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송웅 글씨

 


  헌책방 책시렁에서 추송웅 님이 이녁 삶을 글로 담아 내놓은 책 《빠알간 피터의 고백》(기린원)을 만난다. 추송웅 님이 누군가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으로 흘러들었다. 나온 지 서른 해 넘은 책인 만큼, 추송웅 님한테서 ‘손글씨 선물’ 받은 그분은 이승사람 아닐 수 있다. 또는 나라밖으로 떠났을 수 있다. 살림집 옮기며 그만 버려졌을 수 있다.


  어찌 되든, 헌책방이 있기에 이 책 하나 새로운 책손을 만나 다시 읽힐 수 있다.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이 책 하나에 깃든 추송웅 님 손글씨를 서른 해 지난 오늘 새롭게 마주할 수 있다.


  손글씨를 살며시 쓰다듬는다. 손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름 석 자 흘려서 적은 손글씨에는 어떤 넋이 깃들었을까. 1981년 11월 14일, 추송웅 님은 어디에 있었을까.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나서 팬한테 적어 준 손글씨일까. 전라도 순천 언저리 어느 곳에서 책잔치를 했을까. 아마, 전국 곳곳 도는 연극공연을 하다가 이렇게 손글씨 하나 남겼을 테지.


  추송웅 님 손글씨는 얼마나 많이 남았을까. 1970∼80년대에 추송웅 님한테서 손글씨 선물을 받은 이는 얼마나 될까. 앞으로 이 책이 다시 서른 해를 더 묵고, 또 서른 해를 더 묵으면서, 연극 한길 걸어온 한 사람 꿈과 사랑을 살가이 느끼도록 돕는 이야기밭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으로, 추송웅 님이 글씨를 적은 종이 뒤쪽에 내 글씨를 남긴다. 이 책을 만난 헌책방 이름을 적고, 이 책을 만난 날짜를 적는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이 책을 읽을 적에 저희 이름과 ‘책 읽은 날짜’ 더 적어 넣을 수 있겠지. 우리 아이들이 더 커서 저희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또 무럭무럭 자라 이 책을 새롭게 물려받아 읽는다면, 그때에 그 아이들도 저희 이름과 ‘책 읽은 날짜’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적을 수 있겠지. 책과 이야기와 삶은 돌고 돈다. 글과 사랑과 꿈은 흐르고 흐른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빠알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책이 궁금한 분들은

다음 느낌글을 => http://blog.aladin.co.kr/hbooks/29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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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송웅님에 대한 추억이 새로워지네요...
명동에 있었던 삼일로 창고극장도, 떼아뜨르 추,도요..
함께살기님의 <빠알간 피터의 고백>, 느낌글도 너무나 좋습니다...

파란놀 2013-05-21 16:20   좋아요 0 | URL
아, 연극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누리셨나 보군요 @.@
그 좋은 기억과 체험
아이들한테도 살뜰히 이어지겠지요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 삶이 길이 되고 꿈이 땀이 된 고졸 청년들의 이유 있는 선택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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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3

 


모든 사람 도시로 보내는 대학교
―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박영희 글
 살림출판사 펴냄,2012.11.16./12000원

 


  더없이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대학에 간대서 대수롭지 않고, 대학에 안 간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다녀야 똑똑하지 않으며, 대학교를 안 다녔으니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사람은 됨됨이로 따집니다. 됨됨이가 착한가 참다운가 고운가를 따집니다. 겉모습이나 얼굴이나 몸매가 어떠한가를 놓고 사람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껍데기로 사람을 재거나 따지는 흐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깎아내리려 하고, 저마다 스스로 높이려 합니다. 이웃이 어느 대목에서 아름다운가 하고 살피려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이렇게 더 예쁘고 저렇게 더 멋지다고 뽐내려 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는 누구도 거울 볼 까닭 없어요. 우리는 누구도 머리 생김새나 모양을 예쁘게 보이려고 애쓸 까닭 없어요. 치마가 더 짧아야 하거나 길어야 하지 않아요. 양복을 입어야 하거나 벗어야 하지 않아요. 상표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벗어야 하지 않아요. 자가용을 타거나 버려야 하지 않아요.


