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76 : 헌책방에 안 가 보니 헌책방을 모른다

 헌책방에 가 보지 않은 분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얻고 어떤 마음밥을 먹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분이 도서관 얼거리나 책갖춤을 모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고 도서관이고 찾아가 보도록 일러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이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못하거나 안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는 회사일 하랴 바쁘고, 회사 다니기 앞서는 대학교에서 학점 따랴 사랑놀이 하랴 바쁘며, 대학교 다니기 앞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싸움 치르랴 바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우 틈이 나는데, 이무렵 아이들 손을 잡고 헌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도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사느라 바빠 제때 제곳에서 아이들을 못 챙기지 않았을는지요.

 골목동네에 살아 보지 않은 분은 골목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며 어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지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골목동네를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는 으레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빌라에 살며, 골목에서 이웃집과 문과 담을 마주하면서 늘 얼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이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골목길 안쪽 모퉁이나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너른 볕바른 자리에 놓인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동네 할매 할배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모릅니다. 사진으로는 보고 말로는 들을지언정,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나도 왜 ‘철거민이 생존권을 외치’는지, ‘보상 받고 떠나면 될 일을 왜 저리 난리법석’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삶터는 고향이 아닌, 돈굴리기를 하고자 잠깐 머무는 곳이거든요. 스무 해조차 채 버티지 못하는 곳은 집도 보금자리도 아닙니다. 부동산일 뿐입니다.

 지난주에 동네 헌책방 마실을 하면서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전파과학사,1985)이라는 작은 책을 장만했습니다. 글쓴이는 장학사를 하면서 여러 국민학교(옛날이니까) 자연시간 시찰을 나가며 겪은 일을 적어 놓는데, 요오드 실험을 하는 아이가 틀림없이 검은빛으로 나왔음에도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하더랍니다. 알코올램프가 넘어지면 물을 부어야 하는 줄 모르는 교사들 이야기를 보면서, 주먹구구요 점수따기 주입교육만 되풀이되는 예전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그예 슬플 뿐입니다.

 아침에 구청(인천 동구청)에서 열린 ‘동인천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민설명회’라는 데에 다녀왔습니다. 주민 숫자가 몇 만 사람임에도, 걸상을 고작 150개 갖다 놓았고, 골마루까지 북적인 주민들 앞에서 ‘돈없는 사람한테까지 재정착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합니다. 두어 시간 내내, 재개발 정책을 꾸리는 분은 자기 사는 동네를 재개발로 밀어없애는 일을 할까 안 할까 궁금했습니다. (4342.2.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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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3 : 한 번 보고 버립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다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 때문에 골목마을 옥탑에 자리한 우리 집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옆지기와 아기가 걱정이 되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 사는 집으로 옮겨 지내기로 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아파트는 불을 따로 넣지 않아도 집온도가 20도 안팎입니다. 불을 넣어도 방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불 안 넣은 마루와 다른 방은 영 도 밑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우리 집하고 사뭇 견주게 됩니다. 이러니 골목집에 살던 이들도 아파트로 옮겨 살고픈 꿈을 꿀는지 모릅니다만, 골목집도 냉난방 시설을 손질해서 지낼 수 있다면, 굳이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 싶습니다. 달삯 내며 살아가는 이들 스스로 집을 고칠 겨를이란 없습니다만.

 인천집 물이 얼어붙을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종로3가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용산에서 내려 동인천 가는 급행을 기다립니다. 손이 시리고 날이 차지만 한손에는 책을 쥐고 한손에는 볼펜을 쥡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빈자리에 끄적끄적 몇 마디 적어 놓는데, 날이 추워서 볼펜이 잘 안 나옵니다.

 전철이 들어옵니다. 아침때라 그런지 타는 이가 얼마 없습니다. 빈자리에 띄엄띄엄 공짜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아마, 앞서서 이 전철에 탄 이들이 내리면서 그 자리에 놓아 두었나 봅니다. 얼마 있자니 헌 신문 모으는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지팡이로 선반 위에 놓인 것은 툭툭 쳐서 떨구고, 자리에 놓인 것은 손으로 집어 옆구리에 낍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를 조금 넘긴 때인데, 저 공짜신문은 몇 시쯤 사람들한테 읽히고 이렇게 금세 폐휴지 나라로 가게 될까요.

 뒤뚱뒤뚱 걷는 할머니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저 신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신문종이로 쓰여진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뒤잇습니다. 이 신문을 만드느라 땀흘린 기자도 불쌍하고, 사진가, 조판원, 인쇄공, 배달부, 또 지하철역 나들목마다 옷 차려입고 한 장씩 나누어 주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불쌍하다고 느껴집니다. 고작 하루치도 아니요 한 시간치도 아니며 몇 분치 몫으로 쓰이다가 사라져야 하는 요 제법 도톰한 공짜신문들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 땀과 얼마나 많은 자연자원을 여기에 바치고 있는가요. 공짜신문에 고개를 처박는 사람들마저 불쌍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곱고 아름답고 훌륭한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이 공짜신문에 바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신문을 만들고, 나누고, 보고 하는 데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또다른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저냥 시간 때우기에 좋아서 만드는 신문이고 읽는 신문인가요. 그저 날마다 새소식을 돈푼 안 들이고 살펴볼 수 있으니 좋은 신문인가요. 하루도 못 가는 새소식을, 한 시간도 못 가는 새 이야기를, 몇 분 스윽 스치면 또다시 쏟아지는 새소식과 새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받아먹어야 하는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부품과 마찬가지로 내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짜신문처럼, 날마다 산더미같은 쓰레기가 되는 공짜신문처럼, 우리 몸과 마음을. (4342.1.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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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5 : 좋은 책 하나를 읽으면


 세상을 꿰뚫는 눈을 일러 주는 책은 꾸준하게 나옵니다.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드는 눈길을 보듬어 주는 책은 지며리 나옵니다.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도록 이끄는 책은 한결같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책들이 널리 팔리거나 읽히는 일은 뜻밖에도 드뭅니다. 재미가 있어서 많이 팔리는 책, 다들 많이 읽는다 하여 제법 팔리는 책은 있으나, 담긴 줄거리나 알맹이가 참으로 훌륭하기에 골고루 읽히며 우리 마음밭을 북돋우게 되는 책은 생각 밖으로 얼마 안 됩니다.

