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쏘다, 활 -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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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이 비싼 책, 값이 싼 책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5] 오이겐 헤리겔, 《마음을 쏘다, 활》

 


- 책이름 : 마음을 쏘다, 활
- 글 : 오이겐 헤리겔
- 옮긴이 : 정창호
- 펴낸곳 : 걷는책 (2012.3.15.)
- 책값 : 12000원

 


  여기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100만 권을 찍었고, 책값이 2012년 4월 1일에 1만 원입니다. 쪽수는 400쪽이요,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널리 추켜세우며 몹시 잘 팔립니다.


  여기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100권을 찍었고, 책값이 2012년 4월 1일에 1만 원입니다. 쪽수는 100쪽이요, 어느 신문도 방송도 잡지도 추켜세운 적 없을 뿐 아니라,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한 적조차 없습니다. 여느 책방에 들어가지 않은 책이니, 이 책을 사는 사람도 없으나 알아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조차 없으니, 이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마저 없습니다.


  두 가지 1만 원짜리 책이 한 자리에 놓입니다. 내 주머니에는 꼭 1만 원이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짜장면 한 그릇에다가 이과두술 한 병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러고 돈이 남아 집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길거리에서 옷 한 벌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빵집에 갈 수 있고, 찻집에 들를 수 있습니다. 또는 은행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귀여운 이웃 아이한테 선물로 줄 수 있습니다. 라면을 산다면 1만 원으로 몇 봉지를 살 만할까요. 과자를 산다면 이 돈으로 몇 봉지를 살 만한가요.


  널리 사랑받고 잘 알려진 1만 원짜리 두툼한 책이 내게 읽기 좋은 책일까요. 아무도 모르고 나 또한 하나도 모르는 똑같이 1만 원짜리 얇은 책이 나한테 읽기 좋은 책일까요. 같은 1만 원을 치른다 할 때에, 두툼하고 잘 알려진 책이 내 마음밭에 깊이 아로새겨질 만할까요. 같은 돈으로 책을 살 때에, 얇고 아무것도 모르는 책이 내 마음자리에 또렷이 돋을새김할 만할까요. 부피가 큰 책이 값싸다 할 만할까요. 부피가 작은 책은 비싸다 할 만할까요.


..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이지만, 계산하고 사고하지 않을 때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 낸다 … 인간 자신이 바로 비요, 바다요, 별이며, 새순이다 … 스승들은 자신이 마치 혼자 있는 듯이 행동한다 ..  (28, 87쪽)


  공장에서 찍어 만든 똑같은 과자가 둘 있습니다. 똑같은 과자 둘인데, 이 과자를 들인 가게 두 곳 값이 다릅니다. 가게가 집 가까이 있으면, 사람들은 으레 값싸게 파는 가게로 가서 삽니다. 누군가는 가게 일꾼 마음씨를 살피며 값이 조금 더 비싸다는 곳에 갈는지 모르지만, 똑같은 과자를 놓고 더 비싼 녀석을 굳이 사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똑같은 책이 두 권 있을 때에도 사람들 마음은 거의 비슷합니다. 100원이라도 더 값싸게 파는 책방으로 가서 책을 장만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산다 할 때에도, 100원이라도 더 눅은 데를 찾습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과자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여느 식품공장에서 화학조미료와 화학성분으로 만든 가공식품이고, 하나는 유기농 곡식으며 빚으면서 화학조미료는 하나도 안 씁니다. 가공식품 과자는 값이 1000원이고, 유기농 과자는 값이 2000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 마음과 눈길은 어느 쪽으로 갈까요. 한결 값싼 쪽으로 마음과 눈길이 갈까요, 내 몸에 좋거나 내 몸을 살리는 쪽으로 마음과 눈길이 갈까요.


  흙을 일구는 일꾼이 비료와 풀약을 쓰는 까닭은, 품을 적게 들이면서 더 많이 거두고 싶으며, 더 때깔 번드르르하게 거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더 잘 사다 먹으니까요. 게다가, 도시사람이 아무리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따진다 하더라도, 막상 가게에 가고 보면 더 값싼 푸성귀나 나물이나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제대로 일군 좋은 먹을거리를 제값 치르며 사다 먹으려는 도시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 어느 선사가 이미 벗어던진 것, 그리고 더 이상 아쉬워하지도 않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할 유혹에 빠지겠는가 … 그때서야 나는 선생님의 오른손이 갑자기 열리고, 시위를 놓으면서 순간적으로 뒤로 움직였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는 덤덤하게 학생들의 실수 섞인 노력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립성이나 독창성 등을 바라지 않고, 그저 참을성 있게 제자가 성장하고 원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양쪽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스승은 윽박지르지 않고, 제자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다 … 제자가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할 것인가는 스승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자마자 제자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도록 한다 ..  (42, 65, 86, 93쪽)


  여기 책이 잔뜩 있습니다. 책을 파는 일꾼은 책을 값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100원짜리와 500원짜리와 1000원짜리와 5000원짜리와 1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책을 사서 읽으려 하는 사람한테 1만 원이 있다면, 이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싼 100원짜리 책으로 100권을 사면 흐뭇할까요. 500원짜리 20권이면 즐거울까요. 1만 원짜리 책을 1권 사면 어딘가 찝찝할까요.


