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우면서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천양희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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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를 채우면서> 아닌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느낌글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은 절판된 지 퍽 오래된 책인데,

2013년에 1983년 천양희 님 시를 돌아보면

이 새로운 책을 새삼스레 누릴 수 있으리라 믿으며

이 느낌글을 이 책에 붙입니다.

 

..

 

 

 

시를 노래하는 시 58

 


노래하며 다가오는 웃음
―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천양희 글
 평민사 펴냄, 1983.12.

 


  새가 노래할 적에 새와 함께 노래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할 때에 풀벌레와 함께 노래합니다. 새도 풀벌레도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새와 함께 노래하지 못하고, 풀벌레와 함께 노래하지 못합니다.


  바람이 노래할 적에 바람과 함께 노래합니다. 햇살이 노래할 때에 햇살과 함께 노래합니다. 바람도 해도 마주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노래하지 못하고, 햇살과 함께 노래하지 못합니다.


  냇물이 노래합니다. 바다가 노래합니다. 돌돌 흐르는 냇물이 노래합니다. 쏴락쏴락 물결이 치는 바다가 노래합니다. 냇물 곁에 서다가 천천히 쪼그려앉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두 손으로 맑은 물을 떠서 목을 축입니다. 바다 앞에 서다가 천천히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두 발로 찰방찰방 소리를 내면서 물놀이를 즐깁니다.


.. 짓밟기 잘하는 그 남자의 발은 / 언제나 / 단단한 장화를 신고 있읍니다 ..  (짓밟기)


  하루가 지나면서 새롭게 해가 뜹니다. 하루가 저물면서 새롭게 달이 뜹니다. 밤하늘에 구름이 가득 끼었어도 저 구름 너머로 별이 빛납니다. 별빛은 구름으로 드리우고, 별빛을 받는 구름은 하야스름한 옅은 별빛을 이 땅에 내려놓습니다.


  새는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노래합니다. 사람들도 새벽이나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이나 밤이나 노래합니다. 스스로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합니다. 마음속에서 노래가 샘솟으면 저절로 노래합니다.


  소쩍새 밤노래를 들으면서 마음 깊이 이야기 한 자락 피어나 즐겁게 노래합니다. 풀벌레 낮노래를 들으면서 이들 풀벌레는 밤에도 낮에도 고운 결로 이야기 두 자락 베푸는구나 하고 느끼며 기쁘게 노래합니다.


  밥상에 올릴 풀을 뜯으며 노래합니다. 고마운 밥을 베푸는 풀포기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풀포기는 톡톡 뜯기면서 새삼스럽게 노래를 받아들이고, 풀내음을 한껏 베풉니다.


.. 내려서면 언제나 편안한데 / 일터에서 나는 / 언제나 작아져서 / 올라갈 생각만 하는데 / 그런데 / 나는 늘 태야처럼 / 모로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 ..  (일터에서)


  나무그늘에 섭니다. 나무는 햇볕을 한몸으로 소복소복 맞아들이며 줄기도 잎도 뿌리도 조금씩 키웁니다. 나무는 해마다 꽃을 더 많이 피우면서 열매를 더 많이 맺습니다. 나무는 한 살 두 살 먹을 적마다 더 많은 동무를 부릅니다. 나무열매를 나누어 먹으라며 멧새를 부르고 조그마한 멧짐승, 이를테면 다람쥐를 부릅니다.


  숲에 깃들어 조용히 노래하던 멧새는 나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포로롱 날아듭니다. 이 나무에서 한참 열매를 누립니다. 저 나무에서 한창 다른 열매를 누립니다. 나무마다 찾아들며 배부르는 기쁨에 젖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러고는 이 숲 저 마을 날아다니면서 뽀직뽀직 똥을 누지요. 날아다니면서 똥을 누는 멧새는 나무씨앗을 이 숲 저 마을에 떨굽니다.


  열매를 나누어 주면서 어린나무 새로 태어납니다. 열 해 스무 해 백 해 지나며 숲이 새 모습 됩니다. 스무 해 마흔 해 이백 해 지나며 늙은 멧새는 흙으로 돌아가고, 어린 멧새 새로 깨어납니다. 우람한 나무는 사랑을 맺어 어린나무를 키우고, 늙은 멧새는 사랑을 물려주며 어린 멧새 살아가도록 돌봅니다.


