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그늘 자리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이태수 글.그림 / 고인돌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하나 55 ― 사람도 자연, 자연은 그대로 예술
 : 이태수 글ㆍ그림,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



- 책이름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
- 글ㆍ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고인돌(2008.5.25.)
- 책값 : 14800원



 (1) 우리 집 옥상마당


 수요일 저녁, 우리 동네에서는 밥찌꺼기를 내놓는 날입니다. 골목마다 밥찌꺼기 모아 가는 통이 놓이고, 저녁 일곱 시 뒤부터 한 집 두 집 바깥으로 밥찌꺼기를 내다 버립니다.

 밥찌꺼기통은 닫혀 있기도 하지만 열려 있기도 합니다. 옆지기와 밤마실을 하면서 지나가다 보니, 뚜껑 열린 밥찌꺼기통에 머리를 박고 끼니를 채우는 길고양이가 여럿 보입니다. 몇 미터 거리가 되니 고양이가 퍼뜩 놀라며, 먹던 고개를 꺼내어 탈탈탈 걸어서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밑으로 숨거나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집니다. 밤나절은 고양이가 느긋하게 저녁 먹는 때이니 발걸음을 좀더 죽여야겠군요.


[고깔제비꽃] .. 새로 돋아나는 이파리가 고깔을 닮아 붙여진 이름, 고깔제비꽃. 씀바귀를 고채(苦菜)라 부르고 민들레를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하면 참 알아듣기 힘이 듭니다 ..  (12쪽)


 우리 집에서 밥찌꺼기 나올 일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가 바나나라도 사먹으면 껍데기가 나옵니다. 양파껍질은 그물주머니에 고이 모으고, 감자며 무며 껍질째 먹으니, 남아서 버려지는 찌꺼기가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집에서 나온 밥찌꺼기는 1킬로그램이 채 안 되지 싶습니다. 두 식구가 먹기에 너무 많은 김치를 선물로 받아서 먹다 먹다 지쳐서 버려진 김치를 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이런 몇 가지 밥찌꺼기를 옥상마당에 내어놓고 비를 맞히고 햇볕에 말리니 물기 소금기 쏘옥 빠지며 바삭바삭 부스러지며 가벼워집니다. 이제 흙하고 섞으면 모자라나마 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노라면, 동네에 사는 참새와 까치와 비둘기가 우리 집 옥상마당에 내려앉곤 합니다. 밥찌꺼기 같지도 않은 밥찌꺼기가 조금 나와 있어서 그럴 텐데, 몇 번 부리로 찍어 보더니 ‘영, 시원찮군!’ 하며 다시 포르르 날아가곤 합니다. 지금도 참새 한 마리가 부지런히 뭔가를 쪼고 있는데, 따로 새모이라도 놓을까 싶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밤나절, 고양이밥을 조금 마련해서 길모퉁이에 놓으면 어떻겠느냐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참개구리] .. 집 뒤에 논이 있었습니다. 오월이면 개구리 소리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작은 물웅덩이 하나 남기지 않은 채 개구리 삶터를 갈아엎고 사람 집을 지었습니다 ..  (32쪽)


 지난해에 옆지기가 데려온 길고양이 열 마리는, 모두 우리 집 옥상마당에서 나가서 인천바닥 어딘가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드물게 만나곤 하는데, 우리 얼굴을 떠올리는지 잊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한 마리, 지난주에 한 마리, 또다시 ‘귀염둥이 짐승으로 집에서 기르다가 버려진 고양이’ 두 마리를 우리가 맡게 되었습니다. 맡는다기보다 옆에서 먹이와 물을 주면서,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동네를 누비며 길을 익힐 때까지만 함께 지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녀석 모두 처음 우리 집으로 왔을 때 바들바들 떨면서 구석에 숨은 채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녀석들이지만, 몸으로는 ‘어미 품도 모르면서 이곳저곳에서 떠돌다가 버려지기만 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구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미 품에서도 떠나야 했지만, 형제도 없고 동무도 없이 외딴 집안에서 집임자하고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자기와 함께 살아갈 집임자가 ‘싫다’면서 내보내게 되었으니, 이런 느낌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녀석들은 하루이틀 지나면서, 사흘나흘 흐르면서, 차츰 우리 집에 익숙해지고 우리 두 사람 얼굴과 목소리에 길이 듭니다. 이제 두 녀석 모두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까지 아양을 떨 만큼 되었습니다. 고양이 바탕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이 홀로 길을 간다는데, 먼저 온 녀석은 앞으로도 우리 집에 머물 듯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녀석들 풀어 놓은 옥상마당을 슬며시 내다보니, 큰 녀석은 종이상자집에 들어가 알쏭달쏭한 모습으로 단잠에 빠져 있고, 작은 녀석은 쓰레받이며 노끈이며 낡은 바구니며, 옥상마당에 그대로 둔 물건들을 노리개 삼아서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뒹굴면서 놉니다.


[늑대거미] .. 물 위를, 물풀 위를 징검징검 걸어다니면서 벼멸구를 잡아먹는 늑대거미. 살아 있는 농약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은 사람이 끼어들지 않으면 서로 먹고 먹히면서, 서로 도우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스스로 숨쉬며 살아갑니다 ..  (42쪽)


 (2) 골목꽃과 이름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꽃이랑 나랑은 아무 끈이 이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책만 보며 살았고, 책방만 다니면서 살았으며, 자전거로 싱싱 달리기만 했습니다. 더 빠른 길을 찾아내어 달리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자동차와 내기 달리기라도 하듯 용을 써 왔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해 산골자락에서 지내면서 달따라 피어나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보는 동안, 마음이 차츰차츰 바뀌었습니다. 꽃이나 나무나 풀을 살뜰히 담아낸 그림이 담긴 책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두 눈으로 꽃이나 나무나 풀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움직임에는 소홀했습니다. 산골자락 삶 여러 해는, 제 어수룩함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어 주었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연 삶터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산골자락에서 떠나 도시 한켠으로 들어온 몸이 되면서, 산골자락에서 꽃과 나무와 풀을 느끼듯, 골목길을 다니면서 온갖 꽃과 나무와 풀을 보고 있습니다. 이름을 아는 꽃과 나무와 풀이 있으나, 이름을 모르면서 바라보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 꽃과 나무와 풀이 있습니다.


[봉숭아] .. 흙이 아스팔트로, 시멘트로 덮이고 손톱이 매니큐어에 덮인 지금 붉은 봉숭아물 들이고 여름, 가을 가고 겨울 손톱 끝에 매달린 초승달 사랑을 가슴 졸여 기다리는 ..  (52쪽)


 길을 거닐다가 몇 차례,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한테 여쭈었습니다. “아주머니, 이 노랗고 예쁜 꽃은 이름이 어떻게 되어요?” “할머니, 이 소담스러운 꽃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딱 한 번, 꽤나 긴 서양이름이 붙은 꽃이름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말씨로 줄줄줄 꽃이름을 대는데, 저와 옆지기는 못 알아듣습니다. 속으로, ‘그래, 꽃이름은 몰라도 꽃을 예쁘게 느낄 수 있으면 되지 않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꽃이름을 모른다고 하는 다른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예쁘니까 심었지 뭐” 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당신들도 골목골목 찬찬히 거닐며 저잣거리를 오가는 동안 눈여겨보았던 꽃이 지고 씨를 맺으면, 씨 조금 얻어서 헌 꽃그릇을 마련하고 흙을 어디선가 퍼 오고 거름을 내고 힘을 북돋운 다음 씨앗을 고이 심어서 어여쁜 꽃을 길러내셨지 싶습니다.