  여기 번역책이 있습니다. 이른바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옮긴 책입니다.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쓴 미국사람은 “큰 숲 작은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이 소설을 연속극으로 만들었을 때에, 이 연속극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일본사람이 붙인 “草原の家”라는 이름을 껍데기만 한글로 바꾸어 “초원의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름이야 어떠하든, 이 소설책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책은 500원이고 어느 책은 5000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을 살피며 책을 살까요, 번역이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가를 살피며 책을 살까요.


  여기 또다른 책이 있습니다. “모비딕”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하나는 1000원이고 다른 하나는 3000원입니다. 1000원짜리는 간추린 판이고, 3000원짜리는 모두 옮긴 판입니다. 옆에 2000원짜리도 있는데, 간추렸는지 모두 옮겼는지 안 밝혔으나 두께는 모두 옮긴 판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을 따져 책을 살까요, 간추린 판인가 모두 옮긴 판인가를 곰곰이 따지며 책을 살까요.


..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 당신은 발사 자체에 온 정신을 쏟지 않고, 미리부터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 왜 스승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작업을 경험 있는 제자에게 맡기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먹을 갈면 상상력이 고양되고, 꽃다발 끈을 잘라 내던지는 대신에 직접 조심스럽게 풀면 조형의 능력이 향상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  (67, 70, 88쪽)


  나와 옆지기가 책을 살펴 장만하는 삶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책을 살 때에 값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야 하는 책이면 삽니다. 사야 하는 책이 아니라 하면, 거저로 주어도 받지 않습니다. 읽어야 하는 책일 때에는 제값을 톡톡히 치러 장만합니다. 읽어야 하지 않는 책이라면 아무리 에누리를 해 준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두께가 얇으나 값이 꽤 세다 싶도록 붙은 책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맞아요. 이런 책이 있습니다. 두께가 두툼한데 값이 참 눅다 싶게 붙은 책이 으레 있습니다. 놀랍지만, 이런 책이 있습니다. 내 주머니는 보배 곳간이 아닌 만큼, 사고픈 책이 있다 해서 몽땅 장만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고픈 책을 몽땅 장만할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운 책들로 내 책터를 꾸미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책에 파묻히고 말아 내 삶을 가만히 돌아보며 사랑하는 길을 놓칠 수 있습니다. 나는 늘 내 주머니에 따라 책을 사기는 하지만, 내 가벼운 주머니로 책을 산다 하더라도 푼푼이 돈을 모은 다음, 내 마음을 밝히고 내 생각을 북돋우며 내 사랑을 보듬는 좋은 삶동무 같은 책을 하나 장만합니다.


  아름다이 읽으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책이라면 우리한테 좋은 책이에요. 아름다이 먹으며 아름다이 기운 얻는 바탕이 되는 먹을거리라면 우리한테 좋은 밥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옷을 짓거나 손질하고 빨래까지 하면서, 옷 한 벌을 마련하는 데에 드는 품과 겨를과 땀과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먹을거리를 손수 일구어야 합니다. 백만 평이나 십만 평 논밭을 일구어야 하지는 않아요. 다문 한 평이라도 내 밭뙈기를 일구면서 내 몸을 살찌울 먹을거리가 어떠한 품과 겨를과 땀과 사랑으로 태어나는가를 느끼며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람들 스스로 책을 써야 합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 꽂힐 책이 아닌, 내 삶을 짓는 이야기를 담아, 내 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들려줄 꿈이 피어나는 책을 써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써 보면, 곧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면, 비로소 ‘내 삶에 아름다이 젖어들’ 아름다운 글과 그림과 사진을 만나요. 스스로 글을 쓰며 스스로 좋은 글을 맞아들입니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좋은 그림을 느낍니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좋은 사진에 눈물을 흘립니다.


