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aret Bourke-White: Moments in History (Hardcover)
Margaret Bourke-White / Distributed Art Pub Inc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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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9

 


읽는 눈길, 찍는 손길
― Portrait of myself Margaret Bourke-White
 Margaret Bourke-White 글·사진
 Simon & Schuster, 1963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을 읽어야 합니다. 사진을 읽지 못한 채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인가를 읽을 때에 비로소 어떤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으려면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지 못하면서 사진을 읽지 못합니다. 사진에 깃든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이 누리는 어떤 삶인가를 어떤 눈빛으로 찍었는가를 헤아릴 때에 비로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 어떠한가를 먼저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삶’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읽습니다. 숲에서 풀과 꽃과 나무를 찍을 적에도 풀과 꽃과 나무가 숲에서 어떻게 있는가를 찬찬히 읽습니다. 패션모델을 찍거나 사건·사고를 찍을 적에도 패션모델이 보여주는 옷차림과 사건·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낱낱이 읽습니다. 읽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사람을 찍은 사람 마음과 눈길과 생각과 삶’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읽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과 눈길과 생각과 삶으로 삶을 그리려 했는가’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보도사진을 읽든 다큐사진을 읽든, 초상사진을 읽든 스냅사진을 읽든, 사진기를 쥔 사람이 어떤 자리에 서면서 어떤 넋이었는가를 읽습니다.

 

 

 

 

 

  미국사람 마가렛 버크 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님이 이녁 삶을 돌아보며 적바림한 책 《Portrait of myself Margaret Bourke-White》(Simon & Schuster,196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 자서전을 읽으면, 이녁이 처음 사진을 찍던 이야기부터 한국전쟁 때 한국에 찾아온 이야기, 한국전쟁 뒤에 한국에 다시 찾아온 이야기가 흐릅니다. 세계 사진역사에 이름을 남긴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이라 하는데, 이녁 사진삶에 한국전쟁과 한국 이야기가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녁은 한국전쟁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을까요. 이녁은 한국에 찾아와서 어떤 자리에 서서 한국사람을 바라보았을까요. 이녁 스스로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이녁 곁에 ‘한국 정부 수행원’이 붙은 채 몇 군데만 돌아다녀야 하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은 외국 사진기자로서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외국 사진기자인 만큼 한국 군 간부들 술자리에도 함께하면서 사진을 남깁니다. 싸움터 한복판에도 설 수 있었겠지만, 한국 군대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사진을 남깁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사람을 만나기도 하되, 여느 시골마을이나 여느 골목동네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군 간부도 한국사람이고, 정부 수행원도 한국사람입니다. 시골 흙일꾼도 한국사람이요, 저잣거리 아지매도 한국사람입니다.


  여느 사람은 누구일까요. 수수한 사람은 어떤 삶빛일까요. 한국 사진기자가 지구별 여러 나라로 취재를 하러 갔을 적에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어떤 빛으로 찍을 만할까요. 정부에서 보살피는 사진기자 아닌 홀몸으로 다니는 사진작가일 적에는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어떤 빛으로 찍을까요. 이것은 사진이고 저것은 사진이 아닐까요. 이 사진이 이 나라 사람을 잘 보여주고 저 사진은 이 나라 사람을 잘 안 보여준다고 할 만할까요. 이 사진에 담은 사람들이 바로 ‘그 나라 사람’ 모습이요, 저 사진에 담은 사람들은 ‘그 나라 사람’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똑같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다르게 찍습니다. 똑같은 한 사람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하더라도, 연필을 쥔 사람마다 다르게 씁니다. 밀린 일삯을 받으려고 파업을 하는 노동자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사진을 다르게 찍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둘러싸고 글을 쓰는 사람마다 글빛이 다 다릅니다. 표절과 저작권침해를 둘러싼 일이 터졌을 때, 이 일을 놓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피해자 자리에 서서 생각하거나 말합니다. 누군가는 가해자 자리에 서서 생각하거나 말합니다. 이를테면 일본 정치꾼이나 지식인을 떠올릴 만해요. 일본 정치꾼이나 지식인 가운데에는 툭하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을 추켜세우면서 이웃나라를 깎아내리는 말을 일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저지른 식민지 전쟁을 고개 숙여 뉘우치면서 참과 거짓을 또렷이 밝히려는 일본 학자와 지식인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쓰는 농약을 놓고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골 일손이 없는데다가 풀밭과 벌레를 어찌 하겠느냐며 농약을 쓸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약으로 태워 죽이는 풀이란 모두 우리가 먹는 나물이요, 흙에 농약을 뿌리면 이 농약 기운이 푸성귀와 곡식에 그대로 스며들 뿐 아니라, 농약은 냇물과 샘물에도 스며들어 우리가 마시는 물을 더럽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달려야 더 먼 곳을 더 빠르게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달릴수록 배기가스는 늘어나 바람이 더러워집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동안 공해가 생깁니다.


