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놀이 1

 


  큰아이가 맞춤조각을 갖고 놀다가 문득 몽땅 뒤집더니, 조그마한 인형을 하나씩 얹는다. 그러고는 카드를 뒤에 줄줄이 붙인다. 기차 몇 번 타 보았다고 기차놀이를 한다. 작은 인형들을 기차에 태워 어디론가 나들이를 떠난다. 그래, 어디까지 가니? 어디로 가서 무얼 하며 노니? 4346.4.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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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수다쟁이 어린이

 


  세 살 작은아이는 말이 꽤 더디다. 여섯 살 큰아이는 말이 그닥 빠르지 않았으나, 말문이 터진 뒤로 조잘조잘 수다쟁이로 지낸다. 무엇을 하든 그야말로 입을 쉬지 않는다. 밥먹는 자리에서도 밥을 먹는 입보다 말하는 입이 바쁘다. 그래, 네 마음이 그러하니 너는 네 마음을 따르며 살아야지. 말없이 밥을 먹는 작은아이와 아버지는 너무 조용하니까, 네가 조잘조잘 떠들어 주면서 밥상머리에 싱그러운 빛 감돈다고 생각한다. 4346.4.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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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5 00:44   좋아요 0 | URL
정말 밥상도 맛있어 보이고, 사름벼리의 웃음 띤 얼굴도 참 좋아서, 저까지 행복합니다~*^^*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파란놀 2013-04-05 00:51   좋아요 0 | URL
요새 반찬 가짓수를 조금씩 줄여요.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
집 둘레에서 풀 한 소쿠리 뜯어서
끼니마다 먹으며 참 즐거운
봄날 누립니다~~~
 

산들보라 밥그릇 싹싹

 


  한창 많이 먹으며 한껏 자라나는 세 살 산들보라는 밥자리마다 밥그릇 싹싹 비운다. 국그릇 두 손으로 얌전히 잡고는 후룩후룩 국물 몽땅 들이켜는 모습은 얼마나 예쁘며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예쁘며 사랑스럽게 밥먹는 아이들 마주하는 즐거움으로 밥을 알뜰히 차린다고 다시금 깨닫는다. 4346.4.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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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5 00:40   좋아요 0 | URL
아~유! 우리 산들보라! 그냥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쁜데, 밥도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게 먹네요~^^
손톱에 남아있는 초록색도, 두 손으로 국그릇을 잡고 후룩후룩 국을 먹는 모습도 너무나 예쁘고 대견하네요~^^
너무너무 예뻐서 이 밤, 자꾸자꾸 웃으니 옆에서 물어봅니다. 왜 웃어~? ㅎㅎ
좋은 밤 되세요. *^^*

파란놀 2013-04-05 00:50   좋아요 0 | URL
손톱 저 크레파스 때는... 손톱이 더 자라서 깎아야 빠지겠더라구요.. -_-;;;;;;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63) 존재 163 : 이 존재는

 

어린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어른과 더불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를 굳이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듯하면서도 간단치가 않다. 더구나 문학적 맥락에서 이 존재는 의문투성이 수수께끼처럼 그 속성을 깨닫기 어렵다
《황선미-동화 창작의 즐거움》(사계절,2006) 9쪽

 

  ‘설명(說明)하고’는 ‘이야기하고’로 다듬고, ‘정의(定義)할’은 ‘풀이할’로 다듬습니다. “사회의 일원(一員)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存在)”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로 손볼 수 있고, “쉬운 듯하면서도 간단(簡單)치가 않다”는 겹말이에요. “‘쉬운’ 듯하다면서 ‘쉽지’ 않다”고 적어야 올바르지요. “문학적(-的) 맥락(脈絡)”은 “문학 흐름”을 뜻할 텐데, 이 자리에서는 ‘문학’이라고만 적을 때가 한결 잘 어울리겠구나 싶어요. ‘의문(疑問)투성이’는 ‘궁금투성이’로 손질하고, ‘속성(屬性)’은 ‘속내’나 ‘속모습’이나 ‘속살’이나 ‘참모습’으로 손질합니다.

 

 이 존재는
→ 이 어린이는
→ 이 아이들은
→ 이들은
 …

 

  보기글에서는 ‘존재’라는 낱말을 두 군데에서 씁니다. 두 군데 모두 ‘어린이’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존재’라는 낱말로 ‘어린이’를 가리키고 싶다면 가리킬 수 있어요. 그런데, 굳이 어린이를 ‘어린이’라 안 쓰고 ‘존재’라는 낱말을 빌어 가리켜야 할는지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쉽게 생각을 나눌 만한데,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글로 어떤 생각을 나눌 만한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목숨이고 숨결입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에서는 ‘어린이’라 적어도 되는 한편, ‘사람’이나 ‘목숨’이나 ‘숨결’로 적을 수 있어요. 또는 ‘이들’이라 적어도 잘 어울려요. 문학으로 살피는 자리에서도 어린이는 ‘어린이’라 하면 됩니다. 또는 ‘아이’나 ‘아이들’이라 할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도 ‘목숨’이나 ‘숨결’이라는 낱말을 넣으며 나타내어도 됩니다.


  생각을 조금 더 기울여 다른 말씨를 찾아봅니다. “이 넋은”이라든지 “이 빛줄기는”처럼 적으면서, 어린이를 고운 넋이나 빛줄기로 여기면서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하늘 같은 숨결은”이라든지 “이 아름다운 목숨은”처럼 적어도 되고, “이 작은 목숨붙이는”이나 “이 어여쁜 사랑은”처럼 적어도 돼요. 빗대어 가리키려 한다면, 쉽고 맑으며 고운 한국말을 얼마든지 찾을 만합니다. 4346.4.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린이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풀이할 수 있을까. 어른과 더불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굳이 이야기하기란 쉬운 듯하면서도 쉽지가 않다. 더구나 문학에서 어린이는 궁금투성이 수수께끼처럼 속내를 깨닫기 어렵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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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뜨기꽃 책읽기

 


  쇠뜨기꽃은 어떤 맛일까. 쇠뜨기맛이겠지. 쇠뜨기는 누가 먹을까. 소가 먹고 사람이 먹으며, 풀 뜯는 모든 짐승들이 먹겠지. 쇠뜨기꽃 따서 먹으면 어떻게 좋을까. 쇠뜨기꽃은 쇠뜨기꽃대로 사람 몸을 살찌우며 따스하게 보듬겠지. 찔레는 찔레대로, 감은 감대로, 매화는 매화대로, 모과는 모과대로, 뽕잎은 뽕잎대로, 저마다 다른 숨결은 저마다 다른 빛이 되어 사람 몸으로 시나브로 스미겠지.


  가늘게 쏙쏙 솟는 쇠뜨기를 바라본다. 천천히 꽃망울 터뜨린다. 봄날 다른 봄꽃처럼 하얗거나 파랗거나 노랗거나 발그스름한 빛깔은 없다. 참말, 쇠뜨기는 쇠뜨기빛으로 꽃을 피운다. 그러고 보면 머위도 머위대로 꽃을 피운다. 스쳐 지나가는 눈길로 보자면, 여느 도시사람 눈썰미로는 머위꽃이나 쇠뜨기꽃은 꽃답지 않게 여길 수 있으리라. 그러나 쇠뜨기꽃은 쇠뜨기꽃이요, 머위꽃은 머위꽃이다. 흙빛 닮은 쇠뜨기꽃은 일찌감치 새잎 틔우는 들꽃들 사이에서 아른아른 노란 빛송이 올리면서 아기자기한 꽃춤을 춘다. 4346.4.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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