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 우리시대 교사시선 1
김광철 / 고인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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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목소리
[시를 말하는 시 1] 김광철, 《애기똥풀》

 


- 책이름 : 애기똥풀
- 글 : 김광철
- 펴낸곳 : 고인돌 (2011.12.1.)
- 책값 : 1만 원

 


  시는 노래입니다. 시를 쓴 사람은 노래를 부르듯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듣듯 시를 듣습니다.


  노래는 시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시를 쓰듯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듣는 사람은 시를 듣듯 노래를 듣습니다.


  교사가 시를 쓸 때에는 교사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삶을 시로 들려줍니다. 교사가 아이들과 얼크러지며 빚는 삶을 차분하거나 우렁차게 노래할 때에 시가 태어납니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노래하는 삶일 때에 시가 태어나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옷을 벗고 ‘한 사람으로 만나는 삶’이 있을 때에 시와 같은 노래를 즐겁게 부릅니다.


  교사인 김광철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애기똥풀》(고인돌,2011)을 읽습니다. 참다이 이루는 교육을 생각하면서 살았다고 하는 김광철 님은, 당신이 쓴 시에서 당신 목소리를 낱낱이 담습니다. 이 나라 교육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곧은 길을 생각하며 시를 씁니다. 김광철 님 스스로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시를 씁니다.


  교육은 더 좋은 교육이나 더 나쁜 교육이 없습니다. 사람은 더 좋은 사람이나 더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날씨는 더 좋은 날씨나 더 나쁜 날씨가 없습니다. 그저 교육이고, 그저 사람이며, 그저 날씨입니다. 받아들이는 가슴에 따라 이 교육을 스스로 좋게 여길 수 있고, 저 교육을 스스로 나쁘게 삼을 수 있습니다. 맞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이 사람은 반가이 어깨동무할 수 있고, 저 사람은 얄궂게 등돌릴 수 있어요. 마주하는 삶에 따라 이 날씨는 나한테 좋다 느낄 수 있고, 저 날씨는 나한테 궂다 여길 수 있어요.


.. 여름날 조밭을 온통 뒤덮던 넌 철천지 원수였다 / 뽑고 또 뽑아도 끝이 없는 너와의 씨름 / 바다로 골짜기로 / 다른 애들처럼 물놀이 가고 싶은 소년의 꿈도 / 여지없이 짓밟은 너였지 / 해도 해도 끝이 없던 농사일에 / 시골 소년의 여름날은 / 차코 없는 사슬로 묶인 교소도 ..  (바랭이)


  교사 김광철 아닌 어린이 김광철한테 ‘어린 날 조밭’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조밭을 둘러싼 바랭이풀에 허덕이느라 바랭이풀이 끔찍하게 싫다는 생각만 불러일으키는 곳이었을까요. 조밭에서 낫으로 조를 꺾으면서 흘리던 땀이나 올려다보던 하늘이나 내려다보던 흙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한 사람이 흙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조밭에는 조와 바랭이풀만 자라지는 않았겠지요. 다른 들풀이 자랐을 테지요. 때로는 들풀에서 들꽃이 피었을 테고요. 밭뙈기는 조밭만 있지 않았겠지요. 무와 배추를 심은 밭이 있었을 테고, 감자와 고구마를 심은 밭이 있었겠지요.


  조밭은 지구별에서 어떤 흙땅이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시골마을 조밭은 온누리에서 어떤 삶터였을까 곱씹어 봅니다. 조밭을 일구던 손길은 어떠한 꿈을 꾸던 손길이었고, 이 조밭에서 거둔 곡식을 먹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밭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 올해에도 팔당대교 아래에서 고니들을 만났다 / 저 고니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장소에서 만났다 / 쟤들은 그 먼 길 / 만 리 먼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도 찾아온다 // 나는 그저께 차 몰고 찾아갔던 친구 집을 다시 찾았다 / 분명 저 골목 같은데, 그리 들었더니 그 길이 아니더라 / 또 다른 골목길을 더듬는다 / 그러기를 수차례, 결국은 친구를 전화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  (철새)