.. 어디서나 말은 뿌려지고 / 귀기울이면 어디서나 / 말은 들려온다 ..  (이 길에 남은 우리)


  풀약을 뿌려 들풀 새까맣게 타죽은 곳에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자랍니다. 열흘이나 보름쯤 지나면 다시 방긋방긋 웃듯이 여리고 작은 잎사귀 볼록볼록 돋지만, 풀약을 뿌려 들풀 새까맣게 태워 죽인 곳에는 어느 누구도 쪼그려앉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자리를 깔고 드러눕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쉴 자리를 없앱니다. 풀밭과 풀섶을 몽땅 없애려 들면서 스스로 쉴 터를 망가뜨립니다. 사람들은 따로 돈을 들여 시멘트로 공원을 만듭니다. 먼 나라 숲에서 베어 사들인 나무로 걸상을 뚝딱뚝딱 만듭니다. 어느덧 사람들은 두 발뿐 아니라 엉덩이도 몸도 풀밭에 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두꺼운 가죽신을 신습니다. 사람들은 맨발로 흙을 밟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온몸으로 냇물을 부대끼지 않고, 사람들은 삶터 둘레를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과 쇳덩이로 채웁니다.


  흙이 사라지는 곳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풀벌레도 새도 깃들지 못하는 시멘트바닥이나 아스팔트 찻길에는 아무런 노래가 없습니다. 흙이 없는 곳에서는 자동차 싱싱 내달리는 소리만 시끄럽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귀가 멍멍하도록 자동차 소리에 길듭니다.


.. 조카는 이를 앓는다 / 조카의 앓던 이는 치과에 있다 / 치과에는 앓던 이가 없다 // 조카는 꿈을 잃는다 / 조카의 앓던 꿈은 치과에 없다 / 치과에는 앓던 꿈은 없다 ..  (남은 뿌리)

 

 


  노래가 사라진 찻길에서 사람들은 라디오를 켭니다. 시디를 돌리고 텔레비전을 틉니다. 노래가 없는 찻길에서 사람들은 스포츠 중계를 듣고, 대중노래를 들으며, 텔레비전 연속극과 영화에 흠뻑 빠집니다.


  옛날 옛적부터 누구나 스스로 노래를 지으며 불렀습니다. 모를 심건 풀을 뽑건 베틀을 밟건 절구를 빻건 아기한테 젖을 물리건, 사람들은 옛날 옛적부터 하루 내내 노래를 부르고 살았습니다. 남이 가르쳐 준 노래를 부른 사람은 없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거나 동무하고 함께 부른 노래는 있지만, 모든 노래는 스스로 새로 지어서 불렀습니다.


  이제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노래를 짓지 않아요. 참말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노래를 즐기지 않아요. 어느 결에 오늘날 사람들은 이웃이 부르는 노래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스스로 부르는 노래를 신나게 누리지 못해요.


.. 강자리에 / 염색공장 우뚝 섰다 / 몇백년 농부 땅을 버린 뒤 / 도회지 사람되어 넥타이 메고 / 염색공장 색깔같이 물들어간다 ..  (영남시편)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에는 노래를 부를 만한 곳으로 갑니다. 노래를 부를 만한 곳이 아니다 싶어도 마음속에서 샘솟는 고운 가락을 가만히 뽑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삶을 누리고 싶기에 일구어 내놓는 노래입니다. 스스로 흐뭇하게 하루를 빛내고 싶으니 가꾸면서 짓는 웃음입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웃고, 웃는 사람은 노래합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삶을 웃음으로 일구고, 웃음으로 삶을 일구는 사람은 노래합니다.


  노래하는 사람 곁에는 노래하는 새들이 날갯짓합니다. 노래하는 사람 둘레에는 풀벌레가 춤춥니다. 노래하는 사람 가까이에는 노래하며 웃는 이웃들 있습니다.


.. 오늘도 어제처럼 / 제때에 오지 않는 버스를 탄다 / 시멘트처럼 단단해진 / 등에 등을대고 버스를 탄다 ..  (버스를 타며)


  천양희 님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평민사,1983)을 읽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있을까요. 내 마음속에 있을까요, 내 마음 바깥 어딘가에 있을까요. 하느님은 저 머나먼 예배당 뾰족탑에 있을까요, 저 두껍디두꺼운 성경책에 있을까요. 하느님은 신학대학교 강의실에 있을까요, 누렇게 익는 가을 들판 나락 곁에 있을까요.


  어디에 있는 하느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가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하느님하고 사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가요. 어디에서 누구하고 노래하는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이야기를 속닥속닥 들려주는가요.


