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신부 1
말리 지음 / 길찾기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보고 싶은 모습을 바라본다
 [만화책 즐겨읽기 157] 말리, 《도깨비 신부 (1)》

 


  누구나 스스로 보고 싶은 모습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안 바라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겪고 싶은 모습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겪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안 바라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알거나 느끼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모르거나 못 느낀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배운 사람은 배운 대로 바라봅니다. 배운 대로 바라보기에 배운 틀에 맞추어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바라보고, 아는 만큼 느낀다,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이 얘기란 사람들 누구나 아는 대로 바라볼 때에는 아는 틀에 갇힌다는 소리입니다. 아는 만큼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느낌을 좇을 수 있다면, 이때에는 어떠한 틀에도 갇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쳤던 이오덕 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곧 ‘어떤 아는 틀(지식)로 어느 한 가지(사물)를 바라보지 않을 때에는 누구나 시를 쓴다(생각을 키운다)’는 뜻이에요. 오늘날 사람들이 좀처럼 시를 못 쓸 뿐 아니라, 애써 시를 쓰더라도 생각힘이 드러나지 못하는 까닭은, 자꾸 지식으로 재고 따지거나 손재주를 부리기 때문이에요.


- ‘그 사람이 아빠란 건 알았지만, 내가 보고 있던 건 아빠가 아닌데. 엄마의 유골을 따라와 문전에서 서성대는 저것들.’ (7쪽)
- “그래, 끝자락에 서니 네 인생이 그리 안 되어 보이나?” “아니, 후회 없소.” (148∼149쪽)

 

 


  동백꽃을 바라보면서 ‘동백꽃은 몇 월에 피고 빛깔은 어떠하며 열매나 줄기를 어떠한 한약재로 쓴다’ 같은 지식을 섬긴들, 동백꽃이 얼마나 곱거나 나한테 좋은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아니, 동백꽃을 알 수 없습니다. 동백꽃을 바라볼 때에는 그저 동백꽃이네 하고 느끼면 돼요. 아니, 동백꽃이라 하는 이름조차 모르면서 느끼면 돼요. 곱다 하면 왜 고운가를 생각하고 내 눈에 도드라지게 뜨인다면 왜 내 눈에 이렇게 돋보일까 하고 생각하면 돼요.


  가을날 들판은 누런 물결이 출렁입니다. 어느 시인이 가을 들판을 ‘황금 물결’이라 노래했대서 가을 들판 누런 빛깔을 굳이 ‘황금 물결’이라 여기며 바라볼 까닭은 없어요.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생각을 살찌우면서 바라보면 돼요. 그리고, 이 가을 들판을 ‘황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운동경기에서 말하는 ‘금메달’을 굳이 ‘금’ 목걸이라 하지 말고 ‘가을벼’ 목걸이나 ‘봄보리’ 목걸이라 가리킬 수 있어요.


- “이제부터 너랑 난 자매라더구나. 가족 만들기 참 쉽지 뭐야. 근데 네 이름이 선비라구?” “그래. 넌 민아지?” “뭐, 지금은 신민아이지만 이전엔 김민아였어. 네 아빠 핏줄은 아니지만, 내 이름엔 어째 신씨가 더 어울리는 거 같지 않니?” (21쪽)

 

 


  보고 싶은 모습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무엇을 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늘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키울 때에 즐겁습니다. 나 스스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고 꿈꾸면서 사랑을 빚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내가 돌보는 삶결에 따라 내 눈결이 거듭납니다. 내가 보살피는 사랑에 따라 내 눈빛이 새롭습니다. 내가 얼싸안는 꿈에 따라 내 눈무늬가 달라져요.


  나는 환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는 곱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는 즐겁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환한 눈결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고운 눈빛으로 동무와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내 즐거운 눈무늬로 온누리를 따사로이 보듬을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모습을 보기 때문에, 나는 늘 사랑을 바라보면서 지구별 곳곳에 사랑이 무럭무럭 싹트도록 할 수 있어요. 보고 싶은 모습을 보는 터라, 나는 늘 꿈을 바라보면서 지구별 어디에서나 예쁜 꿈이 자라도록 도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자꾸 전쟁 싹이 트도록 내몰아요. 누군가는 자꾸 대학입시지옥이 끊이지 않도록 몰아세워요. 누군가는 자꾸 돈벌이 싸움이 피튀기도록 닦아세워요.


