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경
유영우 지음 / 푸른세상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광경>은 다른 사진책입니다. 그러나 유영우 님 1988년 사진책은 목록에 안 뜹니다. <광경>은 나중에 다시 비평할 생각입니다. 유영우 님 사진세계를 알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내가 걷는 길, 사진이 가는 길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2] 유영우, 《또다른 고향》(열화당,1988)

 


- 책이름 : 또다른 고향
- 사진 : 유영우
- 펴낸곳 : 열화당 (1988.4.6.)

 


  아침에 눈을 뜨며 하얗게 눈부신 햇살을 바라봅니다. 아니, 일어나기는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니까, 아직 달빛과 별빛 초롱거리는 까만 하늘부터 바라보지요. 새벽을 지나고 아침이 찾아들 무렵, 보라빛에서 노란빛에서 하얀빛으로 차츰 달라지는 빛살을 느끼면서 빙긋 웃어요.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즐거움은 참말 아침부터 새삼스레 누리는구나 하고.


  30층이나 50층쯤 되는 높다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아침마다 무엇을 바라볼까요.


.. 그 전에는 깊이 생각지 못했던 점이지요. 작업을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결국 사진은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사실에 가깝게 작업하려는 다큐멘터리적 접근은 객관성이 요구된다는 이야기겠지요. 어떤 지역을 다큐먼트한다고 하면 그 지역의 실체를 잘 보여주어야 할 텐데, 과연 그 실체가 무엇인가라는 것이 항상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내 마음밭을 일굽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가 내 사랑씨앗으로 자랍니다. 곧,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눈길을 틔우고 눈빛을 밝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이야기로 사람을 만나고 마을을 누비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곳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진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집니다.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진에 담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느 전쟁터나 가난한 두멧시골로 사진기 짊어지고 찾아간대서 ‘다큐멘터리’가 태어나지 않아요.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든 가난한 두멧시골에서 사진을 찍든, ‘그곳에 있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시나브로 일군 내 마음가짐’에 따라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걷는 길이 사진이 걷는 길입니다. 내가 사는 길이 사진을 살리는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길이 사진을 바라보는 길이에요.


  사람마다 사진이 다릅니다. 같은 스승한테서 사진을 배운다 하더라도, 배우는 사람들 삶이 다 다르기에 사진이 다 다르게 태어납니다. 같은 사진학교를 다닌다 하더라도, 사진학교 다니는 사람들 생각이 다 다르기에 사진이 다 다르게 어우러집니다.


  한 가지로만 읽는 사진은 없습니다. 한 가지로만 읽힐 사진은 없습니다. 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도, 사진기 쥔 사람들 삶과 생각이 모두 다른 만큼, 다 다른 느낌과 이야기가 샘솟는 사진이 태어나요.

 

 


.. 우리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이러한 만남의 의미 부여 과정이란 것이 결국 삶이겠지요 … 결국은 내 나름대로 메시지를 전하려고 이용하는 것이니까, 사진이 사물을 상징화한다는 것도 그런 뜻이 아닌가 싶어요 … 멋을 내 봐야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철 지난 옷 입고 있는 기분이고, 그러나 멋을 부리지 않은 것은 자연스럽고 좋던데요 ..


  군부대에서 지뢰 밟고 죽은 동무를 본 사람이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군부대로 곧 끌려갈 젊은 사내가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아이 여럿을 낳아 돌본 어머니가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공무원으로 스무 해쯤 일한 누군가 사진동아리 삶을 누리다가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어느 문화재단에서 돈을 받고 비무장지대를 기록하려고 사진을 찍을 때하고, 학술연구나 자연조사를 한다며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저마다 어떻게 다를까 하고 생각해 보셔요. 똑같은 비무장지대에 서고, 똑같이 움직이며 똑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다 다른 느낌과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다 다른 사진이 이루어져요.


  열 살 어린이 열 사람한테 사진기를 하나씩 주면서, 이 아이들더러 하루나 이틀쯤 스스로 마음에 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라고 할 때에도, 열 아이는 열 갈래로 다른 사진을 빚습니다.


  사진은 삶이기에 다 다릅니다. 사진은 생각이기에 사진마다 다 다른 느낌과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진을 즐기는 적잖은 분들은 ‘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 틀림없을 텐데, 다 엇비슷해 보이는 사진’을 찍곤 합니다. 이른바, 멋들어져 보이는 사진, 예쁘장하게 보이는 사진, 작품이라 여길 만한 사진을 찍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 왜 다 다른 사진을 못 찍을까요. 왜 사진전문가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사진을 찍도록 돕지 못할까요. 다 다른 사람들이 왜 다 다른 삶과 생각을 다 다른 사진으로 보여줄 마음을 못 품을까요. “잘 찍는 사진”이나 “멋있게 찍는 사진” 이야기가 왜 이리도 넘칠까요. 저마다 사진을 즐기는 이야기는 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까요.