 누구나 《태백산맥》과 《토지》와 《삼국지》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바탕지식이 없어도 어느 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탕지식이 없는 만큼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없고, 바탕지식이 얕은 만큼 한결 애틋하게 받아먹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저마다 제 그릇이 있어서 제 깜냥껏 좋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다만, 스스로 바탕지식을 키우지 않거나 마음그릇을 넓히지 않고서는 ‘책으로 얻는 재미’와 ‘책으로 나누는 즐거움’이 그 한때로 그치게 될 뿐, 내 이웃과 둘레로 퍼져나가지는 못하기 일쑤입니다.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읽도록 손길이 뻗쳐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읽은 분이라면 시나브로 《제7의 인간》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쳐야 하지 않느냐 싶고, 《제7의 인간》 같은 책을 읽은 분은 으레 《일본군 군대위안부》 같은 책으로 손길이 뻗치리라 봅니다.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손길이 뻗쳤다면 《니사》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칠 테며, 《니사》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친다면 《산골유학》 같은 책으로도 손길이 뻗칩니다. 《산골유학》 같은 책으로도 뻗친 손길은 《빅토르 하라》 같은 책으로도 뻗치고, 또다시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로도 뻗치며, 《골목 안 풍경》이나 《연변으로 간 아이들》로도 뻗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 하나 읽은 손길이 그 책 하나로 그치는 일이 없으며, 이러한 손길은 책을 살피는 손길로만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 모두를 둘러싼 우리 삶터를 헤아리는 손길로도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만 읽는 손길이라면,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도 《몽실 언니》나 《초가집이 있던 마을》로 뻗치지 못합니다. 뒤이어 《산골마을 아이들》과 《탄광마을 아이들》로 이어지지 못하는데, 지식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삶(실천)을 말하는 책임을 보지 못합니다. 한꺼번에 뒤엎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부터 작은 한 가지부터 갈아엎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 됨을 말하는 책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혼자 나아가지 말고 함께 나아가자고 하는 책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엊그제, 《바다로 간 플라스틱》을 덮으면서, 이 작은 책에 담긴 넋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곱씹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한편으로, 아무리 이 작은 책을 읽어내 주더라도 우리 생각과 매무새와 삶 모두 달라지거나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 책이 곧잘 팔리게 되더라도 무슨 뜻이 있을까 싶더군요. 책은 읽으라고 있으며, 책은 읽어서 좋을 수 있지만, 돈에 눈멀어 만들어지는 책이 있고, 책만 읽어 머리통만 무거워지는 얼간이는 조금도 좋지 않습니다. (4342.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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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 느낌글은 예전에 한 번 썼지만, 이번에 세 번째로 읽으면서 다시금 틀을 갖추어서 써 보기로 한다... 



 이 책 하나 73 ―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는 똑같다
 : 존 버거+장 모르, 《제7의 인간》



- 책이름 : 제7의 인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차미례
- 펴낸곳 : 눈빛 (2004.11.11.)
- 책값 : 12000원



 (1) 동네와 집과 사람


 제가 동네에서 즐겨찾는 구멍가게 할배는 지난해 가을께 가게에 셈틀 한 대를 들여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낡은 녀석을 물려받으셨는지 새로 장만하셨는지 모르지만, 구멍가게 할배는 한동안 당신 자리 옆에 멀거니 모셔 두기만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셈틀에 들어 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인 ‘프리셀’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여느 때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며 손님을 기다리지만, 요사이는 셈틀놀이에 푹 빠져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 이민노동자들은 노동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팔러 온다. 그는 어떤 한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그에겐 아무런 권리도 주장도 없으며, 그 일자리를 채우는 것밖에는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동안은, 돈도 받고 숙소도 제공된다. 더 이상 그것을 안 할 때에는, 그는 처음에 출발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라 기계 관리 인부, 청소부, 땅 파는 인부, 시멘트 섞는 인부, 세탁부, 공원 따위이다 ..  (62쪽)


