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방석 사계절 아동문고 71
박효미 지음,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할 말’ 없는 어린이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잠깐 읽기 20] 박효미, 《길고양이 방석》



- 책이름 : 길고양이 방석
- 글쓴이 : 박효미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 (2008.10.9.)
- 책값 : 8800원



 (1)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삶터와


 목포에 사는 형이 동생인 저한테 새 셈틀 하나와 외장하드 하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셈틀이 먼저 오고 외장하드가 나중에 왔는데, 외장하드를 가지고 와 주는 택배기사는 ‘그제 배송완료’로 올려놓고는 오늘 낮 느즈막하게 가지고 왔습니다. 뻔뻔하게 ‘배송완료’라 해 놓고는 전화연락조차 되지 않던 그 택배기사는 물건을 건넨 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기요, 바쁘시겠지만 ……” 하고는 말문을 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바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제 물건을 갖다 주었다고 처리를 해 놓고 아무런 연락이 없이 이틀이나 보낼 수 있습니까?”


.. 엄마가 얼른 고개를 들고 할머니를 쏘아보았다. 할머니가 하던 말을 뚝 멈췄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애 다치면 어떡할 건데? 몸도 안 좋은 애를. 그런 생각은 해 봤니?” “어머니, 다 생각했어요. 지명이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친구들이에요. 놀 수 있는 친구들. 지금 행복하게 놀 친구가 필요하다고요. 지금 행복이 중요하다고요. 잘 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퉁명스레 내뱉은 엄마 말 중 하나가 느닷없이 내 머리를 툭 쳤다.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 “지은아, 들어가 너 할 일 해.” “응, 근데 사회 숙제 있어. 세계 문화 유산 사진 찾아오래.” “알았어. 넌 공부나 해. 엄마가 찾아 줄게. 어서 방으로.” 엄마 재촉에 쫓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 시계 옆에 학습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모든 게 순서대로다. 맨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영어 동화책. 영어 테이프는 벌써 엄마가 꽂아 놓았을 것이다. 그 밑에는 풀다 만 수학 문제집. 내가 풀어야 할 부분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  (13∼15쪽)


 택배기사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줄줄 늘어놓습니다. 택배회사 본사로 전화까지 해 보니 몇 번이나 미안하다면서 곧바로 물건을 보낸다고 한 때에서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정작 택배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얼굴이고 몸짓이었습니다. 늦거나 말거나, 아니면 물건이 사이에 사라지거나 말거나 자기하고는 아랑곳할 일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쓰겁게 웃으면서, “그래요? 그럼 가세요.” 하고는 그만두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벙긋하고 꺼낼 줄 모르는 사람한테, 당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하기란, 굳이 미안하다는 소리 한 마디 들으려고 하기란, 참 어리석다고 느껴졌습니다.


.. 문득 지명이한테는 허용되는데 나한테는 안 되는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이는 친구랑 실컷 놀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도 되고, 나는 놀기는커녕 친구를 부르는 것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긴, 우리 집에 오겠다는 애도 없다 ..  (34∼35쪽)


 지난달 어느 날, 인천에 있는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제 사진 두 장을 말없이 훔쳐서 쓴 데다가, 저작권표시마저 ‘자기 것’인 듯 고쳐서 쓴 일이 있었습니다. 지역 소식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글을 뒤적이다가 뜻밖에 보게 되었으니, 그날 어떤 기사 하나 찾으려고 부지런히 인터넷 글을 살피지 않았다면, 제 사진이 도둑질된 줄조차 모르고 지나쳤겠구나 싶습니다.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내용증명 한 통을 썼습니다. 내용증명에는, 저작권자 허락 없이 사진을 쓴 일, 저작권자 표기를 지운 일, 사진에 적혀 있던 저작권자 이름을 지우면서 자료사진이라고 적어 넣으면서 소유권을 빼앗은 까닭을 물으면서, 이와 같은 말썽거리를 하루빨리 고치라고 썼습니다.


.. “야! 빨리 가. 나 학원 시간 늦는단 말이야.” “아이고, 성질하고는. 야, 생각해 봤냐? 학예회.” 나는 되도록 태연하게 말했다. “그날 시험 보러 가야 돼. 영재 시험.” “왜? 그런 걸 왜 신청했어?” “외고 가려면 그런 것도 해야 된대.” 이렇게 말해 놓고 나는 흠칫 놀랐다. 엄마처럼 말하고 있다. 내 안의 엄마가 지금 유리한테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대신 시험 신청을 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내 속에 앉아 있다. 진짜 나는 뒷방으로 쫓겨나 버렸다 ..  (72쪽)


 그러나 제 사진을 도둑질한 분은 당신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투였고, 자기 둘레에 아는 시민사회단체 사람한테 뜬소문을 퍼뜨려 ‘사진 도둑질을 받은 제가 외려 잘못한 사람인 듯’ 내몰리는 처지가 되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애써 찍은 사진이건 무엇이건 스스럼없이 거저로도 주고, 따로 제 돈을 더 들여서 종이로 뽑고 사진틀에도 끼워서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된 밑바탕이 그릇된 채 도둑질을 한다면, 그리고 도둑질을 해서 쓰는 매체가 돈이 없거나 가난한 매체가 아닌 바에는, 제대로 된 값을 치르고 가져가서 쓰도록 합니다. 정 형편이 안 닿아서 당신들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전화라도 한 통 해서 도와 달라고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연락도 허락도 없이 몰래 쓰고는, 잘못한 줄도 깨닫지 못하니.