  거울을 볼수록 ‘성형미인 사회’가 됩니다. 옷차림에 마음을 쓸수록 ‘나와 네가 이루는 사회를 겉치레 수렁’으로 내몹니다. 혼인신고서 있어야 부부이지 않아요. 출생신고서 있어야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요. 졸업증명서 있으니까 학문을 잘 한다거나 머리에 든 지식 많지 않아요. 자격증 있으니 어떤 일 잘 하지 않아요.


  면허가 생기고 자격이 나타나면서 계급이 생기고 신분이 나타나요. 어떤 면허가 있어야 머리를 깎을 수 있거나 자동차를 몰 수 있도록 하니까, 계급이 생깁니다. 어떤 자격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거나 호봉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하니까, 신분이 나타납니다. 졸업장 사회란 면허증 사회요, 자격증 사회입니다. 학벌 사회란 계급 사회요, 신분 사회입니다.


.. 왜 대한민국 학생들은 재학 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살로 그 답안지를 내는 걸까? 이 문제에 어른들은 아무런 지은 죄도 없는 것일까 …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 진학이 의무교육처럼 되어 버린 걸까.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는 정말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것일까 ..  (6∼7쪽)


  우리 사회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학교로 보내려 애씁니다. 우리 사회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을 대학교로 안 보내려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대학교에 앞서, 제도권학교에 안 보내려 하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몫 스스로 맡으려 하는 어른은 훨씬 적습니다. 우리 사회 어른들은 저마다 일자리 지켜야 한다 말하면서, 아이 가르치는 몫을 학교한테 떠넘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제 앞날 만들도록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스스로 꿈을 품지 못해요.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학교는 꿈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곳 아니에요. 학교는 직업 가르치거나 배우는 곳이요, 그나마 직업훈련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곳도 아니라, 어떤 직장에서 입사시험 치를 때에 내놓을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내주는 곳이 학교입니다.


  대학교 보내려 하는 고등학교입니다. 고등학교 보내려 하는 중학교입니다. 중학교 보내려 하는 초등학교예요. 초등학교 보내려 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지요. 그러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아이들이 다닐 까닭 없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저희 나이에 맞게 삶을 배우거나 놀이를 즐기지 못해요. 오직 초등학교 들어가기 앞서 ‘머리에 쌓을 지식’ 주워섬기는 데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입니다.


  초등학교도 이와 같아요. 중학교에 보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지식을 주워섬기도록 하는 데가 초등학교예요. 나이에 맞게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꿈꾸며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는 초등학교가 아니지요. 온갖 시험과 체험학습과 영어교육에 푹 빠진 초등학교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아예 대학바라기만 하도록 내몰아요. 다른 것은 하나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한테 참사랑 가르치는 학교 있나요. 중학생과 고등학생한테 ‘독립된 생활 스스로 일구도’록, 그러니까 밥하기와 빨래하기와 청소하기에다가 아이돌보기와 살림하기를 골고루 가르치는 데 있나요?


.. 혜영 씨가 공부에 기겁을 한 것은 오빠를 지켜보면서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오빠의 귀가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저렇게까지 공부를 해서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열다섯 살 소녀의 눈에는 그것이 ‘미친 짓’처럼 보였다 … “조선소에서 일할 때 대학을 갓 졸업한 관리자가 있었는데, 상대방 나이에 상관없이 아주 막 대했어요. 잘리고 싶지 않거든 똑바로 하라며 엄포를 놓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요. 정말 화가 나는 건 거의 일방적으로 현장 근무자들을 깔아뭉개고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는 늘 이런 식이었어요. 아니꼽거든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  (17, 185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수록 바보가 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졸업장과 자격증을 한 가지라도 더 따면 딸수록 바보 굴레에서 허덕입니다.


