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유채꽃 책읽기

 


  ‘경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논에 뿌린 유채씨는 이제부터 노란 꽃망울 맺지만, 들판에 씨앗 날려 뿌리내리고 자라는 유채는 진작부터 잎 내고 꽃대 올려 노란 꽃망울 터뜨렸다. 우리 집 앞 논둑에서 스스로 자라는 유채를 늘 즐겁게 바라보고, 틈틈이 잎 뜯어먹으며 고맙다 여겼는데, 엊그제 드센 바람 불더니 그만 꽃대 하나 남기고 모두 쓰러졌다. 저런. 너희들 꽃대 너무 높이 올렸구나. 씨앗 얼마나 멀리 퍼뜨릴 생각으로 꽃대를 그리 높이 올리다가 그예 쓰러지니. 우리 집 안쪽에서 자라는 갓풀 한 포기도 꽃대를 너무 높이 올린 나머지 이번 된바람에 뿌리가 뽑혔던데. 안쓰럽구나. 그러나 어쩌겠느냐. 너희가 쓰러진 채로도 부디 노란 꽃망울 잃지 말고 꿋꿋하게 씨앗 맺어 이 자리에 다시 씨를 내려놓고 이듬해에 새삼스레 태어날 수 있기를 빈다. 큰아이하고 둘이서 길바닥에서 풀섶으로 옮긴다. 길바닥 한복판에 쓰러진 유채꽃 경운기나 자동차 그냥 밟고 지나갈까 걱정스럽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기한 주머니 내 친구는 그림책
오카 노부코 글, 쓰치다 요시하루 그림, 박은덕 옮김 / 한림출판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8

 


사월은 두근두근 설레는 봄
― 신기한 주머니
 쓰치다 요시하루 그림,오카 노부코 글,박은덕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2001.5.30./8000원

 


  일본사람 쓰치다 요시하루 님 포근한 그림에 오카 노부코 님 단출한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신기한 주머니》(한림출판사,2001)를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는다고 했지만, 이 그림책에는 말이 몇 마디 안 나옵니다. 굳이 말로 읽어야 하는 그림책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그림책이라 할 테지만, 눈으로 보는 그림책이라는 이름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가슴으로 느끼는 그림책입니다.


  한껏 무르익은 가을 어느 날, 그림책 이야기 실마리를 엽니다. 곰은 길에서 주머니 하나를 줍고, 주머니가 무얼까 궁금해서 오랜 동무인 다람쥐한테 갖고 갑니다. 그런데, 주머니에 구멍이 난 나머지, 다람쥐한테 가다가 주머니에 든 것이 몽땅 새어나왔어요. 곰과 다람쥐는 왜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는지 아리송해 하다가는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모르며 겨울을 납니다. 이윽고 봄이 찾아옵니다. 곰과 다람쥐는 저마다 겨울잠을 깹니다. 겨울잠을 깨고 둘이 지난겨울 잘 지냈느냐 이야기꽃 피우려고 찾아갑니다. 다람쥐네 집과 곰네 집 사이 오솔길에 봄꽃 가득 피었어요. 다람쥐도 곰도 봄꽃 보며 깜짝 놀랍니다.


.. 기다란 예쁜 꽃길이 이루어졌습니다 ..

 


  그러니까, 곰이 주운 주머니는 꽃씨 담은 주머니였지요. 꽃씨 담은 주머니에 난 작은 구멍으로 씨앗이 솔솔 오솔길에 떨어졌지요. 이 씨앗은 흙 품에 안겨 겨울 따스하게 납니다. 하얗게 눈으로 덮인 겨울 이긴 꽃씨는 따사로운 바람이 불며 눈이 녹자, 눈석임물 마시며 기운을 내어 천천히 새싹 틔우고 줄기 올려 꽃망울 달아요. 곰과 다람쥐는 둘이 오가는 오솔길에 꽃 가득 피어나 꽃길 된 모습 보며 활짝 웃습니다. 활짝 핀 봄꽃이 활짝 짓는 웃음꽃으로 됩니다.


