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쓰는 마음

 


  첫째 아이 태어나고부터 ‘육아일기’를 씁니다. 아이랑 살아가니 마땅히 쓰는 육아일기인데, 육아일기를 쓰는 까닭은 이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아주 즐겁고 새로우며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육아일기를 쓰면서 아이를 한결 따사롭고 보드랍게 마주할 수 있기도 하지만, 이보다 내가 나를 한결 따사롭고 보드랍게 바라봅니다. 내가 나를 참말 사랑하도록 이끄는 육아일기로구나 하고 느껴요.

 

  첫째 아이와 여섯 해, 둘째 아이와 세 해 살아오면서, 육아일기를 느긋하게 쓸 틈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언제나 졸음과 고단함을 쫓으며 씁니다. 때로는 바쁜 일 넘치지만 뒤로 미루고 씁니다. 왜냐하면, 다른 어느 글보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쓸 적에 나 스스로 빙그레 웃음꽃이 피어나거든요. 이렇게 즐거운 글을 가장 먼저 더 마음을 기울여 쓸 수밖에 없다고 느껴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이와 똑같은 마음이에요. 아이들이 참으로 예뻐서 찍는다고만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란 바로 나 스스로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되어요. 아이들한테서 예쁜 빛을 느껴 사진을 찍는다면, 바로 나 스스로 나를 예쁜 눈빛으로 어루만진다는 이야기가 돼요.


  살림 도맡는 어머니가 가계부 쓰는 까닭은 살림돈 아끼려는 뜻만이 아닙니다. 살림을 돌아보면서 어머니 스스로 이녁 마음을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기를 쓰는 까닭은 ‘하루 일 기록’ 하는 뜻이 아니에요. ‘하루 일 기록’도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 삶을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기에 일기를 써요.


  내가 육아일기를 쓸 적에 누군가 옆에서 내 얼굴을 바라본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테지요. “이야, 환하게 웃으면서 글을 쓰네?” 하고.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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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7 08:35   좋아요 0 | URL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면서 육아일기를 쓰시니 이렇듯
환하고 착하고 예쁘게, 벼리와 보라가 날마다 즐겁게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이 사진 참으로 예쁘고 정말 좋습니다~*^^*

파란놀 2013-09-07 08:40   좋아요 0 | URL
육아일기 쓸 때뿐 아니라
언제나 웃으려고 합니다 ^^;;;;

일에 치이면 해롱해롱거리니까요 @.@
 

책아이 40. 2011.4.9.

 


  우리 집 아이가 언제부터 ‘책아이’였을까. 아마 어머니 뱃속에서 꿈꾸며 자랄 적부터 책아이였으리라. 아이 아버지인 내가 ‘책어른’으로 살았으니까. 참말, 나와 옆지기는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부터 ‘아름답다 싶은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었다. 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도 ‘사랑스럽다 싶은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었다. 이리하여, 우리 집 큰아이는 ‘책아이’로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싶다. 큰아이 네 살 적 ‘책아이’ 모습을 새롭게 돌아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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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7 08:37   좋아요 0 | URL
아웅~정말 귀여운 책아이예요~!!

파란놀 2013-09-07 08:39   좋아요 0 | URL
네, 아주 귀엽고 예쁘답니다!
 

아이는 재웠수

 


  언제였는 지 잘 안 떠오르는데, 〈아이는 재웠수〉였나, 이 비슷한 이름으로 된 영화였는지 무언가 있었다. 참 재미있는 말이로구나 싶어, 동무들하고 낄낄거리며 이 말마디를 흉내내곤 했는데, 이 말마디가 그 뒤로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았다.


  왜 남았을까. 왜 이 말마디가 내 마음속에 남았을까. 깊은 밤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자장자장 고운 노래 부르면서 생각한다. 그래, “아이는 재웠수?”로다. 여보시오, 아버지가 아이를 재웠수, 어머니가 아이를 재웠수? 할머니가 아이를 재웠수, 할아버지가 아이를 재웠수? 누가 집에서 아이들을 재웠수? 누가 하루 내내 아이들과 놀았수? 누가 아이들을 먹였수? 누가 아이들을 가르쳤수? 누가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녔수?


