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Zone - 선우 家의 자연 이야기, 선우중호 가족 사진집
선우중호 사진 / 눈빛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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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 살 돈으로 사진책 사소서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9] 선우중호 가족 사진집, 《FAMILY ZONE》



- 책이름 : FAMILY ZONE, 선우家의 자연 이야기
- 글, 사진 : 선우중호와 네 식구
- 펴낸곳 : 눈빛 (2009.12.2.)
- 책값 : 3만 원 

 




 (1) 사진기는 어떻게 사야 하는가


 지난 2007년 4월 15일부터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문을 열어 놓고 있던 사진책 도서관은 2010년 6월 15일에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세 해하고 두 달을 비싼 달삯 치르며 버티었으나,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사진벗을 마주하기 힘들고 벅차 시골마을로 살림터와 책터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꾸려야 할 책짐이 5톤 짐차로 석 대를 가득 채우고 남을 만큼 되기에 몇 달 앞서부터 틈틈이 책을 묶어 두고 있습니다. 집살림 꾸리고 아이 함께 돌보는 가운데 겨우 틈을 조금 내어 책을 묶기에 퍽 오래 걸립니다. 내 책들이 어느덧 열한 번째 묶이며 터덜터덜 먼 나들이를 떠나는가 하고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에 옮기면 적어도 열 해 동안은 느긋하게 쉬도록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해 봅니다. 두 번 다시 안 옮겨도 되도록 살림돈이 넉넉하여 마땅한 집 하나를 마련한다면 가장 좋을 테지만, 우리 딸아이가 오늘 제 나이만큼 크더라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저 앞으로 또다시 책짐을 꾸려야 할 수 있으니, 나중에는 더 많은 책을 더 오랜 품을 들여 묶고 나를 만한 힘이 튼튼히 살아 있도록 몸을 추슬러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한창 책짐을 꾸리고 있을 때에 도서관에 손님 두 분 찾아옵니다. 살짝살짝 책 구경을 마친 두 분이 도서관을 나설 무렵 저한테 사진 한 장 찍어 달라 말씀합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있던 분이 당신 짝꿍을 찍어 달라 말씀하는군요. 그냥 당신이 찍으면 될 텐데 왜 나한테?

 한 분만 찍을 까닭이 없기에 두 분이 함께 앉으면 찍겠다고 해서 두 분을 앉히고 사진기를 건네받습니다. 사진기에 붙인 렌즈는 제가 쓰는 렌즈하고 같은 값싸구려이지만, 사진기 몸통은 저로서는 꿈꾸기 어려운 ‘마크 머시기’라는 녀석입니다. 사진기를 왼손으로 감싸고 오른손으로 단추께를 만지작거리는데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퍼뜩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돈있는 사람이라면 마크 머시기를 쓰는구나’

 웃는 얼굴로 걸상에 앉은 두 분을 사진기로 들여다봅니다. 오, 이런. 같은 값싸구려 렌즈이지만 마크 머시기에 붙은 이 렌즈로 들여다보이는 모습이란 넓고 시원합니다. 한 마디로 아주 좋습니다. 속으로 눈물 찔끔 납니다. 그런데 사진 한 장 두 장 시험판으로 찍어 보니 제가 생각하던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살짝 생각하다가 사진 설정과 화이트밸런스 설정 두 가지를 눌러 봅니다. 아하, 이분은 이 두 가지 설정을 처음 그대로 놓고 있군요. 사진기를 장만한 사람들은 사진 설정이나 화이트밸런스 설정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당신 사진감에 맞추어 손질해 놓아야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감도만 800으로 돌려놓아 실내에서 어둡지 않게 나오는 데에만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늘 찍는 대로 사진 설정은 ‘풍경’으로 고치고, 화이트밸런스 설정은 ‘그늘’로 고칩니다. 저는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고 두 해쯤 뒤에 비로소 이 설정을 처음 깨달았는데, 어느 디지털사진기이든 필름사진기와 견주어 ‘좀더 밝게’ 찍히고 ‘좀더 날카롭게’ 찍힙니다. 디지털사진기에 맞추어져 있는 처음 설정을 그대로 두면 새내기나 풋내기들도 웬만큼 어긋나거나 틀리지 않는 사진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설정이라서, 사진을 제법 찍어 온 사람들 눈이나 느낌에는 꽤 동떨어진 사진이 되기 일쑤입니다. 괜히 디지털사진은 ‘날선’ 느낌이라 싫다고 잘못 생각하고 맙니다.

