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03) -의 : 일식 삼찬의 아침

 

어김없이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구보를 하고 일식 삼찬의 아침을 스테인레스 식판에 받아먹었다
《김별아-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2001) 43쪽

 

  ‘구보(驅步)’는 ‘달리기’로 바로잡습니다. 군대에서 으레 쓰는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입니다. 군대에서 아직까지 이런 말 쓴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알맞게 바로잡아야지 싶습니다. ‘일식 삼찬(一食 三饌)’은 국어사전에 없는 낱말인데, ‘일식’은 “한 끼”를 가리킵니다. 이런 말도 군대에서 쓸는지 모르나, “일식 삼찬”은 “세 가지 반찬”으로 손보면 됩니다.

 

 일식 삼찬의 아침
→ 세 가지 반찬 아침
→ 반찬 세 가지 올린 아침
→ 반찬은 딱 셋뿐인 아침
→ 반찬은 달랑 셋인 아침
 …

 

  군대에서 ‘일식 삼찬’이라 하더라도 네 가지 반찬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단출하고 수수하게 차리는 밥을 가리킨다고 여길 수 있어요. 단출한 아침밥일 적에는 “단출한 아침”이라 하면 되고, 수수한 아침밥이라면 “수수한 아침”이라 하면 됩니다. 반찬이 고작 세 가지뿐이라는 대목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면, 여러모로 재미나게 쓸 수 있습니다. ‘고작·기껏·겨우’ 같은 낱말을 넣어 봅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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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세 가지 반찬 아침을 스테인레스 밥판에 받아먹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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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7] 원 투 쓰리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있어요. 나는 이 노래를 1994년인가 1995년에 처음 들었어요. 대학생들이 부르는 민중노래인데, 어느새 이 노래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도 나옵니다. 어른들 부르던 노래에서는 “동지들이 있잖아요”가 아이들 부르는 노래에서는 “친구들이 있잖아요”로 바뀝니다. 그런데, “전진! 전진하자!”라 흐르는 대목을 “원! 투! 쓰리!”로 바꾸었어요. “가자!” 하고 말할 이야기를 “전진!”이라 말하니 아쉬웠는데, 아이들한테 이 노래를 노랫말 바꾸어 들려주는 어른들은 “하나! 둘! 셋!”이 아닌 엉뚱한 영어를 외칩니다. 아이도 어른도 노래를 영어로 불러야 맛이 나기 때문일까요. 아이도 어른도 노래뿐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건 영어를 써야 그럴듯하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귀가 아프고 눈이 시립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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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할 말 그리 많기에

 


  오랜 나날 벼르던 느낌글 하나를 마무리짓는다. 지난날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철이 없다고 느껴 엄두를 못 냈고, 요 몇 해 사이에는 이것저것 다른 일이 많다고 여겨 뒤로 미룬 느낌글이다. 참 길게 썼구나 하고 생각하며 원고지로 따지니 125장쯤 된다. 이 글을 쓰자며 책상 앞에 앉기까지 퍽 오래 걸렸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니 글이 술술 쏟아진다. 삭히고 재우며 보듬은 이야기가 이렇게 있었구나 하고 스스로 놀란다. 앞으로 또 어떤 책 느낌글을 쓸 적에 이렇게 쓸 수 있으려나. 또 어느 책을 스무 해쯤 삭히거나 재우거나 보듬으면 이런 느낌글 쓸 수 있으려나.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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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그림책 읽다가

 


  아이들과 그림책 읽다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책은 참말 아이들 말투로 쓰거나 옮겨야 할 텐데, 이런 대목에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이 너무 드물어요.


  창작이나 번역을 하는 분들한테 아이가 있어도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 함께 보내며 아이 삶을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하고 스물네 시간 지내며 모든 말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주고받는 동안 차근차근 새말을 가르치면 아이들 그림책에 깃든 말이 ‘어른 읽는 인문책’에 나오는 말처럼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아이와 하루 내내 보낼 적에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배우거나 물려받으며 살아가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니,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어버이 삶이 달라지고 어버이 넋이 거듭나며 어버이 말이 새롭게 빛날 테니까요.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읽히기 앞서 스스로 거듭 읽고 자꾸 되새기면서 삶과 넋과 사랑을 북돋울 만한 글이 되도록 가다듬어야지 싶습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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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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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3

 


‘책도시’ 만든다는 헛발질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오쓰카 노부카즈 글
 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 2007.11.10.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 앞자락은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처음 출판사 편집부에 들어가서 겪거나 한 일을 조곤조곤 밝혀 적습니다. 책 하나 엮어 이 땅에 내놓는 즐거움과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책 만들었다’ 하는 이야기만 줄줄이 나옵니다. 이녁이 만든 ‘책 목록’만 길게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책은 글쓴이 ‘회고록’입니다. 책이름은 ‘책으로 찾아가는 꿈나라’이지만, 어떤 꿈나라로 나아가려 했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출판이란 원래 수수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편집자는 보이지 않게 시중드는 사람이다. 출판계는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구멍가게에서 다시 출발해도 좋지 않을가 싶다(14쪽).” 같은 이야기나, “세상에는 일류 식당이 아니라도 심도 싶은 논의를 하는 곳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어떤 선배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48쪽).” 같은 이야기라든지, “아니, 편집자는 인류 가운데 천재가 몇 명 있고, 어떤 천재가 몇 번째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 그런 건 본질적인 게 아니잖아.’라는 것이 처음에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며칠간 계속해서 생각하는 중에 어쩌면 편집자란 끊임없이 그렇게 커다란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61쪽)” 같은 이야기는 곰곰이 생각할 만합니다. 수수하고 작은 일에서 책빛이 살아나고, 으리으리한 요리집 아니어도 아름다운 생각 피어나며, 책마을 일꾼이란 언제나 꾸준히 새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책을 천 권이나 만 권쯤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이나 열 권쯤 겨우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안 좋거나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를 살필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흙을 어떻게 다루거나 마주하는가를 살필 노릇이에요. 흙을 엉터리로 망가뜨리면서 농약과 화학비료 쏟아붓고는 ‘소출이 많다’고 해서 이런 분들을 추켜세울 수 없습니다.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많아도 땅이 죽어요. 다시 말하자면, 책을 많이 팔았다 하지만, 책마을과 책밭을 망가뜨리는 길을 걷는다면, 이런 책장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저 이름 알려지고 돈 벌면 그만일까요? 흙을 망가뜨리면서 흙일이라 할 수 없듯, 책밭 어지럽히면서 책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신참 편집부원이 학자와 작가, 그것도 두 대가의 논의에서 미묘한 주름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래서야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그가 집필을 위해 필요로 하는 책(대부분 서양책)을 가능한 한 빨리 입수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  (37, 58쪽)


