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소동
전수일 지음 / 작가마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9 ― 돈바라기 삶이 ‘페놀소동’과 ‘경부운하’ 부른다
 : 전수일, 《페놀소동》



- 책이름 : 페놀소동
- 글 : 전수일
- 펴낸곳 : 작가마을 (2008.12.20.)
- 책값 : 1만 원



 (1) 물과 바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아버지가 자동차를 장만하신 뒤부터, 우리 집은 수돗물을 안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끌고 큰 물통 여럿을 차에 싣고는 약수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차에 물통 여럿 가득 채워 돌아오면, 4층에 있는 집까지 나르는 일은 형과 제 몫이었습니다. 이웃집들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데 우리 집만 아버지가 남달리 약수터 나들이를 하며 물을 떠와서는 큰소리로 우리를 부를라치면 이웃집 들을라 부끄러웠습니다. 다들 먹는 수돗물 똑같이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기름 쓰고 시간 버리면서 약수터까지 다녀온다고 그러시는지 하면서.


.. “이 기사는 냄새가 느껴집니까?”흠, 흠, 조금 느껴지는 것도 같고,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머금었던 수돗물을 뱉어내며 이준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수돗물이 멈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정상기나 이준성, 두 사람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수돗물이지만 정지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자 정수계장 마규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정상기의 뇌리에 맴돌던 막연한 불안감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하여 현실화되어 갔다. “정 기사, 수돗물은 그냥 묵어도 되는 기가?” “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수돗물을 날로 먹는 사람도 없으니까.” ..  (21쪽)


 몸을 더 튼튼하게 지키려면 수돗물은 안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었을 테지만, 이러는 한편으로 ‘자가용 없고 수돗물만 마시는 다른 집 앞에서 자랑하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줄곧 약수터 물만 드셨고, 제금나와 사는 저는 홀로 살림을 꾸리는 동안 수돗물만 마십니다.

 그러나 수돗물을 마시면서 이 수돗물이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흘러서 저절로 깨끗해지는 물이 아니라 약품으로 다루어 맑게 보이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나라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물 맑거나 산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산골 깊숙하게 들어가면 골짜기 물을 마실 수 있고,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마시기도 하지만, 돈과 집이 없는 여느 사람한테는 꿈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마시는 셈이라 할 텐데,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뽑아올리느라 이 나라 땅이 푹 꺼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울릉도 앞바다 밑에서 퍼올린다는 물이나 제주섬에서 길어 온다는 물도 걱정스럽습니다. 제주는 물이 모자란 땅인데 그렇게 모자란 물을 자꾸자꾸 바깥으로 빼내어 돈벌이를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 페놀유출사건을 규탄하는 아우성이 사라질 무렵 또다시 구미의 선도전자에서 페놀이 유출된다고 보도되었다. 유출 이유는 페놀 저장탱크 수리와 선도전자가 독점 생산하는 제품이 중단되면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것이다. 낙동강가의 주민들은 또다시 아우성을 쳤다. “이 기사,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선도전자가 독점하는 제품을 생산하드라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상기가 흥분하자 이준성도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서울사람들은 낙동강 물 안 묵는다 이거지요.” 정상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낙동강이 하수처리장입니까? 저장탱크가 하나만 있으란 법도 없고, 여의치 않으면 희석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선도전자는 높은 데하고 모두 이야기됐으니까 걱정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지예, 국가 자체가 환경에 대한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  (57쪽)


 어릴 적, 1980년대 첫머리에도 인천 앞바다는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쓰레기물 때문에 그리 안 맑았습니다. 그러나 갯가에서 망둥이를 낚거나 쏘가리를 낚곤 했고, 영종도 갯벌은 꽤 깨끗했습니다. 오늘날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에다가 새로 짓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한테 영종도는 섬을 한 바퀴 빙 걸어서 돌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기도 하다가 아무 바닷가집에나 “계셔요, 물 좀 얻어 마실게요!” 하고 소리지르곤 들어가서 무자위를 길어 등목을 하고 물 얻어마시고 하던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영종섬에 두루 걸쳐 있던 넓디넓은 소금밭.

 중학교에 다니던 1990년까지, 아버지는 장봉섬 작은 분교에서 교사로 일했기에, 어머니와 형과 저는 방학 때면 함께 섬에 들어가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쯤 주말을 잡아 섬 나들이를 했습니다(어머니는 주마다). 이때면,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배를 타고 들어간 다음, 섬 버스를 잡아타고 삼목도까지 갑니다. 그런 뒤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들어갔는데, 영종도에서 막 배에 내려 섬 버스를 타고 사십 분 남짓 구비구비 섬을 구석구석 돌아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금밭에 또 소금밭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진으로 이런 모습을 찍는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버스에서 운전사 자리 바로 옆에 겨우 낑겨 타며 버스 앞창으로 내다보는 마을 모습은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두 사람이 주위를 살펴도 하수구와 연결된 옥계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물 흐르는 소리는 들렸다 … 어젯밤의 소나기로 옥계천에는 황토물이 고르게 밀려오고 고물상 뒤편으로 하수관 두 개가 매복호의 총구처럼 두 사람을 겨누고 있다. “야아, 절묘하네, 절묘해. 저런 곳에 하수구를,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살인을 위한 총구 같아.” 이웅찬의 감탄에 정상기의 흥분된 목소리가 강물처럼 쏟아졌다. “오폐수의 무단방류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살인행위지. 이 나쁜 놈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비만 오면 무단방류를 해. 예상 강수량이 삼사십 밀리미터 이상 되면 틀림없이 폐수를 방류하지. 그날도 주말에다 일기예보에 한 삼 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니까 미리 계산해서 마음 놓고 페놀을 내뿜은기라. 그런데 이튿날 비가 그치는 바람에 들통이 났지. 이 나쁜 놈들, 그래도 물어 보면 저거만 재수가 없어 들켰다 그럴끼라.” ..  (152∼153쪽)


