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애지시선 16
김해자 지음 / 애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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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하루를 꿈꾸고 싶어
[시를 노래하는 시 24] 김해자, 《축제》


 

- 책이름 : 축제
- 글 : 김해자
- 펴낸곳 : 애지 (2007.11.15.)
- 책값 : 8000원

 


  궂은 날씨에는 빨래가 안 마릅니다. 하루 내내 두어도 도무지 보송보송해지지 않습니다. 해님이 며칠 비치지 않아도 집안은 축축합니다. 해님이 따사로운 손길을 보내지 않을 때에는 지구별이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서로서로 알뜰히 아끼고 사랑하면서 즐거이 얼크러질 때에 비로소 예쁘게 살아갈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햇볕을 쬐면서 살아갑니다. 햇볕을 쬐지 못하면 얼굴이며 살갗이며 파리해집니다. 아픈 몸빛이 됩니다. 밥을 먹어 영양소를 몸에 넣더라도, 사람다운 넋을 북돋우는 햇볕을 못 먹을 때에는 자꾸자꾸 몸앓이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도시 사회는 사람들이 햇볕을 못 쬐도록 가로막습니다. 버스이든 지하철이든 햇볕하고 동떨어집니다. 시외버스이든 고속버스이든 통유리와 가리개로 햇볕을 막습니다. 건물마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느 건물이든 한낮에도 전기로 등불을 켭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등불에 익숙해집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아니더라도 살림집부터 늘 등불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 입시지옥 굴레에 갇히면 시멘트 감옥과 같은 데에서 그저 형광등 불빛에 길들어야 합니다.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학원버스가 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고, 학원은 학교와 똑같이 시멘트 감옥과 같으면서 형광등 불빛만 환합니다.


..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 20년의 생애 ..  (인연)


  낮이 없는 도시입니다. 해가 멀쩡히 뜬 낮이라 하더라도 건물이 해를 가립니다. 건물 안쪽은 햇볕도 햇빛도 스미지 못합니다. 전기가 나간다면 건물은 온통 새까맣습니다. 죽음과 같은 어둠이 됩니다. 지하철도 지하상가도 모두 죽음과 같은 어둠입니다. 가게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전기를 먹는 형광등 불빛으로 환하게 밝힐 뿐입니다.


  도시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따로 없습니다. 어디에나 시계가 붙고, 언제라도 시간을 볼 수 있으나, 도시에서는 시계나 시간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낮 열두 시라도 깜깜할 수 있는 도시요, 밤 열두 시라도 훤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밤에도 불빛으로 하얀 땅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문명이요 발전이라고 여기는 듯한데, 더구나 남녘과 달리 북녘은 온통 새까맣다며 비웃거나 불쌍히 여기는 듯한데, 외려 밤에도 낮처럼 환한 남녘땅이야말로 슬프거나 바보스러운 모습이리라 느껴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밤에 쉬지 못한다면, 밤을 밤처럼 누리지 못한다면, 사람들 살아가는 터전은 얼마나 제구실을 한다고 할 만할까요.


.. 양심을 철창에 집어넣는 한 조국이라 부르지 말자 ..  (겨울 편지)


  예쁜 하루를 꿈꾸고 싶습니다. 생각이 빛나고 사랑이 물결치는 하루를 꿈꾸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열어, 좋은 사랑으로 밥을 짓고는, 살붙이하고 예쁘게 나눌 삶을 꿈꾸고 싶습니다. 좋은 웃음으로 말문을 열고, 좋은 이야기로 마음을 북돋우며, 좋은 손길로 따스함을 나눌 삶을 꿈꾸고 싶습니다.


  좋은 햇볕을 누리고 싶습니다. 좋은 햇볕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좋은 햇볕에 내 몸이 알맞게 타고 싶으며, 좋은 햇볕에 빨래가 보송보송 마르기를 바랍니다. 좋은 햇볕에 나무와 풀과 꽃이 푸르게 자라기를 빕니다. 좋은 햇볕으로 좋은 나락이 익어 좋은 사람들 좋은 밥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햇볕을 누리는 사람들이 좋은 사랑을 나누면서 좋은 누리를 일군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살로 태어나 살 먹고 살 부벼 살 낳으신 어무이 / 당신이 빚어놓은 이 살로 이 삶 다하도록 살다 / 살 다 벗어던져 아픔 없는 세상에서 만냅시더 고마 ..  (살)


  여름 장마를 맞이합니다. 며칠이고 하늘이 찌부둥합니다. 볕이 들지 않으니 집안이 눅눅합니다. 집안이 눅눅할 뿐 아니라 마당에 내놓는 빨래가 제대로 마르지 않습니다. 해를 보지 못하는 빨래는 바람만으로는 말끔히 마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기계와 저런 장치를 쓰더라도 빨래가 싱그러이 마르도록 할 수는 없어요. 어떤 기계도 햇볕처럼 빨래를 말리지 못해요. 어떤 장치도 해님처럼 풀과 꽃과 나무를 살찌우지 못해요. 어떤 과학도 햇빛처럼 따사로우면서 맑은 빛을 흩뿌리지 못해요. 어떤 기술도 햇살처럼 상큼하면서 아름답지 못해요.


  여러 날 만에 저녁을 앞두고 해가 비춥니다. 아, 좋아라. 아, 고맙구나. 아, 기뻐라. 아, 예뻐라. 방에 두었던 빨래를 몽땅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둘째 아이가 쉬를 누어 젖은 깔개랑 발닦개를 밖으로 들고 나옵니다. 마당에 죽 넙니다. 해를 바라봅니다. 두 시간쯤 해가 비출 듯합니다.


  둘째 아이가 오줌을 누어 빨래고 쌓은 빨래를 합니다. 신나게 빨래를 하고 신나게 빨랫줄에 넙니다. 다시 해를 바라봅니다. 해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부디 저녁에도 밤에도 구름이 걷힌 맑은 하늘로 우리 마을 예쁘게 보듬어 주렴, 하고 노래합니다. 밤에 별을 본 지도 오래된 듯한데, 별 좀 구경하게 해 주렴, 하고 속삭입니다.