[강도래 애벌레] .. 사람이 오고 간 발자국이 많을수록 사람이 남기고 간 자국이 많을수록 맑은 물은 흐려지고 맑은 물에서 사는 작은 생명들은 살 곳을 잃어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도 놀 곳을 살 곳을 잃어 갑니다 ..  (74쪽)


 사람마다 이름이 있고 꽃마다 이름이 있으며 짐승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꽃과 나무와 풀에, 또 짐승들한테 이름을 붙여 주는데, 꽃과 나무와 풀도 우리 사람을 보면서 ‘저건 뭐다’ 하면서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짐승한테 이름을 붙이며 부르듯이, 짐승도 우리 사람을 보면서 ‘너는 뭐다’ 하고 이름을 붙이며 머리속에 새기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 조금 큰 녀석은 ‘후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전 임자가 붙인 이름으로, 털빛이 후추 빛깔이라 해서 붙였답니다. 지난주에 들인 어린 녀석은 ‘애깽’이라고 하다가 ‘밤톨’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기 고양이라고 해서 ‘애깽’으로 했고, 아직 밤톨 만한 크기이기도 하지만, 털빛이 밤톨 빛깔이라는 느낌이라서 ‘밤톨’이라고 했습니다.


[조릿대] .. 응달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 잘 견디는 조릿대 이파리는 겨울철 먹이가 모자라는 산양에게 겨울을 이겨 내는 먹이가 됩니다 ..  (92쪽)


 (3) 《숲속 그늘 자리》라고 하는 그림이야기


 《보리 아기 그림책》부터 《심심한 오소리》까지,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찬찬한 그림으로 담아 온 이태수 님이 《숲속 그늘 자리》라고 하는 그림이야기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그림 하나에 이야기 하나를 붙인 짜임새입니다. 그림 하나에 붙인 이야기 하나는 시라고 느낄 수 있고, 짤막한 생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읽어내기 나름입니다.


[비오리] .. 물이 맑고 물 흐름이 빨라서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 동강은 비오리, 수달, 논병아리, 어름치 ……. 수많은 생명을 품고 흐르고 또 흐릅니다 ..  (102쪽)


 이태수 님은, 책 머리말에서 “이 책에 실린 생명들은 아주 귀한 것보다는 살아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몇몇 생명은 조금만 힘을 들이면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길을 걷거나, 산에 오르내리고, 바닷가를 걸으면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 삶터는 자연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 그림이야기책에 실린 목숨붙이들도 ‘너무 멀다’고 느낄지 모르는데, 도심지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싱싱 내달리는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 둘레 몇 뼘 안 되는 흙에서도 보고, 호젓한 골목길 한켠에서도 보며, 골목 안쪽에 손바닥 만하게 마련한 텃밭에서도 봅니다.

 사람 아닌 목숨붙이도 자연이지만, 우리 사람 또한 자연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연이며, 우리 스스로도 자연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둘레에 고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이웃 자연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보지 않느냐 싶어요. 이리하여, 내 이웃과 동무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자연’입니다만, 내 이웃도 ‘살가운 사람’이고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서로 밟고 올라서고 빼앗고 겨루려고만 복닥이는지 모를 일이에요.


[도롱이벌레] .. 집 모양이 도롱이를 닮은 도롱이벌레. 자기 삶터에서 가장 흔한 나뭇가지, 나뭇잎으로 집을 짓고 겨울을 납니다. 집이 무너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쓰레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  (108쪽)


 나 혼자 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닐 때, 우리 몸에 깃든 자연이 시나브로 빛을 냅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흐뭇하기를 바라는 넋을 가꿀 때, 우리 마음에 잠자고 있던 자연이 살며시 깨어나 고운 냄새를 풍깁니다.

 그늘을 드리워 뭇 목숨붙이가 뜨거운 햇살에 마르지 않도록 잎사귀를 벌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일수록 더욱 맛난 밥으로 여겨 잎사귀를 더욱 벌리고 키를 한껏 높이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림이야기책 이름이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인데, 책을 덮으며 헤아려 보건대, “자연은 그대로 예술”이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연인 줄 모르고, 우리 이웃도 자연인 줄 깨닫지 못하는 한편, 우리를 둘러싼 너른 자연이 어떻게 예술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인지를 못 들여다보는구나 싶습니다. 글이 길게 실리지 않은 책이나, 띄어쓰기 틀린 대목이 열 군데가 넘어서 조금 아쉽습니다. (4341.6.2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기를 잃어버렸다. 밤길을 걸어 구멍가게에 맥주 한 병 사러 가는 길에 곰곰이 따져 본다. 벌써 몇 번째 잃어버렸는가? 도둑맞은 사진기도 여럿이었기 때문에, 모두 더하면 이번이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사진 찍을 생각도 없으면서 남 사진장비에 군침을 흘리면서 훔쳐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돈에 목말랐다는 뜻이 아닌가. 자기한테 돈벌이가 되면, 이웃사람이 울며 불며 괴로워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사람들 탓을 하면 무엇하랴. 내가 좀더 제대로 간수하면서 잃어버리지 말았어야지. 도둑맞은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매달고 죽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전철간에서 너무 고단하고 사진기가방도 무거워서 짐칸에 올려놓았다가, 졸다 깨다 되풀이하던 어느 때, 문득 올려다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던 사진기가방. 무거운 사진기가방은 잠깐 바닥에 내려놓고 책을 읽다가 그만, 내릴 곳에서 책에 눈을 박은 채로 내리다가 사진기가방을 전철칸에 그대로 두고 내렸는데, 역무원한테 전화해서 다음 역을 알아보았더니, 그 자리에는 벌써 가방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어느 날, 사외보 기자들이 취재한다고 찾아와서 헌책방에 함께 간 다음 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져서 술을 한잔 걸쳤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택시기사가 자전거를 짐칸에 실었다고 내내 꿍얼거리는 바람에, 택시에서 내리면서 자전거를 먼저 꺼냈는데, 뒷자리에 실어 놓은 사진기가방을 미처 꺼내지 않았는데 부웅 하고 떠나버리기도 하고.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던 때에는 어떠했는가. 새벽에 배달을 나간 틈을 타서 몰래 들어온 좀도둑이 냉큼 집어가 버린 적도 있지 않은가.

