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영어] 텍스트text



텍스트(text) : 1. 주석, 번역, 서문 및 부록 따위에 대한 본문이나 원문 2. [언어] 문장보다 더 큰 문법 단위. 문장이 모여서 이루어진 한 덩어리의 글을 이른다

text : 1. (책·잡지의) 본문 2. (모든 형태의) 글, 문서 3.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다 (→SMS, text-message) 4. (연설·연극·기사 등의) 원고[원문] 5. (특히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해야 할) 교재 6. (시험지의) 지문; (수업에서 다루는 짧은) 글 7. (성서에서 따온) 말씀

テキスト(text) : 1. 텍스트 2. 교과서; 특히, 부독본·강좌용 교재 3. 원문, 원전(原典)



영어 ‘텍스트’를 우리 낱말책에까지 싣지만 털어낼 노릇입니다. 우리말로는 ‘글’이고 ‘글꽃·글월’이며 ‘글자락·글줄·글집’입니다. ‘글결·글꼴·글씨·글무늬’이고 ‘글맛·글멋·글빛’이고 ‘글쓰기·글쓰다·글을 쓰다·글씨쓰기’입니다. ‘밑·밑글·밑동·밑빛’이나 ‘밑바탕·밑절미·밑꽃·밑짜임·밑틀·밑판’이기도 합니다. ‘바탕·바탕길·바탕꽃’이나 ‘바탕글·바닥글’이기도 하지요. ‘씨앗글·몸글’이기도 하고, ‘길잡이책·길잡이글·길잡이숲·길풀이책·길풀이글·길풀이숲’이에요. ‘온글·온말·온우리글·온우리말’이고 ‘처음글·첨글·첫글·첫벌글’입니다. ‘예전책·예전판·옛판·옛날판·옛적판’이나 ‘줄거리·졸가리·줄기’이기도 합니다. ㅍㄹㄴ



사실 자신의 그런 경험을 전하는 일은 상당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데, 비독서의 좋은 점을 자랑하는 텍스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런 점에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 스스로 겪은 바를 밝히자면 꿋꿋해야 하는데, 안 읽어서 좋다고 자랑하는 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 몸소 겪은 일를 말하자면 씩씩해야 하는데, 읽지 않아 좋다고 자랑하는 밑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008) 12쪽


대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 으레 글이 아니라 그림을 읽는다

→ 다들 글씨가 아니라 그림씨를 읽는다

《도서관 산책자》(강예린·이치훈, 반비, 2012) 160쪽


텍스트의 풍요로움은 국외자의 관음증적인 시선으로부터 옵니다

→ 밖에서 몰래보며 글을 잔뜩 씁니다

→ 멀리 숨은눈으로 글을 실컷 씁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파리 리뷰 엮음/김진아·권승혁 옮김, 다른, 2014) 90쪽


텍스트의 해석에 옳은 방법과 그릇된 방법이 있습니까

→ 글을 읽는데 옳거나 그른 길이 있습니까

→ 글을 읽을 때 옳은길과 그릇길이 있습니까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테리 이글턴/이미애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6) 19쪽


글쓰기는 수술용 칼인 메스이자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며 텍스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의 분만이다

→ 글쓰기는 손대는 칼이자 나 스스로 온누리를 헤아리는 연장이며 글줄에서 생각이 태어난다

→ 글쓰기는 고치는 칼이자 내가 온누리를 헤아리는 연장이며 글에서 생각이 자라난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문혜영 옮김, 펄북스, 2017) 163쪽


이 세계 대부분의 텍스트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오역이 됐거나 둘 중 하나다

→ 온누리 웬만한 글줄은 아직 옮기지 않았거나 이미 잘못 옮겼다

→ 이 땅에 있는 글자락은 아직 안 옮겼거나 이미 엉뚱히 옮겼다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 162쪽


합창 부분 텍스트는 이렇다

→ 모둠가락 밑글은 이렇다

→ 나란노래 바닥글은 이렇다

《안익태 케이스》(이해영, 삼인, 2019) 101쪽


텍스트는 읽기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

→ 글은 읽어야 산다

→ 읽을 적에 글이 있다

→ 읽기에 글이 흐른다

→ 글은 읽을 적에 피어난다

→ 글은 읽을 적에 깨어난다

→ 글은 읽을 적에 일어난다

《사진과 시》(유희경, 아침달, 2024) 148쪽


이런 식으로 텍스트를 변환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어떤 상황에서 시작되었을까