.. 무덤처럼 컴컴한 골방에서 20년 / 게쉬타포에 쫓기는 안네처럼 살다 늙어간 여자 / 건물이 헐리고 타워팰리스가 들어선다는데 청계천엔 / 고기가 노는 맑은 물도 흐른다는데 손님 끊긴 지 / 오래인 다방 깨진 수족관엔 / 인조 물풀만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데 ..  (황학동 안네)


  집안에 널던 옷가지를 마당으로 내놓고, 아침부터 쌓인 빨래를 말끔히 하고 나니, 낮잠을 자던 첫째 아이가 일어납니다. 살짝 한갓지게 보낼 수 있을까 싶었으나, 이제부터 아이하고 놀아야지요. 그런데 아이는 잠이 덜 깬 모습입니다. 아이더러 졸리면 더 누워서 자도 되고, 다 잤으면 즐겁게 일어나서 놀면 된다고 말합니다. 아이는 조금 더 방바닥에 비비며 뒹굴다가 일어납니다. 아이가 아침을 제대로 안 먹고 노느라 배고플 수 있겠다 싶어, 아버지는 네가 아침에 남긴 밥을 조금 먹었어, 너도 배고프면 네가 아침에 안 먹은 밥을 먹으면 돼,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슬금슬금 부엌으로 갑니다. 부엌에 가서 아이가 아침에 남긴 밥을 먹습니다.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이야 네가 아침에 밥을 차려서 함께 먹을 때에 이렇게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덜 배고프거나 무언가 다른 데에 마음이 있어 아침에 밥을 제대로 안 먹었을 수 있어요. 아이가 밥을 예쁘게 먹도록 어버이로서 예쁘게 이끌어야 했다 할 수 있고요. 더 헤아린다면, 아이가 즐겁게 먹을 만한 밥을 옳게 못 차렸으니 아이가 밥을 제대로 안 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즐겁게 먹을 만한 밥차림이 되도록 어버이부터 스스로 밥짓기와 삶짓기를 살가이 못했기에, 이 흐름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졌을 수 있어요.


  좋은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누릴 좋은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나눌 좋은 말을 생각하고, 아이한테 들려줄 좋은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가 좋은 하루를 누린다면 내 입에서 흐르는 말은 저절로 좋은 말이 될 테고, 내가 좋은 하루를 빚는다면 내 몸사위는 저절로 좋은 몸짓이 될 테지요.


.. 한 집 건너 지하공장 / 미싱 소리 드르륵대던 곳 / 사철 시꺼먼 하늘만 내려앉던 청천동 / 십자약국 골목 파란 대문 / 빨간 닭장집 안 녹색 부엌문 / 방문 벽에 걸린 푸른 작업복 / 왼편에 하얀 명찰 생산2과 김정례 ..  (승천)


  시집 《축제》를 읽습니다. 시를 쓴 김해자 님은 “지난날 시는 내게 어렵고 황송한 손님이었다(시인의 말).” 하고 말합니다. ‘황송(惶悚)’은 어떤 뜻일까 싶어 국어사전을 찾아봅니다. “분에 넘쳐 고맙고도 송구하다”를 뜻합니다. ‘송구(悚懼)’는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를 뜻한다는데 “‘미안하다’, ‘죄송하다’로 순화”할 말이라는 풀이말이 덧달립니다. ‘분(分)’은 ‘분수(分數)’를 뜻한다는데, ‘분수’는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뜻한답니다. 그러니까, ‘황송’이란 “주제에 넘쳐 고맙고도 거북스럽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시가 어떻게 어렵고 고마우면서도 거북스러운 손님일 수 있을까 싶으나, 스스로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참말 시는 이와 같이 찾아오는 손님이리라 느낍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시가 자리잡고 소설이 깃들며 수필이 스미겠지요. 기쁘게 여기면 기쁜 시요, 해맑게 여기면 해맑은 시이며, 재미나게 여기면 재미난 시입니다. 슬픔을 달래는 벗으로 여기면 슬픔을 달래는 시입니다. 웃음을 나누는 동무로 여기면 웃음을 나누는 시가 됩니다. 밥처럼 삼으면 밥과 같은 시이고, 노래처럼 삼으면 노래와 같은 시예요.


  삶은 시가 됩니다. 삶은 시로 드러납니다. 삶은 시로 갈무리합니다. 삶은 시로 태어나면서 내 새로운 숨을 불어넣습니다.


  시집 《축제》는 시를 쓴 김해자 님 삶입니다. 김해자 님이 살아온 나날을 적은 시요, 김해자 님 스스로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일기입니다. 일기에는 기쁜 웃음도 적으나 슬픈 눈물도 적습니다. 일기에는 흐뭇한 보람도 적으나 고단한 땀방울도 적습니다. 어느 날에는 연필 쥘 기운마저 없이 건너뛸 테고, 어느 날에는 모처럼 한갓지게 말미를 내어 밀린 이야기를 줄줄이 적겠지요.


  곧, 김해자 님으로서는 하루하루 어려우면서도 고맙고 다시금 거북스러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살아갔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하루이든 저런 하루이든 김해자 님은 당신 삶을 잔치라 받아들이며 ‘잔치(축제)’라는 싯말을 길어올렸으리라 느낍니다.


.. 선혈이 낭자한 조폭 영화를 보며 / 아름다울 미와 나라 국에 대해 제3자의 본분 내에서 / 진지하게 고찰하며 힘없는 나라의 죄와 / 힘 있는 나라의 정의에 대해 명상했다 ..  (먼 나라)


  나도 내 삶을 들여다본다면 내 하루는 잔치와 같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새벽녘은 잔치입니다. 환한 낮이든 구름이 가득한 장마철이든 잔치입니다. 구성진 들새 노랫소리이든 수다스러운 멧새 노랫소리이든 잔치입니다. 어린 아이들 놀음놀이도 잔치요, 이 아이들 치닥거리도 잔치입니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비질이랑 걸레질을 하는 하루도 잔치예요.


  나는 밥잔치를 하고 빨래잔치를 합니다. 놀이잔치이든 노래잔치이든 내 깜냥껏 내 하루를 누리면서 벌입니다. 자전거잔치도 하고 걷기잔치도 합니다. 옆지기는 뜨개잔치를 하고, 서로서로 곧잘 책읽기잔치를 합니다. 읍내로 마실잔치를 다닙니다. 바닷가로 바닷놀이잔치를 떠납니다. 밭흙을 뒤집으며 흙잔치를 합니다. 노랗게 익는 매화나무 열매를 줍거나 따며 열매잔치를 합니다.