 구멍가게 할배는 지금 동네 골목길 안쪽에 장만해서 살고 있는 집이 1층과 2층을 더해서 100평쯤 된다고 하는데, 이 집을 장만하여 살기까지는 오래도록 땀흘리고 애썼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할배가 들려주는 말도 있지만, 말씀으로 들려주지 않아도 몸으로 느낍니다. 어느 골목집 이웃이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인천에서도 연수구나 송도새도시와 청라새도시 같은 데, 그리고 웬만한 서울하고 견주면 터무니없이 싼 집값이요 땅값이라고 할 테지만(한 평에 200만 원도 잘 안 쳐 주니), 이렇게 싼 땅에서 마련한 싼집이라고 하여도 돈 10원을 아끼고 갈무리하면서 살아가는 긴 세월 끝에 장만한 집이라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당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집이 아닌 당신 손으로 일하여 일군 집이라, 가게며 집이며 둘레 골목길이며 쓰레기나 비닐봉지 하나 떨어지거나 구르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몇 가지 안 되는 물품을 늘여놓고 있어도 흐트러짐 하나 없고, 가게 유리문이며 간판이며 뿌옇게 먼지가 앉은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할배 구멍가게뿐 아니라 둘레 곳곳에 자리한 다른 구멍가게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어수선하거나 지저분하게 차린 구멍가게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고작 보리술 한두 병에 주전부리감 안주 한 점쯤 사러 가는 구멍가게입니다만, 이와 같은 매무새에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이제 당신들은 나이도 나이이고 살림 걱정이 따로 없으니, 구멍가게에서 셈틀놀이만 하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세월을 보내실 수 있을 텐데, 오랫동안 몸에 익은 버릇 그대로 빈병을 모으고, 손수 자전거로 물건을 실어 오며, 당신 집 페인트 바르기나 손질을 누구한테 맡기지 않습니다. 가게 옥상에는 당신들 나름대로 옥상 텃밭을 일구고, 눈이 오면 골목길 눈을 스스럼없이 치우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일을 그예 즐겁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서울 종로구 평동 안쪽 골목집에서 살 때에, 그 집 임자인 할배는 ‘낡은 집 손질’을 꼭 당신 스스로 했습니다. 나무로 지은 적산가옥이라 뒷간이 없고 쥐가 함께 사는 집이었는데, 일꾼을 사지 않고 당신이 손수 시멘트와 모래와 물을 섞어 공사를 했고, 전기공사니 보일러공사니 꼭 손수 하면서 세입자가 바라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온도가 많이 떨어진 겨울철에는 새벽같이 나와서 수도가 얼지 않게 틀어 놓으라 부르고, 어쩔 수 없이 수도가 얼면 이를 녹이려고 함께 끙끙댔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 달삯 내며 살고 있는 집 임자인 할배는 아무런 집일을 할 줄 모릅니다. 오로지 돈만 아는 분입니다. 늦은밤 아기를 재우고 고단한 다리 쭉 뻗고 잠들면서 도무지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일을 떠올려 보곤 하는데, 누구나 어릴 적부터 길들고 익숙해 온 대로 늙어서까지 살지 않느냐 싶고, 자기 삶을 가꾸는 손은 자기가 움직이는 손이지, 돈으로 사서 쓰는 손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 살림이 확 피면서 우리도 누군가한테 방 한 칸 내주며 달삯을 받을 집임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세입자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름다운 집임자가 되자면 어떠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느낍니다.


.. 그들은 제일 힘들고 제일 하기 싫고 보수가 적은 직종, 예를 들어 독일의 플라스틱ㆍ고무ㆍ석면 공장 같은 데서 일한다. 콜로뉴에 있는 포드 공장의 일관 생산 라인에서는 40퍼센트의 노동력이 이민들이며,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의 제작공장에서는 40퍼센트, 고텐부르크의 볼보 공장은 45퍼센트가 이민들이다. 살기 위해서 그는 자기 목숨을 팔 수도 있다 ..  (90쪽)


 자전거를 타면 조금 멀리까지, 두 다리로 걷자면 한 시간쯤 되는 거리까지 골목마실을 합니다. 이때마다 우리 식구는 낯익은 길을 새삼 둘러보기도 하고 낯선 길에 살금살금 첫발을 들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리는 집살림을 느끼는데, 흔히 말하는 ‘자동차 들어가지 못하는’ 어둡거나 허름하다 싶은 뒷골목이 ‘자동차 씽씽 내달리거나 우뚝 서 있는’ 제법 넓고 밝으며 번듯번듯 올라선 건물 있는 큰길보다 깨끗하곤 합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바라보면 뒷골목은 으스스하고 꾀죄죄하다는 느낌이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 보면, ‘사람 사는 동네’가 으스스하고 꾀죄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 해마다 다른 데로 옮겨 살아야 하는 동네, 끝없이 재개발 문제에 부닥쳐야 하는 동네, 뿌리내리며 사는 동네가 아닌 잠깐 머물다가 가거나 구경꾼이 스치고 지나는 동네가 으스스하고 꾀죄죄합니다.


.. 예비노동력의 대부분이 이민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들은 필요할 때에는 ‘수입’을 해 올 수 있고, 일시적으로 남아돌 경우에는 ‘수출(귀국시키는 것)’을 할 수가 있으며, 이민노동자들은 정치적인 권리도 없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치적인 충격도 받을 필요가 없다 ..  (147쪽)


 어느 때에는 뒷골목 으슥하다 싶은 곳에서 담배 태우는 아이들을 마주칩니다. 이 아이들이 오죽 담배 태울 데가 없으면 이런 데서 태울까 싶기도 하다가는, 학교 뒷간에서도 태우는데 이런 골목이야 아무것도 아닐 테지 싶고, 왜 이처럼 뒤로 숨어 가면서 태우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겉멋으로 태우는 아이들이 있지만, 속이 타고 애가 타서 태우는 아이들이 틀림없이 있기에,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속태우거나 애태울 일을 처음부터 일으키지 않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아이들 매무새를 살피면, 아이들은 제 어버이 하는 대로 고스란히 보여주거나 제 이웃 하는 대로 꾸밈없이 드러납니다. 늘 보는 모습대로 배우고, 늘 겪는 대로 익숙해지며, 늘 치르는 대로 버릇이 됩니다. 얼음과자 봉지를 휙휙 버리든,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든,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 어른이 하는 양하고 똑같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 어른이 당신 집 둘레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는 매무새였다면, 아이들 또한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다니지 않고 얄궂은 짓을 함부로 일으키지 않습니다.


