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지구의 하루 아이세움 지식그림책 15
안노 미츠마사 외 지음, 김난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82

 


동그란 지구별은 서로 하나
― 동그란 지구의 하루
 안노 미쓰마사·여덟 작가,김난주 옮김
 아이세움 펴냄,2004.12.6./8500원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된 뒤에 ‘어린이 마음’을 잃거나 놓기도 하지만, 오래오래 ‘어린이 마음’을 건사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었기에 ‘어린이 마음’이란 대수롭지 않다며 잊거나 내려놓기도 하고, 어른이 된 만큼 ‘어린이 마음’이 참으로 곱고 즐겁다 여겨 언제나 되새기거나 아끼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놉니다. 신나게 뛰어놀기에 아이들입니다. 신나게 뛰어놀며 자란 아이들은 구김살이 없습니다. 구김살이 없기에 스스럼없이 이웃과 어깨동무를 해요.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따순 사랑을 나누고 깊은 믿음을 주고받아요.


  맑게 웃고 밝게 노래하며 뛰논 삶을 누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즐겁게 일하고 기쁘게 놀 줄 압니다. 즐거이 놀던 마음에는 상냥함이 깃들어요. 신나게 놀던 몸에는 넉넉함이 배어요. 상냥하고 넉넉한 마음결 돌보는 아이들은 착하고 고운 눈빛으로 이 땅을 가꿉니다.


.. 여러분이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 먼 어느 나라에서는 배고파 우는 어린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나라에서 한 어린이가 잠자고 있을 때, 먼 어느 나라 어린이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동그란 지구의 하루가 지나면 어린이들은 하루치만큼 커 갑니다 ..  (책을 만든 어른들)

 

 


  동그란 지구별이 동글동글 움직입니다. 온누리 골골샅샅 따순 볕이 드리웁니다. 어느 마을이나 아침이 찾아오고, 낮이 비추며, 저녁에 다가옵니다. 아침에는 새가 노래하고, 낮에는 풀벌레가 춤을 추며, 저녁에는 개구리가 잔치를 벌입니다.


  이곳에서 뜨는 무지개는 저곳까지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내리는 비는 땅속으로 스미어 저곳으로 잇닿습니다. 이곳에서 소복소복 쌓이는 눈은 들판과 숲을 포근하게 덮으며 조용히 하얀바람 일으킵니다.


  환하게 맑은 날에는 환하게 맑은 날씨대로 놉니다. 마당에서 놀고, 고샅에서 놉니다. 들에서 놀고 숲에서 놉니다. 냇가와 바닷가에서 놀아요. 멧골에서 놀고 멧등성이 오르내리며 놀지요. 하늘이 찌푸린 날에는 찌푸린 날씨대로 놉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아요. 이부자리에서도 손가락으로 갖은 놀이를 즐기다가는, 서로서로 이야기꽃 피웁니다.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며 놉니다. 동생을 업거나 돌보면서 놉니다. 어린 동생한테 놀이를 가르칩니다. 어른 동생과 새롭게 놀이를 합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어릴 적에 언니 오빠 누나 형이 살가이 놀아 주었어요. 아이들은 아이들이 가장 잘 알고, 아이들은 아이들이 가장 잘 보살핍니다.


  학교가 있어야 놀지 않아요. 놀이공원이나 체육관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놀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을 밝혀서 놉니다. 아이들은 싱긋빙긋 웃으면서 놀아요.


  밥을 먹다가 놀아요. 자다가 일어나서 놀아요. 쉬를 누거나 똥을 누면서도 놉니다. 읍내 가는 버스에서도 놀고, 책을 들추다가도 놀아요. 공책에 글씨를 쓰다가 놀아요. 그림을 그리며 한껏 놉니다. 아이들 손에서는 무엇이든 놀이가 되고, 아이들 몸으로는 무엇이든 놀이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잘 노는 아이로 살아가던 숨결이 어른이 된다면, 온누리는 웃음과 노래로 가득한 아름다운 삶터 되리라 생각해요. 같이 놀고 함께 웃으면서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을 이야기하고 꽃피우는 아름다운 꿈 이루리라 생각해요.