 1993년 어느 날, 원자력발전소 쓰레기(핵폐기물)를 모으는 곳을 안면섬에 짓겠다고 하여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진 적 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94년에 이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인천 앞바다에 있는 ‘굴업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짓겠다는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천이란, 온갖 화학공장 제철소 제강소 유리공장을 비롯해 쓰레기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공장이 꾸역꾸역 지어져도 시민들 입 하나 벙긋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혐오시설’이라 일컫는 시설을 지어도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어 내쫓길 뿐 군소리를 못한 곳이었거든요. 그리 많지 않은 안면섬 주민은 저렇게 싸워서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못 들이게 막았다지만, 인천이라는 데는 막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었고, 더구나 고작 일곱 사람만 살던 작은 섬 굴업도를 후보지로 삼았다고 했으니.

 그때 일은 지금 와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천을 모르고 인천 앞바다를 모르는 다른 곳 사람들은 ‘인천 앞바다는 어차피 똥물인데 그깟 핵폐기물쯤이야 인천 앞바다에 있는들 무슨 대수냐?’ 하고들 대꾸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진보니 사회운동이니 환경이니 이야기하는 선배나 동기 들도 하나같이 시큰둥해 했고, ‘거긴 워낙 지저분한데다가 외진 곳이니 괜찮지 않냐?’ 하는 대꾸뿐이었습니다. 인천에 사는 동무는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겠니? 뭐, 인천은 옛날부터 그랬잖아.’ 하면서 싸우기 앞서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으로 겪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나마 아버지가 장봉섬 같은 데에서 여러 해 일한 탓에, 그 장봉섬 물이 ‘인천 앞바다임에도 얼마나 맑고 파랗던가’를 잘 알았습니다. 굵기가 팔뚝 만한 도라지를 섬에 있는 얕은 산에 올라 캘 수 있었고, 섬에 사는 아이들은(그땐 저도 아이였으나 저보다 어렸던 아이) 맨손으로 갯벌에서 낙지를 잡았으며, 섬에서 기르는 김은 ‘진짜 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일 돕는 섬 아저씨는 ‘우리 선생님네 아이들이 왔으니 아주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호미로 땅을 파더니 구더기를 잡아서 ‘이거 드셔 보셔요. 얼마나 맛이 좋고 몸에 좋은지 몰라요’ 하고 건네주었습니다. 아저씨가 주시니 먹기는 먹어야겠지만 차마 못 먹었는데, 저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몸이니 꺼렸을 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하얀 구더기는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섬에서는 참말 ‘귀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봉섬은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뭍사람한테 ‘여름철 피서지’로 소문이 나게 되었고, 관광객이 수십 수백 수천 사람 몰려오면서 깨끗하던 물과 모래밭과 산과 나무는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잔뜩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분교살이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고 몇 해 뒤 다시 장봉섬 옹진분교를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본 분교는 ‘여름철 피서객과 교회 젊은이들이 깨뜨린 유리창과 더럽힌 건물과 운동장과 ……’ 차마 더 돌아볼 수 없을 노릇이었습니다.


.. 정상기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일과를 마치고 세 단체(정수장 공무원, 페놀유출 회사 직원, 시민단체)의 저녁식사 모임에 앞서 정상기는 수도과에서 여비를 받았다. 특별하게 지급될 조건도 아닌 관내 출장업무인데 많은 돈이 봉투에 들어 있었고 신길태의 여비도 똑같았다. 페놀 피해 조사를 실시하는 날 저녁회식은 언제나 선도그룹에서 주최하였다. 밥과 술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지는 순서였다 …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선도그룹에서 택시비가 지급되었다. 일인당 이만 원이었다. 마산의 끝자락 댓거리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택시요금은 삼천 원이 채 못 나온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거절 표시에도 이산두의 끈질긴 노력으로 택시비는 빠짐없이 전달되었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고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의기양앙하게 돌아온 이산두는 절도 있는 손동작을 보이며 소리쳤다. “돈 앞에는 장사 없어요.” ..  (164∼168쪽)


 나고 자란 곳이지만 새파랗게 젊던 때는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곳인 인천에서 보고 듣고 겪는 온갖 모습은 예나 이제나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걸어서 오간 학교길에는 늘 제일제당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제일제당 옆으로는 개천 하나가 바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개천은 늘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하여, 이 길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길에 이 길로 안 가고 돌아가면 곱배기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자면 ‘옐로우하우스’ 앞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또다른 길은 연안부두에서 인천제철이니 유리공장이나 제재소니 하는 월미도공단으로 큰짐 실어나르는 산업도로 옆이라서 이쪽으로는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마찬가지였기에, 공장에서 내뿜는 온갖 빛깔 쓰레기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다가는, 코를 막고 몇 초 동안 숨을 안 쉬고 이 더러운 개천 옆을 지나갈 수 있는가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해 보면 늘 미처 다 지나가지 못하고 캑캑 재채기가 나와 더 많이 구린 냄새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비라도 온 날은 냄새뿐 아니라 질척거림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제일제당을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나가야 하는 연탄공장에서 까만 연탄재를 맡으며 몸을 털곤 했습니다.