.. “뭘?” 수돗물 소리가 다시 뚝 그쳤다. 엄마가 날 보자 어깨가 움찔했다. “그냥 학예회 하고 싶어.” 엄마 표정이 일그러지다가 어색하게 펴졌다. “지은아,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엄마가 내 어깨를 잡았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고 눈에서는 덜컥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엄마가 내 등을 토닥토닥 다독거렸다. ‘그런 건 언제 해? 나중에? 미래에? 어른이 돼서?’ 내 마음이 소리쳤다.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며 내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내 몸은 순순히 엄마를 따라갔다 ..  (79쪽)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생각합니다. 똥 눈 아기를 씻기면서 생각합니다. 잠깐 눈붙이며 쉴 틈 없이 쌀을 씻고 냄비에 안치면서 생각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말린 기저귀를 걷어서 개면서 생각하고, 까르르 웃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어떤 사람 둘레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럭무럭 자랐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대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웠는지를.

 숱한 사회살이와 회사살이를 거치면서 몸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이나 경험이란 무엇인가요. 숱한 사람을 부대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는 슬기나 깜냥이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이웃이란 누구이며 동무란 누구이고 식구란 누구인가요.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우리 둘레 사람들은 어떻게 어깨동무하며 지낼 수 있는가요.

 우리한테 소담스러운 일이란 무엇이고, 우리 스스로 아름다이 여길 대목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꾸리는 삶이 즐거운 삶이고, 어떻게 이루는 꿈이 신나는 꿈이며, 어떻게 쓰는 돈이 넉넉한 돈입니까.


.. 나는 아무 데로나 걸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곳이라곤 학교 앞 커다란 상가 몇 개가 다였다. 상가를 지나 곧장 오르면 집이다. 나는 상가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빵집을 기웃거리고, 상가 뒤쪽 문방구 앞도 얼씬거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조금씩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한테 엄청 맞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펑펑 울지도 모른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것들이 날 괴롭혔다. 나는 결국 학교로 돌아갔다 ..  (140쪽)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으로 사귀는 사람이 아니고, 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돈으로 맺어지는 터전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깊은 사랑으로 함께하고, 너른 믿음으로 같이하며, 포근한 나눔으로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많은 돈을 알뜰살뜰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돈 많은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지식과 슬기를 이웃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똑똑이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이름값이 나를 높이는 이름값이 아니라 내 이웃한테 따순 눈길을 건넬 수 있는 이름값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2) ‘할 말’ 없으면 문학이 아닐 텐데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남다르게 느껴지는 《길고양이 방석》은,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겪는 아픔을 다루는 한편, 장애 있는 아이와 장애 없는 아이를 다르게 키우는 부모 모습을 다루고, 오로지 돈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자면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고 학습지와 학원 공부 말고는 눈길을 돌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부모 모습을 다룹니다.

 주인공 가운데 한 아이(걷지 못하는 어린 동생)는 자기가 아끼는 방석 무늬를 보고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책이름은 여기에서 따옵니다. 그런데, 책이름으로 쓰이는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지나가는 생각 한 줌으로 책이름을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만, ‘방석’도 아니요 ‘고양이 방석’도 아닌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책이름을 붙이면서, 이와 얽히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책이름을 이렇게 붙이는 바람에,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엉뚱한 데로만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을까요? 뜻없이 붙인 책이름 때문에 ‘방석’이 말해 주거나 보이는 이야기를 감추어 버리지 않는가요? 방석을 깔지 않으면 다리가 아픈 장애 아이를, 방석 하나가 살가운 동무처럼 되어 있는 장애 아이를 바라보기보다는 ‘길고양이가 어쨌는데?’ 하는 생각을 자꾸자꾸 뻗치게 되지 않습니까? 그냥 꽃이라 하면 되는데 ‘은방울꽃’이나 ‘제비꽃’이라고 부러 예쁜 이름을 붙이면서, 예쁘게만 꾸미려는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궁금함은 책이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길고양이 방석》을 펼쳐 읽는 내내, 글쓴이가 우리한테 참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장 솜씨 괜찮고, 이야기 짜임새도 제법 탄탄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에 치이고 밟히는 모습을 낱낱이 잘 그려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알맹이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써서 아이들한테 읽히는 까닭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구태여 종이책으로 찍어서 읽혀야 하는 까닭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는, 장애 있는 동생이 갑작스레 병이 걸려 죽고 나서 저절로 ‘입시공부에서 살며시 풀려나게 되었다’는 맺음말로 끝납니다.


.. “원하는 걸 내가 다 했다고? 뭘? 공부? 학습지? 학원?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널 위해서잖아. 지은이 널 위해서.” “그건…… 엄마가 원하는 거잖아.” ..  (146쪽)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문학이 ‘가르침(교훈)’이어야 할 까닭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가르침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르침만 지나치면 지루하고 가르침이 하나도 없으면 허전합니다. 가르침이란 교장 선생님 훈시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저절로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못 배웠다고 하는 분들이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자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크게 배우는 일이 퍽 많은데, 크게 배우게 되는 까닭은 못 배웠다는 분들이 훌륭한 말씀을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 손바닥을 보고 얼굴을 보고 매무새를 보기 때문에 배웁니다. 환경사랑과 재활용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추운 겨울날에 실장갑 하나만 낀 채, 또는 맨손으로 헌 상자나 신문지 들을 그러모아서 다문 몇 백 원 벌이를 하는 삶은, 수십 수백 권짜리 환경책과 견줄 수 없이 아름다운 환경 이야기이곤 합니다. 헌책방 일꾼이 버려진 책을 캐내고 손질하여 새롭게 빛나도록 애쓰는 일 또한, 그 어느 출판평론가가 책을 사랑한다고 길게 논문을 쓰는 일하고 견줄 수 없이 거룩한 책사랑이곤 합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읽어도 느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있으나, 줄거리를 있게 하는 생각 한 줄기가 없습니다. 이야기 짜임새는 있으나, 이런 이야기를 짜넣어서 들려주는 느낌 한 가지가 없습니다. 솜씨 좋은 글매무새는 있으나, 솜씨 좋은 글매무새에 담겨 있는 넋과 얼을 찾기 어렵습니다.


