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면 책이 없다

 


  고속도로가 비록 숲 사이나 멧기슭 따라 다니더라도, 자동차 모는 사람들은 아스팔트 바닥과 쇠붙이 알림판과 다른 자동차 꽁지만 눈이 벌개지도록 쳐다볼 뿐이다. 자동차를 타면 책이 없다. 손으로 종이책을 펼쳐서 보지도 못하고, 전자책을 넘겨 살피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소리로 책을 들을 수도 없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몰며 다른 데에 눈길을 두면 자칫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속도로를 싱싱 달리면서 숲길에서 숲책을 읽는다든지, 가을숲책을 읽는다든지, 봄숲책을 읽는다든지 하지 못한다. 멧기슭 따라 달린다 하더라도 이 멧기슭을 따라 풀책이나 꽃책, 하늘책이나 구름책, 햇살책이나 무지개책, 이런저런 어떠한 책도 읽지 못할 뿐 아니라,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래잔치 어우러지는 이야기책을 읽지 못한다.


  자동차를 멈추고, 자동차에서 내려, 두 다리로 땅을 밟아야 비로소 책이 있다. 두 다리로 땅을 밟으며 들바람 마실 때에 드디어 손에 ‘나무에서 태어난 책’을 손에 쥐면서 아름다운 꿈을 가슴에 담는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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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쓰고 그린 나무 관찰 기록 52편
허예섭.허두영 지음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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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2

 


사랑하면 노래를 불러야지요
―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허예섭·허두영 씀
 궁리 펴냄, 2012.2.10. 15000원

 


  사랑하면 나무가 보입니다. 사랑하면 풀이 보입니다. 사랑하면 하늘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며 들이 보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풀이 보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하늘도 바다도 들도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할 적에 사람을 봅니다. 사랑하는 마음일 적에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숨결인가 슬그머니 깨달으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짝을 만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삶을 일구기에 내 보금자리와 마을에 눈부신 햇살 드리웁니다.


  허예섭, 허두영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궁리,2012)라는 책을 만납니다. 책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냉큼 장만합니다. 참말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과 사진을 여미었구나 싶습니다. 참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며 온갖 나무를 만나고 이야기를 엮었구나 싶습니다.


..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천마도처럼 내 책도 오랫동안 썩지 않으면 좋겠다. 또 자일리톨 덕에 향긋한 냄새가 나 사람들이 내 책에 더 끌릴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종이가 없었을 때 생각을 표현하려고 자작나무 껍질에 얼마나 힘들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와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정성을 들여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20쪽)


  나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무마음이 됩니다. 나무를 사진으로 담고 글로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나무내음이 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넋이 되고 어떤 내음이 될까요. 쥐똥나무를 바라보면서 어쩐지 똥내음이 거석하다고 느끼면, 나는 쥐똥과 같은 넋이나 내음이 되겠지요. 그런데, 쥐똥나무는 참말 쥐똥하고 맞물려 쥐똥일까요? 쥐똥하고 맞물리는 쥐똥나무라 하더라도 쥐똥을 거석하게 여겨야 할까요?


.. 자작나무는 사람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  (23쪽)


  동물원에 갇힌 짐승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움직이기도 어렵습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사람들한테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은 몹시 슬프고 아프며 고단합니다. 사람들이 비싼 돈 들여 먹을거리 챙겨 준다 하더라도, 동물원에서 흙바닥 아닌 시멘트바닥만 밟고, 고작 몇 미터 안 되는 좁은 울타리만 맴돌아야 하는데, 이 짐승들이 누는 똥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날밖에 없습니다.


  곧, 동물원에 갇힌 짐승들 모두 ‘처음에는 숲에서 마음껏 뛰고 놀며 살던 아름다운 넋’인 줄 깨닫고 사랑할 수 있다면, 동물원 코끼리가 눈 똥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동물원 코끼리 아닌, 너른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달리는 코끼리가 누는 똥 곁에서 냄새를 다시 맡아 보아요. 같은 냄새가 안 나겠지요. 너른 들판 코끼리가 누는 똥에서는 너른 들판 풀내음이 피어나겠지요.


.. 여러 동물을 구경하는데 우연히 코끼리가 커다란 똥을 싸는 걸 봤다. 냄새도 심해 시각과 후각이 충격을 받아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짜증이 솟구쳤다. 다른 동물을 둘러보다가 울타리에 있는 나무 푯말을 봤는데 그 나무의 이름은 ‘쥐똥나무’였다. 주위에 쥐똥이 있는 것 같아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  (173쪽)


  이야기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는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우러져 글과 사진을 엮은 대목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나무 하나를 놓고 나무도감에 실린 자료나 시집에서 읽은 글월을 지나치게 많이 옮겨서 아쉽습니다. 두 분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적었으면, 두 사람이 ‘나무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느낀 푸른 숨결’을 더 밝혔으면, 그리고 수목원 나무 말고, 들판과 숲과 마을에서 씩씩하고 싱그러이 살아가는 나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살며시 껴안으면서 사진을 찍었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책이 되었을까 싶습니다.


  나무 사진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묻어나는 사진으로 다시 엮을 수 있으면, 또 나무를 제대로 알아볼 만한 사진으로 다시 찍어서 엮을 수 있으면, 또 ‘학술’이나 ‘학문’으로 알아보려는 나무가 아니라, 먼먼 옛날부터 사람과 짐승과 벌레와 새하고 함께 살아온 이웃인 나무인 줄 깨달으며 사랑한다면, 사뭇 다른 이야기로 우리들한테 나무노래 들려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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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키 낮고 몸 작고 힘 여린
가시내들은
아기 낳고 젖 물리고 밥 먹이고
하나 둘 서이 너이
잘도 줄줄이 꿰어 델꼬 다닌다.

