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11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하늘에서 살면 하늘나라
 [만화책 즐겨읽기 167] 데즈카 오사무, 《불새 (11)》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일어납니다. 밤새 거센 비바람이 불어 이리저리 살피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더니, 새벽에도 퍽 늦게 일어납니다. 퍼뜩 눈을 뜨고 일어나니 바깥이 조용합니다. 거센 비바람은 밤 사이 물러난 듯합니다. 바람도 비도 모두 멎었습니다. 멧새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고, 처마에서 물방울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멧새 몇 마리 우리 집 후박나무로 찾아들어 아침을 먹는 소리가 들리며, 이웃집 할아버지 경운기 소리가 들립니다.


  마당으로 내려옵니다. 거센 비바람은 자전거수레를 마당 끄트머리까지 날렸습니다. 수레에 무거운 책을 꽤 실었어도 거센 비바람은 수레를 날릴 만큼 힘이 세군요. 옆지기 신 한 짝도 멀찌감치 날렸습니다. 이밖에 딱히 날아간 다른 것은 없습니다. 부러지거나 넘어지거나 쓰러진 것도 없습니다. 그토록 바람이 거세게 불었어도 후박나무 가지는 끄떡없습니다. 다른 나무도, 풀도, 이웃집 논배미 벼도 그대로 잘 있습니다.


- “야, 야스라이 춤?” “그런 것도 모르나? 오곡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깊은 춤이라네. 매년 이 춤을 보지 않고는 봄이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인걸.” “하하, 저런 걸 보지 않아도 봄은 와요.” (12쪽)
- “도성에서는 이런 예쁜 빗을 꽂고, 많은 여자들이 큰길을 돌아다니지?” “응, 그야 뭐.” “얼마나 멋있을까. 나도 도성에 가고 싶어. 도성으로 이사가고 싶어.” “또 그 소리. 넌 내 색시가 될 사람이야. 그리고 난 도성으로 이사가지 않을 거야.” “그럼 나무꾼을 그만두면 되잖아. 나무꾼 따위 싫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게 고작이잖아. 벤타라면 짐꾼이든 뭐든 될 수 있을 거야.” (25쪽)

 

 


  바람이 불 때면 으레 가만히 옹크리고 앉아 풀을 바라보곤 합니다. 바람에 이리 눕고 저리 눕는 풀을 곰곰이 들여다보곤 합니다. 가녀린 풀포기는 어린이가 꼬옥 쥐고는 쏙 잡아뺄 수 있고 끊을 수 있습니다. 쉽게 뽑히고 쉽게 꺾이는 풀포기입니다. 그러나, 이 풀포기는 어떤 어마어마한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적잖은 사람 목숨을 앗고 집도 절도 부수었다는 비바람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풀포기가 뽑히는 일이란 없습니다. 흙이 무너진다든지, 이를테면 골짜기가 넘치면서 멧자락 한켠에 무너지거나 땅뙈기 한켠이 휩쓸린다든지 할 때에야 비로소 풀도 함께 떠내려 갑니다. 이때 말고는 풀포기가 비바람에 꺾이는 일이 없어요.


  거센 비바람을 견디다 못해 나무가 부러지는 일은 있지만, 그 어떤 거센 비바람이라 하더라도 풀포기를 부러뜨리거나 꺾거나 넘어뜨리지는 못해요.


  누군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르지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 탓에 벼가 몽땅 드러눕기도 하지 않느냐고. 그래요, 거센 비바람에 논배미 벼가 드러눕는 일이 더러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벼농사란 무언가요. 농약이랑 비료랑 항생제로 하는 벼농사잖아요. 약 먹고 비료 먹으며 알곡만 크고 무겁게 달리도록 하는 ‘유전자 건드린 벼’예요. 이제는 알곡이 크고 무겁게 달리되, 줄기가 조금만 자라도록 하는 ‘새삼스레 유전자 다시 건드린 벼’가 나온다고 해요. 사람들이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거두려고 유전자를 건드려 논밭에 오직 한 가지 곡식이나 푸성귀만 심을 때에는 얕은 비바람에도 그만 쓰러지는 풀포기가 생겨요. 자연에서 스스로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 뿌리를 내리는 풀포기는 비바람에 끄떡하지 않아요.


  억지로 길들이려 하면 스스로 서는 힘이 없어요. 자연스레 사랑하려 하면 스스로 서는 힘을 키워요.