.. 둘레에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왜 그러니?” “아줌마, 얘 못 걷지요? 몇 살이에요?”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머리속에 열기가 가득 찼다. 선생님이 대답하기도 전에 딴 아이가 또 물었다. “왜 안고 다녀요? 두 살이에요?” “에계, 다리가 뭐 저래.” 내 키만 한 아이가 불쑥 나서서 소리쳤다. “야 야, 손도 그렇잖아. 얘 장애인이야.” 지명이가 움찔 움츠러들었다 ..  (121쪽)


 어쩌면 《길고양이 방석》을 쓰신 동화작가는 아직 습작을 쓰는 눈높이가 아니랴 싶습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습작에 습작을 거듭하면서 차츰 나아질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 말은 없지만 쓸 글은 있는 지금 모습을 씻어내고, 할 말이 있도록 자기 삶을 붙잡고, 할 말이 알알이 여미어지도록 글 하나를 갈고닦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동무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으로 크면 좋은가 하는 깨우침이 모자란 가운데, 글쓴이 스스로 바로 지금 어떻게 자기 삶을 다스리면서 가꾸어 나가야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제대로 못 깨우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군데군데 톡톡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놓인 끔찍한 형편’ 이야기는 코앞에 벌어지는 일처럼 살뜰히 그려내지만, 이런 ‘상황 보여주기’를 왜 하는지, ‘아이들이 이렇게 입시공부에 갇힌 까닭’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을 입시공부에 밀어넣는 부모’들은 어찌하여 이런 부모가 되고 말았는지를 못 헤아렸구나 싶어요.

 주말연속극도 문화이자 재미난 이야기일 수 있기에, 《길고양이 방석》 같은 어린이책도 문학이요 재미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나 출판사나, 또 어린이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 스스로 《길고양이 방석》과 같은 작품을 ‘문학’이라고, 더욱이 ‘어린이문학’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준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너무도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 아니랴 싶습니다. 쭉정이는 쭉정이이고 깜부기는 깜부기입니다. 쭉정이는 벼이삭일 수 없고 깜부기는 보리이삭일 수 없습니다.

 세부묘사와 줄거리 짜기와 문장수련은 훌륭히 하지만, 무엇을 보여주려는 세부묘사인지가 없고 무엇을 들려주려는 줄거리 짜기인지가 없으며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은 문장수련인지 없는 아쉬움을 털어내는 문학을, 어린이문학을 기다려 봅니다. (4341.12.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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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동네 찾아온 동화작가 황선미
 ― 어린이문학은 ­‘사람’을 깊이 다루는 이야기



 작가를 만나려면 책을 읽으면 됩니다. 글 작가이든 사진 작가이든 그림 작가이든, 그이가 펼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책에 알알이 담기니, 책을 읽으면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쓴 책에 앞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또 작가가 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책과 삶과 사람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도 됩니다. 책은 책대로, 삶은 삶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좀더 그윽하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08년 12월 12일 금요일 낮 네 시, 어린이문학을 하는 황선미 님이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 있는 〈시 다락방〉에 찾아왔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문학뿐 아니라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창작을 가르치기도 하는 터라 몹시 바쁘지만, 어려운 틈을 내어 사람들(어린이 독자와 어른 독자)과 이야기 한 자락을 나누었습니다.

 황선미 님이 그동안 낸 작품을 들면, 《앵초의 노란 집》(베틀북,1998), 《여름나무》(두산동아,1998), 《내 푸른 자전거》(두산동아,1999), 《샘마을 몽당깨비》(창비,1999), 《나쁜 어린이 표》(웅진주니어,1999), 《목걸이 열쇠》(시공주니어,2000),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2000), 《까치 우는 아침》(웅진주니어,2000), 《초대받은 아이들》(웅진주니어,2001), 《늘푸른 나의 아버지》(두산동아,2001), 《소리없는 아이들》(두산동아,2001), 《들키고 싶은 비밀》(창비,2001),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1ㆍ2》(사계절,2002), 《꼭 한 가지 소원》(낮은산,2002), 《빈 집에 온 손님》(아이세움,2002), 《과수원을 점령하라》(사계절,2003), 《일기 감추는 날》(웅진주니어,2003), 《막다른 골목집 친구》(두산동아,2003), 《넌 누구야?》(사계절,2004), 《트럭 속 파란눈이》(시공주니어,2005), 《푸른 개 장발》(웅진주니어,2005), 《동화 창작의 즐거움》(사계절,2006), 《처음 가진 열쇠》(웅진주니어,2006), 《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 《울타리를 넘어서》(베틀북,2007), 《주문에 걸린 마을》(주니어랜덤,2008), 이렇게 창작 스물여섯 권에다가 동화창작을 돌아보는 이론책 한 권이 있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느낄 수 있고, 책을 몸소 펼쳐서 읽은 분들은 남달리 느끼실 텐데, 황선미 님 어린이문학은 사탕발림 어린이문학이지 않았습니다. 구경하는 어린이문학이 아니요, 어린이를 귀엽게만 바라보는 갇힌 눈 문학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이야기감 삼아서 팔아먹는 문학 또한 아니며, 교육과 사회 부조리를 까밝히는 문학 또한 아니었습니다.