.. 나도 이곳 주민인데 / 어째서 날이면 날마다 / 저들이 이렇게 생소하냐 / 오늘 나도 / 이곳 수도물을 마시고 / 하이타이로 빨래를 하고 / 토큰을 내고 버스를 타는데 / 사람들 옆으로 / 비실비실 빠져나와 / 무엇 하나쯤 잃어버린듯 / 수도 서울 변두리에 서있는 나는 / 정말 바보같구나 바보같구나 ..  (알 수 없어요)


  1980년대를 떵떵거리며 대통령 자리에 있던 어느 분이 나라에 세금 몇 천 억원을 내놓기로 합니다. 몇 천 억원을 내놓아야 한다면, 참말 몇 천 억원을 모질거나 끔찍하거나 괘씸하거나 짓궂은 짓을 하며 긁어모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몇 천 억원 아닌 몇 조 원을 긁어모았을는지 모릅니다.


  나라에서 돌려받는다는 세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을까요. 공장 일꾼 주머니에서 나왔을까요. 청소 일꾼 주머니에서 나왔을까요. 국민학교 아이들 방위성금 내던 주머니에서 나왔을까요. 밥하고 빨래하며 아기 돌보던 아주머니 물에 젖은 손으로 쌈지돈 꺼내는 주머니에서 나왔을까요. 시골마을 논둑 밭둑 거닐며 하늘바라기하는 늙은 일꾼 주머니에서 나왔을까요.


  1980년대 첫무렵에 태어난 조그마한 시집은 서른 해가 지나는 사이 새책방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고, 도서관 책꽂이에서도 쉬 만나기 어렵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을 샅샅이 뒤지더라도 좀처럼 만나기 어렵습니다.


  1980년대와 2010년대는 서로 어떤 사이일까 헤아려 봅니다. 1980년대를 떵떵거리며 대통령 자리에 있던 어느 분이 남몰래 큰돈 뒤로 빼돌리는 짓을 안 하고,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하루를 맑게 빛냈으면 오늘날 2010년대에 어떤 이야기 새롭게 피어날까 헤아려 봅니다.


.. 책사러 광화문 간 날 / 완구처럼 팔려가던 / 어린 다람쥐 / 높은 빌딩 밑에 바짝 엎드려 / 눈치 살피며 체바퀴 돈다 ..  (다람쥐가 돈다)


  노래를 할 적에 살그마니 웃음이 솟습니다. 웃을 적에 시나브로 노래가 흐릅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가만가만 노래를 할 때면 아이도 어버이도 함께 웃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깔깔 하하 호호 웃는 자리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곳에서 풀이 춤추고 나무가 흔들흔들 푸른 숨결 베풉니다. 사람들이 시원하게 노래하는 곳에서 새가 날고 벌레가 뒷노래를 받칩니다.


  가을바람 시원합니다. 여름바람 따스합니다. 봄바람 곱습니다. 겨울바람 하얗습니다. 가을과 여름과 봄과 겨울마다 다 다른 바람이 불어 우리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보살핍니다.


.. 나도 인간인데 / 깨어지면 소리가 나야 해 / 쾅쾅 푸드득 / 깨어지며 다시 태어나야 해 / 내가 말하니까 ..  (말일)


  구름 노래는 어떤 빛깔일까요. 무지개 노래는 어떤 내음을 실을까요. 미리내 노래에는 어떤 가락이 흐드러질까요. 도랑물 노래는 어떤 빛을 베풀까요.


  나비는 봄에도 깨어나지만, 여름과 가을에도 깨어납니다. 봄에 깨어난 나비는 봄과 여름과 가을을 누립니다. 가을에 깨어난 나비는 봄도 여름도 모르지만, 아름다운 가을빛 신나게 누립니다. 봄 여름 가을 누리는 나비도 즐겁고, 가을만 누리는 나비도 즐겁습니다. 겨울을 맞닥뜨려 추위에 벌벌 떠는 나비도 새삼스레 겨울빛 맞이하며 즐겁습니다.