  아이는 재웠수? 빨래는 했수? 청소는 했수? 장은 봐 왔수? 밭에 풀은 뽑았수? 겨울에 먹을 무는 심었수? 했수, 안 했수?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누가 누구한테 할 말인가. 나 스스로 나한테 “했수, 안 했수?” 하고 물으면서 두 아이 이마를 살살 쓰다듬는다.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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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분이 아이를 돌보는 삶 누리면서 ‘아이키우기’를 ‘인문’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굳이 ‘인문’이라는 이름표를 안 붙이더라도, 아이와 누리는 삶이란 바로 ‘인문(사람살이)’ 아닐까.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온누리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이것저것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까. 더 돌아본다면,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게 느끼거나 깨닫는 것이 많다고 한다면, 아이를 낳기 앞서부터 이와 같은 대목을 돌아볼 노릇이다. 짝꿍을 맞이하거나 사랑을 나누기 앞서부터 이러한 대목을 살필 노릇이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이렇게 ‘삶이란 온통 이야기요 생각이며 사랑’인 줄 느낄 수 있도록 슬기롭게 가르치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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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권영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7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9월 0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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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키우는 아이 - 아빠 육아, 이 커다란 행운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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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배움책 18] 박찬희, 《아빠를 키우는 아이》(소나무,2013)

 


- 책이름 : 아빠를 키우는 아이
- 글 : 박찬희
- 펴낸곳 : 소나무 2013.2.7. 13000원

 


  마당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은 아주 다릅니다. 마당이 있는 집은 마당을 실컷 누리고, 마당이 없는 집은 마당을 하나도 못 누립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다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은 혼자서 신나게 뛰어놉니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면 아이들은 집안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뛰어놉니다.


  먼먼 옛날을 돌아보면, 아무리 가난하다 하는 집이라 하더라도 모두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이나 권력자 빼고는 모두 ‘시골사람’이었어요. 시골사람이던 사람들은 마땅히 시골에서 살았고, 시골에서는 누구나 스스로 흙을 일구면서 밥과 옷과 집을 얻어 살았어요. 이때에는 모든 집이 마당을 누렸을 뿐 아니라, 삽짝문 열면 온통 들이요 숲이면서 놀이터이자 일터였습니다.

  옛날 옛적 아이들은 ‘층간 소음’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학교나 학원이나 숙제나 입시에 들볶이지 않았습니다. 신나게 놀고 즐겁게 일하면서 하루를 누렸어요. 아이답게 놀면서 몸이 자라고, 어버이 일손을 곁에서 거들면서 마음이 컸습니다.


  어른들은 누구나 삶을 일구면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삶을 지켜보면서 삶을 배웠습니다. 어른들은 춤과 노래와 이야기로 슬기와 꿈과 사랑을 아이들한테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누리면서 마음속에 빛을 담았습니다.


.. 축하 인사를 받고 술 한잔 하다 어느 순간 아내 얼굴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애는 나 혼자 낳았냐고! 제발 애 키우는 일 좀 도와줘!” … 아내는 내가 야근한다는 말에 한 번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5, 78쪽)


  마당이 있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겼기에 마당을 기쁘게 누립니다.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있는 힘껏 하늘로 부웅 날았다가 사뿐히 땅에 내려앉습니다. 두 발 높이 들며 척척 걷습니다. 까르르 웃으면서 빙빙 달립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몹시 힘듭니다. 아무 데에서나 달리지 못하고 뛰지 못하며 노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버스나 기차나 전철을 탈 적에는 목소리를 낮추라는 꾸지람을 끝없이 들어야 해서 싫어합니다.


