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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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13 ― 오늘날 정부와 권력자는 폭력덩어리일 뿐이다
 : 레프 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


- 책이름 : 국가는 폭력이다
- 글 : 레프 톨스토이
- 옮긴이 : 조윤정
- 펴낸곳 : 달팽이 (2008.7.25.)
- 책값 : 12000원


 (1) 머리 아프도록 읽는 책 하나


 이제는 사라진 잡지 가운데 《샘이 깊은 물》이 있습니다. 이 잡지를 이끌어 나간 ‘설호정’이라는 분은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이 인물의 대답〉이라는 꼭지를 꾸렸고, 이 꼭지에서 설호정 편집장은 당신이 만나본 사람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한 구석을 꼬치꼬치 파고들면서 깊이있는 이야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설호정 편집장한테 꼬치꼬치 대꾸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힘겹고 고단하고 짜증스러울 수 있을는지 모르나, ‘설호정이라는 사람까지도 뭔가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 대목이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에 환히 밝혀질 때까지 파고들어 캐낸다’는 흐름이었습니다.

 1992년 9월치 《샘이 깊은 물》에서는 〈이 인물의 대답〉 꼭지에서 《녹색평론》을 펴내는 김종철 교수와 만나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종철 교수는 설호정 편집장이 꼬치꼬치 묻는 말에 벌컥 성을 내며 소리를 높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설호정 편집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더 가시돋힌 말을 묻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잡지 《샘이 깊은 물》을 읽는 사람들로서는 ‘1992년에 막 새로 나온 환경잡지 《녹색평론》은 뭐를 하려는 책인가?’ 하는 궁금함을 많이 풀 수 있습니다.

 물음을 받는 분으로서는 괴롭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괴로운 물음을 받아야 서로서로 발돋움합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는 내 모자람과 어리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슬그머니 넘어갔거나 대충 흘려보낸 어설픔과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김종철 교수가 너무 뜬구름잡듯 ‘철학적ㆍ추상적 이론’만 늘어놓고 있다 보니 설호정 편집장은 “사실 무슨 이념을 펼치는 데는 정권을 장악하는 게 최선 아닙니까?” 하고 한 마디를 쏘아붙입니다. 그러며 “지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미국 식의 소비 문화가 지속될 터인데 개인 몇 만 명이 책을 통해서건 명상이나 직관을 통해서건 각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 하고 덧붙입니다. 이때 김종철 교수는 성남을 참지 못하고, “그거는 그야말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세뇌된 논리입니다. 저는 종교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이지만 예컨대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변했습니까?” 하고 대꾸하는데, 설호정 편집장은 거침없이 “장기적으로는 그런 소수가 인류를 의미있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는 있기도 하겠지만, 이런 식의 개발 일변도로는 세계는 백 년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하고 따지고, 다시금 “모든 사람이 부처 될 만한 싹수를 가졌다고 해서 부처가 된다는 법도 없고, 또 되더라도 아주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 것 같고, 그때가 되기 전에 세상은 이미 든 망조 때문에 망해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하고 못을 박습니다.

 이에 김종철 교수는 “그건 오만한 얘기예요. 우리가 당장 부처입니다. 또 지금 지구가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 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을 안 한다든지 그건 불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하고 말을 잇지만 그리 가슴에 와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 김종철 교수가 하는 이야기는, 일찌감치 설호장 편집장이 몸을 담았던 ‘전두환이 없앤 잡지’인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해 왔던 일인 한편, 지금 편집장으로 몸담은 《샘이 깊은 물》에서도 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당신이 몸소 겪어 왔을 뿐 아니라 헤쳐나가고 있는 일을, ‘설호정 당신 눈과 머리’가 아닌 ‘환경잡지라는 빛깔있는 목소리로 한길을 걸어가려는 다른 사람 눈과 머리’가 무엇인가를 듣고 싶어 이렇게 물었지만, 김종철 교수는 이때까지 제대로 당신 생각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 오늘날 정부와 지배 계급은 정의 아니면 권리 비슷한 것에조차 기초해 있지 않고, 오로지 발달된 과학의 도움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조직에 의존하고 있다 ..  (21쪽)


 올해는 2009년입니다. 1992년부터 열일곱 해가 흘렀습니다. 2009년 오늘날 《녹색평론》은 ‘대구 변두리’를 떠나 ‘서울 한복판’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어느덧 열일곱 해가 지난 이야기인데, 열일곱 해 사이, 서울 한복판에서 환경잡지를 펴내는 《녹색평론》 김종철 교수 생각과 삶은 어떻게 거듭났을까 궁금합니다. 오늘에 와서 지난날 물음에 대꾸를 해야 한다면 어떤 말씀을 펼치실까 궁금합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저와 같은 패배주의자들한테 들려주실 수 있는 얘기이기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탐독하기 시작한 뒤로 구체적으로 훨씬 더 패배주의자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속되게 말해 고민만 늘었다는 말이지요.” 하고 말합니다. 김종철 교수는 “자꾸 사람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건 제가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데요?” 하고 묻습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그런데 이런 책이 진실로 성공하려면 저 같은 사람이 실천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책에 제시되는 문제들을 끊어버릴 힘이 제겐 없습니다.” 하고 한 마디 받아칩니다.

 두 어른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아주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더구나 열일곱 해 만에 다시 읽는 저는 피식 웃습니다. 쓴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옵니다. 그러면서 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제가 읊는 말마디가 나 스스로 내 삶을 고쳐 나가는 말마디인가를 돌아보게 되며, 내 말마디를 듣는 이웃이 당신 스스로 당신 삶을 고쳐 나가는 말마디로 받아들일까를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 노동자에게 땅이 없고 게다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양식을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권리조차 없다면, 그것은 그가 그런 상황을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들(지주들)이 노동 계급한테서 땅과 그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 비정상적인 사물의 질서는 군대에 의해 지탱된다 … 모든 정부와 통치 계급은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제도는 결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마련된 게 아니며,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며 오로지 정부와 통치 계급에게 봉사한다 … 군비와 전쟁을 위해 사람들에게서 징수한 세금은 군대가 보호한다고 하는 노동 생산물의 대부분을 앗아간다. 또 전 남성 인구가 평소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노동의 가능성 자체가 상실된다. 언제라도 발발할 수 있는 전쟁의 위험 때문에 사회적 삶의 개선은 헛되고 무익한 것이 되고 만다 … 정부는 외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군대는 주로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하기 위해 필요하고, 군대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 병역 의무를 져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한다 ..  (35∼40, 44쪽)


 퍽 긴 꼭지로 마련한 〈이 인물의 대답〉이 막바지에 이를 때, 설호정 편집장은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말 한 마디를 묻습니다. “《녹색평론》의 이념을 선생님은 삶에서 어느 정도 실천하세요?” “대부분 못하죠. 그러니까 《녹색평론》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실천하시는지.” “가급적이면 외식 안 하려고 하고.” “보신주의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보신주의 나쁠 거 없어요. 나한테 좋은 게 지구한테도 좋은 거예요. 또 고기 안 먹고. 제 생활은 간단하게 단순하게 살고. 여행을 잘 안 하고. 거의 안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집하고 여기하고 학교하고밖에 왔다갔다 안 하고. 또 식구한테 빨래 자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빨래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아파트로부터 나와야 하는 일입니다.” “선생님 가족들이 공감하세요?” “내년이면 애들이 다 우리를 벗어납니다. 대학을 가니까.” “서울로 간단 말이죠?”

 김종철 교수는 2009년에는 ‘아파트를 벗어나셨’는지, 그리고 당신 잡지에 실은 이야기 가운데 ‘거의 하나도 실천을 못했다는 대목 가운데 어느 대목을 실천하고 있으’신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어딘가 뒤끝이 많이 남는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왜 스스로 못하는 일을 ‘마치 스스로 하고 있는 듯 느껴지도록’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책을 내고 해야 할는지요. 왜 우리 스스로 즐겨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닌, 머리로만 굴리는 일을 해야 할는지요.

 저는 아파트가 싫고 텔레비전이 싫어 부모님 집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부모님께서 저한테 당신 아파트(이제는 전원주택이 되었습니다)를 물려주실는지 안 물려주실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저로서는 부모 재산을 물려받을 마음이 없습니다. 옆지기 또한 내가 내 부모한테, 또 옆지기는 옆지기 부모한테 재산을 물려받을 까닭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책이 제대로 못 읽히는 나라에서 책을 제대로 느끼도록 돕는 일을 하는 도서관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일부러 인천에 남아 있지만(인천이 우리 나라에서 책을 가장 안 읽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자연이 아닌 기계와 시멘트와 석유로 온통 가득한 터전에서는 우리 스스로 숨이 막힙니다. 이리하여 텔레비전은 마땅한 노릇이고, 세탁기나 냉장고나 이런저런 가전제품을 처음부터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에 알맞게 씻고 빨래를 합니다. 굳이 맛난 바깥밥을 찾아 먹으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에는 옳고 바르게 애쓰는 집을 찾아서 즐겁게 먹습니다.

 환경운동이란, ‘환경운동’이라는 이름이 붙기 앞서에도 언제나 있어 왔던 일이니까요. 지식 있는 분들이 환경운동을 외치고 환경모임을 열고 환경책을 펴내기 앞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연 삶터와 사람 삶터를 고루 사랑하는 매무새를 고이 지켜 오셨으니까요.


.. 왜 이런 죄수 같은 일을 하냐고 내가 묻자 그들은 “그럼 뭘 한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왜 36시간을 쉴 새 없이 일하는 겁니까? 작업을 교대제로 할 수는 없나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하지만 왜 그저 시키는 대로 하냐 이겁니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보나 마나 ‘싫으면 그만둬.’라고 할 거라구요. 작업에 한 시간이라도 늦으면 당신에게 허가증을 집어던지며 나가라고 하죠.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은 된다구요.” … 노예 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차 주인조차도 자기 말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은 비싸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시켜 값비싼 동물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은 비경제적인 일이리라 … 실상 우리들, 즉 부자들, 자유주의자들, 인도주의자들, 사람의 고통뿐만 아니라 동물의 고통에도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노동으로 덕을 보고 있으며, 게다가 더욱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즉 그런 노동으로 더 큰 덕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완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 않은가 … 우리 주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대개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 관한 한, 그들의 노동 생산물로 우리가 편의와 쾌락을 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다 ..  (105, 108, 111∼112쪽)


 옆지기는 저와 혼인하기 앞서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고 있었으나 지난해에 끊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1992년) 책방에 서서 《녹색평론》을 읽었지만, ‘쉽게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을 어렵고 딱딱하고 긴 글로 적는 일’은 그리 안 달갑다고 느꼈습니다.