  생각해 보면 쉬 알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목수 가운데 대학교 나온 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에서는 집짓기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못 가르쳐요. 남대문도 동대문도 ‘학교 안 나온 목수’가 지었어요. 목수가 다룬 나무는 ‘학교 안 다닌 나무꾼’이 베었어요. 산림학이나 임학 배운 학자가 벤 나무가 아니에요. 숲 해설가나 숲 전문가가 고른 나무를 베어서 옛 건물이나 절집 짓지 않았어요.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무친 사람들 가운데 ‘학교 다닌 사람’ 아무도 없어요. 모내기를 하고 가을걷이 하는 흙일꾼 가운데 ‘학교 다니며 흙일 배운 사람’ 아무도 없어요. 고기잡이를 대학교 나와야 하지 않아요. 낚싯대를 대학교 나와야 만들지 않아요.


  호미질, 낫질, 삽질, 괭이질, 써레질, 갈퀴질, 키질, 절구질, 방아질 들을 대학교에서 어느 한 가지도 못 가르쳐요. 아니, 하다못해 바느질조차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어디에서 가르치나요. 뜨개질이라도 가르치는 학교가 있을까요.


  학교에서는 아이들 자장노래 한 가락 못 가르쳐요.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신나게 즐기는 놀이 한 가지 못 가르쳐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그림책 읽는 매무새’ 가르치지 못해요. 더군다나, 학교에서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올바르게 쓰는 몸가짐’ 못 가르쳐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라면 한 냄비 끓이는 법도 못 배우고, 두부 썰기나 무 썰기조차 못 배웁니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인문계 학생들이 실업계들 온다며 후다닥 자리를 뜨곤 했죠. 실업계가 무슨 벌레도 아니고, 기분이 좀 드럽긴 했습니다.” … “인간의 기억이 무섭긴 했어요. 다른 교사들은 결석을 해도 충고 몇 번에서 그쳤는데 유독 그 교사만 저를 눈물 나게 팼거든요. 그것도 주먹으로요. 차라리 매나 몽둥이로 맞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교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저를 조폭처럼 두들겨팼습니다.” ..  (28, 79쪽)


  박영희 님이 쓴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살림출판사,2012)를 읽습니다. 대학교 졸업장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을 읽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아쉽다면 아쉽다 할 대목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거나 물 만지며 살아가는 ‘시골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들 도시에서 일자리 찾아 도시에서 보금자리 마련하려는 ‘도시아이’만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도시에서 가르쳐 도시에 남도록’ 하는 학교만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도시로 나가도록 가르쳐 시골을 떠나도록’ 하는 학교만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 가운데 ‘굳이 도시에만 남지 말고 시골로도 가서 네 꿈을 펼치고 네 사랑을 나누어라’ 하고 가르치는 데는 거의 안 보여요. 시골에 있는 학교 가운데 ‘너희가 시골에서 태어난 보람을 기쁘게 누리며, 시골 빛내는 아름다운 젊은 일꾼 되어라’ 하고 가르치는 데는 거의 찾을 길 없어요.


.. “2학년 1학기는 담임에게 얻어맞은 기억이 전부일 정도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반 친구들 다 가는 수학여행 빠진다며 때리고, 시험 때면 성적 처졌다고 때리고.” … 유치원 교사를 파견하는 업체? 당장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아낸 동효 씨는 다음날 그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 역시 학력에서 손을 내저었다. “최종 학력이 고졸이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더군요.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어요.” ..  (174, 209쪽)


  모든 사람 도시로 보내는 대학교입니다. 대학교가 말썽거리가 된다면, 다른 어느 대목보다, 대학교는 사람을 온통 도시로만 보내기에 말썽거리라고 느낍니다.