 딱히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환경 지키기’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991년에 낙동강에 페놀이 흘러들어 크게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때 속으로 피식 웃으며, ‘뭐야?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는 허구헌날 저렇게 코를 찌르는 쓰레기물이 흐르고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연탄공장과 식품공장 옆에 있는 학교 본 적 있어?’ 하는 생각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화학공장과 원목처리장이 학교 둘레에 있어서 ‘우리는 화학공장 옆에서 온갖 매캐한 연기 다 마시고 사는데 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 흐르던 쓰레기물은 ‘정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과 섞이지 않’고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 인천 앞에 있는 섬 갯벌을 더럽히고 바다에 사는 목숨붙이를 죽일’ 뿐이어서 이야기거리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싶은데, 바다로 흘러든다고 해서 우리가 안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이 물을 마시고 우리는 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 똑같이 ‘쓰레기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꼴’입니다. 인천 앞바다로 흘러나가는 쓰레기물은 연평섬 둘레 게한테도 조기한테도 갈치한테도 실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이 물이 흘러흘러 남쪽으로 내려가 수많은 또다른 물고기와 바다목숨한테도 영향을 끼칩니다.


 (2) 소설 《페놀소동》과 우리 삶


 소설 《페놀소동》을 읽습니다. 금세 읽어냅니다. 소설을 펴내 준 출판사에서 교정교열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뿐 아니라 문장부호 잘못된 곳이 참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릴 만큼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글쓴이 전수일 님은 문학쟁이가 아니라 아직 글 여밈새는 어수룩한 곳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수룩함이야 이분이 처음으로 내놓은 문학작품인 만큼 앞으로 얼마든지 탈바꿈하면서 한결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전수일 님 당신이 몸소 겪고 치러낸 ‘페놀소동’ 이야기 속내로 빠져듭니다.


.. 한국 같으면 복개하여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실적을 쌓았을 (일본 오사카) 시내 중심가 하천에서 푸른 물이 폭포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상큼한 물 냄새까지 솟아올랐다. 마산의 하천이라면 쥐새끼가 먹이를 찾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자리에 버섯 모양의 하얀색 기구가 촘촘히 장치되어 있다. “저기 뭐이고?” 마규현이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서 소리쳤다. “소형 폭기조 같은데?” … 더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개되는 하천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코를 박고 누워 있다. 정상기는 자기도 몰래 얼굴이 찌부러졌다. 어릴 적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심 하천은 이제 이룰 수 없는 우리의 꿈이 되는가? 무산보다 더 복잡하고 현란한 오사카의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머리속에 울려나온다. 오사카의 도심 하천을 넋 빠지게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에 정상기는 짜증이 났다 ..  (127, 173∼174쪽)


 책을 덮으면서 일본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님이 쓴 《소설 복합오염》이 떠오릅니다. 일본사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 쓴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가 떠오르고,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가 떠오릅니다. 세 가지 모두 일본에서뿐 아니라 일본 밖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환경문학’이라고 하는데, 소설 《페놀소동》은 이에 못 미치지만, 곰곰이 읽고 생각하고 되짚을 우리 삶이 아니냐 싶습니다.

 문득, 일본은 일본대로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치르고 이겨내면서 새로운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구나 싶은 한편, 우리는 우리대로 수없이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있지만, 한바탕 ‘소동’으로만 그치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문학으로 꽃피우지 못하는가 싶습니다. 소동이 터지는 그때부터 얼마 동안 세상을 뒤흔드는, 그러니까 바람 따라 지나가는 이야기거리로만 그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정 기사님, 우리 실장님은 맑은 물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  (114쪽)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 미국이든 러시아든, 또 유럽이든 아시아든, 환경을 업신여기면서 일어나는 모든 아픔은 돈 때문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돈 앞에 다른 모두를 눈감은 매무새 때문에, 또한 돈을 휘두르는 이 앞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똑같은 일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원진병과 온산병은 똑같고, 온산병과 페놀오염은 똑같으며, 페놀오염과 중금속오염은 똑같습니다. 중금속오염은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수은 문제와 똑같고, 예방주사 수은은 식품회사에서 ‘이제는 MSG를 더는 안 쓴다’고 밝히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느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 “정 기사님, 지금도 낙동강 원수에서 페놀이 잡힙니다. 비가 오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  (201쪽)


 참말로 우리는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애써 번 돈은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쓰고 있을까요. 돈을 버는 동안, 또 돈을 쓰는 동안 우리 삶터는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땀흘려 일을 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동안 우리 터전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뚫으려는 물길은, 나라를 살리는 물길이 아니라 나라를 집어삼키는 돈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 삶을 살찌우는 돈푼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 돈벌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만 쌓아 놓으면서 물길을 파고 있음을 꿰뚫어보았기에 거침없이 돈바라기 물길을 뚫으려고 하며, 이런 물길트기를 손뼉치며 반기는 사람도 꽤 많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2.2.14.흙.ㅎㄲㅅㄱ)


글쓴이 전수일 님은
1955년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고, 영남대학교에서 공과대학을 마친 뒤 1983년부터 남해군 보건소에서 일하다가 1987년에는 마신시 칠서수자원관리사무소 실험실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청수환경’ 대표로 일했다. 소설 《페놀소동》은 전수일 님이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환경 문제에 등돌리고 있는 잘잘못을 파헤치면서 고발하고픈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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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6 : 헌책방에 안 가 보니 헌책방을 모른다

 헌책방에 가 보지 않은 분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얻고 어떤 마음밥을 먹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분이 도서관 얼거리나 책갖춤을 모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고 도서관이고 찾아가 보도록 일러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이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못하거나 안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는 회사일 하랴 바쁘고, 회사 다니기 앞서는 대학교에서 학점 따랴 사랑놀이 하랴 바쁘며, 대학교 다니기 앞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싸움 치르랴 바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우 틈이 나는데, 이무렵 아이들 손을 잡고 헌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도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사느라 바빠 제때 제곳에서 아이들을 못 챙기지 않았을는지요.