→ 이렇게 글을 바꾸는 재미난 일은 언제부터 했을까

→ 언제부터 이처럼 재미나게 바꾸는 글을 썼을까

《해석에 반하여》(수전 손택/홍한별 옮김, 윌북, 202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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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사망 소식에 이란인들, 춤추고 동상 철거까지…트럼프 "나라 되찾을 기회"

https://www.youtube.com/watch?v=s4AEBUmgy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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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4 들풀 들불 들꽃

책벌레수다 : 고꾸라진 우두머리



  나는 1975해에 태어났으되, 1979년까지 이 나라가 어떤 꼴이었는지 알지 못 한다. 1975∼79해 즈음에는 마냥 뛰노는 아이였기도 하고, 고삭부리라서 늘 끙끙 앓아누웠고, 앓아누울 적이건 골목이나 집에서건 도깨비를 밤낮으로 맨눈으로 보며 시달렸다. 1980해에 전두환이 총칼로 벼슬힘을 거머쥐고서 윽박지르는 줄 몰랐다. 여섯살배기가 뭘 알겠나. 열 살이던 1984해 즈음에서야 ‘어린배움터 곳곳에 붙은 얼굴그림’이 ‘전두환 + 교장’인 줄 비로소 알아차렸다. 어린배움터에서는 툭하면 길거리에 한나래(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쉬잖고 흔들라고 시켰다. 노태우가 고꾸라질 무렵까지 어린배움터뿐 아니라 푸른배움터도 ‘새마을청소·근로동원’을 시켰다. 아무튼 나는 전두환이 끌려내려올 적과 박정희가 피를 뿜으며 숨질 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턱이 없었는데, 집이나 마을에서 어떤 어른도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 들려주었다. 보임틀에서 뭐가 나오면 “애들은 보지 마라.” 하는 꾸지람만 들었다.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늘 입꾹닫이면서 몽둥이만 흔들었다.


오늘날 거대 군수산업체들은 전쟁 무기의 생산과 판매, 유통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은 무기를 더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입니다. 《평화는 처음이라》 94쪽


  2026해 첫봄으로 접어들 무렵, 이란 우두머리가 펑펑 터져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제오늘 사이에 안 죽었어도 곧 죽을 만하지 싶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 곳곳을 펑펑 터뜨린 일이란,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꽝꽝 쏘아서 골로 보낸 일하고 나란하다고 느낀다. ‘옳고그름’이 아니라 “온나라를 주먹힘으로 윽박지르고 들꽃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군사독재 우두머리”가 마침내 사라진 일을 바라보아야지 싶다. ‘김재규·트럼프’는 꽃님(영웅)이 아니다만, 우리가 새길로 돌아설 수 있는 갈림길에 돌 하나를 놓았다고 여겨야지 싶다. 우리나라 광주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이란은 테헤란뿐 아니라 그 나라 곳곳에서 숱한 사람이 서글프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우리나라 광주에서 몇 사람이나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낱낱이 모르듯, 이란에서 그야말로 얼마나 숱하게 끔찍하게 죽어야 했는지 제대로 모른다.


“그럼 특훈. 지금부터 특훈할 거야?” “엇?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술 마시고 자고 싶은데.” “특훈.” “야, 이거 놔.” 《쓰레기 용사 4》 151쪽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도 베네수엘라도 북녘도 이란도 쿠바도 ‘가난해야’ 할 까닭이 터럭만큼도 없다. 저마다 다르게 넉넉하고 가멸찬 나라이다. 그렇지만 힘으로 억누르고 쥐어짜는 우두머리가 ‘막짓(군사독재)’을 벌인다. 나라살림을 몇몇이 돌라먹거나 빼돌리거나 움켜쥔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읽고 쓰는 몫(권리)’이 어느 만큼 있지만, 베네수엘라·북녘·이란·쿠바는 ‘읽고 쓰는 몫(언론자유·언론권리)’이 깡그리 없다. 이들 네 나라는 나라지기와 벼슬아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누리길(인터넷)을 통째로 끊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얼거리는 중국도 비슷하다. 중국에는 ‘읽쓰몫’이 없다. 더 돌아볼 노릇이다. ‘북한인권’이라는 낱말을 쓰면 마치 ‘조중동 끄나풀’로 여기는 분이 꽤 있더라. 남녘과 한겨레인 북녘은 ‘사람길(인권)’이건 아름길(민주)이건 아예 없다. 우리는 ‘북한인권’이라는 이름을 왜 못 써야 할는지 곱씹을 노릇이다. 왜 “한겨레 두나라가 그토록 싸움붙이(전쟁무기)에 목매달면서 나라살림은 뒷전일 뿐 아니라, 아름길을 짓밟는”지 낱낱이 짚고 따지고 밝히고 말하면서, 이 모든 수렁을 걷어내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도 북녘도 베네수엘라도 이란도 쿠바도 ‘사회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민주주의’ 같은 겉이름이 아닌, “서로 돌보고 아끼며 어깨동무로 즐겁게 살림하는 아름길”을 걸어가는 속이름을 바라볼 노릇이지 싶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러한 나무들을 친구처럼 보게 되었다. 나무가 내 길을 따라 자라나고, 내가 나무에 다가서고, 그 바늘잎들을 어루만지며 미소짓는다.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68쪽