 당신 스스로 좋아서 걷는 어린이문학입니다. 당신 스스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고서 주고받을 이야기로 엮어 내는 어린이문학입니다. 튼튼하게 이 땅을 딛고 있는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어느덧 어린이문학가라는 이름으로 두 자리수(열 해)에 걸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 몸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다면, 열 해를 넘어 스무 해를 애쓸 수 있고 스무 해를 애쓴다면 쉰 권에 가까운 어린이문학을 남기게 됩니다. 더 애써 서른 해나 마흔 해까지 어린이문학 한길을 걷는다면, 어쩌면 백 권에 이르는 어린이문학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옮겨지는 우리 문학이 드물지만, 황선미 님은 두 가지 책, 《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 표》가 일본말로 옮겨졌습니다. 《나쁜 어린이 표》는 100쇄를 넘게 찍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린이문학을 어른문학과 견주어 몇 수 낮은 문학으로 여기는 잘못된 눈길과 흐름이 있는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광장》뿐 아니라 《나쁜 어린이 표》도 ‘100쇄 문학’입니다. 훨씬 짧은 동안에 훨씬 많은 사람(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읽혔으며, 훨씬 기나긴 앞날에 걸쳐 훨씬 널리 사랑받으며 알찬 열매를 나누어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황선미 님이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바라본 우리 삶터와 사람 이야기 몇 마디를 옮겨적어 봅니다. 어린이문학은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다루는’ 이야기열매임을 다시금 곱씹습니다.


1. “우리는 서사를 잊어버렸다 일상의 세세한 부분을 스케치하면서 … 가벼움 … 가벼움 … 가벼움 … (어린이문학상 응모작으로 들어온 작품을 읽다 보면) 왜 이렇게 재미없고 불쾌하기까지 할까 … 소설이 가진 문학성을 생각하지 않고, 이만하면 괜찮아 괜찮아 하는 ……. 동화도 서사이고, 서사는 이야기이거든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벼운 일상에 매몰되면서, 아이들 일상만 좇아가고 있구나 … 왜 이렇게, 훌륭한 (어른문학) 시를 쓰시는 그분들이 (동시나 동화를 쓰시면서) 지치게 하는지 … 제대로 이루어지지 앟기 때문에, 훨씬 더 가벼워지는 모양이 보이기도 해요.”

2.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문장력이 되지 않는 것 …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 또 관심이 있어서 아카데미고 강좌고 들으면서도 감각이 없는 것 … 비문은 태도의 문제는 아니에요. 연습의 부족, 공부가 안 되어서일 수 있는데, 가장 큰 건 비속어의 남용이에요. 예를 들면 1인칭 시점이 많아요. 쓰기가 쉽기도 할 테지만 어린이 눈길로 본다는 생각에서 1인칭 시점을 많이 쓰는데 구어체와 진술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신인작가들이 ‘저새끼, 학교 뺑뺑이 치고’라든지 ‘나는 언젠가 담탱이와 맞짱을 뜨겠다’는 문장을 … 사회를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고 해도, 이런 사람을 (등단작가나 당선작가로) 뽑아 주면 우리가 자책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 이것은 선배들 책임이겠지요. 먼저 나온 책들에서 이렇게 썼고, 이렇게 쓴 책이 잘 팔리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아이들 입맛에만 맞추려는 신인작가들 태도가 …….”

3. “정말 재미있는 것은 대만이나 일본이나, 아이들한테 잔소리하고 학원 많이 보내고 들볶고 그러는 게 거의 비슷해요. 때로는 미국 같기도 하고 … 그러면 우리다움은 뭘까? 대만하고 비슷하거나 일본하거나 비슷하거나 미국 같기도 한 모습 말고 우리다움은 뭘까? … 나도 글쓰는 사람으로서도 나다움이 뭐고 우리다움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볼로냐 가서 부스를 보면, 일본 부스는 옆에 국기를 안 달아도 그림을 보면 일본 것이라고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그림을 보았을 대 ‘야, 이건 한국 거야’ 할 수 있을까는 모르겠어요 … 문장만 보더라도, ‘야, 이건 한국 거야’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문학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

4. “유행처럼 번졌던 거는 언젠가는 없어지겠지요. 아동문학이 가진 보편과 상징은 살 거예요. 그런데 … 저는 그래요. 시 잘 쓰는 분이 소설도 잘 쓰고 동화도 잘 쓰지 않을까 … 문학하는 마음은 다 같으리라 생각하니까요. 가능하면,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들이 아동문학을 같이하면 좋겠어요 … 제가 아는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에 현덕 동화가 많아요. 시대를 뛰어넘고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기(인천) 분이었군요.”

5. “아동문학은 우리 삶에서 깊이 박혀 있는 무엇인가 있는 … 작품 하나가 바로 시다, 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 많아요. 그런데 정말 우리 작가들 중에는 아동작가를 하려면 정말정말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강의를 할 때 저는 아놀드 로벨 작품을 늘 드는데, 간결하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오래 남고 … 글이 안 써질 때마다 들춰봐요 … 저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참고하고 다른 분들은 다른 책을 참고할 텐데 … 언제쯤이면 불필요한 것들을 놓아 버리고 할 수 있는지 … 〈눈물차〉나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를 읽어 보라고 하고 싶어요 … 짧고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 어른들은 걱정이에요. 이 보통내기 아닌 책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고 … 그러나 우리는 한 번 읽어서 싹 받아들이는 책이 없어요. 조금씩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거지 … 그것이 다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들에 대해, 죽 꿰어서 쉽고 간결하게 하는데, 책을 덮고 나면 ‘이게 뭐야?’가 안 되고, ‘그거면 됐지.’가 돼요. 동화는, 머리는 시에 두고 다리는 소설에 두어야 하지 않느냐고 … 이걸 어떻게 (어른들한테는 안 주고) 아이들한테만 줄 수 있느냐고, 그림책도 우리한테 큰 울림을 주는 그림책은 그냥 그림책이 아니에요 …….”

