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새싹


  나무로 우거진 숲속은 온통 숲빛이다. 참말 그렇지. 숲이니 숲빛이지. 그런데, 요즈음 이 나라에서는 숲이 숲빛을 건사하기 어렵다. 자꾸 숲 한복판에 찻길을 내려 하고, 관광지를 꾸미려 하며, 돼지우리나 닭우리 따위를 숲에 지으려 한다. 포근하면서 조용한 숲을 만나기란 나날이 힘든 일이 되고 만다.

  나무로 우거진 숲에는 온통 가랑잎밭이다. 가랑잎으로 밭을 이룬다. 가랑잎이 잔뜩 내려앉은 흙땅을 밟으면 발바닥이 간질간질 즐겁다. 땅다운 땅, ‘참땅’을 디디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해마다 나뭇잎이 엄청나게 떨어져서 땅을 뒤덮으면, 이 잎은 고스란히 이곳에서 삭으면서 새로운 흙이 된다. 새로운 흙이 되는 잎은 숲을 더욱 살찌우고, 한결 살아난 숲흙은 새로운 풀이나 나무가 자랄 밑바탕이 된다.

  아무도 숲에 거름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숲에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숲에 이것도 저것도 주지 않는다. 숲은 아무 도움이나 손길이 없이 푸르게 우거진 빛을 이룬다. 숲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논과 밭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슬기롭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 숲을 살뜰히 마주할 수 있으면, 우리 보금자리를 어떻게 가꿀 때에 아름다운가를 느낄 수 있겠지.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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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짝물에 떠내려 가는 가랑잎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떨어질 적에 ‘톡’ 소리가 난다. 바람을 타고 살랑 설렁 하면서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툭’ 소리가 난다. 날마다 톡툭 소리를 듣다 보니 어디에서 뭔 소리가 들리면 이 소리가 나뭇잎 소리인지 풋감 떨어지는 소리인지 새가 똥을 누고 날아가려는 소리인지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애벌레나 열매 따먹으며 내는 소리인지 헤아려 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구리가 폴짝 뛰면서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풀벌레가 펄쩍펄쩍 뛰면서 풀잎을 오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매미가 우는 소리라야 귀에 닿지 않는다. 사마귀가 메뚜기를 잡아먹는 소리도,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리는 소리도, 실잠자리가 한여름에 갑작스레 봉오리를 틔우는 장미나무 가지 끝에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골짜기에 온몸을 담가 물빛을 느끼다가 가랑잎 하나를 만난다. 골짜기에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는 틈틈이 잎을 떨군다. 톡톡 툭툭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렁찬 골짝물 소리에 가랑잎 소리가 묻힐 듯하지만, 참말 하나도 안 묻힌다.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지려는 나뭇잎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저 나무에 닿기에 가랑잎이 골짝물을 타고 흐를 적에 가만히 지켜볼 수 있을까.


  한여름에도 누렇게 빛이 바랜 잎을 본다. 그래, 가을에는 노오란 잎을 보지 않는다. 여름에도 보고 봄에도 본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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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혼자 내려가겠어



  살짝 가파른 길을 아버지 손을 잡고 내려온 산들보라가 골짜기를 코앞에 두고는 아버지 손을 놓는다. 꽤 커다란 바윗돌을 혼자 손을 딛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누나 뒤를 따라 골짜기로 가겠단다. 그래, 좋아. 숲속에서는 네 온몸으로 이것도 만지고 저것도 짚으면서 다녀야지. 네 아버지는 늘 네 곁에 있으니 네 마음대로 어디이든 돌아다니면서 모든 숨결을 받아먹어라.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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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바라보는 골짜기



  큰비가 오래 내리면 골짝물이 붓는다. 골짝물이 크게 불어나면 그야말로 물이 넘친다. 일곱 살 사름벼리가 묻는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많이 흘러? 비가 안 오면 물이 적게 흘러?” 골짜기를 찾아가는 동안 가늘게 듣던 골짝물 소리인데, 골짜기 앞에 서니 귀가 멍하도록 물소리가 터진다. 그리 커다랗지 않은 골짜기이지만, 이 작은 골짜기에서도 물소리는 우렁차고 싱그럽다. 아이한테는 아직 골짝물 소리가 살짝 두려울 수 있을까.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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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산호초
미리엄 모스 지음, 강이경 옮김, 에드리언 캐너웨이 그림, 박종영 감수 / 서돌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7



여기는 어디인가요

― 여기는 산호초

 미리엄 모스 글

 에드리언 캐너웨이 그림

 강이경 옮김

 서돌 옮김, 2008.7.5.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나무를 이야기합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구름을 이야기합니다. 풀벌레를 바라보는 사람은 노상 풀벌레를 이야기합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은 늘 아파트를 이야기하며, 신문을 바라보는 사람은 노상 신문에 나오는 사건·사고를 이야기합니다.