- “응? 왜 벌레를 일부러 피해서 걸어가죠?” “그야 신이니까 그렇지. 살아 있는 건 무엇이든 죽이지 않아.” “그럼 물고기나 새도 먹지 않나요? 덩치가 그렇게 좋은데. 나무열매나 잎사귀만 먹고 그 덩치를 유지할 수 있나요?” (85쪽)
- “이제 슬슬 이 늙어빠진 몸뚱이와도 작별할 때가 온 것 같구나. 하지만 그리 멀지 가지는 않을 거야. 이 산의 한 줌 흙이 되는 거니까 …… 잘 보아라. 저 석양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저것은, 조금도 변치 않고, 몇 십 번, 몇 백만 번이나 같은 모습으로 저물어 갔다. 내가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죽였을 때도, 스승과 함께 전국을 유랑했을 때도, 양팔을 잃고 이 산에서 몸을 맡겼을 때도, 저 석양은 언제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너희도 저 석양처럼 살아라. 부침 많은 인간사의 흐름에 휩쓸리다 보면, 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없게 되느니” (109∼111쪽)

 

 

 

 


  비가 들이부으면 비옷을 입고 빗물로 마당을 쓸까 했지만, 마당을 쓸 만큼 비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에 첫째 아이가 일어나면, 이 아이하고 함께 마당을 쓸면서 놀아 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는 이모저모 심부름을 잘 하겠지요. 마당을 깨끗이 쓸고 나서 아이는 마당에서 예쁘게 놀 수 있겠지요. 바람소리와 새소리와 구름이 잔잔히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겠지요.


  아이는 몸이 작아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몸이 기우뚱합니다. 어른은 몸이 크다지만 바람이 제법 세게 불면 몸이 휘청거립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 손을 잡는다든지, 어른이 아이를 안고 서면 꽤 세게 부는 바람에도 그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퍽 씩씩하게 바람을 맞아들일 만합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빨래가 금세 마릅니다. 빨래 말리기는 따순 햇살이 가장 좋고, 시원스러운 바람이 둘째로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나날에서도 따순 햇살이 드리우는 하루가 가장 좋고, 시원스레 부는 바람이 있으면 둘째로 좋다 말할 만할까 싶습니다. 아니, 맨 먼저 따순 햇살이 있고, 이 다음으로 시원스러운 바람이 있습니다. 여기에 맑게 흐르는 냇물이 있고, 푸르게 빛나는 숲이 있습니다. 숲에 우거진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가득 달립니다. 사람은 여느 풀짐승처럼 열매랑 풀을 먹으며 몸을 살찌울 수 있어요. 햇살과 바람과 냇물과 숲을 누리면서 마음을 북돋울 수 있어요.


  러시아사람 톨스토이는 한 사람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하고 물었어요. 나도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나는 나한테 묻고 싶습니다. 나 한 사람 살아가는 보금자리 곁에는 무엇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하고 묻고 싶습니다. 내가 누리는 삶에는 무엇이 얼마나 있어야 즐겁고, 내 보금자리는 어떤 살림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사랑스러울까 하고 묻고 싶습니다.


- “싫어! 무예는 배우겠지만, 무사가 되는 것만은 죽어도 싫어! 무사는 우리 집도 불태우고 우리 부모님도 죽였어! 무사는 나의 원수야! 그뿐만이 아니야. 무사는 우리 마을 사람들을 바보 취급 하고 거드름 피우면서, 그동안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데, 왜 같은 인간이면서 그 녀석들은 우리를 벌레 취급 하는 거지?” (188∼189쪽)

 


  기쁘게 누릴 삶은 무엇이 있어서 기쁠까요. 재미나게 뛰노는 삶은 무엇이 있기에 뛰놀 만한가요. 사랑스레 빛낼 삶은 무엇이 있어서 사랑스럽게 빛날까요.


  어떤 상장을 받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놀이공원에 갔으니까 신나게 뛰놀 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활짝 웃으며 집식구 모두 활짝 웃습니다. 아이들과 옆지기가 빙긋 웃으며 서로서로 빙긋 웃습니다. 내가 낯을 찡그리며 집식구 모두 낯을 찡그립니다. 아이들과 옆지기가 골을 부릴 때에 나도 그만 골을 부립니다.


  하늘에서 살면 하늘나라입니다. 지옥에서 살면 지옥나라입니다. 꿈으로 살면 꿈나라입니다. 미움으로 살면 미움나라입니다. 웃음으로 살면 웃음나라요, 눈물로 살면 눈물나라예요.


  내가 바라는 대로 내 하루를 맞이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삶을 일굽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새날을 엽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로 내 이야기를 엮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늘사람입니다. 나는 언제나 땅사람입니다. 나는 늘 바람사람입니다. 나는 늘 꽃사람입니다. 나는 노상 바다사람입니다. 나는 노상 멧사람입니다. 내 가슴에서 샘솟는 하늘 같은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바다 같은 꿈입니다.