 도둑은 부잣집을 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부잣집은 훨씬 값나갈 뿐더러 비싼 물건과 돈도 많을 터이나, 그만큼 지키는 벽이 탄탄하다. 그렇지만 가난뱅이들은 어쩌다가 한두 가지 어렵사리 장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따로 지키지도 못하고 허술하다. 이리하여 도둑들은 외려 가난한 사람들 살림을 축낸다. 몰래 빼낸다. 벼룩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다. 도둑들한테는, 있는 사람들한테는, 벼룩 간이 소 간보다 맛있다고 느껴지지 싶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옆지기가 나를 꼬옥 안으면서, 잠이 안 오면 좀 걷자고 한다. 그럴까. 걸을까. 부시시 일어나서 옆지기를 슬며시 바라본다. 눈가가 젖어 있다. 나보고는 ‘나 (집에) 없을 때 울었지요?’ 하고 묻더니만, 뭐.

 잃어버린, 또는 도둑맞은 사진기 숫자를 세고 싶지 않다. 세면 셀수록,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속만 쓰리다. 눈물만 난다. 그냥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번듯하게 돈 많이 버는 일을 해 오지도 않은 주제인데다가, 내가 찍는 주제인 ‘헌책방’을, 그래도 내 나름대로 좀더 나은 장비로 담아내고 싶어서, 여러 해 동안 적금을 부어서 어렵사리 마련한 돈으로 100만 원짜리 몸통에 180만 원짜리 렌즈를 끼워서 쓰고 있지 않았던가(이렇게 장만한 사진기와 렌즈를 여러 차례 도둑맞아서 다시 모아 다시 장만하기를 되풀이했는데, 또 잃어버렸으니). 렌즈 앞에 끼우는 필터도 좋은 렌즈를 쓰다 보니 지름이 넓어서 유브이필터 하나만도 이만오천 원이었고, 귤빛 필터 하나도 오만 원이 넘었다. 돈으로 따지기 싫어도, 돈값만큼 제 솜씨를 뽐내어 주던 장비였다. 그래서 직업사진가들이 아무리 못해도 이만한 장비부터는 갖추고 사진을 찍는다고 느꼈다.

 ‘그래, 너는 애써 적금 부어서 산 장비를 몇 해 쓰지도 못하고 잃거나 도둑맞으니, 남 좋은 일만 시켜 주니?’ 한숨과 눈물이 고루 섞인 어머니 푸념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사야지 뭐, 그런데 돈은 있냐?’ 마음으로 함께 울어 주고, 어려울 때마다 슬쩍슬쩍 도와주는 우리 형이 동생을 토닥여 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뭐? 잃어버려? 에잉, 그게 얼마짜리인데.’ 아버지가 아들내미 소식을 들으면 되레 짜증을 내면서 한 마디 하실 테지. 여태껏 장비를 잃어버린 뒤, 속쓰림과 허전함에 몇 달 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에도 어찌어찌 돈을 마련하고 적금 깨면서 가까스로 다시 장비를 마련하곤 했는데, 이제는 깰 적금도 없다. 그렇다고 식구들한테 손을 벌릴 수 있는가.

 옆지기 배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이런 아버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려나. 참 딱한 양반이라고, 참 불쌍한 놈이라고, 참 한심한 분이라고 혀를 끌끌 차려나. 에그, 그래도 자기(아기)가 있고 옆지기가 있으니 기운내서 어떻게든 수를 써 보라고 내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려나. (4341.6.25.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 - 벨 이마주 101 벨 이마주 101
제마스티안 메쉔모저 지음, 전재민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달님과 치즈와 다람쥐와 죄수
 [그림책이 좋다 48] 제바스티안 메쉔모저,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



- 책이름 :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
- 글ㆍ그림 : 제바스티안 메쉔모저
- 옮긴이 : 전재민
- 펴낸곳 : 중앙출판사(2008.4.15.)
- 책값 : 9000원



 (1) 치즈와 달


.. 어느 날 아침, 다람쥐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요. 하늘에서 달님이 집 앞으로 뚝! 떨어졌지 뭐예요 ..  (7쪽)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는 ‘하늘에서 떨어진 달’이 아니라 ‘언덕받이에서 농사꾼 아버지와 아들이 쉬고 있는 옆에 세운 수레에서 미끄러지며 구르다가 벼랑에서 슈웅 날아 다람쥐 사는 나뭇가지에 턱 얹힌 동그란 치즈 한 덩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책 안쪽 종이부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린이는 치즈 한 덩이만 노란빛으로 그리고, 다른 곳은 흑백으로 그립니다. 그림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뭐여, 치즈 한 덩이가 떨어진 일이네’ 하고 처음부터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난데없이 하늘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는데, 마침 이 큰 덩어리가 노랗고, 더욱이 달님을 먼발치로만 바라보았던 다람쥐로서는, 치즈가 아닌 달님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는 혼자서 ‘달님이 왜 여기로 떨어졌지?’ 하고 생각을 하다가 ‘하늘에서 달이 사라졌다고 사람들이 찾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합니다. 끝내, ‘이러다가 내가 달님을 훔쳤다고 해서 붙잡아 감옥에 가두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꿈까지 꿉니다.


.. 어느 날 아침, 염소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달님에게 박혀 있는 고슴도치가 투덜대는 바람에요. 달님한테 꼬랑내가 난다는 거예요 ..  (34쪽)


 혼자힘으로 달님을 하늘로 돌려보낼 길이 없고 숨길 수도 없어서 어쩌지 못하던 다람쥐는, 고슴도치한테 힘을 빌고 염소한테도 힘을 빕니다. 그러나 둘 모두 달님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다람쥐는 생각합니다. ‘이러다가는 고슴도치도 염소도 함께 감옥에 갇히겠다’고.

 하늘에서 떨어진 녀석은 달이 아니라 치즈덩어리. 그래서 치즈는 조금씩 냄새를 피우고, 이 냄새를 맡은 파리떼가 몰려듭니다. 곧이어 쥐들이 좋은 먹잇감이 생겼다면서 갉아먹습니다.

 다람쥐는 속으로 울부짖지요. 쥐들이 더 큰일을 만든다고. 그런데 쥐떼가 ‘달님 아닌 치즈덩어리’를 갉아먹어 주었기 때문에, 치즈에 가시를 박던 고슴도치와 뿔을 박던 염소는 풀려납니다. 그렇지만 다람쥐는 걱정을 이어갑니다. ‘이제는 나와 고슴도치와 염소에다가 쥐까지도 감옥에 갇히겠군!’ 하고.


.. 염소가 풀려났어요…… 고슴도치도 풀려났어요…… 쥐들은 ‘꺼억’ 배가 불렀답니다. 그런데 이런, 달님이 망가져 버렸어요! ..  (37∼38쪽)


 다람쥐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배불러 드러누운 쥐는 꼼짝을 않습니다. 홀로 끙끙 앓습니다. 더구나 망가뜨리고 만 달님 모습을 누가 알면 어쩌나 두렵습니다. 이제 참말로 어찌해야 할는지.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서 눈물로 세월을 마감해야 할는지(다람쥐 혼자 하는 생각이지만), 무언가 뾰족한 좋은 수를 찾아내어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는지.




