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3


 볼일이 있어 옆지기와 아기까지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 외국어대 있는 데까지 나들이를 합니다. 퍽 먼길이라서 아기도 걱정이고 옆지기도 걱정입니다. 이러한 걱정은 용산역에서 내려 뒷간을 갈 때부터 조금씩 불거지고, 서울역부터 땅밑으로 파고드는 전철을 타고 달리는 내내 깊어집니다. 아기도 힘들고 옆지기도 힘겨워, 같이 나들이를 하자고 이끈 아빠는 참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길기 때문에, 책을 세 권 가방에 챙겼지만, 머나먼 길을 오가는 동안 책은 겨우 두 번 펼칠 뿐입니다. 그나마 돌아오는 길에 아기며 옆지기며 고단한 잠에 깊이 빠져들었기에, 두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책을 펼쳤습니다.

 갓난쟁이하고 나들이를 가야 할 때에는 책 펼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니면 두 사람을 돌보면서 둘 모두 새근새근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애 아빠는 잠을 좇으면서 그 작은 틈을 쪼개어 책을 펼쳐야 하는지. (4341.1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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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 2


 차소리 시끄럽지, 손전화 소리 귀 따갑지, 사람들 수다 쟁쟁거리지, 우리 스스로 부처님처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책읽기는 어렵습니다. 자리에 앉기 쉽지 않으나 자리에 앉아도 옆에 앉은 이들이 밀거나 다리 벌리거나 신문 펼치면 고달픕니다. 서서 책을 읽는 동안, 밀고 치는 사람들한테 부대낄 때에도 힘이 듭니다. 잠깐 눈을 쉬고자 고개를 들면 수많은 광고판으로 눈이 아프고, 고개를 숙여 창밖을 내다보면 이번이 어느 역에 서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역마다 역이름 적어 놓은 자리가 너무 작고 글씨도 너무 작습니다.

 덜컹거림은 버스와 견주면 많이 적다고 할 전철일 텐데, 아예 없지 않을 뿐더러 썩 밝지 않은데다가 깜빡거리는 다 된 형광등이 제법 많고, 땅밑으로 들어가면 형광등 불빛은 흐려서 눈이 아픕니다. 더군다나 공기는 얼마나 나쁜지요.

 그렇지만, 바쁜 도시사람들로서는 일터에서 책을 못 읽고 집에 가도 책을 못 펼칩니다. 일을 마치고 책을 구경할 책방 나들이를 해 볼 엄두는 얼마나 낼 수 있을는지요. 그나마 저녁에 술 한잔 걸친 뒤에라도 전철에 몸을 싣고서 겨우겨우 책 한 쪽이나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달파도 벗이요 힘이 들어도 동무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사람들 북적이고 담배 냄새며 화장품 냄새며 갖가지 냄새가 범벅이 된 타는곳에 멀뚱멀뚱 다리 아프도록 선 채로 지하철이나 전철을 기다리며 책장을 펼치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온갖 힘겨움과 고달픔을 잊고 책나라로 뛰어듭니다. 그러다가 사람물결에 휩쓸려 전철칸으로 빨려들어가서 손잡이 하나 못 잡고 허우적거리노라면 애써 펼치고 있던 책은 구겨지고 몸도 구겨지고 마음도 구겨집니다. 그나마 나 혼자 구겨지지 않고 전철에 탄 모두가 구겨지니 마음을 달랠 수 있으려나요. 뭐, 조금도 마음을 달랠 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언제나 머나먼 전철길을 달리기 때문에(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끝에서 두 번째), 오징어가 된 채로 웬만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숨통이 트이고 책을 펼칠 자리도 넉넉해집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몸 고단함이 크기 때문에 책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어서 눈이나 감고 잠들어 버리고 싶은데, 감기는 눈을 부릅뜨거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새힘을 북돋우면서 글줄 하나라도 읽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책 하나에 담긴 빛접은 줄거리를 새기자고, 달콤한 알맹이를 맛보자고, 시원한 이야기에 젖어들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십 분, 또는 이십 분, 이렇게 눈 부릅뜬 채로 책에 묻히고 있으면 어느새 없었던 힘이 차츰 솟습니다. 구부정했던 어깨가 펴집니다. 후들거리던 다리에도 힘이 오르고, 뒤숭숭하고 띵하던 머리도 살살 깨어납니다. 이윽고 마지막 역에 닿아 마지막 사람물결과 함께 전철역을 빠져나오면, 개미새끼 하나 없이 어둡고 고즈넉한 골목길. 홀로 골목길을 거닐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옆지기나 아기하고는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없던 날, 혼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빠는, 옆지기한테든 아기한테든 무어 선물할 만한 것 하나 손에 들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다시 찾은 맑은 마음과 몸뚱아리 하나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가서, 하루 내 아기와 씨름한 옆지기를 달래고, 칭얼거림으로 엄마를 들볶은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씻기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4341.9.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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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글쓰기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아버지한테 했다는 소리. “글을 쓰려면 그렇게 하지 마라!” 글쓰기란, 배부른 가운데 할 수 없고, 어깨에 힘주면서 할 수 없으며, 머리속에 든 지식을 자랑하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 된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느냐만, 아버지가 글쓰기에 마지막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을 하셨다면, 나 또한 “아버지는 글을 쓸 생각이라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쓰기란 자기 삶을 낯모르는 사람들 누구한테나 숨김없이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제 모든 피와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고 도려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밥을 하듯 빨래를 하듯 걸레질을 하듯 품과 땀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일값을 알아주는 사람 없고 일삯을 쳐주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에. 글쓰기란 이 나라 농사꾼과 공장 노동자처럼 일한 대가인 품삯은커녕 밥푼이나 얻어먹을 만큼도 돈을 벌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앞으로도 그러고 살 거냐?” 글써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줄을 당신 마흔 해 넘는 ‘글쓰기 삶’이 찬찬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된다.”는 당신 말씀처럼, 아직 어려만 보이는 조카 같은 아이가 걱정스럽기 때문에. 나야 글줄 붙잡는다고 깝죽을 떨기는 할 터이나, 옆지기와 딸아이 앞날은 어둡고 배고프고 힘겨울 수 있기 때문에. 나야 글쓰며 나누는 보람을 얻을지 모르지만, 애써 쓴 글에 서린 땀방울을 알알이 느끼거나 받아먹어 줄 사람은 이 나라에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나야 내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고 할 테지만, 돈이 안 되는 글은 거들떠보지 않을 뿐더러, 시가 시 아닌 대접을 받듯, 우리 말 이야기나 헌책방 이야기 따위는 한물도 아닌 두물 세물 네물 닷물이 간 이야기인데다가, 세상 흐름과 거스르게 된다고들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하고 처음으로 막걸리잔을 부딪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뻗어 버리고 새벽 세 시 오십사 분에 일어나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놓은 셈틀 앞에 앉아서 아침 여덟 시 오십일 분까지 쉼없이 글을 쓴다. 어제 하루 내 못 쓴 글을 부지런히 쓰고, 오늘 하루 쓰고자 마음먹고 있는 글을 내 딴에는 야무지게 붙잡으며 쓴다.