  사람을 온통 도시로만 보내니, 도시에는 사람이 철철 넘치고 시골은 사람이 텅텅 빕니다. 사람이 철철 넘치는 도시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서로 ‘사람 값어치’를 못합니다. 회사나 공장에서는 사람을 알뜰히 여기지 않고 톱니바퀴로 여깁니다. 소모품이나 부속품처럼 여겨, 한 사람 그만두어도 얼마든지 새로 일할 사람 많다고 거들먹거립니다. 도시에서 회사 일꾼이나 공장 일꾼 된 이들은 어느새 톱니바퀴 되어서 ‘나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내 밥그릇’ 잃지 않으려고 단단히 붙잡습니다. 이러는 동안, 도시에서 일자리 찾은 나도 괴롭고, 도시에서 일자리 아직 못 찾은 남도 괴롭습니다. 모두 괴롭습니다.


  사람을 죄 도시로 보내도록 꾸리는 제도권 교육과 사회는 사람 스스로 사람을 바보로 바라보도록 내몹니다. 그러니까,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라는 책은 대학교에 안 간 젊은이 몇 사람 만난다고 해서 뾰족한 풀이법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래, 대학교 안 가고도 씩씩하게 일자리 찾은 젊은이 몇 사람 있네, 하는 데에서 이야기 끝납니다. 이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면 좋을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면 아름다울는지, 어른과 아이 모두 어떤 꿈을 꾸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같은 대목은 조금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서 살아가자면 대학 졸업장 부질없습니다. 마늘밭에서 마늘을 뽑는데, 팔힘과 허리힘 있어야지, 졸업장은 아무것 아닙니다. 논에 모를 심고 피를 뽑을 때에 자격증 있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허리에 힘이 있고 팔에 힘이 있어야 모심기를 하지요.


  쌀을 일고 불려서 밥을 지을 때에 졸업장으로 밥짓지 않아요. 밥상 차리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 씻기고 입히는 데에 졸업장 있거나 말거나 아무것 아니에요. 오직 사랑 있어야 밥상 차리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 보살핍니다.


  도시에서 일자리 찾는 아이들한테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같은 책은 ‘졸업장 없는 채 얼마나 뼈빠지게 힘쓰며 애써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제도권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모질게 다루거나 들볶는가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읽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꿈과 사랑이 아직 없습니다.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아름답게 살아갈 아이들은, 고등학교나 중학교 안 가도 아름답게 살아가요. 그러니까, 아름답게 살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모습 되어 아이들을 어떻게 괴롭히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건드려야 옳아요.


  푸념과 한숨으로는 아무것 달라지지 않아요. 비아냥과 손가락질로는 제도권 톱니바퀴는 그저 단단하게 버틸 뿐입니다.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아갈 길을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사랑스러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으면서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대학교 가지 않고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젊은이처럼, 대학교 다니고 마친 뒤에 아름답게 살아가는 젊은이 있어요. 우리는 이제 ‘대학교’는 그만 말해야지 싶어요. 우리가 말할 대목은 오직 하나, ‘아름다움’이에요.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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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마늘밭 품앗이

 


  할머니들 옹기종기 모여서 마늘밭 품앗이를 한다. 서로서로 집집이 돌아 마늘뽑기 함께 한다. 오늘은 이 집 마늘 함께 뽑고, 이듬날에는 저 집 마늘 함께 뽑는다. 오랜 나날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이야기 두런두런 나누는 밭자락 알록달록 빛난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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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9. 봄제비와 봄들꽃
― 고운 생각에서 태어나는 고운 말

 


  제비는 철새입니다. 철 따라 둥지 틀 자리를 새로 찾아서 날아다니기에 철새입니다. 참새는 텃새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한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어 살아가기에 텃새입니다.


  고흥 시골집에 봄날 제비가 찾아듭니다. 지난해에는 4월 봄에 찾아들더니, 올해에는 3월 봄에 찾아들어요. 올해에는 참 일찍 오는군요. 왜 이리 일찍 오는가 알쏭달쏭합니다. 이 나라 날씨가 차츰 따스해지니까, 아니 더워지니까, 제비도 일찍 찾아올까요.