 (2)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라는 그림책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 싶어 금세 덮었습니다. 옆에서 함께 책을 보던 옆지기가 그림이 재미있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들추어보았습니다. 책을 다시 펼치니, 다람쥐가 혼자서 생각하는 이야기(자기가 감옥에 갇힌 모습)가 나오는데, 죄수는 십자수를 하고 있고, 창살로 달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한편, 그 옆으로 양변기 큰 것과 작은 것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 다음 다람쥐 생각(이번에도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보면, 죄수는 실이 다 떨어져서 바늘에 실을 꿰고 있고, 창살 밖으로 보이는 달 아래쪽에 고슴도치가 달에 가시를 박은 채 매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다람쥐 꿈(이때에도 감옥에 갇힌 모습)을 들여다보면, 창살 밖으로 달이 사라집니다. 쥐때가 달을 모두 먹었기 때문입니다. 죄수는 십자수를 할 수 없어 짜증스러운 얼굴이 되고, 그 옆으로 염소와 고슴도치가 나란히 앉아서 멀뚱멀뚱한 얼굴이며, 죄수 한쪽 옆으로 쥐들도 죄수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양변기는 짐승들 크기에 따라 작은 녀석으로 새로 하나 놓입니다.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를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넘겨서 봅니다. 한 번 더 보고 또 한 번 봅니다. 연필과 색연필을 쓴 바탕그림과 물감으로 그린 달(치즈) 모습이 서로 돋보입니다.

 책을 보는 우리들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으나, 자다가 쿵 소리에 깬 다람쥐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다른 짐승 동무들한테도 큰일입니다. 다람쥐나 고슴도치나 염소는 치즈를 안 먹으니 달로 잘못 생각할 수 있고, 치즈를 먹는 쥐도 배고픔을 채우려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었고.

 우리 세상을 사람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너무 뻔하거나 뚱딴지로 여길 수 있을 일일지 모르지만, 사람이 아닌 짐승들 눈으로, 또 짐승 가운데에도 조그마한 짐승 눈으로 볼 때에는 사뭇 다를 수 있구나 싶습니다. 아니, 다르지요.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마음 착한 동무들은 스스럼없이 나서서 도와줍니다. 사람끼리이든, 짐승끼리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나어린 사람이든.

 책상맡에 놓아 두고 또 한 번 그림책을 펼치니, 이 이야기를 짜내고 그림을 그린 분은 ‘재미있게 보라면서 즐겁게 그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생각해 보라고, ‘농사꾼 아버지와 아들’은 애써 마련한 치즈덩어리인데, 잠깐 쉬는 사이 미끄러지며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져 버렸으니 오죽 속이 타겠습니까. 그런데 속타는 농사꾼 마음은 모르는 채, 숲속에서는 짐승들끼리 큰일이 벌어졌고, 쥐떼는 ‘하늘에서 떨어진 밥 선물’을 고맙게 먹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안타까운 일이 누군가한테는 고마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을 느긋하게 추슬러서 ‘잃은 치즈덩어리야 어디로 가겠니, 숲속 짐승들이 먹겠지. 우리는 하늘에 걸린 저 달을 보며 아름다움을 생각하자’고 아버지가 아이를 달래었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아이가 아버지를 달래며 ‘우리 저 아름다운 달을 보면서 잊어요. 그러고 보니 저 달이 우리 치즈하고 꼭같은 빛깔이네요’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네도 ‘달로 여기는 치즈덩어리’ 때문에 생긴 일을 얼른 마무리하고 걱정없이 자기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겠지요. (4341.6.2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 : 길창덕 - 오마주아 총서 004
박인하 지음 / 하늘아래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삶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라에서
 [잠깐 읽기 6] 박인하,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길창덕 비평)


- 책이름 :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
- 글 : 박인하
- 펴낸곳 : 하늘아래(2002.12.2.)
- 책값 : 12000원


 (1) 만화와 우리 삶


 만화를 즐기는 사람은 많은 우리 나라이지만, 만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좀처럼 많지 않았고, 만화를 이야기하는 책도 몇 가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화를 이야기하는 일은 ‘평론’ 대접을 못 받기도 했지만, 만화라는 갈래가 ‘만화 문화’나 ‘만화 예술’이나 ‘만화 삶’으로 우리 사회에 찬찬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탓이 조금 더 크지 않으랴 싶습니다.

 더구나 ‘만화 = 나쁜 볼거리’라는 생각이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어른은, 그리는 사람대로 손가락질과 푸대접을 받는 데에다가, 정보ㆍ수사 기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만화를 즐기는 사람(어른 아이 모두)들 또한, 덜 떨어진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에다가, 공부는 안 하고 딴 짓이나 한다는 핀잔에다가, 교육에 나쁘다는 엉터리 같은 화살을 맞으면서 고달파야 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만화는 만화라는 고유한 이름을 못 쓰면서 ‘명랑만화’가 되고, ‘학습만화’로 갈라지고, ‘성인만화’ 딱지를 받기도 합니다.


.. 그러나 성인 만화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5ㆍ16쿠테타와 군사정부에 의한 검열로 인해 채 꽃망울도 맺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되었다. 이 야만적인 검열 행위는 대중적 전파력이 뛰어난 만화를 ‘아동용’이라는 족쇄에 옭아매어 이 땅에서의 만화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 그의 부푼 기대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길창덕을 가장 괴롭힌 것은 대중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문 만화에 대한 권력의 감시와 탄압이었다. 조금만 비판적인 만화가 나오면 정보 기관(당시는 중앙정보부였다)에서 전화가 오는가 하면, 때로는 임의 동행 형식으로 불려가기도 했다 ..  (94, 109쪽)


 우리 사회는 예나 이제나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자유가 없고 평등이 없으며 평화와 통일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빈부차별은 버젓이 일어날 뿐더러, 학교와 집에서도 차별을 가르치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경쟁과 따돌림을 몸에 익히도록 가르칩니다. 동무들과 살가운 벗이 되도록 하려는 집안이 없기에, 아이들이 골목이나 고샅에 나와도 함께 뛰놀며 어깨동무를 할 수 없습니다.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한테는 동무나 이웃을 돌아볼 마음마저 없어집니다.

 학교라고 해서 다른 수를 내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지금 우리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는 분들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놀이를 가까이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요. 교과서와 문제집을 붙들고 시험점수와 학과점수 높이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인 분들이 아니었나요. 교과서 진도에서 홀가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은 교사가 몇 분이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면서 어릴 적부터 어린이책을 꾸준히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닦은 교사가, 중고등학교 교사를 꿈꾸면서 어릴 적부터 청소년책을 줄기차게 찾아 읽으며 얼과 넋을 다스린 교사가 몇 분이나 될는지요.