  진도 앞바다와 용산 가겟길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죽었는데, 무안나루에서도 난데없이 한꺼번에 서글프게 죽었다. 그런데 우리는 ‘무안참사’라는 이름조차 못 쓰거나 안 쓴다. “무안나루를 하루빨리 다시 열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무안참사’가 왜 터졌는지 낱낱이 파헤쳐서 이런 끔찍한 죽음늪이 더는 없도록 온나라를 아름답게 돌보는 길을 펴야 한다. ‘무안참사’에 눈을 감거나 입을 닫을수록 이 나라는 아름길하고 등지고야 만다. 두레(사회주의·공산주의)가 아닌 사슬(군사독재)인 북녘과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햇볕과 별빛이 스며들어서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을 틔우지 않을수록 이 나라도 똑같이 ‘두레 아닌 사슬’에 갇힌다. 들풀을 짓밟고 들꽃을 사납게 꺾어버리는 얼뜬 우두머리가 판치는 이란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나라도 나란히 얼뜬 굴레로 치달으리라 느낀다.


특별법을 만들고 다시 자식 잃은 부모가 되어 기다리면 될 거라 기대했다.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한 참사를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될 안전한 사회가 될 거라 기대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340쪽


  나는 들풀이다. 너는 들꽃이다. 우리는 들빛이다. 조촐히 보금자리를 일구는 수수한 모든 사람은 들동무이다. 나라지기와 벼슬아치는 짐짓 윗자리로 보이지만, 그들도 조그마한 들풀이며 들꽃이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들풀이며 들꽃인 줄 잊어버린 나머지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로 기울고 말았을 뿐이다. 너하고 나도 스스로 들빛인 줄 잊으면 꼭두각시나 노리개가 되고 만다. 한 송이 꽃만 곱지 않다. 모든 송이 모든 꽃이 다 다르게 곱다.


“그럼, 일단 집으로 들어갈까? 쌓인 얘기도 많을 테니.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각자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을래? 여기라면 인간은 들어오지 못할 테고, 이 공간 밖에는 비가 오고 있으니까.” 《은의 밀밭 3》 187쪽


  누구나 날개를 되찾기를 빈다. 누구나 날개를 펴기를 빈다. 돈꾼·이름꾼·힘꾼·벼슬꾼이 저들끼리 담벼락을 쌓으면서 히히덕거리던 모든 막짓과 사납짓을 걷어내기를 빈다. 다 다른 모든 들풀이 온들과 온숲과 온메와 온마을과 온집에서 스스럼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푸른길을 바란다. 다 다른 모든 살림터마다 싸움붙이(전쟁무기)를 모두 걷어내고서 오롯이 살림살이에 온힘과 온마음과 온땀을 들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곁에 둘 ‘온책’이라면, “정의로운 주장”이 아닌 “함께 살림짓는 사랑으로 가꾸는 보금자리 이야기”를 담아야지 싶다. “아이어른이 함께 슬기롭고 눈빛을 밝히면서 돌보고 일구는 즐거운 우리집 이야기”를 글로 쓰고 책으로 읽으면서 푸른별이 푸르게 반짝이는 오늘 하루를 열어야지 싶다.


《평화는 처음이라》(이용석, 빨간소금, 2021.4.2.)