 그러나 글만 쓸 수 없어서, 언손을 비비다가는 옆지기와 아기 자는 방에 불을 넣고 나서, 뒷간에서 따순 물이 나오니 기저귀 담근 빨래통에 물을 받아서 ‘손 녹이기 빨래’를 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에, 방에 불을 넣고 나면 보일러가 물도 덥혀 놓고 있기 때문에 이 물을 쓰면 빨래가 한결 손쉽고, 글을 쓰면서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가는 손가락에 보드라운 기운을 입힐 수 있다.

 아직도 펄펄 날뛰는 모기 몇 마리를 잡다가는, 이제 나도 더 버틸 수 없어서 잠이 들어야겠는데, 잠을 잔다 해도 얼마나 자는 셈일까. 자기 앞서 콩과 쌀과 보리를 씻어서 불려 놓아야겠다. (4341.11.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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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군대위안부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39
요시미 요시아키 지음, 이규태 옮김 / 소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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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5 ― 일본은 ‘성노예’, 한국은 ‘성폭력’
 :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군 군대위안부》



- 책이름 : 일본군 군대위안부
- 글 : 요시미 요시아키
- 옮긴이 : 이규태
- 펴낸곳 : 소화 (1998.8.20.)
- 책값 : 6700원


 (1) 어머니 일과 집안일과 남자


 아기 손발톱을 자릅니다. 아기는 손톱이 길면 얼굴을 할퀼 수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자라도 가위도 잘라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 쓰는 손톱깎이로는 아기 손톱을 깎을 수 없습니다. 여느 때에는 자를 수 없고,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때, 아니면 엄마젖을 물고 있을 때 자릅니다. 그러나 잘 때에는 발가락이 간지러워서 깨기도 하기에, 웬만하면 젖을 물 때 자릅니다.

 아기 손발톱을 자른 뒤, 옆지기 손발톱을 깎습니다. 아기를 낳은 뒤부터 오늘까지 아흔 날 하고도 이틀이 지났으나, 옆지기는 아직 제 몸을 되찾지 못합니다. 식사장애가 있는데다가 산부인과에서 받은 아픔이 모두 가시지 않기도 했지만, 갓난쟁이하고 늘 붙어 있어야 하다 보니, 집 바깥으로 바람 쐬러 나들이를 하기조차 힘들어서 마음이 지치는 바람에 몸이 함께 지칩니다.

 이리하여 손발톱을 깎아야 한다고 스스로 말은 하지만, 깎기 힘들어서 아기한테 젖을 물린 채 벽에 기대어 잠듭니다. 지아비는 옆지기 손톱과 발톱을 차근차근 깎습니다. 다 깎은 손발톱을 보는 옆지기는 “되게 바짝 깎네.” 하면서 “나는 이렇게 못 깎는데.” 합니다. “그다지 바짝 깎지도 않았는데.” 하고 대꾸하니, “바짝 깎아도 빨래를 못하니 손톱이 지저분하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 이 책은 종군위안부와 그 제도의 역사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그 실태를 은폐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일본군 성노예’ 또는 ‘군용 성노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전후 약 50년 간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그 본질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 이 책의 커다란 목적의 하나이다 … 문제가 되는 것은 위안소에서 강제, 미성년자의 사역, 징집시의 강제와 그에 대한 일본 국가의 책임이다. 나아가, 위안소 제도라는 군용 성노예 제도를 만들어 운영했다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의 논쟁은 단지 위안부 문제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인의 자긍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본인의 역사 인식과 아이덴티티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의 민족주의적인 언설의 배경에는 한일 간 또는 일본인과 다른 아시아인과의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  (7, 8, 9쪽)


 두 여자 손발톱을 자르고 깎은 뒤 제 손발톱을 깎다가 잠깐 멈칫합니다. ‘빨래를 못하니 손톱이 지저분’해진다고?