  놀지 못하던 아이들이 전쟁을 불러요. 놀지 않던 아이들이 막개발 토목사업을 꾀해요. 놀이와 동떨어진 아이들이 푸대접을 부르고 따돌림과 괴롭힘을 부릅니다. 놀이를 생각하지 않던 아이들이 사람을 기계문명으로 짓눌러요.


  생각해 봐요. 동무들하고 살가이 편지 주고받던 아이들은 평화를 생각하지, 전쟁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동무들과 어깨를 겯고 들판을 달리고 골목을 뒹굴던 아이들은 민주와 평등을 헤아리지,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괴롭힘 따위로 치닫지 않아요. 동무를 아끼고 사랑하던 마음씨 그대로 살가운 문화를 이룹니다. 동무를 아끼지 못했고 사랑하지 못했던 마음씨일 때에는 사람다운 착한 넋이 자라지 못해요.


.. 이 책을 보면 나라에 따라 말과 시간과 계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왜 그런지 답은 쓰여 있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생각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느낄 놀람과 기쁨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죠. 어린이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어른도 함께 신기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안노 미쓰마사)

 

 


  안노 미쓰마사 님과 여덟 작가들이 힘을 모아 함께 빚은 그림책 《동그란 지구의 하루》(아이세움,2004)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1984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2004년에 옮겨요. 1984년이 어떤 해였나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그맘때에 이 그림책이 나오기 어려웠겠다 싶은데, 차츰차츰 평화롭거나 사랑스러운 기운이 감돌면서 아름다운 그림책이 빛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그림책이 빛을 보더라도, 이 나라 아이들이 제대로 빛을 못 보아요. 아주 어릴 적부터 영어바람에 휩쓸리는 아이들이에요. 초등학교부터 입시지옥에 휘둘리는 아이들이에요. 시골에서는 몽땅 도시로 내보낼 생각에 시골스러운 꿈을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도시에 갇힌 채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길들이는 딱딱한 울타리가 대단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풀잎 하나 간질이지 못하면서 살아요. 이 나라 아이들은 들꽃 한 송이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아요. 이 나라 아이들은 ‘내 나무’ 한 그루 없이 손전화와 인터넷에 사로잡혀요.


  동그란 지구별은 아름다운 꿈입니다. 둥글게 둥글게 손을 맞잡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꿈입니다. 동그란 지구별 되자면, 미국과 러시아도 전쟁무기를 버려야 하고, 일본과 중국도 전쟁무기뿐 아니라 엄청난 공장과 첨단시설을 그만 늘려야겠지요. 그리고, 이 나라에서도 전쟁무기를 모두 걷어치우고, 숲을 살리며 들과 바다가 푸르게 살아나도록 북돋아야 합니다. 첨단시설이나 관광단지나 산업공단이나 발전소가 아니라, 푸른 들판과 싱그러운 냇물을 지키는 길을 걸어야 해요.


  동그란 지구별은 서로 하나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서 매캐한 바람이 생기면 이웃나라에도 매캐한 바람이 불어요. 어느 한 곳에서 끔찍한 쓰레기물 내버리면 이웃나라에도 쓰레기물 흘러 아프고 힘들어요.


  다시 말하자면, 어느 한 곳에서 사랑이 싹트면 이웃나라에도 사랑이 싹틉니다. 어느 한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 샘솟으면 이웃나라에도 아름다운 이야기 퍼져요. 우리 아이들은, 또 우리 어른들은, 이 지구별이 어떤 삶터 되기를 바라는가요. 이 지구별을 어떻게 살찌우거나 가꾸고 싶은가요.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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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글쓰기 2

 


  글을 쓰는 사람은 이녁 삶을 쓴다. 글을 읽는 사람은 이녁 글을 읽는다. 이녁 삶 아닌 이야기를 글로 쓰지 못하고, 이녁 삶 아닌 모습을 글에서 읽어내지 못한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대수롭지 않다. 이렇게 살아왔기에 더 놀라운 글을 쓰지 않는다. 저렇게 살아온 터라 더 어수룩한 글을 내놓지 않는다. 어떤 삶을 꾸리며 하루하루 누렸다 하더라도, 이녁 삶을 얼마나 오롯이 드러내면서 사랑하는가를 밝히는가에 따라 글이 달라진다. 곧, 잘 쓰는 글과 못 쓰는 글이란 없다. 삶을 밝히는 글만 있고, 삶을 노래하는 책읽기만 있다.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이녁 삶을 담지 않는 글을 쓰려고 애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이녁 삶을 읽지 않고서 책만 손에 쥐려 한다. 글을 쓰는 사람도 이녁 삶하고 멀어지고, 글을 읽는 사람도 이녁 삶하고 자꾸 등을 돌린다. 이렇게 되면 글도 책도 수렁에 빠진다.


