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하늘고래 (2013.9.8.)

 


  다른 두 식구 잠든 결에 대청마루에 종이 펼치고 크레파스통 연다. 큰아이는 아버지 옆에 엎드려 함께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는 고래를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는 저랑 어머니 모습을 그린 뒤, 아버지처럼 ‘하늘 나는 고래’를 그린다. 아버지는 촘촘하게 별을 그리고 무지개하늘 바르느라 품이 많이 들고, 큰아이는 어느덧 세 번째 그림까지 그린다. 네 손도 참 빨라졌구나. 아버지 손이 오늘은 너무 더디었나? 하기는. 고래가 바닷물 철썩이면서 첨벙 날아오르기까지 오래 걸리잖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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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꽃비녀

 


  옆지기가 미국 람타학교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네 식구 처음으로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읍내 버스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가방을 내려놓고 쉬는 바로 앞으로 하얀 옷 차려입은 할머니가 힘들게 앉으신다. 하얀 옷 할머니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져 아주 듬성듬성하다. 그러나, 숯이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을 묶어 비녀를 꽂았다. 비녀에는 꽃무늬 하나 앙증맞게 깃든다.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아줌마 파마’라 하는 ‘보글보글 머리’를 한 할매만 많은데, 꽃무늬 깃든 은비녀 꽂으며 지내는 할매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다. 꽃비녀 할머니, 앞으로도 가끔 읍내마실 누리시면서 아름다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즐겁게 마주하시기를 빌어요. 4346.9.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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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14. 2013.7.24.

 


  꽃대 껑충 자라 아이들 키뿐 아니라 어른들 키만큼 오르고 나서야 꽃송이 벌리는 꽃이 있다. 꽃대 땅바닥에 붙듯이 살짝 돋고는 나즈막하게 피어나 아이도 어른도 쪼그려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여야 들여다볼 수 있는 꽃이 있다. 키다리 나리꽃을 만난다. 키다리 나리꽃과 마주하는 아이는 키도 손도 안 닿는다.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싶으나, 꽃내음을 맡고 싶으나, 도무지 안 된다. “얘야, 꽃대를 살며시 쥐고 가만히 당겨 보렴. 꽃대가 안 부러지게 살살 당기면 돼.” “그래?” 꽃대를 살그마니 붙잡아 저한테 당기는 아이가 꽃송이를 들여다보다가 꽃내음을 맡는다. “알겠니? 싱그러운 여름빛이 바로 이 꽃송이에 깃들었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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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7.24.
 : 나리꽃 자전거

 


- 아이들과 놀기란 아주 쉽다. 그저 마음을 홀가분하게 열고 아이들하고 놀면 된다. 아이들은 아주 놀랍거나 대단한 깜짝잔치를 베풀어 주어야 반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전거에 태워 가까운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로도 즐거워 한다. 그러면, 자전거는? 대단한 자전거를 몰아야 아이들과 다닐 수 있지 않다. 튼튼한 자전거라면 다 즐겁다. 여느 짐자전거라면 뒷자리에 방석을 깔아 아이 하나 앉힐 만하고, 손잡이와 안장 사이에 조그마한 걸상을 놓아 아이 하나 더 앉힐 만하다. 돈을 조금 들일 수 있으면 자전거수레 하나 장만할 수 있다. 아이 태우는 자전거수레는 20∼30만 원이면 장만할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고, 큰아이는 여섯 살 되면서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나란히 못 태운다. 큰아이 몸이 많이 큰 만큼 따로 샛자전거를 붙여서 달린다. 샛자전거는 10∼20만 원 즈음 헤아리면 장만할 만하다. 이만 한 값을 비싸다고 여긴다면 가없이 비쌀 테지. 그런데, 이만 한 값은 자동차 기름 몇 번 넣을 만한 값일 뿐이다. 자가용을 덜 타고 자전거를 장만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삶을 누릴 적에 얻는 보람과 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으로 셀 수 없는 웃음과 이야기를 낳는다.

 

-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려는 너덧 시 즈음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이제 땡볕이 덜 따가우니 자전거 탈까?” ‘자전거’ 소리에 작은아이가 먼저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본다. “자정거? 자정거 타자!” 하면서 부리나케 마당으로 내려선다. 큰아이도 바로 따라온다. 수레와 샛자전거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으니 작은아이는 누나가 앉는 샛자전거에 붙은 무당벌레 딸랑이를 만진다. 아이야, 네가 무럭무럭 자라서 샛자전거에 앉을 수 있으면 이제 네가 이것 늘 만질 수 있어. 그때에 네 누나는 혼자서 따로 자전거를 몰 수 있겠지.