  제국주의 전쟁 역사를 추켜세우는 자리에 서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일본군 위안부로 아픈 나날을 보내야 한 할머니 자리에 서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ㅈ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ㅎ신문사 기자로 일한다든지, 아무 신문사에도 몸담지 않으며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어떤 이야기를 사진 한 장으로 들려줄까요. 이주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자리에 서는 사람이 바라보는 사진과 회사 간부 자리에 서는 사람이 바라보는 사진은 얼마나 같거나 다르거나 비슷할까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은 미국을 발판으로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이녁 삶과 넋대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이루었습니다. 물레를 앞에 두고 책을 읽는 간디를 찍은 사진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이 인도사람이라면, 파키스탄사람이라면,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계급인 사람이라면, 티벳 여느 사람이라면, 필리핀사람이라면, 한국사람이라면, 브라질이나 볼리비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이라면, 간디라고 하는 사람을 어떤 테두리에서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까요.


  우리들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스탈린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탄광에서 일하는 흑인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한국전쟁 국군이나 토벌대 국군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자리에 서서 사진을 읽는가요. 우리들은 ‘우리가 선 자리’에서 사진을 읽는가요, 아니면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읽는가요. 내 손에 사진기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만지는가요. ‘내 삶과 사랑’을 떠올리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아니면 ‘내가 맞다’라든지 ‘내가 옳다’라든지 ‘내가 참이다’라는 틀을 세우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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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92] 고양이 가방


 

  설을 맞이해 두 아이를 데리고 음성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러 길을 나섭니다. 선물 두 꾸러미와 아이들 옷가지와 여러 가지를 챙긴 커다란 가방을 짊어집니다. 마실길에 아이들 먹일 밥을 챙긴 천가방을 어깨에 낍니다. 큰아이는 저도 가방을 메겠다면서, “아버지, 내 고양이 가방은?” 하고 묻습니다. 큰아이 손이 안 닿는 데에 걸어 놓은 고양이 가방을 내려서 주니, 이 가방에 고양이 인형 하나와 동생 자동차 인형 하나를 넣습니다. 그러고는 씩씩하게 둘러메고 함께 걷습니다. 새빨간 빛깔에 하얀 고양이 얼굴이 큼직하게 붙은 가방을 가리켜 큰아이는 언제나 ‘고양이 가방’이라 말합니다.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가서 기차로 갈아타며 가는 길에 큰아이는 동생과 고양이 놀이를 합니다. 큰아이 가방에 붙은 고양이를 가리키는 상표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큰아이한테 굳이 상표이름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흰얼굴 고양이이니까 그저 고양이 가방일 뿐이거든요. 4347.1.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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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4) -의 : 쥐의 똥

 

쥐의 똥처럼 생긴 열매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먹을 것이 부족한 새들의 먹이가 된단다
《손옥희·최향숙-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청어람미디어,2012) 56쪽


쥐의 똥처럼 생긴
→ 쥐똥처럼 생긴
→ 쥐가 눈 똥처럼 생긴


쥐똥나무가 있습니다. ‘쥐의똥나무’가 아닌 쥐똥나무입니다. 쥐똥이 있습니다. 쥐가 눈 똥은 ‘쥐똥’이라 할 뿐, ‘쥐의 똥’이라 하지 않습니다. 소가 눈 똥은 ‘소똥’입니다. 말이 눈 똥은 ‘말똥’이요, 새가 눈 똥은 ‘새똥’입니다. 사람이 눈 똥을 가리키는 이름을 짓는다면 ‘사람똥’이 돼요.


이밥과 같은 ‘이팝나무’입니다. 동백꽃이 피는 ‘동백나무’입니다. 아니, 동백나무에 피는 꽃이니 ‘동백꽃’이라 해야겠지요. 대나무에는 대잎이 돋고, 잣나무에는 잣방울 달립니다. 새들은 새가 사는 집, 곧 ‘새집’이라 할 둥지나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개가 살아가는 집은 ‘개집’이에요. 고양이한테 집을 마련해 주면 ‘고양이집’ 될 테지요.