- “너희들은 내 기분을 알기나 해? 좋아하는 여자를 잃은 고통을 아냐구.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사이였는데.” (274쪽)
- “그만 됐어. 용서해 주자.” “네?” “이 여자는 내 마누라인걸. 남편의 물건을 훔쳐 가다니 잠깐 나쁜 마음을 먹은 걸 거야. 그래, 그거야.” (293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한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불새》 열한째 권에서도 ‘어리석은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르는 전쟁’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쩜 이렇게 사람들은 전쟁놀이를 즐기는가 싶으나, 하나하나 따진다면, 참말 ‘사람 역사’가 생겼다고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책이나 역사 교과서는 온통 ‘전쟁을 벌이고 땅따먹기 하던 발자국’이 가득 담겨요. 한국역사이든 세계역사이든 서로 마찬가지예요. 어느 나라가 군대를 얼마나 키워 어느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뙈기를 넓혔다 하는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고구려이든 백제이든 신라이든 가야이든, 그저 전쟁으로 땅뙈기 넓히고 줄인 이야기만 다룹니다. 고려이든 조선이든 먼먼 옛조선이든, 으레 전쟁 이야기만 들려줘요. 사람들 스스로 빛낸 삶이나 사람들 스스로 사랑한 삶을 들려주는 역사책이 없어요.


  어느 역사책을 들여다보아도 기원전 3000년 무렵 사람들이 어떠한 밥을 어떻게 마련해 어떻게 즐기면서 살림을 일구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아니, 서기 10년대 이야기이든, 서기 1000년대 이야기이든, 오늘날 2000년대 이야기이든, 사람들 스스로 예쁘며 아름답게 빛내는 삶을 이룩한 이야기는 한 줄로조차 다루지 않아요. 전쟁놀이 이야기, 전쟁놀이에서 우두머리로 나선 바보 이야기, 전쟁놀이 못지않게 바보스러운 돈놀이에 나서는 우두머리 이야기 같은 안쓰럽고 어리석은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임금님 이름을 외운대서 역사를 알 수 없어요. 훌륭하다는 정책을 빚었다는 지식인 이름을 외운대서 역사를 배울 수 없어요.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을 알아야지요. 사람이 살아오며 빛낸 사랑을 알아야지요. 사람이 살아오며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일군 꿈을 알아야지요.


- “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솔직히 난 죄가 많으니 지옥 행은 당연한 일이야. 그래도 다시 한 번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 웃지 말게, 묘운. 난 진지하게 묻는 거야.” “지옥, 극락은 이 세상에 있습니다. 가령, 나리는 나라의 신사와 사찰을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만일 나리께서 그 일로 고민하신다면 나리는 지금 지옥에 있는 겁니다. 인간은 죽으면 다시 태어납니다. 단, 증인은 없습니다. 어쩌면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315쪽)


  나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 오늘 하루 살아갈 때에,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하느님 마음’과 ‘하느님 사랑’을 즐겁게 마주하면서 예쁘게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한결 따사롭게 ‘하느님 마음’을 북돋우고 한껏 너그럽게 ‘하느님 사랑’을 보살피겠지요.


  내가 누리고픈 두 가지는 좋은 마음과 좋은 사랑입니다. 내가 물려주고픈 두 가지는 좋은 마음이랑 좋은 사랑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면, 좋은 꿈입니다. 좋은 마음과 사랑과 꿈이라면, 내 삶도 옆지기 삶도 아이들 삶도 어여삐 빛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5.7.19.나무.ㅎㄲㅅㄱ)

 


― 불새 11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6.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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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7-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즈카 오사무의 평생의 역작이 불새라고 하지요? 그나 저나 이 책은 작가가 죽어서 결국 미완성이라고 하던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란놀 2012-07-20 01:25   좋아요 0 | URL
죽어서 미완성이라기보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스스로 그릴 수 있는 만큼 그렸어요.

읽는 몫은 우리한테 있어요.
 


 책을 읽는 손

 


  책을 읽는 손으로는 내 어떤 삶을 읽을 수 있을까. 책 또는 글을 쓰는 손으로는 내 어떤 삶을 일굴 수 있을까.


  새벽에 일어난다. 아침에 풀물 짤 생각을 하며 멧풀을 헹군다. 집 둘레에서 자라는 풀을 살핀다. 한 잎씩 뜯어서 씹는다. 씹는 맛이 좋다고 느끼는 풀을 한 대접 뜯는다. 두 손가락을 써서 똑똑 끊을 수 있는 보드라운 풀을 골라서 뜯는다. 마당 한켠에 있는 물꼭지를 틀어 들풀을 헹군다.