 저로서는 이태 만에 겨우 이러한 대목을 깨달았습니다만, 필름사진만 찍는 숱한 분들은 아직 이러한 대목을 못 깨닫습니다. 사진 설정을 고치면 ‘필름으로 찍을 때하고 똑같을’ 뿐 아니라 ‘사람 두 눈으로 바라보는 빛과 느낌’ 그대로 찍을 수 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같은 필름사진이라도 니콘과 캐논과 미놀타에 같은 필름을 앉히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찍어 보아도 사진은 똑같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라이카를 쓰든 콘탁스를 쓰든 마찬가지입니다. 기계에 따라 빛과 느낌과 날카로움이 아주 가늘고 자잘하게 다릅니다. 이 또한 디지털사진기에서도 매한가지라, 사진 전문가들은 ‘이제 막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진감을 즐겨서 찍으려’ 하는가를 귀기울여 들은 다음에 이이한테 가장 어울릴 기계와 필름(또는 디지털파일 형식)을 일러 주어야 합니다. 움직이는 사람을 찍을 때에 한결 잘 어울리는 기계와 필름이 있고, 멈춘 사람을 찍을 때에 한결 돋보이도록 돕는 기계와 필름이 있습니다. 건물을 찍거나 옷가지나 보석을 찍을 때에 더욱 걸맞는 기계와 필름이 있습니다.

 더 좋거나 더 나쁜 장비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기계마다 쓰임새가 다르고 구실이 다르다는 소리입니다. 어느 기계를 쓰든 다루는 사람이 잘 다루면 그만이지만, 기계를 처음 만든 공장과 일꾼이 어느 쪽에 더 마음을 기울였느냐에 따라서 기계가 살릴 수 있는 사진감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장도리로도 못을 박고 망치로도 못을 박습니다. 어느 연장을 쓰든 못을 박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연장이 똑같은 쓰임새이거나 구실이지는 않습니다. 오직 못 박는 한 가지에만 쓰도록 망치를 만드는 까닭이 따로 있습니다. 사진기에서도 기계마다 어느 자리에 더 알맞거나 걸맞거나 어울리는 구실이 있습니다. 사진관 일꾼이나 사진쟁이는 이렇게 다른 구실을 옳게 깨닫거나 알아채면서 사진기를 팔거나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더 비싼 장비가 더 좋은 장비가 아닙니다. 알맞춤한 자리에 알맞춤한 장비입니다. 내 사진감 쓰임새에 따라 나 스스로 여러 해에 걸쳐 목돈을 모아 반드시 장만해야 할 장비가 있으며, 내 사진감 쓰임새에 따라 적은 돈을 들여 값싸게 장만하여 아주 신나게 쓸 장비가 있습니다.

 광고에 휘둘려 무슨무슨 사진기가 가장 뛰어나다는 듯한 엉터리에 속으면서 애먼 데에 돈을 쓸 일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기를 장만하기 앞서 내가 무엇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가를 오래도록 생각하고 찾아야 합니다. 굳이 내가 사진기를 장만해서 애써 내가 뭔가를 사진으로 담으려는 까닭을 두고두고 살피고 느껴야 합니다. 이런 시간을 아무리 짧아도 한두 해쯤 ‘사진기 없이 보내’면서, 나한테 사진기가 없기 때문에 내가 사진감으로 삼으려 하던 이 모습을 코앞에서 뻔히 보고 있으나 찍지 못하니 속에서 불이 나고 갑갑하고 미칠 노릇이라 안 되겠다고 느낄 때에 사진기를 장만해야 합니다.


.. 지난 1990년대 말, 갑작스럽게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가져야만 했을 때에 사진은 내게 일거리라는 귀한 선물을 주었다 ..  (머리말)


 베스트셀러이니 뭐니 하고 떠들썩한 책이 나한테 가장 좋은 읽을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좋다고 야단법석인 책이 내가 읽을 만한 책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운 좋게 이러한 책 가운데 나한테 어울리는 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한테 좋은 책은 나 스스로 오랫동안 살피고 더듬고 찾아나서야 비로소 만납니다. 찾고 찾고 또 찾으면서 다리품을 팔며 장만할 책 한 권입니다.

 사진기를 장만할 때뿐 아니라, 사진기를 장만한 다음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도 ‘내가 사진으로 무엇을 담아 말을 걸려고 하지?’ 하는 물음을 채우려면 오래오래 다리품을 팔아야 하고 생각을 거듭해야 하며 삶을 알차게 꾸려야 합니다. 










 (2) 사진기 살 돈과 사진책 살 돈


 “나무가 그렇게 아름답고 사람에게 주는 교훈이 큰지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 이제야 겨우 이런 자연의 신비함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 참으로 둔하게 살기도 하였구나’ 하고 탄식을 하게 된다(35쪽)”는 이야기를 적바림한 사진책 《FAMILY ZONE》을 봅니다. 사진책 《FAMILY ZONE》은 광주과학기술원장인 선우중호 님이 당신 사진과 당신 식구들 사진을 한데 그러모아 펴낸 책입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아닌 선우중호 님이지만 풋내기 사진쟁이 또한 아닌 선우중호 님입니다. 취미가 사진이라지만 그예 취미로만 마주하지 않는 사진입니다.