 물끄러미 제 손톱을 들여다보고 발톱을 만져 봅니다. 참말 제 손발톱에는 때가 하나도 없습니다. 남들보다 손을 자주 씻는다고 할 수 없고, 아니 손을 씻는 일도 드문데, 손발톱에는 때가 조금도 없습니다.

 옆지기 말을 미루어 보니, 날마다 퍽 긴 시간을 아기 기저귀를 빨고 옆지기와 제 옷을 빠느라 보냅니다. 새벽마다 콩과 쌀과 여러 곡식을 씻어서 불려 놓습니다. 밥하기와 설거지하기를 도맡고 있습니다. 날마다 한 번씩 아기를 씻깁니다. 한두 주에 한 번씩 이불이나 담요를 한 장씩 빨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날마다 하지 못하기는 하나, 걸레를 빨아 방이며 나무벽이며 훔치고 닦습니다. 딱히 손을 씻는 때는 없지만, 참으로 긴 시간을 물을 만지면서 삽니다. 손에서 물기 가실 겨를이 없으니, 어쩌면 이러저러하는 동안 손발톱에도 때가 앉을 겨를이 없는지 모릅니다.


.. 일본이 개시한 전쟁은 대의명분이 없는 침략 전쟁이었고, 또 승리의 전망이 없는 무모한 전쟁이었다. 이와 같은 전쟁에 휴가 제도도 불충분한 채로 장기간 전장에 장병을 묶어 놓기 위해서 성적 위안이 필요하다고 일본군은 생각했던 것이다 … 일본군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육해군 전부가 전시에는 휴가를 주지 않았다. 더구나 병영 내에서 병사의 인권은 완전히 무시된 채 상관의 엄격한 감시와 사적인 제재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  (65∼66쪽)


 우리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제 손은 제 국민학교 적 어머니 손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제 국민학생이었을 때 어머니 나이였는데, 어머니는 당신 나이와 견주어 다른 동무네 어머니보다 손이 누렇게 뜨고 마디가 굵고 주름이 많이 잡혀 있었습니다. 어머니 손에서 물기 마를 날은 거의 없었고, 잠깐이나마 자리에 앉아 쉬는 때는 거의 못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참 힘들게 살림을 꾸리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어머니가 무엇 하나 심부름을 시켜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속썩이거나 근심하시지 않도록, 또 어머니 부업을 거들 수 있으면 거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왜 어머니(여자)들은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 어머니들도 그토록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 술동무가 집으로 놀러오면 ‘왜 어머니들만 그렇게 술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머니한테도 술동무가 있어서 서로 놀러다니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녀차별’이나 ‘남녀평등’이라는 이름을 모르던 때이고, ‘성차별’이나 ‘성평등’이라는 낱말은 들어 본 적이 없던 1980년대에, 인천 제2부두 앞 조그마한 집에서 우리 집 돌아가는 흐름과 이웃사람 꾸려가는 삶을 지켜보면서, 내가 남자로 태어나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났어도 그리 좋은 꼴은 못 보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만큼 내가 할 몫이 있다는 뜻이 아니랴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우리 아버지, 또는 이웃 아버지, 또는 학교 남자 교사, 또는 동네 아저씨나 할아버지 …… 둘레에서 보고 부대끼는 숱한 남자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런 멋없고 짜증스럽고 안쓰러운 삶으로 내 앞길을 얼룩지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군인으로부터 성병을 옮겨 받은 것은 위안부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더구나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성병에 걸려도 대단한 것은 아니라며 콘돔을 사용하지도 않고 습격해 오는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 ..  (171쪽)


 또렷하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퍽 어릴 때부터였는데, 조그맣게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앞으로 커서 제금나게 될 때, 그리고 뒷날 누군가와 짝이 맺어져 함께 살게 될 때에는, 모든 집살림을 내가 하겠노라고.

 이런 꿈을 꾸면서 어머니가 하는 일을 찬찬히 돌아보게 됩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가면, 동무네 어머님이 하는 밥과 반찬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처음 보는 밥거리를 보면 어떻게 하는지를 꼭 여쭙니다. 집을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둘러보고, 우리 집 꾸밈새와 다른 꾸밈새는 더욱 눈여겨봅니다.

 버리는 물건이 없도록 살고, 작은 물건 하나도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된다고 느끼고 있어서, 과자봉지 하나도 안 버리고 모아 두는 버릇이 일찍부터 배어 있습니다. 딱히 다시쓰기를 한다고 배우지는 않았는데, 어머니가 다시쓰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이 얼음과자 막대기는 어디에 다시 한 번 쓰고, 요 라면봉지는 어디에 또다시 쓸까 하고 머리를 굴렸습니다. 이것도 안 버리고 저것도 안 버리면서 모읍니다. 종이조각 하나도 책갈피로 쓰면 되고, 종이접기를 해서 갈무리를 해도 됩니다.