  하나를 보려고 하면 언제나 하나를 봅니다. 하나를 보려고 하니까 하나를 보는데, 하나를 보느라 막상 하나를 둘러싼 여럿이나 다른 하나를 못 보곤 합니다. 하나를 바라보면서 하나를 마음껏 바라보고, 하나를 둘러싼 모두를 살가이 쓰다듬는다면, 내 삶을 이루는 모든 사랑을 아름다이 얼싸안을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교사 한 사람한테는 ‘고니’ 한 마리나 열 마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 본 고니가 올해에 보는 그 고니일까요. 지난해에 본 고니는 지지난해에 본 그 고니일까요.

  사람은 고니를 바라보며 ‘고니’라고만 말합니다. ‘고니 아무개’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참새를 바라볼 때에도, 직박구리나 제비를 바라볼 때에도, 메뚜기나 개구리를 바라볼 때에도 ‘참새 아무개’나 ‘개구리 아무개’라고 말하지 못해요.


  어쩌면, 사마귀가 사람을 바라볼 때에 ‘그저 다 같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마귀를 바라보는 사람이 ‘그저 다 같은 사마귀’라고 여기면, 사마귀도 사람을 그저 다 같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보리밭 보리를 바라보며 다 같은 보리가 아니라, 다 다른 목숨인 보리씨앗이 다 다른 목숨인 보리알을 맺는다고 느낀다면, 보리밭을 가득 메운 어여쁜 보리들은 사람을 바라보며 다 다른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하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매미 노랫소리를 듣고,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듣는 노랫소리는 늘 다릅니다. 무논 앞에 서서 개구리들 노랫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구리마다 목소리가 달라요. 다 다른 목소리는 다 다른 바람결에 실려 내 귓결로 곱게 얼크러지며 스며들어요.


.. 참다못해 기어이 그 녀석의 숟가락을 뺏어 들고 / 밥 한 술 뜨고 그 위에 김치 한 조각 얹어 놓고는 / 기어이 고 녀석 입 속에 밀어 넣고야 만다 / 억지로 받아물기는 하지만 / 여전히 꼭 다문 입술 / 내리깔고 있는 눈길 / 얼르고 달래 보며 / 구슬려도 보고 협박도 해본다 / “얼른 먹으면 놀이터에서 10분 동안 놀다 오게 해 줄게.” / “이거 얼른 먹지 않으면 내일은 굶긴다.” /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지. 너흰 미국 사람 아니잖아.” / 그래도 아랑곳없다 ..  (병아리들의 점심)


  나는 시를 즐겁게 읽고 싶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이는 시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려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목소리를 높인들 시가 되지 않습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른대서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옥타브가 높아야 듣기 좋은 노래나 멋진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악기를 많이 타야 놀라운 노래가 뛰어난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노래는 노래다울 때에 노래입니다. 노래는 결을 살리고 무늬를 빛낼 때에 노래입니다. 곧, 시는 시다울 때에 시입니다. 시다운 결을 살리고 시다운 무늬를 빛낼 때에 시입니다. 이렇게 가야 하거나 저렇게 가야 한다고 목청을 외친다고 시가 되지 않습니다.


  왜 아이한테 밥을 억지로 먹여야 할까요. 왜 아이를 윽박질러야 할까요. 한국사람이 김치를 꼭 먹어야 할까요.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을 수 없을까요.


  한겨레가 김치를 먹은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한겨레는 이천 해나 오천 해 앞서에도 김치를 먹지는 않았습니다. 일만 해나 오만 해 앞서 한겨레는 무엇을 먹었을까요. 일만 해나 오만 해 앞서 먹던 무언가를 오늘날 먹어야 비로소 한겨레다울까요. 오백 해나 백 해 앞서 널리 먹던 무언가를 오늘날 먹어야 바야흐로 한겨레다울까요.