  참말 갑갑하지요. 여러 시간 꼼짝을 않고 앉되, 떠들지도 말고 노래부르지도 말며 반듯하게 앉아야 한다면, 이 짓은 마치 고문이라 할밖에 없습니다. 어른들한테 이렇게 시켜 보셔요. 좁은 걸상에 척 앉히고는 꼼짝을 하지 말라고 시켜 보셔요. 어느 어른이 몇 시간을 견딜까요. 아니 한 시간을, 아니 삼십 분을, 아니 십 분을 버틸까요.


  우리 어른들은 층층이 겹겹이 포갠 시멘트집을 ‘내 집’으로 장만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뛸 수도 없고, 목청껏 노래부를 수도 없는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요. 마당 있는 집 아닌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일까요. 다세대주택 아니고는 보금자리를 찾을 길이 없는 노릇일까요. 시골마을 작은 집을 마련해서 마당을 누리고 흙을 만지면서 살아가자면, ‘꿈을 못 이루’거나 ‘돈을 못 벌’거나 ‘이름을 못 날리’는 셈이 될까요.


  생각해 보면, 어른 스스로 놀 줄 모르니 도시에 남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 스스로 놀 생각이 없으니 층층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에 살려고 할는지 모릅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움을 모르기에, ‘층간 소음’ 때문에 걱정스러운 아파트에서 굳이 살아가려 한달 수 있습니다. 햇볕을 쬐고 산들바람을 마시며 풀노래를 부를 뜻이 없으니, 애써 도시에 남아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노동자 되어 돈을 벌 생각이라 할 만합니다.


.. 그때까지 내 주변에서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런 결정을 하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이를 보리라고는 꿈꾸지 않았다 … 아내는 계속 피곤했다. 음식은 아내 몫이라는 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 … 이가 삐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판단은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이 만들어냈다 … 나부터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을 지녀야 서령이도 밝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  (16, 53, 72, 175쪽)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랄 때에 아름다울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참말 어떤 사람으로 자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서너 살도 아닌 두어 살, 또는 한두 살에 유아원에 들어가야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랄까요? 고작 너덧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한글을 떼고 영어노래를 불러야 사랑스러울까요? 일고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기 무섭게 온갖 학원을 다니면서 일찌감치 입시지옥 굴레에 갇혀야 씩씩하게 자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꿈을 펼칠 때에 참다우면서 참답고 아름다운 마음이 될까요? 이 아이들은 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어버이한테서 배우지 못하고 스무 살이 되거나 서른 살이 되어도 될까요? 밥도 옷도 집도 스스로 지을 줄 모르는 채, 오직 돈으로 밥과 옷과 집을 사들여서 누리면 될까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짝꿍을 만나 새롭게 아이를 낳는다고 할 적에, ‘아이키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아이들 어버이가 했듯이 똑같이 되풀이하면 될까요? 유아원·어린이집·유치원 찾느라 골머리를 앓으면 어버이 구실 잘 하는 셈일까요? 아이들 태울 큰 자가용 뽑아서 굴리면 될까요? 아이 돌볼 일꾼을 집에 두면 될까요?


  아버지 사랑과 어머니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눈빛이 다릅니다. 할머니 사랑과 할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큰 아이들은 눈망울이 다릅니다.


  아이들은 교육받거나 훈육받거나 훈련받을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사랑받을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사랑을 입으며, 사랑을 누리면서, 신나게 뛰어놀 때에 비로소 아이답습니다. 그러면 어른은? 어른들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꽃피울 적에, 이러면서 즐겁게 일할 적에 비로소 어른답습니다.


