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일상 창비시선 294
백무산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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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66

 


삶은 아름답습니다
― 거대한 일상
 백무산 글
 창비 펴냄, 2008.10.10.

 


  아이들을 샛자전거와 수레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니면, 이웃마을 할매들이 모두들 ‘아이고 좋겠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렇게 다니니 얼마나 즐겁겠느냐 하고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자전거를 이끌면서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칩니다. 딱히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땀으로 젖은 옷을 빨래합니다. 아이들한테 저녁을 차려 먹입니다. 등허리를 펴려고 살짝 자리에 눕습니다. 드러누워서 아까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자전거 나들이는 참말 좋을까요.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자전거로 나들이를 다닐 수 있으면 참으로 즐거울까요.


.. 갯벌은 둥글다 / 모든 어미의 둥근 젖가슴 / 생명의 수프다 ..  (새만금 사각 바퀴)


  어버이와 자전거 나들이를 다니는 아이는 퍽 드뭅니다. 예전에도 요즈음에도 퍽 드뭅니다. 아이를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는 어버이는 퍽 많습니다. 예전에는 자동차가 적었으니, 이렇게 다니기 힘들었다 할 테지만, 이제 웬만한 집마다 자가용 한 대쯤은 거느리는 만큼,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웬만한 여느 집에서는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자가용이 적던 지난날 사람들은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고 좋겠네’ 하고 이야기했을까요. 자가용이 참 널리 퍼진 오늘날 사람들은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아이고 좋아라’ 하고 이야기할까요.


.. 마음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비구니는 /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결한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 ..  (기대와 기댈 곳)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빌라나 연립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오늘날에는 물을 길어다 쓰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느 집에서건 전기와 가스를 씁니다. 전화도 인터넷도 잘 들어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에 살아서 좋아요’ 하고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요. 아파트에서 지내는 삶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요.


  물질문명을 실컷 누릴 수 있어 즐거운 삶일까요. 전기와 전화와 인터넷을 걱정없이 즐길 수 있어 사랑스러운 삶일까요. 가게가 많고 돈으로 못 사는 물건 없다 할 만하니 아름다운 삶일까요.


  학교도 많고 극장도 많습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길고 공항이 많습니다. 대학교는 백 군데도 넘으며, 일자리가 없다 목소리 높아도 이주노동자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는 무엇이 모자랄까요.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무엇이 없을까요. 넘치고 가득한 것들만 많은데, 사람들 얼굴에서 왜 웃음과 노래를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한겨울에 얼음 깨며 빨래하거나 물을 긷는 사람도 없는데, 왜 오늘날 사람들 얼굴은 파리하기만 할까요.


.. 할머니 가신 뒤로 세상의 이야기는 / 사람끼리만 사람의 말로만 떠들고 있습니다 / 세상은 많은 이야기들을 나날이 만들고 / 나날이 많은 이야기의 길을 내고 있지만 / 말이 모자라고 소통이 모자란다 합니다 ..  (사람들끼리만)


  연필이 없어 글을 못 쓰지 않습니다. 종이가 없어 그림을 못 그리지 않습니다. 사진기가 없어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자전거가 없어 자전거를 못 타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못 쓴다면 글을 쓸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못 그린다면 그림을 그릴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못 찍는다면 사진을 찍을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못 탄다면 자전거를 탈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빛이 흐르는 삶입니다. 삶이 아름다운 줄 느낄 적에는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실컷 누립니다. 아름다운 빛이 흐르는 삶을 깨달을 적에는 살림과 사랑과 꿈을 즐겁게 이룹니다.


  학교에서 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스스로 배우고 가르칩니다. 사회에서 베푸는 복지가 아닙니다. 스스로 삶을 살찌우고 북돋웁니다. 정치로 이루는 통일이나 평등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랑을 꽃피우면서 나눕니다.


.. 누구는 파출부를 하면서 극우파이고 / 누구는 농민이면서 친미파이고 / 누구는 부동산으로 돈깨나 벌었고 ..  (견디다)


  백무산 님 시집 《거대한 일상》(창비,2008)을 읽습니다. 한자말로 ‘거대’와 ‘일상’이라고 적었지만, ‘큰 삶’이요 ‘한 삶’입니다. ‘아름다운 하루’이고 ‘사랑스러운 나날’입니다.