《쓰레기 용사 4》(로켓상회 글·나카시마723 그림/ 옮김, 대원씨아이. 2026.1.26.)

#勇者のクズ #ロケット商會 #ナカシマ723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게리 폴 나브한·스티븐 트림블/김선영 옮김, 그물코, 2003.3.31.첫/2003.12.30.2벌)

#TheGeographyofChildhood #GaryPaulNabhan #StephenTrimble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1.16.첫/2015.2.12.5벌)

《은의 밀밭 3》(이나 츠자와/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25.5.25.)

#銀の麥畑 #津澤イナ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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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뇌사상태



 업무 중에 뇌사상태에 빠졌다 → 일하다가 잠들었다

 결국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 끝내 고요잠에 빠지고 말았다

 뇌사상태로 치료를 받는 도중에 → 굳잠인 채로 돌보다가


뇌사상태 : x

뇌사(腦死) : [의학] 뇌의 기능이 완전히 멈추어 본디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상태

상태(狀態) : 사물·현상이 놓여 있는 모양이나 형편



  골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을 쓰지 못 하고서 마치 죽은듯이 누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말을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얼거리를 살펴서 ‘고요·고요하다·고요님·고요귀·고요넋·고요길’이나 ‘고요꽃·고요빛·고요숨·고요잠·고요쉼’으로 나타낼 만합니다. ‘굳잠·한잠·한꿈’이나 ‘누운몸·눕다·눕몸·눕빛·눕꽃’으로 나타내도 어울립니다. ‘숨만 쉬다·오솔·오솔하다·오솔빛·오솜소리·오솝소리’라 할 수 있어요. ‘자다·잠·잠들다·잠자다’로 나타내면 되고, ‘잠잠이·잠잠님·잠잠꽃’이나 ‘잠길·잠빛·잠꽃·잠든몸·잠든꽃’이라 해도 되어요. ㅍㄹㄴ



(카메라는) 지금도 뇌사 상태다

→ (찰칵이는) 아직도 잔다

→ (빛틀은) 오늘도 뇌사이다

→ (꽃틀은) 여태 맛이 갔다

→ (빛그림틀은) 아직 못 고쳤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성남훈, 청어람미디어, 2006)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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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소작 小作


 소작을 부치다 → 얻어서 부치다

 소작하고 있는 → 받아쓰는 / 빌려쓰는

 소작하지 못하게 되었다 → 둘러대지 못하였다

 몇 대를 소작농으로 → 몇 길을 삯꾼으로

 소작농을 지어서 근근이 → 논밭낛꾼으로 겨우

 소작인이 지세를 물다 → 얻어쓰는 삯을 물다

 소작인과 지주 사이에는 → 삯꾼과 땅임자 사이에는


  ‘소작(小作)’은 “[농업] 농토를 갖지 못한 농민이 일정한 소작료를 지급하며 다른 사람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일 ≒ 반작”을 가리키고, ‘소작농(小作農)’은 “[농업] 일정한 소작료를 지급하며 다른 사람의 농지를 빌려 짓는 농사. 또는 그런 농민 ≒ 도지농사”를 가리키며, ‘소작인(小作人)’은 “다른 사람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그 대가로 사용료를 지급하는 사람 ≒ 작인·작자”를 가리킨다지요. 우리말로는 ‘낛꾼·낛일꾼·낛지기’나 ‘논밭낛꾼·논밭삯꾼·논밭낛지기·논밭삯지기’로 고쳐씁니다. ‘빌린일꾼·빌린지기·빌린흙일꾼·빌린흙지기’나 ‘삯꾼·삯일꾼·삯일지기’로 고쳐쓸 만합니다. ‘도르다·도림꽃·두르다·두름·둘러대다·돌라대다’로 고쳐쓸 수 있어요. ‘받다·받음·받아들이다·얻다·얻어들이다·얻어쓰다’로 고쳐쓰고, ‘빌리다·빌려주다·빌려쓰다’로 고쳐씁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소작’을 다섯 가지 더 싣는데 다 털어냅니다. ㅍㄹㄴ