 골목동네에 살아 보지 않은 분은 골목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며 어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지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골목동네를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는 으레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빌라에 살며, 골목에서 이웃집과 문과 담을 마주하면서 늘 얼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이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골목길 안쪽 모퉁이나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너른 볕바른 자리에 놓인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동네 할매 할배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모릅니다. 사진으로는 보고 말로는 들을지언정,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나도 왜 ‘철거민이 생존권을 외치’는지, ‘보상 받고 떠나면 될 일을 왜 저리 난리법석’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삶터는 고향이 아닌, 돈굴리기를 하고자 잠깐 머무는 곳이거든요. 스무 해조차 채 버티지 못하는 곳은 집도 보금자리도 아닙니다. 부동산일 뿐입니다.

 지난주에 동네 헌책방 마실을 하면서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전파과학사,1985)이라는 작은 책을 장만했습니다. 글쓴이는 장학사를 하면서 여러 국민학교(옛날이니까) 자연시간 시찰을 나가며 겪은 일을 적어 놓는데, 요오드 실험을 하는 아이가 틀림없이 검은빛으로 나왔음에도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하더랍니다. 알코올램프가 넘어지면 물을 부어야 하는 줄 모르는 교사들 이야기를 보면서, 주먹구구요 점수따기 주입교육만 되풀이되는 예전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그예 슬플 뿐입니다.

 아침에 구청(인천 동구청)에서 열린 ‘동인천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민설명회’라는 데에 다녀왔습니다. 주민 숫자가 몇 만 사람임에도, 걸상을 고작 150개 갖다 놓았고, 골마루까지 북적인 주민들 앞에서 ‘돈없는 사람한테까지 재정착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합니다. 두어 시간 내내, 재개발 정책을 꾸리는 분은 자기 사는 동네를 재개발로 밀어없애는 일을 할까 안 할까 궁금했습니다. (4342.2.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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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3 : 한 번 보고 버립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다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 때문에 골목마을 옥탑에 자리한 우리 집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옆지기와 아기가 걱정이 되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 사는 집으로 옮겨 지내기로 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아파트는 불을 따로 넣지 않아도 집온도가 20도 안팎입니다. 불을 넣어도 방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불 안 넣은 마루와 다른 방은 영 도 밑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우리 집하고 사뭇 견주게 됩니다. 이러니 골목집에 살던 이들도 아파트로 옮겨 살고픈 꿈을 꿀는지 모릅니다만, 골목집도 냉난방 시설을 손질해서 지낼 수 있다면, 굳이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 싶습니다. 달삯 내며 살아가는 이들 스스로 집을 고칠 겨를이란 없습니다만.

 인천집 물이 얼어붙을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종로3가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용산에서 내려 동인천 가는 급행을 기다립니다. 손이 시리고 날이 차지만 한손에는 책을 쥐고 한손에는 볼펜을 쥡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빈자리에 끄적끄적 몇 마디 적어 놓는데, 날이 추워서 볼펜이 잘 안 나옵니다.

 전철이 들어옵니다. 아침때라 그런지 타는 이가 얼마 없습니다. 빈자리에 띄엄띄엄 공짜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아마, 앞서서 이 전철에 탄 이들이 내리면서 그 자리에 놓아 두었나 봅니다. 얼마 있자니 헌 신문 모으는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지팡이로 선반 위에 놓인 것은 툭툭 쳐서 떨구고, 자리에 놓인 것은 손으로 집어 옆구리에 낍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를 조금 넘긴 때인데, 저 공짜신문은 몇 시쯤 사람들한테 읽히고 이렇게 금세 폐휴지 나라로 가게 될까요.

 뒤뚱뒤뚱 걷는 할머니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저 신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신문종이로 쓰여진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뒤잇습니다. 이 신문을 만드느라 땀흘린 기자도 불쌍하고, 사진가, 조판원, 인쇄공, 배달부, 또 지하철역 나들목마다 옷 차려입고 한 장씩 나누어 주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불쌍하다고 느껴집니다. 고작 하루치도 아니요 한 시간치도 아니며 몇 분치 몫으로 쓰이다가 사라져야 하는 요 제법 도톰한 공짜신문들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 땀과 얼마나 많은 자연자원을 여기에 바치고 있는가요. 공짜신문에 고개를 처박는 사람들마저 불쌍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곱고 아름답고 훌륭한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이 공짜신문에 바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신문을 만들고, 나누고, 보고 하는 데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또다른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저냥 시간 때우기에 좋아서 만드는 신문이고 읽는 신문인가요. 그저 날마다 새소식을 돈푼 안 들이고 살펴볼 수 있으니 좋은 신문인가요. 하루도 못 가는 새소식을, 한 시간도 못 가는 새 이야기를, 몇 분 스윽 스치면 또다시 쏟아지는 새소식과 새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받아먹어야 하는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부품과 마찬가지로 내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짜신문처럼, 날마다 산더미같은 쓰레기가 되는 공짜신문처럼, 우리 몸과 마음을. (4342.1.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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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5 : 좋은 책 하나를 읽으면


 세상을 꿰뚫는 눈을 일러 주는 책은 꾸준하게 나옵니다.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드는 눈길을 보듬어 주는 책은 지며리 나옵니다.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도록 이끄는 책은 한결같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책들이 널리 팔리거나 읽히는 일은 뜻밖에도 드뭅니다. 재미가 있어서 많이 팔리는 책, 다들 많이 읽는다 하여 제법 팔리는 책은 있으나, 담긴 줄거리나 알맹이가 참으로 훌륭하기에 골고루 읽히며 우리 마음밭을 북돋우게 되는 책은 생각 밖으로 얼마 안 됩니다.