  대통령이나 재벌회사 우두머리쯤 되어야 큰 삶이지 않습니다. 대학교수나 이름난 작가쯤 되어야 아름다운 하루이지 않습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될 때에 사랑스러운 나날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어서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가꾸면서 나누는 삶입니다. 마음속에서 샘솟는 빛이 있을 적에 삶이 즐겁습니다. 마음속에서 흐르는 꿈을 꽃피울 적에 환하게 웃습니다.


.. 나는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 내가 계산이 되기 전에는 // 나는 비의 말을 새길 줄 알았습니다 / 내가 측량이 되기 전에는 // 나는 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내가 해석이 되기 전에는 ..  (나도 그들처럼)


  바람과 속삭이면 됩니다. 빗물을 읽으면 됩니다. 별과 노래하면 됩니다. 나무와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햇살을 사랑하고, 꽃송이를 아끼면 됩니다. 아이들 눈빛을 좋아하고, 내 눈빛을 맑게 틔우면 됩니다.


  인문학을 해야 하지 않아요. 역사를 배워야 하지 않아요. 철학을 해야 하지 않아요. 문학을 읽어야 하지 않아요.


  삶이 바로 인문학이요 역사입니다. 삶이 바로 철학이요 문학입니다. 삶에서 태어나는 인문학이고, 삶에서 자라는 역사입니다. 삶에서 샘솟는 철학이고, 삶에서 튼튼히 뿌리를 내리는 문학입니다.


.. 생전에 뵙지 못한 권정생 선생께서 가신 / 안동병원을 찾았지만 / 나는 곧 빈소를 잘못 찾아왔음을 알았습니다 / 고인은 아직 집에 계신 듯, 문상객들의 눈치놀음이 / 데면데면한 것이 민망하여 술자리를 물리고 / 집으로 조문을 갔습니다 / 마을 이름 하나만 달랑 전해 듣고 / 짐작 하나만 믿고 마을에 와서도 집을 묻지 않았습니다 / 집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돛대도 아니 달고)


  시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시는 언제나 우리 가슴에 있습니다. 시는 머나먼 별나라에서 똑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는 책이나 강단에 있지 않습니다. 시는 학자나 평론가 손끝에 있지 않습니다. 시는 문학상이나 문학잡지에 있지 않습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 눈길에서 태어나는 시 한 줄입니다. 아이와 함께 들마실을 하다가 들나물을 뜯는 어버이 손길에서 태어나는 시 두 줄입니다. 밥을 짓고 옷을 깁는 어른들 하루에서 태어나는 시 석 줄입니다.


  문학을 배우려고 하면 문학은 배우리라 생각합니다. 시를 배우려고 하면 시는 배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삶을 누리지 않으면, 삶이 없는 문학만 말해요. 삶을 가꾸지 않으면, 삶과 동떨어진 시만 써요. 삶을 지으면서 문학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어요. 삶을 일구면서 시를 사랑스레 쓸 수 있어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누리면서 나누는 문학이고 시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눈빛으로 노래하면서 즐기는 문학이고 시입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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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7] 댕이꿀

 


  고흥사람은 굵고 투박하게 생긴 껍데기가 그대로 있는 굴을 불에 구워서 먹곤 합니다. 바닷가에서 줍거나 따서 구워 먹기도 하고, 읍내에서 그물주머니에 담긴 ‘댕이꿀’을 장만해서 구워 먹습니다. 껍질이 그대로 있는 굴이니 ‘껍질굴’인 셈일까요. 다른 고장에서는 ‘각굴’이라고들 말하지만, 고흥에서는 ‘댕이꿀’이라고 합니다. ‘굴’이라고도 않고 ‘꿀’이라 합니다. 바닷가에서나 읍내에서 “굴 있어요?” 하고 여쭈면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서울말로는 벌이 꽃을 찾아다니며 모은 달콤한 물을 ‘꿀’이라 할 텐데, 이곳에서는 벌꿀은 ‘벌꿀’이고, 댕이꿀은 ‘댕이꿀’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 가운데 한국말사전 들추면서 말을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교나 교과서나 신문이나 방송으로 말을 배우는 사람도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쓰는 말을 고이 물려받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도 고이 물려주겠지요. 비록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시골에서 안 살고 도시로 나가지만,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 입에서 입으로, 또 시골로 들어와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댕이꿀’이라는 이름은 조물조물 이어가리라 느낍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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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27. 사진으로 웃는다

 


  날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 하고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볕을 바라봅니다. 아침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동이 트는 볕살이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기운을 느낍니다. 기지개를 켜는 아이들이 하품을 길게 하고는 “잘 잤어요?” 하고 건네는 인사를 듣습니다.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고 머리를 빗깁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재미나게 놉니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놀고 마루에서도 놉니다. 마당에서도 놀고 마을길에서도 놉니다. 이렇게 놀라거나 저렇게 놀라고 이끌지 않습니다. 이런 놀잇감이나 저런 장난감을 건네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잇감입니다. 아이들로서는 언제나 놀이터를 누립니다.