 참다운 “푸른 이야기”라 한다면, 지식 있는 사람만 새겨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지식 없는 누구나 기꺼이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푸른 이야기”라 한다면, 나부터 오늘까지 꾸준히 이어온 내 삶을 글로 담아낼 노릇이요, 아직까지 못하던 일이라면 오늘부터 신나게 펼쳐 나가려 하는 몸짓을 실어낼 노릇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입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란 없습니다. 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남녀평등을 이루려는 운동이든 장애인 권리를 지키려는 운동이든, 입이 아닌 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환경운동은 더더욱 밑바탕이 되면서 커다란 운동인데, 환경운동이라 할 때에는 다른 어느 운동보다도 나 스스로 내 삶이 되어 가면서 말하는 운동이어야 하고, 나부터 먼저 즐겁게 한몸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내 이웃과 식구와 동무한테 스스럼없이 말하고 함께하도록 어깨동무하거나 손을 맞잡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정부는 사람들을 어린아이의 의식 수준에서 붙잡아 두기 위해 노력했다. 칭얼대는 아이에게는 돌봐 줄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 당신들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어 우리를 파탄에 몰아넣는다. 세금으로 함대를 유지하고 무장을 강화하고 전략적 철도를 건설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의 야망과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 토지 재산을 보호하고, 그 결과로 지가가 상승하는 일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좁은 공간 안에 와글와글 모여 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직 세계에 넘쳐나는 자유로운 땅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 싸움에서 유리한 자는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정부의 폭력에 참여한 사람이 된다 ..  (157, 159쪽)


 책을 읽는 손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가슴이 어둡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눈에서 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러하나 책을 내 삶에서 떨굴 수 없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많이 보이지만 《녹색평론》을 내치지 못하는 한편, 《뿌리 깊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조용히 사라져 버린 잡지 《샘이 깊은 물》을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하나하나 찾아내어 차곡차곡 갖추어 놓고 틈틈이 다시 꺼내어 읽으며 내 오늘날을 돌아봅니다.


 (2) 몸이 아프도록 돌보는 목숨 하나


 옆지기는 엊그제부터 아기 ‘오줌 가리기’를 시키려고 애씁니다. 열 달을 넘어간 아기가 이제부터 차근차근 오줌 누기를 가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아직 변기에 앉아 쉬를 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이웃 분들 말씀으로는 ‘바지를 벗기고 있으면’ 얼마쯤 방바닥 닦느라 애먹겠지만 이내 쉬를 가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아기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 준다면, 아기 기저귀 빨래에서 한 시름을 놓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기 기저귀에서 한 시름 놓인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다른 빨래가 새 시름으로 다가오리라 느낍니다. 아기 옷가지가 부피가 커질 테며 신발도 있을 테니까요.


.. 애국심을 조장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다 …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며, 자기 마음의 평정,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며 적들의 침략과 학살로부터 자기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당시의 개념이다 … 애국심과 그 결과(전쟁)는 신문사에 엄청난 수입을 안겨다 주고, 다른 많은 업계도 이로부터 이득을 챙긴다. 작가나 교사, 교수 등 직업이 안전한 사람일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애국심을 찬양한다. 왕과 황제는 더 큰 명성을 얻을수록 애국심에 더 깊이 빠져든다. 지배 계층은 군대, 돈, 학교, 교회, 언론을 손안에 쥐고 있다. 그들은 학교 역사 수업에서 그들 민족이 최상의 민족이며 언제나 옳다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이식한다 ..  (51, 57, 59쪽)


 아기 먹일 죽을 날마다 새로 끓이고, 아빠 엄마 먹을 밥 또한 날마다 새로 끓입니다. 빨래하는 데에도 한짐이요, 밥하는 데에도 한짐입니다. 그렇다고 아기가 밥을 낼름낼름 받아먹어 주느냐?

 저로서는 제 어릴 적을 떠올리지 못하지만, 저 또한 우리 아기처럼 우리 어머니를 고달프게 했을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보나 마나 제가 아기였을 때에도 어머니를 몹시 고달프게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웃집에서는 ‘뭘 그리 힘들게 아이를 키우느냐’고 하지만, 우리 어버이나 이웃 어르신이나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어려움과 고단함 없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아이 키우는 고단함이 있으니 아이 키우는 보람이 있지 않느냐 싶어요.


.. 공장 일꾼, 나아가 일반적인 도시 노동자들이 감수하는 비참한 환경은 오랜 노동 시간과 적은 보수가 아니라, 자연과 접촉하는 정상적인 환경을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기고,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강제적이고 단조로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 세상의 모든 현자와 시인들은 인간 행복의 이상을 언제나 농촌 생활의 조건 안에서 찾고 있다. 또 생활 습관이 왜곡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경우, 무엇보다 농업 노동을 선호하고 있으며, 공장 일이 언제나 유해하고 단조로운 반면 농업은 건강하고 다양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농업은 자유롭고 농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하거나 쉴 수 있는 반면, 공장 일은 공장이 노동자들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기계 작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장 일은 부차적인 반면, 농사일은 일차적이다. 농업이 없으면, 공장은 존재할 수 없다 ..  (119, 122쪽)


 아침마다 똥을 누는 아기를 씻기고, 틈틈이 아기를 안고 바깥마실을 다니며 바람을 쐴 때면 팔이며 허리며 등짝이며 쑤시고 저립니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다 보면, 우리처럼 아기를 안고 있는 동네이웃을 곧잘 만납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마음으로는 ‘저쪽 집에서도 우리와 똑같거나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이 됩니다. 마음으로 ‘힘들겠지만 힘내셔요’ 하는 인사를 보냅니다.

 아기 아빠는 바깥일 때문에 가끔 아기 엄마랑 아기만 집에 두고 서울마실을 하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면 ‘이렇게 돌아다니는 일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가?’ 하고 새삼 느낍니다. 몸이 아파 오래도록 몸져눕던 사람이 비로소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숲길을 걸을 때 짜릿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듯, 아기한테서 잠깐 풀려난(?) 때에 이토록 신나고 즐거운 바깥마실이 다 있었다고 느끼면서, 집에 홀로 남아 아기랑 씨름하는 옆지기한테 미안해집니다. 그러다가 ‘나 혼자만 이렇게 신나게 다녀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다음부터는 나 혼자 볼일을 보지 말고 온 식구가 다 함께 움직이자고 마음먹습니다. 칠월까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정비를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때에는 늘 함께하자고 다짐합니다.


.. 사치품은 내버려야 한다. 폭력과 자본, 발명이 불필요한 물품의 생산에 치우쳐 있는 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 필수품의 경우 누구도 일정 정도 이상은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치품의 경우는 한도 끝도 없다. 수천 톤의 금으로 집을 장식할 수 있으며,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공원으로 조성할 수도 있다 ..  (185, 196쪽)


 이렁저렁 따지면, 혼자 살 때에 얼마나 크고 너르게 홀가분함을 누리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 꾸리는 일이란, 얼마나 넉넉히 시간을 쓰며 내 삶을 가꾸는 셈인지 모릅니다. 혼인을 하면 저마다 제 시간을 빼앗긴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때를 생각하면 우스울 뿐입니다.

 이러한 이음고리를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적잖은 예술가와 글쟁이들은 ‘혼인 않고 아이 안 낳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힘들고 고되니까, 힘듦과 고됨에 당신들 예술과 슬기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홀로 조용히 당신들 삶을 즐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래, 참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아이 낳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 삶이든, 제 시간이든, 제 겨를이든 하나도 없으니까요. 제 삶이며 시간이며 품이며 땀이며 온통 아이한테 쏟아붓고 바쳐야 하니까요. 제 살을 깎아 주고 발라 주고 모조리 내놓아 주어야 하니까요.


..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떤 구실에서든, 심지어 가장 흔한 처벌의 구실에서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 과거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주로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있는 고급 직종 종사자와 이들이 이끄는 도시 노동자들이었다. 반면, 다가오는 혁명의 참여자들은 주로 농촌의 대중들이 될 것이다 … 오늘날 사람들은 별개의 자유, 즉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이런저런 형태의 선거의 자유, 결사의 자유, 노동의 자유,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자유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이(지금의 러시아 혁명가들처럼) 자유에 관해 매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자유는 어떤 사람에게 그의 바람과 이익을 무시하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  (234, 257, 270쪽)


 아이와 함께 살면서 집살림이 버겁다고 느끼지만, 버거운 만큼 새로운 길을 엿봅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한결 단출하고 홀가분하게 살림을 꾸렸을 텐데, 이렇게 살림을 꾸렸다면 우리 두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며 지나칠 숱한 일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헤아리게 됩니다. 아이 키우는 고단함만큼 둘레사람들 고단함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우리가 미처 모를 또다른 숱한 고단함은 무엇일까를 살피게 됩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책 펼칠 겨를이 몹시 줄어든 만큼 아무 책이나 허투루 읽으며 나한테 애틋한 말미를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하는 가운데, 글 한 줄을 쓰면서도 더 마음을 쏟도록 해 줍니다. 동무나 이웃이 저를 볼 때면 “얼굴에 살이 쏙 빠졌네요.” 하고 말을 거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아이 키우는 사람은 다 그렇잖아요. 그래도, 힘드니까 그만큼 보람이 있어요.”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3) 톨스토이 님이 남긴 《국가는 폭력이다》


 사람들한테 ‘문호(文豪)’ 아닌 ‘대문호’ 소리를 듣는 톨스토이 님 이름을 모르는 분은 얼마 없으리라 봅니다. 톨스토이 님 작품을 찬찬히 읽어 보지는 못했어도 이분 이름은 익히 알 테며, 러시아 사람들 여느 이야기를 그러모아 엮은 옛이야기 또한 온누리 사람들한테 두루 퍼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 같은 작품은 무척 짧은 글이요 쉬운 글이면서도 어린이부터 어른 모두한테까지 ‘내 삶에서 내가 깊이 돌아보고 사랑할 대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1930년대부터 우리 말로 옮겨지며 읽힌 이야기인데, 설익은 가르침이나 어설픈 밀어붙이기가 아닌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다이 가꿀 길을 보여줍니다.


..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폭력과 살인을 일삼을 것이다.” 왜 그렇단 말인가? 폭력의 결과로 생겨난 조직이,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조직이, 이제는 아무 필요도 없어진 그런 조직이 사라진다고 해서 왜 사람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하고 서로를 죽인단 말인가? ..  (75쪽)


 톨스토이 님 산문모음 《국가는 폭력이다》를 읽습니다. 산문모음 《국가는 폭력이다》는 무척 억세고 굳은 목소리로 오로지 한 가지 말마디를 외칩니다. “한 나라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한테 주먹다짐만 하고 있다.”고. “사람들한테는 정부가 아닌 자치만 있어야 하며, 모든 전쟁은 정부가 일으킬 뿐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려고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고. “정부는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한테 나라 지키기에 몸바치도록 이끌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애국심이란 다름아닌 권력자 밥그릇 지키기요, 권력자 밥그릇을 크게 키우려고 우리 뼈와 살을 온통 발라 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국가는 폭력이다》는 “나라와 정부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는 말마디가 얼마나 그릇되고 잘못되고 엉터리인가를 낱낱이 밝히는 책입니다.

 《국가는 폭력이다》를 읽는 동안 조지 오웰 님 산문모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조지 오웰 님 스스로 파리와 런던 밑바닥에서 가난뱅이나 떨꺼둥이로 지내면서 ‘프랑스와 영국이 나라 안팎으로 내세우는 거짓된 이름과 껍데기’가 무엇인지를 밝힌 책으로, 톨스토이 님과 조지 오웰 님이 살았던 곳이 다르고, 느낀 바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는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가꾸는 길에서 자꾸자꾸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 손으로 가시울타리를 쳐 놓고 이 안에 우리 스스로 갇혀 있다고.