 누구나 《태백산맥》과 《토지》와 《삼국지》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바탕지식이 없어도 어느 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탕지식이 없는 만큼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없고, 바탕지식이 얕은 만큼 한결 애틋하게 받아먹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저마다 제 그릇이 있어서 제 깜냥껏 좋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다만, 스스로 바탕지식을 키우지 않거나 마음그릇을 넓히지 않고서는 ‘책으로 얻는 재미’와 ‘책으로 나누는 즐거움’이 그 한때로 그치게 될 뿐, 내 이웃과 둘레로 퍼져나가지는 못하기 일쑤입니다.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읽도록 손길이 뻗쳐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읽은 분이라면 시나브로 《제7의 인간》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쳐야 하지 않느냐 싶고, 《제7의 인간》 같은 책을 읽은 분은 으레 《일본군 군대위안부》 같은 책으로 손길이 뻗치리라 봅니다.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손길이 뻗쳤다면 《니사》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칠 테며, 《니사》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친다면 《산골유학》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칩니다. 《산골유학》 같은 책으로도 뻗친 손길은 《빅토르 하라》 같은 책으로도 뻗치고, 또다시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로도 뻗치며, 《골목 안 풍경》이나 《연변으로 간 아이들》로도 뻗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 하나 읽은 손길이 그 책 하나로 그치는 일이 없으며, 이러한 손길은 책을 살피는 손길로만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 모두를 둘러싼 우리 삶터를 헤아리는 손길로도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만 읽는 손길이라면,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도 《몽실 언니》나 《초가집이 있던 마을》로 뻗치지 못합니다. 뒤이어 《산골마을 아이들》과 《탄광마을 아이들》로 이어지지 못하는데, 지식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삶(실천)을 말하는 책임을 보지 못합니다. 한꺼번에 뒤엎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부터 작은 한 가지부터 갈아엎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 됨을 말하는 책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혼자 나아가지 말고 함께 나아가자고 하는 책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엊그제, 《바다로 간 플라스틱》을 덮으면서, 이 작은 책에 담긴 넋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곱씹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한편으로, 아무리 이 작은 책을 읽어내 주더라도 우리 생각과 매무새와 삶 모두 달라지거나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 책이 곧잘 팔리게 되더라도 무슨 뜻이 있을까 싶더군요. 책은 읽으라고 있으며, 책은 읽어서 좋을 수 있지만, 돈에 눈멀어 만들어지는 책이 있고, 책만 읽어 머리통만 무거워지는 얼간이는 조금도 좋지 않습니다. (4342.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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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 느낌글은 예전에 한 번 썼지만, 이번에 세 번째로 읽으면서 다시금 틀을 갖추어서 써 보기로 한다... 



 이 책 하나 73 ―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는 똑같다
 : 존 버거+장 모르, 《제7의 인간》



- 책이름 : 제7의 인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차미례
- 펴낸곳 : 눈빛 (2004.11.11.)
- 책값 : 12000원



 (1) 동네와 집과 사람


 제가 동네에서 즐겨찾는 구멍가게 할배는 지난해 가을께 가게에 셈틀 한 대를 들여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낡은 녀석을 물려받으셨는지 새로 장만하셨는지 모르지만, 구멍가게 할배는 한동안 당신 자리 옆에 멀거니 모셔 두기만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셈틀에 들어 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인 ‘프리셀’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여느 때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며 손님을 기다리지만, 요사이는 셈틀놀이에 푹 빠져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 이민노동자들은 노동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팔러 온다. 그는 어떤 한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그에겐 아무런 권리도 주장도 없으며, 그 일자리를 채우는 것밖에는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동안은, 돈도 받고 숙소도 제공된다. 더 이상 그것을 안 할 때에는, 그는 처음에 출발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라 기계 관리 인부, 청소부, 땅 파는 인부, 시멘트 섞는 인부, 세탁부, 공원 따위이다 ..  (62쪽)


