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31 :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지키는 책

 고양이한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먼저, 들고양이. 먼 옛날에는 그냥 고양이였을 테지만, 처음부터 들에서 살던 고양이한테는 들고양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습니다. 다음으로 산고양이(멧고양이). 고양이는 너른 들판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나무가 우거진 산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 다음으로 집에서 지낸다 해서 집고양이. 고양이 가운데에는 사람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녀석이 있는 한편, 사람 손에 길들여지며 사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무리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면서 도둑고양이 소리를 듣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도시가 이루어지면서 길고양이와 골목고양이라는 이름이 새로 태어납니다. 우리 둘레에 이렇게 여러 갈래 이름을 받는 짐승은 드문데, 고양이는 저희가 지내는 곳에 따라 새 이름이 붙습니다. 이를테면, ‘바닷사람-바닷고양이’라든지 ‘섬사람-섬고양이’라든지 ‘뱃사람-뱃고양이’ 같은 이름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제 삶터를 찾아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나오는 이야기책 《미노스》(바람의아이들,2004)가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안니 M.G.슈미트 님은 네덜란드사람이고, 네덜란드에서는 고양이들을 무척 사랑하며 아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고양이를 아끼거나 사랑하지는 않으며, 겉으로는 모든 짐승과 목숨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뒤로는 제 돈벌이와 밥그릇을 붙잡느라 애쓰는 사람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미노스》라는 작품으로 들려줍니다. 이야기책 《미노스》에 나오는 지역신문 기자인 주인공은 어느 날 다짐을 합니다. “맞아요. 증거가 있든 없든 신경 안 쓸래요. 증인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아요!” 하면서,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고양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참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신문에 싣습니다. 그런 다음 아주 마땅하게도 주인공인 기자는 신문사에서 잘리고, 달삯을 내며 지내던 집에서 쫓겨납니다. 주인공인 지역신문 기자는 ‘참 이야기’를 기사로 쓰면 당신을 아끼거나 돌보던 사람들마저 당신한테 등을 돌릴 줄 뻔히 알았고, 모두들 당신한테 손가락질을 할는지 모르지만 ‘써야 할 글’을 끝끝내 씁니다. 왜냐하면, 당신한테는 당신 먹고살 일자리와 잠자리를 얻는 일도 크지만, 당신 마음을 착하고 참되며 곱게 건사하는 일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마데 데레사 님 묵상기도를 엮은 《사랑은 철따라 열매를 맺나니》(민음사,1995)를 읽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돕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야 하며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을 체험해야 합니다(173쪽).”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가난한 이를 돕자면 스스로 가난해야 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고서는 가난을 알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서 가난한 이를 돕겠다며 스스로 가난하게 살며 가난한 삶을 지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두들 부자로서 도울 뿐이요 부자로서 자선과 기부만을 합니다. 가난을 다루는 신문기자 가운데 가난한 신문사에서 가난한 기자로 일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난을 밝히는 책을 내는 출판사 가운데 참말 가난한 살림으로 가난하게 책을 내는 곳은 얼마나 될까요.

 사랑을 하는 사람만 사랑을 말하거나 쓸 수 있고, 평화로이 사는 사람만 평화를 일구거나 지킬 수 있습니다. (4343.7.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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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집, 살림꾼


 사내들이 식구를 벌어 먹여야 한다며 밖에 나와 돈을 번다고 이야기하는데, 모두 말짱 거짓말입니다. 식구를 먹여살리는 사람은 집에서 살림하는 일꾼입니다. 사내들이 밖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못 벌든 안 벌든, 집살림꾼인 계집들은 늘 식구를 모두 다 먹여살립니다. 돈을 번다는 사내한테까지든, 돈을 못 번다는 사내한테까지든, 집살림을 하는 계집은 누구나 먹여살립니다. 가난하여 배고픈 집에 찾아온 손님마저 먹여살리는 살림꾼 계집입니다. (4343.7.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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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과 글쓰기


 글을 쓰고 싶다. 참말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고 싶어 죽을 노릇이다. 오늘 내가 인천에 온 까닭은 바로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오로지 글쓰기에만 내 넋을 바치고 싶고, 골목마실과 헌책방마실에 내 온 얼을 베풀고 싶기 때문이다.

 집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옆지기를 사랑하면서 글을 쓸 수 없다. 이러는 동안 글을 쓸 틈이 없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는 가운데 글이란 참 부질없다. 아이 웃음 한 번 볼 때가 원고지 1000장짜리 글 하나 쓰기와 같다. 옆지기를 꼬옥 안으면 원고지 100장을 쓸 때와 같다. 아이 빨래를 하고 집식구 먹을 밥을 하면 원고지 10장을 쓸 때와 같다.

 바보는 바보라 내 말을 못 알아듣는데, 원고지 1장짜리 글이든 1000장짜리 글이든 모두 똑같은 글이고 아름다운 글이다. 나는 살림꾼으로 지내느라 참말 글쓸 짬을 내고 싶어 미치겠다. (4343.7.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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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앞으로도 (인천) 배다리에는 오실 거지요?” “따로 배다리에 온다기보다, 저는 헌책방하고 골목 때문에 와요. 인천(또는 인천 배다리)에 헌책방이 모두 사라지거나 인천에 골목길이 죄다 밀려나고 말면, 저는 인천에 올 까닭이 없습니다.” (4343.7.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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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밝히는 책읽기


 나날이 눈이 좋아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날이 목숨줄 늘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한결 나으며 아름다운 책을 쓰고 엮고 읽고 나누는 사람은 외려 줄어듭니다. 나날이 어두워지는 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가운데 스스로 싱그럽고 힘차게 거듭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눈이 밝을 때에도 밝은 책을 사랑하지 못해 왔으니, 눈이 어둡고 나서도 밝은 책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눈이 밝을 때에 밝은 책을 사랑하던 사람은 눈이 어두워지고 말아 책을 더 읽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 때에는 ‘책을 읽지’ 못하지만 ‘삶을 읽으’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4343.7.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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