.. (50여 년 전 대학에 다닐 때에) 내 전 재산을 털어서 산 비싼 카메라이고 재산목록 1호라서 다루기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서인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카메라는 손색이 없이 잘 작동되고 있다. 요즈음은 이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요란스러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더 전문가답게 보여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사람들이 좀 많이 모이는 곳이면 오히려 이런 골동품을 가지고 나가 전문가인 양 과시하기도 한다. 우리같이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말한다면 카메라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싼 카메라를 가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이지 좋은 사진을 찍는 것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 현재 쓰고 있는 카메라가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혹시카메라를 새로운 모델이나 다른 종류로 바꾸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에서 새로운 모델로 바꾸다 보니, 내 카메라 장 안에는 카메라가 하나 가득 있다. 대부분이 아직도 멀쩡하기만 한 카메라들이라 볼 때마다 좀 미안한 느낌이 든다 ..  (21∼22쪽)


 짧지 않은 햇수에 걸쳐 즐겨 온 사진 가운데 사람들한테 좀더 널리 나누고 싶은 사진을 몇 가지 간추려서 묶은 《FAMILY ZONE》에는 선우중호 님이 사진과 사진기와 사진작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밝힌 글이 사이사이 실려 있습니다. 흔히들 이런 사진책을 내면서 사진만 덜렁 싣는데, 선우중호 님은 ‘사진에 할 말 있다’는 듯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줍니다.


.. 비교적 근래에 산 카메라들은 주머니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최상의 기종들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작품의 질은 카메라 가격에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 자신부터 솔직히 인정한다 ..  (23쪽)


 아마, 이런 글을 읽는 분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리라 봅니다. 틀림없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글입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제 살림살이와 제 삶과 제 사진길로 돌아볼 때에는 이런 말마디는 한낱 배부른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선우중호 님 스스로 “우리같이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말한다면 카메라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주머니에 여유가 있어”서 “최상의 기종”들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참으로 딱합니다. 왜 주머니에 돈이 좀 있을 때에 ‘그때그때 새로 나온 사진기’를 사서 모아 놓고 먼지만 먹히십니까. 주머니에 돈이 좀 있을 때에 ‘그때그때 새로 나온 좋은 사진책’을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그때 새로 나온 좋은 사진책을 장만하셨다면 이 사진책은 먼지를 먹을 일이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 수없이 다시 꺼내고 들추고 펼치고 하면서 손때가 잔뜩 먹습니다. 당신과 함께 사진을 좋아하는 식구들 또한 이 사진책을 넘기거나 펼치면서 사진책이 낡고 닳아 똑같은 사진책을 두 번 세 번 다시 장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할 테고요. 당신한테 찾아온 손님한테 당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진책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참 좋다고 느낀 사진책이라면 열 권쯤 장만한 다음 한 권씩 선물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 아무리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매일 접하게 되면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그래서인지 흔히들 유럽과 같은 외국에 다녀오고서는 그들의 예술 작품에 대해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우리 전통예술을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크게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접하지 못하던 것을 처음 접하면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  (52쪽)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제대로 살피며 삶으로 삭일 노릇입니다. 제대로 살피지 못하거나 올바로 삭이지 못하면 엉터리 사진만 찍고 어설픈 그림만 그리며 어줍잖은 글만 씁니다.

 최고경영자 자리에 선 이들 누구나 똑같을 텐데, 최고경영자란 회사나 학교 살림을 가장 훌륭히 꾸리는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맡고 있는 자리를 제대로 살필 노릇이요 당신 삶을 바쳐 올바로 삭일 노릇입니다. 어설피 하거나 어줍잖게 맡아도 될 최고경영자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제대로 살필 줄을 모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제대로 못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제대로 볼 줄을 안다면 날마다 마주하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즐겁고 반가우고 고마운가를 새삼 헤아리며 날마다 기쁩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올바로 삭이는 삶을 꾸리고 있다면, 참된 아름다움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알뜰히 돌보고 있으면, 거짓 꾸민 아름다움 앞에서 혀를 끌끌 차며 슬픔에 북받쳐 눈물이 흐릅니다.


.. 왜 흑백을 고집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흑백사진과 컬러 사진의 차이를 책을 읽는 것과 TV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컬러 사진이 눈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흑백사진은 뇌에 즐거움을 준다고 말을 한다. 흑백사진 애호가로서 좀 과장된 비유라고 들리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흑백사진은 컬러 사진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준다. 우리 눈은 자연의 각종 색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컬러 사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으로 그칠 뿐이다. 그 작품성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마음에 찡하고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보통의 컬러 사진이다 ..  (79∼80쪽)


 곱고 밝게 찍어야 감동이 샘솟습니다. 흑백사진으로 찍었기에 감동이 샘솟지 않습니다. 선우중호 님은 “흑백사진은 좀 다르다. 자연의 모든 색을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의 색으로 축소시켰기 때문에 작품에 있는 피사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피사체가 아니다(80쪽)”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그래서 이 말마따나 적잖은 흑백사진들은 ‘몇 가지로 줄인 빛깔로 엮은 사진’인 터라 수수하거나 한결 깊은 느낌을 자아내곤 합니다. 누구나 아무렇게나 찍어도 이런 느낌이 납니다. 그런데 빛깔사진을 찍자면 누구나 아무렇게나 찍어서는 수수하거나 한결 깊은 느낌을 자아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늘 바라보는 모습이 빛깔이 어우러진 삶이기 때문에, 빛깔사진은 빛깔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크게 갈립니다.