소작(小斫) : 잘게 팬 장작

소작(小酌) : 1. 조촐하게 차린 술자리 2. 술을 조금 마심

소작(所作) : 1. 어떤 사람의 제작. 또는 그 작품 2. 해 놓은 짓

소작(燒灼) : [의학] ‘지짐술’의 전 용어

소작(蘇雀) : [동물] 되샛과의 새. 몸의 길이는 13cm 정도이며, 이마에서 머리 위까지는 붉은색, 등은 검은 갈색, 가슴은 장밋빛, 배는 흰색이고 날개에는 흰 띠가 두 줄 있다. 겨울 철새로 북반구에서 번식하고 남쪽 온대 지역에서 겨울을 보낸다 = 홍방울새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 논밭낛을 내리기를 바라는 글을 냈다

→ 논밭삯을 내려 달라는 글을 올렸다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눈빛, 2008) 51쪽


소작농들은 기근 동안 음식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시중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 논밭낛꾼은 굶는 동안 밥을 구경할 수 없지만, 마을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 낛일꾼은 굶주리며 밥을 구경할 수 없지만, 저자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흙》(데이비드 몽고메리/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 154쪽


부모가 혼인할 무렵에는 자기 땅이 한 뙈기도 없는 순수 소작농이었다

→ 어버이가 짝맺을 무렵에는 제 땅이 한 뙈기도 없이 낛지기였다

→ 엄마아빠가 맺을 무렵에는 땅이 한 뙈기도 없이 그저 빌려썼다

《박원순이 걷는 길》(박원순·임대식, 한길사, 2015) 51쪽


소작농들이 이런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을

→ 논밭낛꾼이 이렇게 사는 줄을

→ 삯일꾼이 이런 모습으로 사는 줄을

→ 낛일꾼 살림이 이러한 줄을

《재일의 틈새에서》(김시종/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 46쪽


소작농과 땅 주인이 함께 윈윈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삯꾼과 땅임자가 함께 좋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권으로 살펴본 기후위기 이야기》(최우리와 다섯 사람, 철수와영희, 2023)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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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경제동물



 소와 닭 같은 경제동물로 치부한다 → 소와 닭 같은 돈짐승으로 친다

 인간 자신이 경제동물이다 → 사람 스스로 돈벌레이다 / 사람 스스로 구리다

 지금은 경제동물이 다 되었다 → 이제는 돈에 눈멀다 / 이제는 돈바라기이다 / 이제는 고약하다


경제동물(經濟動物) : [동물]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는 동물



  일본말씨인 ‘경제동물’은 사람한테 돈이나 살림살이로 이바지하는 짐승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이보다는 돈에 눈먼 사람을 나타내는 자리에 으레 씁니다. 이런 쓰임새를 헤아려 ‘돈바라기·돈에 물들다·돈에 찌들다·돈에 매이다’나 “돈을 밝히다·돈만 보다·돈만 바라다·돈만 바라보다”로 손볼 만합니다. ‘돈바치·돈꾼·돈꽃·돈쟁이’나 ‘돈님·돈벌레·돈버러지·돈짐승·돈놈’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돈에 빠지다·돈에 눈멀다·돌머리’나 ‘고리다·고린내·고린짓·고리타분하다·코리타분하다’로 손보고, ‘구리다·구린내·구린짓·구리터분하다’나 ‘고약하다·고얀·고얀놈·고얀것·고얀짓’으로 손보고요. ‘미치다·미치광이·미친것·미친짓·미친지랄’이나 ‘바보·바보같다·바보스럽다·바보씨·바보짓·바보꼴·바보꿈’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얄궂다·얄딱구리하다·얄망궂다·얄궂길·얄궂질·얄궂짓·얕다’나 ‘어리석다·어리숙하다·어리보기’로 손보며, ‘절다·쪼다·찌들다·짜들다’로 손보지요. ‘푼수·푼수데기’나 ‘허방·허방다리·허튼·허튼것·허튼놈’으로 손봐도 돼요. ‘허튼이·허튼바람·허튼일·허튼짓’이나 ‘헛것·헛되다·헛말·헛소리·헛이름·헛다리·헛발’로 손보고, ‘헛물·헛바람·헛심·헛일·헛짓·헛짚다·헛헛하다·헛배우다’로 손봅니다. ㅍㄹㄴ



자기 이익과 명예만 위하는 경제동물 같으니라고

→ 제 몫과 이름만 따지는 돈짐승 같으니라고

→ 길미와 이름값만 좇는 돈벌레 같으니라고

《깜찍한 사랑 하니 3》(이진주, 예음, 1989)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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