 한 번 혼인하고 한 번 헤어지고, 다시 한 번 혼인하여 살고 있는 이즈음, 혼자 살 때이든 둘이 살 때이든 집식구 빨래는 거의 제 몫입니다. 하기는, 집식구 밥도 제가 차려 주니까요. 옆지기가 아기를 배었든 배지 않았든, 부모님 집을 나와서 혼자 살던 1995년 4월 5일부터 이제까지, 혼자서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혼자서 집을 치우고 꾸미며, 혼자서 집일을 갈무리하고, 혼자서 밥차리고 쓸고닦고 손빨래하고 살았으니, 서른네 해 삶에서 열네 해 삶이나 집일과 밖일을 함께하는 셈입니다.
 

.. 일본 정부와 군은 조선ㆍ대만에서의 여성 징집에는 국제법상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하여, 조선과 대만을 위안부 공급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 징집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조선의 인구가 대만보다 몇 배 많고, 나아가 중국이 일관된 주요한 전장이었기 때문에 중국인의 동포인 대만인보다는 조선인이 위안부로 삼기에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 또 1956년 일본은 민간인 억류자의 사적 청구권을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에 1000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억류자가 약 11만 명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당 91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  (182, 208쪽)


 집일은 사회에서 거의 아무런 대접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이 집에서 밥어미로 일한다면 달마다 100만 원은 쳐주기는 할 텐데, 자기 집에서 살림꾼으로 일하면 돈 한푼이 없습니다. 집살림은 따로 돈이 되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니니, 돈으로 값을 칠 수 없으며,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어요. 보람도 있고요. 그러나 집일을 도맡으면서 밖일을 함께하기란, 이 나라 한국에서는 대단히 힘듭니다. 잠이 모자라고 손이 딸리고 몸이 축납니다.

 그래서 새삼스레 깨닫고 알게 되는 일이 많아요. 왜 이 나라 한국에서는 ‘여자 학자’가 드물고 ‘여자 지성인’이 드물며 ‘여자 글쓴이’가 적고 ‘여자 정치꾼’을 찾기 어려우며 ‘여자 사장’을 만나기 힘든지. 왜 ‘남자 무엇무엇’만 넘치는지.

 그러나 또 하나 새삼스레 깨우치고 알아차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퍽 많은 여자들이 집밖에서 일거리를 찾으면서 움직이고 있는데, ‘남자가 집일을 몰라서는 안 되지만, 여자 또한 집일을 몰라서는 안 됨’을 말입지요. 집일은 한 사람이 옹글게 바로서고자 할 때에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일이라, 여자한테만 떠넘겨서는 안 될 뿐더러, 남자들이 손사래쳐서도 안 되지만, 집밖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남자든 여자든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왜 옛날부터 스승 된 분들이 제자한테 어떤 재주를 물려준다고 할 때면, ‘세 해는 빨래하고, 세 해는 밥을 하고, 세 해는 걸레질을 하고, 그러면서 부지런히 논밭을 갈게 하면서 아홉 해를 보내야 비로소 조금씩 일을 가르쳐 준다’고 했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2) 살아내야 나누게 되는 성평등


 세 식구 손발톱을 자르고 깎자니 꽤나 긴 시간이 듭니다. 옆지기는 몸이 나아지만 제 손으로 제 손발톱을 깎을 테지만, 딸아이는 앞으로 얼추 열 살쯤 될 때까지는 지아비나 지어미가 깎아 주어야 합니다. 귀지가 쌓여서 파 주어야 할 때에도 지아비나 지어미가 파 주어야 합니다. 신발끈을 아이가 스스로 묶자면 이 또한 오래 걸릴 노릇이고, 양말 신기나 옷입기 또한 적잖은 세월이 흘러야 합니다. 이불 개기, 제 밥그릇 제가 설거지하기, 빨래하기와 개기, 걸레 빨기와 방바닥 훔치기, 밥하기와 찌개 끓이기 들은 언제쯤 스스로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어버이 된 이 가운데 누가 아이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쳐 줄까요.

 우리 집에서야 아빠와 엄마가 함께 물려주고 같이 가르쳐 줍니다. 늘 서로 도와 일하고 함께 놀고 같이 나들이를 다니니, 아이는 엄마아빠 손을 하나씩 잡고 같이 나들이를 다니며 함께 놀고 서로 도와 일을 할 테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만날 또래동무들은 어떠할까요. 우리 아이가 차츰차츰 크는 동안 만날 손위 언니 오빠나 손아래 동생들은 어떠할까요.


.. 이미 검토한 바와 같이, 군이나 장교의 기록에 의하면 점령지에서의 강간 사건 방지 및 성병 예방이 위안소의 설치 목적이었다. 그럼 그 설치 목적은 달성되었을까 … 위안소 제도 도입이 강간 방지에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위안부 제도란 특정 여성을 희생으로 삼는 성폭력 공인 시스템이며,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것이다. 한편으로 성폭력을 공인해 두면서, 또 한편으로 강간을 방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강간 사건을 방지한다는 본질적 해결에 이를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였다. 원래, 강간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일으킨 군인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먼저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육군 형법 규정 자체가 강간죄에 대해 관대하였다 ..  (56∼57쪽)