 구멍가게 할배는 지금 동네 골목길 안쪽에 장만해서 살고 있는 집이 1층과 2층을 더해서 100평쯤 된다고 하는데, 이 집을 장만하여 살기까지는 오래도록 땀흘리고 애썼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할배가 들려주는 말도 있지만, 말씀으로 들려주지 않아도 몸으로 느낍니다. 어느 골목집 이웃이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인천에서도 연수구나 송도새도시와 청라새도시 같은 데, 그리고 웬만한 서울하고 견주면 터무니없이 싼 집값이요 땅값이라고 할 테지만(한 평에 200만 원도 잘 안 쳐 주니), 이렇게 싼 땅에서 마련한 싼집이라고 하여도 돈 10원을 아끼고 갈무리하면서 살아가는 긴 세월 끝에 장만한 집이라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당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집이 아닌 당신 손으로 일하여 일군 집이라, 가게며 집이며 둘레 골목길이며 쓰레기나 비닐봉지 하나 떨어지거나 구르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몇 가지 안 되는 물품을 늘여놓고 있어도 흐트러짐 하나 없고, 가게 유리문이며 간판이며 뿌옇게 먼지가 앉은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할배 구멍가게뿐 아니라 둘레 곳곳에 자리한 다른 구멍가게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어수선하거나 지저분하게 차린 구멍가게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고작 보리술 한두 병에 주전부리감 안주 한 점쯤 사러 가는 구멍가게입니다만, 이와 같은 매무새에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이제 당신들은 나이도 나이이고 살림 걱정이 따로 없으니, 구멍가게에서 셈틀놀이만 하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세월을 보내실 수 있을 텐데, 오랫동안 몸에 익은 버릇 그대로 빈병을 모으고, 손수 자전거로 물건을 실어 오며, 당신 집 페인트 바르기나 손질을 누구한테 맡기지 않습니다. 가게 옥상에는 당신들 나름대로 옥상 텃밭을 일구고, 눈이 오면 골목길 눈을 스스럼없이 치우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일을 그예 즐겁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서울 종로구 평동 안쪽 골목집에서 살 때에, 그 집 임자인 할배는 ‘낡은 집 손질’을 꼭 당신 스스로 했습니다. 나무로 지은 적산가옥이라 뒷간이 없고 쥐가 함께 사는 집이었는데, 일꾼을 사지 않고 당신이 손수 시멘트와 모래와 물을 섞어 공사를 했고, 전기공사니 보일러공사니 꼭 손수 하면서 세입자가 바라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온도가 많이 떨어진 겨울철에는 새벽같이 나와서 수도가 얼지 않게 틀어 놓으라 부르고, 어쩔 수 없이 수도가 얼면 이를 녹이려고 함께 끙끙댔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 달삯 내며 살고 있는 집 임자인 할배는 아무런 집일을 할 줄 모릅니다. 오로지 돈만 아는 분입니다. 늦은밤 아기를 재우고 고단한 다리 쭉 뻗고 잠들면서 도무지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일을 떠올려 보곤 하는데, 누구나 어릴 적부터 길들고 익숙해 온 대로 늙어서까지 살지 않느냐 싶고, 자기 삶을 가꾸는 손은 자기가 움직이는 손이지, 돈으로 사서 쓰는 손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 살림이 확 피면서 우리도 누군가한테 방 한 칸 내주며 달삯을 받을 집임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세입자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름다운 집임자가 되자면 어떠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느낍니다.


.. 그들은 제일 힘들고 제일 하기 싫고 보수가 적은 직종, 예를 들어 독일의 플라스틱ㆍ고무ㆍ석면 공장 같은 데서 일한다. 콜로뉴에 있는 포드 공장의 일관 생산 라인에서는 40퍼센트의 노동력이 이민들이며,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의 제작공장에서는 40퍼센트, 고텐부르크의 볼보 공장은 45퍼센트가 이민들이다. 살기 위해서 그는 자기 목숨을 팔 수도 있다 ..  (90쪽)


 자전거를 타면 조금 멀리까지, 두 다리로 걷자면 한 시간쯤 되는 거리까지 골목마실을 합니다. 이때마다 우리 식구는 낯익은 길을 새삼 둘러보기도 하고 낯선 길에 살금살금 첫발을 들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리는 집살림을 느끼는데, 흔히 말하는 ‘자동차 들어가지 못하는’ 어둡거나 허름하다 싶은 뒷골목이 ‘자동차 씽씽 내달리거나 우뚝 서 있는’ 제법 넓고 밝으며 번듯번듯 올라선 건물 있는 큰길보다 깨끗하곤 합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바라보면 뒷골목은 으스스하고 꾀죄죄하다는 느낌이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 보면, ‘사람 사는 동네’가 으스스하고 꾀죄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 해마다 다른 데로 옮겨 살아야 하는 동네, 끝없이 재개발 문제에 부닥쳐야 하는 동네, 뿌리내리며 사는 동네가 아닌 잠깐 머물다가 가거나 구경꾼이 스치고 지나는 동네가 으스스하고 꾀죄죄합니다.


.. 예비노동력의 대부분이 이민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들은 필요할 때에는 ‘수입’을 해 올 수 있고, 일시적으로 남아돌 경우에는 ‘수출(귀국시키는 것)’을 할 수가 있으며, 이민노동자들은 정치적인 권리도 없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치적인 충격도 받을 필요가 없다 ..  (147쪽)


 어느 때에는 뒷골목 으슥하다 싶은 곳에서 담배 태우는 아이들을 마주칩니다. 이 아이들이 오죽 담배 태울 데가 없으면 이런 데서 태울까 싶기도 하다가는, 학교 뒷간에서도 태우는데 이런 골목이야 아무것도 아닐 테지 싶고, 왜 이처럼 뒤로 숨어 가면서 태우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겉멋으로 태우는 아이들이 있지만, 속이 타고 애가 타서 태우는 아이들이 틀림없이 있기에,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속태우거나 애태울 일을 처음부터 일으키지 않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아이들 매무새를 살피면, 아이들은 제 어버이 하는 대로 고스란히 보여주거나 제 이웃 하는 대로 꾸밈없이 드러납니다. 늘 보는 모습대로 배우고, 늘 겪는 대로 익숙해지며, 늘 치르는 대로 버릇이 됩니다. 얼음과자 봉지를 휙휙 버리든,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든,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 어른이 하는 양하고 똑같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 어른이 당신 집 둘레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는 매무새였다면, 아이들 또한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다니지 않고 얄궂은 짓을 함부로 일으키지 않습니다.