.. 우리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참여는 희생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지위뿐만 아니라 형제ㆍ동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를 원한다면, 익숙해 있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동안 누리고 있던 유리한 지위를 포기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격심한 투쟁에 대비해야 한다 … 사람들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새로운 형태의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과 타인의 품성을 바꾸고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  (88, 174, 220쪽)


 그러면, 이 나라는 이 정부는 왜 폭력덩어리가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왜 나라와 정부가 폭력덩어리가 되도록 손을 놓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나라와 정부가 폭력덩어리가 되도록 이끄는 한편 떡고물을 얻어먹고 있지는 않는가요. 얄딱구리한 나라얼개를 뜯어고치는 데에 마음쏟기보다는, 고시에 붙어 죽는 날까지 쇠밥그릇 떵떵거리면서 살아가기만을 바라지는 않는가요.

 스스로 아름답게 꾸릴 내 삶을 찾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돈만 있으면 그만인 내 삶이 되도록 굴러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힘쓰지 않는 가운데, 이웃이고 동무이고 식구이고 밟고 타올라가며 내 밥그릇 두둑히 챙기면 좋다고 여기는 삶이 되도록 망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 다른 모든 수단은 환상이다 ..  (223쪽)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아름다이 말을 하고, 아름다이 일을 합니다. 스스로 아름답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보기로는 예쁘장한 말을 할는지 몰라도 속알맹이까지 예쁘지 않을 뿐더러, 겉보기로만 훌륭해 보이는 일을 할 뿐, 조금도 안 훌륭한 일을 합니다. 내가 나를 돕지 않고서는 내가 발디딘 이 나라를 도울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내가 몸담은 이 마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살찌우지 않고서는 내 이웃과 동무와 식구가 오순도순 살가운 보금자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나부터 ‘폭력덩어리’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숱한 폭력덩어리가 하나둘 뭉치면서 ‘나라와 정부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폭력덩어리’가 망나니처럼 나대고 짓찧고 까불며 법석을 떱니다. (4342.6.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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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짐
정상명 지음 / 이루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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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샐러리맨’이 꿈인 사람들한테 꽃 한 송이를
 [잠깐 읽기 40] 정상명, 《꽃짐》


- 책이름 : 꽃짐
- 글ㆍ그림 : 정상명
- 펴낸곳 : 이루 (2009.5.25.)
- 책값 : 1만 원



 (1) 아픔이 낳은 풀꽃세상


 1999년에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인 ‘풀꽃세상’을 연 정상명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처음부터 환경과 생태에 깊이 뜻이나 마음이나 눈길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 어릴 때부터 딱히 ‘환경과 생태를 거슬러’ 살아오지 않았을 뿐이요, 이런 매무새가 큰 아픔을 겪으면서 ‘풀꽃세상’ 모임으로 모두어졌지 않을까 싶습니다.


.. 논물 대기 공사 도중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앵두 할머니와 앵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슬그머니 발치에 핀 민들레 꽃대 하나를 꺾으시더니 손을 보신 후에 말없이 할머니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할머니 역시 별 말씀 없이 꽃대를 받고는 곧장 입으로 가져가셨습니다. 저는 ‘민들레에 무슨 특별한 맛이 있어 그러시나 보다’ 했습니다. 제 추축은 틀렸습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꽃대를 잡고는 피리를 부는 것이었습니다 ..  (48∼49쪽)


 정상명 님 딸아이 천초영 씨가 어머니인 당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아이는 갑작스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정상명 님 딸아이가 튼튼하게 살아 있었어도 어머니께서는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을 열 수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정상명 님 따님이 싱그럽고 아름다이 살아가고 있었어도 어머니께서는 환경과 생태를 걱정하는 모임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살아 있었다면 함께 모임을 열어 꾸렸을는지 모릅니다. 살아 있었다면 그런 모임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알콩달콩 오순도순 살아가는 데에만 마음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기쁨이 꼭 기쁨이지만은 않다고 느낍니다. 슬픔이 반드시 슬픔이지만은 않다고 느낍니다. 기쁨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는 일이 흔하다고 느낍니다. 기쁨을 더 큰 기쁨이 되도록 북돋우기도 하지만, 슬픔이 외려 기쁨이 되도록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깨지고 다치면서 좀더 튼튼히 걱정없이 즐겁게 타는 길을 익히듯, 무릎이 깨지고 어깨가 까지면서 내 자전거와 이웃 자전거를 한결 너그러이 헤아리듯, 아픔이라고 꼭 아픔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숱한 아이들한테 가장 큰 아픔이라면 대학입시에서 떨어지는 일이 될 텐데, 대학입시에서 쓴맛을 본다 하여 이 아이한테 낭떠러지만 있지 않아요. 쓴맛을 보기 때문에 더욱 달콤한 맛을 보는 앞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쓴맛에만 머물며 더 고달프고 괴로운 쓴맛에서 나뒹굴 수 있겠지요.


.. 아, 그 달콤하고 싱그러운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디 맛은 보라색’이라고 … 나무의 나이는 50년이 넘은 걸로 추정됩니다. 다른 나무와 달리 가래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잎사귀를 다 떨구어 지금처럼 온몸이 완벽히 드러나는 계절입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 아주머니 댁 복숭아는 특별히 맛있지는 않습니다. 딱딱한 편이고 당도도 좀 떨어집니다. 그러나 저는 언덕 위의 그 천막을 한 번 찜한 후로는 절대로 다른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제 마음을 ‘복숭아는 언덕 위의 그 천막집이다’로 정했으니 그렇게 하는 것뿐이지요. 저는 복숭아만을 먹는 게 아니고 복숭아 천막을 싸고도는 모든 풍경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51, 59, 79∼80쪽)


 문득,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당신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 아이가 부모인 나보다 먼저 죽은 일을 슬퍼하면’서 이 슬픔을 이겨내고 삭여내고자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을 꾸릴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 옆지기가 옆지기 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할 때에, ‘우리 아이한테 닥친 아픔을 견디어 내고자’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을 이끌 수 있을까 곱씹어 봅니다.

 글쎄요. 어떠시려나.

 모르는 노릇입니다. 자식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아니라도, 자식한테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이 아니어도,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밑바닥 시민모임 하나 꾸려 당신들 눈물과 웃음을 모두 쏟아부을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따지고 보면 남 일만은 아니거든요. 저와 옆지기한테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지만, 저와 옆지기 또한 우리 어린 딸아이한테 어머니 아버지 된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마치 남 일처럼 ‘내가 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머잖아 ‘우리 딸아이가 우리보다 먼저 죽으면?’ 하고 생각할 날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음악을 만든 적도, 스피커를 만든 적도, 나무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바람도 푸른 하늘도 흰 구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가 만든 좋은 것들을 듣고 즐깁니다. 세상을 밝히는 일에 먼지만큼도 보탠 게 없는 것만 같은데 ‘공짜’로 이 모든 것을 듣고 느낍니다 ..  (70쪽)


 엊그제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된 집을 장만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아직 우리한테 돈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앞으로 우리한테 돈이 있게 되어도 집없는 사람으로 살림살이를 잇고 싶은 마음입니다. 집 하나 장만할 돈으로, 어쩌면 정상명 님이 했듯이 우리 깜냥껏 조그마한 시민모임을 열 수 있습니다. 집 하나 장만할 돈을 벌게 된다면, 이 돈으로 도서관 지킴이 한 사람을 두고 한 주 내내 도서관을 열어 놓고 알차게 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 하나 장만할 돈이 모였을 때에 집을 장만한다면 우리는 다른 어느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 집이 있다’로 끝납니다. ‘달삯 나갈 걱정’은 안 하지만, ‘목돈으로 더 널리 나눌 일’은 한 가지도 못하고 맙니다.


..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이름난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엄청 시달립니다.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아이들에게 영어 과외를 시킨다, 영재 교육을 시킨다, 고액 과외를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낸다, 난리입니다. 강남의 집값이 죽자고 오르는 이유가 좋은 학교가 몰려 있어서 거기 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지요. 그리고 공부 잘해 좋은 대학 나와서 일류 기업에 취직을 하지요. 거칠게 말하면, 코흘리개부터 시작한 공부라는 게 겨우 샐러리맨 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걸 성공으로 여기는 우리 시대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초라합니다 ..  (181쪽)


 풀꽃세상 모임을 열고, 풀꽃평화연구소를 꾸리는 정상명 님이 펴낸 산문모음 《꽃짐》을 읽으면서, 조그마한 환경모임 ‘풀꽃세상’을 새삼 돌아봅니다. 정상명 님한테는 더없는 아픔이 있어 시민모임을 열 슬기를 얻었다지만, 이러한 슬기를 얻었다 할지라도 여느 때부터 곧고 바른 생각과 몸짓으로 당신 삶을 엮어 오지 않았다면, 사뭇 다른 길을 걸었으리라고.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 발판이 되어 크게 거듭나거나 달라지기도 한다지만, 마음속 한켠에 고운 풀씨 하나 깃들어 있지 않았다면 풀꽃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꿈꾸는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으리라고.


 (2) 산문모음 《꽃짐》


 산문모음 《꽃짐》을 읽습니다. 아이를 보며 책을 읽자니, 214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을 덮기까지 닷새가 걸립니다. 읽다가 덮고 기저귀를 갈고, 읽다가 덮으며 아기를 어르고, 읽다가 덮으면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


.. 저는 할머니가 빨래하시는 모습을 참 좋아했습니다 … 추억이니 그리움이니 하면서 항아리에 의미를 붙여 귀히 간직할 수도 있지만, 편안하게 무시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 무심함은 아마도 나이가 주는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 지금부터 30년 전에 충청도의 고요했던 소도시 대전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채송화니 분꽃이니 하는 꽃들이 어느 집에나 풍성했고 인구가 적어 거리는 늘 비어 있었는데, 이따금 짐을 한두 덩이 실은 말 달구지가 꿈결처럼 지나가던 곳. 목척교 아래에는 맑은 물이 흘러가고 냇가 한편에서는 양잿물을 넣은 커다란 무쇠솥이 걸려 있어 무럭무럭 솟아나는 김 속에서 옥양목 빨래들이 희디희게 삶아질 때 ..  (86, 93, 205쪽)


 산문모음 《꽃짐》을 덮으면서, ‘정상명 님은 글을 썩 잘 쓰는 분이 아니구나’ 하고 느낍니다. 좀 엉성하고 어설픕니다. 왜 이러한 글을 썼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심한 글은 아니요, 시시한 글도 아닙니다.

 수수한 이야기거리에서 수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글입니다. 자그마한 글감에서 자그마한 아름다움을 받아들인 글입니다. 돋보이지 않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삶을 건드리는 글이요, 스스로 돋보이고자 하지 않는 자리에 선 한 사람으로서 제 삶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 결혼한 후 저희 집 아이들이 ‘국민학교’에 다닐 때도 날씨는 매우 추웠습니다. 너무 추운 날이면 애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강추위에 여리디여린 것들이 두 볼이 시퍼렇게 얼어터지면서까지 학교에 가서 배울 게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지요 ..  (108쪽)


 책 겉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짐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었습니다.” 하고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책이름 ‘꽃짐’이란 꽃송이가 짐이 되었다는 이야기일 테고, 정상명 님 당신한테 닥친 짐은 오래도록 부대끼고 지켜보고 돌아보는 동안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짐이 아니라 꽃송이로 가득한 짐’이었다고 느꼈다는 소리이구나 싶어요.