  숲을 바라보며 살기에 숲빛을 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살기에 하늘빛을 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기에 바다빛을 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바라보는 대로 마음에 빛 한 줄기를 품습니다. 더 좋거나 더 나쁜 빛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가꾸는 빛이요, 스스로 일구는 빛입니다.



.. 오랜 세월 서서히 만들어진 눈부신 산호와 수없이 많은 작은 생명으로 가득한 곳 ..  (4쪽)





  이 도시가 저 도시보다 좋지 않습니다. 이 시골이 저 시골보다 낫지 않습니다. 작은 도시이건 커다란 시골이건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일 뿐입니다. 어느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건 스스로 돌보면서 보듬는 삶자리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숨을 쉬는 모든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모든 목숨은 숨을 거둡니다. 바람이 불기에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에서 푸른 바람이 불어 매캐한 도시를 보듬습니다. 매캐한 도시를 떠돌던 바람이 푸르게 우거진 숲으로 날아가면, 매캐한 기운을 푸르게 우거진 숲이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다독입니다.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한여름에는 풀벌레 노래잔치였습니다. 그야말로 풀벌레 나라였다고 해도 될 만했습니다. 이러면서 개구리도 노래잔치를 벌였어요. 한여름 밤은 귀를 살짝 기울이면 밤새 아리따운 노래가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도시에서는 풀벌레도 개구리도 멧새도 노래할 수 없습니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깃들 흙땅이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시골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죽습니다.



.. 부드럽게 흔들리는 바다, 맑은 산호 밭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잔치를 벌이는 곳 (7쪽)




  미리엄 모스 님이 글을 쓰고, 에드리언 캐너웨이 님이 그림을 그린 《여기는 산호초》(서돌,200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합니다. 새책은 벌써 판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고운 빛이 흐르는 예쁜 그림책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하고는 걸맞지 않아 쉬 판이 끊어졌지 싶습니다. 고운 빛이 흐르는 예쁜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들은 고운 빛하고 등지며 예쁜 삶터를 가꾸는 길하고는 엇나가기에 이 책을 알아보는 손길이 얼마 없지 싶습니다.


  참으로 마땅하지요. 산호초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 데나 있지 않겠지요. 지저분한 바다에 산호초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쓰레기를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붓는 도시가 곳곳에 있으면 산호초가 자랄 턱이 없습니다.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바닷가마다 때려짓는데 산호초가 숨쉴 턱이 없습니다. 해군기지와 둑 공사와 4대강사업 따위가 춤을 추니 산호초가 살아남을 턱이 없습니다.


  만화영화 〈폰효〉에도 잘 나옵니다만, 사람들 스스로 온통 쓰레기더미인 터전에서 살아가니, 뭍에도 바다에도 쓰레기만 넘실거립니다. 쓰레기차가 하루라도 쓰레기를 안 치우면 어떻게 될까요? 청소부가 하루라도 쓰레기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소각장에서 하루라도 쓰레기를 태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눈부신 문명이나 문화를 누리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쓰레기와 나란히 있으면서 날마다 어떤 쓰레기를 얼마나 버리는지 모르는 채 쳇바퀴를 돕니다.



.. 바다가 산처럼 높이 솟아올라, 사납게 부서지며, 산호초를 산산조각 내는 곳 ..  (21쪽)




  여기는 어디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도시는 도시대로 쓰레기 나라입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쓰레기 누리입니다. 시골에서는 마을 할매와 할배가 농약병과 비료푸대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못 쓰는 가전제품을 논도랑에도 버리고, 뒷산이나 앞산 기슭에 짐차에 싣고 와서 퍼붓곤 합니다. 시골 아이들이건 도시 아이들이건 과자 빈 껍데기나 음료수 빈 깡통을 아무 데나 버립니다.


  땅에서 스스로 거둔 먹을거리를 손수 갈무리해서 먹을 적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가게에서 돈을 치러 무언가 장만하면 곧바로 쓰레기가 나옵니다.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팔 적에 어김없이 쓰레기가 나옵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쓰레기 굴레에 갇힙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우리 보금자리인가요. 우리 마을인가요. 우리 나라인가요. 우리 지구별인가요. 우리 누리인가요. 우리 우주인가요. 아니면, 남이 사는 터인가요, 내가 사는 터인가요.


  인천 앞바다에 조기가 다시 찾아올 날은 언제쯤이 될까 궁금합니다. 서울 시내 골골샅샅 제비가 다시 찾아갈 날은 언제쯤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무지개와 미리내를 마음껏 올려다보다가 개똥벌레 불꽃춤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 되려나 궁금합니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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