 혼자 살 수 없을 뿐더러, 혼자 살지 않는 세상이니, 내 몸과 함께 이웃 몸을 살펴봅니다. 사람 몸뚱이와 함께 자연 삶터며 자연 목숨붙이를 들여다봅니다. 나와 이웃이 모두 아늑하면서 느긋하게 살아야 하고, 사람과 자연이 모두 넉넉하면서 오순도순 지내야 합니다. 우리 나라와 이웃나라 어느 쪽에서도 힘이나 돈이나 이름값으로 올라서려 한다든지 깔아뭉개려 한다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와 어른, 또는 어른과 아이, 장애인과 장애인 아닌 사람, 또는 장애인 아닌 사람과 장애인, 나라밖 사람과 나라안 사람, 또는 한국사람과 이주노동자, 배운 이와 못 배운 이, 또는 고졸 밑인 사람과 대졸자 들이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높은 다른 대접도 안 되고 낮은 다른 대접도 안 됩니다. 버스를 타건 전철을 타건 교통카드에는 똑같이 900원이 찍히는데, 우리들 일자리에 따라서 받는 일삯이 달라진다면, 세상 어느 누가 ‘일삯 적게 주는 쪽’에 일하려 하겠으며 ‘일삯 적게 주는 자리’를 고마이 여기겠습니까.

 사회가 골라야 삶이 고릅니다. 세상이 골라야 남녀 사이가 고릅니다. 정치와 경제도 골라야 하지만 교육과 문화도 골라야 여남 사이가 고릅니다. 사회가 고르지 않아 삶이 고르지 않을 때에는, 남녀 사이가 뒤틀리는 한편 명문대 바라보기 제도권 입시교육을 털어낼 수 없습니다. 세상이 고르지 않아 남녀 사이가 고르지 않을 때에는, 가난 푸대접과 일자리 푸대접이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휘감으면서 살맛 안 나는 하루하루가 됩니다.


.. 이러한 증언에서 분명해지는 바와 같이, 거의 대부분의 소녀들은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괴롭고 희망 없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그녀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또한 여성 차별 속에서 충분한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1930년의 조선 국세 조사에 의하면 조선인 남성의 식자율은 36%이고 여성은 불과 8%였다 ..  (110쪽)


 옆지기와 저는 우리 딸아이한테 ‘사름벼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성운동에 뜻을 두거나 남녀평등에 마음을 두는 분들은 으레 ‘부모 성 함께쓰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부모 성 함께쓰기’가 뒷날 아이한테 끼칠 영향을 헤아리니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은 ‘부모 성’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 ‘아버지 성’일 뿐입니다. 우리네 어머니 성이라고 해 봐야, 어머니를 낳은 그 위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 성입니다. 그렇게 이 나라 남자든 여자든 모조리 ‘남자 성’만을 물려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부모 성 함께쓰기’를 한다고 해 보아야, 모두들 ‘아버지 성 겹쳐쓰기’가 될 뿐입니다.

 그래, 이런 어이없는 참모습이 그지없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뾰족한 수가 있고 힘이 있어서 이런 틀거리를 깰 수 있으랴 싶어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면 “우리는 부모 성을 아예 안 쓰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나왔고, 법으로는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없을 뿐더러 성을 안 쓰면서 살 수도 없지만, 우리는 우리 집에서만큼은 성을 안 부르고 살기로 다짐합니다.

 딸아이 이름 ‘사름벼리’에서 ‘사름’은 아이한테 성이 되는 대목입니다. ‘벼리’는 이름이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사름벼리’라고도 부르고, ‘사름이’라고도 부르고, ‘벼리’라고도 부릅니다. 다만, 아이 성이 ‘최’라고는 붙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딸아이는 ‘사름벼리’일 뿐입니다.

 ‘사름’은 모내기를 할 때 첫 모가 며칠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오르는 싱그러운 푸른빛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벼리’는 고기잡이를 할 때 쓰는 그물에 달린 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름’은 농사일을 소담스레 여길 줄 알라는 뜻이고, ‘벼리’는 바닷일을 알뜰히 헤아릴 줄 알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가운데 먹고사는 대목, 농어촌을 고루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딸아이 이름에 담았습니다.


.. 사회운동ㆍ여론ㆍ의회 등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소리가 없는 한, 군대 그 자체가 위안소와 유사한 시설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일본이 특수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  (221쪽)


 요즘 우리 세상에 참 많이 떠도는 말을 몇 가지 꼽아 보라면, 첫째로 ‘생태환경’이 아니랴 싶습니다. 조금도 생태하고는 가깝지 않음에도 ‘생태’를 붙이고 ‘환경’을 붙입니다. 출판사들 가운데에도 생태환경 책에는 한 번도 눈길을 둔 적이 없음에도 세상 흐름이다 보니까 시늉 삼아 한두 권 내면서 환경책을 사랑하는 듯 생색내기도 합니다. 자동차에 넣는 기름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깨끗한’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데, 휘발유가 깨끗하다면 얼마나 깨끗한지, 또 휘발유가 ‘자연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많이 떠돈다고 느껴지는 말은 ‘자유’와 ‘민주’입니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고 내세웁니다. 정당 이름에 ‘자유’며 ‘민주’며 으레 들어가지만, 이분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자율’학습을 시킨다고 하는데, 자유와 마찬가지로, ‘자율’ 또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이 따위 이름을 지었는지 그예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갖가지 끔찍한 전쟁무기를 수없이 만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민주주의를 퍼뜨리고 지키는 나라’라도 되는 양 여기면서 떠받드는 이 나라입니다. 총칼을 든 민주도 있는지, 몽둥이를 든 자유나 자율도 있는지, 저로서는 하나도 알 길이 없습니다.