.. 고용주들은 프롤레타리아보다도 낮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의식화되면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노동자도 너무 오래 체재하지 않도록 외국인 노동력을 끊임없이 ‘로테이션’시킬 계획을 세운다 ..  (154∼155쪽)


 그나저나, 학교옷을 입고 골목 안쪽에서 담배 태우는 아이들은 담배를 어디에서 샀을까요. 이 아이들은 학교옷을 벗으면 더는 골목 안쪽에서 담배를 안 태우고 떳떳하게 큰길을 거닐며 태우게 되는데, 열여덟과 열아홉이라는 숫자 사이에는 무엇이 가로놓여 있을까요. 열여덟이라 하여도 ‘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진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아이들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담배를 태우는 아이와 담배를 안 태우는 아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군대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병과 담배를 안 태우는 사병은 어찌 다를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담배 태우는 일이 좋지 않다면, 아이들과 어울리는 어른들도 학교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옳습니다. 나아가, 옳지 않은 담배가 우리 손에 쥐어지지 않도록 나라에서는 담배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고, 학교 바깥에서도 거리낌이 없으며, 나라에서는 담배 팔아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2) 저잣거리와 헌책방과 사람


 아기를 안고 저잣거리 마실을 할 때면, 우리가 물건을 한 번도 안 산 집 할매도 아는 척을 하면서 “아이고, 아기가 벌써 그렇게 컸어요? 이뻐라.” 하면서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면서 들여다보십니다. 우리한테는 살 물건이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되었지만, 늘 그 자리에서 수십 해 세월을 보낸 할매한테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마주치는 가운데 시나브로 이웃처럼 느끼게 되었구나 싶습니다. 저잣거리 끝에 있는 구멍가게 할매와 할배는 손뼉까지 치면서 “어머 얘 좀 봐.” 하면서 좋아하십니다.

 엊저녁, 옆지기가 성가대 연습을 하러 성당에 갔는데, 집에서 홀로 아기를 보다가 아무래도 엄마젖을 자꾸 찾기에 아기를 포대기에 폭 싸서 슬쩍슬쩍 골목마실 조금 하다가는 성당으로 찾아가 엄마젖을 물렸습니다. 성가대 봉사를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아줌마 아저씨 또는 ‘이제 막 할머니 소리를 듣는’ 분들입니다. 당신들은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리며 아빠한테 안긴 아기를 보고 눈웃음을 치거나 젖을 무는 아기를 뿌듯해 하는 눈빛을 보냅니다.


..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  (64∼65쪽)


 때때로 저한테 ‘무슨 책 있어요?’ 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거는 분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한 번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치 ‘헌책방 장사를 하는 듯’ 깔아 놓고 말문을 엽니다. 그러나 저는 헌책방 나들이를 즐겨다니면서 헌책방 사진을 찍고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 옮겨 나누는 일을 할 뿐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동네에서 도서관을 꾸리고요. 오늘도 한참 바쁘게 일하는데 ‘엘피판 있어요?’ 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래, “저희는 도서관입니다.” 하고 대꾸하니, ‘그러면 엘피판 살 수 있는 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합니다. 제 전화번호를 아셨다면 ‘사진책 도서관을 하는 사람 일터’로 알게 되었을 텐데, 이런 이름은 들여다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바라는 물건만을 찾’습니다.

 그래도 저는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이쯤에서 말을 끝낼 수 있습니다. 헌책방 장사를 하는 분들은 ‘손님 되는 이들이 얼마나 나이가 많고 적은지’ 알 길이 없으나 으레 말을 깝니다. 다소곳하거나 부드러운 말씨로 묻는 사람이 드뭅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그저 책이 좋아 헌책방을 나들이하는 사람은 헌책방 일꾼한테 ‘무슨 책이 있나요?’ 하고 묻지 않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 조용히 책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골라서 사고, 마음에 드는 책이 없으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조용히 나갑니다.


.. 이민을 가는 노동자들은 원래 태어난 나라에서 일자리가 없이 실직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나라 그 사회가 그들의 양육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번경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 지금까지 집계된 바로는, 한 이민노동자들의 양육, 그가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그의 조국의 국민경제가 부담하는 액수가 약 2천 파운드에 이른다. 한 명 한 명의 이민이 도착할 때마다, 저개발된 경제권에서 개발된 경제권에 대해 그만한 액수를 희사하는 셈이다. 게다가 공업화된 나라가 차지하는 저축액은 또 훨씬 막대하다. 그곳의 좀더 높은 생활 수준으로 계산해 본다면, 그의 조국에서 열여덟 살짜리 노동자를 ‘생산해 내는’ 비용은 1인당 8천 파운드에서 1만6천 파운드는 된다. 이미 다른 곳에서 생산되어 온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은, 도시화된 국가가 매년 8백억 파운드 이상을 저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이다 ..  (72∼73쪽)


 며칠 앞서 동네 헌책방에 들렀을 때입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밖에서 누군가한테 큰소리를 치면서 한소리를 합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헌책방 문간에 쌓아 놓고 있던 만화책 꾸러미를 슬그머니 들고 튀려다가 붙잡혔답니다. “야, 너희들 그거 왜 가져?” 하고 아주머니가 큰소리를 치니,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따가 가지고 오려고요.” 하고 둘러대더라고, 그래서 “너희들이 책을 가지고 싶으면 너희들이 일해서 번 돈으로 사 가지, 그렇게 남의 노동을 가로채도 돼?” 하면서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한 다음 돌려보냈다더군요.

 헌책방 아주머니는 이 아이들을 경찰서로 넘길 수 있었고, 더 따끔하게 나무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끔한 소리를 들었다 한들, 다른 이 물건을 슬쩍하려던 그 마음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아이들은 어찌하다가 다른 이 물건을 슬쩍해서 제 것으로 삼고프도록 마음이 거칠어지고 무너졌을까 모르겠습니다. 참말 돈이 없었는지, 아니면 헌책방 물건은 아무나 그냥 가져가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지.