  아침에 째째째째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제비가 찾아온 줄 깨닫습니다. 지난해에는 들마실을 하며 제비 날갯짓을 처음 만났고, 올해에는 우리 집 처마 밑 둥지에서 지난해 알을 깐 제비 세 마리가 노니는 모습을 보며 제비 노랫소리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래, 이제 너희가 이곳에서 짝을 찾아 알을 낳고 새끼 돌보려 한다면, 똥받이를 달아야겠구나.


  제비가 둥지에서 새끼들 똥을 받아 밑으로 버리니, 똥을 받아낼 나무판을 대야 합니다. 제비똥 받는 나무판이니, 말 그대로 똥받이입니다. 똥받이를 대지 않으면, 처마 밑은 온통 똥바다가 돼요.


  제비가 봄에 찾아오니, 봄철을 일컬어 제비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비가 찾아드는 이맘때는 꽃이 바야흐로 피어나는 철이기에, 봄철은 꽃철이라 달리 일컬을 수 있습니다. 재미나게 말을 엮는다면, 봄제비철이나 봄제비꽃철이나 봄꽃철이나 봄꽃제비철처럼 새 낱말 지을 수 있어요. 봄날 봄꽃 마실을 누리는 사람은 봄마실을 하는 셈이요, 봄꽃마실 즐기는 셈입니다. 봄에 피는 꽃이기에 봄꽃이면서, 봄들꽃이라 할 수 있어요. 멧골에서 피는 봄꽃은 봄멧꽃이라 해도 어여쁩니다.


  봄에는 그야말로 온통 봄입니다. 봄바람, 봄꽃가루, 봄구름, 봄하늘, 봄볕, 봄나무, 봄밭, 봄노래, 봄새, 봄아이, 봄놀이, 봄들, 봄바다, 봄밥, ……. 여름에는 여름바람을 비롯해서 여름밥까지 있고, 가을에도 겨울에도 새삼스러운 하루를 누리면서 새로운 이름 하나 얻습니다.


  내 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를 지키는 짝꿍은 곁지기이면서 옆지기입니다. 곁에 있어 곁지기요, 옆에 있어 옆지기입니다. 책방을 지키는 일꾼은 책방지기요,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이라면 도서관지기입니다. 나라를 보살피는 일꾼은 나라지기라 할 만하고, 겨레 삶을 북돋우려 하는 일꾼은 겨레지기라 할 수 있어요. 문화를 가꾸는 일꾼은 문화지기요, 교육을 살찌우는 일꾼은 교육지기입니다. 은행지기, 가게지기, 식당지기, 마을지기, 학교지기처럼 ‘-지기’라는 말마디로 말샘을 퍼올리면 즐겁습니다. ‘-지기’를 더 헤아리면, 하늘지기, 흙지기, 시골지기, 사랑지기, 꿈지기, 이야기지기처럼 남다른 지기를 생각할 수 있고, 노래지기, 아이지기, 책지기, 웃음지기처럼 여러 갈래로 생각을 넓힐 만합니다.


  1989년에 처음 나온 《우리글 바로쓰기》(이오덕 씀,한길사 펴냄)라는 책을 찬찬히 되읽습니다. 이 책을 쓴 이오덕 님은 “훌륭한 문학의 업적을 남긴 분도 아이들에게 잘못된 말을 가르쳐 우리 말을 병들게 했을 경우, 그 잘못을 드러내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13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 그렇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싶은 문학을 일군 분이라 하더라도, 알맞지 못하고 바르지 못하며 슬기롭지 못한 글을 써서, 엉뚱한 글투를 퍼뜨리고 만다면, 이 대목은 나무랄밖에 없어요. 나무라면서 바로잡거나 바로세워야지요. 알맞고 바르며 슬기로운 말과 글이 되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이오덕 님은 “통속적이 아닌 말, 고상한 말을 표준말로 삼는다고 중류사회의 말을 쓰다 보니 농민의 말, 민중의 말은 ‘통속적인 말’로 버림받고, 사전에까지 ‘통속적’이라 풀이해 놓는 것 아닌가(18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여러 차례 되읽고 곱읽으면서 생각을 갈무리해 봅니다.