.. “당신은 배우는 과정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한시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십시오 …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몇 주, 몇 달, 몇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지금 나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감격할 이유는 없지요 … 그렇게 해서 백발백중 표적을 맞춘다면, 당신은 남에게 과시하는 기교적 사수에 불과합니다” ..  (100∼101, 104, 109쪽)


  오이겐 헤리겔 님이 빚은 책 《마음을 쏘다, 활》(걷는책,2012)을 읽습니다. 참 얇은 책입니다. 책값은 12000원입니다. 언뜻, 움찔, 할 사람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일 한 자락 떠오릅니다. 2005년 일인데, 《부처와 테러리스트》(달팽이,2005)라는 책이 갓 나왔을 적, 나 또한 움찔 하면서, 어라 책값이 좀 세네, 하고 생각했어요. 이제 와 돌이키면, 그러니까 어느새 일곱 해 지난 2012년에 더듬으며 헤아리면, 책값 6500원은 참 쌉니다. 이 책이 더 찍지 못했기에 예전 값이 그대로라 할 테지만, 책값이란 한 해 두 해 지나고 보면 모두 아무것 아니에요. 아니, 책이란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하는 돈으로 읽지 않아요. 종이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종이에 아로새겨진 글을 읽을 때에 비로소 책이에요. 이야기와 줄거리를 마음으로 삭히면서 내 넋을 북돋울 때에 책읽기예요. 값싼 책을 읽어야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지 않아요. 아름다운 이야기와 줄거리를 읽으며 내 넋을 아름다이 돌볼 때에 비로소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요. 지난 2005년, 값에 움찔한 사티쉬 쿠마르 님 책 《부처와 테러리스트》를 읽고 나서 마음이 아주 좋아졌어요. 이야기와 줄거리가 아주 좋았거든요. 책을 덮을 무렵에는 ‘책값’이나 ‘부피’는 모두 잊었어요. 좋은 삶을 읽을 수 있기에 좋고, 좋은 삶을 읽으며 내 하루를 좋은 꿈으로 다스릴 수 있어 좋아요.


  《마음을 쏘다, 활》을 읽을 때에도 이런 느낌입니다. 나는 삶을 읽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적은 돈으로 ‘문화 소비’를 할 마음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값싸게 다루는 책을, 이를테면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진데다가 값 또한 싸다 하는 책을 몇 권 더 장만해서 집에 잔뜩 꽂아 놓고 읽어야 ‘내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아요. 나는 꼭 한 권만 읽을 수 있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꿈을 사랑스레 적바림한 이야기’ 깃든 책을 손에 쥐어야 넉넉하고 즐겁습니다.


  삶을 읽는 책입니다. 삶을 가꾸는 책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책입니다. 삶을 이끄는 책입니다. 삶을 북돋우는 책입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 다시 말해, 제자는 상대를 어떻게 가장 잘 공략할 것인가를 생각하거나 탐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제자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야 한다 ..  (136쪽)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사진쟁이들이 《마음을 쏘다, 활》을 읽으면서 ‘사진 찍는 넋과 매무새’를 추스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찍기란 “마음찍기”이기 때문입니다. 간추려 말하자면, “사진찍기 = 마음찍기”입니다. “글읽기 = 마음읽기”입니다. “글쓰기 = 삶쓰기”입니다. “그림그리기 = 꿈그리기”입니다. “노래부르기 = 사랑부르기”입니다. “춤추기 = 사랑추기”입니다. “일하기 = 사랑하기”입니다. “놀이하기 = 이야기하기”입니다. “밥먹기 = 사랑먹기”입니다. “밥짓기 = 삶짓기”입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읽지 못합니다. 삶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읽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읽지 못합니다. 이웃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내 옆지기를 읽지 못합니다. 내 옆지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뭇목숨붙이, 이를테면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를 찬찬히 읽지 못합니다.


  마음을 찍는 사진이기에,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듣는대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마음을 찍는 사진이기에, 쉰 예순 일흔 나이까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동안 아이들 낳아 돌보던 여느 어머니들이, 사진기를 처음 손에 쥐고서는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붓을 쥐면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연필을 쥐면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빚어요.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마음을 읽으며 누릴 때에 비로소 문화이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교육이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내 삶이라 한다면, 지식이 쌓이고 정보는 늘어날 테지만, 사랑이나 꿈이나 이야기는 한 가락조차 없겠지요.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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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3.31.
 : 아기수레로 밀다

 


- 바야흐로 따순 삼월로 접어들고는 자전거를 타고 첫째 아이랑 마실 다니는 일이 줄어든다. 이제 네 식구 함께 두 다리로 걷는 마실이 된다. 논둑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멧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면소재지까지 두 아이와 함께 걸어갔다가 걸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둘째 아이는 요즈음 한창 서기 놀이를 한다. 무언가를 붙잡고 퍽 오랫동안 서서 놀 줄 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는 못한다. 다리에 힘살이 더 붙어야 씩씩하게 걷겠지. 짧게 삼사십 분을 걷든, 조금 길게 한 시간 남짓 걷든, 둘째를 안거나 업자면 만만하지 않다. 자전거에 붙이던 수레에 앞바퀴를 하나 달아 아기수레로 쓰기로 한다. 아기수레로 삼아 둘째를 앉힐라치면, 첫째 아이도 둘째하고 나란히 앉겠다고 폴짝폴짝 뛴다. 이리하여,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닌다.