- “허! 네가 정녕 ‘듣는 자’가 맞기나 한 것이냐? 네 눈엔 믿음은 없고 무슨 짓을 해서건 기어오르려는 저급한 탐욕만이 읽히거늘! 날 불러낸 것도 네 그 더러운 것을 위함이었더냐?” (69쪽)
- “니, 그거 아나? 다른 사람들은 용 같은 거 못 본다.” “정말?” “그래.” “니, 사람들한테는 그런 거 뵌다고 말하지 말그래이.” “왜?” “사람들은 겁이 많은 기다. 지들이랑 안 똑같으면 겁을 집어묵는 기다.” (97쪽)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운 하루일까요. 누구와 이웃할 때에 좋은 삶일까요. 어떤 꿈을 품을 때에 빛나는 목숨일까요. 누구와 사랑할 때에 좋은 마을일까요.


  내 오늘을 바라보아 주셔요. 저마다 내 작은 보금자리를 바라보아 주셔요. 내 손바닥을 바라보고 내 발바닥을 바라보아 주셔요. 저마다 내 고운 몸뚱이를 쓰다듬어 주셔요.


  경제성장율을 높인다든지 수출액수를 키워야 하지 않아요. 시험점수를 높인다든지 자격증 숫자를 늘려야 하지 않아요. 내 꿈을 키워야지요. 내 사랑을 빛내야지요. 내 목숨을 누려야지요. 내 삶을 즐겨야지요.


- “느거 할머니는 마을에 몸이 묶여 갖고 평생을 한 번도 이 촌벽지 바닥에서 벗어나도 못했다. 어디 갈 차비라도 할 양이면 마을 장군이 그리 몬 살게 굴어서 들어앉히고, 들어앉히고 하는 기라. 생각해 보기라. 느거 엄마 아파서 죽을 때도 서울로 보러 가도 몬했으니 속으로 을매나 억장이 무너졌겠노. 근데 이번에 그라두만. ‘인자 다 끝났소.’” (157∼158쪽)
- ‘할머니 바보야? 이 따위로 대접받을 거였으면서 뭣 하러 그렇게 사람들 속사정 들어  고, 빌어 주고 그랬어. 나보곤 맨날 친구 많이 사귀라고 그래 놓고 이게 뭐야? 할머니, 할머니도 없잖아. 이렇게 아무도!’ (162쪽)

 


  말리 님 만화책 《도깨비 신부》(허브,2004) 첫째 권을 읽습니다.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 ‘듣는 사람’과 ‘못 듣는 사람’이 찬찬히 나옵니다. 누군가는 무엇을 보고, 누군가는 무엇을 못 봅니다. 무엇인가 보는 사람은 다른 무엇을 못 보지만, 무엇인가 못 보는 사람은 다른 무엇을 봅니다.


  이를테면 바닷가 미르님을 보는 사람이 있되, 바닷가 미르님을 못 보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에서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보는 사람이 있고, 도시에서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이 있어요. 시골집 나무한테서 좋은 이야기를 느끼면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시골집 나무나 풀을 못 느끼거나 안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이는 주식시세표와 은행계좌를 바라볼 테고, 어떤 이는 푸른 들판을 바라볼 테지요. 어떤 이는 문제집과 참고서를 바라볼 테고, 어떤 이는 시집 한 권 바라볼 테지요.


  스스로 누리고 싶은 대로 바라보는 삶입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대로 바라보는 하루입니다. 스스로 꾸는 꿈대로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4345.6.23.흙.ㅎㄲㅅㄱ)

 


― 도깨비 신부 1 (말리 글·그림,허브 펴냄,2004.7.10./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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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깨비 신부] 야간 병원약사가 그린 만화! 도깨비 신부
    from Medical Writer 쿠쿠쿠의 행복이야기 2012-08-28 17:11 
    어찌하다 "도깨비 신부"라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도깨비라는 소재가 신선하게 느껴졌고, 순정만화라고 되어 있는데 순정만화 같지..
 
