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98] 밀분

 

  네 식구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고추장을 찍어 먹다가, 문득, 고추장 담긴 통에 적힌 글월을 읽어 봅니다. 고추장 담긴 통에는 옛 손길을 되살리며 빚었다고 적힙니다. 이 고추장은 ‘고추분’으로 빚었다고 나란히 적혀요. 밥을 먹다가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고추분’이 뭔가? 이윽고,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렇구나. 과자 봉지를 보면 으레 ‘밀가루’라 안 하고 ‘소맥분(小麥粉)’이라 적더니, 이 고추장 빚은 이들은 ‘고춧가루’라 안 하고 ‘고추분’이라 적은 꼴이로군요. 밀가루를 밀가루라 하지 못하고 ‘소맥분’으로 적는 사람도 우습지만, ‘밀분’으로 적는다면 더욱 우습습니다. 미숫가루를 ‘미수분’이라 적으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누가 이런 말을 알아볼까요. 콩가루, 떡가루, 눈가루, 쌀가루, 꽃가루 들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꽃봉오리 들여다보며 꽃가루를 만져 보기도 하지만, 꽃을 살피는 학자나 전문가와 교사는 으레 ‘화분(花粉)’이라 읊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커서 스스로 이런 말을 듣고 저런 글을 읽을 때에 머릿속이 어떻게 될까 궁금합니다. 어지러운 사람들 어지러운 말과 글 사이에서 아이가 씩씩하며 사랑스레 말빛과 글사랑 보살피기를 빌며, 다시 밥술을 뜹니다. (4345.6.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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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가 공원에 갔어요! - 9 아이즐 그림책방 9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서정 옮김 / 아이즐북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햇살은 언제나 따뜻하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잉그리드 나이만, 《삐삐가 공원에 갔어요!》(아이즐books,2006)

 


  오랫동안 비구름이 찾아들지 않았습니다. 거의 한 달만이로구나 싶은 비구름이 그예 찾아와 하루 내내 비를 뿌렸습니다. 마침 둘째 아이는 엊그제 신나게 물놀이까지 한 뒤 몸이 후끈후끈 달았습니다. 여느 날보다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가 많이 나옵니다. 틈틈이 둘째 옷가지 빨래를 하지만, 둘째 빨래는 하루가 지나도록 마르지 않습니다. 비오는 날씨이니까요.


  그동안 해가 쨍쨍 내리쬐기도 했고, 해가 안 나더라도 바람이 시원스레 불었습니다.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기만 하면 햇살과 바람이 포근히 감싸며 보송보송 말려 주었어요. 고작 하루 해가 안 났을 뿐이요, 기껏 하루 바깥바람을 쐴 수 없을 뿐이나, 이렇게 빨래 말리기가 고단합니다. 어제 넌 빨래가 아직 하나도 안 말랐으니, 밤새 나온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는 언제 빨아야 할까 아득합니다.


.. 삐삐가 사는 스웨덴의 조그만 마을은 정말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불량배라고는 고작 한둘이었어요. 그나마 그 불량배도 금세 삐삐한테 혼이 나서 다시 얌전해졌고요. 하지만 임금님이 사는 스톡홀름이라는 도시는 그렇지가 않나 봐요. 신문을 보면 불량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대요 ..  (7쪽)


  햇살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맑은 날에도 햇살은 따뜻하고, 흐린 날에도 햇살은 따뜻합니다. 더운 날이건 추운 날이건, 햇살은 늘 고운 볕과 빛을 우리한테 베풉니다. 겨울이 되어 춥다 하건, 봄을 맞이해 따스하다 하건, 해님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우리한테 찾아옵니다.


  멧등성이에 걸린 하얀 구름과 잿빛 구름을 바라봅니다. 밤새 별을 볼 수 없던 하루를 지나고 훤하게 튼 새벽나절 먼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구름에 가리기는 했어도 해님은 저 멀리부터 고운 볕과 빛을 흩뿌립니다. 구름에 가린다 하더라도 마을과 들판은 환합니다. 밝은 빛이 온누리를 감돕니다.