  빨래를 한다. 집식구 옷가지를 만지작거린다. 내가 어떤 손길로 만지작거리는가에 따라 이 옷에 깃드는 넋이나 사랑이 달라질 테지. 나 스스로 가장 좋은 손길이 되고, 나 스스로 가장 따순 손품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삶은 내가 좋아하며 걸어가는 삶이리라. 내가 읽는 삶은 내가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삶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가만히 생각한다. 큰 비바람을 몰고 온다는 하늘이 아직 파랗다. 어릴 적부터 큰 비바람에 앞서 바람이 잔잔하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한 때를 지나, 하늘이 새파란 때를 지나면, 이윽고 온통 새까만 하늘에 무시무시하게 퍼붓는 빗줄기가 온 땅과 지붕을 내리꽂곤 했다. 해가 있는 동안 집안일을 하고, 모기그물을 찾아 끝방 창문에 붙이자. (4345.7.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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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과 책

 


  밥을 차린다. 식구들 함께 먹을 밥을 차린다. 아이는 밥을 한 술 뜨고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다른 데에 가서 논다. 책을 본다든지 인형을 만지작거린다든지 동생이랑 엉겨붙는다든지 한다. 나는 이른아침부터 밥을 차리느라 부산을 떤다. 밥을 차리고 나서는 빨래에 마음이 간다. 그리고 이것저것 손 가는 일이 많다. 가만히 보면 나도 밥자리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밥을 먹지는 못하는 몸이 아닌가 싶다. 아이더러 혼자 밥상 앞에 얌전히 앉아서 냠냠짭짭 하기를 바랄 수 없는 셈이리라 본다. 아이가 밥을 제대로 다 먹고 나서 한갓지게 책을 보든 다른 놀이를 하든 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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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있는 곳 (도서관일기 2012.7.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책이 있는 곳에는 물기도 불기도 가까이 있으면 안 됩니다. 물기가 너무 많으면 책이 눅눅해지고, 불기가 가까이 있으면 그만 책이 타거나 바랩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책이 아닌 나무가 우거진 숲도, 물이 너무 넘치면 나무가 살기 힘들어요. 숲에 불씨가 있으면 그만 숲이 홀랑 타서 사라져요. 숲이 숲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책이 책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로구나 싶어요. 그러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겠지요.


  사람이 살아갈 보금자리를 좋고 예쁘며 알맞게 돌볼 수 있다면, 책이 있을 자리가 되든 다른 무엇이 있을 자리가 되든 좋고 예쁘게 알맞게 돌볼 수 있겠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사람됨을 빛내거나 밝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놓치거나 놓거나 등진 채 엉뚱하거나 얄궂은 쪽으로 기울어졌지 싶어요. 참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비로소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책씨를 퍼뜨리며 사랑꿈을 이룰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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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의 모험 꼬맹이 마음 27
고티에 다비드 지음, 마리 코드리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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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새로운 잔치·즐거운 노래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1] 마리 코드리·고티에 다비드, 《막스의 모험》(어린이작가정신,2008)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후박나무 밑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은 온통 하얀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가 퍼붓기도 하다가 비가 그치기도 하다가, 살짝 해가 비칠 듯하다가, 바람이 잔잔히 불다가, 하루에도 숱하게 바뀌는 날씨를 느낍니다. 빗물을 머금은 구름이 있고, 빗물을 안 뿌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이 있습니다.


  아기 옆구리를 두 손바닥으로 감싸쥐고는 하늘로 휙 던집니다. 아이가 까르르 웃습니다.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아이를 두 손바닥으로 착 받고는 다시 하늘로 휙 던집니다. 아이는 또 까르르 웃습니다. 첫째 아이가 둘째 아이처럼 무척 어렸을 적, 이렇게 하늘로 휙휙 던지며 같이 놀곤 했습니다.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하늘로 휙휙 던져지는 일을 퍽 좋아하며 웃습니다.


  어쩌면, 나도 이 아이들처럼 어린 어느 날, 내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휙휙 하늘로 던지며 놀았을까요. 내 형도 이렇게 하늘로 휙휙 던져지면서 시원한 하늘바람을 마음껏 누렸을까요.