.. 고용주들은 프롤레타리아보다도 낮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의식화되면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노동자도 너무 오래 체재하지 않도록 외국인 노동력을 끊임없이 ‘로테이션’시킬 계획을 세운다 ..  (154∼155쪽)


 그나저나, 학교옷을 입고 골목 안쪽에서 담배 태우는 아이들은 담배를 어디에서 샀을까요. 이 아이들은 학교옷을 벗으면 더는 골목 안쪽에서 담배를 안 태우고 떳떳하게 큰길을 거닐며 태우게 되는데, 열여덟과 열아홉이라는 숫자 사이에는 무엇이 가로놓여 있을까요. 열여덟이라 하여도 ‘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진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아이들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담배를 태우는 아이와 담배를 안 태우는 아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군대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병과 담배를 안 태우는 사병은 어찌 다를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담배 태우는 일이 좋지 않다면, 아이들과 어울리는 어른들도 학교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옳습니다. 나아가, 옳지 않은 담배가 우리 손에 쥐어지지 않도록 나라에서는 담배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고, 학교 바깥에서도 거리낌이 없으며, 나라에서는 담배 팔아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2) 저잣거리와 헌책방과 사람


 아기를 안고 저잣거리 마실을 할 때면, 우리가 물건을 한 번도 안 산 집 할매도 아는 척을 하면서 “아이고, 아기가 벌써 그렇게 컸어요? 이뻐라.” 하면서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면서 들여다보십니다. 우리한테는 살 물건이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되었지만, 늘 그 자리에서 수십 해 세월을 보낸 할매한테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마주치는 가운데 시나브로 이웃처럼 느끼게 되었구나 싶습니다. 저잣거리 끝에 있는 구멍가게 할매와 할배는 손뼉까지 치면서 “어머 얘 좀 봐.” 하면서 좋아하십니다.

 엊저녁, 옆지기가 성가대 연습을 하러 성당에 갔는데, 집에서 홀로 아기를 보다가 아무래도 엄마젖을 자꾸 찾기에 아기를 포대기에 폭 싸서 슬쩍슬쩍 골목마실 조금 하다가는 성당으로 찾아가 엄마젖을 물렸습니다. 성가대 봉사를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아줌마 아저씨 또는 ‘이제 막 할머니 소리를 듣는’ 분들입니다. 당신들은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리며 아빠한테 안긴 아기를 보고 눈웃음을 치거나 젖을 무는 아기를 뿌듯해 하는 눈빛을 보냅니다.


..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  (64∼65쪽)


 때때로 저한테 ‘무슨 책 있어요?’ 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거는 분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한 번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치 ‘헌책방 장사를 하는 듯’ 깔아 놓고 말문을 엽니다. 그러나 저는 헌책방 나들이를 즐겨다니면서 헌책방 사진을 찍고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 옮겨 나누는 일을 할 뿐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동네에서 도서관을 꾸리고요. 오늘도 한참 바쁘게 일하는데 ‘엘피판 있어요?’ 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래, “저희는 도서관입니다.” 하고 대꾸하니, ‘그러면 엘피판 살 수 있는 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합니다. 제 전화번호를 아셨다면 ‘사진책 도서관을 하는 사람 일터’로 알게 되었을 텐데, 이런 이름은 들여다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바라는 물건만을 찾’습니다.

 그래도 저는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이쯤에서 말을 끝낼 수 있습니다. 헌책방 장사를 하는 분들은 ‘손님 되는 이들이 얼마나 나이가 많고 적은지’ 알 길이 없으나 으레 말을 깝니다. 다소곳하거나 부드러운 말씨로 묻는 사람이 드뭅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그저 책이 좋아 헌책방을 나들이하는 사람은 헌책방 일꾼한테 ‘무슨 책이 있나요?’ 하고 묻지 않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 조용히 책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골라서 사고, 마음에 드는 책이 없으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조용히 나갑니다.


.. 이민을 가는 노동자들은 원래 태어난 나라에서 일자리가 없이 실직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나라 그 사회가 그들의 양육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번경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 지금까지 집계된 바로는, 한 이민노동자들의 양육, 그가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그의 조국의 국민경제가 부담하는 액수가 약 2천 파운드에 이른다. 한 명 한 명의 이민이 도착할 때마다, 저개발된 경제권에서 개발된 경제권에 대해 그만한 액수를 희사하는 셈이다. 게다가 공업화된 나라가 차지하는 저축액은 또 훨씬 막대하다. 그곳의 좀더 높은 생활 수준으로 계산해 본다면, 그의 조국에서 열여덟 살짜리 노동자를 ‘생산해 내는’ 비용은 1인당 8천 파운드에서 1만6천 파운드는 된다. 이미 다른 곳에서 생산되어 온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은, 도시화된 국가가 매년 8백억 파운드 이상을 저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이다 ..  (72∼73쪽)


 며칠 앞서 동네 헌책방에 들렀을 때입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밖에서 누군가한테 큰소리를 치면서 한소리를 합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헌책방 문간에 쌓아 놓고 있던 만화책 꾸러미를 슬그머니 들고 튀려다가 붙잡혔답니다. “야, 너희들 그거 왜 가져?” 하고 아주머니가 큰소리를 치니,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따가 가지고 오려고요.” 하고 둘러대더라고, 그래서 “너희들이 책을 가지고 싶으면 너희들이 일해서 번 돈으로 사 가지, 그렇게 남의 노동을 가로채도 돼?” 하면서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한 다음 돌려보냈다더군요.

 헌책방 아주머니는 이 아이들을 경찰서로 넘길 수 있었고, 더 따끔하게 나무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끔한 소리를 들었다 한들, 다른 이 물건을 슬쩍하려던 그 마음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아이들은 어찌하다가 다른 이 물건을 슬쩍해서 제 것으로 삼고프도록 마음이 거칠어지고 무너졌을까 모르겠습니다. 참말 돈이 없었는지, 아니면 헌책방 물건은 아무나 그냥 가져가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지.