 

쥐똥나무 열매는 쥐똥처럼 생깁니다. 쥐똥나무에 맺히는 꽃은 쥐똥꽃입니다. 수수한 이름이요, 투박한 이름입니다. 꾸밈없이 말하고 듣는 이름입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쥐똥처럼 생긴 열매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먹이를 찾기 힘든 새들한테 먹이가 된단다

 

‘부족(不足)한’은 ‘모자란’이나 ‘없는’이나 ‘찾기 힘든’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새들의 먹이가 된단다”는 “새들한테 먹이가 된단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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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생이 생겼어요 - 아기고양이 그림책
오노 요코 글, 이모토 요코 그림, 송해정 옮김 / 지경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9

 


큰아이는 동생을 미워해야 하나?
― 나도 동생이 생겼어요
오노 요코 글
이모토 요코 그림
지경사 펴냄, 1998.8.30.

 

 

오노 요코 님 글과 이모토 요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나도 동생이 생겼어요》(지경사,1998)는 그림이 무척 곱습니다. 그림만 보자면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에 나온 글을 아이한테 읽어 주자니 여러 대목에서 걸립니다. 동생 다섯이 한꺼번에 생긴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몰래 내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나오거든요. 동생 때문에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못 받는다고 여겨, 어디에든 버리려 하고, 숲에서 늑대한테 먹이로 주려 하며, 냇물에 풍덩풍덩 빠지기를 바라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에는 동생들끼리 놀게 하고는 냅다 꽁무니를 빼기까지 해요.

 


이렇게 하다가 형 고양이는 마음이 몹시 무거워 다시 동생 고양이한테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동생 고양이들과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온통 동생 고양이를 미워하고 시샘하며 몰래 따돌리거나 괴롭히려 하는 이야기만 그득합니다.


형 고양이가 동생들 ‘때문에’ 여러모로 아쉽거나 서운하거나 싫은 마음이 들는지 모릅니다. 형 고양이 마음을 잘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동생 고양이들을 ‘내다 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더군다나 자꾸자꾸 되풀이해서 이야기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 “엄마, 나도 안아 줘.” “응석꾸러기 까로야, 이제는 형이 되었으니 어리광은 그만 부려야지.” .. (5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동생이 생기면서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가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하거나 아쉬워 하는 마음을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느 집안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사랑이 다르며, 빛이 다릅니다. 다 다른 만큼 다 다른 이야기가 감돌 만하니, 이렇게 동생을 미워하다가 나중에 이르러 무언가 깨닫는 얼거리로 그림책을 빚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는 참말 동생을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할까요. 사랑을 빼앗긴다고 생각할까요. 어머니한테서 제대로 사랑을 못 받는다고 여길까요. 어머니는 동생을 낳으면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를 안 사랑하거나 덜 사랑할까요.


.. “까로야, 동생들 데리고 산책 좀 하고 오지 않을래?” 엄마가 까로에게 부탁했어요. 동생들은 까로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왔어요 .. (9쪽)


동생이 태어나면 어머니는 큰아이뿐 아니라 작은아이를 안아야 하니, 두 아이를 안느라, 예전에 한 아이만 안던 삶과는 다릅니다. 숫자로 치면, 큰아이는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두 번 안거나 두 시간 안아야 더 깊거나 큰 사랑인가요? 한 번 안거나 한 시간 안으면 더 얕거나 작은 사랑인가요?


큰아이한테 동생이 생기면 어머니는 두 아이를 골고루 안습니다. 동생은 처음에는 아주 갓난쟁이인 만큼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천천히 서고 천천히 걷습니다. 이러다가 큰아이처럼 걷고 달릴 수 있습니다. 이동안 어머니는 동생한테 조금 더 마음을 쓰기 마련인데, 어머니가 큰아이 안아 주는 시간이나 횟수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동생이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를 안는 시간이나 횟수가 늘어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안고 돌보며 아낍니다.

 

 

 

 

 

 

 

.. “자, 형을 꼭 잡아.” 까로는 동생들을 잘 붙잡아 주었어요. ‘동생들이 강물에 빠지면 숨도 못 쉴 거야…….” .. (21쪽)


아이들도 모두 알아요. 어머니는 동생을 안으면서 큰아이를 안는 느낌과 마음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큰아이도 동생을 안거나 돌보면서 어머니가 그동안 저(큰아이)를 안던 느낌과 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책에 빠진 대목을 알 만합니다. 이 그림책 첫머리에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안거나 돌보는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절반 넘게 흐르고서야 비로소 냇물을 건너며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안아요.