  마당에서 팔랑거리며 고들빼기 흰꽃에 내려앉는 범나비와 노랑나비와 부전나비와 멋쟁이나비와 팔랑나비와 제비나비를 한참 바라보다가 시집을 읽고, 시집을 읽다가 나비를 바라보니, 어느새 시집 한 권 다 읽어냅니다. 4346.9.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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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다리

 


  어릴 적 배운 옛말 가운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가 있다. 이 옛말을 배우던 어린 날,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살았다. 아마 국민학생이었을 텐데, 국어 수업을 하는 담임교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번쩍 손을 들고는, “선생님, 우리 동네에는 돌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돌다리를 두들기지요?” 하고 여쭈었다. 참말 도시에는 돌로 지은 다리가 없다. 돌다리가 남아날 수 없으리라.


  담임교사는 나한테 꿀밤을 베풀어 준다. 썰렁하게 웃자고 하는 소리를 뜬금없이 터뜨리니 꿀밤을 주셨으리라. 그 뒤, ‘다리’를 보면 ‘돌다리’가 생각나고, 이 나라 어디에서 돌다리를 구경할 수 있는지 찾아보곤 한다. 그러나, 막상 돌다리는 거의 못 본다. 나무를 가로질러 건너도록 하는 나무다리는 곧잘 보지만, 또 징검다리도 드물게 보지만, 돌다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성수다리 무너진 적 있다. 서울에서 무슨 백화점 무너진 적 있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일들이 쉽게 일어나곤 한다. 그러고 보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아닌 ‘시멘트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로 고쳐서 얘기해야 할 오늘날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나라 어디에 돌다리가 있단 말인가.


  고흥 해창 들판을 자전거로 한참 헤매며 달리는 동안 ‘시멘트다리’를 곳곳에서 본다. 1960년대에 뻘밭을 메꿔 들판으로 바꾼 이곳에 있는 ‘시멘트다리’라면 1960년대에 놓은 다리일까? 뼈대도 몸통도 난간도 모두 시멘트로 이루어진 해창만 ‘시멘트다리’는 햇볕과 빗물에 삭아 바스라진다. 이 시멘트다리는 머잖아 무너질 듯하다. 자전거로 해창 들판 시멘트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 시멘트다리야말로, 건널 적마다 잘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지 않을까. 아니, 자칫 이 시멘트다리 두들겼다가 와르르 무너져 오도 가도 못하지 않을까. 살몃살몃 아무 일 없는 듯이 조용히 지나다녀야 하지 않을까.


  돌을 쌓아 놓는 다리는 백 해 이백 해뿐 아니라 천 해까지 갈 수 있다고도 들었다. 그러면 시멘트로 놓는 다리는 몇 해쯤 갈 수 있을까. 오늘날 이 나라 곳곳에 쇠붙이와 시멘트를 써서 놓은 다리는 앞으로 몇 해쯤 버틸 수 있을까. 백 해가 지나도 시멘트다리는 튼튼할까? 이백 해가 지나도 시멘트다리는 멀쩡할까? 설마 백 해 되는 해마다 옛 다리를 허물고 새 다리를 놓아야 하지는 않겠지? 4346.9.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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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만화, ‘학습’문학

 


  한국에만 남달리 있는 갈래로 ‘학습만화’가 있다. 겉보기로는 ‘만화’처럼 보이지만 만화가 아닌 ‘학습 교재’로 만드는 책이다. 아이들한테 한자·시사·역사·과학·문학 따위를 가르치는 보조 교재쯤으로 만드는 책이다. 오늘날 한국 아이들은 ‘만화책’이 아닌 ‘학습만화’를 만난다.


  예전 아이들은 ‘학습만화’를 읽지 않았다. 예전에는 학습 교재로 만화책 만드는 일조차 드물기도 했지만, 학습만화가 얼마나 재미없는가를 아이들 스스로 잘 느끼기도 했고, 예전 아이들은 ‘만화책’을 볼 뿐이었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면, 예전 아이들이 읽은 만화책이든 오늘날 아이들이 읽는 학습만화이든, 모두 어른이 그린다. 예전에 만화를 그린 어른은 ‘이야기 있는 만화’를 그려 낱권 만화책을 만든 뒤 아이들한테 베풀었다. 오늘날 만화를 그리는 어른은 ‘학습 보조 교재’로 쓰도록 학습만화를 만든 다음 아이들한테 ‘공부를 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예전 아이들은 스스로 즐겁게 놀면서 스스로 신나게 ‘이야기밭에 풍덩 빠지’려고 만화책을 읽었다.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도 아니고 이야기도 아닌, 오직 ‘대학입시 앞둔 예비 수험생이 된 몸’으로 학습만화를 받아들인다.