.. 1973년 초에 네 명의 스페인 출신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반나절 동안 파업을 벌였다. 그들끼리만. 그들은 즉각적으로 해고됐다. 일자리가 없으니 그들은 그 나라에 남아 있을 권리가 없었다. 그들은 강제로 스페인으로 송환되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극렬분자’라는 그들의 기록이 틀림없이 스페인 당국에 통지되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노조들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176쪽)


 곧 새로운 학년을 맞이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언제부터인가 ‘경제 불황 속 헌책방 찾는 시민들’이니 ‘새책 한 권 값으로 두어 권 살 수 있다’느니, ‘파격 할인으로 불황 넘는다’느니 ‘불황 속 이색 호황’이라느니 하는 판에 박은 기사가 드문드문 나옵니다. 이런 기사에서는 한결같이 헌책방 헌책 하나를 ‘싼 물건’으로만 여깁니다. ‘마음밭을 살찌우는 숨어 있는 책’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헌책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고, 헌책방 일꾼은 어떤 책을 캐내어 갖추는지를 곰곰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여느 때에 헌책방을 찾아가 보지 못한 탓이라고 느낍니다. 여느 때에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면 해마다 판에 박은 기사를 쓰는 일은 없을 테고,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어떤 맛과 멋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못 보는 일은 없을 테지요.

 이와 똑같이, 신문사 기자들이니 방송사 피디들은 여느 때에 도서관 나들이를 못합니다. 안 한다고 해야 할까요. 일에 쫓기고 너무 바쁘다고들 하니까. 이리하여 우리 나라 도서관 형편이 어떠하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손질하며 고쳐나가야 하는가를 다루지 못합니다.

 좀더 살피면, 헌책방과 도서관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세상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삶터 이야기를 깊이있게 되씹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와 겨레에 닥친 이야기를 한결 널리 꿰뚫어내지 못합니다. 모두모두 여느 때에 온몸으로 껴안지 않기 때문이며, 여느 자리에서 온마음으로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녀평등 문제라든지, 군대폭력 문제라든지, 막개발 문제라든지, 서민들 일자리 문제라든지, 이주노동자 문제라든지, 국가보안법 문제라든지, 또 다른 어떤 문제라든지, 뻥뻥 크게 터져야만 가까스로 눈길을 보냅니다. 뻥뻥 크게 터지지 않으면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뻥뻥 크게 터졌더라도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눈길을 거두어들여, 일이 제대로 풀리건 풀리지 않건 아랑곳하지 않고 맙니다.
 





 (3) 《제7의 인간》과 ‘없는 사람’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이름이 자그맣게 붙은 사진이야기 《제7의 인간》을 세 번째 읽습니다. 1991년에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소개된 이 책은 2004년에 오랜만에 다시 빛을 보았습니다.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제7의 인간》은 1970년대 첫머리 유럽 이야기이기에,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서른 해도 훌쩍 넘은 옛날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삶터를 돌아보니, 숫자와 나라이름과 사람이름만 고치면 꼭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터키와 스페인과 그리스와 포르투갈과 ‘유럽에서 가난하다고 하는 나라’에서 ‘유럽에서 잘산다고 하는 나라’인 스위스와 프랑스와 독일과 스웨덴 들로 ‘몸팔러 가는’ 이야기가 담긴 《제7의 인간》인데, 2009년 우리 나라에는 몽골이며 티벳이며 중국조선족이며 필리핀이며 우즈베키스탄이며 버마며 네팔이며 스리랑카며 터키며 인도며 …… 수많은 나라에서 ‘몸팔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잡히지 않으나 적어도 30만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한국땅에 있다고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이 마을을 평생 동안 알고 있었다. 떠나는 순간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강도는 거의 그의 의지력만큼이나 강력하다. 마을을 떠남으로써, 그는 스스로 그런 느낌을 자초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의 혼란은 많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삼촌은 살아 계실까? 작별을 고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그가 승리해서 돌아올지 패배해서 돌아올지 누가 알 것인가? 도시가 베풀어 주는 것은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지,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건 아니다 ..  (34∼35쪽)


 우리 나라에도 제법 ‘이주노동자’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견주면 거의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대면 하나도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어요.

 모두 똑같은 노동자일 뿐인데, 우리 스스로 ‘정규직-비정규직-이주’ 이렇게 갈라 놓습니다. ‘이주’노동자라 하여도 나라에 따라 가릅니다. 지금은 ‘정규’일는지 몰라도 앞으로 어느 날 ‘비정규직’으로 바뀌거나 자기 스스로 ‘이주’노동자가 되어 나라밖으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데에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살피면, 노동자가 제 대접을 받도록 하지 않는 얄딱구리한 사업주한테 말썽거리가 있습니다만, 노동자가 빼앗긴 권리를 되찾도록 애쓰지 않는 안타까운 나라한테 골칫거리가 있습니다만, 사업주와 정부를 탓하기 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지 못합니다. 곁에 있는 이웃이 아파할 때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살가운 동무가 눈물을 흘릴 때 고개를 돌립니다.