  사진을 찍는 어른은 무엇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까요. 그럴듯하게 보이는 곳에 가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찍어야 하나요. 대단하다 싶은 곳에 가서 대단하다 싶은 사진을 찍어야 하나요.


  사진 작품을 얻으려면 놀라운 사진장비를 갖추어야 할는지요. 사진 예술을 하자면 엄청나게 사진 공부를 해야 할는지요.


  사진을 배우려고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이 땅에 내 삶을 더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이웃과 한결 깊고 넓게 사귈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대학교에 가거나 사진강좌를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내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가꾸면서 이 땅 곳곳 두루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이론을 배우면 이론에 맞추는 사진을 찍습니다. 이론을 익히면 이론에 따라 사진을 읽습니다. 삶을 배우면 삶에 맞추어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익히면 삶에 따라 사진을 읽습니다.


  더 나은 사진은 없습니다. 덜 떨어지는 사진은 없습니다. 더 나은 삶이나 덜 떨어지는 삶은 없습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면서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빛을 헤아리면서 즐기는 사진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예쁘게 웃고 싶어서, 시골빛 묻어나는 사진을 한 장 얻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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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문학과지성 시인선 398
이경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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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45

 


시와 한철
―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이경임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1.8.25.

 


  겨울에는 여름보다 바람이 더 자주 분다고 느낍니다. 겨울에 부는 바람은 날씨처럼 더 차갑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겨울에도 아침에 동이 트고 열 시나 열한 시 즈음 되면 퍽 포근합니다. 이무렵에는 바람도 아주 고요합니다. 겨울철 낮 두 시나 세 시 무렵은 제법 따스합니다. 그동안 낮 두 시 즈음 자전거마실을 하곤 했는데, 이 즈음부터 찬찬히 바람이 세게 붑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이 잔잔한 날은 바람이 잔잔한 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늘과 들을 바라봅니다. 때에 따라 바람결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살핍니다. 겨울에도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지만, 바람이 드세게 불면 그예 견디지 못하고 “아이, 추워.” 하고 나즈막하게 말합니다. 이때에는 두 아이를 모두 수레에 태우고 덮개를 내립니다. 나 혼자 겨울바람 몽땅 받아먹으면서 낑낑거리면서 자전거를 이끕니다.


.. 새가 날아갈 때 당신의 숲이 흔들린다 // 노래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봄이 지나가고 / 벌서듯이 새를 기다리며 여름이 지나가고 ..  (봄, 여름, 가을, 겨울)


  어제 낮 한 시 무렵에 수레 한쪽 튜브를 갈았습니다. 며칠 앞서 새 튜브를 받았습니다. 이제 다시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바람을 살피는데, 두 시에 가까우니 바람이 조금씩 세게 붑니다. 속으로 깨닫습니다. 한겨울에는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나갈 적에 아침 열 시나 열한 시에 나서야겠구나.


.. 버찌가 익었고 떨어졌고 // 버찌가 아파트 진입로 보도블록 위에 / 혈흔처럼 으깨어져 있었고 // 열매를 떨어뜨린 나무에는 / 여전히 푸른 잎사귀들이 넘실거렸다 ..  (비 오는 날)


  온도계로 칠 적에 퍽 춥다고 하는 날이라 하더라도 바람이 안 불거나 적게 불면 자전거를 탈 만합니다. 온도계로는 그리 안 춥다 하는 날이라지만 바람이 이렁저렁 불거나 드세게 불면 자전거를 타기 퍽 힘듭니다.


  여름에는 어떠했을까요. 여름에도 바람이 드세게 불면 자전거를 달리기 힘들기는 똑같아요. 그래도, 여름에는 자전거를 달리며 흐르는 땀을 바람이 씻어 주고 달래 줍니다. 겨울에도 자전거를 달리며 땀이 흐르기는 하지만, 겨울바람은 땀을 씻어 준다기보다 온몸을 꽁꽁 얼립니다. 앞몸은 겨울바람에 얼고, 뒷몸은 땀으로 젖어요.