 

- 첫째 아이하고 살아오는 내내 아기수레를 쓴 일이 없다. 언제나 안거나 업으며 함께 다녔다. 아이 하나라면, 두 어버이가 서로 갈마들며 한 아이를 보듬을 만하다. 아이가 둘일 때에는 두 어버이가 하나씩 나눠 맡아야 한다. 옆지기가 튼튼한 몸이라 하다면 서로 아이 하나씩 맡을 만하지만, 옆지기 몸은 많이 힘들다. 이제 수레 힘을 빌어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로 한다.

 

- 우리처럼 아이를 곧잘 자전거수레에 태워 다니던 이웃한테서 지난겨울에 수레 하나를 받았다. 내가 자전거에 붙이던 수레는 2005년부터 썼으니 퍽 오래되었다. 내 자전거수레는 두 바퀴 모두 이음쇠가 다 닳았다. 수레도 여기저기 많이 긁히고 찢어졌다. 새로 얻은 수레도 헌 것이지만, 내가 쓰던 수레와 견주면 새 것과 같다. 자전거에는 이웃한테서 얻은 수레를 붙이고, 예닐곱 해 힘써 준 수레는 아기수레로 삼는다.

 

- 수레에 아이들 태워 걷자면 첫째가 으레 “아빠, 우리 집에는 수레만 많이 있어.” 하고 말한다. 나는 “그래, 우리 집에는 시끄러운 빠방이가 없어.” 하고 이야기한다. 수레에 아이들 태워 걷는 동안 우리 곁을 스치는 자동차를 거의 못 보지만, 어쩌다 한 대 지나갈라치면, 첫째 아이가 귀를 막고는 “아이고, 시끄러워!” 하고 외친다. 아이 키높이에서 생각하지 않고 어른 키높이에서 생각하더라도, 자동차 지나갈 때마다 소리가 되게 시끄럽다. 자동차 타는 사람은 모를 테지만, 걷는 사람들로서는 서로 나긋나긋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만큼 참 시끄럽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새들 지저귀는 소리이든 도랑물 흐르는 소리이든 봄바람 풀잎 살랑이는 소리이든 하나도 들을 수 없다. 도시 아닌 시골이라 하더라도, 호젓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있을 때에, 사람들 곁을 천천히 조용히 지나가 주는 자동차는 아주 드물다.

 

- 두 아이는 아기수레를 얼마나 오래 탈 수 있을까. 첫째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도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울 수 있을까. 내 자전거 뒤에 붙일 외발자전거를 하나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호젓한 길을 걷는다. 둘째는 천천히 잠들고, 첫째는 잠들 낌새 없이 조잘조잘 떠든다.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는 수레에서 내린다. 수레에서 내린 첫째는 아버지 손을 잡고 콩콩 달린다. 기운이 남고, 힘이 더 솟는지, 첫째는 신나게 달린다. 바람이 매섭지만, 시골마을 네 사람은 씩씩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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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4-03 17:55   좋아요 0 | URL
ㅎㅎ 어렸던 된장님의 큰 따님이 벌써 저리 컸네요^^

파란놀 2012-04-04 07:30   좋아요 0 | URL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놀이터 어린이

 


  면소재지까지 걸어가서는 면소재지 초등학교에서 다리를 쉬기로 한다. 첫째 아이는 혼자서 미끄럼틀에 올라가서 내려간다. 이것저것 스스로 탈 만한 데를 오르내린다. 혼자서 탈 수 없는 시소는 어머니랑 아버지가 끝에 앉아서 태워 준다. 아이한테 시소를 태우다가는, 이 ‘시소’라는 말을 아이가 그대로 배우도록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부터 어릴 적 ‘시소’가 무언지 못 알아듣고 늘 잘못 적바림하지 않았던가. 잘 노는 아이가 예쁘다. (4345.4.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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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도서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31.

 


  도서관 책꽂이를 3.5톤 짐차에 가득 실어 가져왔다. 순천에 있는 헌책방 사장님이, 순천 쪽 어느 도매상이 문을 닫을 때에 책꽂이를 통째로 빼냈다고 한다. 문닫은 도매상에서 책꽂이랑 7톤어치 책을 빼내는 데에 일꾼을 이백만 원어치 썼다는데, 책꽂이를 나누어 받아 짐차에 싣고 도서관에 부리고 보니, 일꾼들 일삯으로 그만 한 돈을 쓸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책꽂이는 참 크다. 생각해 보건대, 이제 문닫고 만 도매상이 처음 문을 열면서, 가게 안쪽에 나무를 쌓아 벽과 가게 너비에 맞게 짠 책꽂이였을 테지. 한 번 짜서 벽과 가게 안쪽에 촘촘히 붙이고 나면, 두 번 다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일이 없도록 했을 테지.