 그래, 짐입니다. 무겁다고만 보았던 짐입니다. 그런데, 짐이었습니다. 무겁지는 않았으나 그 무게란 킬로그램 숫자로 재는 짐이 아니라, 당신 마음밭을 건드리는 짐이었어요. 당신 정상명 님 마음밭이 얼마나 넉넉한지를 돌아보도록 하는 짐이었고, 당신 정상명 님이 앞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이웃하고 어울리고 너른 자연하고 어깨동무를 하면 좋은가 하고 깨닫도록 일깨우는 짐이었습니다.


.. 어떤 한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단돈 몇 푼을 내고 ‘위대한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분들의 평생에 걸친 인간과 생에 대한 탐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  (118쪽)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산문모음 《꽃짐》은 밋밋합니다.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예쁜 말이나 그림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뽐내려 하지 않고, 동무와 이웃 등을 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 고이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그예 그 자리에 고스란히 뿌리를 내리려고 합니다.

 혼자 지려는 짐이 아니요, 남한테 들씌우는 짐이 아닙니다. 함께 짊어지자는 짐입니다. 함께 들고 가자는 짐입니다. 무거우니 함께 들자는 짐이 아니라, 가뿐하고 어여쁘기에 함께 들고 가자는 짐입니다. 싱그럽고 아름다우니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천천히 나누어 들고 가자는 짐입니다.

 아무래도, 잘난 척하지 않는 꽃짐이 되자면, 또한 스스럼없는 꽃짐이 되자면, 글이 좀 못생겨야 할 테지요. 글이 좀 투박해야 할 테지요. 글이 좀 가벼워야 할 테지요. 더없이 풋풋하게 펼쳐진 들꽃 한 송이 같은 《꽃짐》입니다. (4342.6.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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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
마틴 프로벤슨.앨리스 프로벤슨 글.그림, 김서정 옮김 / 북뱅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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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잃거나 버린’ 서울 열두 달 삶이란?
 [그림책이 좋다 66] 프로벤슨 부부,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



- 책이름 :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
- 글ㆍ그림 : 마틴 프로벤슨, 앨리스 프로벤슨
- 옮긴이 : 양평
- 펴낸곳 : 백제 (1981.1.10.) / 문선사 (1984.6.15.)
(2008년 11월 10일에 ‘북뱅크’에서 새로운 판으로 펴냈습니다. 새로운 판으로 나온 책이름은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입니다. 새로운 판은 김서정 님이 우리 말로 옮겼고, 새로운 판은 9500원입니다.)



 (1) 열두 달 이야기 그림책


 우리 나라에는 1981년에 처음 나오고, 1984년에 출판사를 옮겨 다시 나온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이라는 그림책은 오래도록 판이 끊어진 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3월, 이 그림책을 그려낸 프로벤슨 부부가 그린 또다른 그림책인 《우리 농장에 놀러 오실래요?》(북뱅크)가 우리 말로 나왔고, 2008년 11월에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헌책방에서 이 그림책을 찾아보았을 때에는, ‘1980년대 첫무렵에 이만한 그림책이 우리한테 얼마나 반갑고 좋은가를 알아볼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서른 해 가까이 된 지난날에는 이 그림책 값을 깊이 느낄 가슴이 많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무렵만 하여도 우리 나라 곳곳 자연 삶터는 그럭저럭 살아남아 있었고, 제법 큰 도시라 하여도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나가 보아도 싱그러운 자연을 어느 만큼 맛볼 수 있었거든요.

 적어도, 뭉게구름이 있고 소나기가 있으며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있고 회오리바람이 있었으며 파란하늘이 있었습니다. 박쥐가 있었고 땅거미가 있었으며 초롱초롱 빛나는 별이 있었습니다.


― 1월은 추운 겨울의 달. 온 세상은 눈에 덮여 하얗게 됩니다. 땅이 꽁꽁 얼어붙으면 암소는 뒷뜰을 떠나지 않습니다. 닭도 함께 있지만, 1월에는 달걀을 별로 낳지 않아요 …….


 2009년이 한참 흐르고 2010년을 코앞에 둔 요즈음 한국땅에서 열두 달을 헤아려 봅니다. 그림책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에서는 열두 달 이야기가 다 다르게 펼쳐집니다. 1월은 1월다움이 있고 2월은 2월다움이 있습니다. 3월은 3월다움이 있으며 4월은 4월다움이 있어요.

 그러면 2009년 6월에는 무엇으로 유월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더위? 여름? 여름 과일? 여름꽃? 여름 하늘? 여름 바다?

 그러면 유월 더위는 얼마나 더운 느낌인가요. 유월 여름은 어떠한 대목에서 칠월 여름과 다른가요. 머리로 헤아리는 여름이 아닌, 우리가 바로 이곳에서 느끼는 여름이 어떠한가요. 봄부터 겨울까지 언제나 딸기며 수박이며 능금이며 값싸게 사들여 먹을 수 있는 판에, 여름 과일이란 무엇일까요. 꽃집에 가면 언제나 장미가 있고 튤립이 있고 나리가 있는 마당에, 여름꽃이란 무엇인가요.

 우리는 여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름에 바라보는 바다는 봄과 가을에 바라보는 바다하고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아니, 동서남이 바다라 하면서도 바다 냄새와 맛을 거의 모르는 채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닌가요.


― 1월 다음은 2월이죠. 숲속의 연못은 꽁꽁 얼어붙습니다. 아이들은 모여서 스케이트를 탑니다. 발이나 손이 시려워지면 모닥불 옆에 모여앉아 따뜻하게 불을 쬐기도 하지요. 그런데, 거위는 추위도 잊은 채 겨울을 내내 차디찬 물속에서 놀고 있어요 …….


 너무도 그리운 나날이 되어 버린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켜 하지 않아 내동댕이쳐 버린 이야기가 아니랴 싶습니다. 그깟 열두 달이야 우리한테는 그다지 안 아름다우니 내다 버려도 됀찮다고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날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치고 5월을 5월답게, 7월을 7월답게 보내는 아이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3월이라 다르고 2월이라 다르게 보내도록 놓여난 아이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제도권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된다 한들, 스스로 제금나와 지내며 회사 다니는 몸이 된다 한들, 철을 철답게 느끼고 달을 달답게 느낄 만한 겨를이 터럭만큼이라도 있겠습니까.


― 3월은 바람이 붑니다. 밖은 아직도 춥지만 봄이 다가오는 듯해요. 헛간에도 봄이 스며들어 오고 있어요. 포니가 예쁜 새끼를 낳았읍니다. 사랑스런 눈길로 잘 돌봐 주고 있어요. 언제나 헛간에 있던 잿빛 고양이도 건초 속에서 새끼를 낳았어요. 그리고 또 양은 두 마리 아기 양을 …….


 귀염둥이 집짐승을 키우는 사람이 늘지만, 집짐승이 철과 달에 따라 달리 살아가는 버릇을 지키는 일이란 없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언제나 아무 걱정이 없는 집에서 키워지는 집짐승한테서 짐승다움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살아숨쉬는 장난감을 넘어, 스스로 제 삶을 꾸리는 집짐승이란 하나도 없다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흙땅을 파고 더위를 식힐 개들이 살 터전이란 없는걸요. 껑충껑충 뛰며 지붕을 타고 오를 고양이들이 깃들 터전이란 없는걸요. 참새조차도, 비둘기조차도, 까치조차도 둥우리를 틀 만한 조그마한 틈바구니란 없는걸요. 사람들이 ‘닭둘기’라고 놀려대어도 먹고살자면 스스로 닭둘기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비둘기 삶을 읽어내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란 없는걸요.


― 4월은 봄의 달입니다. 여러 동물들이 새로 태어나고 알을 낳는 걸 보면 이제는 정말 봄이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갈색 암탉은 벌써 21일 동안이나 달걀을 품고 있읍니다. 껍질을 깨고 나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지만, 지금 막 병아리가 나오려는 참이에요. 병아리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아주 몽실몽실한 예쁜 모습을 하고 있어요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침똥을 눈 아기를 씻기는데 밖에서 후두둑 소리가 크게 나더니 소나기가 찾아옵니다. 화들짝 놀라 앞마당에 널어 놓은 빨래를 부리나케 걷습니다. 2∼3분쯤 뒤 소나기가 멎습니다. 살짝 해가 비칩니다. 여우비라고는 할 수 없고, 사람 놀리니? 음, 놀릴 만도 하지. 사람이 얼마나 이 땅을 더럽히고 있는데.


 (2) 우리한테 열두 달 이야기란


― 5월은 따뜻하여 동물들은 무거운 외투를 벗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제가끔 털을 갈기도 하고, 양의 털은 사람이 깎아 주지요. 양을 지키는 검은 강아지도 털을 잘라 달라고 졸랐어요. 그래서 길게 말아올려진 부분만 조금 잘라 주었더니 아주 많이 달라 보였어요. 하지만 겨울이 다시 올 때까지 털은 다시 예전처럼 자랄 거예요 …….


 우리 식구가 깃든 골목동네에서는 어렴풋이나마 철과 달을 느낍니다. 달따라 철따라 골목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이건 크고작게 또는 많고적게 꽃그릇을 키웁니다. 덩굴풀을 키웁니다. 부러 길바닥부터 옥상까지 줄을 길게 늘어뜨려 덩굴풀이 줄기를 올리도록 해 놓습니다. 먹는 푸성귀를 심기도 하지만, 하얀꽃 노란꽃 빨간꽃이 차례차례 피어나도록 어여쁜 꽃씨를 심기도 합니다.

 조팝나무와 진달래 철쭉 개나리부터, 수수꽃다리 민들레 씀바귀 깨 앵두꽃을 거쳐, 수국 장미 달맞이꽃 메꽃 고추꽃을 지나, 배추꽃 가지꽃 오이꽃 호박꽃을 즐기는 가운데, 감꽃 대추꽃 호두꽃 밤꽃까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골목동네 모습입니다. 나날이 다르게 선보이는 골목집 꽃그릇입니다.

 널어 놓는 빨래를 보면서 다름을 느낍니다. 시들고 마른 줄기와 잎사귀를 보며 철을 느낍니다. 대문에 붙인 봄맞이 글씨를 보며 새해를 느낍니다. 해가 뜨는 길이와 해거름을 돌아보면서 하루하루를 느낍니다. 비록, 시골살이처럼 또렷하게 느끼는 하루와 달과 철과 해는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하루하루를 언제나 새롭게 느낍니다.


― 6월에는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읍니다. 들에는 메뚜기와 파랑깡충이와 불개미도 뛰어다니고 있군요 … 여름의 들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 있읍니다. 꿀벌들은 물론 꽃을 좋아하지만, 양이나 염소도 무척 좋아한답니다. 누구나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죠 …….


 골목길 사진을 한 해 내내 날마다 찍다 보면, 사진에 담긴 빛이 늘 다르다고 깨닫습니다. 봄을 맞이해 가을이 무르익을 때까지는 빛깔이 아주 곱고 환합니다. 부드러운 빛깔이 짙은 빛깔이 되고 무르익는 빛깔이 되어 마무리합니다. 이내 겨울 문턱이면 어둡고 무겁고 차갑습니다. 제아무리 한낮 맑은 날 찍어도 겨울 사진은 겨울 사진입니다. 길거리에 눈송이 하나 흩날리지 않아도 겨울은 겨울이에요. 빗줄기 모습을 따로 담지 않아도 봄날은 봄날이고 여름날은 여름날입니다.