6. “아동문학을 보는 편견이, 아동문학은 아이한테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변하지 않는 편견인데, 동화가 아이들한테 교육을 하려고 나와서 그러기도 할 테지만, 거기서 자유롭지 못한 게, 그놈의 계몽성과 교육성에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대다수 독자가 어린이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용성을 찾게 돼요 … 그러면서도 삐삐처럼 틀을 넘어서 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 계몽성을 밀어내면서도 같이 가고, 그러면서 창의성으로 가려는 요상한 태도가 같이 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의 억눌린 욕망으로 가고 싶어요. 억눌린 걸 열어 주고 싶고 … 그래서 요즘 아동문학이 학원과 공부 이야기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자꾸 되풀이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보여줄 때 재미있고 개성 있으면 좋을 텐데 천편일률적이고 아주 절망스런 상태에서 끝내 버리고 있어요. 반성되는 게, 텔레비전 뉴스 속에는 더 절절하고 엄청난 일이 많은데, 그런 데에 동화가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동화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게 세상에 있는데, 아이들은 엄청난 피해자라고 보여주는 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보여주기가 다가 아닌데. 요즘 아동문학이 르포가 아닌데 …….”

7. “안델센, 삐삐, 피터팬이 나온 곳을 가 보고픈 소망이 있어요. 그런데 다 다른 나라예요. 다 찾아가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요 … 저는 편집자 한 명과 정말로 갈 수 있었어요 … 그런데 저한테 이렇게 큰 공부가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도 우리 동화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거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 유럽 동화마을을 찾아간 뒤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까 감감한 거예요. 우리 거가 없는 거예요. 우리한테 남겨지는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그런 작가들 알려면 그냥 책 읽으라고 하면 되는 거지 … 우리는 아동문학에서는 ‘유형의 것(작가 자취)’이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어요 …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던 곳처럼 남아 있는 곳이 없어요. 베아트릭스 포터는 남은 식구가 없어서 자기 책을 팔아서 들어온 인세로 땅을 조금씩 샀대요. 그리고 죽으면서 유언을 쓰는데 그 땅을 지켜 달라고 썼대요. 그리고 내셔널트러스트에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 그 땅을 지켜 달라고 했대요 … 개발이라는 논리 앞에 무너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8. “지방에 강연 가면 그곳 공무원들이 한참 동안 인구가 몇이고 개발이 어떻고 하고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러면 그분한테 ‘동화작가는 얼마나 있어요?’ 하고 물으면, HOT가 태어났고 하는 얘기를 해요. 동화작가는 한 사람도 없어요 … 그 시간에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을 남기는 것 … 우리는 그대로 둘 뿐이지 나중 사람이 값어치를 평가하겠지요 …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결국 못 벗어나거든요. 어린 시절에 누구를 만났고 어디에서 놀았고 어떻게 컸고 하는 게 어른이 되어도 그 척도가 되는데,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고 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는데 … 스테디셀러가 되는 어린이책을 보면 어린이만 다루지 않아요. 상당히 깊은 ‘사람’을 다루잖아요. 아이와 함께 고전을 읽으면 왜 고전이 고전인 줄을 알아요.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들한테 〈왕자와 거지〉 완역본을 읽혔더니 아이가 잘 읽었다면서 이 사람이 쓴 다른 작품은 없냐고 묻더라고요. 놀랐어요. 고전이란 그래요 … 아이들은 고전을 읽고 자기를 생각하여 나타내는 데에 대단히 달라요 … 고전은 읽는 시간을 일부러 투자해서 가져야 해요 … 시대를 넘어 연령을 넘어 민족을 초월하는 강한 게 있구나, 우리 나라 책을 더 많이 읽혀야 한다고도 하는 편견을 넘어, 사람의 삶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보는 고전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만 아니고, 우리 어른들도 읽어야 해요 …….”


(4341.12.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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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광고와 신문 ‘한겨레’
 


 신문을 읽지 않은 지 몇 해인가 헤아려 보니, 2004년부터가 아니랴 싶습니다. 술집에서 굴러다니는 스포츠신문을 더러 넘겨서 야구와 배구 이야기를 들추곤 하며, 부산에 가면 부산에서 나오는 신문을, 춘천에 가면 강원도에서 나오는 신문을 사서 넘기곤 하지만, 따로 신문을 집에서 받아보지 않습니다.

 

 1988년에 이 땅에 태어난 〈한겨레〉라는 신문이 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한글로 신문이름을 지을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워 했지만 딱히 들여다보지 못했고, 고등학생 때 길거리에서 몇 번 사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 앞에서 신문딸배 노릇을 하면서 살 때, 다른 지국에는 들어가지 않고 〈한겨레〉 지국에 들어갔고, 1995년 4월 5일부터 1999년 8월 7일까지 일했습니다(중고등학생 때 〈중앙일보〉를 돌려 본 적이 있어서, ‘조중동 배달직원은 죽어도 안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신문딸배를 그친 날부터 〈한겨레〉 정기구독을 했고, 서울에서 살림을 꾸리다가 충주로 옮길 무렵인 2004년인가 2005년부터 정기구독을 끊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어느 신문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신문딸배를 하던 여러 해에 걸쳐서, 다른 지국과 신문 돌려읽기를 하면서 열 가지 일간신문을 날마다 읽기도 했습니다.