  벽과 바닥에 단단하게 붙은 채 서른 해 남짓 수십 수백만 권을 얹었을 책꽂이는 거의 다친 데 없이 떨어졌다. 높이와 너비가 꽤 되어 둘이 마주 들어도 팔다리가 덜덜 떨리는 커다란 녀석 또한 휘어지지 않고 잘 떨어져 우리 도서관까지 왔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녀석은 문짝을 다 떼내고 창문을 다 떼어도 들이지 못할 만큼 크다. 하는 수 없이 벽이 기대 놓는다. 못을 빼고 나무칸을 뜯은 다음 다시 못질을 하고 싶지 않으나, 이렇게 떼지 않고서야 안으로 들일 수 없으리라.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교실 벽에 대 본다. 벽을 높직하게 잘 채운다. 못을 박는다. 나 또한 이 책꽂이가 다시 떨어지지 않기를 꿈꾸며 벽이랑 바닥에 못질을 한다. 골마루 바닥인 교실이기에 못이 잘 박힌다.


  도매상에서 쓰던 책꽂이는 책을 더 많이 꽂도록 빈틈 거의 없을 만큼 알뜰히 짰다. 칸이 휘어지지 않을 만큼 사이를 댄다. 서른 해 남짓 책을 받쳤다지만 휜 자국이 거의 안 보인다. 그래도, 나는 이 책꽂이를 뒤집어서 박는다.


  어느 책을 꽂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퍽 아끼는 손바닥책을 꽂기로 한다. 정음문고이든 박영문고이든 을유문고이든 중앙문고이든 전파과학문고이든 신구문고이든 삼성문고이든, 헌책방을 돌며 호를 빠짐없이 맞출 수 있는 노릇이지만, 나는 그때그때 내가 즐겁게 읽을 만큼 하나씩 사서 모았다.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이라 한다면, 굳이 사서 어떤 쓸모가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못 읽은 책을 내 아이가 읽을까. 내가 못 읽은 책을 다른 사람더러 읽으라 내밀 수 있을까.


  내 도서관은 내 서재라고 느낀다. 내 서재는 내 도서관이라고 느낀다. 새로 옮긴 이곳에서 아직 ‘새 봉투’와 ‘새 이름쪽’을 마련하지 않았는데,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쓸는지, 아니면 ‘사진책 서재도서관’이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여 볼는지 찬찬히 헤아려 본다. ‘사진책 서재’라고만 해 볼까. ‘도서관’이라는 말은 아예 덜고, 다른 이름을 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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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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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라를 생각해서 ‘당신은 죽으시’오
 [만화책 즐겨읽기 137]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1)》

 


  시골 면사무소는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큰물이 진다든지 가뭄이 든다면 여러모로 일거리가 늘어날 테지만, 여느 때에는 참 일거리가 없다 여길 수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동사무소는 일거리가 많을까요. 서울이라면 많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동사무소이든 다른 공공기관이든 일거리가 늘 철철 넘칠 만큼 될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공무원이라는 자리에 앉아 일하는 이들이 건물 안쪽 책상맡에 앉아서 씨름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내야 할까 모르겠어요.


- 26년 전(1966년), 나는 그저 놀기 좋아하는 소학교 5학년이었다. (11쪽)
- “이 부락에도 예전부터 농사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서 관두고 싶어 했던 사람이 몇 사람 있었다오. 공항을 계기로 결심이 섰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 심정 나도 뼈저리게 압니다. 역시 가장 괴로운 건, 사이좋게 잘 지냈던 이 마을이 두 무리로 분열된 것이라오.” (215쪽)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한 삼월 첫무렵부터 사월로 접어들기 앞서까지, 시골마을 곳곳에 ‘면사무소 안내방송’이 날마다 여러 차례 울려퍼졌습니다. 경운기 소리마저 거의 못 듣는 우리 시골마을인데, 이른아침 낮 저녁, 또 사이사이, 면사무소에서 ‘산불 나지 않게 불을 함부로 피우지 말자’는 이야기를 녹음테이프로 자꾸자꾸 틀어놓습니다. 어쩜 이렇게 지치지도 않고 날마다 여러 차례 똑같은 이야기를 틀어놓는가 싶지만, 이렇게 해야 산불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시골에서는 쓰레기를 집집마다 ‘알아서’ 태우니, 자칫 바람에 불씨가 날려 멧자락 하나 홀랑 태울까 걱정할 만해요. 우리 시골마을은 해가 바뀔수록 풀약 치는 집이 줄어, 차츰 농약 없이 손으로 김매는 시골이 되는 만큼, 논둑이나 밭둑 풀을 잡자면서 불을 퍽 자주 놓아요. 약을 안 치자니 풀을 잡아야 하고, 풀을 잡자니 일흔이나 여든 살 몸뚱이로 너무 고단하니, 불을 놓는 일이 가장 수월합니다.