.. 이민노동자들에게 있는 유일한 현실은 오직 일하는 것과 그에 뒤따르는 피로뿐이다 ..  (185쪽)


 책으로만 읽는 《제7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책이 아닌 ‘내 이야기’로 받아들일 《제7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입니다. 받아들이는 그릇 나름입니다. 받아들여 움직이려는 우리 몸뚱이 나름입니다. (4342.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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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플라스틱 - 쓰레기와 떠나는 슬픈 항해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7
홍선욱.심원준 지음 / 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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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를 외치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망가뜨린다
 [잠깐 읽기 25] 홍선욱+심원준, 《바다로 간 플라스틱》



- 책이름 : 바다로 간 플라스틱
- 글 : 홍선욱, 심원준
- 펴낸곳 : 지성사 (2008.12.31.)
- 책값 : 8000원



 (1) 내 밥그릇이 무엇인지를 알아야지요


 요즈음 라면 한 봉지는 700원을 넘어섭니다. 850원짜리도 있고 1000원 넘는 녀석도 있습니다. ㅇ마트나 ㄹ마트에 가면 봉지에 적힌 값보다 꽤 싸게 사들일 수 있다고 하나, 비싸기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밀 라면’은 값이 얼마나 할까요? 1100원입니다. 항생제와 비료와 풀약과 갖가지 몸에 나쁜 짓을 하면서 짓지 않은 곡식으로 만든 라면 한 봉지 값이 1100원일 때에, 나라밖에서 온갖 항생제와 비료와 풀약을 쓰는데다가 나라안으로 사들일 때에 또다시 약품을 치는 곡식을 화학물질을 섞어 가면서 식품회사 공장에서 만드는 라면 한 봉지 값이 700원이라 하면, 어느 쪽이 비싸고 어느 쪽이 값쌀까요?

 생협매장에서 사서 먹는 순부두 400그램은 1000원 안팎입니다. ㅇ마트나 ㄹ마트에서 아주 값싸게 사서 먹을 순부두 400그램이라면 500원쯤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500원에 두 봉지를 주기도 할 테지요. 그런데, 유전자조작을 하지 않은 콩으로 빚은 순두부하고, 유전자조작을 한데다가 수없이 많은 풀약과 항생제를 쓴 콩으로 빚은 순두부하고, 이만한 값벌어짐이라면, 어느 쪽이 비싸고 어느 쪽이 값쌀까요?

 세겹살을 싸게 파는 곳은 한 사람 몫(1인분) 200그램에 5000원도 하고 3500원도 합니다. 드물게 2000원 하는 집이 보이는데 이러한 집은 200그램이 채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주 싸다고 하여 200그램이 3000원이라고 치면, 600그램에 9000원입니다. 그런데 생협매장에서 세겹살을 사면 650그램에 9000원이 안 됩니다. 여느 고기집에서 사면 훨씬 눅을 테지만, 우리가 고기구이집에 가서 사먹는 돈을 헤아릴 때에 생협매장 나들이를 해서 ‘항생제 안 먹이고 화학처리된 사료 안 먹이는’ 고기를 사먹는다고 했을 때 드는 돈은 그리 많이 안 듭니다.

 다만, 생협매장에는 늘 물품이 넘치게 있지 않습니다. 늘 모자라게 있어, 공급날짜를 놓치면 장바구니가 비게 됩니다. 미리 어떤 물품을 받으려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장보기가 쉽지 않은 셈이지만, 쓸데없이 사들이는 물품이 없도록 살림을 맞출 수 있고, 꼭 써야 하는 물품만 쓰게 되는 한편, 우리 몸과 밥상과 둘레 터전을 한결 두루 살필 수 있기도 합니다.


.. 어두운 밤하늘에 예쁘게 퍼지는 불꽃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준다. 촛불이 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고 사라지듯 불꽃도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태우고 사라지는 환상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폭죽을 터뜨리고 난 다음날, 같은 해변을 거닐어 볼 것을 권한다 … 가볍고 작아서 사람들 눈에는 잘 안 띄지만, 먹이를 찾는 바닷새들에겐 먹이로 착각하기 쉬운 크기이다. 담배필터를 먹이로 알고 잘못 먹는 새들이라면 이런 폭죽쓰레기도 먹게 될 것이다 ..  (31∼33쪽)


 생협매장은 전국 곳곳에 있지 않습니다. 큰도시 몇 곳에 몰려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손수 지어 먹으면 되니 구태여 생협매장이 들어설 까닭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곰곰이 따지면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시골에도 생협매장이 있어야 합니다. 몸소 땅을 일구어 먹지 않는 도시사람 모인 곳에는 마땅히 생협매장이 있어야 하고요.

 농사짓는 사람이 허튼 농사를 안 지어도 일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생협이 차츰 자리를 잡아야, 시골이 살고 우리 살림이 삽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 몸이 바뀌고, 우리 몸이 바뀌는 흐름에 따라 우리 생각이 바뀝니다. 우리 생각 흐름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가려보는 눈길이 달라지고, 옳고 그름을 가려보는 눈길을 머리속 지식만이 아닌 온몸 삶으로 부대끼게 된다면, 우리 세상은 밑바탕부터 튼튼하게 새로워집니다.


.. (갯벌에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그들과 함께 나뒹구는 스레기들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이 먹고 버린 과자봉지, 우유팩, 도로변에서 낚시하다 버린 엉킨 낚싯줄과 미끼통, 술병은 늘상 볼 수 있는 것들이고 줄 끊어진 기타가 발견된 적도 있다. 물속에는 오래 전에 버려진 의자, 세발자전거, 생활정보지 거치대 등이 갯벌에 박혀 세월을 보내고 있다 ..  (47쪽)


 인천에서 오랫동안 지역 역사를 파헤쳐 온 어르신이 언젠가 “지식인들은 밤낮 민중을 말하지만 밤낮 맥주만 마셔” 하고 따끔한 한 마디를 들려주어서, 옆에서 이 말씀을 듣다가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게 말야, 참말 그러네’ 하고 생각했는데, 맥주를 마시는 일이 잘못이 아니라 ‘허구헌날 술자리에서만 떠들 뿐이지, 온몸으로 이웃사람과 부대끼면서 이 땅 삶과 참모습을 알아보고 함께하려 하지 않는다’는 소리이거든요.