  사랑이라 한다면, 아무리 두꺼운 쇳덩어리 울타리라 하더라도 뚫겠지요. 아니, 사랑이라 한다면 제아무리 두꺼운 쇳덩어리가 되든 시멘트가 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천 킬로미터를 떨어진들 만 킬로미터를 떨어진들 사랑은 고이 이어갑니다. 따사로운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산들산들 바람이 되어 찾아갑니다.


  이승을 건너 저승으로도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저승에서도 이승을 바라보는 사랑입니다. 뭍에서 깊은 바다 밑까지 스미는 사랑입니다. 어떤 비행기보다 빠르고, 어떤 손전화보다 잘 이어집니다. 어떤 셈틀보다 똑똑하며 어떤 신문보다 이야기가 넘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나날이란 바로 사랑을 먹는 나날이고, 사랑을 누리는 나날이며, 사랑을 일구는 나날이리라 생각합니다.

 

 


.. “너, 건축 허가서는 받고 이 집을 짓는 거냐?” 회색 양복 아저씨가 뒤죽박죽 별장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무슨 허가서요?” 삐삐가 대답했어요. “건축 허가서! 집을 지어도 된다는 허락 말이다. 허락은 받은 거야?” 회색 양복 아저씨가 소리쳤어요. “아∼뇨!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는데요.”삐삐가 말했어요 ..  (9쪽)


  언제나 좋은 하루입니다. 구름에 가려 눈으로 볼 수 없다지만, 햇살은 늘 우리 곁에 있다고 느낄 수 있어 좋은 하루입니다. 내 곁 좋은 살붙이들 좋은 넋이 늘 나와 함께 싱그러이 숨을 쉰다고 느낄 수 있어 좋은 하루입니다. 내가 품는 꿈이 좋은 기운이 되어 좋은 바람에 실리고 지구별 곳곳으로 살가이 퍼질 수 있으니 좋은 하루라고 느낍니다. 내 이웃과 동무들이 품는 좋은 사랑이 좋은 이야기 되어 널리널리 마실을 다닌다고 느껴 좋은 하루라고 여깁니다.


  오늘 하루, 아이들은 또 무슨 놀이를 하며 스물네 시간을 누릴까요. 오늘 하루, 내 어버이와 옆지기 어버이는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붙잡으며 스물네 시간을 누리실까요.


  시골마을은 한창 바쁜 일철입니다. 시골마을은 유월도 칠월도 한창 바쁩니다. 팔월이나 구월이라 해서 바쁜 일이 잦아들지 않습니다. 학교는 칠월에 접어들며 한 달 즈음 말미를 둡니다. 교사도 숨을 돌리고, 학생도 숨을 돌립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넣고 회사에 다니는 여느 어버이들도 며칠 즈음 숨을 돌립니다.


  도시에서는 여름철 말미를 맞이해 시골로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 먼먼 나라로 찾아갈 테고, 누군가는 자가용을 이끌고 더 깨끗하고 더 맑다 하는 시골마을 골짜기나 바다나 냇물을 누리려 합니다.


  참 마땅하지만, 지저분한 시골로 찾아가서 물놀이를 할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곁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골짜기 물을 마시려 할 도시사람도 없습니다. 가까이에 제철소가 있는데 갯벌에 들어가 조개를 잡을 도시사람이 있을까요. 가까이에 송전탑이 있는데 천막을 치며 하룻밤 묵을 도시사람이 있을까요. 가까이에 고속도로가 지나거나 고속철도가 지나는데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려 할 도시사람이 있을까요.