.. 1973년 초에 네 명의 스페인 출신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반나절 동안 파업을 벌였다. 그들끼리만. 그들은 즉각적으로 해고됐다. 일자리가 없으니 그들은 그 나라에 남아 있을 권리가 없었다. 그들은 강제로 스페인으로 송환되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극렬분자’라는 그들의 기록이 틀림없이 스페인 당국에 통지되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노조들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176쪽)


 곧 새로운 학년을 맞이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언제부터인가 ‘경제 불황 속 헌책방 찾는 시민들’이니 ‘새책 한 권 값으로 두어 권 살 수 있다’느니, ‘파격 할인으로 불황 넘는다’느니 ‘불황 속 이색 호황’이라느니 하는 판에 박은 기사가 드문드문 나옵니다. 이런 기사에서는 한결같이 헌책방 헌책 하나를 ‘싼 물건’으로만 여깁니다. ‘마음밭을 살찌우는 숨어 있는 책’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헌책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고, 헌책방 일꾼은 어떤 책을 캐내어 갖추는지를 곰곰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여느 때에 헌책방을 찾아가 보지 못한 탓이라고 느낍니다. 여느 때에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면 해마다 판에 박은 기사를 쓰는 일은 없을 테고,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어떤 맛과 멋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못 보는 일은 없을 테지요.

 이와 똑같이, 신문사 기자들이니 방송사 피디들은 여느 때에 도서관 나들이를 못합니다. 안 한다고 해야 할까요. 일에 쫓기고 너무 바쁘다고들 하니까. 이리하여 우리 나라 도서관 형편이 어떠하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손질하며 고쳐나가야 하는가를 다루지 못합니다.

 좀더 살피면, 헌책방과 도서관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세상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삶터 이야기를 깊이있게 되씹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와 겨레에 닥친 이야기를 한결 널리 꿰뚫어내지 못합니다. 모두모두 여느 때에 온몸으로 껴안지 않기 때문이며, 여느 자리에서 온마음으로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녀평등 문제라든지, 군대폭력 문제라든지, 막개발 문제라든지, 서민들 일자리 문제라든지, 이주노동자 문제라든지, 국가보안법 문제라든지, 또 다른 어떤 문제라든지, 뻥뻥 크게 터져야만 가까스로 눈길을 보냅니다. 뻥뻥 크게 터지지 않으면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뻥뻥 크게 터졌더라도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눈길을 거두어들여, 일이 제대로 풀리건 풀리지 않건 아랑곳하지 않고 맙니다.
 





 (3) 《제7의 인간》과 ‘없는 사람’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이름이 자그맣게 붙은 사진이야기 《제7의 인간》을 세 번째 읽습니다. 1991년에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소개된 이 책은 2004년에 오랜만에 다시 빛을 보았습니다.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제7의 인간》은 1970년대 첫머리 유럽 이야기이기에,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서른 해도 훌쩍 넘은 옛날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삶터를 돌아보니, 숫자와 나라이름과 사람이름만 고치면 꼭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터키와 스페인과 그리스와 포르투갈과 ‘유럽에서 가난하다고 하는 나라’에서 ‘유럽에서 잘산다고 하는 나라’인 스위스와 프랑스와 독일과 스웨덴 들로 ‘몸팔러 가는’ 이야기가 담긴 《제7의 인간》인데, 2009년 우리 나라에는 몽골이며 티벳이며 중국조선족이며 필리핀이며 우즈베키스탄이며 버마며 네팔이며 스리랑카며 터키며 인도며 …… 수많은 나라에서 ‘몸팔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잡히지 않으나 적어도 30만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한국땅에 있다고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이 마을을 평생 동안 알고 있었다. 떠나는 순간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강도는 거의 그의 의지력만큼이나 강력하다. 마을을 떠남으로써, 그는 스스로 그런 느낌을 자초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의 혼란은 많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삼촌은 살아 계실까? 작별을 고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그가 승리해서 돌아올지 패배해서 돌아올지 누가 알 것인가? 도시가 베풀어 주는 것은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지,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건 아니다 ..  (34∼35쪽)


 우리 나라에도 제법 ‘이주노동자’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견주면 거의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대면 하나도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어요.

 모두 똑같은 노동자일 뿐인데, 우리 스스로 ‘정규직-비정규직-이주’ 이렇게 갈라 놓습니다. ‘이주’노동자라 하여도 나라에 따라 가릅니다. 지금은 ‘정규’일는지 몰라도 앞으로 어느 날 ‘비정규직’으로 바뀌거나 자기 스스로 ‘이주’노동자가 되어 나라밖으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데에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살피면, 노동자가 제 대접을 받도록 하지 않는 얄딱구리한 사업주한테 말썽거리가 있습니다만, 노동자가 빼앗긴 권리를 되찾도록 애쓰지 않는 안타까운 나라한테 골칫거리가 있습니다만, 사업주와 정부를 탓하기 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지 못합니다. 곁에 있는 이웃이 아파할 때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살가운 동무가 눈물을 흘릴 때 고개를 돌립니다.


.. 이민노동자들에게 있는 유일한 현실은 오직 일하는 것과 그에 뒤따르는 피로뿐이다 ..  (185쪽)


 책으로만 읽는 《제7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책이 아닌 ‘내 이야기’로 받아들일 《제7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입니다. 받아들이는 그릇 나름입니다. 받아들여 움직이려는 우리 몸뚱이 나름입니다. (4342.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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