  즐거울 때에도 잔치이고, 슬플 때에도 잔치입니다. 홀가분할 때에도 잔치이며, 고단할 때에도 잔치입니다. 아이들 씻기는 하루도 잔치예요. 아이들 손발톱을 깎이는 하루도 잔치예요. 어느 하나 잔치이고, 어느 하나 잔치 아닐 수 없습니다.


.. 전봇대마다 취업공고판마다 기웃거리던 길 / 한 줄에 꿰인 호박꼬지처럼 줄줄이 앉아 작업하던 곳 / 손에 손으로 에이스와 새우깡 따뜻하게 건네지던 곳 / 점심시간 담벼락 아래로 종이에 싼 동전을 내려주면 / 꽈배기과자와 노릿노릿한 찹쌀도너츠가 올라오던 곳 / 야근시간 졸린 잠 쫓으려 커피믹스 가루째 털어넣던 곳 / 유인물 들고 자취방마다 문 두드리던 새벽길 / 머리에 고드름 매달린 채 함께 뛰던 길 /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길 얻어터지다 피 흘리다 / 김포 쓰레기 매립장으로 실려가던 길 / 바람 들이치는 자취방 창문에 고이고이 스치로폼 대고 / 헐거운 부엌문에 이중자물쇠통 달아주던 / 내 어린 첫사랑 끝내 울며 떠나간 길 ..  (공단 길)


  예쁜 하루를 꿈꿉니다. 예쁜 잔치를 꿈꿉니다. 예쁜 이야기를 꿈꿉니다. 예쁜 노래를 꿈꿉니다. 신나게 빨아 신나게 말린 옷가지를 갭니다. 갠 옷가지는 제자리에 착착 얹습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저 입고픈 옷을 슥슥 골라 입습니다. 스스로 입고 스스로 벗습니다. 졸리더라도 더 참으며 더 놀고, 고단하더라도 곯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습니다. 참말 잔치일 테니까요. 잔치마당에서 조금 고단하다고 그만 노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더 신나게, 더 개구지게, 더 왁자하게 놀려 하겠지요.


  하루 몫 기운이 다할 때까지 노는 아이들은 고단하게 색색 잠들면서 새 기운을 얻습니다. 새 기운을 얻고는 다시금 새 하루 몫 기운이 다하도록 방방 뛰어놉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도 아이하고 같구나 싶어요. 하루 몫 기운이 다하도록 스스로 무언가를 합니다. 하루 몫 기운이 다하면 고단히 눈을 감습니다. 한밤을 지나 새벽이 찾아들면 천천히 새 기운을 차립니다. 새 하루에는 어떤 새 잔치를 활짝 열면서 맞이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꿈을 꾸며 누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 그대들 만나 행복했던 나는 그 기쁨만을 안고 갔으니 / 푸른 하늘 아래 우리 함께 했던 따스한 숨결 / 그 사랑만을 데리고 갔으니 ..  (대화)


  처마 밑이 조용합니다. 이른봄에 찾아든 제비들이 새끼를 까서 바지런히 먹이며 돌볼 때에는 처마 밑이 늘 부산했는데, 새끼들이 모두 자라 저희 날갯짓을 마음껏 뽐내며 하늘을 누비고 나서는 늘 조용합니다. 한동안 새끼 제비들이 처마 밑 보금자리로 찾아드나 싶었으나, 어미 제비 가끔 찾아들어 빨래줄에 앉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뽀로롱 날아갈 뿐입니다. 이제 새끼 제비들도, 어미 제비들도, 훨씬 너른 새 누리를 날아다니면서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우겠지요. 가벼우며 힘찬 날갯짓으로 온 들판과 멧자락을 실컷 누비면서 좋은 하루를 누리겠지요. 따사로우며 좋은 날을 지나 천천히 찬바람 찾아들 무렵, 한국땅을 떠나는 기나긴 마실길에 나설 테고, 기나긴 마실길에 나서자면 하루 내내 끝없이 날갯짓하면서 이곳저곳 누비며 날개힘을 길러야겠지요.


  제비들은 어떤 잔치를 빚을까요. 제비들이 하늘에서 날갯짓하며 바라보는 이 땅은 어떠한 삶 어떠한 모습 어떠한 그림일까요. 하늘에서 날갯짓하는 제비가 바라보기에 고속도로나 아파트나 공장이나 골프장이나 발전소는 어떤 터가 될까요. 사람들이 자가용이나 비행기나 기차나 버스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하늘을 날며 살아간다 할 때에는 공장이나 기계나 물질문명이나 도시문화는 얼마나 값있거나 보람있을까요.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려는 사람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꿈을 꾸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꿈으로 아이를 보살피려는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사랑으로 태어나 꿈을 꾸며 하루하루 누리려는 아이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잔치입니다. 삶은 잔치입니다. 꿈은 잔치이고 사랑도 잔치입니다. 웃음도 눈물도 잔치입니다. 싱그럽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상큼하게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내 몸뚱이 또한 잔치요, 스스로 좋은 숨결 되어 스스로 좋은 동무로 어깨동무하고픈 내 마음도 잔치예요. 사랑을 먹으며 사랑을 낳고, 꿈을 먹으며 꿈을 낳습니다. (4345.7.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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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08 13:15   좋아요 0 | URL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잔치입니다. 삶은 잔치입니다" -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모두 잔치 같은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삶도 살펴보니, 감사할 게 아주 많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잊고 살 때가 많아요. ^^

파란놀 2012-07-08 17:10   좋아요 0 | URL
아... 그러나 '작은 것'에 고마워 하는 마음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날마다 좋은 잔치라 할 때에는
내 삶은 '작지도 크지도' 않아요.
크기로 따지는 '잔치'가 아니라,
좋은 삶이자 사랑이기에 누리는 '잔치'라는 뜻이에요~~
 


 책을 던져 모기를 잡다

 


  모기 한 마리 윙 소리를 내며 내 옆을 날아간다. 얼른 잡아야지 생각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책을 집어 모기가 날아가는 쪽으로 휙 던진다. 모기는 책 끄트머리에 맞아 팍 터진다. 방바닥과 책 모서리에 모기 피가, 또는 내 피가, 또는 아이들 피가 벌겋게 묻는다. (4345.7.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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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 마음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합니다. 혼자 자전거를 달리면 무척 홀가분합니다. 아이 하나를 자전거수레에 태우니 꽤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어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니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자전거를 잘 몹니다. 혼자 달릴 때하고 견주면 무척 느리고 더딘 자전거이지만, 씩씩하게 잘 달립니다.