 흑백사진은 다루어야 하는 빛깔이 아주 적기 때문에 살짝만 건드려 주어도 느낌이 달라지거나 살아납니다만, 빛깔사진은 다루어야 하는 빛깔이 아주 많은데다가 흑백사진과 마찬가지로 ‘그늘 자리’하고 ‘같은 빛깔이라 할지라도 짙기와 옅기에 따라 느낌이 다른’ 만큼 이러한 짙기와 옅기를 함께 건드려야 합니다. 몹시 어려운 사진이 빛깔사진입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마치 흑백사진을 해야만 작품이 되는 줄 잘못 알고 있습니다만, 작품이 되려면 사진을 잘 찍도록 애써야지 흑백사진을 찍을 노릇이 아닙니다. 저마다 붙잡고자 하는 사진감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흑백사진으로 할는지 빛깔사진으로 할는지를 골라야 합니다. 이러면서 두 가지로 사진을 함께하는 가운데 흑백사진으로 살릴 수 있는 이야기는 흑백사진으로 살리고, 빛깔사진으로 살릴 만한 이야기는 빛깔사진으로 살려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어느 한 가지 생각에 지나치게 매여 있으면, 사진을 찍는 동안 ‘내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하고 있는데?’ 하는 자랑만 사진에 담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오늘 내가 아주 훌륭하다 싶은 사진을 하나 얻었다’고 느낄지라도 이 사진은 고작 오늘 하루로 그치는 사진입니다. 오늘을 마감하고 글피를 맞이할 때에는 글피에 걸맞게 ‘오늘 훌륭히 찍은 사진은 스스로 내려놓은’ 다음, 이보다 거듭나면서 이보다 한 걸음 더 내디딘 더 훌륭한 사진을 품에 안도록 땀을 흘릴 노릇입니다. ‘어제까지 내가 찍은 사진은 모조리 바보스러울 뿐입니다’ 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오늘까지 내가 얻은 사진은 아직 어수룩할 뿐입니다’ 하는 생각이어야 합니다.

 게다가, 흑백사진이라 할지라도 흑백필름을 무엇으로 쓰느냐에 따라 다르고, 흑백필름을 안칠 사진기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나아가, 35미리 사진기를 쓸는지 중형사진기를 쓸는지 대형사진기를 쓸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또한, 여느 필름사진기를 쓰느냐하고 파노라마사진기를 쓰느냐하고 갈립니다. 같은 중형사진기라 하더라도 핫셀과 마미야와 브로니카가 다르며, 파노라마일 때에도 린호프인지 호스만인지 후지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선우중호 님은 《FAMILY ZONE》에서 “솔직히 말해서 작품의 질은 카메라 가격에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작품 질이란 흑백이나 빛깔이냐에 따라 갈리지 않는다”고 말해야 앞뒤가 맞으면서 올바릅니다. 바로 이 사진책 《FAMILY ZONE》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선우중호 님은 흑백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으나, 당신 옆지기와 아이들을 모두 빛깔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선우중호 님으로서는 당신 식구들이 빛깔사진 아닌 흑백사진으로 담았을 때에 한결 멋스러우며 작품값을 한다고 여기실는지 모릅니다만, 제 눈으로 들여다볼 때에는 흑백으로 하든 빛깔로 하든 스스로 붙잡은 사진감으로 얼마나 깊이 스며들며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가에 따라 작품이라 할 만한지 아닌지가 갈리는구나 싶습니다. 흑백사진을 한다 할지라도 내가 담으려는 사진감하고 제대로 어깨동무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장걸음을 하는 사진입니다. 한자말로는 습작이요 우리 말로는 풋내기 작품입니다. 내가 담으려고 하는 사진감하고 살가이 하나가 되어 있으면 바야흐로 눈물과 웃음이 절로 샘솟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흔히 우러러 마지 않는 나라밖 몇몇 사진쟁이들은 당신들 스스로 언제나 예전 사진하고 견주어 한 걸음씩 나아가며 거듭나려는 몸짓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이들이 다큐를 하든 예술을 하든 상업을 하든 ‘흑백사진을 찍어’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에 바치는 땀방울이 아름답기에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사진에 깃들이는 사랑이 훌륭하기에 사진이 훌륭합니다.