 

- 소포꾸러미를 수레에 싣는다. 물을 챙긴다. 자, 이제 달릴까. 우체국으로 신나게 달리는 길에 호덕마을과 원산마을 들판 맞닿는 자리에 핀 나리꽃을 본다. 마을 어르신들이 틈틈이 풀베기를 하느라 해마다 몽땅 베여 죽는데, 용하게 해마다 다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땅에 뿌리박은 숨결이란 이렇게 씩씩할까. 마을 어르신들은 어느새 논둑이나 밭둑에 이처럼 고운 꽃 피어나도 썩 반기지 않는데, 집안 마당 한쪽에 일구는 꽃밭에서만 꽃을 보려 하시는데, 너희 들나리(들에서 피는 나리)는 기운차고 다부지게 살아가는구나.

 

-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친다. 소포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본 나리꽃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한테 꽃내음 맡아 보라 이야기한다. 키 껑충 자란 나리꽃을 보려고 꽃대를 살살 잡아 끌어당긴다. “아, 냄새 좋다!” 냄새를 맡고 또 맡는다. 냄새를 맡고 자꾸 맡는다. 얘들아, 이 여름 지나고 가을이 와서 다시 너희가 싹둑 베이더라도, 이듬해 여름에 또 이렇게 어여쁜 꽃잔치 베풀어 주렴. 언제나 씩씩하고 다부진 고운 빛으로 우리 마을에 꽃빛을 나누어 주렴.

 

- 집에 닿는다. 큰아이한테 대문 열어 달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콩콩 달려간다. 대문을 연다. 착하고 예쁘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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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8.28.
 : 별학산 넘기

 


- 여름이 저문다. 올 한 해 여름비 거의 없이 땡볕만 가득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더위가 차츰 식으며 가을이 다가온다. 제아무리 모진 더위라 하더라도 시원스런 바람과 함께 겨울이 식힐 테고, 제아무리 드센 추위라 하더라도 따스한 바람과 함께 봄이 어루만져 주겠지. 더위가 한풀 꺾이는구나 싶어, 모처럼 퍽 멀리까지 자전거마실을 할까 하고 생각한다.

 

- 마을마다 콩을 터느라 부산하다. 자동차 뜸한 마을이면 찻길에 길게 콩포기를 펼친다. 펼친 콩포기는 할아버지가 경운기로 밟아 털고, 할머니가 방망이를 두들기며 마무리짓는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할매 할배 곁을 지나갈 적에 큰아이가 꼬박꼬박 “할머니 안녕하셔요!”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하고 외친다.

 

- 자전거를 몰며 나들이를 나오자마자 큰아이는 새근새근 잔다. 작은아이한테 자전거마실은 낮잠 누리는 마실이다. 큰아이도 제법 졸릴 텐데 졸음을 참으며 함께 잘 달린다. 도화면 서오치를 지나고, 처음 마주하는 오르막을 땀 빼며 오른다. 면소재지 언저리 길가에 심은 감나무는 키가 작다. 감을 따기 좋도록 키가 안 자라게 가지치기를 한 탓일 테지. 그런데, 감을 딸 적에는 따더라도 이 길에 그늘을 누릴 수 있도록 키가 좀 크도록 하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한다. 그늘이 없는 길은 걷기에 몹시 힘들다.

 

- 길에 그늘이 드리우자면,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야 하는데,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자면 찻길을 따라 전봇대가 없어야 한다. 전봇대가 있더라도, 나뭇가지를 함부로 안 자르면 된다. 나무가 높이높이 자라 전봇대 키를 껑충 넘으면 전깃줄이 나뭇가지에 걸리느니 어쩌느니 걱정할 일이 없다. 걱정해야 한다면, 전봇대와 전깃줄 때문에 나무가 아파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해야 옳다고 느낀다.

 

- 지등마을 지나고 이목동마을 가까이 닿을 무렵, 길가에서 새 주검 하나 본다. 자전거로 슥 지나치다가 빙 돌다. 새 주검한테 다가선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왜요?” “응, 저기 새가 죽었어.” “새가? 정말? 왜 죽었어?” “아마, 차에 치여 죽었겠지.” 자전거를 세운다. 참깨꽃 하나둘 지며 열매를 맺는 길가에서 가녀린 새 주검을 손에 쥔다. “나도 보여줘.” “제비야, 너는 다음에 꽃으로 태어나렴. 꽃으로 태어나면 너를 치여 죽일 사람은 없겠지.” 마을 어르신들은 찻길 가장자리까지 참깨를 심거나 콩을 심는다. 제비 주검을 누일 마땅한 자리가 딱히 안 보인다. 한참 여기저기 헤맨 끝에 빈 풀섶 조그마한 자리를 찾는다.

 

- 황촌마을 지난다. 여의촌마을과 강동마을 지날 무렵 우체국 일꾼을 만난다. 오토바이를 몰며 편지를 나르는 우체국 일꾼하고 큰아이하고 몇 마디 주고받는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누구라도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한다. 얼마나 예쁜가.

 

- 남당마을 앞 너른 마당은 콩을 터는 할매와 할배로 부산하다. 바닷마을 콩밭에서 자란 콩은 바닷바람과 바닷내음 물씬 들이켰겠지. 햇볕과 바람과 빗물뿐 아니라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까지 새록새록 담았겠지.