  이주노동자가 낳은 아이도 한국사람이고 한겨레입니다. 한국땅에서 태어나지 않고,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도 한국사람이고 한겨레입니다. 어느 사람은 김치 같은 먹을거리를 잘 먹지만, 어느 사람은 김치 같은 먹을거리가 몸에서 안 받습니다. 어느 사람은 소젖을 잘 마시지만, 어느 사람은 소젖이 몸에서 안 받습니다. 밀가루가 안 받는 사람이 있어요. 찬것이 안 받는 사람이 있어요. 달걀이 안 받는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밥으로 다 다른 삶을 이룹니다.


  아이가 김치 한 조각을 먹고 나서 ‘놀이터에서 고작 10분 놀’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아이는 혼자 또는 여럿이서 놀이터에서 어떤 놀이를 10분 동안 할 만한가요. 오늘날 아이들은 공차기나 줄넘기를 빼고, 흙놀이나 고무줄놀이나 뜀뛰기놀이 들을 얼마나 즐거이 누리는가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떠한 터전일까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삶을 얼마나 바라보거나 느끼면서 제 삶을 씩씩하거나 튼튼하거나 싱그럽거나 해맑게 북돋우는가요.


  아이들이 따르거나 다가오도록 하자면, 교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됩니다. 아이들이 믿거나 찾아오도록 하자면, 교사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가면 됩니다.


  목소리 높이는 교사는 아이들한테 알맞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주워섬기는 교사는 아이들한테 걸맞지 않습니다. 이론과 비평을 잘 할 줄 아는 교사는 아이들한테 반갑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고 함께 먹으며 함께 누릴 수 있는 어버이와 교사가 반갑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사랑하고 함께 꿈꾸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어버이와 교사가 즐겁습니다.


.. 아니다 / 그 길은 정의가 아니기 때문에 아니다 / 진정으로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 그들 욕심의 반은 내려놓아야 한다 / 그 엄혹한 자유당, 공화당 치하에서도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 / 그 개천 자체를 송두리째 메워버리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 물길은 터야 한다 /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느는 희망을 줘야 한다 ..  (곽교육감에게도 비추고 있을 팔월 열나흘 달)


  교사 김광철 님은 《애기똥풀》이라는 시집을 내놓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교사 김광철 님은 ‘목소리 높이기’ 아닌 ‘삶을 사랑하기’로 시를 쓰는 길을 듣거나 배우거나 마주하거나 찾아나선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교사한테서 지식을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교사한테서 삶을 배웁니다. 일그러진 삶을 배우든 아름다운 삶을 배우든,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교사한테서 삶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제 어버이와 살아가며 삶을 배웁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아이들은 삶을 배웁니다. 삶 아닌 다른 무엇을 배우지 않아요.


  곧, 삶을 나누는 학교요 집이고 마을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쓰는 시요 소설이며 수필입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삶을 춤춥니다. 삶을 그립니다. 삶을 찍습니다.


  어떤 삶을 사랑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어떤 삶을 사랑하면서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고 싶은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교사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무엇보다 어떤 삶을 사랑하면서 시를 쓰고 아이들 앞에 서고 싶은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시집 《애기똥풀》에서는 바로 이 대목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틀은 시집이지만, 정작 시집이 시집다울 몫인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김광철 님은 교사로 지내는 나날을 시로 썼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야말로 시는 ‘목소리’ 한 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글은 목소리예요. 모든 말은 목소리예요. 어떤 글이거나 말이거나 모두 목소리예요. 나는 늘 내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요. 굳이 ‘나는 이런 목소리를 낸다구!’ 하고 힘주어 되풀이할 까닭이 없어요. 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면 이 이야기에서 목소리를 살피고 느끼면서 삶과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려 하지 않고, 온통 목소리로만 꽉 눌러채워 시라는 옷을 입힌다 한다면, 겉보기로는 시라 할는지 모르나, 싯말은 하나도 태어나지 않고 말아요.


  《애기똥풀》은 시집이 되지 못해요. 꼴은 시집이라 하지만, 시집다운 목소리가 없어요. 모양새는 시집이라 할 터이나, 시집으로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지 못해요. 겉모습은 시집이 되겠지만, 참교육이든 참교사이든 참배움이든 참꿈이든 참지식이든 참얘기이든,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 되는가 하는 갈래조차 들려주지 못해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리는 기쁜 사랑을 시로 적을 수 있기를 빌어요. 맑게 빛나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달콤하게 마시는 예쁜 꿈을 시로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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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8-07 18:26   좋아요 0 | URL
어려운 얘기이지만,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얘기이네요.

