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259) 저간의 1 :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다

 

마리아네는 페트라의 사망 후 보험회사를 상대로 처리할 일이 있었을 때도 “페트라 켈리에게 어머니가 계신 줄은 몰랐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직원을 상대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야 할 정도였다
《새라 파킨/김재희 옮김-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양문,2002) 58쪽

 

  “페트라의 사망(死亡) 후(後)”는 “페트라가 죽은 뒤”로 고쳐 줍니다. ‘설명(說明)해야’는 ‘말해야’나 ‘이야기해야’로 고치고, ‘정도(程度)’는 ‘판’으로 고칩니다. “보험회사를 상대(相對)로 처리(處理)할 일이”나 “직원을 상대(相對)로”는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보험회사에 가서 할 일이”나 “직원한테”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한자말 ‘저간(這間)’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 요즈음”처럼 나옵니다. 곧, 이 한자말은 안 써야 옳다는 뜻입니다. 한국말 ‘요즈음’을 써야 알맞다는 뜻이에요. 여기에, 뜻이 같은 ‘요즈막’이나 ‘요사이’를 때와 곳에 따라 잘 쓰면 됩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야
→ 요즈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 요즈막 일을 알려주어야
→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말해야
→ 그동안 있던 일을 얘기해야
→ 그동안 벌어진 일을 들려주어야
 …

 

  국어사전이 국어사전답자면,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올바로 바로잡는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림말 잔뜩 싣고, 말뜻과 말풀이 찬찬히 붙이려고 애쓰기도 해야 하는 한편, 사람들이 말과 글을 슬기롭게 깨달아 똑바로 쓰도록 북돋우는 구실을 함께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안 써야 옳은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어야 옳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실어야 하는 낱말이라면, 이런 낱말을 어떻게 다듬거나 털어내면 되는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보여주어야지 싶어요. 말뜻만 찾는 국어사전을 넘어, 말삶 밝히고 말넋 일구는 길동무와 같은 국어사전이 태어나야 한다고 느낍니다. 4338.7.6.물./4346.5.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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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네는 페트라가 죽은 뒤 보험회사에 가서 할 일이 있었을 때에도 “페트라 켈리한테 어머니가 계신 줄은 몰랐다.”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직원한테 요즈음 무슨 일이 있었나 말해야 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67) 저간의 2 :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기에 이른다

 

1900∼1960년 사이의 중동 석유의 역사 하나만 살펴보더라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기에 이른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다국적 기업이란 무엇인가》(민중사,1983) 20쪽

 

  첫머리 “1900∼1960년 사이의 중동 석유의 역사 하나”에 토씨 ‘-의’가 두 번 나옵니다. 이 대목은 “1900∼1960년 사이 중동 석유 역사 하나”처럼 ‘-의’만 덜어도 됩니다. “짐작(斟酌)하기에 이른다”라 했는데 “짐작할 수 있다”로 고쳐야지요. “생각하기에 이른다”나 “걱정하기에 이른다”라 말하지 않잖아요. 번역이 어설픕니다. 그런데, 더 생각하면, “짐작하기에 이른다”는 “알 만하다”나 “헤아릴 만하다”나 “깨달을 수 있다”로 고쳐야 올바릅니다.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기에 이른다
→ 그동안 어떠했는지 헤아릴 수 있다
→ 요즘 흐름을 알 수 있다
 …

 

  이 보기글은 일본책을 겉훑듯 한국말로 옮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는, 영어사전만 뒤적이면서 어설피 옮겼구나 싶습니다. 이 나라에는 한국말 다루는 국어사전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한국말 제대로 가르치는 책이 못 되는데, 이 나라에서 나오는 영어사전도 ‘영어를 한국말로 어떻게 옮길 때에 알맞고 바르며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살피지 못해요. 한국말부터 한국말답게 바로서지 못한 탓에, 한국사람이 영어를 배울 적에도 똑바로 배우지 못합니다. 일본말을 배우거나 중국말을 배울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글만 한글이라서 한국말 되지 않아요. 껍데기는 한글이라 하지만, 이 보기글처럼 엉성하거나 아리송하게 쓰면, 한국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속살이 곱게 빛날 때에 한국말이고, 알맹이가 환하게 드러날 때에 한국말입니다. 4339.7.9.해./4346.5.2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1900∼1960년 사이 중동에서 석유를 놓고 어떤 일 있었나 하나만 살펴보더라도 요즈음 흐름을 알 수 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3) 저간의 3 :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게다가 ‘새어머니가 소년에 대한 관심이 적은 듯하다’라는 소년분류심사서의 보고 내용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했다
《천종호-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 202쪽