 사진책 《FAMILY ZONE》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사진 찍는 최고경영자’들께서 사진잔치도 열고 사진책도 내면서 ‘사진밭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다 할 만한데, 사진을 취미로 여기든 사진을 삶으로 여기든 사진을 직업으로 여기든 좋습니다만, 사진을 어떻게 맞아들여 즐기고 있든지 ‘사진은 사진으로 곰삭여’ 주십사 하고 바랍니다. 사진은 사진답게 해야지, 사진을 사진답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회사를 꾸리는 자리에서 회사를 회사답게 꾸려야지 회사답지 않게 꾸릴 수 없고, 학교살림 맡은 분으로서는 학교를 학교답게 일구어야지 학교를 직업훈련소나 영어학원처럼 일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을 할 때에는 온통 사진으로 생각하고 사진으로 살며 사진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니콘이니 핫셀이니 마미야니 라이카니 올림푸스니 하는 이름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 몇 가지 길입니다. 표준렌즈를 쓰느니 광각렌즈를 쓰느니 망원렌즈를 쓰느니 또한 여러 갈래 길입니다. 필름을 쓰느냐 디지털파일을 쓰느냐 또한 여러 갈래 길이며, 디지털파일에서도 raw가 있고 jpg가 있습니다. 필름에서도 흑백뿐 아니라 빛깔필름에서는 여느 필름과 슬라이드가 있습니다. 이 모두 사진쟁이들이 사진을 하는 숱한 길 가운데 하나이지, 이러한 길 가운데 어느 길로 가야 작품이 된다거나 멋이 담긴다든가 좋다든가 하는 틀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길만이 사진이 아니며, 이 모두가 사진으로 가는 길인 한편, 이 가운데 사진을 사진으로서 제대로 삭이며 살아내는 자리에서 오래도록 고이 이어가는 아름다움을 꽃피웁니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사진이 되면 비로소 ‘사진은 예술’이라 말할 수 있고, 사진이 사진다우며 사진으로 나누는 삶이 무엇인가 하고 두루 선보일 수 있습니다.


.. 결국 사진은 자기를 찍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른 전문가의 사진을 따라 찍는 것이 사진수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작가의 사진이지 자기 자신의 사진은 아니다. 같은 피사체를 같은 장소에서 찍는다 하더라도 찍는 사람에 따라 다른 사진이 되는 것은 각기 피사체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피사체에 옮기고 이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132쪽)


 1940년에 태어난 선우중호 님은 어느덧 일흔 나이입니다. 일흔 나이에 사진을 새로 배우거나 다시 배우라 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취미로 여기든 돈벌이로 삼든 어떻게 바라보든지, 사진이 참 좋아 사진길을 걷고자 하신다면 일흔 나이에라도 새롭게 사진을 배울 노릇이요 여든이나 아흔에도 새롭게 다시 배우며 사진을 찍을 노릇입니다. 나이를 많이 먹었기에 더는 새로 배울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힘들어서 못 배우겠다고 하신다면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문화와 예술과 교육과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매한가지인데,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없고 오늘과 똑같은 글피가 없습니다. 늘 새로 태어나는 하루요 노상 새로 일구는 삶입니다. 최고경영자라는 이름이란 언제나 새롭게 일하며 한결같이 새로움을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우중호 님은 《FAMILY ZONE》을 내놓는 자리에서 “결국 사진은 자기를 찍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깨닫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자기를 찍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사진기를 든 내 삶을 보여주는” 노릇입니다. “자기 생각을 피사체에 옮기”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내 삶이 내 사진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흑백사진으로든 빛깔사진으로든 이 사진 하나를 바라보며 나 스스로 가슴이 뭉클하다면, 이이는 사진을 잘 찍어서가 아니라 삶을 알차게 꾸렸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쉰 해나 예순 해를 해 왔다고 해서 이이 사진이 아름다울까요? 사진을 고작 한두 달만 했다고 이이 사진은 형편없을까요?

 사진에 담는 깊이란 사진을 찍어 온 밥그릇(찍은 필름) 숫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온누리를 뜨겁게 부둥켜안으며 따스히 손잡고 살아왔는가 하는 데에 달린 사진 찍는 깊이입니다.