큰아이가 느낄 서운함을 보여주려고 잇달아 ‘미워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만, 이런 모습을 그린다 하더라도, 큰아이가 그동안 어머니한테서 얼마나 깊고 크며 넓고 따사롭게 사랑을 받았는가를 돌아볼 만한 이야기와 그림이 깃들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무턱대고 동생들을 미워하거나 못살게 굴려는 마음만 보여주면, 이 그림책을 읽히기 몹시 힘듭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매우 힘듭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직 혼자서 모든 글을 다 읽어내지 못해, 이 그림책을 함께 읽을 적에는 책에 적힌 글을 다 안 읽습니다. 훌렁훌렁 건너뛰거나 바꿔서 읽어 줍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라고만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아이가 듣고 읽으면, 큰아이가 저도 모르게 ‘동생을 이렇게 버릴 수도 있네’ 하고 생각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읽거나 볼 책을 빚는 어른은 아주 깊이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거나 볼 책을 빚을 어른은 두 번 세 번 자꾸자꾸 헤아리면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보고 배웁니다. 아이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사랑을 더욱 따사롭게 그림책에 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꿈과 믿음과 노래를 한결 맑고 환하게 그림책에 싣기를 빕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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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을 읽는 마음

 

 


  내가 아버지 아닌 어머니일 적에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성평등이라는 낱말이 아직 떠도는 만큼, 이 나라와 사회에는 성평등이 없다고 느낍니다. 민주라든지 평화라는 낱말도 아직 떠도니까, 이 나라와 사회에는 민주와 평화 또한 없구나 싶어요.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랑’이라는 낱말을 들추지 않아요. 꿈이 넘실거리는 데에서는 어느 누구도 ‘꿈’이라는 낱말을 애써 꺼내지 않아요. 모두 사랑이고 꿈이니, 이런 낱말이 없어도 사랑스럽게 꿈꿉니다.

 

아버지로서 언제나 두 아이를 데리고 움직입니다. 아주 드물게 곁님이 함께 움직이지만, 곁님은 시골집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20분을 달릴 적에도 멀미를 하고, 멀미에서 깨어나자면 두 시간쯤 걸립니다. 그러니, 설이나 한가위 같은 때에도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 만나러 마실을 못하기 일쑤예요. 그동안 억지로 아픈 몸 움직여 마실길 나섰지만, 길을 떠날 적과 시골집으로 돌아올 적에 몹시 힘든 나머지, 지난해와 올해에는 설과 한가위에 혼자 시골집을 지킵니다.


 

  아픈 사람일 때에 아픈 이웃을 알 수 있을까요.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면 아픈 이웃을 알 수 없을까요. 내 이웃과 동무 가운데 우리 곁님이 ‘아프’고 ‘힘든’ 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주는 분이 얼마 없습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아니라면 더더욱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몸이 아프다는 이웃이나 동무조차 찬찬히 살펴 주지 못합니다. 아버지로서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닐 적마다 사람들 눈빛을 읽습니다. 사람들 눈빛이 매우 거북합니다. 서로서로 거북합니다. 그러나, 굳이 거북하게 느낄 일은 없어요.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왜 어머니 아닌 아버지가 아이들 데리고 걸어서 돌아다니느냐’ 하고 여길 뿐이니까요.


 

  아이들 재우고 나서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허리를 펴는 깊은 밤에 고요히 생각에 젖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일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까요. 너무 힘들어 여느 아버지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는 셈일까요. 기운은 사내가 더 세다고들 하면서, 막상 기운 센 사내는 아이 둘조차 데리고 다니지 못할 만큼 바보스러운 셈일까요. 주먹힘은 사내가 훨씬 세다 하지만, 아이들 아끼고 사랑하는 넋과 숨결과 손길과 눈빛은 아무것도 없는 사내들인 셈일까요.


 

  시외버스에서 기차에서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나는 아무 말을 안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대꾸해 줍니다. “어머니는 집에서 자요.” 아픈 곁님을 돌보지 못하고 두 아이만 데리고 나왔으니, 나로서는 곁님이 시골집에서 제대로 끼니 챙기며 지낼까 생각하는데, 내 둘레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내 마음을 읽고 어깨동무를 할 이웃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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