 

  “소년(少年)에 대(對)한 관심(關心)이 적은 듯하다”는 “아이한테 눈길을 안 둔다”나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로 풀어서 적을 때에 뜻이 잘 드러납니다. “소년분류심사서의 보고(報告) 내용(內容)도”는 “소년분류심사서에 적힌 이야기도”로 손봅니다. “짐작(斟酌)케 했다”는 “알려준다”나 “보여준다”나 “들려주다”로 손질합니다.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했다
→ 그동안 있을 일을 알려준다
→ 이제껏 있던 일을 보여준다
→ 여태까지 숨겨진 모습을 밝혀 준다
→ 여러 이야기를 알려준다
→ 숨겨진 얘기를 들려준다
→ 뒷이야기를 드러낸다
 …

 

  한자말 ‘저간’은 ‘요즈음’을 뜻합니다. 이 대목에서도 ‘요즈음’이라는 낱말을 넣어 고쳐쓸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더 살피면, 이 대목에서는 ‘요즈음’뿐 아니라, ‘그동안’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보여준다 할 만하고, ‘이제까지’ 어떤 이야기 있었나를 밝힌다 할 만합니다. ‘숨겨진 이야기’나 ‘감춰진 이야기’나 ‘뒷이야기’나 ‘속이야기’ 같은 말마디로 더 또렷하게 적을 수 있어요. 4346.5.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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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새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듯하다’ 하고 소년분류심사서 적힌 이야기도 이제껏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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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읽어 주는 책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노는 두 아이가 그림책을 펼쳐 읽는다. 누나가 읽어 주고, 동생이 새로 한 권씩 꺼내어 내민다. 동생이 꺼내는 그림책이 제법 재미난 그림책들이다. 누나가 으레 꺼내어 보던 책을 어깨너머로 살폈을까. 동생도 누나 못지않게 어떤 그림책이 재미난 줄 잘 알아보나.


  여섯 살 큰아이는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저 스스로 생각해 내어 읽는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읽은 말마디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림에 맞추어 제 깜냥껏 새롭게 이야기 지어서 읽는다. 오늘 새삼스레 느낀다. 그림책은 어른이 아이한테 읽어 주어도 좋을 테지만, 아이들끼리 서로 읽고 읽어 주어도 좋구나 싶다. 아니, 어른은 처음에만 몇 차례 읽어 주고, 나중에는 아이들끼리 스스로 읽고 즐기도록 하면 되리라 본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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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5 08:49   좋아요 0 | URL
저도 마룻바닥에 누워 벼리와 보라처럼
재미난 그림책 읽으며
놀고 싶어요...^^;;;

파란놀 2013-05-25 09:14   좋아요 0 | URL
고흥에 놀러오셔요~~ ^^
마루를 모두 내어 드리겠습니다~~
 

사진빚기
― 두 가지 사진

 


  내가 처음 사진을 익히던 때에는 필름사진만 있었다. 그때에는 중형필름 쓰느냐 대형필름 쓰느냐 35미리필름 쓰느냐 하는 대목으로 나누었다. 이제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필름사진을 쓰니까, 디지털사진으로 하느냐 필름사진으로 하느냐와 같이 나눌 만한데, 디지털사진에서도 렌즈를 바꾸는 디지털인가하고 렌즈를 안 바꾸는 디지털로 나누리라. 또 손전화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로 찍는 디지털로 나눌 만하겠지.


  나는 사진을 처음 익히면서 사진기 한 대로 무지개필름과 까망하양필름을 갈아끼우면서 썼다. 한 번은 무지개빛 필름으로, 다음에는 까망하양빛 필름으로. 이렇게 쓰면서 다른 느낌 얻는 두 가지 사진을 빚었다. 세 해쯤 이렇게 사진을 찍다가, 푼푼이 그러모은 돈으로 두 번째 사진기를 장만했고, 두 번째 사진기 장만하고부터는 한 가지 사진기에는 무지개필름만 넣고, 다른 한 가지 사진기에는 까망하양필름만 넣었다. 두 사진기로 두 가지 필름을 골고루 섞어서 쓴 뒤, 내 눈과 느낌과 마음하고 잘 맞는다 싶게 필름을 넣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줄곧 필름사진만 찍다가 2007년 여름부터 디지털사진을 함께 찍었다. 2013년 5월에 접어든 뒤로는 필름사진을 더 못 찍는다. 필름값을 대기 많이 벅차, 이제 필름사진기는 내려놓기로 한다. 그런데 필름사진기 내려놓으면서 매우 서운하다. 무지개빛 사진을 찍을 때에는 필름보다 디지털파일이 낫다고 여겨 2009년부터는 필름으로는 무지개빛 사진을 아예 안 찍었다. 그런데 까망하양빛 사진조차 필름으로 안 찍기로 하니, 저절로 까망하양빛 사진을 찍을 일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똑같은 디지털사진기를 그때그때 설정 바꾸며, 이때에는 무지개빛 저때에는 까망하양빛으로 바꾸지 못한다. 이렇게 바꾸자면 내 눈앞에 나타난 모습은 휙 하고 사라진다.