.. 아이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말해 주면 아이는 그 상황이 닥쳐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 나의 세상도 서령이를 기준으로 바뀌어 갔다. 집안 물건은 서령이에게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으로 구분하였다 … 서령이는 노래 잘하는 아빠가 아니라 신나게 노래를 불러 줄 아빠를 원했다 … 흔들거리는 서령이 다리가 내 다리에 닿을 때의 기분은 언제나 좋다. 평일 낮에 가고 싶은 곳을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쯤 친구들은 회사 일로 정신이 없겠지. 친구들아, 이 기분을 알겠니 ..  (23, 30, 48, 59∼60쪽)


  낭창낭창 노래를 부릅니다. 두 아이를 새근새근 재우려고 날마다 밤이면 사근사근 노래를 부릅니다. 초·중·고등학교 다니며 음악 실기시험 치를 적에 늘 낙제 점수를 받은 ‘노래 솜씨’이지만, 두 아이를 돌보며 여섯 해째 날마다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노래를 들으면서 보드라운 얼굴빛 되고, 아이들은 아버지 노래를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때로는 두 시간쯤 들으면서 시나브로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오늘 문득 내 노래꾸러미에 새 노래를 더 보태야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을 재우거나 놀리면서 서너 시간쯤 다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여섯 살 큰아이가 새롭게 들으면서 즐길 만한 노래를 찾아야겠다고 느낍니다.


  마흔 해 살아오며 이제껏 들은 노래를 하나둘 떠올립니다. 대중노래이든 민중노래이든 아이들과 함께 부를 만한 노래가 매우 드뭅니다. 노랫가락이 예쁘다 하더라도 노랫말이 엉터리라거나 어설픈 노래가 아주 많습니다. 나는 노랫가락만 살리고 노랫말을 몽땅 바꾸어 부릅니다. 가을로 접어든 선선한 깊은 밤, 풀벌레가 우리들 새근새근 잘 자라면서 풀노래 불러 준다는 이야기에 가을비 똑똑 듣는 고소한 소리를 곁들이는 노랫말로 바꾸어 부릅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예쁘며 착하고 사랑스럽다는 노랫말로 고쳐서 부릅니다. 어려운 말은 쉬운 말로 고쳐서 부르고,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은 고운 한국말로 바로잡아서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즐겁습니다. 아이들 얼굴보다 내 얼굴이 먼저 환하게 빛납니다. 아이들 재우거나 놀릴 적에 삼십 분이나 두 시간이고 쉬잖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힘은 바로 내 마음속에서 샘솟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맑아지고 밝아지는구나 하고 느끼기에 신나게 노래를 거듭거듭 부릅니다. 아이들도 노래를 들으며 즐겁고, 노래를 듣다가 따라서 부릅니다.


  밥을 지어 차릴 적에는 아이들 먹일 밥이면서 나와 옆지기가 함께 먹을 밥입니다. 아이들 살찌우는 밥일 뿐 아니라 내 몸을 살찌우는 밥입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시골마을 작은 집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즐거운 놀이터가 되면서, 나로서는 내 마음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일터이면서 삶터입니다.


.. 나에게 놀이터란? 눈치가 보이는 곳이다. 또한 전업주부라는 자기 정체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엄마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곳이지만 내게는 그렇지 못했다. 주말이나 공휴일, 평일 퇴근 무렵, 혹은 평일이라도 아내가 휴가를 내서 함께 낮에 공원에 갈 때는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주말이나 평일이나 나라는 사람은 똑같은데도 그렇다. 평일 낮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 가는 아빠란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존재였다 … 죄의식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엄마들의 책임이 늘면 상대적으로 책임이 줄어드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엄마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남편이다 ..  (245, 270쪽)


  마음이 맞는 짝꿍을 사귀어 사랑을 속삭이는 일은 사람살이에서 아주 크나큽니다. 사랑을 속삭일 짝을 만날 때에, 스스로 삶을 살찌우면서 가꿀 수 있어요. 짝꿍한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게 빛나면서 서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끄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살포시 모여서 아이가 태어나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두 사람만 있어도 아름다운 나날 누리는데, 이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래, 우리가 이 아이처럼 우리 어릴 적에 놀랍고 멋진 사랑을 아름답게 물려받으면서 자랐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밖에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어린 나날부터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자랐거든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베풀밖에 없습니다. 어버이 된 사람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면서 고운 사랑을 듬뿍 먹으며 컸거든요.