 사진에 담는 멋이란 어떤 사진 장비를 쓰거나 어떤 필름을 쓰거나 어떤 장치를 하느냐 하고 동떨어져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를 아름다이 가꾸고자 땀을 흘렸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에 담는 멋입니다. (4343.5.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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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터에 따라 삶이 다릅니다


 삶이 다르기에 넋이 다르고, 넋이 다르기에 눈길과 손길이 다릅니다. 다른 눈길과 손길에 따라 읽을 책이 다르고, 읽을 책이 다르니 받아들이는 그릇과 느낌이 다릅니다. 받아들이는 그릇과 느낌이 다르니 이를 담고 나누려는 글쓰기가 다릅니다.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버리며 더 많이 사고팔 글이 아니면 안 됩니다. 글이고 그림이고 사진이고 자꾸자꾸 더 많아야 합니다. 쓰레기봉투에 넣어 내놓는다고 사라질 쓰레기가 아닙니다만, 도시에서는 내 집에서 다른 동네나 시골로 쓰레기를 치워 버리고 있어도 이 흐름을 느끼거나 알아챌 가슴이 없습니다. 끝없이 이어질 말꼬리와 말재주가 판칠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밑뿌리를 살피며 보듬어 낼 고운 마음밭이란 싹트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고 있다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참말 어쩔 수 없이 도시에 뿌리내리거나 빌붙은 채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나으며 더없이 빛나는 좋은 삶을 꾸리며 우리 넋과 몸을 가꾸면서 좋게 돌볼 수 있으나, 이러한 길하고 스스로 울타리를 쌓고 있지 않나 궁금합니다. 생협과 진보와 환경사랑과 참배움과 다문화권리 같은 이야기는 몸부림입니다. 즐거운 삶을 이루는 밑일이지 모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올바르게 일구기 싫은 한편, 우리 이웃과 동무를 곱다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예 도시에 붙잡히거나 얽매인 채 살고 있지 않느냐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4343.5.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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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 늘어나는 자동차만큼 무너지는 나라


 늘어나는 자동차만큼 텔레비전이 늡니다. 이제는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 손전화로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차를 몰면서 손전화를 받으면 다른 차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하던 소리는 까마득히 잊힙니다. 눈과 귀는 자가용 한켠에 붙인 작은 텔레비전에 꽂힙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붙들고 텔레비전 모습과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는 가운데 길가 한쪽에서 달리는 자전거를 눈여겨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골목에서 자전거 타는 어린이를 쉬 알아채지 못하곤 합니다. 누군가 차를 몰고 있으면, 차 바깥에서 걷다가 서 있던 사람은 물러서야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을 이고 골목을 걷거나,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비탈을 오르고 있더라도, 사람이 차한테 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뭐 잘나서 길 한복판을 걷느냐 하실 분이 있을 테지요. 네, 사람은 잘나지 않았습니다. 못난 사람인 까닭에,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자동차를 비껴 걷자니 골목 한복판을 걷고, 이러다 보면 쉴새없이 오가는 차 때문에 길가에 선 차 사이사이에 구겨져 옴쭉달싹 못하고 찡기는 몸이 됩니다. 무거운 짐이나 잠든 아이를 들고 안고 기다립니다.

 자동차는 거님길에까지 올라와 있기까지 합니다. 오토바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오토바이는 거님길에서 쌩쌩거리며 무시무시하게 내달립니다. 못나고 구지레한 ‘걷는 사람’은 모든 차한테 업신받고 놀림받습니다.

 예부터 ‘걷는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거나 들꽃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걷는 사람’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걷는 사람’이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은 오가는 자동차 살피기입니다. 오가는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안 밟고 씽씽 쌩쌩 휭휭 내달릴 수 있게끔 비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춰 어르신 짐을 싣고 댁에까지 모셔 드린다든지 하는 일은 오늘날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까지 제가 살던 골목동네에서는 어르신 앞을 자가용이 함부로 앞지르거나 빵빵거리지 않았으며, 아이 손을 잡고 걷거나 아이를 안고 걷는 어버이한테 윽박지르지 못했습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손전화를 받고 텔레비전을 봅니다. 영화를 내려받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몰면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추고 낮잠을 자거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있습니다. 고속도로 쉼터에서 밥을 사먹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는 차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달리는 차를 멈추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보았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 또한 못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하기에 자동차를 기꺼이 내동댕이친 사람 이야기는 아직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가용을 장만하겠다고 생각한 바로 이때부터 책하고는 등을 돌리는 셈입니다. 운전학원 값이면 책이 몇 권일까요. 차 한 대 값이면, 여느 사람으로서는 죽을 때까지 신나게 책을 사읽고 둘레에 선물해도 돈이 남아돕니다. 책 사읽을 값을 아이한테 물려주어도 다 못 쓸 수 있을 만한 차값입니다. 아니, 차에 넣는 기름값만큼 다달이 책을 사읽으려 한다면, 우리는 다달이 얼마나 많은 책을 넓고 깊게 살피며 마음밭을 살찌울 수 있을는지요.

 나는 꿈을 꿉니다. 현대, 대우, 삼성, 기아 들이 자가용 더 팔려고 용을 쓰지 말고, 자동차공장을 이제 줄이며, 우리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책마을을 조그맣게 온나라 곳곳에 세우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자동차 만들던 일꾼이 온나라 곳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저마다 뿌리내린 마을에서 스스로 일구어 먹고사는 한편 슬기롭고 아름다운 마음결 북돋우는 배움마당을 꾸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좋으랴 꿈을 꿉니다.