시를 그냥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시의 품격과 시를 읽는 사람의 품격을 생각해보게 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꾸벅(__)

파란놀 2012-08-07 19:33   좋아요 0 | URL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지만,
어렵지 않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구나 싶어요.

'시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부터
스스로 잘 갈무리하고 나서
시를 쓸 때에
삶이 빛나는 노래가 되리라 느껴요...
 

사진읽기
― 마음으로 새기는 사진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한겨레붙이는 손톱과 발톱에 봉숭아잎을 빻은 것을 살살 올려놓고는 곱게 감싸사 물을 들인다. 봉숭아물 들이기는 언제부터 했을까. 한겨레붙이는 봉숭아물을 언제 깨달았을까. 물이 곱게 드는 봉숭아잎인데, 옛날 사람은 봉숭아잎을 맛난 푸성귀로 여겼을까, 그저 고운 물 들이는 잎사귀로 삼았을까. 모시풀 줄기로는 실을 얻지만, 모시풀 잎은 맛나게 먹을 뿐 아니라 떡을 찌어 먹기도 한다. 옛날 옛적에는 봉숭아풀을 어떤 이웃으로 두었을까.


  봉숭아물 들이던 이야기는 언제부터 책에 적혔을까. 한겨레가 그림을 그리던 먼먼 옛날 옛적 가운데 어느 때에 봉숭아물 들이기를 그림으로 옮겼을까. 한겨레가 사진을 받아들이던 지난 백 해 사이에 어느 누가 봉숭아물 들이는 살붙이 고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을까.


  우리 집식구는 해마다 봉숭아물을 들인다. 나는 해마다 봉숭아물 들이기를 사진으로 찍는다. 옆지기와 아이들은 해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고, 살붙이 한삶을 적바림하는 사진은 해마다 차곡차곡 늘어난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은 해마다 늘어난다. 사진을 찍든 안 찍든 이야기는 해마다 푼푼이 쌓인다. 사진을 찍어도 그리운 옛이야기를 떠올릴 만하고, 사진을 안 찍어도 마음으로 아로새긴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길 만하다.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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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면서 똥눈 아기 밑씻기

 


  작은아이가 새벽에 잠에서 깨어 끙끙거리더니, 어머니 품에 안긴 채 똥을 누었다. 아버지는 잠든 채 똥을 눈 작은아이를 안는다. 바지와 기저귀를 살살 벗긴다. 작은아이는 그대로 잠을 잔다. 물을 틀어 밑을 씻긴다. 작은아이는 밑을 씻기는 동안 잠에서 깨지 않는다. 밑을 다 씻기고는 방으로 들어와 아버지 무릎에 누인다. 살살 토닥이는데 작은아이가 실눈을 뜬다. 자장자장 개운하게 응가를 누었으니 즐겁게 더 자렴. 작은아이는 다시 눈을 감는다. 바지를 새로 입히고 기저귀를 새로 댄다. 콜콜 자는 아이를 가만히 자리에 눕힌다.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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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생각하라 -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아르네 네스.존 시드 외 지음, 이한중 옮김, 데일런 퓨 삽화 / 소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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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고 싶은 생각인가
 [환경책 읽기 39] 아르네 네스와 네 사람, 《산처럼 생각하라》

 


- 책이름 : 산처럼 생각하라
- 글 : 아르네 네스·존 시드·조애나 메이시·팻 플레밍·데일런 퓨
- 옮긴이 : 이한중
- 펴낸곳 : 소동 (2012.1.26.)
- 책값 : 13000원

 


  내가 나를 구름이라 여기면 나는 구름이 되어 구름처럼 하늘을 누비면서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하늘이라 여기면 나는 하늘이 되어 하늘처럼 파란 빛깔로 눈부시게 빛나면서 생각을 빛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람이라 여기면 나는 사람다운 몸과 마음으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들꽃 한 송이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들풀 한 포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들나무 한 그루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생태를 보존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비폭력 행위라는 것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모든 생명을 끌어안도록 요구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자비에 따라 보살피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  (30, 32∼33쪽)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웃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기쁘게 두레를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어떤 모습이 되든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생각인가를 찬찬히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때에,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처럼 살아갑니다.