 
 


 옷과 책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입을 옷입니다. 남이 이 옷을 입으라 해서 이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남이 저 옷이 예쁘다 말하기에 저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내 느낌이 좋은 옷을 입고, 내가 아끼며 사랑할 만한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중학교에 들 적에 학교옷을 똑같이 맞추어 입힙니다. 머리카락 길이와 모양을 똑같이 잘라 맞춥니다. 스스로 좋아하기에 학교옷을 입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기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요.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리라 생각하며 학교옷을 맞추어 입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여쁜 꿈과 사랑을 키우리라 느끼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요.


  아이들이 맑게 빛나며 환하게 웃도록 이끌려고 교과서를 마련하는 어른일는지 아닐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밝게 생각하며 사랑스레 꿈꾸도록 돕는 대학입시 굴레에 내모는 어른일는지 아닐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가장 좋아할 만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합니다. 이런 지식을 외우도록 읽을 책이 아닙니다. 저런 시험을 잘 치르도록 하자며 곁에 둘 책이 아닙니다. 처세도 경영도 자기계발도 책이 될 수 없습니다. 책이란, 삶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책이란,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책이란, 삶을 스스로 일구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커다란 회사에서 몇 가지 이름을 붙인 옷을 공장에서 찍어서 내다 팝니다. 옷가게는 넘치지만, 사람들 스스로 사랑할 만한 옷을 누군가 만들어서 즐겁게 다루는지 아리송합니다. 오늘날 책방에는 수많은 책이 알록달록 꽂히지만, 이 책들이 참으로 사람들 넋과 얼을 보듬으며 사랑과 꿈을 북돋울 만한지 알쏭달쏭합니다. (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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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누나 곁 물놀이

 


  바가지에 물을 담아 신을 빨래한다고 노는 누나 곁에 달라붙어 저도 물놀이를 하겠다는 산들보라. (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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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6-22 14:25   좋아요 0 | URL
더운 여름날엔 물 갖고 노는 게 최고!!!!!
다른 장난감이 필요없죠. ㅋ

파란놀 2012-06-22 17:08   좋아요 0 | URL
네.. 그렇기는 한데, 아이들은 끝없이 노느라
에구구...
 

 

 빨래 짜는 어린이

 


  동생이 쉬를 한 바지를 어머니가 빨래한다. 아이는 이 옷을 제가 짜겠다며 들고 흔드는데, 용을 쓰듯 짜고 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어떻게 비틀어야 제대로 짜서 물을 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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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말

 


  아침에 밥을 먹이는 자리에서는 그렇게도 밥을 안 먹으려고 땡깡을 부리며 딴짓을 하던 아이가 낮 한 시 무렵 부엌 밥상 제 밥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더니 아빠 무릎에 털썩 앉고는 밥만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배가 고팠겠지요? 진작부터 다른 반찬하고 밥을 먹으면 좋았으련만. 아빠하고 함께 밥먹는 자리에서 다른 데에 한눈 안 팔고 신나게 밥을 먹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렇게라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아직 많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더 잘 알겠습니까. 더 놀고 싶고 더욱더 놀고 싶으며 더더 놀고 싶을 뿐인 이 작고 가녀린 목숨이 놀고 싶다고 하는데 억지로 밥숟가락 들도록 다그치며 입에 밥을 퍼 넣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배가 고플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입니다. 놀다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배는 고프고 잠도 찾아와 꺽꺽거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아이 스스로 밥을 먹어야겠다 싶을 때 ‘옳지!’ 하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요즈음 이렇게 한참 졸릴 무렵에 밥을 먹으면서 스르르 잠들곤 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된 사람으로서 다른 일은 거의 붙잡지 못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오던 글쓰기조차 하루에 한두 꼭지 쓰기마저 벅찹니다. 아이 보느라 바쁘고 힘들며 고단합니다.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 셈틀을 켜고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는 애 아빠도 드러눕고 싶습니다. 허리가 결리고 두 눈은 감기며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해째 이와 같이 살면서 제 둘레 사람들한테 편지 한 번 변변히 띄우지 못합니다. 받은 편지에 답장조차 거의 못 씁니다. 바쁘며 고된 나날을 보내면서 아이 키우는 다른 여느 어버이들은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모두들 우리 집식구처럼 고달프지는 않을 터이나 바쁘고 힘들기는 서로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바쁘고 힘들다지만 어여쁘며 착한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새힘을 얻지 않느냐 싶습니다.