  매화나무 열매가 어떤 맛인가를 스스로 느끼지 않고 글을 쓸 때에, 살구나무 열매가 어떤 맛인가를 스스로 느끼지 않고 글을 읽을 때에, 삶은 그예 껍데기로 치닫는다. 가난이 어떠한가를 스스로 겪지 않고 글을 쓸 적에, 돈이 많은 삶이 어떠한가를 스스로 겪지 않고 글을 읽을 적에, 삶은 그저 겉치레로 흐르고 만다.


  모르는 이야기라면 써서도 안 되고 읽어서도 안 된다.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글로 쓰고 책으로 읽는다. 모르는 이야기이기에 알려고 애쓰면서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내고, 몸으로 부대끼어 살아낸 뒤에라야 비로소 글을 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도 이녁 스스로 모르는 이야기라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통독을 하든 정독을 하든 책을 알아차릴 수 없다. 삶이 없고서 책만 손에 쥔다면 아무것도 못 느낀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는 아무것 아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글을 쓰고 싶으면 삶을 일구면 넉넉하다. 글을 읽고 싶으면 삶을 사랑하면 된다. 삶으로 글을 쓰고, 삶으로 글을 읽는다. 삶으로 밭을 일구고, 삶으로 가을걷이를 한다. 삶으로 아이를 낳고, 삶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삶으로 노래를 부르고, 삶으로 밥을 차린다. 삶으로 비질을 하고, 삶으로 천천히 마을길 걷는다.


  몸으로 움직이지 않고서 걷는 기쁨을 알 수 없듯, 몸으로 움직이지 않는데 글로 쓰지 못한다. 밥을 먹지 않고서 밥맛을 알지 못하듯, 밥을 먹는 즐거움 그대로 글을 읽는 즐거움을 몸으로 깊이 헤아린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대학교나 문화강좌로 찾아가서는 글을 못 쓴다. 글을 쓰고 싶으면 종이와 연필을 장만하면 된다. 글은 연필을 쥐어 종이에 내 삶을 쓸 때에 글이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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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이랑

 


삼월부터 오월까지
쏙쏙 돋은
푸른 잎사귀 사이
가늘고 긴 대롱에
노랗게 몽우리 지며
빗물 먹고 피어난
붓꽃.

 

곁에는
무리지어 앙증맞게 웃는
돗나물꽃.

 

옆에는
동그스름 넓적한
머위잎.

 

둘레에는 함박꽃과 장미꽃과
하얗게 찔레꽃.

 

그리고 뽁뽁 뜯고 뜯으면
새로 돋고 자라는
부추풀.

 


4346.5.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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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빔 좋은 어린이

 