 

키 높고 몸 크고 힘 센
사내들은
애 안 낳고 젖 안 물리고 밥 안 먹이고
한 녀석조차
홀로 데불고 다니질 못한다.

 

모든 아이들
어머니가 키우는데
사내들은 아버지 되어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힘 쓰나.

 

150센티 될락 말락 아줌마
자전거 앞뒤에 두 아이 태운다.
150센티 살짝 넘는 아줌마
하나 업고 하나 이끌며 장본다.
햇볕이 아이들 머리를 살살 어루만진다.

 


4346.10.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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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나들이 가는 사진

 


  시골집에 두 아이를 두고 혼자 나들이를 떠나 바깥일을 보아야 하면, 언제나 아이들 모습을 몇 장 찍는다. 이른새벽 아이들이 아직 깊이 잠들었으면 자는 모습을 몇 장 찍고,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아버지를 배웅할 만하면 아이들 노는 모습을 몇 장 찍는다. 고흥을 떠나 어느 도시나 다른 시골로 가서 볼일을 보아야 하면 길이 멀어 하룻밤 밖에서 묵어야 한다. 이동안 나는 내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깃든 아이들 모습을 다시 보고 또 본다. 얘들아, 너희는 시골집에서 어머니하고 즐겁게 뛰노니? 맛난 밥 먹었니? 가을바람 싱그러이 마셨니? 깊은 가을에 마을 텃새인 참새와 딱새가 우리 마당에 찾아와 노래하는 소리 들었니?


  나들이 떠나기 앞서 찍은 아이들 사진에 대고 조곤조곤 말을 건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들은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만큼, 활짝 웃음꽃 피우는 얼굴로 노래하면서 하루를 빛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하나는 먼먼 길과 길과 길과 또 길과 길과 길과 길을 잇는 사랑스러운 징검다리가 된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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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품과 재활용품

 


  새책방만 있는 문화는 1회용품 문화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책 하나를 한 사람만 읽고 더 읽히지 못하도록 책꽂이에 꽁꽁 가두어 모신다면, 이 책은 한낱 1회용품 물건하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새책방 곁에 헌책방이 있으면, 책은 재활용품 문화로 거듭납니다. 내 살림집에 건사한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으면 이 책들은 누군가 다른 사람 손으로 건너갑니다. 가난한 이웃이든 마냥 책이 좋아 새책방도 헌책방도 신나게 마실하는 책님이든, 책이 돌고 돕니다. 다른 책벗이 헌책방에서 장만해서 읽은 책은 또 헌책방으로 나올 수 있고, 이 책 하나 돌고 돌면서 수없이 되읽힙니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바로 책 하나 되읽히도록 이음돌 놓는 책터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도서관은 책 두는 자리를 새로 짓거나 늘리지 못합니다. 책은 날마다 새로 나오는데,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장만하지 못하고, 모두 건사하지 못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뺀 다른 도서관은 꾸준히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 나온 책을 사들이’는 일을 하고야 맙니다. 도서관 곁에 헌책방이 없다면, 이 나라 도서관에서 버릴 수밖에 없는 슬프고 안타까운 책이 모두 종이쓰레기가 됩니다.


  꾸준하게 많이 팔리는 책이라면 몇 권쯤 종이쓰레기 되어도 다시 찍어 다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줄거리와 속살이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미처 사람들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진 책은 몇 권이라도 종이쓰레기가 되면 자칫 두 번 다시 만날 길 없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100만 권 팔리는 책만 아름답지 않습니다. 1000권 겨우 팔린 책도, 100권 가까스로 팔린 책도, 10권 힘겹게 팔린 책도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읽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처음 펴낸 책은 빚을 지고 혼잣돈으로 펴냈는데 몇 해에 걸쳐 고작 100권 남짓 팔렸다고 해요. 소로우 님은 이녁 삶을 책으로 써서 내놓고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 빚을 갚느라 여러 해 고되게 일해야 했다고 해요. 이 책들을 도서관에서 버린다면, 이 책들을 받아줄 헌책방이 없다면, 아마 소로우 님 책은 앞으로도 제대로 빛을 못 받을 수 있었겠지요.


  삶은 1회용품이 아닙니다. 1회용품은 모두 쓰레기로 바뀝니다. 부엌칼도 도마도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1회용품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다시 쓰고 또 쓰며 오래 쓰는 재활용품입니다.


  재활용품 파는 가게에서 사는 물건이 재활용품이 아니라, 우리가 꾸준히 곁에 두며 쓰는 물건이 모두 재활용품입니다. 바지 한 벌 열 해째 잘 건사해서 입는다면, 나는 바지 한 벌을 열 해째 재활용품으로 즐기는 셈입니다. 자전거 한 대 열 해째 잘 돌보며 탄다면, 나는 자전거를 탈 적마다 재활용을 하는 셈입니다.


  돌고 돌 때에 돈이듯이, 돌고 돌 때에 책입니다. 여러 사람이 골고루 누릴 때에 아름다운 돈이 되듯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읽으며 스스로 이녁 삶을 살찌우는 징검돌로 삼을 적에 아름다운 책이 됩니다. 큰책방과 작은책방, 인터넷책방과 동네책방, 여기에 새책방과 도서관과 헌책방이 고루고루 골골샅샅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해야 책빛이 환하게 드리울 수 있습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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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1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새책방 옆에 헌책방이 있고, 더구나
도서관 옆에 헌책방이 있어야 함을,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으니
더욱 절감이 드네요.
저도 즐겁고 살뜰하게 읽은 책들을 꼭 소장할 책이 아니라면
부지런히 헌책방에 내놓으려 합니다~^^

파란놀 2013-10-16 14:57   좋아요 0 | URL
모두들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책빛도 삶빛도 환하게 드리운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