  수레에 탄 아이들은 끝없이 조잘거립니다. 졸릴 적에는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다가 한쪽으로 픽 쓰러집니다. 서로서로 머리를 기대어 잠듭니다. 마실을 나갈 때에는 으레 종알종알 떠들고, 마실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으레 조용조용 잠듭니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뒷거울로 바라봅니다. 자전거 빠르기를 늦춥니다. 아니, 오늘은 마실을 나갈 적부터 빠르기를 늦추었습니다. 천천히 달렸습니다. 천천히 달린대서 땀이 안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빨리 달릴 때를 생각하면 땀이 하나도 안 난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마음이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밟고, 천천히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엊그제 자전거마실을 할 적에 첫째 아이가 〈미래소년 코난〉 노래를 불러 달라 해서 부르는데, 숨이 가쁘더군요. 여느 때처럼 자전거 발판을 밟으면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요. 발판을 조금 한갓지게 느긋하게 밟으면 노래를 부를 만하리라 생각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자동차는 지나가지 않습니다. 들바람이 붑니다. 멧자락마다 구름이 깔립니다. 나는 들바람을 쐬고 들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부르던 자장노래를 자전거를 달리면서 똑같이 부릅니다. 바람에 따라 들풀이 눕고 논마다 볏포기가 눕습니다. 내 목소리는 들풀과 볏포기 사이로 흐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노랫소리를 들으며 서로 고개를 기대어 새근새근 잡니다. 노래 여섯 가락쯤 부를 무렵 천천히 집에 닿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방으로 옮기는 일이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둘째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쳇, 수레에서는 잘만 자더니 집에 와서 깨네. 그래, 더 놀고 다시 자라. (4345.7.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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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73) -의 승리 1 : 독일군의 승리를

 

마르크스는 독일군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 이유로 당시 그는 “독일군의 패배는 독일 사회주의운동을 20년 지연시키는 데 그치겠지만…” ..  《스즈키 주시치/김욱 옮김-엘리노어 마르크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0 45쪽

 

  ‘승리(勝利)’나 ‘패배(敗北)’는 제법 흔히 쓰는 낱말입니다.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대로 둘 때에 한결 낫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보기글에서는 토씨 ‘-의’를 찰싹 붙인 채 쓰이니 찬찬히 살펴 알맞게 다듬어 줍니다.


  ‘기원(祈願)했다’는 ‘바랐다’로 손보고, “그 이유(理由)로”는 “그 까닭으로”나 “그러한 까닭으로”나 “왜냐하면”으로 손보며, ‘당시(當時)’는 ‘그때’로 손봅니다. ‘지연(遲延)시키는’은 ‘늦추는’이나 ‘미루는’으로 손질하고, ‘20년(二十年)’은 ‘스무 해’로 손질해 줍니다.

 

 독일군의 승리를 기원했다
→ 독일군이 이기기를 바랐다
→ 독일군이 이겼으면 했다
 독일군의 패배는
→ 독일군이 지면
→ 독일군이 진다면
→ 독일군이 졌을 때는
 …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 ‘이기다’와 ‘지다’뿐 아니라, 한자말 ‘승리’나 ‘패배’를 안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들은 두 갈래 말을 나란히 씁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투를 곁에서 들으면서 두 갈래 말투에 익숙해집니다. 이기니까 ‘이기다’라 할 뿐인데, 어른들은 이처럼 말하기보다 ‘승리’라는 한자말을 끌여들이기를 좋아합니다. 지니까 ‘지다’라 할 뿐이나, 어른들은 이 같이 말하기보다 ‘패배’라는 한자말을 애써 받아들이기를 즐깁니다.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는 어른일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푸름이로 살아가는 빛나는 넋한테 우리 어른들은 어떤 글을 써서 읽힐 때에 어여쁠까 헤아려 봅니다.


  ‘이기다’와 ‘지다’라는 한국말로는 어른들 넋이나 얼이나 뜻을 나타내기 힘들기에 ‘승리’와 ‘패배’라는 한자말을 끌여들여야 하나요. 한자말로도 모자라, 이제는 ‘윈(win)’과 ‘루즈(lose)’라는 영어까지 받아들여야 하나요.


  토씨 ‘-의’를 아무 곳에나 함부로 붙이는 일도 잘못이요, 알맞고 바르며 손쉽고 살가이 쓸 때에 넉넉하고 아름다울 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일도 잘못입니다. 삶을 살피며 말을 살핍니다. 삶을 가꾸며 말을 가꿉니다. 삶을 사랑하며 말을 사랑합니다. 삶을 이야기하며 말을 이야기합니다. (4340.1.2.불./4345.7.7.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마르크스는 독일군이 이기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독일군이 지면 독일 사회주의운동을 스무 해 늦추는 데에서 그치겠지만…”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0) -의 승리 2 : 노동자의 승리

 

공장주나 미술관의 이사보다 ‘내가 더 어엿한 남자다’, ‘남자답다’라고 사진을 보면서 말하는 거죠. 그래서 남자답다고 느낀다면, 노동자의 승리인 거죠
《아라키 노부요시/백창흠 옮김-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2012) 134쪽

 

  “공장의 주”처럼 토씨 ‘-의’를 넣는 일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잘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미술관의 이사”는 “미술관 이사”로 다듬을 수 있어요. “말하는 거죠”는 “말하는 셈이죠”나 “말하지요”로 손질하고, “승리인 거죠”는 “승리인 셈이죠”나 “승리이죠”로 손질합니다. ‘남자(男子)’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사내’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낱말을 하나하나 살피고 나서 “노동자의 승리”에 드러나는 토씨 ‘-의’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한자말 ‘승리’를 넣으니 토씨 ‘-의’하고 잘 어울리고 마는데, 한자말 아닌 한국말 ‘이기다’를 넣을 때에도 토씨 ‘-의’하고 잘 어울릴까 하고 가누어 봅니다.