  여섯 살 사름벼리 여름치마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직 이웃들한테 말을 여쭙지 못한다. 집 안팎으로 하는 일이 많아 미처 이런 말을 못 여쭈는 셈일까. 여태껏 여러 좋은 이웃들이 선물해 준 고마운 옷들로 큰아이는 씩씩하고 즐겁게 옷을 입으며 지냈다. 어쩌면, 큰아이는 옷집에 가서 새로 사는 옷보다 이웃이 선물해 주는 옷을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워낙 선물받는 옷, 그러니까 물려받는 옷에 익숙하니까. 곰곰이 돌아보면, 아버지로서 큰아이한테 치마를 사 준 일이 꼭 두 차례인데, 큰아이가 세 살 적에 인천 큰아버지가 옷값을 주어 처음으로 사 주었고, 올봄에 네식구 함께 읍내마실을 하며 두 번째로 사 주었다. 그리고 어제, 큰아이 옷가지를 죽 살피고 보니, 여름에는 날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큰아이가 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하더라도 여름치마가 살짝 빠듯하겠다고 느꼈다. 있는 대로 돌아가며 입혀도 되지만, 어쩐지 새 치마 한 벌 사야겠구나 싶어, 부러 읍내마실을 해서 삼만육천 원 값을 치르고 여름빔을 마련했다. 큰아이가 이제껏 보여준 모습을 돌아보면, 다른 옷가지나 선물은 조금 들고 다니다가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맡겼다. 이번에 장만한 여름빔은 처음부터 끝까지 큰아이 스스로 든다. 두 시간 남짓 옷가방 들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비닐가방은 아버지한테 넘기고 여름빔 긴치마만 품에 안고 다닌다. 그래, 이토록 좋아하는 네 긴치마인데, 즐겁게 장만해 주어야지. 사서 장만하든 재봉틀로 박아서 장만하든, 네가 좋아하는 대로 장만해야지.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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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30 16:43   좋아요 0 | URL
벼리의 행복한 마음이 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치마를 양손에 꼭 들고 웃는 얼굴에
고스란히 다 나와 있네요~?^^
벼리의 표정을 보니, 저까지 함께 즐거워집니다.~
행복한 여름아이 샤름벼리~!

파란놀 2013-06-30 20:38   좋아요 0 | URL
어제오늘 즐거이 입었으니
내일은 신나게 빨아
잘 말려야지요~ ^^
 

책 사이에 드리우는 빛

 


  책에는 빛이 서립니다. 책에는 다른 어디에도 서리지 않는 빛이 곱게 서립니다. 나는 이 빛을 ‘책빛’이라고 말합니다.


  책빛은 언제나 곱게 서립니다. 이 빛을 알아채는 사람과 안 알아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빛은 이 빛을 알아채는 사람한테만 곱지 않습니다. 이 빛을 안 알아채는 사람한테도 늘 곱게 서립니다. 다만, 안 알아채기 때문에 못 받아들일 뿐입니다. 마치 햇볕이 어디에도 곱게 드리우지만, 햇볕이 드리우는 줄 모르고 지하철을 타거나 건물에서 형광등 켜고 일하는 사람이 많듯, 햇볕도 책빛도, 또 사랑빛과 푸른 숨결도 어디에나 찬찬히 드리우거나 서립니다.


  책에 서리는 빛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저마다 복닥이거나 부대끼면서 빚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빛 한 줄기 되어 책에 서립니다. 나무들 우거진 숲을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 손길과 숨소리와 마음결이 고스란히 종이 한 장에 스며듭니다. 햇살은 나무로 드리우며 나무를 살찌우고, 나무는 사람한테 와서 종이가 되어 포근한 기운을 보여주며,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한 자락 알뜰살뜰 엮어 책 하나를 새롭게 빚습니다.


  빛이 된 이야기는 이야기빛일 텐데, 사람들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으니 이야기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이야기빛은 이야기씨앗이 되면서 이야기나무로 자라고,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이야기꽃은 고소한 이야기밥이 되어 스며들고, 다시 이야기바람이 되어 시원한 생각 간질입니다.


  빛이 없거나 볕이 없는 데에서도 목숨이 싹틀까요. 빛이 없거나 볕이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 수 있을까요. 책은 인쇄소와 제본소에서 척척척 찍어서 나오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천 권 이천 권 만 권 십만 권 찍힌다 하더라도 저마다 고운 나무숨 담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아파트에서 형광등 켜고 읽을 수 있다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바닥이 나면 햇살이 드리우는 아침과 낮과 저녁 아니고서는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책이란, 형광등 불빛 아닌 햇살을 쬐며 읽을 때에 비로소 책이라 할 만합니다. 햇살이 있는 곳에서 읽으며 따스한 기운 받아먹고, 햇살이 온누리에 골고루 내리쬐도록 마음을 기울이도록 북돋우며, 햇살처럼 따스한 사랑이 내 마음에 서려 날마다 새롭게 웃고 뛰놀도록 이끌어, 바야흐로 ‘책’이 되고 ‘책빛’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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