  아이들한테 선물로 준 작은 디지털사진기를 다시 만져 본다. ㅍ회사에서 나온 이 작은 사진기는 1미터 높이에서 떨어져도 안 깨지고, 물속 1미티 즈음도 견딘다 한다. 우리 집 작은아이가 가끔 물건 던지듯 사진기 던진 적 있으나, ㅍ회사에서 나온 이 작은 사진기는 멀쩡하다. 비오는 날에도 즐겁게 찍었다. 이 사진기로 설정을 바꾸어 까망하양빛 사진 몇 장 찍어 본다. 감도를 사진기 스스로 바꿀 때에는 입자가 많이 거칠다. 작은 디지털사진기 감도 125로 사진 찍을 때에는 꽤 괜찮다 싶은 입자가 된다. 해상도와 감도가 이보다 나은 디지털사진기를 나중에 따로 한 대 장만할 때까지는 이 작은 녀석을 써 볼까 싶다. 무지개빛 사진을 까망하양빛으로 바꿀 때하고, 처음부터 까망하양빛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사뭇 다르다. 빛느낌과 빛결과 빛무늬 모두 다르다. 예쁜 빛줄기 드리워 사진마다 새록새록 담기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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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샤름벼리와 산들보라는
이렇듯 어릴 때부터 행복한 사진찍기,를 시작 하는군요. ^^

파란놀 2013-05-25 09:14   좋아요 0 | URL
어머니 뱃속부터 이렇게 살았으니까요.... @.@
 

창포꽃 노랗게

 


  2011년부터 전남 고흥에 깃들어 살면서 창포씨앗 처음으로 보았지만, 이듬해인 2012년에는 창포꽃은 못 보고 창포씨앗만 보았다. 올 2013년에는 꼭 창포꽃 보자 다짐하면서 이웃마을 창포꽃 무리지어 피어나는 빈집을 기웃거린다. 처음 꽃 피어날 때는 놓쳐, 벌써 시들어 떨어지려는 꽃송이 보인다. 그러나 훨씬 많은 노란 꽃송이 바람 따라 물결친다. 가을날 창포씨 맺히면 잎사귀도 옆으로 축축 처지는데, 여름 앞둔 늦봄에 노랗게 물결치는 창포는 잎사귀도 단단하고 하늘로 해바라기하듯이 쭉쭉 뻗는다.


  한참 창포꽃 바라보다가 ‘붓꽃’하고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붓꽃하고 창포꽃은 도드라지게 다르다. 곁에서 붓꽃하고 창포꽃을 함께 마주하니까, 서로 어떻게 얼마나 다른 줄 알겠다. 멧골에서 진달래와 철쭉 늘 만나는 사람이라면, 두 꽃을 아주 쉽게 가릴 수 있겠지. 매화나무 벚나무 언제나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두 나무와 꽃과 잎사귀 쉬 헤아리리라 본다.


  쌍둥이 낳은 어버이는 누가 언니이고 동생인가를 잘 안다. 쌍둥이하고 살가이 지내는 이웃이나 동무도 누가 언니고 동생인가를 환히 안다. 얼핏 닮았다 싶은 모습은 지구별 곳곳에 있지만, 똑같은 숨결은 하나도 없다.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고 사랑스레 함께 살아가면, 마음빛으로 모두 헤아리면서 따사롭게 마주할 수 있다. 살갑지 않고 어깨동무하지 않으면, 마음빛이 피어나지 않아, 어느 하나 제대로 가리거나 살피지 못한다. 노란 물결 좋다. 아이들과 창포꽃 보러 자주 들러야겠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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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걸어서 온다 - 윤제림 시집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시와 얼굴
[시를 말하는 시 22] 윤제림, 《그는 걸어서 온다》