 

 운동경기 가운데 야구와 배구와 핸드볼을 남달리 좋아해서, 이 운동경기 소식을 보고자 스포츠신문을 뒤적이기는 하지만, 〈한겨레〉에 실린 운동경기 소식은 뒤적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라도 운동경기 지식이나 소식에는 젬병이거나 뒤처지기 마련인데다가 잘못 나오는 때도 잦았습니다. 〈한겨레〉가 운동경기 이야기를 신문에 싣는다고 한다면, 다른 여느 신문과는 다르게 바라보아야 할 텐데, 처음 운동경기 소식을 실을 때부터 햇수를 거듭하는 동안 조금씩 빛깔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비인기종목 소개가 굵직하게 나오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골프 이야기가 큼직하게 실렸고, 월드컵과 올림픽을 치를 때면 아예 다른 기사를 젖혀 두기까지 했습니다. 박찬호가 뜨면 박찬호를, 김병현이 뜨면 김병현을 다루었습니다. 요사이는 아마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그득그득 채울 테지요.

 

 세상흐름에 맞춰 가는 일이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흐름에 좇아 가는 일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한겨레〉가 태어날 때 돈과 마음과 힘과 손길을 보탠 사람들은 ‘그저 그런 찌라시 하나’로 바뀌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신문다운 신문이 한 가지도 없다고 할 만한 이 나라에, 신문다운 신문으로 자리매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리하여 사상과 철학으로 따지면 좌파인 분과 우파인 분이 고루 모여서 〈한겨레〉를 빚어냈습니다. 좌파 지식인과 우파 지식인 가운데 겨레와 나라를 걱정하고 꿈꾸는 분들이 하나됨을 이루었습니다. 리영희 님은 좌파라 할 테지만 송건호 님은 우파입니다. 당신들 마음바탕을 이루는 생각은 갈릴지라도, 당신들 마음바탕을 꾸리는 매무새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가 되는 신문으로 〈한겨레〉를 빚어냈지, 둘로 셋으로 쪼개지라는(이를테면 연대파와 고대파 따위로) 신문으로 〈한겨레〉를 빚어내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겨레를 말하고 나라를 말하는 신문인 〈한겨레〉로서 이 나라 낮은자리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신문으로 퍼졌습니다. ‘조중동 반대’는 곁가지일 뿐입니다. ‘조중동 반대’란, 이 세 가지 신문이 참된 마음으로 겨레와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뿐더러, 거짓된 마음으로 겨레와 나라를 무너뜨리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인가 2005년에 〈한겨레〉를 끊을 무렵, 아니 이에 앞서도, 참 많은 이들이 〈한겨레〉를 끊었습니다. 제가 처음 〈한겨레〉를 돌리던 1995년에도 꽤 많은 이들이 〈한겨레〉를 끊었습니다. 끊은 까닭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한겨레〉가 맛이 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목소리는 〈한겨레〉 기자나 경영진한테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기자와 경영진 모두는 자랑과 보람이 넘쳤으며, 50만 독자가 곧 100만도 넘고 200만도 넘으리라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이리하여, 낮은자리 독자들이 ‘왜 〈한겨레〉를 끊는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헤아릴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어느새 〈한겨레〉 기자와 경영진 분께서는 쇠밥그릇 놀이에 젖어서 여느 대기업 월급쟁이와 다름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여느 대기업 월급쟁이와 댄다면 달삯은 반토막밖에 안 되는.

 