 그러나 저는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니까 이런 느낌을 몸으로 받습니다. 또한 골목동네에서 살아간다 하여도 바쁜 시간에 매이지 않으니까, 틀에 박힌 회사에 나가지 않으니까, 더 많은 돈벌이에 이끌리지 않으니까, 하루하루 날씨를 느끼고 하늘을 느끼고 땅을 느낍니다.

 찬물에 기저귀를 빨고 헹구고 빨래줄에 널 때에도 날씨와 하늘과 땅을 느끼고 바람을 느낍니다. 옆지기와 번갈아 아기를 안고 업으며 마실을 다닐 때에도 날씨와 하늘과 땅을 느끼고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몸과 몸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우리들은 우리들 느낌을 우리 아기한테 물려줍니다. 자연이란 꼭 시골에만 있지 않음을 물려주고, 자연이란 먼저 내 몸과 마음에서 샘솟도록 해야 함을 이어줍니다.


― 6월이 지나면 7월이에요. 별이 없이 둥그런 달밤에는 좀체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웬일일까요? 귀를 기울이면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립니다. 개구리는 개골개골,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부엉이는 친구들에게 부엉부엉 하고 외칩니다. 포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낮은 소리로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음매 하고 우는 정겨운 소의 울음소리도 들려옵니다 …….


 다시 빗줄기를 뿌리는가 싶어 걱정스러웠는데, 빛살이 맑고 환하게 비춰들어 옵니다. 우리 집 둘레 조촐한 나무숲에서 살고 있는 새들이 지저귑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고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 부두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고, 큰길가를 오가는 큰 짐차가 내는 뛰뛰빵빵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 소리조차 살갗으로 못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 1월 다르고 12월 다른 소리를 가늠할 만한 귀가 사라졌으리라 봅니다. 2월 다르고 11월 다른 냄새를 가눌 만한 코가 없어졌으리라 봅니다. 3월 다르고 10월 다른 모습을 살펴볼 만한 눈이 잊혀졌으리라 봅니다. 4월 다르고 9월 다른 느낌을 알아챌 가슴팍이 꺼져 버렸으리라 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자가용을 얻어탈 때에도, 기차나 배를 탈 때에도 늘 매한가지입니다. 이 쇳덩어리에 몸을 싣는 내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요? 그나마 자전거라도 타고 달리면 달과 날과 해에 따라 다른 바람과 햇살을 느낍니다.


― 8월은 여름이 끝나는 달,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쨍쨍합니다. 햇빛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읍니다. 암소는 그늘에서 낮잠만 잡니다. 양은 날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읍니다. 양을 키우는 어린이의 마음은 흐뭇합니다. 꽃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8월은 더우니까 시들기 쉬운 꽃을 잘 돌봐 주어야 합니다 …….


 내 손으로 땅을 어루만져야 느끼는 하루일 테고 깨닫는 한 달일 테고 받아들이는 철일 테며 알아차리는 한 해가 될 테지만, 내 손으로 책만 쥐고 볼펜만 쥐며 자판만 또닥거리고 운전대만 붙잡는다면 내 온몸은 온통 숫자 셈에만 얽매입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아끼면서 즐기는가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벌고, 글 하나 써서 얼마를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고 돌보면서 함께 살아가는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아이 나이가 몇 살(몇 달)이고, 천기저귀를 쓰느니 엄마젖을 먹이느니 헌옷을 얻어 입히느니 생협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로 젖떼기밥을 먹이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어 이렇게 좋았고 저 책을 읽어 저렇게 기뻤음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책 줄거리를 읊어대는 글이나 책을 몇 권이나 읽어치웠다는 숫자놀이를 글에 담고 싶지 않습니다. 느끼는 가슴이 소담스럽고, 느끼는 가슴을 다루는 데에도 제 삶은 참으로 짧습니다. 짧은 만큼 하루하루 알뜰히 즐기고픈 매무새이며, 짧기에 더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껴안고 싶은 하루하루입니다. 날마다 다르게 느끼고 달마다 다르게 깨닫고 철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3) 좋은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으로


― 그러다가 우리의 이마에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은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해는 짧아지고 벌써 9월인걸요.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누구나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습니다. 9월의 저녁은 정말 기분이 좋고, 말들은 신이 나서 마구 뛰고 싶어합니다 …….


 그림책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은 더없이 푸근하고 따뜻합니다. 우리하고는 퍽 동떨어져 있을 법한 서양나라 열두 달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건만, ‘한 달 두 달 석 달 … 열한 달 열두 달’로 이어지는 철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안으면서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맞아들이는 가슴녘이라면, 동양이건 서양이건 한국이건 미국이건 모두 한목소리요 한이웃임을 느끼도록 합니다.

 세계명작이란 이름은 세계 어느 나라 겨레 사람들이라 하여도 웃음과 눈물을 함께 느끼면서 받아들일 만한 작품을 가리키는구나 하고 깨닫도록 합니다. 이 그림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그림책이 한국에 처음 옮겨지고 새삼 옮겨지는 때까지도 아름다울 수 있는 작품이며,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쉰 해나 백 해가 흐른 다음에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 10월은 아주 좋은 달입니다. 무르익은 추수가 한창이구요. 첫 서리가 내리면 벌레들도 차츰 없어집니다. 밭에는 이제 동물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것이 별로 없어요. 건초더미는 헛간에 쟁여지고, 잘 여문 옥수수는 곳간으로 들어가지요. 그래서 동물들은 헛간 가까운 뜰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닭들도 전보다 빨리 닭장으로 들어가고 달걀도 많이는 낳지 않게 됩니다 …….


 이제 우리 나라 사람 스스로 곧잘 ‘자연 그림책’이나 ‘생태 그림책’을 펴냅니다. 우리네 열두 달이나 네 철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보리 출판사에서 펴낸 ‘도토리 계절 그림책’ 네 권,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심심해서 그랬어》, 《바쁘다 바빠》, 《우리끼리 가자》는 더할 나위 없이 손꼽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우리 시골 삶터를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우리네 철흐름을 고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에 따라 여름에 따라 가을에 따라 겨울에 따라, 우리 살림살이를 어찌어찌 다르게 꾸려 왔는가를 차근차근 일러 줍니다.

 그런데 이런 일러주기와 보여주기가 거의 모두 ‘일러주기와 보여주기로 끝!’을 맺곤 합니다. 《사계절 생태놀이》(천둥거인) 같은 작품도 몹시 빼어난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하는 물음을 그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들한테 일러줄 수 있어도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즐길 수 없는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있어도 우리 어른이 우리 아이와 함께 즐기지 않는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 11월! 거의 매일 밤 서리가 내리고, 차가운 공기는 겨울 냄새를 풍깁니다. 농장 연못에도 살얼음이 얼었지요. 농장 근처의 숲속에서 사냥꾼의 피리 부는 소리가 메아리쳐 옵니다 … 11월에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농장을 나가는 동물들이 있읍니다. 팔려가는 것도 있지만, 가장 훌륭한 수컷들은 씨를 붙여 주기 위해 가까운 농장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


 우리네 책마을이 많이 발돋움했기 때문에, 지난날처럼 무턱대고 나라밖 책을 옮겨대는 일만 하지 않습니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을 쏠쏠히 엮어냅니다. 아쉽다면, 엮어내는 매무새는 있으나 ‘정작 누가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다가 ‘우리가 다 함께 이렇게 살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깊이 파고들지는 못합니다.

 구경거리가 되는 생태 이야기는 넘칩니다. 지식과 정보가 되는 환경 이야기는 쏟아집니다. 시험공부에 도움되는 자연 이야기는 쎄고 쎘습니다. 그렇지만, 삶이 되는 생태며 환경이며 자연만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내 삶으로 받아들여 내 생각으로 곰삭이고 내 이야기로 풀어내며 어깨동무할 만한 생태며 환경이며 자연만큼은 도무지 찾아내기 힘듭니다.


― 12월은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지요. 대지는 겨울의 눈으로 덮여집니다. 마침내 헛간 속에서 생활하는 계절이 왔어요. 따뜻한 짚의 잠자리 속에서 그들은 맛있는 건초와 옥수수를 먹으며, 놀거나 숨거나 꿈을 꾸기도 합니다 …….


 문득, ‘도시에서 열두 달 보내기’ 같은 이야기책을 적바림해 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궁금합니다. 이 나라 서울에서 보내는 열두 달은 어떻게 다를는지, 이 나라 서울살이 열두 달은 어떤 이야기가 샘솟을는지. 이 나라 서울에 뿌리내리고 있는 어른과 어린이는 저마다 어떤 삶을 보내고 있을는지. (4342.6.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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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추송웅 - 말과 몸짓으로 이야기하다 예술가 이야기 1
안치운 지음 / 나무숲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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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추송웅> 말고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책에 이 글을 붙이고 싶지만, 일찌감치 사라진 책이기에, 이 책에다 붙여놓습니다. 아무쪼록, 잘 읽힐 뿐 아니라, 잘 삭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 하나 110 ―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 걸었던 한길
 : 추송웅,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 책이름 :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 글 : 추송웅
- 펴낸곳 : 기린원 (1981.4.15.)



 (1) 한 사람이 걷는 길


 연극을 하던 사람 추송웅이 있습니다. 1941년에 태어나 1985년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당신은, 고작 마흔다섯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1977년 서른일곱 살이 될 때 무대에 선보인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보여주기까지는 가난에 허덕이는 하루하루였습니다. 1963년, 스물셋에 연극밭에 몸을 담근 지 열다섯 해 만에 큰빛을 본 셈인데, 큰빛을 본 이듬해에 드디어 당신 이름으로 살림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태 뒤인 1980년에는 연극 소극장 ‘테아트르 추’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달콤한 하루하루를 얼마 보내지 못한 1985년 12월 29일 새벽, 배앓이를 하다가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바로 이해 1985년 5월에는 ‘모노드라마 1천 회 공연’을 이루어냈다고 하는데, 1천 회에서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잠들은 셈이라고 할까요.