 


- 책이름 : 그는 걸어서 온다
- 글 : 윤제림
- 펴낸곳 : 문학동네 (2008.4.21.)
- 책값 : 8000원

 


  어른 스스로 달라지면 아이는 스스로 달라집니다. 어른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스스로 달라지지 않더라도 아이는 스스로 달라지곤 합니다. 어른이 시키는 굴레에 갇힌 아이 가운데 참 많은 아이들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으로 흐르지만, 새로운 삶 꿈꾸는 아이는 차근차근 힘을 기르고 사랑을 쏟아 굴레를 박차고 나와서 새 길을 걸어요.


  어린이나 푸름이가 어른들 흉내를 내어 범죄를 저지르면 청소년범죄라 일컫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범죄 아닌 어른범죄입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아이들이 보고 배웠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학교나 동네에서 따돌림을 한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 많으나, 어른들부터 마을과 회사에서 같은 어른을 따돌리며 살았기에, 아이들은 이 모습 고스란히 배워서 따라할 뿐이에요. 어른들은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행정에서도 문화에서도 문학에서도 예술에서도 교육에서도, 사회운동과 진보운동에서조차, 참말 서로서로 따돌리거나 해코지하거나 들볶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집단따돌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주먹이나 발길질로 윽박지르면서 돈을 울궈낸다지요. 그러면, 어른들은 이런 짓 안 하나요. 어른들이야말로 서로서로 밟고 올라서서 이녁 주머니에 돈을 더 많이 챙기려고 하지 않나요. 어른들 스스로 즐겁게 어깨동무하며 돈을 나누고 사랑을 함께하는 삶 안 짓는데, 아이들이 서로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기란 참 어려워요.


.. 아버지 한 사람이 /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 밥 좀 많이 퍼요 ..  (가정식 백반)


  어른들이 쓰는 말이 곧 아이들이 쓰는 말입니다. 어른들이 품는 생각이 고스란히 아이들이 품는 생각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는 ‘직업훈련’ 시킵니다. 실업계 학교에서만 시키는 직업훈련 아닙니다. 인문계 학교에서 대학바라기 내모는 짓도 직업훈련이에요. 앞으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도록 졸업장과 자격증 따게 내모는 직업훈련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꿈’을 꾸지 않고 대학교에 가도록 내몰 때에는 모두 직업훈련이에요. 그런데, 제대로 어느 직업 잘 건사하면서 꿈을 꾸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어른들은 돈 많이 벌 일자리를 찾도록 닦달할 뿐이에요. 아이들이 직업 찾도록 꾀하면서도, 즐겁게 일할 자리나 기쁘게 일할 터 아닌, 돈 많이 벌 자리나 터만 헤아리도록 시켜요.


  연예인 되거나 기자 되거나 작가 되는 일은 ‘꿈’ 아닌 ‘직업’입니다. 미용사나 운동선수나 요리사 되는 일은 ‘꿈’ 아닌 ‘직업’입니다. 꿈과 직업은 다릅니다. 꿈과 ‘돈 버는 직업’은 다릅니다.


  가만히 살피면, 어른부터 스스로 꿈이 무엇이고 직업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라요. 삶과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어른이에요. 그러니, 이런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한테 ‘직업교육’조차 제대로 시킬 만한 마음그릇 되는 이 매우 적어요. 직업교육을 직업교육대로 제대로 못 시키니, 꿈은 꿈대로 보여주거나 밝히지 못합니다.


.. 제아무리 잘 된 영화래봤자 / 별 다섯 개가 고작인데, / 우리들 머리 위앤 / 벌써 수천의 별들이 떴다 ..  (한여름밤의 사랑노래)


  어른들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아이들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어른들은 손전화나 스마트폰 끼고 자동차를 몰고, 아이들은 손전화나 스마트폰 끼고 자전거를 달립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아이들도 고장말, 이른바 사투리를 써요. 아이들이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면 부산말 쓰고, 아이들이 순천에서 나고 자랐으면 순천말 쓰지요. 어른들 쓰는 말이 하나하나 아이들 말이 돼요. 어른들이 사랑 담은 따사롭고 넉넉한 말 쓰면, 아이들도 사랑 담은 따사롭고 넉넉한 말 써요. 어른들이 보드랍고 살갑게 말을 나누면, 아이들도 보드랍고 살갑게 말을 나누지요.