  예전에는 만화가 어른이 참 많았다. 만화잡지도 많았고, 만화작품도 많았다. 이웃 일본하고 견줄 수 없었으나, 지구별에서 일본을 빼고 이처럼 ‘만화가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해서 내놓는 낱권책’이 많은 나라는 없었다. 비록 때때로 일본만화 슬쩍 베껴서 내놓는 어른들 있었지만, 《주먹대장》이라든지 《아기공룡 둘리》라든지 《요정 핑크》라든지 《달려라 하니》처럼, 만화를 그리는 어른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한껏 뽐냈다. 《장길산》이나 《임꺽정》처럼 문학에 새 옷을 입혀 만화로 선보일 수 있는 빛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인돌》이나 《번데기 야구단》이나 《포장마차》나 《간판스타》처럼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을 만화로 살가이 들려주는 꿈자락을 밝히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왜 만화다운 만화를 그리려는 어른은 부쩍 줄면서, 학습만화만 이토록 판칠까. 오늘날 한국 만화잡지에는 왜 ‘한국 어린이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도록 ‘일본 만화결 흉내낸’ 작품만 그득할까.


  아이들이 골목이나 고샅에서 놀지 않은 뒤부터, 아니 아이들이 골목이나 고샅을 자동차한테 모조리 빼앗긴 뒤부터, 그러니까 아이들 놀이터인 골목이나 고샅에 어른들이 자가용을 가득 처박을 무렵부터, 이 나라에서 만화다운 만화도 나란히 사라졌다고 느낀다. 문학은 문학일 뿐이지 ‘학습문학’이란 없다. 그렇지만,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학입시만 생각하도록 내몬다. 대학입시에서 시험문제 잘 풀기를 바라며 ‘학습문학’을 읽힌다. 문학을 이리 자르고 저리 뜯으면서 주제와 소재를 분석하라고 들볶으며, 비유법이니 대유법이니 하고 외우도록 내몬다.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쓰도록 이끌지 않고, 고전문법이니 현대문법이니 하면서 자질구레한 지식조각만 머릿속에 쑤셔넣는다.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문학’도 ‘말’도 가르치지 않는다.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대학입시’만 시킨다. 이 나라 아이들은 ‘삶’도 ‘놀이’도 빼앗긴 채, ‘만화책’조차 손에 쥐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어른들더러 소설이나 시를 읽지 못하게 가로막고는, ‘학습소설’이나 ‘학습시’를 읽으라고 한다면, 즐겁겠는가? 어른들은 ‘학습-’이라는 이름표 붙은 책은 만들지도 말고 읽히지도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학습-’이라는 이름표 붙은 책이 아닌 ‘참다운 책’을 만나야 한다. 4346.9.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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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2 17:09   좋아요 0 | URL
오오...'학습소설'이나 '학습 시'를 읽으라고 한다면... @.@
만화,는 스스로 읽고 즐기는 이야기인데요...

파란놀 2013-09-12 17:49   좋아요 0 | URL
이 나라 학습만화 시장이 너무 커지면서
오히려 '만화 문화'가 모조리 죽는구나
싶기도 해요.

청소년을 수험생으로 여겨
'청소년 대상 간추린 토지'라든지
'다이제스트 문학' 같은 것들은 모두...
누가 읽으라고 하는 책인지
종잡을 수 없어요...
 

자전거쪽지 2013.9.10.
 : 나비 주검

 


- 아주 오랜만에 수레와 샛자전거 모두 뗀 홀가분한 자전거를 달린다. 옆지기가 미국 람타학교에서 돌아왔으니 아이들 안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셈이지. 도서관에 들러 청소를 한다. 며칠 앞서 비가 내렸기에, 비가 새는 곳에 빗물이 고였다. 이 빗물을 밀걸레로 문지르면서 골마루를 닦는다. 비질과 밀걸레질을 마치고는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부친다.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청룡마을 쪽 접어드는 언덕길을 달린다. 언덕길 한쪽에 석류나무밭 있다. 누가 따로 심어서 돌볼 텐데, 찻길을 따라 두 줄로 석류나무가 자란다. 붉게 익는 알이 소담스럽다.

 

- 홀로 자전거를 달리니 무척 가벼운 한편, 자전거 발판 밟는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아이들 태우는 발판질에 익숙하다 보니, 혼자 타는 자전거 발판질이 갑자기 잘 안 된다. 자전거가 자꾸 흔들린다. 미후마을 장촌마을 지나 신촌마을 언저리 닿기까지 곰곰이 생각한다. 자전거 뒤에 수레나 샛자전거 붙일 적에는 발판질을 그만큼 무겁게 하고, 이렇게 혼자 가볍게 자전거 달릴 적에는 발판질도 그만큼 가볍게 해야 한다고 느낀다. 가볍게 밟자, 가볍게, 가볍게.