 셋째로 많이 떠돈다고 느껴지는 말은 ‘인권’과 ‘평등’입니다. 사람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들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담도 높낮이도 없다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보고 살펴보아도, 돈나라(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허울뿐인 인권이요 껍데기뿐인 평등만 도사리지 않느냐 싶어요. 이론으로 따지는 인권이 아니고, 지식으로 가리는 평등이 아닙니다. 삶으로 따지는 사람 권리이고, 몸과 몸으로 부대끼는 고른 자리입니다.

 생태이든 환경이든, 자유든 민주이든, 인권이든 평등이든, 이 모두는 우리가 이 모습 그대로 살아내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생태를 살고 환경을 살아야 생태를 말하고 환경을 말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유를 살고 민주를 살아야 비로소 자유가 무엇이고 민주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인권을 살고 평등을 살아야, ‘아하 인권과 평등이 이렇기 때문에 아름답구나!’ 하고 뼛속 깊이 받아들이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 종군위안부 제도라는 성적 노예제를 가능하게 한 의식은 현재 어느 정도 극복되어 있는 것일까. 공창제는 없어졌고 민법ㆍ형법도 개정되었으나, 전자는 개실이 딸린 목욕업으로, 풍속 관련 영업으로 형태를 바꿔 사실상 잔존하고 있다. 일본인의 해외 매춘관광이나 일본에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매춘부 등을 보면, 본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성에 대한 사고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다. 텔레비전ㆍ주간ㆍ만화잡지 등에 범람하는 누드나 노골적인 성 묘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성에 대한 규제가 없어진 정도에 비례하여 욕망이 무절제하게 표출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군과 비교해 보면 일본군에게는) 무기도 간식도 변변하게 없었지만, 매춘부는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인간으로서의 처절함은 본질적인 것이야.”라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의식ㆍ문화는 전쟁 전과 전쟁중과 전후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점에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일본인, 식민지 여성, 점령지 여성을 불문하고 모두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학교 교육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받지 못한 여성들이었다. 매춘부 출신 일본인 위안부도 가정이 경제적으로 곤궁했었기 때문에 위안부가 되기 이전에 이미 미성년의 나이에 부모가 팔았든가 아니면 부모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졌던 것이다 ..  (245∼246, 248쪽)


 (3) 성폭력 나라와 성노예 나라


 일본사람이 쓴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읽어내고 거듭 새기면서 곱씹습니다. 이 책을 쓴 일본사람은 ‘일본은 씻을 수 없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깨닫는 마음이었기에, 이와 같은 책을 엮어냈다고. 씻을 수 없이 부끄러운 짓이었기에, 이 일을 자기 스스로 안 잊고 자기 뒷사람 또한 안 잊게 하려고 책 하나를 야무지게 엮어냈다고. 일본사람으로서 앞으로 슬기롭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살아가고픈 마음이라서 이러한 책에 자기 삶을 바쳐서 엮어냈다고.

 한국사람이 쓴 ‘일본군 군대위안부’와 얽힌 책을 거의 모두 읽었고, 손에 닿는 대로 사서 집에 갖추어 놓았습니다. 저부터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와 함께 살아갈 우리 집 식구들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우리 형편으로 보건대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은 머잖아 하나같이 판이 끊어지리라 내다보았기에, 눈에 뜨이는 족족 사모았습니다.


.. 종군위안부 존재 그 자체는 전쟁이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일본 군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그러나 이 문제가 여성에 대한 중대한 인권 침해이며 국가 범죄ㆍ전쟁 범죄로 연결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 전후 50년 간 사죄ㆍ명예 회복ㆍ개인 배상의 문제가 완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의 이러한 자세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패전에 직면해서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공문서를 파기ㆍ인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때문에 국가가 관여한 증거가 없다고 하여 이러한 발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  (11, 12∼13쪽)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안 읽히고 안 팔리고 안 얘기 되는 책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람 사는 데에 더없이 소담스럽다고 할 만한 책은 어김없이 안 읽히고 안 팔리고 안 얘기 된다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몸과 마음이 다친 분들을 다룬 이야기책은 참 안 읽힙니다. 안 팔립니다. 얘기도 안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이야기책을 엮으려는 사람마저 몹시 드뭅니다.

 한국땅 대학교에 역사학과 없는 학교가 드물고, 인류학과와 사회복지학과와 교육학과, 그리고 역사교육학과까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거나 파헤치면서 우리 삶을 보듬으려고 하는 젊은이 눈길과 마음길은 너무 모자라거나 얕습니다.

 ‘일본군 종군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사람은 어디 먼 나라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할머니였을 수 있고 이웃집 할머니였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야 했던 수많은 이 나라 여성들은 이 가시밭길에서 허덕여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해방과 오늘날까지, 몸이며 마음이며 남성들한테 굴레가 씌워진 채 숨을 죽이며 울어야 했습니다.