 1998년이라고 떠올립니다. 그무렵에도 〈한겨레〉는 위기였습니다. 제가 처음 이 신문을 돌리던 1995년에도, 이에 앞서도 늘 〈한겨레〉는 위기였고, 나중에 구독을 끊을 때에도 위기였으며 요즈음도 위기인 줄 압니다. 그런데, 이 위기 소리는 그치지 않으면서, 위기를 딛고 일어서려는 움직임은 영 보이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움직임은 너무 굼뜹니다. 그래, 그 1998년, 저로서는 그해가 참 잊을 수 없습니다. 그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하나로, ‘전국 3000 〈한겨레〉 배달직원이 의견광고를 내어 실었’던 일이 있습니다. 위기를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한편, 〈한겨레〉가 첫마음을 잃지 말기를 바라는 뜻으로, 맨 밑바닥에서 〈한겨레〉를 아끼면서 집집마다 돌리는 배달직원들이 푼푼이 모은 땀방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땀방울과 눈물겨운 목소리마저도 〈한겨레〉 기자와 경영진한테는 조금도 못 들어갔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맨 밑바닥에 있는 배달직원들한테 그 뒤로도 어느 한 번도 ‘〈한겨레〉라는 신문을 새벽바람에 잠도 안 자면서 돌린다’는 뿌듯함을 심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옳은 기사 똑바로 잘 써서 독자한테 부끄러울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우리들 배달직원 꿈을 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독자에 앞서 배달직원, 우리는 ‘딸배’라고 했습니다만, 이 배달직원은 기자보다도 신문기사 하나하나에 머리털을 곤두세웁니다. 말썽 많은 재벌기업 광고 하나가 실릴 때에도 독자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배달직원인 우리가 그 따위 놈들 광고를 받아서 싣지 않았건만, 독자들은 ‘본사로 전화를 걸어 봤자, 허구헌날 자동응답으로 넘어가거나 전화만 받는 여직원이 건성으로 들어넘기’니까, 가장 만만한 지국으로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합니다. 그러고는 ‘신문 끊겠다’고 으름장 아닌 으름장을 놓습니다. 골프채 광고가 나와도, 타이거 우즈인지 라이언 우즈인지 하는 사람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수놓아도, 누구보다도 우리 배달직원들 지국 전화기는 애먹습니다. 더욱이, 신문값을 걷으러 다닐 때면, ‘니들(한겨레)이 하는 꼬락서니하고 조중동하고 뭐가 달라?’ 하는 눈초리인데, 아무 잘못이 없는 배달직원인 우리들이, 〈한겨레〉 기자와 경영진 때문에 눈초리를 받고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노릇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짜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키지 않았음에도, 1998년 겨울을 앞둔 쌀쌀한 밤에, 일산 어딘가로 가서 ‘한겨레 독자늘리기 캠페인 광고 모델’로 나갈 사진에 찍혀 주기도 했습니다. 1998년 한글날에 ‘신문배달 직원이면서도 없는 틈을 쪼개어 우리 말 운동을 하는 당찬 젊은이’를 기린다는 뜻에서 한글학회에서 한글공로상을 주었어요. 이 상으로 제 이름이 여러모로 알려졌는데, 늘 위기를 맞이하고 있던 〈한겨레〉로서는, 캠페인 광고를 해야겠다고 느꼈고, 이 캠페인 광고에서 저 같은 배달직원을 내세우면 좋을 듯하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이리하여 신문 〈한겨레〉와 잡지 〈한겨레21〉하고 〈씨네21〉에, 제 얼굴(신문 돌리는 모습)이 박힌 캠페인 광고가 여러 달에 걸쳐서 실렸고, 언젠가 〈한겨레〉 경영진 한 분한테, 최종규 씨가 바라면 특채로 〈한겨레〉 기자로 뽑아 준다는 귀띔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때 저는 대학교를 그만둔 몸이라 고졸 학력이었습니다. 〈한겨레〉는 신문방송사 가운데 오직 한 곳만 있는 ‘학력제한 없는’ 곳이었지만, 속내를 보면 일류대 아닌 기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토익점수 제출’이 발목을 잡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 경영진 분한테, “저는 특채를 바라지 않습니다. 시험을 봐서 떳떳이 들어가야지요. 그런데 시험을 치고 싶어도 토익점수를 내라고 해서 못 보겠습니다. 영어 솜씨를 알고 싶으면 영어로 글쓰기를 시키거나 영어로 면접을 봐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고, 경영진 분께서는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해서,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한겨레〉 기자는 될 수 없겠네요.”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그러고 여러 해 지나, 서울을 떠나서 충주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다가,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불법으로 몰래 펴낸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 말썽을 풀려고 이오덕 선생님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 사이를 오가면서 출판사 앞으로 보낼 편지 문건을 쓰고 있었고, 밑글을 쓰면서 제 인터넷방에 고치는 과정에 있는 글을 살짝 걸쳐놓았는데, 그만 이 밑글을 〈한겨레〉 기자가 말도 없이 훔쳐서 쓰면서 ‘특종’이랍시고 기사로 큼직하게 띄운 적이 있습니다. 갑작스런 기사 도둑질 때문에 이오덕 선생님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 사이에, 또 말썽을 일으킨 출판사 한길사 사이에서 진땀을 빼야 했던 일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있기 앞서 몇 달 앞서까지 저는 〈한겨레〉에 “함초롬한 우리 말”이라는 이름으로 이태 반에 걸쳐서 연재기사를 올린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한겨레 필진’인 제가 쓴 글을 아무 말이나 허락도 없이 훔쳐서 특종이랍시고 터뜨리는 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한겨레〉 문화부 기자들이 저지를 줄을 누가 알았을는지요. 이에 항의를 했지만 아무 대꾸도 뉘우침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뒤로 몇 차례 제 글 도둑질이 이어졌는데, 쓰디쓰게 혼자서 웃을 뿐, 이런 사람들하고는 앞으로 마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일입니다. 기사 도둑질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당신들로서는 ‘우리 세상에 좋은 일을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신다면. 이리하여, 신문 〈한겨레〉를 읽는 사람들한테 도움되는 이야기를 건네준다면.

 

 그렇다면, 신문 〈한겨레〉에 날마다 실리는 주식시세표는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 정보일까요. 수천만 원에 이르는 새차 소식은, 겨울철 스키장 소식은, 여름철 비행기 타고 멀리멀리 떠나는 나라밖 나들이 소식은, 수십만 원이 넘는 새 손전화기 소식은, 골프채와 비싼 물건 광고들은 …… 참말 누구한테 이바지할 소식일는지 궁금합니다. 신문 〈한겨레〉가 다루는 경제 이야기라면 어떤 경제 이야기가 되어야 할까요. 신문 〈한겨레〉가 다룰 문화 이야기라면 어떤 사람들이 누리거나 즐길 문화 이야기가 되어야 할까요.

 

 어느새 신문 〈한겨레〉가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하는데, 스무 해라는 세월을 버틴 대목은 놀랍지만, 버티기만 할 노릇이 아니라, 아름답게 자라야 하지 않을까 묻고 싶습니다. 아름답게 자랄 수 없는 신문이라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스스로 ‘문을 닫고’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묻고 싶습니다.