 

 노동자의 승리인 거죠
→ 노동자가 이긴 셈이죠
→ 노동자가 이겼다 할 테죠
→ 노동자가 이겼다 하겠지요
 …

 

  어떤 이는 “노동자의 이김인 거죠”처럼 글을 쓰리라 봅니다. “노동자의 짐인 거죠”처럼 글을 쓸 이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면 알아보기 몹시 힘들며, 말투도 썩 알맞지 않아요. 애써 한국말을 썼다지만, 말투를 나란히 가다듬지 못하면 영 엉망이 되고 맙니다.


  한 사람이 쓰는 말을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쓰는 말은 낱말과 낱말을 묶어 이루어집니다. 낱말과 낱말은 말투로 엮습니다. 말투는 말결로 드러나고, 말결은 말무늬로 빛납니다.


  하나하나 아리땁게 추스릅니다. 빈틈이 없도록 가다듬는 낱말이나 말투나 말결이나 말무늬가 아니라, 내 넋과 얼을 곱게 밝히는 낱말이나 말투나 말결이나 말무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맞춤법 때문에 말을 가다듬을 일이 없습니다. 띄어쓰기 때문에 글을 추스를 일이 없습니다. 우리 말글을 바로쓰거나 옳게 쓰는 일이란, 남 앞에서 자랑한다거나 겨레얼을 빛내는 일이 아닙니다. 내 가장 좋은 사랑을 빛내면서 내 가장 맑은 꿈을 나누는 삶이 바로 ‘내 말글을 바로쓰거나 옳게 쓰는’ 일이에요. (4345.7.7.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공장주나 미술관 이사보다 ‘내가 더 어엿한 사내다’, ‘사내답다’라고 사진을 보면서 말하지요. 그래서 사내답다고 느낀다면, 노동자가 이긴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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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을 말하다 1
아라키 노부요시 지음, 백창흠 옮김 / 포토넷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사진이 좋아서 살아간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4] 아라키 노부요시,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2012)

 


- 책이름 :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 글 : 아라키 노부요시
- 옮긴이 : 백창흠
- 펴낸곳 : 포토넷 (2012.7.10.)
- 책값 : 16000원

 


  (1) 삶을 좋아한다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좋은 사랑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한 장 두 장 즐겁게 찍습니다.


  삶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속에 있을 좋은 사랑을 사진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한 장 두 장 사진이 늘어나지만, 즐거운 마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아하며 즐기는 삶일 때에 좋아하며 즐기는 사진입니다. 좋아하며 즐기는 삶이기에 좋아하며 즐기는 글쓰기요 그림그리기입니다. 좋아하며 즐기지 못할 때에는,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더라도 노래를 즐기지 못합니다. 노래를 불러 돈을 번다지만 노래를 좋아하지 못합니다. 좋아하며 즐기지 못할 때에는, 그저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일터에 몸을 가둘 뿐, 마음을 살찌우거나 북돋우지 못해요. 다달이 일삯을 벌어 자가용을 장만하거나 아파트를 마련하거나 이것저것 물건을 잔뜩 사들일 수는 있지만, 막상 삶을 좋아하는 길은 찾지 못해요.


  무슨 일거리를 찾거나 무슨 꿈을 이루려 하거나 맨 먼저 한 가지를 해야지 싶어요.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지 싶어요.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사진쟁이가 되지 못해요. 연극쟁이도 영화쟁이도 만화쟁이도 모두 삶을 사랑하면서 이루어져요. 흙을 일구는 사람도, 고기를 낚는 사람도, 과학자나 운동선수나 정치꾼이나 모두 이와 같아요. 삶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내 일(삶짓기)’이나 ‘내 직업(돈벌이)’을 깨달을 수 있어요.


.. 먼저 사진가의 패션에 대해 말해 볼까요. 어깨에 가방을 멘 채로 찍으면 안 된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맨몸으로, 몸으로 찍어야 합니다.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거리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어야 합니다 … 상대의 동료가 된다고 할까, 동화되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지요. 상대가 마음을 허락하도록 해야 합니다 … 사진의 시작은 자기 자신과 가까운 대상부터 관계를 만들고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됩니다. 알아챈 걸 계속해 적용해 나가면 사진의 여러 가지 기술과 방법을 알게 되지요. 방법론이란 건 현장에서 나옵니다 …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 사람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  (15, 17, 19, 20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런데, 삶을 좋아하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사진이 아닌 헛물을 켜는 노릇입니다. 사진기를 다루어 이럭저럭 이름을 얻거나 돈을 번달지라도, 이런 사람한테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없이 사진을 찍는 일이란, 기계도 할 수 있어요. 아니, 좋아하는 마음이 없이 무엇인가 한다면, 이때에는 사람 스스로 사람다움을 버리고 기계가 된다는 뜻이에요.


  사람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공부벌레나 공부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부를 좋아하면서 삶을 누려야 똑똑한 사람이 되면서 학자가 돼요. 운동을 좋아한다면서 야구선수가 되든 축구선수가 되든 배구선수가 되든, 스스로 삶을 좋아하면서 운동을 할 때에 비로소 운동벌레나 운동기계 아닌 ‘한 사람’이 돼요.

  곧, 적잖은 사람들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이른바 ‘사진벌레’나 ‘사진기계’가 되어 이름값을 얻거나 돈을 법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값싼 사진기를 쓰든 값비싼 사진기를 쓰든, 사진찍기가 아닌 ‘이름값 찍기’나 ‘돈벌이 찍기’에 얽혀들고 말아요.


.. 나쁜 사진이 나온다는 건 결국 찍은 사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부족한 거지요. 그만큼 사진에는 자기 자신이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 사진가라는 직업은 굉장히 슬픈 직업이에요. 죽치고 계속 다시 하고 싶지만, ‘자, 여기까지’라고 말해야 되는 거죠 … 인터뷰라는 것이 상대로부터 무엇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사진은 인터뷰와 똑같습니다. 표현이 아닌 표출. 그러니까 상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무엇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 자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면 편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아요 ..  (19, 30∼31, 37, 49쪽)


  사진을 찍을 때에 ‘값진 장비’로 더 낫다 싶은 사진을 찍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오직 하나입니다. 사진은 ‘사람’ 스스로 ‘단추를 손가락으로 눌러’ 찍기 때문입니다. 세발이에 사진기를 얹고는 단추를 누른다 하더라도 ‘어느 때’에 ‘왜’ 찍느냐 하는 생각이 움직여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나요. 기계 혼자서 때맞춰 찰칵찰칵 찍는 일은 사진찍기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기계질일 뿐입니다. 한자말로 ‘기록’이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기록이 된다 하더라도 사진이 된다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삶을 담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어떤 삶을 어떤 이야기로 들려줄까 하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태어납니다.