 

- 풍남항에 닿다. 풍남초등학교 옆에 있는 영월수퍼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들한테 얼음과자 하나씩 사 준다. 작은아이도 이제 낮잠에서 깬다. 잘 잤지? 이제 우리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별학산을 넘자꾸나. 우리가 이 자전거로 비봉산 기슭과 천등산 기슭과 마복산 기슭을 넘었잖아. 오늘은 별학산 기슭을 따라 넘어가 보자고.

 

- 영호마을에 닿을 즈음, 큰아이가 “아버지, 저기 바닥에 뭐야?” 하고 묻는다. “뭐? 아, 그거? 우리 집에도 많잖아. 생각 안 나?” 자전거를 세운다. “자, 내려서 들여다봐.” “뭐지?” “후박 열매야. 먹어 봐.” 멧새들 많다면 이 후박 열매 먹느라 바쁠 텐데, 마을마다 하도 농약을 쳐대니 새들이 살아날 길이 없다. 올해에는 지난해와 견줘 새를 드물게 만난다. 새가 곡식이나 씨앗을 쪼아먹는다고 하는데, 새들이 먹이가 사라지니 자꾸 쪼아먹는다. 새가 있어야 벌레와 나방도 잡아먹고, 이렇게 널브러진 후박 열매를 비롯해 숲나무 열매를 먹을 텐데, 새가 자꾸 자취를 감추며 농약에 살충제에 온통 화학약품 범벅이 된다. 새가 노래하지 않는 곳을 시골이라 할 수 있을까. 새가 날갯짓하지 않는 데를 숲이라 할 수 있을까. 새는 죄 사라지고 사람만 남는 데에서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 영호마을 어귀에 있는 우체통 빨간 빛이 도드라진다. 저 우체통은 앞으로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시골마을에서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할매나 할배는 몇 분이나 있을까. 요새는 편지 아닌 손전화로 안부 인사를 나눌 테니, 참말 시골마을 우체통은 머잖아 모두 사라지리라 느낀다.

 

- 저 멀리 천등마을 들판을 바라보면서 냉정마을 어귀를 오른다. 이제부터 오르막이다. 가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밟는다. 첫가을 언저리이지만 한낮 햇볕은 뜨겁다. 한여름처럼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지 않으니, 멧기슭 타고 달리는 자전거는 이렁저렁 나무그늘을 누린다. 나무그늘 없는 길을 달릴 적하고 나무그늘 있는 길 달릴 적은 사뭇 다르다. 건물이 드리우는 그늘은 그다지 안 시원하다. 나무는 조그마한 나무라 하더라도 그늘이 참 시원하다.

 

- 오리나무숲을 실컷 느끼며 별학산을 넘는다. 얘들아, 우리 셋이 이렇게 자전거를 몰아 별학산을 넘는단다. 멧길 달리는 느낌을 알겠니?

 

- 내율마을 지나고 율치다리 건넌다. 푸른 들판에 누르스름한 빛이 살몃살몃 감돈다. 가을빛은 천천히 천천히, 그야말로 천천히 온 들판으로 찬찬히 스며든다. 풍양면소재지 쪽으로 자전거를 꺾는다. 풍양중학교에 닿는다. 학교에 들러 아이들과 논다. 아이들은 너른 마당 있는 데라면 어디이든 즐겁다. 달리고 뛰고 만지고 구르면서 신나게 논다.

 

- 저녁 다섯 시에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해가 떨어지기 앞서 집으로 돌아가자. 해가 떨어지면 마당에 넌 빨래가 다시 축축해진다. 우리 얼른 돌아가자. 오던 길을 되짚는다. 별학산 기슭을 다시 넘는다. 할매 한 분 우리처럼 별학산 기슭을 넘으려 한다. 할매는 짐을 실은 작은 수레를 끈다. 할매는 이녁 젊을 적부터 이 고개를 숱하게 넘으며 살아오셨겠지요.

 

- 저녁해가 되며 별학산 기슭은 온통 나무그늘이 된다. 내리막을 그늘길로 달리며 매우 시원하다. 냉정마을과 영호마을 앞을 싱싱 달린다. 남당마을 앞에서 살짝 자전거를 멈춰 아이들한테 물을 준다. 다시 자전거를 몬다. 바닷바람을 마시고, 바닷노래를 들으면서 자전거를 차근차근 몬다. 더 빠르지도 않고 더 느리지도 않게 자전거를 달린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도 파랗다. 하늘과 바다는 한동아리 빛깔이다. 구름 하나 없이 파란 하늘 저 끝자락부터 하얗게 물든다. 하얀 물은 이내 발그스름하게 바뀌고, 발그스름한 빛은 곧 저녁노을이 되겠지. 우리 마을도 이웃 여러 마을도 가을볕 골고루 받는다. 가을노래는 물결 따라 천천히 번지고, 바닷마을도 들마을도 멧마을도 산들산들 시원스레 감도는 바람이 어루만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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