 

 


.. 미리 정해진 인식을 인정해서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 미국에서는 거의 틀림없이 아무리 화면의 비례를 조정해도 사람이 작아 보입니다. 환경 자체가 직선적이고, 구조적 틀이 압도하고, 비인간적인 데서 비롯되는 것 같고, 상대적으로 곡선적인 한국의 환경이 편해 보일 수 있을 겁니다 … 어떤 인간이 사물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자 할 때는 그러한 기법이 적합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기법이 주는 효과로 인해 관객이 형식에 끌려 가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


  겨울바람이 붑니다. 그래서 나는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늘을 바라보고 겨울나무를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봄이 찾아오면 봄바람이 붑니다. 이때에 나는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들을 바라보고 봄꽃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철마다 철빛을 사진으로 담지요. 철마다 철빛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에 즐겁지요.


  그런데, 가끔 도시로 마실을 가고 보면, 도시에서는 철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겨울이라지만 겨울다운 빛이나 무늬를 찾아보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봄에는 봄빛을 찾기 어려운 도시요, 여름에는 여름을 찾기 어려운 도시로구나 싶어요. 그래서일까요, 제 철 제 빛깔 찾기 어려운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사진을 찍으려 할 때에도 ‘철 따라 다른 빛이나 무늬’는 잘 안 드러나는구나 싶어요. 철 따라 다른 빛이나 무늬를 찾기 어렵기에, 자꾸자꾸 만듦사진으로 나아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스스로 빛과 무늬를 길어올리지 못하기에, 자꾸자꾸 ‘무언가 새롭다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길로 빠지는구나 싶어요.


  더없이 마땅한 일인데, ‘새롭다 싶은 모습’을 애써 찾아나서지 않아도, 내가 찍는 사진은 늘 새로운 모습을 담는 사진이 됩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일구면, 내 사진은 내 삶에 따라 저절로 새롭고 사랑스러우면서 환하게 빛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돌보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며 누리지 못한다면, 내 사진은 이리 꾸미거나 저리 만지더라도 하나도 안 새롭고 하나도 안 즐거우며 하나도 안 예쁩니다.


  사진은 거짓을 보여줄까요. 그래요,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에 거짓이 깃들면 사진은 거짓을 보여줍니다. 사진은 참을 보여주나요. 그래요,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에 참이 서리면 사진은 참을 보여줍니다.


  살아가는 그대로 사진으로 드러납니다. 살아가는 결이 사진으로 이루어지는 결입니다. 살아가는 꿈과 마음과 사랑과 생각이 사진으로 나누며 꽃피우는 꿈이요 마음이며 사랑이고 생각입니다.

 

 


.. 크고 요란하게 소리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실득력이 있을 테니까요 … 분명히 관찰하고, 또 그렇게 해서 메시지가 다가오지 않는 것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읍니다 … 드라마틱한 것이 아무래도 직접적인 호소력은 강하겠지요. 요즘 사진은 작가 자신의 메시지를 강화시키면서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찍지요. 진실이라는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러나 정직하게 보고 싶었지요 ..


  유영우 님이 빚은 사진책 《또다른 고향》(열화당,1988)을 생각합니다. 유영우 님은 당신 고향인 시골마을이랑 미국에서 ‘짐차 모는 일꾼이 쉬는 곳’ 두 군데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사진책 《또다른 고향》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한테 ‘고향은 어디’요 ‘고향 아닌 곳은 어디’인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한국사람 살아가는 한국은 어떤 나라요, 한국사람은 얼마나 한국사람다운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고향은 어디인가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전남 고흥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전남 고흥이 고향인가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으나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전남 장흥이 고향이 될 수 있는가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강원 횡성에서 짝꿍을 만나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어디가 삶터요 보금자리이며 고향이라 할 만할까요.

 

 


.. 고향 때문에 빚어지는 추억 같은 것을 드러내려 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숨길 수 없는 면이 있겠지요 ..


  사진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할 때에 사진인가요. 사진기 단추를 찰칵찰칵 누르면 다 사진이라 할 수 있는가요. 사진기 단추를 누르지 않고 두 눈으로 가만히 바라볼 때에는 어떤가요. 아예 눈을 감고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을 기울일 때에는, 사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요.


  사진은 왜 사진인가요. 우리들은 사진을 왜 즐기고 왜 찍으며 왜 나누는가요. 전시장에 작품을 걸거나 사진 몇 가지 추려 사진책으로 엮으면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요.


  사진을 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요. 사진을 하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사진을 빚어 함께 나누려는 이웃들은 어디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누리는가요.