  어느 시골이든 가장 시골다우면서 가장 맑고 깨끗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땅에 공장을 짓거나 발전소를 세우거나 쓰레기 메우는 데를 마련하거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내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사람이 먹는 밥을 일구는 시골땅 어디에도 더럽거나 지저분하거나 먼지를 내거나 하는 시설을 세우면 안 될 일입니다. 꼭 칠월이나 팔월 놀이철이나 쉼철이 아니더라도, 한 해 삼백예순닷새 늘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고운 시골마을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삶이고 목숨이며 사랑이거든요.

 

 


..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안에는 아이들 셋이 앉아 있었지요. 한 아이는 온통 빨간 머리카락에 검정색 양말과 줄무늬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어요. 그 아이를 보면 조심해야 한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 있지만, 불량배들은 책을 안 읽거든요 ..  (14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에 잉그리드 나이만 님이 그림을 빚은 《삐삐가 공원에 갔어요!》(아이즐books,2006)라 하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삐삐’는 어른이 만든 어떠한 규칙이나 제도도 따르지 않습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재미나다고 여기는 일을 즐기려 합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삶을 누리려 합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곱다고 느끼는 사랑을 나누려 합니다.


  삐삐한테는 불량배도 임금님도 경찰도 회사원도 따로 없습니다. 삐삐가 바라보기에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 같은 동무이며 모두 같은 이웃입니다. 착한 마음을 바라보면 되지, 겉모습이나 옷차림을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참다운 넋을 헤아리면 되지, 입에 발린 말이나 책에 적힌 글월이나 규칙을 욀 까닭이 없습니다. 고운 꿈을 예쁜 이야기로 주고받으면 되지, 애써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주민등록증을 앞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람하게 선 느티나무가 이백 살이건 팔백 살이건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나이가 백 살이나 이백 살 더 먹었대서 더 대단한 나무이지 않아요. 모두 느티나무예요. 쉰 살 먹은 감나무이건 열다섯 살 먹은 감나무이건, 말간 빛 어여쁜 감알을 빚습니다. 쉰 살 먹은 감나무이기에 더 달거나 맛난 감알을 맺지 않아요. 길가에 흐드러지는 들꽃 가운데 키가 1밀리미터 더 크대서 더 돋보이는 들꽃이지 않아요. 꽃망울을 한둘 더 달았대서 더 아리따운 들꽃이지 않아요. 토끼풀은 잎사귀가 셋이든 넷이든 다섯이든 언제나 토끼풀이에요. 세 잎만 토끼풀이고 네 잎은 ‘안 토끼풀’이지 않아요.


.. 어느 날 멀리 떨어진 타카투카 섬에서 닐슨 씨의 친구인 고릴라 스벤손 씨가 찾아왔어요. 정말 근사하게 생긴 고릴라였지요. 스톡홀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멋진 고릴라를 직접 볼 수 있었어요. 그래요. 삐삐가 온 뒤로 훔멜 공원에는 이렇게 볼거리가 많이 생겼답니다 ..  (21쪽)

 


  햇살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포근합니다. 해님은 늘 따사롭습니다. 꿈은 늘 믿음직합니다. 아이들은 노상 해맑게 뛰놉니다. 어른들 또한 누구나 아이들 한삶을 누리면서 무럭무럭 자라 오늘에 이르렀기에 온 하루를 맑게 빛냅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좋은 햇볕을 느끼며 생각하면 넉넉합니다. 밥상 앞에서 좋은 기운과 냄새를 느끼며 먹으면 넉넉합니다. 날마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에 방긋방긋 웃으며 좋은 이야기를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나는 날마다 따순 햇살을 누리면서 따순 말을 북돋우고 싶은 두 아이 어버이입니다. (4345.6.19.불.ㅎㄲㅅㄱ)

 


― 삐삐가 공원에 갔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잉그리드 나이만 그림,김서정 옮김,아이즐books 펴냄,2006.5.20./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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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밟고 빨래 너는 어린이

 


