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39. 2013.11.24.

 


  너희들 아버지가 신나게 밥을 차려 놓았는데, 따순 김이 다 식고 나서야 밥상으로 오면 이제 밥 안 차려 주겠어! 하고 외친 이튿날 아침, 참말 밥을 안 한다. 굶든 흙 파서 먹든 너희들 마음대로 해 보라지! 하면서 슬그머니 고구마를 씻어서 스텐냄비 달군 다음 살짝살짝 얹는다. 달걀 넉 알 함께 얹는다. 밥은 안 지었으나 고구마를 삶았으니 고구마를 먹는다. 구웠다고 할까 익혔다고 할까, 달걀도 한 알씩 밥그릇에 담는다. 뜨거운 자리 호호 불면서 껍질까지 맛나게 먹는다. 다음에도 또 밥 제대로 안 먹으면 밥을 안 차리겠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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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삶을 밝히는 이야기

 


  어떤 모습이든 다 좋다. 이야기를 담으면 어떻게 찍어도 다 좋다.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어떤 모습이든 다 재미없다.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못 쓴다.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이와 같다. 이야기 없이 쓰는 글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이야기 없이 그리는 그림은 그림이라 할 수 없다. 이야기 없이 부르는 노래를 노래라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야기 없는 노래란 마음이 없는 노래이다. 마음이 없이 소리만 지르는 노래는 사람들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마음이 없이 붓질만 하는 그림은 사람들 가슴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마음이 없이 꾸미는 글은 사람들 가슴으로 젖어들지 못한다. 마음이 없이 그럴듯하게 찍는 사진은 사람들 가슴으로 녹아들지 못한다.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란 마음을 담는 사진이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 맺는 아름다운 마음이 바로 이야기가 된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마음이 된다. 이야기는 웃음일 수 있고 눈물일 수 있다. 기쁨과 슬픔이 갈마들 수 있다. 조용하거나 차분한 삶일 수 있고, 시끌벅적하거나 왁자지껄한 삶일 수 있다.


  ‘만듦사진’도 ‘스냅사진’도 다 좋다. 인물사진이건 다큐사진이건 상업사진이건 패션사진이건 다 좋다. 어느 갈래로 나눌 만하든 대수롭지 않다. 이야기를 담으면 모두 좋다. 이야기를 담지 않으면 어느 갈래에 든다 하더라도 하나도 안 좋다.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이름난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안 좋다. 이야기를 못 담는다면, 다시 말하자면 마음이 없이 찍는 사진이라면, 평론가들이 추켜세운다든지 이런저런 상을 받거나 신문·방송에 널리 알려지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이야기 없는 사진이란 재미없으니까. 이야기 없는 사진이란, 마음도 꿈도 사랑도 삶도 아무것도 없어 빈털털이일 뿐이니까.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이녁 삶을 스스로 살찌우고 가꾸며 밝히는 아름다운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하고 누리는 하루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를 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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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맨발로 노는 아이

 


  아버지가 으레 맨발로 살기 때문인지 모르나, 아이들이 맨발로 놀기를 무척 즐긴다. 집에서뿐 아니라 마당에서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으레 맨발이 된다. 도서관에서도 골마루 바닥을 맨발로 달린다. 고흥으로 살림 옮긴 첫 해에 서재도서관 마룻바닥을 닦느라 몹시 바빴다. 큰아이는 으레 맨발로 달리고, 작은아이는 맨손과 맨발 되어 척척 기어다니니, 신나게 바닥 물걸레질을 하면서 아이들 손발이 덜 새까매지도록 애썼다.


  집에서도 마룻바닥이나 방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느라 바쁘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어느새 맨발이 되어 마당에서 놀다가 그대로 집에 들어온다. 마루며 방에 흙먼지를 잔뜩 이끌고 들어온다. 쓸고 닦아도 뒤돌아보면 다시 흙먼지투성이 된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 좀 살려 주라’ 하는 마음이랄까. 곰곰이 돌아보면, 내 어릴 적에 나는 참 개구쟁이처럼 놀았다. 온몸이 모래투성이 흙투성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바깥에서 흙모래 제대로 안 털고 들어왔다가 꾸중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문 앞에 서서 흙모래 한참 털곤 하는데, 그래도 집안으로 흙모래를 잔뜩 데리고 들어온다.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나중에 크고 더 커서 저희 아이를 낳을 무렵이 되어야 맨발로 놀든 어찌 놀든 온몸에 흙모래 잔뜩 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줄 느끼거나 깨닫겠지.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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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7. 겨울 들빛 누리기 2013.11.23.

 


  사람들은,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겨울 빈들’이 어떤 빛인지 모른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고 볼 일이 없다. 요새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겨울 빈들 빛깔을 느끼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기 일쑤이다. 옛날 같으면 가을걷이 마친 논을 바지런히 갈아서 보리를 심느라 ‘겨울 빈들’ 빛깔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요새는 시골사람도 먹고살 만하니까 겨울 빈들을 그대로 놀린다 할 수 있다. 아니, 이제 시골에는 늙은 할매와 할배만 남으니 마늘심기조차 하기 벅차 그대로 빈들로 둔다고 할 만하다.


  우리 집 논은 아니지만 겨울 빈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문만 열면 들판이니까. 가을걷이가 끝나고 꽁댕이만 남은 논배미에 새잎 푸릇푸릇 돋는다. 누렇게 바랜 볏꽁댕이 사이로 푸른 잎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풀이란 이렇게 대단한 숨결이요 목숨인 줄 다시 깨닫는다. 어쩌면, 이대로 이 볏포기는 쑥쑥 자라지 않을까. 겨울 빈들은 누렇기만 하지 않다. 겨우내 더 자라지는 않지만, 누렇게 시든 볏포기 사이로 푸릇푸릇 올라온 앙증맞은 새잎 푸른 빛이 올망졸망 넘실거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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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호미로 콕콕

 


  누나하고 마당에서 흙놀이를 할 적에 호미를 으레 누나가 먼저 집어들기에 호미를 못 잡아 괭이를 잡는 산들보라가 조용히 혼자 마당으로 내려오더니 호미를 쥐고 논다. 누나가 호미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아 무척 서운했는가 보다. 그런데 보라야, 호미로 흙을 쪼아야지 왜 널판을 쪼니. 널판 아프겠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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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11-26 11:20   좋아요 0 | URL
호미질이 아니라 못질 하는 듯해요ㅎ

파란놀 2013-11-26 12:44   좋아요 0 | URL
거의 못질이라 할 만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