.. 육군성 경리국 건축과와 육군군수품 본부는 공동으로 해외파견군에게 콘돔을 진중용품으로 보내고 있었다. 하야시의 연구에 의하면, 1942년 중에 보낸 수는 밝혀진 것만도 3210만 개나 된다 ..  (84∼85쪽)


 아무래도 우리 나라는, 이 나라 한국은, ‘성노예’를 만든 일본보다도 끔찍하다고 할 만큼, 모질다고 할 만큼, 여느 삶자락부터 ‘성폭력’이 휘둘러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일까요. 엉덩이를 쓰다듬고 가슴을 주무르는 성폭력만이 아니라, 우리 삶자락 구석구석 여성을 찬밥 대접할 뿐더러 밥어미로만 여기면서 깎아내리는 성폭력으로 말입니다. 집살림을 아주 하찮은 듯 여기면서, 이제는 젊은 남자도 젊은 여자도 집살림을 벗어던지려고만 하면서 말입니다. (4341.1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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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50명의 여성과학자 이야기
달렌 스틸 지음, 김형근 옮김 / 양문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여성’ 과학자라기보다 ‘미국’ 과학자 이야기
 [잠깐 읽기 19] 달렌 스틸,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책이름 :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글 : 달렌 스틸
- 옮긴이 : 김형근
- 펴낸곳 : 양문 (2008.10.17.)
- 책값 : 14500원



 (1) 딸아이를 생각하며 읽은 책


 이제 석 달을 지난 딸아이가 뒷날 커서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될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을 펼쳐듭니다. 화석연구가, 조류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화학물리학자, 생화학자, 식물학자, 언어학자, 핵물리학자, 신경의학자, 우주비행사, 동물학자, 컴퓨터 과학자, 고고학자, 화학자, 생물학자, 의료물리학자 들을 아우르며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려간 삶을 아이가 나중에 하나하나 펼쳐넘기면서 살펴본다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 길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 펄서를 발견한 후 조슬린은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다. 그러나 1968년 결혼한 조슬린은 열정을 다해 매달렸던 전파천문학계를 떠나야 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근무처를 옮길 때마다 함께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슬린은 열 살 때 소아당뇨병 판정을 받은 아들을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파트타임으로 천문학과 교육 분야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데 ..  (조슬린 벨 버넬/37쪽)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쉰 사람은 모두 ‘여성이라서 안 돼!’ 하는 덫에 치입니다. 걸림돌에 막히고 울타리에 갇힙니다. 대학 교육은 ‘아주 자연스럽게’ 못하도록 막힐 뿐더러, 중고등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그저 더 배우고 싶다는, 더 알고 싶다는, 더 깨닫고 싶다는, 자기가 디딘 이 땅과 세상에 무언가 자기 앎과 슬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소담스런 꿈 하나를 믿고 눈물어린 땀을 흘리면서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를 돌아본다면, 이제 그 어디에도 ‘여자가 어디 대학을!’ 하는 덫이나 울타리는 없습니다. 여자니까 초등학교만 보내도 잘 가르친 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 법이나 무역이나 경제나 정치를 다루는 학문에서는 남자만 득시글거리지만, 여자라고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별을 못 달게 하고 야전장교는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여군도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곤 합니다. 책마을을 보면 여사장이 있는 곳이 많을 뿐더러, 여자 혼자 모든 일을 꾸리는 1인 출판사도 제법 됩니다.


.. 루스의 연구경력 가운데 대부분은 컬럼비아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루스가 죽자 인류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판했다. 근거가 약하고 무익한 연구였다고 무시한 것이다. 그들은 루스가 주장했던 문화의 인성화가 막연한 느낌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류학자들은 루스의 독특한 인류학적 접근의 장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스가 주장한 바처럼 개인적이고 고정적인 상황 모두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이론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  (루스 베네딕트/42∼43쪽)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여자한테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자가 어떤 일이건 마음이 닿고 뜻이 닿고 생각이 닿아서 온몸 내던져서 즐거이 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많이 넘친다고 하지만, ‘옛날과 견주어 많이 넘치는’ 셈이지, 참 자유와 참 평등으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막상 우리 딸아이를 낳고도 그럽니다. 본가든 친정이든 ‘애 엄마가 애를 돌보고 애 아빠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레 이웃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살붙이와 이웃만 그러하겠습니까. 동무들도, 또 저를 안다고 하는 분들도 이러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애 아빠가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애를 어르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애를 씻기고 이불을 빨고 털고 말리고 하는 둥, 온갖 집안살림을 도맡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찹니다. 백일도 안 된 갓난쟁이와 옆지기를 살갗으로 느낀다면, 둘 모두 백일이건 돌을 맞이할 때까지건 몸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음을 당신들도 뻔히 겪어 보았음에도 현실에서는 다릅니다. 너무 옛날 일이라서 잊고,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않느냐’면서 일찌감치 손을 놓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기를 배면 달마다 때맞춰 병원에 찾아가 내진을 받아야 하고, 초음파사진을 찍어야 하고, 아기한테 장애가 있는지 살펴야 하고, 성별을 알아내고, 비타민과 철분제를 먹어야 하고, …….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할 만한 일들이 우리 삶터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예방접종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하는 줄, 또 산부인과에서 회음부 자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 여기면서 이런 아기낳기가 마치 ‘자연분만’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한편, 촉진주사와 무통주사를 놓아 아기를 낳게 하다가, 의사들끼리 힘들면 배를 쭉 째서 끄집어내고, 갓난아기 태지를 함부로 박박 벗기는데다가 형광등 불빛을 쐬도록 내버려두고, 갓난아기한테 엄마젖이 아닌 분유를 먹이지 않나, 아기 낳은 엄마들을 몇 분조차 쉬지 못하게 하며 일으켜서 걷게 하지를 않나, ……. 모두 가슴이 서늘할 만한 일들이 우리 세상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취업 제의도 여러 곳에서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편 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티에게 취업을 제의하는 기관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들어온 제의에 응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경우에도, 거티는 아내가 남편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미국인으로서는 ‘비정상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1931년 미주리에 있는 워싱턴대학이 코리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의했다. 칼은 약학과 학과장이 되었지만, 거티는 보조 연구원으로 만족해야 했다 ..  (거티 코리/67쪽)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고 하는데, ‘시대를 뛰어넘었다’기보다는 ‘남녀 불평등’을 딛고 일어선 여성과학자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미국에서 남녀 불평등이 널리 퍼져 있을 때, 어려움을 딛고서 저마다 다 다른 갈래에서 학문을 새롭게 일으켰다’고 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세상 수많은 남자들은 ‘새로운 학문으로 넓히기’보다는 돈벌이를 하려고 제 밥그릇을 지키는 학문에 매여 있을 때, 여성과학자들은 ‘먹고살자면 돈도 벌어야겠지만, 오로지 그 학문이 마음에 티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좋아서 파고드는’ 가운데 남자 과학자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캐내고 알아내고 밝혀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메리 휘트니는 수학을 아주 잘했다. 똑똑하고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그녀에게 선생님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휘트니가 갈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었다. 1865년 뉴욕 포킵시의 바서대학이 여성들에게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 가운데 여성을 받아들이는 학교는 하나도 없었다 ..  (메리 휘트니/295쪽)