 오늘날 교사들은 자기가 맡아 가르치는 아이들 삶과 마음을 굽어살피지 못할 뿐더러, 아이들이 즐겨 뛰놀 틈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느긋하게 뛰어놀도록 자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머리통만 무겁게 합니다. 책과 땀이 고루 어우러질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 결국 원고가 누더기가 될 때까지 매달리는 길창덕의 작가정신과 빨리 책 한 권을 뽑아야 하는 단행본 만화의 생리는 도저히 일치할 수 없었다. 결국 길창덕은 1967년도를 끝으로 더 이상 단행본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  (69쪽)


 집에서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뛰놀면 좋으련만, 집에서 뛰놀지 못하는 터전인 사회에서는 학교에서도 뛰놀지 못하리라 봅니다. 부모들 일터가 집하고 거리가 먼 곳에서 오로지 돈버는 데에만 치우쳐 있을 뿐, 이웃과 어울리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벌고 함께 나누는 쪽으로는 가지 못합니다. 부모들이 서로서로 어울리면서 함께 땀흘려 일하고 함께 보람을 거두는 곳이 될 때에는, 부모들 일터는 집하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들 일터와 가까운 데에서 서로서로 동무를 사귀면서 함께 뛰놀 수 있습니다.


..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은 ‘간단’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동질성을 선사한다. 근육질로 멋진 캐릭터들은 배가 나온 평범한 우리들과 동질성을 공유하기 힘들다. 하지만 3등신의 명랑만화의 캐릭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  (116쪽)


 이와 같은 우리 사회에서 만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만화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만화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우리 삶으로 파고들 수 있을는지요.




 (2) 길창덕 님 만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불 빨래를 합니다. 요사이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웬걸 비가 아닌 햇볕만 쨍쨍이기에, 겨우내 묵혀 두었던 빨래감을 꺼내어 날마다 한 채씩 빱니다.

 여느 빨래와 달리 이불 빨래는 힘들고 고단합니다. 이불을 다 빨고 나면 팔힘이 쪼르르 빠집니다. 그렇지만, 후들거리는 팔로 빨래줄에 이불을 척 걸쳐놓고 아랫단 물을 쪽쪽 짜 준 뒤 햇볕에 자글자글 말라 가는 모습을 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 더없이 개운합니다. 힘이 들어도 이 맛으로 이불을 손으로 빤다고, 나중에 아이하고 이불을 함께 빨면 이 느낌과 맛을 살며시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래를 해 주는 기계를 썼다면, 팔힘은 거의 안 듭니다. 꾹꾹 눌러서 짜 주기도 하니, 물짜기 걱정도 없습니다. 널어 놓을 자리로 옮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빨래기계를 쓰면, 이불 한 채를 빨 때 물이 얼마나 드는가를 모릅니다. 이불을 빨면서 어디가 더러워져 있는지, 얼마만큼 깨끗해지고 있는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손빨래를 하면 씻는방에서 이불을 헹구며 나오는 물로 바닥과 벽도 닦을 수 있으나, 빨래기계를 쓰면서 바닥 청소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려야 하니 얼마나 큰 운동이 되는지요.

 시간? 빨래기계를 돌리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기계를 돌리는 만큼 써야 하는 전기값은 따로 일해서 벌어야 하고, 빨래기계 값은 누가 거저로 주지 않습니다. 손빨래는 몸뚱이와 비누 한 장이면 넉넉합니다. 돈도 품도 운동도, 또 삶도 가꾸어 줍니다.


.. “한번은 운전면허를 따러 자동차 교습소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차장 아가씨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하는 거예요. 혹시 만화 꺼벙이를 그리시는 분이 아니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그 차장 아가씨가 너무 반가워하더군요. 목적지에 다 와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차장 아가씨가 뭔가를 내 손바닥에 쥐어 주는 거예요. 엉겁결에 받아쥐고 버스에서 내려 손을 펴 보니 토큰 하나가 들려 있어요. 반가운 마음에 뭔가를 주고 싶은데, 줄 게 없으니까 토큰을 되돌려준 거지요. 이게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면, 장물이었겠지만, 참 이상하게도 보건소나, 동사무소, 시장 골목 같은 삶의 구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항상 기억해 주었어요.” ..  (길창덕 님 말/26쪽)


 책꽂이에서 길창덕 님 만화 몇 가지를 꺼내어 들춥니다. 만화 이야기를 쓰는 박인하 님 책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에 사이사이 나오는 대목을 살펴봅니다. 길창덕 님은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과 당신 이웃 삶을 넘겨다본 모습을 만화에 담았습니다. 1960년대 만화에는 1960년대 삶이 묻어납니다. 1970년대 만화에는 1970년대 삶이 담깁니다. 1980년대 만화에는 1980년대 삶이 펼쳐집니다.

 지난날 도시(서울) 골목길이 어떠한지, 골목집들 살림이 어떠한지, 마당이며 골목이며 부엌이며 마루며 방이며 어떠한지 찬찬히 드러납니다. 아이들 놀이가 만화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어른들 매무새가 만화에 하나하나 보여집니다.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무릎걸음으로 마루를 걸레로 훔치는 모습 옆으로는 담배를 입에 물고 텔레비전을 켠 채 신문을 보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때는 이런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이 남김없이 만화에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삶터에서 자기 깜냥껏, 주제껏, 재주껏, 마음껏 꿈을 꾸면서 생각을 키우고 사람을 만나며 놀이를 즐기고 어수룩하지만 공부도 하는 꺼벙이며 덜렁이며 쭉쟁이며 재동이며 고집세며 이야기를 엮어 갑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을 찾아서 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문득, 사람들은 길창덕 님 만화를 놓고 ‘명랑만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명랑’이라는 말보다는 ‘생활’이라는 말을 붙이는 ‘생활만화’가 한결 어울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삶이 묻어나는 만화, 삶이 담기는 만화, 삶을 녹여낸 만화, 삶을 가꾸어 가는 만화를 길창덕 님이 그려 나가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길창덕 님 스스로 ‘나는 내 삶과 내 이웃 삶과 내 아이 삶을 그렸다’고 내세우지 않더라도 길창덕 님 만화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 삶이 여기에 다 있군요’ 하고 느끼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을 헤아리면서 찾고 가꾸면서 일구어 가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가는군요’ 하고 느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4341.6.23.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전진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54 ― ‘원폭피해 2세 환우’한테 인권은 없었네
 : 전진성 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김형률 평전)


- 책이름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글 : 전진성
- 사진 : 윤정은
- 펴낸곳 : 휴머니스트(2008.5.19.)
- 책값 : 12000원



 (1) 사라지는 책


 지난주에 바람 좀 쐬려고 서울로 헌책방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때 서울 노고산동에 있는 ㅅ헌책방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할머니 작품집》이라는 두툼한 그림책 하나를 보았습니다. “문화관광부 복권기금 지원사업”으로 나왔다고 책겉에 글씨를 박아 놓고 있던데, 2004년에 비매품으로 나왔습니다.