  빨래줄에서 춤추는 동생 기저귀를 잡아당기며 놀던 누나 사름벼리가 그만 기저귀 하나를 물던 빨래집게를 톡 떨어뜨렸다. 아버지가 이맛살 찡그리며 노려본다. 사름벼리는 싱긋 웃더니 세발자전거를 빨래줄 밑에 세우고는 밟고 올라서며 팔을 쭉쭉 뻗어 기저귀를 줄에 다시 걸치려 용쓴다. 한손으로 줄과 기저귀 끄트머리를 붙잡고는 다른 한손으로 빨래집게를 쥔다. 겨우겨우 빨래집게를 물린다. 하나를 물리고 둘과 셋을 물린다. 빨래줄에 앉아서 쉬던 제비가 놀라서 파드닥 날아간다. (4345.6.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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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앞에서 책읽기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나면 아침밥 차려야겠다고 천천히 생각한다. 풀물을 짤 만한 겨를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고, 밥과 국을 다 마련하면서 둘째 죽까지 마무리짓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기다릴까 하고 살핀다. 늘 어슷비슷하다 싶은 푸성귀로 밥을 차리면서 늘 같은 밥상을 할 수는 없다고 여겨, 조금씩 달리 마련해 보는데, 밥상을 차리기까지 두 시간쯤 훌쩍 지나가지만, 밥상 앞에 앉아 수저를 들면 십 분이나 이십 분쯤 지나면 다 먹기 일쑤이다. 밥상을 받는 사람은 밥상이 놓이기까지 어떤 땀과 품과 겨를을 들여야 하는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집에서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는 사람과, 가게에서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는 사람은, 저마다 어떤 넋과 매무새가 될까. 집에서든 가게에서든 밥상을 차리는 품과 땀과 겨를은 다르지 않다. 가게에서 더 금세 밥상을 차리는 듯하다면, 그만큼 미리 손질하는 품과 땀과 겨를이 있었을 테고, 밥상을 차리고 나서 ‘밥손이 못 보는 자리’에서 뒤를 치우는 품과 땀과 겨를을 많이 들여야 하리라.


  내가 차린 밥상을 아주 가끔 사진으로 담는다. 나 스스로 이 밥상을 사진으로 찍지 않으면 그날그날 밥상을 차린 줄 생각조차 못 하리라 느낀다. 곰곰이 돌이키면, 내 어머니가 차리던 밥상을 환하게 떠올리자면, 따로 사진으로 찍든 밥상을 찬찬히 살피면서 마음으로 새기든 해야 한다. 스스로 밥상을 차리면서 내 어머니가 어떻게 밥상을 꾸몄는가를 되살려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으레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맛스럽고 멋스럽다는 밥상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런데, 막상 이녁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린 수수하거나 투박한 밥상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수하거나 투박한 밥상을, 날마다 으레 함께 누리는 밥상을, 오랜 옛날부터 죽 대물림하면서 차리던 밥상을, 기쁘고 새롭게 맞아들이며 사진으로도 찍고 마음으로도 찍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임금님 푸짐한 밥상도 밥상이요, 니어링 부부 수수한 밥상도 밥상이지만, 여느 살림집 여느 밥상도 밥상이다. 삶을 살리고 사랑한 밥상은 아직 역사책에도 문화책에도 요리책에도 사진책에도 문학책에도 실리는 법이 없다. (4345.6.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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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18 22:54   좋아요 0 | URL
ㅎㅎ 소박하지만 맛나 보이는 밥상이네요^^

파란놀 2012-06-19 07:27   좋아요 0 | URL
그냥... 풀밥상입니다 ^^;;

책읽는나무 2012-06-19 10:18   좋아요 0 | URL
점심때 시원한 마루에 걸터앉아 저런 밥상을 받아 먹고 싶을때가 있어요.
특히 여름에요.