  컴퓨터가 글을 써 주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그림을 그려 주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붓을 손에 쥐어 글을 썼다 하고, 연필을 손에 쥐어 글을 쓰기도 했는데, 오늘날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하더라도, 글은 사람이 씁니다. 컴퓨터가 쓰는 글이 아닙니다. 사람 스스로 컴퓨터를 켜고는 사람 스스로 생각을 움직이고 마음을 기울여 글을 씁니다. 컴퓨터로 그림이나 만화를 그린다 하더라도 사람 스스로 생각과 마음을 써서 그림을 그리며 만화를 빚어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만지작거릴 때에도 이와 같겠지요. 컴퓨터로 만드는 예술이나 문화가 아니에요. 사람이 ‘컴퓨터라는 새 연장’을 쓰며 사진으로 이야기를 빚어요.


  사진기는 틀림없이 기계이지만, 기계를 다루는 사람 생각이나 마음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기는 연필이나 붓하고 다른 연장이라 할 테지만, 곰곰이 밑바탕을 살피면 사진기는 연필이나 붓하고 같아요. 연필이 글을 낳지 않고 붓이 그림을 낳지 않아요. 사진기가 사진을 낳지 않아요. 사람이 글을 낳아요. 사람이 그림을 낳아요. 사람이 사진을 낳아요.


  사람이 글을 읽어요. 연필이 글을 읽지 않아요. 사람이 그림을 보아요. 붓이 그림을 보지 않아요. 사람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읽고 느껴요. 사진기가 사진을 바라보거나 읽거나 느끼지 않아요.


.. 롱숏으로 행복감을 찍을 수 있으면, 이거야말로 대단한 일이겠지요 … 나와 사진의 생리가 너무나도 잘 맞으니까 스스로 사진의 천재라고 부르고 있는 거죠. 사진은 곧 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사진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동시에 들어가 있어요 … 찍고 싶다는 굉장한 욕망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비밀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 이 두 가지가 사진 안에는 모두 있습니다 … 역시 사랑하는 기분이 없으면 저쪽(대상)의 사랑스러움은 사진에 절대 나오지를 않아요 ..  (27, 32, 39, 64쪽)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익히면서 사진을 찍는 길을 익힐 수 있습니다.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익히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는 길을 익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대학교 수많은 사진학과가 있지만, 막상 사진쟁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까닭은, 대학교나 사진학과에서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스레 보듬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한국에서도 이웃나라에서도 똑같겠지요.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려 하든, 이웃나라에서 사진을 배우려 하든, 맨 먼저 배울 대목은 ‘삶을 좋아하는 마음’이에요. 사진기 다루는 솜씨나 사진을 읽는 눈썰미를 배울 일이 아니에요. 아니,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배우지 못했다면, 사진기를 다루는 솜씨도 배우지 못해요.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배우지 않았으니, 사진을 읽는 눈썰미를 배울 수 없어요.


  삶을 느끼지 못하는데 산 목숨이라 할 수 없어요. 산 목숨이라 할 수 없으니, 사진기를 손에 쥔들 사진을 찍지 못해요. 기계질을 하겠지요. 기록은 하겠지요. 무언가 만지작거리면서 예술을 한다거나 문화를 한다며 내세울 수 있겠지요. 기계질·기록·예술이라는 껍데기를 붙일 수 있더라도, 이런 기계질이나 기록이나 예술을 섣불리 사진이라고 일컫지 않아요.


  기계질처럼 쓴 ‘글’을 ‘글’이라 하는 사람은 없어요. 기록처럼 기록한 ‘그림’을 어느 누구도 ‘기록’이라 말하지 않아요. 예술이라고 밝힌다면 예술일 뿐, 글도 그림도 사진도 아니에요. 사진이 되려면 오로지 사진이어야 해요. 사진이라는 이름을 누리자면 그예 사진이 되어야 해요.


  그러니까, 밥은 밥이지 밥은 요리가 아니고 영양소가 아니에요. 나무는 나무이지 엽록소나 세포가 아니에요. 해는 해이지 천체나 우주가 아니에요. 지구별은 지구별이지 투자대상이나 개발대상이 아니에요.


  좋아하면 사진이에요. 좋아하면 삶이에요. 좋아하면 노래예요.


  돼지 멱 따는 소리라 한들 나 스스로 좋아하면서 부르기에 노래예요. 가난하다 하더라나 싱긋빙긋 웃으면서 누리는 삶이기에 참말 삶이에요. 초점이 어긋나거나 빛이 잘 안 맞았다 하더라도 즐겁게 좋아하며 찍었기에 사진이에요. 초점이 잘 맞거나 빛을 놀랍게 맞추었기에 사진이 되지 않아요. 기계질은 기계질이고 사진은 사진이에요.


.. 내 경우엔 그림도 사진도 순간예술이지요. 어느 쪽이든 순간을 본다는 사실에 있어서는요 … 과거를 끌어오지 않는 사진은 좋지 않습니다. 사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 두 사람을 나란히 찍을 때 인간관계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게 찍는 사람도 있어요. 겉모습만 찍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자신의 초라함을 나타낼 뿐 좋지 않습니다. 찍는 쪽의 초라함이 나온다면 모델이 되어 준 사람에게 실례죠 … 상대를 해석하고 자기의 생각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찍으려고 하면 안 돼요. 그게 아니고 본능적으로 딱 느끼고 찍어야 하죠 ..  (39, 46, 47, 58쪽)


  삶이 있어 사진이 있습니다. 삶이 있어 글이 있습니다. 삶이 있어 예술이 있습니다.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누립니다. 삶을 즐기면서 글을 즐깁니다. 삶을 빛내면서 예술을 빛냅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면 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면 됩니다. 좋아하면서 즐기는 마음이 아직 들지 않는다면, 아직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요 아직 글을 쓸 때가 아닌 셈입니다. 좋아하면서 즐기는 마음이 될 때까지 차근차근 사진을 새로 배우고 글을 새로 배울 노릇입니다.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천천히 익히고, 삶을 즐기는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2) 사진을 좋아한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2012)을 읽습니다.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생각하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들려주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 스스로 즐기는 삶을 들려줍니다.