 2004년이면, 몇 해 안 되었기에, 그때 이런 책이 나온 줄 왜 몰랐을까 생각하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를 합니다. 이 책과 얽혀서 아무런 기사가 뜨지 않습니다. 비매품으로만 찍고 기자한테도 돌리지 않았을까요. 기자한테 보내어 주기는 했으나 기사로 다루지 않았을까요. 광주 퇴촌면에 자리한 〈나눔의 집〉에 가야만 구경할 수 있을까요.

 문과관광부에서 책 내는 돈을 도와주었다면, 출판사 한 곳에서 일을 맡아서 꾸며낸 다음, 새책방에도 집어넣어서 사람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찾아보고 읽으면서 하나하나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는지 궁금합니다.


.. 합천에서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로 건너갔던 것은 분명히 일제와 그 하수인들의 수탈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합천사람들의 고통은 그들을 히로시마로 내몰고 귀향 후 무책임하게 방치해 온 역사적 전말과 관련지어 규명되어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 응분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 분명히 역사의 피해자들인데도 이들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무책임한 사회라면 우리는 과연 이런 곳을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자발적인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까? ..  (148쪽)


 지난 2002년, 송건호 님 전집이 스무 권으로 나오면서, 그나마 몇 가지 시중에 있던 ‘낱권으로 된 송건호 님 책’은 모두 판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40만 원에 이르는 전집을 사든지, 아예 읽지 말든지 하라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헌책방을 찾아가 보면 송건호 님 책은 어렵잖이 만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아직 절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재판을 찍을 일이 없어 보이는 ‘송건호 전집’이 절판이 되어 버리면, 이제는 영영 송건호 님 책을 시중 새책방에서는 구경해 볼 수 없게 되고 말는지요. 송건호 님 책을 낱권으로 만날 길은, 또는 값싸고 가벼운 판으로 송건호 님 책을 읽을 수 있는 길은, 앞으로도 없을까 모르겠습니다.


.. 일본의 원폭피해자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한국인들이 겪은 식민지 지배와 전후 방치의 고통만큼은 알지 못했다 …… 형률 씨는 자국의 역사적 과오를 덮으려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정당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 소재를 일본 정부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책임은 미국 정부에게도,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도, 또한 한국의 시민사회에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 원폭피해자들 자신에게도 있다 ..  (89∼90쪽)


 지난 2006년, ‘리영희 저작집’ 열두 권이 나올 때, 리영희 님 책도 주루루 절판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다른 책이 절판되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까이 품절을 걷다가 절판까지 이어지고 만 《스핑크스의 코》라는 책도 있지만, ‘리영희 저작집’ 말고도 몇 가지 책은 시중 새책방에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리영희 저작집’ 열두 권이 먼저 품절이 되어버렸습니다.

 말로만 품절인지, 속내로는 절판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송건호 전집과 마찬가지로 ‘리영희 저작집’도 앞으로는 홀가분하게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은 뭉게뭉게 듭니다.


.. 그는 여기서 문제 해결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선지원 후규명’이라는 해법이었다. 날로 악화되는 환우들의 건강은 면밀한 조사와 법적 공방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순수한 인권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의료 원호 사업이 실시되어야 한다 …… 그러나 인권위는 ‘정책권고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원폭 2세에 대한 어떠한 실태 조사도 실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  (211쪽)


 지난 1999년, ‘문익환 목사 전집’ 열두 권이 삼십만 원이라는 값을 달고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책은 품절은 안 된 듯 싶습니다. 그러나 1999년 값으로 열두 권 삼십만 원이란 엄두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어느덧 열 해 가까이 지난 2008년에 와서 헤아리면 열두 권에 삼십만 원은 그다지 안 비싼(?) 값입니다만, 주머니를 열기가 벅차기는 매한가지입니다.

 1997년에 나온 ‘예용해 전집’ 여섯 권을 생각해 봅니다. 1997년 값으로 여섯 권에 십이만 원이었습니다. 예용해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를 곱씹어 본다면, 당신이 펼친 이야기처럼 당신 책도 수수한 아름다움과 멋을 듬뿍 풍기면 좋으련만, 글쎄요.

 한국땅에서 한국 얼과 넋을 빛낸 분들 책을 한 자리에 묶어내는 일은, 오히려 무덤을 파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는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갔어도 그분들 넋을 고이 이어받아서 우리 삶을 가꾸도록 하려는 몸짓으로 전집을 묶었을 텐데, 이 전집들이 받는 대접은 하나같이 겉치레와 껍데기일 뿐, 이 전집들에 담긴 이야기가 알알이 소담스럽고 조촐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르신을 기리고자 야무진 양장에 비싸구려 종이에다가 단단한 종이상자를 씌워 주는 일은 반갑기는 하지만, 무덤에 금을 바르기보다는 살아서 굶주리는 사람들 앞에 밥그릇 하나 골고루 놓아 주는 일이 한결 반가웁지 않으랴 싶습니다.


.. 형률 씨는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다. 현률 씨는 단지 사회복지 차원에서 구호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부채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였다 ..  (233쪽)


 ‘원자폭탄 피해자 2세 환우’ 김형률 님 이야기를 담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읽고 나서, 그러면 ‘김형률 개인을 넘어서 원자폭탄 문제란 무엇이고, 원자폭탄 피해자 이야기는 얼마나 우리가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자료를 뒤져 보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이쪽 일에 눈길을 두면서 자료를 챙겨 놓았기 때문에,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살핍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책이 있으니, 더 읽어 보면 좋습니다’ 하고 소개해 보려고 인터넷 새책방 목록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만화책 《맨발의 겐》을 빼놓고는 절판이나 품절입니다. 죽은 김형률 씨가 그토록 아끼고 되읽었던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책마저 2003년에 처음 나왔음에도 벌써 절판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진작 절판이 되었는데, 이참에 비로소 알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만.




 (2) 사라지는 역사


 나이를 거슬러서, 고등학교 적을 떠올려 봅니다. 1991년부터 1993년. 이 세 해 동안 찾아서 읽은 책을 헤아려 봅니다. 고1이 된 1991년 2월께, 방송 소식으로 ‘1993학년도 대입시험은 학력고사에서 수능과 논술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과목을 배우던 그해부터 교과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같은 학교를 마친 우리 형이 쓰던 교과서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물려받을 수 없었고, 모두 새로 사야 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바뀌기만 하지 않고, 교과서에서 쓰던 말도 한꺼번에 바뀌었습니다.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는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뗀석기’와 ‘간석기’가 쓰였고, ‘지석묘’ 또한 사라지면서 ‘고인돌’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함께, 교과서 지식만으로는 수능시험을 치를 수 없으니, 교과서 아닌 교양서적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문이 내려왔습니다.