  여섯 살 큰아이가 이 그림책 읽어 달라면서 아버지 앞에서 펼칠 때에, 아버지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읽어 줄 글이 거의 없는걸. 아직 글 읽을 줄 모르는 큰아이는 글 나오는 대목을 찾아서 손가락으로 짚습니다. 그래, 네가 글 읽어 달라니 글만 읽어 주겠지만, 이 그림책은 다르게 읽어야 맛이 난단다. 글은 잊고 그림 곰곰이 들여다보아야 맛있는 그림책이란다. 오늘은 네 바람대로 글만 읽어 주겠지만, 다음에는 글은 젖히고 그림으로 읽자.


  삼월 지나 사월 맞이한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 봄은 새삼스러운 빛 가득합니다. 이월 끝무렵부터 피어난 봄꽃은 삼월로 접어들며 새빛 되고, 사월에 이르자 또 다른 새빛 됩니다. 사월 한껏 누리다가 오월 되면 다시금 새삼스러운 새빛 될 테지요. 요즈막 한창 피어나는 하얀 딸기꽃을 보면서, 또 앵두꽃을 보면서, 바야흐로 찾아올 오월에는 들딸기며 앵두알이며 얼마나 기쁘게 누릴 수 있을까 싶어 설렙니다.


  감나무에서 감잎 막 돋으려 하니까, 보드라운 감잎도 따서 먹고, 감꽃 피면 감꽃도 먹고, 몽땅 진 매화나무 매화꽃에 푸르게 달리는 열매가 노랗게 익으면 노란 매실 따서 먹을 수 있어요. 매실은 푸른매실 담가서 마셔도 좋고, 노랗게 익을 때까지 그대로 두어 열매로 따서 먹어도 좋아요. 멧벚나무 찾아 버찌 따먹으러 다니기도 해야겠어요. 노란매실 먹을 무렵에는 뽕나무 열매 오디도 익어 검붉은 열매 즐기느라 아이들 손과 입도 검붉게 물들겠지요.


  봄은 더없이 아름답고, 봄꽃 그림책은 더할 나위 없이 곱습니다. 봄은 가없이 따사롭고, 봄꽃 그림책은 그지없이 즐겁습니다.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아도 한껏 누리는 봄이요, 섬돌에 놓은 신을 꿰고 들마실 다녀도 한가득 맞아들이는 봄입니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24) -여餘 1 : 3년여의 투병

 

네 번의 대수술과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3년여의 투병 끝에 1970년 2월 그레이스가 결국 숨을 거두었을 때, 페트라는 슬픔을 감당 못해서 여러 번 자살까지 생각했다
《새라 파킨/김재희 옮김-페트라 켈리,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양문,2002) 75쪽

 

  “네 번의 대(大)수술”은 “네 차례 큰 수술”이나 “큰 수술 네 번”으로 다듬고, ‘고통(苦痛)스럽기’는 ‘괴롭기’나 ‘힘들기’로 다듬으며, “투병(鬪病) 끝에”는 “병과 싸운 끝에”나 “병에 시달린 끝에”나 “병치레 끝에”로 다듬습니다. ‘결국(結局)’은 ‘마침내’나 ‘끝내’나 ‘끝끝내’로 손질하고, “감당(堪當) 못해서”는 “이기지 못해서”나 “견디지 못해서”나 “참지 못해서”로 손질하며, ‘자살(自殺)까지’는 ‘목숨을 끊으려고까지’나 ‘죽으려고까지’로 손질합니다.


  ‘-여(餘)’는 “‘그 수를 넘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합니다. “십여”나 “이십여 년”이나 “백여 개”나 “십오 년여의 세월”처럼 쓰는 한자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수를 넘는다는 뜻을 더하는 뒷가지라 한다면, 한국말에는 ‘남짓’이 있어요. “열 남짓”이나 “스무 해 남짓”이나 “백 개 남짓”이나 “열다섯 해 남짓 한 나날”처럼 적을 수 있어요. 한쪽은 한자말로 적는 말투요, 다른 한쪽은 한국말로 적는 말투입니다. 뜻이 같지만 한국사람은 두 가지 말을 쓰는 셈입니다.