 

- 신촌마을에서 해창 들판 접어드는 샛길로 들어선다. 안동마을 즈음 해창만 드넓은 들판 쪽 길로 빠진다. 그런데, 한참 달리고 보니 길이 없다. 바닷물 흐르는 데가 나온다. 오던 길을 거슬러 달린다. 이쪽에는 자전거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 테니 알림판 세우지도 않을 테고, 이리로 들어서는 이들은 들판을 일구는 농사꾼 짐차와 경운기뿐일 테니 알림판 없어도 저마다 길을 다 알겠지. 한참 돌고 다시 돌며 빙빙 돈 끝에 남촌마을까지 나온다. 송산마을 어귀까지 온다. 다시 돌고 더 돈 끝에 해창만방조제로 나오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해창만공원 옆을 스친다.

 

- 두 시간 즈음 해창 들판을 헤매고 달리며 생각한다. 이 너른 들판은 모두 뻘밭이었다는데, 얼마나 넓은 뻘밭이 사라진 셈일까. 이 너른 들판을 달리며 풀벌레 노랫소리 거의 못 듣는데, 이 너른 들판에는 얼마나 푸른 숨결이 감돌까. 이 너른 들판에도 나비가 몇 날지만, 마을에서 만나는 나비와 대면 아주 적다. 어떤 소리가 흐르는 들일까. 어떤 내음이 감도는 들인가.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한테 치이고 밟혀 죽은 범나비 한 마리를 본다. 자전거로 옆을 슥 지나쳤다가 한참만에 돌아온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나비 주검을 한둘 아닌 수십씩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풀섶으로 옮기기는 힘들는지 모르나, 언제나 모르는 척 지나칠 수는 없다. 길바닥에 납짝쿵으로 눌러붙은 주검을 어렵게 뗀다. 풀섶에 내려놓는다. 너는 바람이 되고, 너는 빗물이 되고, 너는 햇살이 되고, 너는 꽃이 되어, 이 땅에서 곱게 웃을 수 있기를 빈다.

 

- 집으로 돌아간다. 세 시간 남짓 자전거를 달리니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 옥강리 내초마을 앞에서 노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넷 본다. 이 노란버스는 오취 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포두 쪽으로 돌아나온다. 돌아나오면서 자전거 옆으로 아주 바짝 붙으며 시잉 달린다. 초등학교 아이들 태우는 노란버스인데 얌전히 달려야 하지 않나. 노란버스는 되도록 천천히 달려야 하지 않나. 이 시골마을 아이들은 시잉 달리는 노란버스를 타면서 무얼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을마다 조그맣게 있는 배움터 아닌 면소재지나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먼길을 오가면서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

 

- 흙밭과 자갈밭 한참 달린 자전거는 먼지투성이가 된다. 오랜 나날 나와 함께 어디로든 달리는 자전거가 고맙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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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2 17:27   좋아요 0 | URL
사진들이 너무 좋습니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 죽은 나비를 어렵게 떼어 풀섶에 내려 놓고 나비에게
바람이 되고 빗물이 되고 햇살이 되고 꽃이 되어 이땅에서 곱게 웃을 수 있기를 비신
함께살기님의 마음에 찡해집니다...
아, 길가의 나무에 석류가 빨갛게 열렸네요~^^

파란놀 2013-09-12 17:50   좋아요 0 | URL
이날 사진을 200장쯤 찍었어요.
다른 글 하나를 쓰려고
이 글에는 몇 가지만 뽑았어요.

놀라운 시골마을 가을빛 담은
사진 곧 선보일게요~ ^^
 

시골아이 16. 두 고무신 (2013.9.10.)

 


  아이들이 이불놀이를 한다. 작은아이가 오줌을 쌌기에 말리는 이불 사이로 파고든 두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논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인다. 여섯 살 아이도 세 살 아이도 발놀림이 재다. 작은아이는 하얀 고무신이고, 큰아이는 노란 고무신이다. 발을 가볍게 놀린다. 얇은 고무신 바닥으로 땅바닥을 물씬 느낀다. 풀빛을 닮은 고무신이나 석류빛 닮은 고무신도 있으면 참 예쁘겠다고 생각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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