 인천에서 살고 있으니 인천을 돌아보지만, 서울에서 지낼 때 서울을 돌아보면서, 또 충청도에서 살아가며 충청도를 돌아보면, ‘자기 텃밭에서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틀’을 깨부수면서 땀흘리는 사람을 찾아보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서 홀가분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이웃 마을 삶터까지 헤아리지 못하기 일쑤이고, 이웃사람 삶과 아픔을 내 삶과 아픔으로까지 삭이지 못하고요.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좁을까, 왜 이렇게 마음주머니를 북돋우지 못할까 하고 곱씹는데, 아무래도 자기 삶부터 다부지게 붙잡지 못하니 이러지 않겠느냐는 데로 생각이 모아집니다. 어떤 일을 하든 먼저 자기가 어느 집에서 살며 어떠한 밥을 먹고 어떻게 집살림을 꾸리느냐가 그이 삶과 생각을 크게 움직인다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 좀더 옳게 먹으려 마음쏟지 못하면서 이웃 삶터를 좀더 옳게 헤아리도록 마음쏟지 못합니다. 배고픈 이웃한테 라면상자 선물하면 좋은 일이 될까요? 영구임대아파트가 집없는 사람한테 가장 나은 보금자리가 될까요? ‘일자리 백만 개 만들기’를 하면 실업자가 사라지고, 돈없어 애먹는 사람이 사라질까요? 그러면 그 일자리 백만 개란, 무슨 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 일자리일까요?


..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그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다도해의 아름다운 바다공원이 거대한 하얀 목걸이를 두르기 시작했다. 낯설고 괴이한 목걸이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스트로폼으로만든 부표들이다. 굴과 김 등을 양식할 때 어디에 양식을 하고 있는지 소유주가 위치를 표시하거나, 해수면 아래로 굴의 종묘를 늘어뜨릴 때 가라앉지 않도록 띄우는 역할을 하는 어구이다 … 1년에 우리 나라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부표는 3500만 개 이상이 된다. 바람에 날리고 파도에 휩쓸린 스티로폼 부표는 다도해의 수많은 섬으로 퍼져 나간다 … 스티로폼은 손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떨어져 부스러기가 생길 정도로 약하다 …원래 부표는 깨지거나 망가지면 되가져와 다시 사용하거나 처리해야 하지만, 떨어져 나간 부표를 찾아다니는 인건비가 새로 사는 비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린다 … 본디 파랗던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 … 생각보다 자주 바다쓰레기가 배들의 항해를 방해한다. 배들의 불안한 항해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선박 사고의 1/10이 바다쓰레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여객선을 타고 가는데 바다 위에서 이유 없이 멈춰 선다면 아마도 대부분 바다쓰레기 때문일 것이다 ..  (52∼60쪽)


 대통령 이명박 님은 서울과 부산 사이에 물길을 내고, 서울과 인천 사이에도 물길을 트면서 ‘엄청난 일자리를 마련하고 엄청난 돈돌리기를 이룬다’고 외칩니다 그런데, 이런 물길트기만이 아닌 ‘새 고속도로 또 뚫기’와 ‘새 고속화도로 자꾸 뚫기’와 ‘고속철도 늘려 뚫기’와 ‘새 아파트 끝없이 다시 짓기’만 하여도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 정치꾼도 똑같이 되뇝니다. 우리는 어느 정치꾼을 뽑아도 똑같은 정책이 되풀이되고, 똑같은 토목건설 바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꾼 공약과 정책으로만이 아닌 우리 스스로, 집값이 오르기를 꿈꿉니다. 주식값이 오르기를 꿈꿉니다. 일삯이 오르기를 꿈꾸고, 물건값은 안 오르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자기 사는 집값이 오르면 물건값이 안 오를 수 없습니다. 물건값이 오르는데 일삯이 올라 보았자 달라질 구석이 없습니다. 물건값이 오른다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쓰는 물건값만 오를 뿐인데다가, 가난한 사람이 팔아야 하는 물건은 값을 올리기 어렵습니다. 달걀 하나 넣는 오방떡 하나가 1994년에도 500원이었고 2009년에도 500원입니다. 군고구마 한 봉지가, 붕어빵 한 조각이, 떡볶이 한 접시가, 열 몇 해 앞서와 오늘날 얼마만큼 벌어졌을까요. 우리 입에 냠냠짭짭 씹혀 우리 밥통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떻게 우리 손까지 오게 될까요. 우리는 이 먹을거리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생각하며, 얼마만큼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요사이 어느 식료품이든 ‘MSG無첨가’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딱지를 하나도 안 붙였습니다. 예전에는 ‘엠에스지’라는 녀석을 안 넣었기에 안 붙였을까요 넣었어도 안 붙였을까요. 그런데 ‘엠에스지’를 안 넣었다는 식료품치고 화학착색료와 화학착향료 들을 안 넣은 식료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가운데 생각있고 뜻있고 넋있다고 하는 분들, 더욱이 지식인과 지성인이라고 하는 분들은 이런 먹을거리를 얼마나 속깊이 제대로 알고 있으려나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떻게 빨아서 입고 있지요? 빨래를 할 때 빨래틀이라는 녀석을 쓰나요, 두 손을 쓰나요? 빨래하는 데 쓰는 비누는 어떤 세제인가요? 빨래는 어디에서 어떻게 말리나요? 옷은 얼마나 사입고, 우리가 사입는 옷은 어떤 천으로 지어졌는지 아나요? 커피와 초콜릿만 공정무역을 하면 될까요? 이런저런 흐름은 알 까닭 없이 그저 ‘공장노동자’이면 다 똑같은 ‘노동자’일까요? 이 나라에서 지식인이라 하는 분들은 얼마나 자기 집살림을 알고 있을는지, 얼마나 스스로 옳게 집살림을 꾸리고 있을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집살림을 이웃나눔으로 펼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성을 아버지와 어머니 한 글자씩 붙여 ‘김신 아무개’나 ‘최박 아무개’처럼 적으면 두 성을 평등하게 다루는 셈일까요? 어머니 또한 당신 아버지한테서 받은 성일 텐데?