어린시절엔 마루에 앉아 마당에 심어진 텃밭을 바라보며
앉은뱅이 밥상을 차려 먹었는데..^^
가끔씩 그랬던 시절이 생각나요.님의 밥상을 보니 문득 어린시절이 생각나네요.^^




파란놀 2012-06-19 14:13   좋아요 0 | URL
오늘도 내일도
시원한 밥상 누려 보시기를 빌어요~~
좋은 하루예요~
 

‘절대’와 ‘꼭’
[말사랑·글꽃·삶빛 15] 익숙하게 굳어진 말투

 


  아이들과 살아가며 어버이인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아이들이 배우는 말이 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인 내가 하는 말을 늘 들으면서 아이들 나름대로 생각을 나타내고 마음을 드러내는 말마디로 삼습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지내는 어버이한테서 온갖 말을 듣습니다. 어느 말은 곧장 알아차리고, 어느 말은 하나도 못 알아차립니다. 어느 말투는 즐겁게 따라하고, 어느 말투는 조금도 따라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활짝 웃으며 말할 때에 아이 가슴에는 활짝 피어나는 웃음꽃이 스며듭니다. 어버이가 잔뜩 찡그리며 말할 적에 아이 가슴에는 잔뜩 그늘진 짜증스러움이 배어듭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 지식’이 아니라 ‘말 삶’, 곧 말을 나누는 삶과 말에 담는 삶과 말로 일구는 삶을 물려주어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볼 때에도 온갖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만화나 영화를 보면서 갖가지 말을 익힐 수 있어요. 그런데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한 아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떠한 마음도 사랑도 꿈도 없이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흐르기만 하는’ 말이 나올 뿐입니다. 이와 달리,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노상 ‘한 아이’만 바라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은 여러 사람한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낯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 집 아이가 듣도록 들려주는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땅 어버이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으레 유아원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겨 버릇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집에서 삶을 보여주고 가르치며 물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한국땅 어버이는 아이들과 살가이 어울릴 겨를이 너무 적습니다. 꼭 아이한테 맞추어 일자리를 바꾸거나 일거리를 줄여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이들이 즐겁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자면 돈만 많이 벌어야 하는 줄 잘못 생각합니다. 아이들 누구나 돈 아닌 사랑을 먹으며 자라야 하는 줄 미처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어느 회사에서든 ‘육아휴직’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돌볼 말미’를 마련합니다. 아이는 어머니만 낳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머니만 돌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두 어버이가 함께 낳고, 두 어버이가 나란히 돌봅니다. 곧, ‘아이를 돌볼 말미’란 두 어버이가 똑같이 받으면서 똑같이 마음을 기울여야 올바릅니다. 그나저나, 집에서든 조산소에서든 병원에서든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돌볼 말미’가 끝나지 않아요. 바로 이때부터 할 일과 맡을 몫과 나눌 사랑이 잔뜩 기다려요. 그래서 두 어버이는 아이를 낳기 앞서 둘이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누어 맡으면서 살림을 꾸려야 좋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한테 들려줄 말을 살피고, 아이한테 보여줄 집과 마을을 헤아리며, 아이가 누릴 옷과 밥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갓난쟁이일 적에는 갓난쟁이 몸에 맞게 젖을 물리고, 이가 나고 차츰 크면서 젖떼기밥을 마련하며, 젖떼기밥을 지나 어른과 똑같이 밥상에 앉아 밥을 먹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아주 마땅히, 아이 나이에 걸맞게 아이한테 들려주어 아이가 받아들이며 아로새길 말을 가누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지으며 말문을 열어 줍니다. 이 같은 몫과 삶과 넋은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떠넘길 수 없어요. 어느 어버이나 흐뭇하며 홀가분하고 즐거이 맡으면서 누릴 노릇이에요. 저마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꿈과 사랑을 누리며 어여삐 자라도록 이끌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말만 듣고 배우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좋으면서 즐거울까를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래만 배우지 않고 노래에 담는 삶결을 함께 배워요. 아이들은 한글만 익히지 않고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에 싣는 삶넋을 함께 익혀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서 내놓을 때에도 배만 채우는 밥을 내놓지 않습니다. 아이가 기쁘게 받아먹을 사랑을 함께 담아 내놓아요. 아이가 입는 옷을 빨래할 때에도 아이가 누릴 사랑을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길을 거닐 때에도 아이가 맞아들일 사랑을 헤아립니다. 모든 삶은 사랑이고, 모든 이야기는 사랑이며, 모든 말은 사랑이에요.