  꿈을 그리는 사람은 꿈을 이룹니다. 꿈은 천천히 이루기도 하고 더디 이루기도 합니다. 꿈은 싱그럽게 이루기도 하며 힘겨이 이루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온갖 가시밭길을 거치며 꿈을 이룹니다. 누군가는 상긋 웃으며 홀가분하게 꿈을 이룹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꿈을 생각하지 않아 꿈을 이루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꿈하고 동떨어진 길을 걸어가면서 꿈을 일그러뜨립니다.


  사랑을 하고 싶다면 오늘부터 사랑을 하면 되지만, 정작 사랑을 하고 싶다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고운 꿈이 되도록 그리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사랑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있으니 가만히 사랑을 그리면서 예쁘게 사랑을 부르면 이룰 수 있어요. 나한테 없는 사랑을 꾀하거나 나하고는 어긋난 사랑을 밥그릇 챙기듯 거머쥐려 하기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해요.


  삶은 언제나 좋은 빛이자 그늘입니다. 삶은 언제나 좋은 빛그림이요 그늘그림입니다. 빛이 밝아 따사로운 하루를 누립니다. 그늘이 지며 땀을 훔치며 느긋하게 쉽니다. 빛과 그늘은 동떨어지지 않아요. 빛과 그늘은 한몸뚱이입니다. 빛이 드리우면서 그늘이 지고, 그늘이 지면서 빛이 드리웁니다. 눈을 뜨며 흙땅에 발을 디디고, 눈을 감으며 하늘나라에 생각을 띄웁니다.


.. 자기실현을 협소한 자아의 만족과 같은 뜻으로 본다는 것은 스스로를 심각하게 과소평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더 큰 나라는 관념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 우리에겐 이 땅의 어느 것 하나 신성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빛나는 솔잎 하나, 모래톱 하나, 어두운 숲의 안개 하나, 숲속의 빈터 하나, 붕붕거리는 벌레 하나도 우리의 기억과 체험 속에 신성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 어떻게 해서 흙과 더 떨어져 살게 되었는가요? 이제 우리는 붐비는 거리를 서둘러 헤치고 지나다닙니다. 모두가 우리한테 방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  (34, 46, 110쪽)


  스스로 지리산처럼 생각하면 지리산처럼 됩니다. 스스로 백두산처럼 생각하면 백두산처럼 됩니다. 스스로 자동차처럼 생각하면 자동차처럼 됩니다. 스스로 핵발전소처럼 생각하면 핵발전소처럼 됩니다. 좋아하든 미워하든, 반갑게 여기든 달갑잖게 여기든, 스스로 생각하는 결에 따라 내 모습이 이루어집니다.


  활짝 웃는 예쁜 이웃을 바란다면 나 스스로 활짝 웃는 예쁜 삶을 생각합니다. 빙그레 웃는 고운 동무를 바란다면 나 스스로 빙그레 웃는 고운 삶을 생각합니다. 예쁜 삶을 생각하며 예쁜 마음이 되고, 예쁜 말이 태어나며, 예쁜 꿈이 이루어집니다. 고운 삶을 생각하며 고운 마음이 되고, 고운 말이 태어나며, 고운 꿈이 이루어집니다.


  제아무리 지친 몸이라 하더라도 ‘더 달려야겠어’ 하고 생각하면, 지친 몸이 새로 기운을 내며 더 달립니다. 제아무리 졸린 몸이라 하더라도 ‘이제 깨어야겠어’ 하고 생각하면, 졸린 몸이 새로 기운을 얻으며 씩씩하게 일어납니다. 마음은 몸을 이끕니다. 마음은 몸을 깨웁니다. 마음은 몸을 살찌웁니다. 마음은 몸을 움직입니다.