.. 아버지는 하필이면 내가 다니는 국민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다. 위로 형님 세 분, 누님 두 분, 모두가 수재라 할 만큼 공부를 잘하셨다. 그런데 막내녀석 하나가 생긴 것도 묘하게 생긴데다 둔재요 보통 골치가 아니었다 … 담임 선생님과 아버지가 잠시 말씀을 주고받는데 아버지가 오늘 산수 공부를 직접 가르칠 터이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 아닌가? 나는 순간 뻥하고 망치로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아버지께서는 무슨 방법, 어떠한 챙피를 주더라도 막내둥이 산수 실력을 올리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하신 모양이셨다 … “하나에 둘을 더하고 또 다섯을 더하고 다시 여섯을 더하면 모두 얼마냐? 아는 사람 손 들엇!” 딱 한 녀석만 빼놓고는 전부 손을 들었다. 물론 그 녀석은 바로 교장 선생님의 막내둥이 나였다.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셨다. 창피하시기도 하셨으리라. “추송웅 이리 나온나.” … 순간 뭔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둔탁한 아픔이 왔다. 얼마 후 내가 눈을 뜬 곳은 교단 위가 아니라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낯선 방이었다. 참다 참다 못한 아버지께서 불같이 솟아오르는 화를 못 참으시고, 지지리도 못생긴 자식을 주판으로 후려갈겨 버리신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혼미하고 후들후들 떨리던 판이라, 아버지에게 맞고는 나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 소동을 전해 들은 어머니가 빨래를 하시다 말고 방망이를 드신 채 학교와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시면서 “깡패 교장이 자식 죽인다”고 고함을 치셨으니, 그 웃지 못할 촌극은 두고두고 학교의 얘깃거리로써 남게 되었다. 그날 밤, 퇴원을 하기 직전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나서 슬쩍 바라보니 아버지가 분명하셨다. 나는 못 본 척 눈을 감고 자는 듯 누워 있었다.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신 아버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냥 나를 내려다보신 채 상념에 잠기신 모양이었다. 갑자기 뜨거운 액체방울이 내 오른뺨 위로 떨어졌다. ‘흥,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우는가베.’ 목메인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웅아, 이제 산수 공부 안 해도 좋다. 아프지만 말아라, 잉.” ..  (23∼29쪽)


 저는 연극을 잘 모릅니다. 연극을 본 일도 몇 번 안 됩니다. 이제까지 통틀어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되지 싶습니다. 연극을 딱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딱히 싫어하지 않으나 따로 좋아하지 않으며, 여행을 딱히 싫어하지 않으나 따로 좋아하지 않는 가운데, 춤을 딱히 싫어하지 않으나 따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연극을 제대로 만날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연극을 잘 모르며, 그리 못 즐기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인천에는 연극 모임이 제법 있고, 연극을 내거는 작은극장도 있었습니다만, 연극을 슬슬 볼 만한 나이에는 학교에서 시험공부에 붙잡혀 있어야 했습니다. 시험공부에 붙잡혀야 하는 학교에서 풀려난 다음에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고향을 떠난 뒤에는 책읽기로 삶을 익히고 세상을 배우느라 다른 곳에 눈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 하나에만 푹 빠진 채, 책 아닌 이야기는 ‘나와 다른 곳에서 나와 달리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로만 여겼습니다. 다만, 나와 다르고 나와 동떨어져 있으나, 저마다 제자리에서 즐겁고 힘차고 바르게 살아가면 넉넉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책밭에서 힘내고 땀흘리면 되고,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대로 그분들 텃밭에서 힘내고 땀흘리면 될 테니까요.


.. 나는 눈이 사팔뜨기였던 것이다. 나는 산수 시간만 되면 안절부절했다. 구구셈을 외우기 시작하면 더더구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1단에서 2단으로 가고 2단에서 3단 4단으로, 4단이 시작되어 한 자리씩 오르면 피가 말랐다. 선생님의 주의에도 아랑곳없이 4×8이 32라고 신명나게 제창을 했다 ..  (39쪽)


 모든 학문과 생각밭과 일놀이는 ‘말’을 바탕으로 합니다. 연극이나 영화나 여행이나 춤, 또 사진이나 그림이나 만화는 ‘책’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말 없이 아무런 세상이 없고, 책 없이 아무런 문화나 예술이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런 느낌을 일찍부터 받았기에 저 스스로 말에 온마음을 바치고 책에 온몸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세상과 문화예술을 이루는 바탕인 말이요 책이지만, 바탕만으로는 썩 재미있기 어렵습니다. 주춧돌만 서서는 집을 이룰 수 없고, 기둥만 있다 하여 집은 아니니까요. 지붕도 얹고 기와도 얹으며, 온돌을 깔고 마루를 대며 창문을 달고 대문을 붙여야 집입니다. 벽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못을 박아 온갖 살림살이를 걸어 놓거나 무청이나 배추잎을 말릴 수 있습니다. 집 앞에 조그맣게 꽃밭을 일구거나 남새밭을 가꿀 수 있어요. 밑바탕이 없이는 어느 하나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밑바탕만 소담스레 여길 까닭이란 없습니다. 밑바탕만으로는 우리 삶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말을 생각하지 않는 학문이란 뿌리가 없이 헛도는 학문이지만, 말만 생각하는 학문이 되면 따분하면서 지루합니다. 책을 생각하지 않는 연극영화란 줏대가 없이 떠도는 문화예술이지만, 책만 생각하는 연극영화가 되면 메마르고 팍팍해집니다.

 그나마,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만났고, 2004년에 나온 《추송웅, 배우의 말과 몸짓》(안치운 씀) 같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연극을 헤아립니다. 책 몇 가지를 읽는다 하여 연극을 안다 할 수 없고, 또 스스로 보지 못한 추송웅 연극 이야기를 추송웅 님 책을 읽는다 하여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연극도 모르고 연극인 또한 모른다 하여도, 한 사람이 걷는 길은 알아보게 됩니다. 연극에 온몸을 바친 한 사람 길을 느껴 보게 되며, 연극에서 온삶을 불사른 한 사람 매무새를 만나게 됩니다.


.. 겨우겨우 나를 잊은 채 남의 인생 대역 노릇 하다 보면 하루 해가 간다. 저녁때가 되어 백반 정식이라도 먹고 싶은데, 혼자 가면 차리기 구찮다고 백반 정식은 주지도 않는다. 먹고 싶지도 않은 곰탕이나 육계장을 주인이 주는 대로 결국 먹게 되는데, 그것도 오래 먹으면 자리가 좁아 손님 못 받는다고 또 혼이 난다. 습관처럼 대포 몇 잔을 들이키고 귀가길에 들어서면 그때사 피로와 함께 소변이 마렵다. 그러나 공중 변소는 없고 빌딩 변소들은 잠겨 있어 230원 차를 먹고 다방에 안 들리면 소변 볼 수도 없다. 230원이 아까워서 골목 빌딩 벽에다 숨어서 소변을 본다. “여보, 점잖은 분이 어디다 소변을 봐요.” 뒤를 급히 돌아보니 방범대원이다. “죄송합니다. 개로 봐 주십시오. 이렇게 한 발 들고 쌀 테니 말이요…….” 후유―. 살기도 힘들다. 하루가 혼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혼나는 것으로 끝나는구나 ..  (86∼87쪽)


 가난한 주제에 책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돈없는 주제에 책으로 연극을 만나고 영화를 만나고 여행을 만나며 춤을 만난다고 할까요. 제가 태어나기 앞서 사진을 찍어 온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지 못하던 지난날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바로 그 지난날을 살아온 분들하고도 ‘예전 이곳이 어떠했음’을 이야기로 나누며 머리속으로 가만히 떠올려 보곤 합니다.

 추송웅 님이 연극배우로 한창 꽃을 피우던 때에 제가 함께 살고 있었다면 저 또한 추송웅 님 연극을 보면서 웃고 울고 이야기꽃을 피웠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추송웅 님이 연극배우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던 줄을 몰랐을 뿐더러 연극밭에 눈길을 둔 적조차 없었기에, 외려 차분하게 ‘한 사람 추송웅’을 책으로 사귀면서 돌아봅니다. 연극하는 추송웅 님은 이렇게 이 길을 갔다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아이를 키우고 동네도서관을 하고 책을 만들고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서 살아가는 최종규라는 한 사람은 어떤 길을 어찌어찌 가는지 헤아립니다.

 사팔뜨기로 태어나 온통 주눅든 채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을 보냈고, 열여덟 나이에 드디어 ‘사팔뜨기 고치는 수술’을 받으면서 “이제부터 제발 학교 잘 다니고, 부모님 속 안 썩히고 좋은 일은 다 할 테니, 제발 4×8이 32 소리만 안 듣게 해 주십시오.(41쪽)” 하고 비손을 올리던 추송웅 님 삶자락을 곱씹습니다. 저한테는 어떤 아픔이 있었을까 되씹고, 이 아픔이 제 삶을 어떻게 가꾸어 주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죽고 없는 한 사람이 걸은 길을 엿보면서, 살아 있는 한 사람이 걸을 길은 어떻게 다스릴까를 생각합니다.
 





 (2) 연극쟁이를 보며 사진쟁이를 생각


.. 연기 예술은 체험 예술이다. 신은 훌륭히 될 사람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준다고 했다. 사팔뜨기 이것도 나는 신이 준 시련으로 생각한다 … 갑자기 빠른 시간 안에 대사를 입으로만 외운다는 것은 연기자로서 가장 위험한 짓임을 그날의 그 망신스러운 실패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영원히 몰랐으리라 … 대사를 무조건 빨리 외우려고 덤빈 이유부터 따져 보기로 했다. 한 마디로, 빨리 남보다 먼저 이름을 날리고 스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43, 119쪽)


 엊그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출판사 일꾼을 세 분 만나 밥과 술을 나누었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진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저절로 ‘제가 여태까지 사진기를 열 차례 도둑맞은 일’이 흘러나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깜냥으로 잃고 또 잃고 거듭 잃었으니 사진밭에 진저리를 치거나 손을 떼거나 등을 돌릴 법도 하지만, 되레 사진밭에 더 몸을 붙이고 가까이 파고들며 깊이 껴안았습니다. 좀더 나은 렌즈를 장만하고 싶어 적금을 들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었고, 이제는 그렇게 돈을 모을 길조차 까마득한데, 열 차례 도둑맞았던 일은 ‘싸구려 사진기를 쓰면서도 사진을 즐겁게 찍는 매무새’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따지고 보면 그냥 ‘사진기’이지, ‘싸구려와 비싸구려’가 따로 없었다 할 테고, ‘더 나은 렌즈와 덜 나은 렌즈’ 또한 따로 없었다 하겠습니다. 가장 비싸고 가장 대단한 렌즈를 갖추어야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아요.


.. 고집스런 외길 인생, 20년 동안 오직 연기만을 위해서 혼신을 불태워 온 회한과 눈물의 나는 누구인가 … 그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있어서 연극은 종교 의식과도 같았다. 깨끗한 마음가짐만이 좋은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99, 115∼116쪽)


 생각해 보면, 열 차례까지 도둑맞지 않고서야 제 사진눈을 틔울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열 차례라는 도둑맞음은 하루하루 사진눈을 뜨도록 해 주던 제 사진길이었는지 모릅니다. 제 눈에 박힌 들보를 덜어내게 하고자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은 사진마음이었는지 모릅니다. 겉읽기 사진이 아닌 속읽기 사진을 하고 싶어하는 제가 참다우 속읽기 사진을 하려 한다면 어떻게 사진길을 닦고 느끼고 부대껴야 하는가를 깨우치는 아픔이었는지 모릅니다.


