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 가랑꽃, 동백꽃

 


  동백꽃은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집니다. 꽃잎 하나둘 따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동백꽃은 소담스러운 꽃송이가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나뭇잎도 가을 접어들면 툭 소리 내며 떨어집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흙 품에 안기는 잎사귀를 일컬어 가랑잎이라고 해요. 말라서 떨어지는 잎이 으레 가랑잎이지요. 마당과 꽃밭에 흐드러지는 동백꽃 소담스러운 붉은 송이를 바라보다가, ‘가랑꽃’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너희는 모두 가랑꽃이로구나. 다만, 너희는 꽃잎이 다 마르지 않아도 떨어지니까 ‘가랑-’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릴 수 있는데, 아마 먼먼 옛날부터 너희와 같은 꽃송이 가리키는 이름 하나 있겠지요. 동백나무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또 감나무 곁에서 지켜보던, 시골마을 흙사람은 이 꽃들 바라보며 어떤 이름 하나 붙여 주었겠지요. 붉게 타오르는 꽃송이 내려앉은 봄나물 풀밭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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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신고 흙 파는 어린이

 


  다른 아이들은 꽃신 신으며 어떻게 노는지 모른다. 우리 집 사름벼리는 꽃신을 신고 마구 달리기를 하고, 물놀이까지 하며, 흙밭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곤 한다. 예쁜 신이니까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늘 신으려 한다. 여섯 살 누나는 세 살 동생보다 땅을 깊이 팔 수 있다. 땅을 파다가 문득 말한다. “이거 누구 똥이야?” “동생 똥이야.” “왜 똥이 여기 있냐?” “밭 살리려고 거기에다 뿌렸지.”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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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텃밭 흙 파기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에 예전 살던 분들이 쓰레기 태우느라 거의 버려진 옆밭을 지난 한 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흙이 되살아나려면 앞으로 여러 해 더 묵혀야 한다고 느끼는데, 올해에는 한 번 크게 갈아엎고는 또 그대로 내버려 둔다. 틈틈이 삽과 괭이로 흙을 뒤집어 준다. 유채이며 갓이며 쑥이며 여러 풀씨 깃들어 자란다. 곧 모시풀도 싹을 틔우며 자라겠지. 밑흙이 햇볕 먹으며 조금씩 살아나도록, 또 속흙에 지렁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이들 똥오줌을 날마다 조금씩 뿌리고 며칠에 한 차례쯤 흙을 뒤집는다. 아버지 무얼 하는가 지켜보던 아이들, 저마다 한손에 꽃삽 하나 쥐고는 옆밭으로 따라와서 흙을 판다. 재미있지? 여기에서는 너희 마음대로 흙 파며 놀아도 돼. 다만, 지렁이 나오면 지렁이 안 다치게 잘 돌봐 주렴.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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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에 담긴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을 엮은 사람들 사랑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을 다루는 책방 일꾼 마음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에 서린 꿈 한 자락 살피면서 내가 오늘 하루 일굴 삶을 읽는다. 내가 읽는 책에서는 내가 누리고 싶은 환한 빛살 골고루 퍼져나온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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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4. 빛을 받는 책꽂이 - 헌책방 책방진호 2013.3.21.

 


  저녁햇살 헌책방 유리문 타고 곱게 스밉니다. 마흔 해 남짓 숱한 책 꽂은 책꽂이는 햇살 받으며 나무빛 더 짙고, 갓 태어난 책이거나 조금 묵은 책이거나 마흔 살 넘은 책꽂이 나무받침에 기대어 포근히 쉽니다.


  누군가 이 책들 바라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아끼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쓰다듬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어루만지어 즐거이 읽겠지요.


  아침저녁으로 고운 빛살 받는 책입니다. 사뿐사뿐 나들이 할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새 빛을 누릴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이야기 깃들고, 저 책에는 저러한 이야기 서립니다. 한두 달 지나면 철이 지난다는 잡지라 하든, 십만 권 이십만 권 후다닥 팔아치워 돈벌이 쏠쏠하게 이우려는 처세나 자기계발 책이라 하든, 두고두고 사랑받는 따사로운 문학이라 하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즐기는 어린이책이라 하든, 모든 책에 골고루 햇볕 스밉니다.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책을 엮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책들 처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고, 이 책을 맞아들여 책시렁마다 알뜰살뜰 꽂은 헌책방 일꾼은 어떤 마음일까요. 헌책방으로 다리품 팔아 살몃살몃 마실 다니는 책손은 어떤 마음 되어 책 하나 만나려 하나요.


  빛을 받아 나무가 자랍니다. 빛을 담아 나무를 종이로 빚습니다. 빛을 모두어 종이를 책으로 꾸립니다. 빛을 기울여 책장을 넘깁니다. 책마다 나무내음 물씬 납니다. 그리고, 책꽂이 된 나무와 책 된 나무에서는 빛을 먹고 자란 결과 무늬 찬찬히 배어납니다. 책방에서 책을 펼치면 숲속 푸른 숨결 새록새록 퍼집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숲 이야기가 하나둘 울려퍼집니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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