..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것이라곤 없습니다. 봄이면 잎사귀 펴지는 소리를, 벌레들 날개 스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습니다 … 짐승 없는 사람은 뭐가 될가요? 짐승이 다 사라지고 나면 사람은 영혼이 너무 외로워 죽어버릴 겁니다. 짐승에게 일어난 일이 곧 사람에게도 일어날 테니까요 … 나무들 사이를 다닐 때는 주고받는 관계를 의식하도록 하십시오. 나뭇잎에다 이산화탄소 가득한 숨을 내어 쉬면서, 나뭇잎이 당신에게 맑은 산소를 내어 쉬는 것을 느껴 봅시다 ..  (50, 52, 94쪽)


  아르네 네스·존 시드·조애나 메이시·팻 플레밍·데일런 퓨, 이렇게 네 사람이 슬기를 모아 엮은 책 《산처럼 생각하라》(소동,2012)를 읽습니다. 이들 네 사람은 누구보다 이녁 스스로 ‘산처럼 되’고 ‘산처럼 살’고 싶기에 ‘산처럼 생각합’니다. 스스로 산처럼 생각하며 산처럼 살아가고 산처럼 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기에, 이들 네 사람은 우리들한테 좋은 기쁨과 맑은 즐거움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나는 이들 네 사람처럼 ‘산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들 네 사람하고 한뜻이 되어 ‘바다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감자꽃처럼 생각할’ 수 있을 테고, 때로는 ‘마늘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석류나무처럼 생각할’ 수 있을 테며, 때로는 ‘대나무처럼 생각할’ 수 있어요.


  냇물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볏포기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풀벌레 노랫소리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가장 바라고 가장 좋아하며 가장 예쁘다 여기는 대로 생각할 수 있어요.


..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생명이 우리의 유일한 과제이기 때문인데, 덜 집착하는 담담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행동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흔히 활동가들은 명상할 시간을 별로 내지 못한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담담한 공간이나 여지는 명상 비슷한 것일지 모른다 … 자연을 파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을 지키려고 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와 같은 변화를 겪어 보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라고, 경찰이나 정치인이나 개발업자나 소비자 같은 제한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더 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라고 호소한다 ..  (73, 166쪽)


  사람들 누구나 좋은 길을 걸어가며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가장 예쁜 삶을 생각하며 예쁜 꿈을 그릴 수 있기를 빕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동무를 사귀고, 예쁜 생각으로 예쁜 마을을 일굴 수 있기를 빕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기도 할머니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서로서로 가장 좋은 마음과 삶과 사랑으로 하루를 빛낸다면 참으로 즐거우리라 느껴요. 교사도 학생도, 군인도 정치꾼도, 회사원도 공무원도, 노동자도 기업 총수도, 모두모두 가장 예쁜 생각과 꿈과 이야기로 하루를 누린다면 더없이 기쁘리라 느껴요.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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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94] 승주 C.C.

 

  고흥에서 순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길알림판 하나를 바라본다. 길알림판에는 “승주 C.C.”라 적혔다. 함께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 길알림판에 적힌 “C.C.”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말한다. 나는 옆에서 “골프장이에요.” 하고 말한다. 길알림판에 적힌 글월을 모르겠다 말한 사람들이 “골프장이면 골프장이라고 적어야지 저렇게 적으면 어떻게 아느냐.” 하고 말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못 알아볼 사람이 있을 만하다. 나는 골프장을 안 가는 사람이지만, “C.C.”가 가리키는 곳을 알아보는데, 한국사람이 찾아가는 한국 골프장 이름을 굳이 알파벳으로 적어야 할 까닭이 없다. 골프장을 가는 사람한테도 안 가는 사람한테도 그저 ‘골프장’이라는 이름이면 된다. 왜냐하면, 길알림판이니까. 길알림판에는 한글로 알맞게 이름을 적고, 이 이름 밑에 영어로든 한자로든 덧달아 주면 된다.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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