지만, 상추가 풀이 되도록 둘 때에는 이렇게 키가 크고 꽃이 맺히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웃 할머님은 손이 달리고, 딱히 뜯어 먹을 사람이 없다 하기에 높이높이 자랄 수 있었다지만, 사람들은 상추이건 당근이건 무이건 배추이건 마늘이건 양파이건 꽃대가 올라 봉오리가 해사하게 벌어지도록 두지 않습니다. 꽃을 보지 않고 꽃을 생각하지 않아요. 꽃과 열매와 씨앗 없는 푸나무는 없으나, 꽃도 열매도 씨앗도 어느 틀에 가두어 지식으로만 머리에 담습니다.


..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 종이 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 어머니 침이 묻어 있네 ..  (육친)


  장미꽃도 꽃이고 튤립꽃도 꽃이며 나리꽃도 꽃입니다. 풀꽃도 꽃이고 들꽃도 꽃이며 나무꽃도 꽃입니다. 산초나무에는 산초꽃이 핍니다. 앵두나무에는 앵두꽃이 핍니다. 사람들이 씨를 받거나 얻어 심는 꽃이 있으나, 사람들 손을 타지 않으면서 널리 퍼지며 살아가는 꽃이 훨씬 많습니다. 아니, 지구별은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며 스스로 퍼지고 이어가는 꽃과 풀과 나무가 있어 푸른 빛깔을 건사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공장을 지으며 찻길을 닦느라 함부로 망가뜨리는 손길을 애꿎게 뻗치더라도, 빙그레 웃으며 따사로이 이 땅을 보듬는 꽃씨 풀씨 나무씨가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줍니다.


  이제 사람들은 옷을 손수 짜거나 깁지 않습니다. 가게에서 돈을 치러 사다 입습니다. 집에 재봉틀을 둔다 하더라도 실을 손수 얻지 않습니다. 실을 손수 얻고 천을 손수 마름하면서 옷을 짓는 사람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앞으로 여느 살림을 꾸리면서 식구들 옷을 손수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남을 수 있을까요.


  시골마을 곳곳에 모시풀이 흐드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아마 예전에는 시골마을 누구나 손수 옷을 지어 입었을 테니, 이 모시풀이 이대로 흐드러지기만 하다가 시들어 죽도록 내버리지 않았겠지요. 논이나 밭을 일구며 낫으로 베어 버리거나 불에 태워 죽일 까닭이 없겠지요. 하나하나 알뜰히 건사해서 줄기를 째고 실을 얻으려 했겠지요.


.. 식육점 간판을 가리다 / 잘려 나간 가지 끝에 / 물방울이 맺혀 있다 ..  (나무의 수사학 2)


  우리 집 마당 한켠에서 우람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모시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한겨레가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 천을 짜고 옷을 지은 지 즈믄 해를 훨씬 넘었다 하는데, 처음에 어떤 사람이 모시옷을 생각했을까 궁금합니다. 어떤 넋으로, 어떤 얼로, 어떤 꿈으로, 어떤 사랑으로, 어떤 마음과 이야기로 모시옷을 그림으로 그리며 즐거이 실을 얻었을까요.


  아마, 맨 첫 사람은 온갖 일을 다 해 보았겠지요.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면서 차츰차츰 익숙해졌을 테고,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또 아이들이 물려받으면서 시나브로 새로운 솜씨가 나타나고 더 낫거나 수월한 솜씨가 태어났겠지요.


  그러고 보면, 먼먼 옛날이 아니라 하더라도 풀줄기에서 실올을 깨닫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갓 돋은 풀은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손가락 한둘로 잡아당기면 톡톡 끊어집니다. 어린이 누구라도 민들레 꽃대를 톡 끊어 씨앗을 훌훌 날릴 수 있어요. 우리 집 아이가 세 살 적에도 강아지풀 줄기를 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쉬 꺾이는 강아지풀이라 하더라도 어느 만큼 자랐거나 비쩍 말랐을 때에는 좀처럼 안 끊어지기도 합니다. 강아지풀 줄기를 여럿 한꺼번에 쥐어 꺾으려 할 때에도 되게 안 끊어집니다.


  유채 줄기를 꺾고 안을 들여다본다든지, 꽤 굵직한 줄기로 오르는 풀 ‘줄기 속’을 살펴본다든지 하면, 풀줄기 속이 가느다란 실처럼 촘촘히 이어진 모습을 헤아릴 수 있어요. 나도 국민학생 적에 ‘풀줄기 속 가느다란 실올’을 바라보며 ‘이렇게 가느다란 실올이 잔뜩 있으니 꺾기 힘들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식구들과 함께 먹을 풀물을 짜면서도 이런 ‘풀줄기 속 실올’을 봅니다. 첫여름 여린 칡싹을 꺾을 때에도 ‘풀줄기 속 실올’을 느낍니다.