 

 3년여의 투병 끝에
→ 세 해 남짓 병과 싸운 끝에
→ 세 해 넘게 병에 시달린 끝에
→ 세 해씩이나 병치레를 한 끝에
 …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알맞고 쉬우며 바르게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생각을 빛내고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여’를 쓰기 때문에 토씨 ‘-의’까지 붙이는 말투가 퍼집니다. 처음부터 한국말을 슬기롭게 쓰면 토씨 ‘-의’를 함부로 못 붙이리라 느껴요. 그러나 한국말 ‘남짓’을 잘 헤아리며 쓰더라도 “삼 년 남짓의 투병”처럼 글을 쓰면 토씨 ‘-의’가 그대로 남습니다. 얼마 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대목을 찬찬히 밝혀서 적어야 비로소 ‘-의’을 안 붙이는 홀가분한 말씨를 가다듬습니다. 4338.8.20.흙/4346.4.7.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큰 수술 네 번과 괴롭기 짝이 없는 세 해에 걸친 병치레 끝에 1970년 2월 그레이스가 끝내 숨을 거두었을 때, 페트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여러 번 죽으려고까지 생각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3) -여餘 2 : 한 달여

 

한 달여를 같이하는 동안 나는 점잖은 척 썼던 탈을 벗고 점차 내 본성을 소탈하게 보이게 되었다
《김영희-엄마를 졸업하다》(샘터,2012) 167쪽

 

  ‘점차(漸次)’는 ‘차츰’이나 ‘조금씩’이나 ‘천천히’로 다듬고, “내 본성(本性)”은 “내 모습”이나 “내 참모습”으로 다듬습니다. ‘소탈(疏脫)하게’는 ‘수수하게’나 ‘털털하게’로 손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소탈하다’를 찾아보면 “수수하고 털털하다”로 풀이하는데, ‘털털하다’를 다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로 풀이해요. “보이게 되었다”는 “보여주었다”로 손질합니다.

 

 한 달여를
→ 한 달 남짓을
→ 한 달 즈음을
→ 한 달 언저리를
→ 달포를
 …

 

  한 달 남짓 같이한다 하니까, 한 달 넘게 같이하는 셈입니다. 한 달 넘는 동안은 따로 ‘달포’라는 낱말로 가리키곤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달포를 같이하는 동안”처럼 적으면 군더더기 하나 없습니다. 4346.4.7.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달포를 같이하는 동안 나는 점잖은 척 썼던 탈을 벗고 차츰 내 모습을 털털하게 보여주었다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2) 위하다爲 24 : 돕기 위해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자라도록 돕기 위해 시 쓰기를 지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영-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보리,2011) 121쪽

 

  “시 쓰기를 지도(指導)하는 것이기”는 “시 쓰기를 가르치기”나 “시를 쓰도록 이끌기”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시를 쓰도록 하기”나 “시를 쓰게 하기”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시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 시인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 시인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
→ 시인으로 만들 뜻이 아니라
 …

 

  앞 글월과 뒷 글월이 서로 어울리면서 “만들기 위해서”와 “돕기 위해”가 나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앞뒤 글월을 함께 손질해야 글흐름이 살아납니다. 앞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로 손질한다면, 뒤쪽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로 손질합니다. 앞쪽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로 손질하면, 뒤쪽을 “도울 생각이기”로 손질합니다. 앞쪽을 “만들 뜻이 아니라”로 손질하고 난 다음에는, 뒤쪽을 “도울 뜻으로”로 손질해요. 4346.4.7.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 뜻이 아니라 마음이 자라도록 도울 뜻으로 시 쓰기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는 얼굴 책읽기

 


  아이들 자는 얼굴 바라보며 온갖 생각 갈마든다. 이 아이 잠들기까지 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놀이동무 되어 아이들과 하루를 누렸는가. 새근새근 자는 아이 느긋하게 쉴 만한 보금자리를 어느 만큼 알뜰히 돌보았는가.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나서 잠이 들었는가. 아이들은 온 하루 새로운 이야기와 사랑 듬뿍 받아들이고서 곱다시 잠들었는가.


  고흥에서 순천으로 먼 바깥마실 나오는 길에 시외버스에서도 잠든 아이들은 조금 걷다가 택시를 다시 타니 이내 졸린 기운 감돈다. 큰아이는 억지스레 버티지만 작은아이는 곧바로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곧 내려야 할 곳에 닿을 테지만, 1분이건 2분이건 곱게 쉴 수 있기를 빈다. 3분이건 4분이건 네 아버지는 너를 품에 안고 다닐 테니, 부디 꿈나라에서 훨훨 날면서 실컷 놀기를 바란다.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