..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경상도 액센트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 때였고 보니, 대뜸 “샤일록 할랍니더 …….”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샤일록 대사 중의 한 토막을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어느 교수님인가 갑자기 ‘끽’ 하고 참다 못해 웃음을 터뜨린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누군지 나의 진가를 몰라주는 사람 엿이나 먹어라’ 욕지꺼릴 퍼부어대면서 똥뱃장으로 연방 대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더니 “알았어. 그만 해도 돼 …… 샤일록도 경상도 샤일록이 나타나니 거 참 묘하군.” … 사실 사투리를 고치려고 생각하고 그 작업에 들어갔을 때, 나름대로의 일종의 우리 나라 방언학은 연구해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전라도 방언이 가장 리드미컬했고 경상도 방언이 가장 감정이 풍부한 말의 액센트임을 알았다. 사실 가장 볼품없고 극적인 맛이 없는 말이 표준말, 이른바 서울말이었다. 아무런 맛도 없이 끊어지기만 하고 리듬도 없고 뉘앙스도 없이 단조로와서 한참 듣고 있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특히 연극 대사로서 부적당하기 세계 제일인 것이다. 우리 나라 관객이 극장에서 툭하면 조는 버릇이 생긴 이유 중의 하나가 표준말이 연극 대사로서 부적당하기 때문이다 ..  (114, 129쪽)


 1998년부터 찍어 온 사진이니 이제 겨우 열두 해입니다. 열두 해 사진을 찍은 깜냥으로는 어디에 ‘저, 사진찍는 사람입니다’ 하는 이름을 내밀 수 없습니다. 제가 즐겨찾는 헌책방에서는, ‘저, 헌책방 스무 해 다녔습니다’ 하는 말은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이름입니다. ‘헌책방 다니는 사람입니다’ 같은 말을 하자면, 짧아도 서른 해는 다녀야 하고, 마흔 해쯤 다닌 뒤에야 비로소 ‘이제 좀 헌책방을 알 만큼 다녔군요’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마흔 해 아닌 쉰 해를 다녀도 헌책방을 모르는 분은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찍기를 스무 해나 서른 해를 했어도 사진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만, 대여섯 해나 서너 해 만에 사진찍기를 속속들이 알아챘다 하여도, 짧으면 열 해 동안은 ‘사진을 말하겠습니다’ 하는 주제넘은 소리를 뇌까려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모를 때에는 모르니까 입을 다물고, 알 때에는 아니까 입을 닫는다고 할까요.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이기 때문에 모르는 동안에는 고개숙여 배우기만 하고, 조금 알아채고 눈을 뜨게 될 때에는 살며시 대꾸를 하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고 할까요. 이런 흐름을 찬찬히 삭여내고서야 시나브로 사진말 한 마디 얻을 수 있고, 고맙게 얻은 사진말로 제 사진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연기자에게는 천재란 있을 수가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자기 스스로의 사고력에 의해 행동하고 말을 하려면 최소한 열다섯 살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과 꼭같이 배우는 그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 연극은 놀이가 아니다. 따라서 좋아한다거나 취미로 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심오하고 고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문 직종의 하나이다. 그저 연극이 좋아서 자기 인생에 딸린 식구들의 인생 전부를 송두리째 망쳐 놓는다는 것은 분명 죄악이다. 그렇게 해서 억지로 만들어진 연극의 경우 무언가 정신적 영양을 섭취하려는 목적으로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분명 사회악이라고까지 일컬어질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연극이 순수예술 운운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입장권을 돈으로 파는 행위는 분명히 상행위이며 따라서 관객은 연극을 일종의 상품으로 대하는 소비자들인 것이다 … 만알 어떤 연극을 관람한 어느 연극 관객이 자기가 본 연극이 선전과는 전혀 다른 사기성을 발견하고는 분연히 이를 ‘소비자 보호 센터’에 고발을 했다고 하면 우리는 과연 그를 무식하다고 욕할 수 있는 입장이겠는가? ..  (169, 204쪽)


 모를 때에는 모르는 대로 부딪힙니다. 알 때에는 아는 대로 부딪힙니다. 모르니, 이것저것 가리지 않으면서 맞아들입니다. 아니, 이것저것 가리고 솎고 거르면서 꼼꼼히 살핍니다. 좋다 나쁘다를 가리는 눈이 아니라,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하고 알아보는 눈썰미를 기릅니다. 이것은 이리하여 반갑거나 꺼리게 되며, 저것은 저리하여 고맙거나 아쉬워 손사래를 치는 까닭을 익힙니다.

 사진을 보며 사진을 배우고, 연극을 보면서 사진을 배웁니다. 글책을 읽으며 사진책을 생각하고, 그림책과 만화책을 보면서 사진책을 떠올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헤아리지만, 사람마다 다른 느낌과 빛깔과 매무새와 생각과 말마디를 떠올리면서, 세상 숱한 사진쟁이 길이란 얼마나 다르고 너르고 고른가를 함께 헤아립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기를 사진으로 부지런히 담아 놓으면서, 아기가 어찌어찌 자라며 튼튼한 두 다리와 팔과 제 몸뚱이로 홀로서려 하는지를 지켜봅니다. 한 사람 아름다운 목숨으로 태어난 아기는 하루아침에 말을 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똥오줌 가리지 않으며 하루아침에 걷지 않습니다. 흐름이 있고 때가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빨이 튼튼하게 돋아나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키가 훌쩍 크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자라고 단단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극쟁이 삶이든 사진쟁이 삶이든 하루아침에 ‘짜잔!’ 하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해 두 해 조용히 가다듬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아직 어리숙할 때에는 ‘아기가 어머니 손으로 떠먹여 주는 밥술’을 낼름낼름 받아먹듯, 입닥치고 사진스승 말씀만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조금 자라 제 손으로 숟가락질 할 수 있을 때에는, 넌지시 몇 마디 꺼내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듯 배워야 합니다. 이제 혼자 밥을 하고 밥상을 차릴 수 있다면, 홀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사진을 배워야 합니다. 바야흐로 어버이 집안에서 제금나와 홀로서기를 할 무렵이라 한다면, 이제까지는 스승으로 삼았던 사진밭 어르신을 ‘사진벗’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사진그릇을 선보여야 합니다.


.. 연습하러 나오는 내 뒷통수에다 “오늘 저녁 밥 지어 먹을 쌀 없어요.” 하고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릴 듣고 어찌 창조라고 일컫는 연극 연습을 할 수 있겠는가? 극단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저 사람에게 무슨 핑계를 대고 돈을 빌릴까라는 계산을 하면서 무슨 놈의 대사가 마음에 스며들겠는가? ..  (207쪽)


 연극을 하는 사람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 삶에서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글을 쓰는 사람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 삶에서 ‘글쟁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온누리 온갖 곳 문화쟁이와 예술쟁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서 제 갈 길을 배웁니다. 제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꾼이든 공장 노동자이든 교사이든 어떤 사람이든, 스스로 참다운 문화쟁이요 예술쟁이라 생각한다면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제 ‘사람길’을 익히고 배워 제 깜냥껏 슬기롭고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3) ‘빠알간 피이터’가 남긴 발자국


.. 어쩌다 넥타이를 한 번 매면 자신이 꼭 위선자나 우습게만 느껴진단다. 정장은 자신을 속박하는 것 같아서 영 싫어한다. 그래도 정장을 해 봐야지 더 미남으로 보일까? ..  (103쪽)


 1981년에 나온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시 읽히기 어려운 책일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섣불리 엄두를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굳이 이런 책을 되읽어야 할 까닭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 아니더라도 훌륭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책은 날마다 수없이 새로 나오고 거듭 나옵니다. 짧은 삶을 마감하는 바람에 더 깊이 빛을 뽐내지 못한 추송웅 님이었다고 할 수 있으니,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아쉬움과 모자람이 듬뿍 묻어나는 책이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 전연 다른 일로 바쁘셨던 분이 그해 365일을 온통 연극하고 같이 딩굴며 살아온 사람마냥 속속들이 극계의 사정에 통달한 척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진정한 비평가는 몇 분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평론 부재의 이 땅에 어찌 좋은 연극이 잉태될 수 있겠는가? … 무작정하게 써갈겨대는 그들의 무책임한 글로 인하여 오늘날의 우리 연극은 더욱더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 바쁜 세상에 공부할 일도 많고 하는데, 연극평 하나 쓰려고 시간과 교통비 많이 들이고 하란 말이냐고 이의를 제기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또 내가 그 공연극의 연출자냐고 항의하시겠지만, 그러시는 동안에 공연에서 오는 모든 공과는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이 정도의 분석과 성의 그리고 열의가 있어야만 내일의 연극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논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212∼213, 222쪽)


 그렇지만,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아쉬움도 있고 모자람도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책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어느 한 구석 빈틈이 없이 훌륭하다면,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라는 책을 굳이 헌책방마실 여러 해를 이어가면서 찾아볼 값어치는 따로 없지 않느냐 하고 느낍니다. 저는 이 책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섯 해쯤 걸려 겨우 하나 찾아내어 읽었습니다만, 그래서 제가 끄적이는 느낌글을 읽으신 분 가운데 ‘나도 찾아봐야지!’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에 불을 켜 보아도 여섯 해는커녕 열여섯 해가 되도록 구경조차 못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찾기 어려운 헌책 하나이기 때문에 한결 아름답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좋습니다.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찾아보려고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헌책방을 수없이 들락거리는 가운데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하고는 또다른 깊이와 너비’를 선사하는 ‘수많은 다른 헌책’을 가득가득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책을 만나며 이렇게 기쁘고, 저런 책을 만나며 저렇게 기뻐하는 가운데, 내 생각과 마음을 한껏 드높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나 스스로 내 마음밭을 살찌우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만난다면 책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겠지요. 그지없이 눈물샘이 터질 테지요.


.. 나는 너무 늦기 전에 서둘러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진짜 연극을 해야겠다. 이제부터는 슬그머니 숨어들어가듯 무대에 서지 말고 벌거벗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무대에 서야 한다. 간교한 기교로 아름답게 보여지려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지 말고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추구하려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어야 하겠다 ..  (266쪽)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연극쟁이 하나가 비로소 ‘연극하는 사람 입으로 연극이 무엇이다!’ 하고 외칠 수 있던 때에 눈물과 웃음을 듬뿍 담아서 내놓은 피땀입니다. 추송웅 님 스스로 〈빠알간 피이터〉를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던 책이지만, 스스로 ‘연극이란 이러하다!’고 외치고 싶었고, 외치기 앞서 연극으로 불살라 보여주고 싶었기에 나올 수 있던 책입니다. 이제까지 어느 연극쟁이도 밟아 보지 못한 땅을 밟았던 한 사람이 온힘을 쏟아내어 엮어낸 책입니다.

 이 하나로 ‘한국연극’을 마무리하려고 낸 책은 아닙니다. ‘연극문화’를 통틀어 모두어 내는 책 또한 아닙니다. 이 하나가 작은 밑바탕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낸 책입니다. 이 하나를 밑거름 삼아 수많은 연극나무가 자라나 주기를 꿈꾸며 낸 책입니다. 그렇기에 좀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구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찬찬히 다듬지 못한 성김과 어수룩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만들어 가는 책이었고, 씨앗으로 뿌린 책이니 그렇습니다. 연극밥 먹는 사람은 연극밭에서, 사진밥 먹는 사진밭에서, 글밥 먹는 사람은 글밭에서, 노래밥 먹는 사람은 노래밭에서, 꾸준히 한길을 즐겁게 걸어가 주기를 꿈꾸는 마음을 담은 책입니다. (4342.6.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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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i 사진의 발견 - 'i' 김윤수와 함께 17人 17色 사진의 정원을 거닐다
김윤수 지음 / 바람구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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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말하지 않는 사진 이야기
 [잠깐 읽기 38] 김윤수, 《17+i, 사진의 발견》


- 책이름 : 17+i, 사진의 발견
- 글ㆍ사진 : 김윤수
- 펴낸곳 : 바람구두 (2007.1.2.)
- 책값 : 16000원


 (1) 삶이 없는 사진이란


 제가 2007년 4월부터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이 깃든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으로 ‘사진 찍으러’ 찾아오는 바깥 손님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게 될 산업도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인천시 개발계획에 맞서는 동네사람 싸움이 여러 해째 이어지는 가운데, ‘곧 사라질는지 모를 골목길’ 모습이라 하면서 사진을 찍으러 옵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은 사진을 수없이 찍습니다. 쉬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서관에 와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는 하여도, 스스로 찍는 골목길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기에 눈을 박느라 바쁘고, 맨눈으로 골목집과 골목꽃과 골목사람과 골목풀과 골목나무를 살피고 맨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말마디를 나누려는 몸짓은 거의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열어 놓은 ‘사진책 도서관’에서도 ‘촘촘히 꽂힌 사진책’을 한 권쯤이나마 끄집어 내어 펼쳐 보려는 손길은 매우 드뭅니다. 그저 사진찍기에 바쁩니다.