.. 비지땀을 흘리며 몇 번씩 밭과 웅덩이 사이를 왕래하면서 / 나는 처음으로 머위와 감자와 방울토마토의 목마름을 생각한다 / 가문 여러 날 뿌리 끝에 쥐고 놓지 않는 한 방울 / 속에 든 구름과 하늘을 생각한다 ..  (물통)


  살아가려는 마음이란 사랑하려는 마음이리라 느껴요. 사랑하려는 마음이란 아름다운 마음이로구나 싶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녀린 몸을 따뜻하게 덮을 옷을 생각할 수 있었고, 옷을 생각하며 풀줄기에서 옷감이 될 실을 얻는 길을 찾으며, 실 얻는 길을 찾으면서 천을 짜는 길을 생각하여 깨닫다가는, 천을 다시 옷으로 깁는 길을 찾았구나 싶어요. 가느다란 바늘도 생각해서 빚었을 테고, 조금 굵다란 바늘, 이른바 뜨개바늘 같은 바늘들, 대바늘이든 쇠바늘이든 빚는 길을 헤아렸겠구나 싶어요.


  생각이 삶으로 이어집니다. 삶이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꿈으로 이어지고, 꿈은 이윽고 지구별 곳곳에 푸른 잎과 맑은 꽃과 소담스러운 열매로 영급니다.


.. 아파트 옆 논에 모내기가 한창이다 ..  (아파트 모내기)


  손택수 님 시집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2010)을 읽습니다. ‘수사학’이 무얼까 생각하면서 시집을 들추다가는 이내 ‘수사학’이든 다른 무슨무슨 학이든 무엇이 대수이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시집 이름이 무엇이든, 또 시에 붙인 이름이 무엇이든, 나한테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시를 읽을 뿐이고, 나는 시를 즐길 뿐이에요. 나는 시를 좋아할 뿐이요, 나는 시와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좋은 마음으로 시를 누립니다. 시를 읽거나 시를 쓰거나 나로서는 언제나 좋은 마음이 감돕니다. 슬픈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슬픈 마음으로 시를 누립니다. 시를 읽든 시를 쓰든 나는 늘 슬픈 마음이 맴돕니다.


  홀가분한 마음일 때에는 홀가분하게 누리는 시입니다. 고단할 때에는 고단하게 누리는 시입니다. 바쁠 때에는 바쁘게 누리는 시요, 한갓질 때에는 한갓지게 누리는 시예요.


  손택수 님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요. 손택수 님 시집을 읽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름다움을 찾는 즐거운 넋으로 시를 썼을까요. 아름다움을 찾는 즐거운 넋으로 시집 《나무의 수사학》을 읽을 만할까요. 시를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넋으로 삶을 짓는 사람일까요. 시를 읽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꿈을 키우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달은 제법 크기에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올려다봅니다만, 별은, 작디작은 별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모든 시골에서 언제나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공장과 골프장이 수두룩한 시골에서는 작은 별을 볼 수 없고, 자동차와 높직한 건물이 들어찬 도시에서는 큰 별조차 느끼기 힘듭니다. 달 또한 숱한 등불에 바래고 높은 건물에 가립니다. 달과 별, 해와 구름, 비와 눈, 바람과 흙을 누리지 못하는 터에서 어떤 목숨을 보듬으며 시를 쓰거나 읽을 수 있을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4345.6.17.해.ㅎㄲㅅㄱ)

 


― 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글,실천문학사 펴냄,2010.6.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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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잘 걸어라

 


  누나가 마당에서 뛰놀며 노래하니 저도 마당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을 하기에, 아이를 섬돌에 내려놓을라치면, 신을 꿰지도 않고 척척 기어간다. 이제 제 다리로 서기도 하고 한두 걸음 떼기도 하는데, 곧잘 앞으로 기울어진다. 나뭇가지 하나에도 비틀거린다. 자, 씩씩하게 잘 걸으렴. (4345.6.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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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6-16 12:17   좋아요 0 | URL
너무 귀여워요,

파란놀 2012-06-16 12:44   좋아요 0 | URL
귀여운 아이는
늘 귀여운 사진을 선물해 줍니다 @.@
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