  봄날 피는 봄꽃 가운데 맨 먼저 피는 꽃은 ‘봄까지꽃’이에요. 늦겨울에 처음 꽃봉오리 터뜨리고, 봄이 저물 무렵 꽃도 저물기에, 참말 봄까지만 피는 꽃이라서 ‘봄까지꽃’이라고 해요. 그러나, 퍽 많은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한테서 식물학 배운 한국 식물학자가 일본 풀이름을 고스란히 옮겨서 퍼뜨린 ‘개불알풀꽃’이라는 낱말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라 할 꽃이름을 바로잡자고 여러 사람이 애썼는데, 그만 어느 시인이 ‘봄까지꽃’ 말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봄까치꽃’이라 시에 잘못 쓴 적 있어요. 봄과 까치가 잘 어울려서 ‘봄까치꽃’인 줄 잘못 알았다고 하지요. 이리하여,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꽃이름을 옳게 모르는 채, 오늘날까지 ‘개불알풀꽃’과 ‘봄까치꽃’이라 잘못 쓰는 사람 퍽 많습니다. 언제쯤 봄꽃 이름 하나 살가이 건사할 수 있을까요.


  봄까지꽃이 피고 나면 곁에서 별꽃이 피어요. 별을 닮아 별꽃이라 하는데, 별꽃은 별꽃나물이라 하기도 해요. 별꽃이 피면, 이윽고 코딱지나물꽃이 피어요. 시골사람은 코딱지나물꽃이라 하고, 식물학자는 이런 이름이 ‘통속적’이라 해서 ‘광대나물꽃’이라고 꽃이름을 다르게 붙였어요.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광대나물’이라는 이름만 오르지, ‘코딱지나물’이라는 이름은 못 올라요.


  ‘애호박’은 작은 호박이라서 애호박입니다. 서울에는 애오개라는 데가 있는데, 작은 고개라서 애오개입니다. 그러나, 애오개가 작은 고개인 줄 미처 살피지 못한 예전 지식인들은 ‘아현동’이라고 동네 이름을 한자로 옮겨적으면서 ‘阿峴’이라 붙였어요. 왜 한겨레가 예부터 익히 가리키던 땅이름으로 동네 이름을 붙이지 못할까요. 골안마을, 무너미마을, 한티재 같은 이름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면서, 땅이름을 비롯해서 먼먼 옛날 사람들 넋을 돌아본다면 역사와 문화와 삶을 한결 슬기롭게 돌아볼 수 있을 텐데요.


  고운 생각에서 고운 말이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고운 사랑에서 고운 이야기 자란다고 느낍니다. 먼 옛날 옛적 누군가, ‘풀’, ‘하늘’, ‘보리’, ‘꿈’, ‘아이’, ‘빛’, ‘누리’, ‘무지개’ 같은 낱말을 어떤 사랑으로 지었을까 가만히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사랑 하나로 빚을 새로운 말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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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zal Sheikh라는 분이 찍은 사진 담은 책으로 <Moksha>는 예전에 장만한 적 있다. 인도 아이들 담은 <Ladi>라 하는 사진책이 있다는 이야기 듣고, 한번 찾아보는데 알라딘에는 없구나. 그러나, 다른 세 가지 사진책이 뜬다. 세 권 장만하자면 17만 원 모아야 한다. 즐겁게 푼푼이 모으자. 이 사진책들 내 품에 들어오는 날 손꼽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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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zal Sheikh: The Circle (Hardcover)
Fazal Sheikh / Steidl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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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21일에 저장

Fazal Sheikh: Ladli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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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21일에 저장

Fazal Sheikh: Portraits (Hardcover)
Fazal Sheikh / Steidl / 2010년 5월
82,120원 → 67,330원(18%할인) / 마일리지 3,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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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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