  이 추운 날에 무슨 자전거를 타느냐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똑같이, 그 더운 여름에 무슨 자전거를 타느냐 할 수 있어요. 이래저래 이 나라 참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자전거를 안 탑니다. 그러면, 봄과 가을에는 자전거를 탈까요?


  여름에는 더워서 자전거를 안 타고 겨울에는 추워서 자전거를 안 타는 사람들은, 봄과 가을에는 이 철대로 바쁘다면서 자전거를 안 타요. 시골에서는 시골일이 바쁜 봄과 가을이니 못 탄다 하고, 도시에서는 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듯 다녀야 하는 회사에 맞추느라 자전거를 못 탄다 해요.


.. 개미들은 오징어 다리 한 가닥을 만나면 달려든다 / 어떤 개미는 오징어 다리가 무엇인지 모른 채 /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 이 개미들은 대합실 바닥에 떨어진 / 오징어 다리 한 가닥을 끌고 가고 있다 ..  (냄새)


  우리는 언제 자전거를 탈 만할까요. 예순 살 넘어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해야 자전거를 탈 만할까요. 예순 살 넘을 적까지 자가용에 길든 몸일 텐데, 하루아침에 자가용하고 헤어지고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요.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자전거를 탈 만할까요. 그러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새벽부터 밤까지 입시지옥에 허덕이면서 대입시험만 공부해야 하니 자전거는 휙 내던지지 않나요.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아슬아슬하니 자전거를 타기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시골에서는 길섶이 그리 넓지 않고 자동차가 너무 빨리 내달리니 아슬아슬하여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참말,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 자전거를 탈까요. 참말,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요.


.. 나무는 바람이 불 때 온몸으로 흔들린다 / 나무는 관념이 아니다 // 나는 바람이 불 때 온몸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 나는 실천이 아니다 ..  (그 나무 앞에서)


  이경임 님 시집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문학과지성사,2011)를 읽습니다. 겨울철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가는 이야기를 쓴 시일까요. 겨울날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서면서 누린 숲빛과 숲내음과 숲노래를 읊는 시일까요.


.. 이 어둠은 십만 년에서 천만 년 동안 기다리며 / 더 깊은 빛이 되고 싶어 한다 / 이 빛은 잔인하다 ..  (충돌)


  숲이 있어 나무가 자랍니다. 나무가 자라 숲이 됩니다. 숲과 나무가 우거지면서 종이와 연필을 얻습니다. 종이와 연필을 얻은 우리들은 글을 쓰고 책을 엮습니다. 글과 책을 선보이는 우리들은 새롭게 이야기를 짓습니다.


  그리고, 어떤 삶을 함께 짓는가요. 어떤 사랑을 함께 일구는가요. 어떤 꿈을 함께 꾸는가요.


  메뚜기는 한철입니다. 사람도 한철입니다. 개구리는 한철입니다. 경제개발과 문화예술도 한철입니다. 삶은 한철입니다. 시와 문학도 한철입니다. 무엇이든 한철입니다. 제때가 있고 제철이 있습니다. 메뚜기는 한철이라 할 적에, 메뚜기한테 제철이 있다는 뜻입니다. 벚꽃도 매화꽃도 제철이 있고, 살구꽃과 복숭아꽃도 제철이 있어요. 제철이 지나면 스스르 집니다. 감꽃도 대추꽃도 제철이 지나면 살며시 저물어요.


  우리들이 누리는 이 삶은 어떤 제철을 맞이할까요. 우리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제철을 빛내는가요. 우리들이 아끼거나 사랑하는 삶은 언제 어떻게 제철이 될까요.


  딱 좋은 철이 찾아와 주지 않습니다. 딱 알맞거나 좋다 하는 철은 스스로 부릅니다. 가장 좋은 철이 언젠가 우리한테 찾아오겠지 하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철이란 누구나 스스로 가꾸고 일구면서 부릅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불러요. 걸레를 빨면서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과 손을 잡고 놀면서 노래를 불러요. 겨울바람 듬뿍 마시고 자전거를 달리면서 노래를 불러요.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사람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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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52. 2014.1.5.

 


  볼에 밥을 한 가득 물고 오물오물 씹는다. 아이고 볼따구 터지겠다. 그런데 이렇게 밥 먹는 모습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니. 네 아버지도 어릴 적에 너와 같은 볼따구로 밥을 먹었을까? 아무렴, 그랬겠지. 네 할아버지도, 네 할아버지를 낳은 할아버지도 모두 이런 볼따구로 어린 나날 예쁘게 누렸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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