  더없이 마땅한데,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사진이론을 한 줄도 적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말할 뿐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 삶을 말합니다. 꼭 이 두 가지면 넉넉합니다. 어떻게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을 돌보면서 살아가느냐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삶을 즐기는 한길을 누리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 사진가라는 사람들도 역시 답장이 오길 바라는 거예요 … 그런 길잡이, 그런 선배들이 있으니까 배달원 청년들도 웃음을 띠고 있어요. 젊은 사람도 모두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 긍지를 갖는 거죠. 자기의 직업을 낮게 여기거나 높게 생각하는 경우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눈 오는 날에 신문 배달을 하다가 뒤돌아보는 청년의 모습이 매우 좋았어요. 멋진 미소를 머금은 소년들이 이 거리에는 남아 있어요 … 사진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은 인생이나 인간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지요 … 나는 줄곧 작품이 아닌 쪽이 사진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내 손으로 현상하던 것을 그만두었던 거죠 ..  (48, 56∼57, 58, 88쪽)


  100원짜리 볼펜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빚을 수 있습니다. 50원짜리 연필로 어여쁜 시를 빚을 수 있습니다. 1만 원짜리 즉석사진기로 아름다운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동무한테서 빌린 사진기로 어여쁜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어야 할 글(또는 문학)이 아닙니다. 저것이어야 할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삶이 곧 내 글입니다. 내 삶이 곧 내 사랑입니다.


  1000만 원짜리 붓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빚을 수 있습니다. 500만 원짜리 만년필로 어여쁜 시를 빚을 수 있습니다. 1억 원짜리 파노라마사진기로 아름다운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회사에서 받은 사진기로 어여쁜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써야 할 글이 아닙니다. 저렇게 찍어야 할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이 곧 내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이 곧 내가 사랑하는 사진입니다.


  값이나 값어치가 아닌, 내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기에 알맞을 만한가에 따라 볼펜이나 연필이나 붓을 찾습니다. 값이나 값어치가 아닌, 내 삶을 빛내면서 나누기에 좋을 만한가에 따라 사진기를 살피고 장만합니다.


  돈이 있으면 비싸다 싶은 사진기라도 금세 장만합니다. 돈이 없으면 빌리는 길을 찾으면 되고, 빌리기 힘들면 여러 해에 걸쳐 푼푼이 모아 장만합니다. 바로 오늘 훌륭하다 싶은 사진기를 손에 넣었기에 오늘부터 더 많이 더 오래 사진을 찍지 않아요. 다섯 해 뒤나 열 해 뒤나 열다섯 해 뒤에 가까스로 사진기 한 대 장만할 수 있기에 남들보다 더 적게 더 짧게 사진을 찍지 않아요.


  사진길은 열 살부터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길은 스무 살부터 걸어야 좋지 않습니다. 사진길은 마흔 살이나 예순 살에 걷는대서 늦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라고 깨달은 때에 사진기를 알맞게 살펴 장만하면 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스스로 어떻게 즐기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 그러니까 렌즈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이 몸을 숙이거나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하는 것이지요. 사진은 자신의 몸으로 찍는 것이니까요 … 역시 좋은 장소에는 예쁜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얼굴의 예쁜 아이가 자라고 있어요 … 솔직한 기분으로 찍으면 좋게 나와요. 비틀면 안 돼요. 꼬아서도 안 되고요 … 사랑받을 수 없다면 피카츄처럼 되지 않으면 안 돼요. 좀도둑도 아니면서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는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그 사진들이 깊이가 있어 정신적이라고 생각할 테지만요 … 사진이 정체되어 있다느니 뭐니 말하는 것은 찍는 쪽이, 인간이 안 된 것뿐이에요. 사진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만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에 비교할 수 없는 거잖아요 ..  (69, 72, 126쪽)


  ‘잘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기계질이 돋보이는 사진’은 있습니다.


  ‘멋진 작품이라 할 사진’은 없습니다. ‘기록이 남다른 사진’은 있습니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비질이나 걸레질을 하는 마음이 대수롭습니다. 밥짓는 솜씨나 빨래하는 재주나 비질하는 모양새가 대단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밥을 마음으로 먹습니다. 마음으로 찍는 사진을 마음으로 읽습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을 마음으로 빛냅니다. 마음으로 쓰는 글을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사진을 ‘무겁게’ 누르거나 ‘가볍게’ 휘두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사진기를 곁에 둡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스스로 즐기는 삶결을 살려 스스로 즐기는 사진결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스스로 ‘천재’라 생각하니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천재’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사랑꾼’이라 생각하면 당신은 스스로 ‘사랑꾼’입니다. 이녁이 스스로 ‘멋쟁이’라 생각하면 이녁은 스스로 ‘멋쟁이’예요.


.. 나는 인간의 존엄을 찍는 거예요 … 보고서 풀이 죽어 버리는 것 같은 포트레이트는 안 됩니다. 살아 있는 기쁨이라든가, 살아 있는 애정이라든가, 그런 걸 찍어야 하는 거지요 … 서울은 비가 와서 좋았어요. 비라도 내리지 않았으면, 한국은 심심했을 거예요. 먼지가 많아서 말이지요 …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사진은 평면적이라서 그림자가 없는 듯이 찍고, 그림자가 없는 듯이 만들려고 해요 ..  (131, 134, 195, 225쪽)


  아직 한국땅에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 같은 사진쟁이가 태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그예 ‘사진을 좋아하’며 살아가요. 당신이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알 길이 없고, 당신이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웠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나는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한 권 두 권 장만하면서 ‘아라키 노부요시가 좋아하는 삶을 좋아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좋아하는 손길로 담은 사랑스러운 사진’을 느낍니다. ‘어느 대학교 어느 사진학과 어느 흐름 어느 갈래 어느 스승 어느 계보 어느 사진이론’ 따위는 하나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나는 오로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스스로 어떠한 삶을 좋아하면서 즐겼을까’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읽는 나 스스로 나는 또 어떠한 삶을 좋아하면서 오늘 하루를 즐기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찍기는 삶찍기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당신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진읽기는 삶읽기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읽으면서 당신 삶을 사진 하나하나 다 다르게 읽습니다.