  박찬희 님이 쓴 ‘아빠 육아일기’인 《아빠를 키우는 아이》(소나무,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박찬희 님은 ‘전업주부’가 아닙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한 해 즈음 말미를 얻어 아이하고 ‘놀았’을 뿐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아이한테 베풀지 않습니다. 그저 ‘놀았’을 뿐이에요. 놀았다고 해도 제대로 놀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놀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 해 즈음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보내면서 박찬희 님 스스로 ‘많이 자랐’습니다. 아이를 돌본다고, 아니 ‘옆지기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육아 전담’을 한다고 했지만, ‘아이와 조금 놀’면서 ‘아버지 박찬희’ 님은 스스로 많이 자랐습니다.


  이제껏 생각조차 못하던 일을 몸으로 겪으니 하나둘 새롭게 배웁니다. 여태껏 이녁이 맡아서 할 일이라고 여기지 않던 일을 몸소 하다 보니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배웁니다.


  배워야지요. 박찬희 님이 할아버지 되어 손자 손녀 돌볼 앞날을 헤아려 보셔요.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바로 오늘 즐겁게 배워야지요. 나중에 할아버지 될 날에 앞서,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물려줄 사랑을 듬뿍 베풀어야지요. 온통 베풀고 아낌없이 베풀어야지요.


.. “핵발전소 이야기가 나오면 여자들은 대부분 귀담아 들어요. 아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비부터 거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에요.” 내가 이 말을 받았다. “남자들은 논쟁하기 좋아하죠. 핵발전소 문제가 나오면 대개 ‘그것보다 값싼 전기가 어디에 있느냐, 지금 당장 대체할 전력이 어디 있느냐, 혹은 만일을 위해 핵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식이죠. 반면 여자들, 특히 엄마들은 달라요. 핵발전소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아이를 먼저 생각하죠.” ..  (278쪽)


  웬만한 요즈음 한국 사내들은 ‘논쟁하기 좋아하’지 않습니다. ‘삶을 모를’ 뿐이고, ‘사랑하고 등돌린 채 살아갈’ 뿐입니다. 핵발전소 아닌 화력발전소라 해도 모두 똑같아요. 아이를 생각하고 내 몸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생각하고 나무와 숲과 바다와 바람을 모두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생각합니다. 가장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도 모두 ‘아름다운 삶’과 ‘사랑스러운 삶’이라는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 뿐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면 아주 마땅히 옳고 바르며 참다운 쪽으로 갑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생각하면 아주 마땅히 착하고 즐거우며 깨끗한 쪽으로 갑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들은 으레 ‘밑힘(본질)’을 읽어요. 아이를 함께 낳았어도 아이를 돌보지 않는 아버지들은 자꾸 ‘밑힘(본질)’하고 멀어져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내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내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지구별과 숲과 온누리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을 놓고 생각하면 돼요. 아이 똥오줌을 가릴 적이든, 아이한테 밥을 차려 먹일 적이든, 아이한테 옷을 입힐 적이든, 아이한테 비로소 글을 가르치고 그림놀이 할 적이든,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줄 적이든,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놀 적이든, 언제나 사랑을 한복판에 놓고 생각하면 됩니다.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려는 마음이 되어 사랑을 생각하면 됩니다. 언제나 삶을 즐겁게 짓고 누리려는 몸짓으로 사랑을 내 마음속에서 길어올리면 됩니다. 박찬희 님이 둘째 아이도 낳아서, 둘째 아이는 갓난쟁이일 적부터 돌보면 참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둘째 아이를 낳으려면 삶터도 일터도 모두 시골로 옮기셔요. 돈 아닌 사랑이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시골에 더없이 아름다운 보금자리 일굴 수 있습니다.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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