 교과서가 바뀐 탓에 살림돈이 많이 나가 우리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이 소식은 ‘교과서 아닌 책을 학교로 마음껏 가지고 가서 읽어도 되는구나’ 하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역사 시간에 박지원을 가르쳐 주면, 책이름을 잘 새겨 놓았다가 박지원이 쓴 글과 책을 책방을 뒤져서 찾아 읽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이름이었지만, 박영문고에는 ‘박지원ㆍ이옥’ 소설이 함께 묶여 있었기에, 또다른 옛 선비 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 지식으로는 ‘박지원 = 열하일기’였지만, 저는 구태여 《열하일기》라는 책을 손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정약용 = 목민심서’로 외우기 싫어서 《목민심서》를 읽고 《흠흠신서》를 읽었습니다. 마침 한문 공부를 꽤 깊이 하였던 터라, 박지홍 님이 쓴 《한문입문》까지 읽으면서 《목민심서》를 아예 원본을 놓고 새기기도 했습니다.


.. (박정희) 군사정권은 국내 원폭피해자들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왜? 민주적 정통성이 결여된 군사정권은 주변국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우두머리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만주관동군에 충실히 복무했던 둘도 없는 친일파가 아니었던가 ..  (83쪽)


 현대역사를 가르치며 ‘박은식’이 나오면 《독립운동지혈사》를 찾아 읽었고, ‘신채호’가 나오면 《조선상고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책은 시중 새책방에 없었습니다. 박은식 님 책은 박영문고와 서문문고로 있었으나, 헌책방에서 겨우 찾았고, 신채호 님 책도 삼성문화재단문고로 나온 판을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찾아서 읽었습니다. 김동인이든 김유정이든 이효석이든 나도향이든 안수길이든, ‘이름 = 작품’이 아닌 ‘이름 → 책’으로 바꾸어서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놓은 다음, 반드시 찾아서 읽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틈틈이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 ‘교과서 아닌 책’을 잔뜩 꺼내는 제 책을 압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을 치르려면 교과서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면서요?’ 하고 대꾸를 하면서 국어 교사나 역사 교사 손을 거쳐서 모두 돌려받았습니다.


.. 원폭 이전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제일 가는 군사도시였다.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은 히로시마에서 승선했고, 메이지 천황은 히로시마를 7개월 간 임시수도로 삼고 육해군을 통솔하는 최고 사령부인 대본영을 히로시마성에 설치했다 …… 이후 반세기에 걸쳐 히로시마는 아시아 침략의 거점으로 크게 번창했다 ..  (115쪽)


 나중에 우리가 꿈꾸던 대학교를 속으로 읊으면서 ‘그 학교 그 학과에 아무개 교수가 있다더라. 우리가 그곳에 가려면 그 교수가 쓴 책은 읽어야 하지 않겠니?’ 하면서, 강만길 님이 쓴 《한국현대사》를 읽고, 《한국의 역사인식》 상하권을 줄줄 외면서, 수업을 듣다 말고 선생님한테 여쭙곤 했습니다. 교과서에는 안 나오지만 수능과 본고사 보기글로는 나오는 고은, 염무웅, 최원식, 백낙청, 김윤식, 김현 같은 사람들 책도 읽어나가면서 이들이 비평하고 소개하는 사람들 책도 가지치기가 되어서 저절로 따라 읽게 됩니다.

 이러는 동안 이오덕, 권정생, 이원수를 알게 됩니다. 성내운, 고정희, 최현배, 박완서, 홍명희, 황석영, 김정한, 천승세를 읽게 됩니다.

 교과서 역사에는 왜 ‘현대 역사가 이리도 짧게 나올까’ 갸웃갸웃하고, 두루뭉술하게 스쳐 지나가는 친일부역자와 독재정권 문제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중간시험과 기말시험, 또는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점수에서는 조금 낮은 점수, 때로는 많이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내 삶터 발자취를 내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 원폭이 차세대에 끼치는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미국의 핵무기에 대해 비판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일본 피폭 2세들은 이 정도 모험을 감수할 만큼 사명감이 투철하지 못하다. 다만, 자신들의 권익에 민감할 뿐이다 ..  (137쪽)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납니다. 이때부터는 거리낌없이 갖가지 책을 더 깊이 찾아나섭니다. 이토 다카시라는 일본사람이 쓴 《사할린 아리랑》과 《종군 위안부》라는 책을 만나면서, 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이분들, 사할린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이나 한국땅에서 제 모습을 숨긴 채 울어야 하는 분들 삶과 아픔을 한 줄로도 적바림하지 않을 수 있는지 짜증이 일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사람이 쓴 《미나마따의 아픔》이나 《촬영금지》나 《보도사진가》라는 책을 만나면서, 왜 한국에서 기자나 사진작가라고 하는 놈들은 우리 근현대사를 이렇게 멀찌감치 에둘러가면서 겉멋만 잡고 있는가 하면서 주먹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책을 만납니다. 한국외대 구내서점에서 일할 적에는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라는 따끈따끈한 책이 나온 모습을 보며 덥썩 껴안습니다. 《심심해서 그랬어》 같은 그림책은 아이들이 볼 그림책이라기보다 어른이 함께 보아야 할 그림책이라고 처음 느낍니다. 《몽실 언니》나 《하느님의 눈물》이야말로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보다 훨씬 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이할 책임을 느낍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대로 학교교육에 파묻히다가는, 책이 아닌 교과서 달달 외우며 살다가는, 교과서가 마치 책이라도 되는 듯 잘못 아는 삶을 고치지 않다가는, 이대로 시험점수에 노예처럼 휘둘리면서 ‘성적표 숫자가 자기 자신을 말하기라도 하는 듯’ 엉터리로 알고 있다가는, 사람도 망가지고 삶터도 망가지고 이 나라도 망가지겠다고 느낍니다.


.. (형률 씨가) 무심코 들춰본 진료기록부에서 그는 한 편의 의학 논문을 발견했다. 〈면역글로불린M의 증가가 동반된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병을 다룬 논문이 아닌가! 환자인 자신도, 그리고 보호자인 부모님도 알지 못한 채 발표된 의학 논문이었다. 1995년 당시 자신에게 병명을 알려주었던 주치의가 형률 씨의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를, 더구나 보호자가 낸 검사비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아무런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형률 씨는 엄청난 소외감을 느꼈다. 한낱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의 몸! ..  (54쪽)


 그렇게 ‘누군가 없애거나 지우려고 애쓰는’ 참된(?) 우리 발자취를 찾아나가던 어느 날, 서울 홍제동 ㄷ헌책방에서 《핵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만납니다. ‘한국 원폭피해자 2세’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돌아본 조그마한 책입니다. 《핵의 아이들》을 써낸 박수복 님은 1975년에도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을 펴내어 ‘한국 원폭피해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핵의 아이들》은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에서 소개한 원폭피해자들이, 그 뒤 열 해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가를 다시 찾아가서 만난 이야기로 묶었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때였던 만큼, 원폭피해자는 ‘여느 장애인보다 더 고달프고 아픈(?)’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왜 아픈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알 길이 없었고, 아파도 병을 다스릴 약값을 댈 수 없었으며, 바로 코앞에 떨어진 밥과 집 문제마저 풀기 어려웠습니다. 1975년에 낸 책에 붙인 이름처럼, ‘소리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삶이라고 할까요. ‘소리를 내도 들어 주는 사람 없’고, ‘이름이 없으니 알아주려는 사람도 없’는 삶이라고 할까요.