  이제 초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의무교육으로 삼아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아직 들지 않았어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들을 뿐 아니라, 영어 노래와 영어 만화를 봅니다. 한국말이나 한국글(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영어와 알파벳에 더 익숙해지고 말아요.


  우리 아이들이나 우리 어른들은 영어를 반드시 잘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국땅 사람들은 누구라도 영어를 배워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국땅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흙을 일구고 버스를 몰며 고기를 낚고 나물을 캐며 빗자루를 들고 사무실 펜대를 굴릴 사람들 모두 영어를 배우는 데에 삶을 들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외국말이거든요. 꼭 배워야 할 외국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바라면서 찾고, 스스로 느끼면서 익힐 외국말일 때에 누구라도 즐겁게 배우면서 살뜰히 맞아들이리라 생각해요. 영어가 되든 일본말이나 중국말이 되든, 러시아말이나 핀란드말이 되든, 프랑스말이나 포르투갈말이 되든, 스스로 좋아하면서 아끼는 매무새로 익힐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한편, 외국말을 익히기 앞서, 정작 한국사람으로서 익힐 말이란 내 이웃을 아끼며 사랑하는 넋으로 어깨동무할 말이어야지 싶어요. 이를테면, ‘손말(수화)’과 ‘점글(점자)’이에요. 내 곁 좋은 동무와 이웃을 아낄 수 있게끔, 한국땅 어린이집부터 손말과 점글을 함께 이야기하며 익히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또한, 전국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표준말만 쓰도록 하는데, 고장마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온 고장말을 서로서로 익힐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서울 아이도 제주말과 전라말을 익혀야지 싶어요. 광주 아이도 경상말과 강원말을 익혀야지 싶어요. 대구 아이도 충청말과 전라말을 익혀야지 싶어요. 외국에 갔을 때에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야 그 나라와 살가이 사귄다고들 하는데, 정작 한국사람 스스로 전라도에 가든 경상도에 가든 제주도에 가든, 전라말이나 경상말이나 제주말을 슬기롭게 깨닫거나 기쁘게 주고받지 못해요. 배우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니까요.


  파비오 제다 님이 빚은 푸른문학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를 읽다가 14쪽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를 만나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어.” 하는 대목을 읽고, 18쪽에서 “그런 호텔과는 다르다. 절대 비슷하지 않다.”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절대(絶對)’라는 낱말이 잇달아 나와 눈과 입에 걸리적거립니다. 이 글월에 나오는 ‘절대’는 ‘절대로’와 같은 낱말이요, 말뜻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입니다. 그러니까,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반드시’라는 말마디를 한자말로는 ‘絶對’나 ‘絶對로’로 적바림한다는 소리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사람은 영어를 반드시 배우고 반드시 잘 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슬기롭게 찾으면 맑게 빛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배울 영어일 수 없고, 학교에서 시키니까 대학입시만 바라보는 시험공부 굴레에 갇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어 즐기는 공부여야지, 대학교에 가야 하니 외워야 하는 시험문제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스러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하고 사랑스레 나눌 말을 익힐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릴없이 받아들일 교과서 지식이나 시험공부 정보일 수는 없고, 티없이 깨우칠 삶이자 넋이자 말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슬픈 굴레에 익숙해지면 슬픈 굴레에 갇히며 딱딱한 말이 됩니다. 아픈 생채기를 달래지 않으면 아픈 생채기가 곪으며 메마른 말이 됩니다. (4345.6.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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