  아이들은 나무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 곁에 선 어버이도 나무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볏포기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 곁에 선 어버이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볏포기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들은 멧새와 들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 곁에 선 어버이도 멧새와 들새 노랫소리를 듣고,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제비가 들판을 낮게 날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서로 바라봅니다. 빗방울 머금은 구름이 흐르며 들판을 간질이는 바람을 나란히 맞아들입니다. 햇살은 구름에 가리지만, 구름 위로 내리쬐는 햇볕은 온 들판을 포근히 감쌉니다. 아이들과 어버이는 고운 빛과 볕을 찬찬히 받아들이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 여우가 한 주 내내 얼씬도 하지 않고, 이웃사촌 곰은 여름 내내 벌집을 건드리지 않았어. 덕분에 닭들은 안심하고 지낼 테고, 나는 앞으로 몇 달 간 달콤한 꿀을 빵에 발라 먹을 수 있을 거야. 좀 있다가 숲속으로 버섯을 따러 가야겠어. 어제는 숫사슴이 와서 내 창문 아래 풀을 뜯어 먹었는데 아마 사슴떼가 가까이 있는 모양이야. 버슷을 딴 다음에 숨어서 사슴들이 나타나길 기다려야지 ..  (2쪽)


  밥을 차리며 생각합니다. 날마다 차리는 밥은 잔치밥입니다. 날마다 좋은 잔치를 누린다 할 만하니까 언제나 잔치밥입니다. 마을잔치나 생일잔치가 있어야 잔치밥은 아닙니다. 좋은 하루를 예쁘게 누리는 눈빛으로 맑게 웃으니까 늘 잔치밥입니다.


  아이들 달래며 노래를 부르다가,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옆에서 함께 부르다가, 아이들 재우며 노래를 부르다가, 늘 부르는 이 노래는 잔치노래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누리는 하루일 때에는, 눈짓이고 손짓이고 몸짓이고 모두 잔치입니다. 기쁘게 누리는 삶일 때에는, 말이고 글이고 그림이고 모두 노래입니다.


  찰랑찰랑 논물에서 동동 떠다니는 개구리밥을 들여다봅니다. 개구리밥 사이에서 헤엄을 치고 노래를 하는 개구리를 바라봅니다. 바람에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볏잎을 바라봅니다. 마당 한켠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먹는 멧새를 올려다봅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 한 마리 부산히 날갯짓을 하는데, 거미줄에서 톡 떨어져 다시 홀가분하게 날아갑니다.


  내가 보는 오늘 이 모습은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습들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와 주고받는 이야기는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나누는 말들입니다. 날마다 똑같은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밥차림은 같다 하더라도 날마다 다른 밥입니다. 날마다 같은 낱말과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날마다 다른 말입니다. 하루하루 생각이 자랍니다. 조금씩 마음이 큽니다. 사랑은 나날이 곱게 거듭납니다. 꿈은 시나브로 예쁘게 빛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좋은 꿈을 꾸면서 생각을 짓겠지요. 아이들을 낳아 보살피는 어버이는 어버이 나름대로 좋은 사랑을 다스리면서 생각을 빚겠지요.

 

 

 


  마리 코드리 님 그림과 고티에 다비드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막스의 모험》(어린이작가정신,2008)을 읽습니다. ‘어린’ 막스는 숲속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틈틈이 일기를 쓰며 그날그날 누린 ‘새 이야기(모험)’를 찬찬히 적바림합니다.


  즐겁게 밥을 차려서 먹습니다. 즐겁게 숲속을 돌아봅니다. 즐겁게 구름을 타고 날아갑니다. 즐겁게 바느질을 하고, 즐겁게 잠을 자며, 즐겁게 노래합니다.


  막스는 언제나 새 이야기를 빚는 하루입니다. 막스는 늘 새 꿈을 꾸는 하루입니다. 막스는 노상 새 사랑을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막스는 누구한테서 새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막스는 누구한테서 새 꿈을 물려받았을까요. 막스는 누구한테서 새 사랑을 배웠을까요. 어린 막스 가슴속에 언제나 자리하던 이야기와 꿈과 사랑인가요. 어린 막스는 차츰 어른으로 크면서 가슴속에 고이 모신 이야기와 꿈과 사랑을 한결 아리땁게 북돋울까요. 뒷날 어른이 된 막스는 스스로 누린 이야기와 꿈과 사랑을 막스가 낳을 아이한테 예쁘게 물려주면서 또다른 이야기와 꿈과 사랑을 누릴까요.


  누구나 오늘 하루 잔치이면서 이야기(모험)입니다. 누구나 오늘 하루 노래이면서 꿈입니다. 누구나 오늘 하루 맑은 빛이면서 사랑입니다. (4345.7.17.불.ㅎㄲㅅㄱ)

 


― 막스의 모험 (마리 코드리 그림,고티에 다비드 글,어린이작가정신 펴냄,2008.5.10./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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