  눈발 흩날리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겨울에도 따스한 날씨인 전남 고흥에서는, 눈발 흩날리더라도 눈이 안 쌓입니다. 밤에 내린 눈은 아침이 되면 모두 녹고, 낮에 내리는 눈은 마당에 떨어지자마자 녹습니다.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눈은 무엇일까요. 추운 도시에서 눈은 무엇일까요. 내리자마자 녹으니 눈을 쓸 일도 없지만, 우리 식구 살아가는 두멧시골에는 드나드는 자동차 거의 없어 눈을 쓸 까닭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수십만 수백만 천만 사람 북적이는 큰도시나 서울에서는 우리하고 다를 테지요.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주 많이 바빠 느긋하게 눈을 구경하지 못해요. 아주 많은 자동차가 끝없이 오가니까 눈이 내리기 무섭게 쓸어야 하거나 염화칼슘을 뿌려야 한다지요. 큰도시나 서울에서 눈은 무엇일까요.


  내가 걷는 길에서 내 사진을 생각합니다. 내 삶을 생각하면서 내 사진을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할 삶을 생각하면서 내가 사랑할 사진을 생각합니다. 나는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 시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나는 스스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빚고 싶어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까르르 웃고 노래하고 놀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 이야기는 내 삶이 되고, 내 삶은 내 생각이 되며, 내 생각은 내 사진이 됩니다.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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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책에서 사진에 관한 글을 읽고 사진에 대해 새로운 걸 배운 적이 있어요.
이 글에서도 배우게 되네요.

"다 다른 사람들이 왜 다 다른 사진을 못 찍을까요. 왜 사진전문가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사진을 찍도록 돕지 못할까요."
- 이 글을 읽으며 자기만의 향기를 지닌 사람, 자기만의 향기를 지닌 사진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글로 말하면, 저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글 말고, 저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자기만의 빛깔을 내고 싶은데 말이죠. ㅋㅋ

파란놀 2013-01-28 16:42   좋아요 0 | URL
이론이나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들은
자꾸
'내 빛'을 잃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책 안 읽고 글 안 읽을 때에
오히려 '내 글빛'을 드러내지 않나 싶기도 해요 ^^;;;;;;;
 

 

 

 

..

한기호 씨가 '알라딘 알바'라고 말한 대목이

잘못이라고 받아들여 사과를 했다.

히유. 참 잘 되었다.

왜 책마을 사이에 금긋기를 하면서

'책 좋아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고 했을까.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어떤 제도나 규칙이 아니다.

책을 아름답게 사랑하고

즐겁게 나누는 길을 이야기하면 된다.

 

한기호 씨 네이버블로그에 붙인 댓글을 옮긴다.

..

 

책 좋아하는 보통 사람을 '알라딘 알바'라고 이야기하는 일은
그저 비아냥일 뿐입니다.

비아냥으로는 '출판평론'이 아닌 '출판권력'밖에 안 됩니다.
'출판문화'를 생각한다면, '책마을'을 두루 사랑하고 아끼는 이야기를
쓰시기를 바랍니다.

비판은 가장 옳고 바르면서 '사랑스럽고 따스하게' 할 노릇입니다.
이오덕 선생님도 권정생 선생님도
다른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면서 비판한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을 마음 깊이 존경하신다면,
비판을 하는 몸가짐을 잘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불찰이요 사과라고 말씀하셨기에
제 댓글은 지웁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출판평론을 이루어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저는 '책 이야기'와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와 '책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
여기에, 여태껏 소외받고 힘든 대접 받은 '헌책방 일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한기호 씨께서 이 가운데 어느 한 갈래 이야기를 쓰시더라도,
다른 갈래 보통 사람들 마음밭에 뭇칼질 하는 용어를
아무렇게나 쓰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뭇칼질이 바로 '공멸'에 이르는 길,
스스로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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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2013-01-27 15:01   좋아요 0 | URL
하지만 아직도 글은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더군요.
글을 읽으면서 그저 이용자일 뿐인 저까지도 괜히 조롱을 당한 기분이 들어 퍽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파란놀 2013-01-27 21:13   좋아요 0 | URL
그런 대목을 바로잡지 못하는 몫은
그분한테 있어요.

스스로 잘못했고 사과한다고 했으면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만큼 그분 마음밭이 좁고 얕다는 뜻이라는 소리예요.

부디, 출판평론 한다는 분들이
넓고 아름다운 마음이 되기를 빌어요...

파란놀 2013-01-30 06:52   좋아요 0 | URL
그런데, 한기호 씨가 쓴 '사과글이 거짓'이었구나 싶어요.
참 딱합니다... 이런 글을 쓴 제가 참 부끄럽습니다...
 

