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반가운 어린이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살 적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고, 눈을 쓰느라 바빴다. 큰아이는 세 살과 네 살 언저리에 겨울날 눈쓸기를 거들곤 했다. 전라남도 두멧시골집에서 다섯 살 어린이는 눈 만날 일이 뜸하다. 눈이 내린다 한들 쌓이지도 않는다. “나 눈 좋아하는데, 눈 보고 싶어.” 하고 말하는 아이가 흐뭇해 할 만큼 눈이 찾아들지 않는다. 진눈깨비라 할 만한 눈송이가 조금 뿌리다가 그치곤 하는데, 고작 이런 눈으로도 아이는 즐겁다. 마당을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입을 헤 벌리며 눈을 받아먹는다. 4345.12.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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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2] 아주까리 동백꽃


  둘레 어른들이 모두 ‘피마자’라고 말해서, 우리 집 뒤꼍이나 텃밭에서 자라던 풀을 ‘피마자’라고만 생각했다. 이 이름이 한국말 아닌 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풀이름을 잘 모른다고만 여겨, 어른들이 일컫는 이름을 그예 따라서 익히면 되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한겨레가 예부터 일컫던 풀이름은 ‘아주까리’요, ‘피마자(蓖麻子)’는 ‘아주까리’라는 풀을 한자로 옮겨적은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아주 어릴 적에도 내 둘레 어른들은 ‘피마자’라는 한자말을 곧잘 썼구나 싶다. 어른들은 똑같은 풀 하나를 놓고 한쪽에서는 오랜 한국말(토박이말)로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자로 껍데기를 씌운 말을 쓰는 셈이다. 한편, 〈아리랑목동〉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처럼, 노래나 시에서는 으레 ‘아주까리’라 말한다. 이 노래를 그토록 많이 듣고 불렀지만, 정작 아주까리가 무엇이요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다. 궁금해 하지 않았고, 가슴 깊이 느끼지 못했다. 그러면 “아주까리 동백꽃”에서 ‘동백꽃’은 무엇일까. 김유정 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강원도말로 ‘생강나무 꽃’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아주까리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 또한 생강나무 꽃은 아닐까. 남녘 바닷가 마을이나 제주섬에 흐드러지게 피는 동백나무 꽃일까. 참말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지만, 한국말을 슬기롭게 들려주는 어른을 보기 어렵고, 한국사람답게 한국말 빛내는 어른을 마주하기 힘들다. 4345.12.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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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곳곳은 어디를 가나 막개발이다. 서울도 부산도... 모두 막개발이다. 도시도 시골도 온통 막개발이다. 막개발을 끝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작은 책 하나가 서로서로 길동무 구실 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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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 거대한 상실- 낙동강 하구 30년 막개발 탐사
박창희 지음 / 페이퍼로드 / 2009년 11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12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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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쓰다가 '절판된 정글' 이야기를 살피는데, 뜻밖에 2009년에 다시 나온 모습을 본다. 그렇구나. 내가 신문을 안 읽으니 이 책이 이렇게 다시 나온 소식도 못 보았나 보구나.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알뜰히 사랑해 주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쏠쏠히 읽히는구나 싶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랑받아, 또 절판되어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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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6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12년 12월 30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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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3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찾던 책이 절판된 것을 확인하게 되면 참 속상해요.
어떤 책에서 작가가 추천한 책이 있어서 찾게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좋은 책은 다시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2-12-31 02:20   좋아요 0 | URL
네, 아름다운 책을 아름다운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삶터가 되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해요
 

 

 책으로 보는 눈 194 : 후박나무와 함께 읽는 책

 


  이오덕 님이 쓴 《우리 글 바로쓰기 (1)》(한길사,1992)를 요즈음 들어 새삼스레 다시 읽습니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에 처음 읽었고, 그 뒤로 틈틈이 다시 읽습니다. 《우리 글 바로쓰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마음을 차분히 다스릴 수 있어요. 어떤 말지식을 얻으려고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내가 살아가는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슬기로운가를 헤아리려고 읽는 책이기 때문일까요. 한참 되읽다가 269쪽에서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이 살던 마을, 바라보는 산, 골짜기와 내들의 이름을 모두 지었다고 했다. 그 이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순수한 우리 말 이름이다 … 그런데 중국글자를 숭상하던 양반들은 이런 마을 이름들을 중국글자말로 지어 붙였다.” 하는 대목을 보고는 다시 밑줄을 긋습니다.


  그래요. 우리 겨레 옛사람은 이 나라 골골샅샅 마을 이름을 모두 한국말(토박이말)로 지었어요. 냇물 이름, 멧골 이름, 들판 이름, 바다 이름 모두 한국말로 붙였어요.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에까지 이름이 있어요. 야트막한 동산 하나에도 이름이 있어요. 작은 벌레 한 마리한테까지 이름이 있어요. 들풀과 들꽃한테도, 숲을 이루는 나무한테도, 냇물과 바닷물에서 살아가는 물고기한테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한테도, 숲에서 살아가는 짐승한테도 모두 어여쁜 이름을 붙였어요. 구름에도 이름이 있지요. 별에도 이름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늘 말하는 가장 쉽고 가장 흔하며 가장 빛나는 이름들, ‘해·달·물·불·바람·밥·옷·집·흙·돌·하늘·땅·바다’ 같은 낱말도 우리 겨레 옛사람이 붙였어요. ‘손·발·머리·마음·코·입·귀·눈·허파·염통·애·손가락·머리카락’ 같은 이름도 참말 알맞고 살갑게 붙였습니다. 이뿐인가요. ‘사랑·꿈·믿음·생각·웃음·눈물·빛·무지개·미리내·하느님·이야기’ 같은 이름은 그지없이 아름다우며 해맑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름답다’나 ‘어여쁘다’나 ‘아리땁다’나 ‘예쁘다’ 같은 낱말은 어떻게 빚었을까요. ‘맑다’나 ‘밝다’나 ‘놀다’나 ‘좋다’ 같은 낱말은 어떻게 일구었을까요.


  한삶을 교육자 한길 걸으며 한겨레 말삶을 북돋우려고 힘쓴 이오덕 님이 쓴 책은 ‘바로쓰기’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 우리 옛사람이 온누리에 새 이름 즐겁게 붙이던 고운 넋을 이야기꽃으로 피우려는 《우리 글 바로쓰기》라고 느껴요. 사랑을 살찌우는 말입니다. 꿈을 빛내는 글입니다. 믿음을 나누는 말입니다. 생각을 북돋우는 글입니다. 이야기를 즐기는 말입니다. 사람들 마음속마다 아리땁게 드리우는 하느님 넋을 밝히는 글입니다. 아이들과 까르르 웃으며 누리는 말입니다. 논술이나 문학을 하라는 글이 아니라, 삶을 일구며 이웃과 어깨동무하라는 글이에요.


  한겨울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맨손으로 눈송이 뭉쳐 노는 아이들은 마당 한켠 후박나무 밑에서 서로서로 웃고 떠들며 달립니다. 후박나무는 겨우내 찬바람 마시며 꽃봉오리 단단히 여밉니다. 새봄 찾아와 따스함 무르익으면 천천히 잎사귀 벌려요. 우리들 가슴에도 착한 사랑 싹트면 천천히 자라 알차게 피어나겠지요. 개구지게 놀며 손 꽁꽁 언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내 큰 손으로 작은 손을 꼬옥 감싸며 녹입니다. 글 한 줄에서 생각을 읽고, 아이들 몸짓 하나에서 노래를 읽습니다. 4345.12.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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