  고이 잠든 아이는 오줌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오줌을 징하게 눕니다. 이 바람에 아버지가 덮고 자야 할 이불이 홀라당 젖었습니다. 날이 좀 덥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이불이 다 마를 때까지 자기 어렵습니다. 그래, 이런 오줌싸기를 바라보면서도 아이를 나무랄 노릇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좀 늦게까지 글 하나 붙잡고 용을 쓰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깊은 밤에 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합니다. 어느 어버이이든 아이한테 못된 밥을 먹이며 ‘아이가 삭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엉터리 책을 읽히며 ‘아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앞에서 못된 말을 하거나 얄궂은 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하거나 엉터리 말을 하면서 ‘아이가 좋은 말을 골라서 잘 배울 테지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말을 바르게 가누고 생각을 옳게 가다듬으며 삶을 아름다이 추스르고자 힘쓰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니까, 아이한테이든 나 스스로한테이든 아름다이 말하고 알맞게 말하며 착하고 참되게 말하는 매무새를 잃어도 괜찮을는지 궁금합니다.


  더 높은 이름값만 있으면 되기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남 앞에서 우쭐거린다든지 남들을 팔아 제 밥그릇을 채우면 된다고 여기면서 내 속삶을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지는 탓에 자꾸자꾸 말과 넋과 삶이 알차거나 훌륭한 길하고는 멀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날 시인 김수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우리 낱말 열 가지를 든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김수영 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우리 낱말 가운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하고 동무들하고 신나게 떠들며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열 가지 고르기란 만만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 가지만 고르는 일은 더욱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쏠’이라는 낱말 하나를 알아내어 아끼는데, 우리 형이 쓰는 ‘쏠’이라는 낱말을 입으로 굴리거나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우리 누리에 이렇게 어여쁘고 깊은 낱말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부럽고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낱말로 무엇을 꼽아야 할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좋아할 만한 낱말이란,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이나 엄마나 누나나 잎이나 일이나 땀 …… 이런저런 낱말들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지 어느덧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내 고등학생 때에는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면, 오늘날에는 어떤 낱말을 좋아하며 곁에 두는가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즐겁게 꼽을 만한 낱말로 무엇이 있을까 하나하나 살핍니다.

 

 어린이, 하늘, 흙, 물, 바람, 햇살, 마을, 꿈, 손, 빨래.

 

  지난날에도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나로서는 으레 쓰는 낱말이 좋고, 내 삶에서 누리는 낱말이 좋습니다. 내 생각을 드러내는 낱말이 좋고, 내 생각을 이끌 낱말이 좋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할머니라는 낱말을 더없이 좋아할 수 있고, 이불이라는 낱말을 참으로 좋아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나 섬돌이나 지팡이라는 낱말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먹다·하다·쓰다’ 같은 움직씨를 좋아할 수 있겠지요.


  나로서는 늘 쓰는 낱말이 반갑고, 언제나 입에서 굴리는 낱말이 좋으며, 아이와 부대끼며 떠올리거나 되뇌는 낱말이 고맙습니다. 내 삶과 어깨를 겯는 낱말이 즐겁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낱말이 아름답습니다. 딱히 수수하다거나 투박하다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여느 낱말이 아주 살갑고 푸근합니다. (4343.5.8.흙./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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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2 10:15   좋아요 0 | URL
몸이 아플 때에도 이렇게 고운 글을 쓰시네요...

(맨윗줄의 '땡깡'이란 말을 쓰셨네요~ 저도 이제 저 말을 써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된장님도 쓰셨으니까~ ^^)

파란놀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아파도 살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나저나 자도 일해도
아프기는 똑같으니
그냥 일이든 뭐든 하며 살기는 하네요......

글샘 2012-06-22 09:40   좋아요 0 | URL
뗑깡 (일본어로...) 간질, 지랄병... 이런 말인데요... ㅠㅜ

hnine 2012-06-22 11:5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웃자고 썼답니다~ ^^

파란놀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땡'으로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기에 사투리인가 했는데, 일본말이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