 어쩌면 터무니없는 울타리가 높고 어처구니없는 덫이 곳곳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더 힘을 쓰고 마음을 바치고 땀을 흘리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봅니다. 걱정없이 학문을 하지 못했고, 어려움없이 학문에 온몸 바칠 수 없었기에, 스스로 더욱 훌륭해지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밭길은 한 사람을 몹시 괴롭히지만, 괴롭힘으로만 끝내지 않고 더 단단하게 여미어 줍니다. 더 힘있게 끌어올립니다. 더 야무지게 다스려 줍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스스럼없이 맞이한다면, 얼마든지 껴안으면서 걸어간다면.

 좋은 조건 하나 없는 가운데 더 빛나는 꽃을 피우고, 넉넉한 터전 하나 없는 가운데 더 싱그러운 잎을 틔우며, 따뜻한 품 하나 없는 가운데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2) ‘여성’ ‘과학자’란 어떤 ‘사람’일까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오래오래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기는 했지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어슷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여성과학자를 빼고는 퍽 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앨리스는 아버지와 함께 몇 년 동안 부동산에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앨리스는 교직을 그만두고 식물 채집을 위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앨리스 이스트우드/87쪽)

.. 부유한 틸리의 가족은 그야말로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중요했다 ..  (틸리 에딩거/90쪽)

.. 당시 윌리어미나는 임신 중이었으나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여성으로서 구할 수 있는 직업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녀나 가정부 자리를 찾아나섰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은 계기는 하버드천문대 소장이던 에드워드 피커링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이 된 것이었다 ..  (윌리어미나 플레밍/100쪽)



 생각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었기에 과학이라는 데에도 좀더 눈을 뜨면서 학문을 즐기거나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있는 집안이었을 뿐 아니라, 돈도 있고 힘도 있고 이름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대를 뛰어넘은’ 과학자가 된 분이 참으로 많다고 느껴집니다.

 학교라는 데를 발도 디디지 못했을 수많은 여성들, 학교에서 배울 권리를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숱한 여성들, 학교가 아닌 집에서라도 세상을 배우거나 부대낄 자리를 한 번이나마 얻어 보지 못한 셀 수 없는 여성들, 집에만 갇혀 집살림에만 마음을 쏟도록 내몰린 어마어마한 여성들은 무엇일까 곱씹습니다.

 오롯한 한 사람이 되자면, 이이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 사느라 일굴 논밭이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밥하기와 치우기쯤은 스스로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옷을 깁든 빨든 다리든, 집을 꾸미든 고치든 손보든, 남한테 삯을 주어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이름은 우리한테 무엇일는지, 우리 딸아이한테 어떤 사람으로 다가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앞으로 자라는 동안, 머리는 굵지만 다리는 가느다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한,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가 비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알맞춤하게 튼튼하면서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자면, 아버지 된 저부터, 어머니 된 옆지기부터 삶을 바꾸어야 할 테지요. 아니, 삶을 바꾼다기보다 옳게 추슬러야 할 테지요. 생각과 말뿐 아니라 몸가짐과 살림살이까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할 테지요.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을 쓰신 분께서는 구태여 이런 대목을 짚을 까닭을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니 과학밭에 굵직하게 발자국을 남기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발자국 굵직한 분들만 골라서 이야기를 펼치면 된다고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가 미국인 만큼, 꼭 미국 울타리에서 ‘여성과학자’를 살피면 넉넉하다고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든 문학가든 정치꾼이든 예술가든 어느 누구이든, 학문으로 남긴 발자국만으로 ‘시대를 뛰어넘은’이라는 꾸밈말을 앞에 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꾸밈말을 손쉽게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란 무엇이고 ‘뛰어넘기’란 무엇인지, 여기에 ‘여성’이라는 이름과 ‘과학자’라는 이름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뇌어 봅니다. (4341.1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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