  얼마 앞서부터 이 나라 도시들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걸려 애씁니다. 여기도 책도시요 저기도 책도시입니다. 그런데, 이들 책도시 가운데 책방이 제대로 있는 데가 드뭅니다. 책도시라면, 사람들이 책을 즐겁고 넉넉히 만날 수 있도록 책방이 마을마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서관은 책을 어디에서 사나요. 출판사마다 하나하나 찾아다니거나 전화를 해서 한 권씩 사나요. 학교에서는 책을 어떻게 갖추나요. 학교도서관지기가 출판사를 하나하나 알아보거나 전화로 주문해서 한 권씩 갖추나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고, 책을 파는 책방이 있으며,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과 다 읽은 책과 반품을 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책을 내보낼 적에 이 책들 받아들일 헌책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요.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이 모두가 골고루 있어야 하고, 저마다 즐겁게 살림 꾸릴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도시라 하면서 이 여러 이음고리를 알차게 얼싸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책도시라 할 만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사 건물 꽤 많지만, 막상 책방이 제대로 없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지낼 만한 터전이 없습니다. 파주 책도시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을까요. 출판사마다 다 다른 책을 내는데, 다 다른 빛깔로 나아가는 전문도서관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요.


.. 첫 번째인 6월의 여행에서 나는 부피가 크지 않은 촘스키 문헌 몇 권만 가지고 도쿄를 뒤로 했고, 때로는 사마르칸트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또 어떤 때는 티엔샨 산맥 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촘스키를 읽는 신선한 체험을 했다 … “하지만 편집자야 뭐 결국 패재바 아닌가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분명히 편집자였다가 소설가가 되거나 학자가 되는 예가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편집자의 일은 작가나 연구자의 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  (192, 218쪽)


  구태여 책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치고 ‘사람들이 책을 즐겁게 널리 읽거나 나누는 곳’은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워낙 책하고 등지며 살아가니 어쩔 수 없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거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은 하나입니다. 책도시 이름표 붙이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시장과 공무원과 교사부터 책을 읽으면 돼요. 책도시 행사를 하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그저 조용히, 시장이든 군수이든 공무원이든 교사이든 정치꾼이든, 모두들 책을 사서 읽는 데에 돈과 품을 들이면 돼요.


  먼저 책을 읽어야 독서토론회를 하든 책읽기모임을 합니다. 먼저 책을 읽어서 집집마다 서재를 갖추어야 작가초대이든 작가강연이든 할 밑틀이 생깁니다. 이름난 작가이든 이름 덜 난 작가이든, 이들이 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를 불러야지요. 이런 행사 저런 잔치 크게 벌인대서 책도시 될 턱이 없습니다.


.. 그 후 30년쯤 지나 21세기로 접어든 무렵 오노 씨 부부와 함께 신슈로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예전에 오사카에서 오노 선생님께 호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어떻게든 편집자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지금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런 실례를 면전에 대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역시 저도 그땐 젊었나 보군요.”라고 오노 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브랜드’나 ‘간판’은 단순히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재생산해야 비로소 브랜드나 간판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  (446, 447쪽)


  450쪽 가까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읽으며 스물∼서른 쪽 즈음에서만 ‘책 만드는 넋과 땀방울’ 이야기를 읽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회고록을 옮겼기에 이러한 모양새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회고록까지 꼭 옮겨야 했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책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었지’ 하고 떠벌이면 옆에 있는 사람은 무척 따분합니다. 책읽기는 책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뼈를 묻은 사람 이야기라면 ‘난 이 책도 만들고 저 작가도 만났지’ 하고 읊기만 하면 곁에 있는 사람은 하품만 납니다. 책삶 아닌 책목록으로 뭘 어쩌라고요.


  온삶 걸쳐 엮은 책 가운데 꼭 한 가지 이야기만 들려주어도 됩니다. 책 하나에 바친 땀방울을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책도시 되고 싶다면? 이것저것 안 해도 돼요. 책도시 이름을 걸려 하는 곳에서 태어나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을 빚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아끼고 돌볼 수 있으면 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시장이나 군수 스스로 읽은 아름다운 책 하나를 널리 나누면서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책도시입니다. 꿈으로 여는 책나라입니다.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껍데기로도 힘으로도 이룰 수 없는 책나무입니다. 사랑 담은 씨앗 한 톨 심어 두고두고 지켜보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이루는 책나무예요. 책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때에 비로소 책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을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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