  어른들이 교과서나 참고서를 비롯해, 신문과 잡지, 여기에 책과 문학에 아름답고 훌륭하며 착한 한국말 빛내면, 아이들한테 따로 말을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은 이런 글과 책만 읽으면서도 아름답고 훌륭하며 착한 한국말 물려받아요.


  그러나 우리 모습을 돌아보면, 이 나라 어른들 가운데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착하게 쓰지 않아요.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한국말 슬기롭게 빛내는 문학이나 예술이나 문화로 뻗어나지 못해요.


.. 한강에 눈이 내린다 /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주는 것은 / 고마운 일이다 ..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내 얼굴은 바로 내 아이 얼굴입니다. 내 어버이 얼굴은 바로 내 얼굴입니다. 어른 얼굴은 바로 아이 얼굴입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만 같은 얼굴이지 않습니다. 내 얼굴은 내 동무 얼굴입니다. 내 동무 얼굴은 내 얼굴입니다. 내 이웃 얼굴은 내 얼굴이요, 내 얼굴은 다시 내 이웃 얼굴입니다.


  웃고 노래하는 얼굴로 살아가면, 다 함께 웃고 노래하는 얼굴 되지요. 웃고 노래하는 얼굴이란 웃고 노래하는 삶이에요. 따로 노래를 찾아서 불러야 하지 않아요. 삶이 하나하나 웃음이요 노래가 되면 돼요.


.. 황사먼지 속에 보이네. / 복사나무에 라디오를 매달고 / 밭갈이 하다가, / 괭이도 내던지고 / 마을로 달리는 / 농부 한 사람 ..  (또, 심청가)


  윤제림 님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문학동네,2008)를 읽습니다. 윤제림 님은 어떤 얼굴로 살아가며 시를 쓰는가 생각합니다. 윤제림 님 얼굴에 어린 이녁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 얼굴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윤제림 님을 둘러싼 아이들과 젊은 벗들 얼굴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모두 어떤 얼굴 되어 살아가나요. 서로 어떤 얼굴빛 함께 나누는가요.


  어떤 이야기로 삶꽃 피우나요. 어떤 몸짓으로 삶빛 밝히나요. 어떤 꿈으로 삶사랑 이루나요.


.. 봄꽃은 / 잎새 하나하나가 / 누군가의 얼굴이다 ..  (꽃잎)


  말 한 마디는 바로 얼굴입니다. 손짓 하나는 바로 마음입니다. 글 한 줄은 바로 생각입니다. 발걸음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 저 / 나무 / 아래서 / 밥을 먹으면 / 꽃 / 밥 ..  (낙화)


  좋은 나라 꿈꾸면서 좋은 하루 누리고 싶습니다. 좋은 마을 바라면서 좋은 삶 짓고 싶습니다. 좋은 보금자리 빌면서 좋은 이야기 엮고 싶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좋은 웃음 지으면서 좋은 마실 즐기고 싶습니다.


  좋은 흙에 좋은 씨앗 한 톨 심고 싶습니다. 좋은 물 한 잔 마시면서 좋은 몸 지키고 싶습니다. 좋은 바람 좋은 이웃과 나란히 쐬고 싶습니다. 좋은 햇살 내리쬐는 좋은 숲길 거닐면서 좋은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좋은 말 들려주는 좋은 얼굴 되고 싶습니다. 좋은 글 쓸 수 있는 좋은 가슴 되고 싶습니다. 좋은 살림 알뜰살뜰 꾸리는 좋은 어버이 되고 싶습니다. 바라는 삶을 생각합니다. 꿈꾸는 삶을 입으로 읊으면서 흰종이에 정갈하게 옮겨적고 예쁘게 그립니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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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5 08:14   좋아요 0 | URL
말 한마디는 바로 얼굴입니다. 손짓 하나는 바로 마음입니다. 글 한 줄은 바로 생각입니다. 발 걸음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커다란 아파트를 팔고 용문으로 내려가 즐거이 흙내음 맡으며 기꺼운 삶 누리시는 사랑하는 분의
아드님 혼인식에 갑니다. 봉투에 '진심으로 기쁘고 축하드립니다!' 정성껏 한 줄 적어 넣은 채,
좋은 사람들과 손 잡고 사랑의 발걸음으로 다녀 오려는 좋은 날이지요. *^^*

파란놀 2013-05-25 08:17   좋아요 0 | URL
한 사람 두 사람
즐거운 삶 찾아
예쁜 하루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좋은 나들이 즐거이 다녀오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