이웃과 즐거운 마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들이 그저 종이에 찍힌 글씨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겉보기로는 종이꾸러미요, 글씨모임이라 할 테고,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라 여길 수 있지만, 나는 책을 ‘내 이웃과 사귀는 즐거움’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내 이웃이 나를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적바림한 이야기꾸러미가 바로 책이라고 느낍니다.


  아마, 이 책 하나 쓴 분은 내 얼굴도 이름도 모를 테지요. 그러나 이 책 하나 쓴 분은 나와 같이 ‘얼굴도 이름도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서로 즐겁게 사귀고픈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지구별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온누리를 따사롭게 밝히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으면서 책 하나 빚습니다. 환하게 웃음꽃 피우는 삶을 누리고 싶어 책 하나 책방 책시렁에 꽂습니다. 맑게 노래하면서 춤추는 마을잔치 이루고 싶어 주머니를 털어 책을 장만하고, 읽고, 아로새기고, 되새기면서 하루를 돌아봅니다.


  이웃과 즐거운 마음 나누는 책읽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 줄기를 어루만지면서 나무책을 읽습니다. 후박나무 잎사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고, 눈발 흩날리는 예쁘장한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과 구름책을 읽습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낍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고개를 살며시 기대고는 아버지랑 나란히 눈을 감고, 마당에서 눈을 맞으며 바람을 느낍니다. 바람아, 바람아, 너도 하느님이지? 우리 아이도 하느님이고, 나도 하느님이며,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 모두 하느님이지? 모든 목숨은 책이고, 모든 책은 푸른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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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큰아이가 아침에 벌떡 일어나더니 손으로 코를 슥 문지르다가 빨간 피를 본다. 코피가 나네. 다시 누우라고 이르고는 휴지를 두 칸 뜯어 코피를 닦는다. 콧등과 등판을 살살 주무르고는 이마를 쓸어넘긴다. 자, 자, 더 자자. 어제 늦게 자고 오늘 너무 일찍 나려 하니까 몸이 힘들어서 그래.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놀 때에도 잘 놀면 코피는 사라져.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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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9) 어디의 1 : 어디의 예의냐

 

갑자기 남의 얼굴에 손을 대는 건 어디의 예의냐
《데즈카 오사무/도영명 옮김-칠색잉꼬 (5)》(학산문화사,2012) 11쪽

 

  “손을 대는 건” 같은 말투는 오늘날 그대로 두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겨레는 예부터 이처럼 말하지 않고 “손을 대는 짓은”처럼 말했어요. ‘것(건)’이 아닌 ‘짓’이라는 낱말을 넣으며 말했어요. ‘것’이라는 낱말을 넣은 말투를 아무 자리에나 쓰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면, 한겨레는 토씨 ‘-의’ 또한 아무 자리에나 쓰지 않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아무 자리에나 ‘-의’를 쓰고 맙니다. 옳게 생각하거나 살피면서 말을 하는 사람이 드물고, 바르게 헤아리거나 가다듬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적어요.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돌아본다지만, 옳은 말법이나 바른 글투를 곱씹는 사람은 좀처럼 안 나타납니다.


  스스로 사랑스러운 손길이 되어 사랑스러운 글빛을 드러내기란 어려울까요. 스스로 아름다운 눈길이 되어 아름다운 말빛을 나누기란 힘들까요.

 

 어디의 예의냐
→ 어디 예의냐
→ 어디서 배운 짓이냐
→ 어디서 굴러먹은 버릇이냐
 …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떠올립니다. 나는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하는 말투를 곧잘 들었고, 동무들끼리 다툼이 있을 때에 서로 이런 말을 외치곤 했어요. 아마, 어른들이 우리를 나무랄 적에 “너희들 그게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냐” 하고 윽박지르셨겠지요. 그래서 어린 우리들도 어른들 말투를 똑같이 물려받아 이런 말을 읊었지 싶어요.


  “어디의 예의냐” 같은 말투는 듣지 못했고 쓰지 않았어요. “어디서 배운 예의냐”라든지 “어디에서 굴러먹은 예의냐”처럼 듣고 썼어요.


  일본사람이라면 ‘の’를 넣는 말투가 익숙하거나 올바를 테고, 한국사람이라면 ‘-의’ 아닌 뜻이랑 느낌을 살리는 말투여야 알맞으며 아름답습니다. 토씨 ‘-서’나 ‘-에서’를 붙일 노릇입니다. 조금 더 살피면, “남의 얼굴에”도 “남 얼굴에”처럼 적거나 말할 수 있어요. 입으로 “남 얼굴에 손을 대는 짓”처럼 말해 보셔요. 술술 부드럽게 말이 흐르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4346.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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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남의 얼굴에 손을 대는 짓은 어디서 배웠느냐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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