  면사무소에서 때맞춰 방송을 하는 일이 마땅하리라 느끼면서, 여러모로 아쉽고 서운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삼월 한 달 ‘산불 안 나게 하자’는 방송을 끝없이 내보내면서, 막상 면사무소 일꾼이 시골마을을 두루 돌며 시골 흙일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한 차례조차 못 보았거든요.


  예전 같으면, 그러니까 스피커라는 시설이 없던 예전 같으면, 아주 마땅히 면사무소 일꾼이 마을을 두루 돌았겠지요. 면사무소 일꾼이 모둠을 짜서 날마다 온갖 마을을 두 다리로 돌았겠지요. 스피커 시설이 변변하지 않던 때에는 자동차 또한 변변하지 않을 뿐더러, 시골길마저 흙길에다가 자동차 들어서기 힘들었을 테니, 다들 자전거를 몰며 큰길까지 달린 뒤, 자전거를 천천히 끌며 온갖 마을을 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이 어떠한 생김새인가를 두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온몸으로 느끼면서, 참말 공무원다운 공무원 일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은 시골에도 길이 잘 뚫리고, 면사무소 일꾼이라면 으레 자가용이 있는데다가 면사무소 짐차가 있으니, 어디라도 차를 타고 다닐 만하고, 한나절 달리면 면사무소 테두리 모든 마을을 돌 수 있기도 합니다.

 

 


- “도쿄에 가서 뭘 할 건데?” “아직 몰라. 하지만, 어쨌거나 내 앞길은 내가 정할 거야. 고등학생 때부터 그렇게 마음먹었어. 농사꾼은 나한테 맞지 않아.” “농사일은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땅을 버릴 수는 없잖아?” “뭐냐, 시게루. 너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을 나가겠다고 소란 피웠잖아.” “그, 그랬지만, 이걸 봐, 히로시.” “아, 그때 말했던, 실크단지 구상인가?” (22∼23쪽)
- “정부가 도미사토의 반대운동에 막혀서 공항 건설을 포기한 건 사실이야. 근데 그들이 또다시 같은 실패를 반복할까?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라도 이번에는 죽을 각오로 쳐들어올 거다. 이웃 산리즈카로.” (74쪽)
- “여기 부락 모두가 얼마나 많은 뽕밭을 일구었는지 알아? 농림성의 부추김에 3년 공들여서 45만 평이다. 그런데 이번엔 공항 만든다고 뽕밭은 그만두라니. 전부 끝났어.” (92쪽)


  네 식구가 마실 삼아 집부터 면소재지까지 걷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면 5분이면 넉넉하고, 두 다리로 걸으면 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이야기를 그리 많이 나누지는 않으나, 이야기가 될 수많은 삶과 모습을 느낍니다. 대문을 열고 논밭으로 나서도 논둑 밭둑에 갖은 풀포기가 인사합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이 날마다 새롭게 인사합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더라도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쉼없이 지저귀며 노래합니다.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맑게 트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찧고 까불며 놉니다. 개구진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맑게 트는 소리를 듣는 사이사이, 밥이 끓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지렁이가 흙속을 누비며 흙똥 누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운 봄볕을 받으며 아주 천천히 꽃잎을 벌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내 어릴 적 내가 형이랑 찧고 까불던 소리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내 어릴 적 내가 뛰놀던 골목 언저리에서 나도 모르게 피고 졌을 숱한 골목꽃을 헤아립니다. 수많은 목숨이 조용히 태어나서 조용히 죽습니다. 수많은 넋이 고요히 온누리를 떠돌며 지구별을 보듬습니다.


  나는 어떤 목숨일까요. 나는 어떤 넋일까요.


  밤에는 달과 별을 느낍니다. 낮에는 해와 구름을 느낍니다. 냇물이 흐르며 소리를 냅니다. 별이 움직이며 소리를 냅니다. 마늘포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냅니다. 씨앗들이 흙속에서 깨어날 때를 기다리며 소리를 냅니다.

 

 


- “하지만, 결국 공항이 세워지겠지? 각료회의에서 결정했다던데.” “그야 위에서 하는 일이니까.” “우리 아버지는 오히려 좋아하더라고. 도미사토 마을에 큰 공항이 생기면 우리 농작물이 비싸게 팔릴 거라고.” “바보, 그쪽 농민 처지도 생각해야지.” (25쪽)
- “그럼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신문 따위 거짓말투성이잖아!” “이 녀석들! 웬 소란이냐? 곧 수업 시작한다!” “선생님! 정말 여기에 비행장이 생기나요? 선생님!” (47쪽)
- “아버지 말이야. 전에는 공항이 지역발전에 도움될 거라고, 도미사토 마을의 공항 반대 서명을 거절했잖아.” “그, 그거야.” “남의 땅이라면 찬성해도 우리 땅엔 안 된다, 라니. 좀 그렇잖아?” (59쪽)