 

 서채원, 김달수, 이철, 강재언, 이진희, 위양복, 사토 노부유키 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펴내던 《계간 삼천리》는 1호부터 50호까지 곧은 흐름을 잃지 않고 펴냈는데, 더 호수를 이을 수 있었음에도 굳이 50호를 마지막으로 해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 뒤 새로운 잡지를 다시 펴내어 50호로 또다시 마감을 했다지만, 또 신문과 잡지는 다르지만, 글을 쓰고 글을 다루고 글을 읽히는 넋과 얼은 매한가지입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글이 엮이어 신문이 되고 잡지가 됩니다. 글이 여미어져서 신문 독자가 생기고 잡지 독자가 생깁니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계간 삼천리》가 힘겨우면서도 다부지게 걸어갔던 길을, 한국 사회에서 신문 〈한겨레〉는 얼마나 힘겹다고 하더라도 다부지게 걷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신문 〈한겨레〉는 이 땅 이 나라에서 다부지게 걸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문 〈한겨레〉는 조중동처럼 200만 부 넘게 찍어야 할 까닭이 따로 없는 한편, 조중동 기자만큼 일삯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는 기자로 살아야 합니까?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얻는 기자로 살아야 합니까?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는 마누라한테 떠넘기고 바깥에서 술 마시고 유흥업소에서 아가씨 끼고 노는 기자로 살아야 합니까?

 

 신문 〈한겨레〉는 좌파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신문이면서, 어이없게도 좌파 신문인 듯한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참 안쓰러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정작 신문 〈한겨레〉 속내인 우파 목소리라도 제대로 내느냐 하면, 아니올시다 하는 생각만 듭니다.

 

 재벌 삼성하고 사이가 틀어져서 삼성 광고를 못 받아서 삼성하고 손을 다시 못 잡게 되는 일은 슬플 수 있고 안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 〈한겨레〉가 먼저 삼성 광고를 끊지 못한 대목은 그지없이 안타깝습니다. 또한, 신문 〈한겨레〉가 재벌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꾸준히 실으면서도, 광고는 아무 말썽이 없이 받을 수 있게끔 영업이나 독자관리를 하면서 ‘삼성에서 광고관리 하는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도록 신문으로 말하지 못한 대목’을 읽어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비판이란 무엇이며, 비판은 어떤 마음으로 할 때가 참다울는지를 신문 〈한겨레〉는 얼마만큼 곱씹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더 깊이 헤아릴 대목을 대충 지나쳤기 때문에 오늘날 〈한겨레〉는 끝도 없는 위기가 꼬리를 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신문 〈한겨레〉를 좋아할 분도 있고, 안 좋아할 분도 있으며, 거들떠보지 않을 분이 있는 한편, 일찌감치 등돌린 분도 있을 텐데, 구태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주절주절 떠들어 봅니다. 저 또한 〈한겨레〉를 안 보는 사람이지만, 지난 한때 〈한겨레〉가 위기라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밑바닥에서 애썼던 사람이었기에, 이렇게나마 한 마디 끄적거리지 않고서는 속이 답답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할 듯합니다. 그저 푸념 몇 마디라고 귀엽게 받아들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로서는 〈한겨레〉라는 신문이 걸어가는 길을 보면서 여러모로 많이 배웁니다. 안타깝게도 ‘일그러진 거울’이나 ‘깨진 거울’이 되어 주면서, 한 사람이 그릇된 길로 접어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그득그득 느끼게 해 줍니다. (4341.12.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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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데 빨래


 아프다고 해도 빨래해야지. 내 빨래는 못해도, 아기 기저귀와 옆지기 옷가지를 빨아야지. 아프다고 미루면, 이따가 더 아파지고 날 때에는 아예 못 빨고 말 테니까. 집안일은 더더욱 밀릴 테고. 내 옷은 안 빤다. 아니, 못 빤다. 아기 기저귀와 옆지기 옷가지를 빨다 보면 힘이 다 빠지고 고단해서, 내 옷가지를 빨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내 옷은 한 주 두 주 그대로 입다 보면 어느새 한 달쯤 그대로 입고 있곤 한다. (4341.1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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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빨래


 홀로 나들이를 할 때에는 따로 옷가지를 챙겨 가지 않아도 된다. 하루밤 묵는 잠집에서 빨래를 하고 널어 놓으면 아침에 다 마르기 때문. 그러나 홀로 나들이를 하지 않는 요즈음은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만으로도 가방이 하나 가득 차고도 모자라 다른 손가방을 챙겨야 한다. 그리고 이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아야 하기에 저녁나절 일찌감치 잠집에 들어야 하고, 잠집에 들어서도 쉼없이 빨래를 해대야 한다. 애써 나들이를 나왔지만 돌아다니며 둘러볼 겨를이란 거의 나지 않으며, 돌아다니는 사이 하나둘 늘어나고 쌓이는 빨래를 헤아리면서 걱정이 함께 늘고 근심이 소록소록 겹친다. 이윽고 나들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찌감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동안 엉성하게 했던 빨래를 다시 제대로 하느라, 그리고 여러 사람 옷가지까지 빨래감이 곱배기가 되느라, 다른 일에는 조금도 마음을 쏟을 수 없다. 더군다나 어제오늘은 날까지 궂어서 비까지 내리고 마니, 제기랄, 마당에는 빨래를 내다 널지 못한다. 궁시렁궁시렁 투덜거리며 겨우 집안에 이은 빨래줄에 널고 옷걸이에 걸지만, 하루가 다 가도록 빨래는 안 마른다. 집에서도 빨래가 밀린다. 하는 수 없이 다리미를 써서 억지로 물기를 빼낸다. (4341.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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