.. 이렇듯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은 해로운 화학물질들이 우리가 늘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 제품을 생산할 때에 사람의 건강이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생산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진 결과이다 ..  (96쪽)


 지난날 신동엽 시인이 피를 뿜으며 외친 “껍데기는 가라”는 온갖 쇠붙이 무기만 가라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전쟁무기만 없으면 된다는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삶자락 어느 구석이든 겉치레와 겉발림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살림을 꾸려야 하고,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가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두 손에 비누거품 가실 날 없고 진물이 빠질 날 없는 손으로 연필을 들고 깃발을 들고 가방끈을 조여야 합니다. 두 손으로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어르며 밥짓고 찌깨 끓여낼 수 있은 다음에 논문을 쓰든 소설을 쓰든 기사를 쓰든 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당신 살아온 이야기 듣던 귀로 민중이든 시민이든 국민이든 서민이든 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옆집 아이한테 놀이노래 불러 주고 자장노래 불러 주는 입으로 역사든 진보든 혁명이든 보수든 개혁이든 반동이든 읊어야 합니다. 바닥 없는 하늘이 없고, 기둥 없는 집이 없습니다. 모래알에 기둥을 박아 보았자 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어떠한 일이건 운동이건 뭣이건 해낼 수 없고 이룰 수 없으며 맞이할 수 없어요.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주제에 무슨 사회운동이며,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주제에 어인 대학졸업장이며, 오로지 돈셈밖에 안 하는 주제에 웬 자기계발입니까.

 사회운동은 자기 삶을 고치는 일입니다. 대학교란 자기 마음을 뜯어고치는 일입니다. 자기계발이란 나한테 있는 사랑과 믿음을 송두리째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는 일입니다. 






 (2) 《바다로 간 플라스틱》이 밝히는 바다쓰레기


 《바다로 간 플라스틱》은 고작 150쪽 조금 넘기는 얇은 책입니다. 집에서 아기 어르고 재우고 먹이는 틈틈이 책을 넘기고 들추고 하니 며칠 만에 다 읽게 됩니다. 줄거리를 살피면, 잘게 잘게 쪼개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가면 쓰레기로 남을 뿐 아니라, 바다를 삶터로 두는 온갖 목숨붙이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들이 찬찬히 눈길을 두지 않으면서 망가지는 바다 이야기를 하고, 우리들이 알면서도 더럽히는 바다 이야기를 합니다.


..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앨버트로스의 비극은 일어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하늘 높이 나는 앨버트로스가 항공기나 높은 관제탑에 부딪쳐 몇 년 사이 수천 마리가 죽었다. 높이, 그리고 멀리 나는 새가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과, 언제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안전한 바다는 이제 없다.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만이 남았을 뿐이다 ..  (71쪽)


 단출하게 참 잘 엮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런 살가운 이야기를 살가이 녹여낼 만한 가슴이 우리들한테 얼마 없겠구나 싶은 생각 또한 듭니다. 참말, 우리들은 이런 이야기책을 지식으로만 여기고 우리 매무새를 고쳐나가는 삶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하는 일도 골칫거리이지만, 도시에서 불꽃놀이 하는 일도 골칫거리입니다. 이런 불꽃놀이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과 눈길도 안타까운 한편, 이런 불꽃놀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기사로 다루고 하는 우리 마음결도 슬픕니다. 바닷가에서만 안 하면 될 불꽃놀이는 아니니까요.


..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생활용품이 모래톱이나 갯벌에 더 깊이깊이 박혔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언젠가 유물로 발견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 마구 쓰레기를 버려대면 아마 여기저기 썩지 않는 유물로 가득한 유적지가 너무 많아서, 우리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보존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유적이 아닌 몰상식한 선조들의 더러운 쓰레기더미로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하다 … 이곳의 어민들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가꾸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오래오래 후손들까지 안정적으로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참하는 것이다 .. (81, 82, 87쪽)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두 병 사다 마시면서, 맥주 겉에 붙은 종이딱지를 살며시 뜯어내어 말리곤 합니다. 하루쯤 두면 빳빳하게 되어 책갈피로 쓸 수 있거든요. 동네 마실을 하면서 자동차 앞유리에 끼워진 광고쪽을 빼들거나, 전철 광고판에 꽂힌 또다른 광고쪽을 빼내어 책갈피로 쓰곤 합니다. 모두 쓰레기가 되어 길바닥에 나뒹굴게 될 일을 생각하면, 한 장이라도 덜 쓰레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손전화값 알려주는 청구서가 오면 알맞게 잘라내어 책갈피로 씁니다. 잘 갈무리를 해 둔 다음, 나중에 아이하고 종이접기를 할 때 써도 되고요.

 요즈음 세상은 우리 스스로 쓰레기를 안 만들려고 애써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나오고 넘치고 널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한 사람 움직임은 그저 나비 팔랑거림밖에 안 된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한 목숨 살아가면서 조그맣게나마 몸부림을 치면서 살고 싶고, 이렇게 몸부림을 치는 동안 제가 바라보는 길과 제가 걷는 길을 좀더 곰곰이 되짚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저는 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고 쓰면서 살아야 할 테지만, 돈에만 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착한 돈은 50만 원 겨우 벌 수 있다면 50만 원만 벌고, 50만 원도 못 벌게 된다면 못 벌면서 살림을 꾸릴 생각입니다. (4342.2.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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