  이제 시골사람 되어 살아가니, 내 고향이 도시인 인천인 줄 잊을 때가 잦습니다. 이제 시골사람인 터라, 내 고향이 어디였다고 떠올릴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인천서 사는 동무가 늦은 나이에 장가 간다며 편지를 띄우니, 비로소 인천에 남은 동무들 살림살이를 가만히 그립니다. 내 동무들은 나처럼 아이들 낳아 이래저래 찧고 까불 텐데, 내 동무들 아이들은 내 동무들 어릴 적처럼 흙을 모르고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야만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인천공항이 떠오릅니다. 어떤 인천사람은 인천에 공항이 생긴다니 좋아했습니다. 아니, 참 많은 인천사람은 인천에 새로 생기는 공항을 몹시 반겼습니다. 내 오랜 벗 가운데 하나는 인천에서 ‘인천이지만 인천 아니라 하는’ 영종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동사무소 공무원이 된 벗인데, 이 벗도 아이를 낳고 꾸준히 일하는지, 아니면 일터를 그만두었는지까지는 모릅니다. 오랜 벗이지만, 서로 어찌 지내는가를 오래도록 모릅니다. 내 벗도 영종섬에 공항이 들어서는 일을 반겼을까 궁금합니다. 내 벗하고 영종섬에서 살아온 숱한 사람들도 영종섬 공항을 좋아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집과 밭과 멧자락 모두 나라에 팔아야 하면서 고향을 떠나 고향을 잊어야 했을 영종섬 사람들은, 인천이지만 인천 아닌 영종섬 사람들은, 인천에 새로 짓는 공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 “시장님, 국제적인 공항이 필요하단 것은 잘 알겠소. 하지만, 정부는 우리에게 아직 그 어떤 양해도 구한 바 없소. 그런데도 신문에 마치 이미 정해진 일인 것마냥 기사가 나는 건 어째서요? 국가적 대형 공공사업이면, 이렇게 우리들의 승낙 없이 추진해도 되는 거요?” (52쪽)
-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어. 마유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지킬 거랬어.” “그, 그런 걸 주민 이기주의라고 하는 거다.” “뭐라고? 배신자 녀석!” “시끄러! 이기주의자!” “외국에 못 나가도 좋냐?” “그딴 데 가고 싶지 않다, 뭐!” “조용히! 웬 소란이냐! 예비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아야지! 2학기 시작부터 말썽이냐?” …… “선생님, 저, 산리즈카에 공항이 들어서면 소음 때문에 수업이 불가능해진다고, 그래서 이 학교도 폐교될지 모른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정말인가요? 그리고 이 부근의 소학교나 중학교들 전부 방음 건물로 새로 짓는다는데 그것도 사실인가요? 방음 건물은 창문이 좁고 어둡고, 1년 내내 문을 꼭 닫아걸고 형광등을 켜고 공부한다던데 정말인가요? 선생님은 공항 건설에 반대인가요, 찬성인가요? 학교가 폐교돼도 상관없으세요?” (113, 115∼116쪽)
- “헤헤헤,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요? 바보같이!” “겐지.” “태평스럽게 그런 말 하고 있을 때, 불도저가 와서 학교를 싹 쓸어버릴걸요! 어때요, 선생님. 그렇게 돼도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 할 거예요? 이런 학교 부서져 버리라지!” (154∼155쪽)

 

 


  인천에 공항을 짓겠다 하는 중앙정부 공무원 외침말이 신문에 실리던 그날, 나는 몹시 못마땅하고 슬펐습니다. 김포에 있는 공항을 처음 지을 때, 김포에서 나고 자라며 흙을 일구던 사람들이 어떻게 쫓겨나고 어떻게 고향을 빼앗겼으며 어떻게 뒷삶을 꾸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익히 들은 터라, 이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려는 중앙정부 개발정책이 그지없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더없이 슬펐어요.


  참말 공항을 지어야 한다면, 서울 종로 한복판에 지어야 하지 않나요. 공항을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헤아려, 서울 강남 압구정동 명동에 닦아야 하지 않나요.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데가 서울인 만큼, 핵발전소는 서울 한복판에 지어야 마땅해요. 화력발전소도 서울 한복판에 세워야 마땅해요. 제철소도 제강소도 정유공장도 자동차공장도 서울 한복판에 세워야지요. 서울사람은 발전소 곁에서 살아 보아야 해요. 서울사람은 제철소 곁에서 바람을 마시고 빨래를 널어 보아야 해요. 유리공장 둘레에서 아이들이 뛰놀아 보아야 해요. 식품공장 우유공장 언저리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 보아야 해요.