 박수복 님은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에서, 원폭피해자들 입을 갈음하면서 “한국피폭자들의 현존이야말로 현대의 전쟁이 무엇이며, 과학무기가 무엇인가를 그들이 온 생애를 통한 고통과 그들의 목숨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30년을 버텨 온 것처럼 앞으로도 버텨 갈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을 것이다. 장구한 미래까지도 결코 마멸되지 않는 흔적으로 그 고통은 메아리칠 것이다(25쪽)” 하고 외칩니다.

 취재를 하면서 울고, 글을 갈무리하면서 울던 그 마음이, 시중에서 사라지고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서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던 책을 우연히 알아보고 읽은 한 사람 마음으로도 이어져서, 서른 몇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쩌렁쩌렁 울립니다.




 (3)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책


..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유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원폭 2세 환우들과 원폭피해자 가족들을 더 이상 방치한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며 인권유린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김형률/288쪽)


 ‘한국 원폭피해자 2세 환우’ 김형률 님은 1970년 7월 28일에 태어나 2005년 5월 29일에 숨을 거둡니다. 서른여섯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피해자인 몸으로 태어나서 아픔 한 번 달래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다가 죽고 만, 원폭피해자 2세 환우 가운데 하나인 김형률 님입니다.

 형률 님 형제가 모두 아픔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다른 원폭피해자 2세들 가운데에도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형률 님은 ‘원폭피해자 2세 환우’라고 해서 ‘환우’라는 말을 뒤에 꼭 붙였습니다. “저와 같은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 2세 환우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 건강한 원폭 2세들도 유무형의 사회적인 편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김형률/38쪽)”한다고 말한 김형률 님. 그렇지만, 문제는 ‘튼튼하게 잘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세’를 뱀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에 있습니다. 더욱이, ‘아파서 힘겹게 겨우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세’를 아예 ‘없는 사람’인 듯 구석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야말로 문제입니다.


.. 생계 지원이나 박물관 건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환우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장치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 공세나 학술적인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  (254쪽)


 하루하루 더 골이 깊어가는 사회 푸대접을 바라보고 있자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처럼 어렵다는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부자가 가난한 이 삶을 돌아보기 어려웁듯, ‘몸이 안 아픈’ 사람이 몸 아픈 사람 삶을 돌아보기도 어려울까요.

 피해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 시름시름 앓거나 괴로워하는 사람 삶을 헤아리기는 꿈일 뿐일까요. 지식으로는 알고, 소식으로는 들어도, 그저 머나먼 딴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질 뿐인가요.


.. 아프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운동을 하는 이유였다. 아픔을 종식시키는 것은 그 운동의 목표였다. 그는 자신의 운동을 ‘인권회복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  (222쪽)


 모자라나마 이런 책이 나왔고, 아쉬우나마 원폭피해자 2세 환우 이야기를 다루며, 늦게나마 이 책 하나로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에 담아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제 첫발입니다. 첫걸음입니다. 김형률 님이 세운 ‘한국원폭 2세 환우회’는 어떻게 보면 첫발도 아닌지 모르거든요. 애써 첫발을 떼려고 했지만, 첫 발걸음을 떼려는 김형률 님과 이웃 아픔이들을 밀어서 넘어뜨린 사람이 숱하게 많았어요. 2004년 여름날,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에서 ‘원폭피해자 담당 사무관’하고 만났을 때, 담당 공무원은 “현재 한국 원폭2세 환우회에 가입한 회원수가 적어 조직을 인정할 수 없으며, 그저 김형률이라는 개인의 민원으로 접수하겠다고 못박았(169쪽)”답니다. 그리고, “박 사무관은 원폭 2세 환우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원폭피해자 실태 조사〉에서 원폭 후유증 자녀수를 2300여 명이라고 밝혔던 사실에 대해 그는 ‘모르는 사실’이라고 일축했(170쪽)”고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보고도 눈을 감았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팔짱을 끼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입니다. 공무원부터 여느 시민까지 한결같습니다. (4341.6.20.쇠.ㅎㄲㅅㄱ)

   
 
 [더 찾아볼 만한 책]

㉠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 조사자료
박수복,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창원사,1975)
박수복, 《핵의 아이들》(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1986)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인 원폭피해자(실태조사보고서)》(한국교회여성연합회,1984)
한국교회여성연합회ㆍ사회사진연구소, 《그날 이후》(한국교회여성연합회,1989)

㉡ 원자폭탄 피해자 수기ㆍ증언
존 허시/이부영 옮김, 《히로시마의 증인들》(분도출판사,1986)
오꾸다 사다꼬/조형균 옮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생각사,1982)
표문태 엮음, 《버림받은 사람들》(중원,1987)
오사다 아라다 엮음/박준희ㆍ홍현길 옮김, 《원폭의 어린이》(학문사,1996)

㉢ 원자폭탄과 평화ㆍ환경 문제
칼 야스퍼스/김종호ㆍ최동희 옮김, 《원자탄과 인류의 미래》(사상계사,1963) 상하 권
간샤 다에꼬/조형균 옮김, 《아직도 늦지 않다면》(백재문화사,1991)
박해전 옮김, 《반핵과 제3세계》(시인사,1986)
히로세 다카시/김원식 옮김, 《위험한 이야기》(푸른산,1990)
리영희ㆍ임재경 엮음, 《반핵, 핵위기의 구조와 한반도》(창작과비평사,1988)
고승우ㆍ윤범모, 《반핵과 미술》(춘추사,1989)
표문태 엮음, 《아시아를 비핵지대로》(일월서각,1987)
윌프레드 버체트/표완수 옮김, 《히로시마의 그늘》(창작과비평사,1995)
이안 부루마/정용환 옮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한겨레출판,2002)
이치바 준코/이제수 옮김, 《한국의 히로시마》(역사비평사,2003)

㉣ 원자폭탄과 얽힌 문학ㆍ예술 작품
신기활, 《핵충이 나타났다》(친구,1989)
앨런 니들/박정은 옮김, 《핵시대의 우화》(현암사,1994)
김원일, 《히로시마의 불꽃》(문학과지성사,2000)
구드룬 파우제방/함미라 옮김,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보물창고,2005)
나카자와 게이지/김송이ㆍ이종욱 옮김, 《맨발의 겐》(아름드리미디어,2000) 10권

㉤ 원자력발전소 폐기장 문제와 얽힌 나라안 문제
전재진, 《핵, 그리고 안면도 항쟁》(충남저널,1993)
박영복, 《굴업도》(학민사,1995)

㉥ 일본은 아무 잘못 없으며, 원자폭탄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외치는 모순덩어리
나스 마사모토ㆍ니시무라 시게오, 《히로시마》(사계절,20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