 전라도 함평이나 경상도 거창뿐 아니라, 대구 시내와 서울 한복판에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내고 아파트를 허문 다음에 논밭을 일구며 조촐한 ‘농사짓는 책마을’을 아주 앙증맞도록 자그맣게 꾸리며 섬길 수 있으면, 땅과 사람과 삶 모두 따스하고 넉넉히 보듬을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자동차를 버려야 전쟁을 막는다고 읊은 동화 할배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버리면 전쟁뿐 아니라 독재를 막고, 4대강을 비롯한 숱한 막개발이니 신자유주의이니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국가보안법이니 학벌주의이니 무어니 모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누구나 맑고 밝은 가슴과 넋으로 정갈한 먹을거리를 스스로 일구어 저마다 어여쁘고 훌륭한 사람으로 튼튼히 설 수 있습니다. (4343.5.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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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5-22 22:11   좋아요 0 | URL
현실적으로 책마을을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요. 정말 꿈으로 끝나겠지요. 그렇지만 자동차를 줄여야 책을 본다는 말에는 십분 동의 합니다. 당장 저마저도 걸어다니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책을 보지만 운전을 하면 거기에 온통 신경을 솓아야 하니 말이지요.

파란놀 2010-05-23 07:34   좋아요 0 | URL
경기도 파주에 수천 억을 들여 짓는 책마을이 아닌, 수천만 원조차 아닌 땀방울로 작게 여미는 책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책을 사 주어 돈을 번 출판사들은 건물 하나 짓는 데에 수십 억씩 쓰면서 엉터리 책마을을 꾸며 놓았으니. 참 슬픕니다..
 
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 눈빛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기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 이경모, 《격동기의 현장》(눈빛,1989)



 1926년에 태어나 1946년부터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일했던 이경모 님은 《격동기의 현장》이라는 사진책에서 1945∼1951년 무렵 이 나라 삶자락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이경모 님이 일하던 신문사는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에서 뛰며 찍은 사진은 현상처리가 나빠 이 책에 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따로 갖고 있던 사진기에 담았던 필름이 남아 있어 이 사진책 하나를 꾸릴 수 있었답니다.

 우리한테 사진 문화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해방 이야기를 호남신문사에서 1945년에 내놓을 수 있었을 테며, 한국전쟁 이야기를 국방부에서 1953년에 펴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무렵에 사진책으로 엮지 않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삶자락을 담은 사진은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아니,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합니다. 박도 님이 엮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만, 미국에 있는 도서관에 있든 누군가 개인으로 갖고 있든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있는 사진들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1996년에 《끝나지 않은 전쟁》(조지 풀러 사진,눈빛 펴냄)이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한국전쟁 모습을 미국 군인이 빛깔 사진으로 담아 엮은 책입니다. 우리 지난 삶자락을 돌아보는 더없이 애틋한 사진책이지만, 이 사진책은 거의 눈길을 못 받고 사랑 또한 못 받은 채 묻혀 있습니다. 사진책으로 나오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 나라인데, 애써 사진책으로 나왔다 할지라도 제대로 읽히거나 보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제아무리 잘 팔린 사진책이라 할지라도 1만 권 넘게 팔리는 일이란 몹시 드물고, 10만 권이나 100만 권 팔렸다는 사진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름있는 사진기들이 몇 만 대씩 팔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진을 찍는 아름답거나 해맑은 길을 보여주는 사진책들이 조용히 묻혀 있는 모습이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이경모 님은 지난 2001년 5월 17일에 눈을 감았습니다. 사진과 얽혀 여러 가지 큰일을 했다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에는 거의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못했고, 눈을 감은 소식을 찾아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진을 찍었건 저런 사진을 남겼건 이 땅에서는 제대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 이런 눈물이 있건 저런 사람들 저런 웃음이 있건 이 나라에서는 찬찬히 헤아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격동기의 현장》이 나온 1989년을 돌아보면 이경모 님이 1945∼1951년치 사진을 찍은 지 거의 쉰 해 만입니다. 어쩌면 군부독재 정권이 무너졌기에 이런 사진책 하나 비로소 나올 만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해방 무렵 사진이란 해방을 맞이하고 쉰 해가 지나서야 빛을 볼 만한 사진은 아닐 텐데, 이 나라 책마을이나 사진마을은 이와 같은 사진을 두루 살펴서 널리 나누고자 힘쓰지 못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 삶터를 요즈음 차근차근 돌아보며 요즈음에 알뜰살뜰 묶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느 사람들이 복닥이고 있는 눈물과 웃음이 어린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때그때 옮기며 웃고 울며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수수한 사람들 투박한 땀방울과 착한 손길을 그날그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어느 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터전에서 어느 겨레붙이하고 부대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해방도 격동기이지만 입시지옥도 격동기입니다. 한국전쟁도 격동기이지만 국가보안법도 격동기입니다. 여수ㆍ순천 사건도 격동기이지만 비정규직도 격동기입니다. 우리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 격동기를 어느 만큼 헤아리면서 어느 만큼 올바른 눈썰미로 어느 만큼 알차게 보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들만 탓할 수 없습니다. 정치꾼만을 탓한다고 정치가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 꾸리는 삶을 나무라며 가다듬는 가운데 정치를 바로세우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굽어살피며 우리 스스로 일구는 삶을 꾸짖고 뜯어고치는 가운데 문화와 예술이 살가이 꽃피우도록 뜻을 그러모아야 합니다.