  나는 인천제철이 어떠한가를 겪어 보았어요. 나는 인천발전소가 어떠한가를 느껴 보았어요. 나는 연탄공장, 식품공장, 시멘트공장, 화학공장, 자동차공장 언저리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어떠한가를 두 눈으로 지켜보았어요. 그래서 이 모든 슬픈 굴레를 내 옆지기와 아이들이 똑같이 느끼거나 고스란히 겪기를 바라지 않아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사람답게 사랑하고 싶어요. 좋은 목숨을 좋은 꿈으로 누리며 어깨동무하고 싶어요.


- “우리가 땅을 파는 게 그리 나쁜 일일까? 땅을 팔고 빚을 갚는 게. 애들 좋은 학교에 보내주는 게 말이여.” (83쪽)
- “뎃페이. 도모노 지사는 말이다, 여기를 공항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물어 보러 오는 게 아니여.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이해해라, 협력해라, 땅을 팔아라, 이거여.” (160쪽)
- “히로시. 땅은 말이여, 원래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이 땅은 우리의 것도 공단 것도 아니여. 옛날부터 그저 여기에 있었을 뿐. 그것을 인간이 제멋대로 선을 긋고 제것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거여. 우리도 마찬가지여. 하지만 말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을 일구고 갈고 씨앗을 뿌려서 비옥한 흙으로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여.” (184쪽)

 

 


  인천 앞바다에 있던 용유섬이 사라졌습니다. 용유섬과 영종섬 사이 갯벌은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영종섬에 넓게 드리우던 소금밭은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영종섬을 둘러싸던 갯벌은 몽땅 죽었습니다. 흙밭과 소금밭과 낮은 멧등성이와 갯벌과 숲으로 이루어졌던 영종섬은 온통 시멘트·아스팔트 덩어리로 바뀌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를 타려고 달리기를 하던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고 길쭉한 다리를 건넙니다.


  인천 영종섬을 알던 사람들한테 영종섬은 이제 없습니다. 인천 용유섬을 모르던 사람들한테 용유섬은 예나 이제나 없습니다. 중앙정부 공무원과 건설업자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조차 집과 길과 삶터를 종이에 그려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집과 길과 삶터를 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어깨동무하지 않았습니다. 공항버스 타고 새근새근 잠들면 어느새 비행기 타는 데까지 느긋하게 닿습니다. 표를 끊고 비행기를 타고 나라밖 어디로라도 오가면 그만입니다.


  더 값싼 미국 쌀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더 값싼 칠레 포도를 사다 먹으면 됩니다. 더 값싼 중국 곡식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더 값싼 호주 소고기를 사다 먹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한국 자동차와 손전화와 셈틀을 더 값싸게 나라밖에 팔면 됩니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는 삶자락인데, 돈을 생각하고 돈을 나누는 오늘날인데, 영종섬 고기잡이와 흙일꾼 몇몇이 고향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들, 하나도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이웃 한국사람’도 없습니다.


- “내가 농사꾼을 싫어했던 건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8쪽)
- “뒷일은 너에게 맡긴다, 뎃페이. 할 수 있지? 너 혼자 남는다 해도 싸워야 한다. 네가 지키는 건 이 목장이나 집, 밭뿐만이 아니야.” “네?” “네가 지키는 건, 민주주의다.” “민주, 주의?” (223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책 앞머리에 문정현 신부님 추천글이 실리는데, 나는 이 추천글이나 책끝에 붙은 어느 대학교수 소개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1992년에 나온 만화책이 스무 해만에 한국에서 나온 일을 기리며 오제 아키라 님이 새로 붙인 머리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제 아키라 님은, “때린 사람은 자기가 때렸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고 말합니다.


  그래요, 때린 사람은 얼마나 세게 얼마나 아프게 얼마나 슬프게 때린 줄 몰라요. 어떤 이는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으면 ‘제주 강정마을’이 떠오른다 말하지만, 나는 제주 강정마을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나는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으면서 ‘서울 김포’가 아닌 ‘경기 김포 시골마을’과 ‘인천 영종 섬마을’이 떠오르던걸요. 삶과 삶터와 사랑과 사람 모두 잃거나 빼앗긴 이 나라 ‘공항 부지 피난민’이 떠오르던걸요.


  충청북도 청주에 공항을 지을 때에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전라남도 여수에 공항을 닦을 때에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 곳곳에 공항을 새로 세운다면서 시골마을 흙일꾼을 내몬다 할 때에, 지역 지식인과 언론인과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왜, 바로 이 한 마디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생각해서 ‘당신은 죽으시’오, 하는 한 마디가 아니겠습니까. 나라살림을 북돋우고자 하니, ‘당신은 고향을 버리시’오, 하는 한 마디가 아니겠습니까. 나라사랑을 하자니, ‘당신은 당신 어버이들이 먼 옛날부터 이어오던 흙사랑을 내팽개치시’오, 하는 한 마디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둘째 권을 읽을 차례입니다. (4345.4.1.해.ㅎㄲㅅㄱ)


― 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길찾기 펴냄,2012.3.3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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