  내가 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내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떤 허울을 뒤집어씌우거나 껍데기를 들씌우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무슨 이름값을 자랑하거나 돈벌이를 할 삶이 아니기에, 내 삶은 스스럼없이 좋아하는 내 사진이 됩니다.


  내가 내 사진을 읽을 때에는 내 삶을 사진으로 읽습니다. 아, 나는 예전에 이러한 사진을 이러한 삶을 사랑하면서 찍었네, 하고 돌이킵니다. 나는 내가 찍은 내 사진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삶을 환하게 빛내듯 즐기고, 사진을 읽으면서 삶을 따숩게 껴안듯 누립니다.


.. 나는 대상이 가장 기뻐하는 사진을 넣고 싶어요 … 무슨 의미냐면, 사진을 좋아해요. 사진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사진이라는 행위가 좋아요 … 보는 사람의 눈도 높아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 하지만 인간을 찍는다, 따듯한 인간을 찍는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서는 거예요 … 좋은 점을 발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거죠. 사진의 역할이란 건, 그런 게 있어요 … 나는 불상이든 뭐든 인간이랄까, 사람의 감각으로서 찍으니까요. 나는 어찌 됐든 물체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살리고 싶고 어서 빨간 피를 주입하고 싶은 마음으로 찍는 거예요 ..  (141, 144, 148, 149, 214, 218쪽)


  내 하루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때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 하루 가운데 가장 환한 보금자리를 글로 씁니다.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든, 아이와 나란히 누워 노래를 부르든,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노래를 부르든, 나는 내 목청 가운데 가장 보드라우며 좋은 소리를 뽑아서 나긋나긋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내 온 사랑을 내 온 하루에 싣습니다. 이제껏 살며 보살핀 내 모든 꿈이 노래 한 가락에 사뿐사뿐 담깁니다.


.. 이미 내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시대라든가 공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 정말요, 그림도 음악도, 그렇게 시끄러워지면 좋을 리가 없어요. 자기 안에 또 하나의 냉정한 자기가 없으면 말이에요 … 자신이 찍은 사진에 자기가 용기를 얻어요. 다른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 자기가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고 무어라고 할 마음이 생기는 거지요. 지금을 위해, 옛날에 씨를 뿌린 것 같은 거예요 … 사진을 단순히 카메라를 사용해서 하는 작업 행위로 생각한다면 편하겠지만 사진이라는 걸 하게 되면 골치 아파요. 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 될 수 있는 한 제대로 하는 것을 찍지 않으면 끝이에요. 떨어진다고 할까, 쓰러지니까요 ..  (227, 233, 249, 250쪽)


  좋아요.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을 쓴 아라키 노부요시 님 마음이 좋아요. 당신은 당신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리며 사진을 즐긴 이야기를 동무와 이웃한테 기쁘게 나누어 주고 싶어 책을 내놓았겠지요. 이 책을 읽은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좋아하면서 즐길 수 있기를 비는 꿈을 곱디곱게 담았겠지요.


  그리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당신이 내놓은 이 책을 틈틈이 다시 들추리라 생각해요. 당신은 당신이 찍은 예전 사진을 되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당신은 당신이 쓴 예전 글을 되읽으면서 생각이 환해지겠지요.


  그래요. 지구별 모든 사람은 똑같아요. 스스로 찍은 사진은 스스로 좋아할 사진이에요. 공모전에 내놓거나 작품집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스스로 마음을 달래거나 생각을 빛내려고 스스로 찍는 사진이에요.


  문학공모에 뽑힌다거나 작품집이 나오도록 하려고 쓰는 글이란 참 따분하거나 재미없어요. 스스로 마음을 달래거나 생각을 빛내려고 스스로 쓰는 글일 때에 비로소 재미있으며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고 싶으면 좋은 대학교 좋은 사진학과 좋은 스승을 찾아가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사진을 찍고 싶으면 좋은 꿈을 키우며 좋은 삶길을 걷는 사람들이 빚은 좋은 사진책을 ‘내 좋은 땀을 흘려 벌어들인 내 좋은 돈’을 기쁘게 써서 장만한 다음 좋은 하루를 쪼개어 좋은 마음씨로 읽으면 돼요. 내 사진길을 북돋울 스승은 바로 나예요. 내 사진꿈을 이룰 길동무는 바로 나예요. 내 사진삶을 열어젖힐 이슬떨이는 바로 나예요.


  내 삶을 내가 돌보고, 내 사진을 내가 이뤄요. 내 삶을 내가 사랑하고, 내 사진을 내가 사랑해요. 사진이 좋아서 살아가는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삶이 그저 좋아 하루하루 예쁘게 맞아들이면서 이 예쁜 하루를 사진으로 옮기는 사랑을 영그는 한 사람이에요. (4345.7.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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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찍고 싶다는 굉장한 욕망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비밀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 이 두 가지가 사진 안에는 모두 있습니다" - 이것 글쓰기와 같군요. 저는 글을 쓰고 싶다는 행위에 대한 욕구와 나만이 아는 비밀을 보여 주고 싶다는 욕구,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비밀이란 부분에서 매번 실패하게 되지요. 삶을 통찰한 비밀을 쓴다는 게 어려워서 말이죠. ㅋ

님이 말씀하신 대로 "좋아하며 즐기는 삶"이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돈벌이라는 것도 즐기지 못할 땐 괴로운 일이 되고 말아요. 일을 사랑하며 즐기고 있는데, 게다가 그 일에 돈이 따르게 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이 글을 저의 삶에 대입해서 읽었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파란놀 2012-07-08 17:09   좋아요 0 | URL
'사진'이라는 대목을 알맞게 달리 넣으면
누구나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요.

아직 한국에는 아라키 노부요시 같은 사진쟁이가 없어,
이처럼 자유로우며 예쁜 생각을 들려주는 이 또한 없어요.

어찌 보면, 글을 쓰는 분이나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는 분에서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pek0501 님이 가장 좋아하는 길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좋은 삶을 나눌 수 있다면,
돈벌이도 이와 함께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