 사진기자가 비틀어 보이는 거짓 사진에 홀리고 있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몇몇 엉터리 사진기자들은 참을 비트는 사진을 자꾸자꾸 찍어서 내보냅니다. 사진기자가 엉터리 사진을 내놓을 때에 ‘이런 쓸개빠진 엉터리!’ 하면서 손가락질할 줄 안다면, 사진기자들이 우리들 앞에서 부끄러워 할 뿐 아니라 우리들을 두려워 하며 옳고 바른 사진으로 나아가고자 힘을 쓸밖에 없습니다. 엉터리 정치꾼이 나오는 까닭은 엉터리 유권자 때문이며, 엉터리 사진이 쏟아지는 까닭은 엉터리 독자 때문입니다. 참다운 정치꾼이 나오려면 참다운 유권자로 거듭나야 하며, 참다운 사진책이 나오려면 참다운 사진 독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이제 어느 누구도 1945∼1951년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2009년 이야기 또한 어느 누구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010년 올해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5월 17일 어제나 5월 16일 그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조차 없습니다. 오로지 5월 18일 오늘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하루하루 새로 맞이하는 그날그날 삶과 사람을 사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란 언제나 바로 그때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바로 그때 그곳에 없었어도 글과 그림을 낳지만, 사진쟁이만큼은 총알이 빗발치든 군화발이 으르릉거리든 바로 그때 그곳에 머물며 삶과 죽음이 가로지르는 터에서 참거짓을 마주해야 합니다. 사진책 《격동기의 현장》은 이경모 님이 사진기자였기 때문에 낳을 수 있던 책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가로놓인 자리에 두 다리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낳은 보배덩어리입니다. (4343.5.18.불.ㅎㄲㅅㄱ)

― 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사진,눈빛 펴냄,1989.11.1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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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3 : 김예슬 님과 고집장이 동생

 무슨 책을 읽어야 내 넋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려야 내 얼을 곱게 여밀 수 있는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운 목숨 하나 선물받아 이어가는 누리에서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보듬느냐는, 내가 품은 꿈이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매무새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거스른 채 ‘고졸자’가 되겠다고 외친 김예슬 님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2010)라는 작은 책을 써냈습니다. 대자보 하나 쓴 다음 대학교 앞문에서 한 시간 남짓 서 있으며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대학생들과 대학생이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고졸자로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얼마 나누기 힘들었을 테지요. 김예슬 님 당신 스스로 어줍잖은 몸부림이 아니요 뽐내는 몸짓이 아님을 밝히려 한다면, 이렇게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힌 책 하나를 써내야 했을 테지요.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58∼59쪽).”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김예슬 님이 작은 책 하나에 적바림한 이야기는 김예슬 님 당신이 잘나서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한편, 당신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익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알면서 아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야기요, 알고 있기에 등돌리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옳은 길로 안 가고 있는 우리들이요, 알고 있기 때문에 굶어죽을 수 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입니다.

 석유가 펑펑 남아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석유 걱정을 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석유가 바닥나면 다른 뭔가가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자가용 한 대 장만하는 값이란 우리 삶을 얼마나 빛내거나 돌볼 수 있는 돈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차 한 대 뽑아 굴릴 만한 돈으로 책을 사읽는다거나 힘든 이웃을 돕는다든가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할 돈으로 영화를 찾아 본다든지 어려운 동무를 거든다든가 하는 사람 또한 만나지 못합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는 길을 살피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며 알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길을 찾지 않는 요즈음 우리들입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동서문화사,1982)이라는 살가운 어린이문학이 지난 2007년에 《못 말리는 내 동생》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고집 잘 부리는 어린 동생은 이웃집 할매가 뜨개질을 한번 배워 보라는 말에 “배우고 싶지 않아요.” 하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웃집 할매는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단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하며 따스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할매 말씀을 듣고 난 고집장이 여동생은 이내 뜨개질을 배웁니다. 한동안 몹시 얌전하고 착하고 조용히 누군가한테 선물할 뜨개질을 합니다. 돈과 앎과 이름값이 아닌 땀과 손길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익힙니다. 이 고집장이 여동생은 앞으로 더는 고집장이에 머물 까닭이 없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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