 보다 못해 사진만 찍어대는 사람을 ‘다른 사람 책 보기에 걸리적거리니 나가 주셔요’ 하고 내쫓았고, 도서관 문간에 쪽지를 하나 붙였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마련한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사진만 찍으려고 하는 분은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셔요’라 적어 놓은.


.. 정말이지 선생님은 모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많은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 알아요?” 선생님은 동그래진 내 눈을 바라보며 특유의 눈꼬리가 올라간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풀과 나무들과 같이 자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거든.” ..  (14쪽)


 사진은 ‘적바림’입니다. ‘새겨 놓음’입니다. 한자말로 바꾸면 ‘기록’입니다. ‘각인’입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부대끼거나 스친 사람들을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내가 발디디는 동네 모습을 적바림하고, 내가 어울리는 동네 삶터를 고스란히 새겨 놓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을 찍든 저런 모습을 찍든,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찍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 삶 찍기”가 사진찍기요, “삶을 적어 놓기”가 사진찍기입니다.


.. 어떤 공간은 나의 과거 속 기억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자꾸만 탐험하고 싶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며, 어떤 공간은 불편하고 답답한 기운이 숨을 죄어 오기도 한다. 이것은 허름하거나 고급스럽다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허름해도 진짜가 많고, 화려할수록 두려운 가짜가 많은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  (51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 삶’을 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내 모습 찍기’가 아닌 ‘남 모습 찍기’일 테니까요. 그런데, 남 모습을 ‘내 눈길에 따라’ 찍습니다. ‘내 눈높이에 따라’ 찍습니다. ‘내 마음그릇에 따라’ 찍고, ‘내 생각줄기에 따라’ 찍습니다. ‘내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요, ‘내 깜냥껏’ 찍는 사진이며, ‘내 솜씨만큼’ 찍는 사진입니다.

 언뜻 보기로는 ‘나 아닌 삶’을 찍는 듯한 사진이지만, 알고 보면 ‘다름아닌 내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들여다본 대로 찍는다’는 소리는, ‘나한테 보여지는 대로 찍는다’는 소리이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만큼 나한테는 이렇게 보이니 이대로 찍는다’입니다. 이리하여 내 사진에 찍힌 세상사람 모습은 바로 ‘나 사는 모습’이며 ‘내 삶’입니다.

 속깊이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바로 속깊이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만 예쁘장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겉으로만 예쁘장해 보이도록 꾸민다는 뜻입니다. 머나먼 딴 동네에서 그럴듯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신 곁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보듬는 가슴이 없이 겉치레 해바라기에 매여 있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돈 되는 사진만 찍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에 돈벌기만 들어차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면 스타일은 무엇일가? 내가 본 대로, 느낀 대로, 경험한 대로 뒤죽박죽 정의를 내리자면 스타일은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오감을 통해 자극되어진 모든 행위의 집합체이다. 무엇을 먹고, 입고, 듣고, 읽고, 느끼고, 웃고, 분노하고, 울고, 찡그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걷고, 달렸는가가 고스란히 내 몸에 축적되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스타일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고 재생되는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날 세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의 마법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  (67쪽)


 그래서 저는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과 삶과 사람은 다르다고들 하지만, 제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아보고 부대끼기로는, ‘글과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글과 다른 삶’ 또한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어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쓴 글하고 삶은 똑같지만, 옷입히기 잘하는 사람들 손놀림(글재주)에 빠져들면서 참모습을 못 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읽는이가 되면 글쓴이 속내를 못 읽어요. 저부터 이와 같았고, 저부터 이런 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아니 마땅히, 저 스스로 아직 슬기로운 읽는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조금씩 갈고닦으며 거듭나는 읽는이라고 느낍니다. 잘못 읽거나 어설피 읽거나 어리석게 읽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를 믿습니다. 잘 읽으면 잘 읽은 대로 믿고, 잘못 읽으면 잘못 읽은 대로 믿습니다. 잘 읽어 흐뭇한 사람하고 사귀는 삶은 흐뭇함 그대로 즐기고, 잘못 읽어 뒷통수를 맞거나 쓴맛을 보게 되면 뒷통수 맞기와 쓴맛 보기를 달게 받아들입니다.


.. 가정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도서관에는 얼마나 자주 새 책이 투입되는가? 당신은 이 도서관의 성실한 열림자인가? 책들의 호흡주기를 파악하고 있고,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뿜어내는 광채가 온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부자이다 … 2000년, 오사카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작업실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를 만나러 3층으로 올라가기까지 내 눈에 비친 지하부터 지상까지 그의 작업실은 건축사무소라기보다는 하얀색 도서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책과 대화하고 살았는지, 또 살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책장 가득 빽빽이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권위적이지 않은 대화법과 아주 쉬운 단어로 안도 타다오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쉼 없이 과묵하게 일하는 자기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건축가였다 ..  (104, 115쪽)


 올해 2009년에 접어들면서,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는다며 마실 오는 사진쟁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2010년이 되고 2011년이 되면 훨씬 더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는 웬만한 골목길이 재빨리 사라지는 탓인데, 웬만한 서울 골목길이 수없이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여도, 사랑스레 살아남아 고스란히 이어가는 골목길 참모습을 옳게 읽어내는 눈썰미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 사진쟁이들은 ‘골목길은 이래야 하거든’ 하면서 ‘어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앞선 다른 이들이 찍은 골목길 사진만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때로는 잔뜩 멋과 예술감각(?)을 불어넣으며 찍습니다. 5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만 원짜리 사진기로, 20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0만 원짜리 사진기로, 두어 시간 ‘전철역 둘레 1km 안팎을 오가며’ 찍습니다.

 옆에서 이분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참으로 멋스럽게 찍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이분들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노라면, 이분들은 ‘골목길을 찍으려고 인천에 오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골목길이라 이름붙은 유행을 찍으려고 잠깐 서울 밖으로 나와 보았다’는 느낌만 짙습니다.

 골목길을 다루는 글도, 사진도, 그림도, 영상도 매한가지입니다. 헌책방을 다루는 글 사진 그림 영상 또한 매한가지였습니다. 아기를 다루어도, 연예인을 다루어도, 문화재를 다루어도, 섬마을을 다루어도 매한가지일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먼저 삶을 일구면서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스스로 당신들 삶을 알차게 가꾸는 가운데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사진기를 너무 일찍 들고 마니까요. 사진기만 뻘쭘하게 들고 있을 뿐이니까요. 어떤 사진기가 좋으냐 따질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어떻게 꾸려야 아름다운가를 돌아볼 줄은 모르니까요. 사진기 장만하려고 카드를 긁을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길을 찾고 생각하며 품과 땀과 시간을 들일 줄은 모르니까요. 
 







 (2) 삶을 말할 줄 알면 사진을 말할 수 있다


 ‘사진가 열일곱 사람’을 말하는 사진비평 《17+i, 사진의 발견》을 읽습니다. 이 책은 틀림없는 사진비평입니다. 그러나 글쓴이 김윤수 님은 ‘아무개 사진은 이렇고 저무개 사진은 저렇다’는 말을 토씨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딴소리라고 할는지, 엉뚱한 소리라고 할는지 모를 이야기만 길게 늘어붙입니다.

 그런데 이런 딴소리 늘어뜨리기가 외려 ‘아무개 사진은 아무개가 이런 흐름으로 당신 삶을 가꾸기 때문에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 어떻게 담아야 좋은 사진인가?’ 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꾸리는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하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가 고스란히 ‘삶 = 사진’이라는 흐름과 맞아떨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해 줍니다.


.. 나는 서울을 대놓고 비난할 수도, 또 아주 예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파적일 수 없는 것은 서울은 어쩌면 내 모습의 일부이고 나를 가장 편안히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기이기 때문이다 … 나는 서울의 지도를 펼쳐 놓고 서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복잡한 지도 속의 동네 이름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는 한가로운 멋을 찾을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이른 아침 까페나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한가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한가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사색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온종일 학원으로 과외로 내몬다. (나 또한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 13년 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나의 일상은 다이어리의 칸이 넘치도록 이어지는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  (165쪽)


 책을 손에 쥐고 나서 한 시간 만에 훌떡 읽어치웠습니다. 말 그대로 읽어치웠습니다. 가볍고 밝고 싱그럽게 쓴 글입니다. 꾸미지 않고 내세우지 않으며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놀라고,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사진비평이 하나쯤 나왔다는 데에서 반갑고 기쁩니다. 이 나라 사진쟁이 숫자는 열일곱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17+i, 사진의 발견》도 나옴직하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책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고 가슴 설레며 기다려야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또다른 일은 보석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 예측할 수 없는 돌출 행동과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언어의 조합이 언제나 기막히게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은 특별한 영혼을 가진 아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서울이라는 곳은 여리고 순수한 영혼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 이 무궁무진한 원석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지 못하고, 둥글게 멋없이 깎아 돌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선 ‘돌이 되어야 살기 편하지’라며 위로하곤 한다. 세상은 보석들이 많아야 정교하게 빛나는데, 서울은 점점 더 돌들만 가득해지고 있다. 그것도 애교 넘치는 자갈돌이 아닌 울퉁불퉁한 바윗둘로만 가득 차 있어 발을 다칠까 멍이 들까 늘 두렵다.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마지막 일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  (169쪽)


 다만, 글쓴이 김윤수 님이 만난 사진쟁이 열일곱 사람이 ‘이래저래 비슷한 사진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상선, 배병우, 양현모, 윤석무, 박경일, 김지양, 구본창, 이윤진, 조정환, 김현성, K.T.KIM, 오형근, 최민호, 박기호, 문형민, 박지혁, 천경우, 이렇게 열일곱 사람 가운데 K.T.KIM이라는 분 사진만 살며시 다르다는 느낌일 뿐, 다른 열여섯 사람은 어슷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틀림없이 이 열여섯 분 사진은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진 매무새와 사진 생각은 한동아리가 아닌가 싶어요.

 좀더 테두리를 넓혀 더 많은 사진쟁이를 만나 보았다면, 아주 배고프게 사진일을 붙잡는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오래오래 사진끈을 붙잡던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도시나 도시와 가까운 데에서 사는 사진쟁이 말고 도시와 먼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도 만났더라면, 서울 테두리를 넘어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로도 나가 보았다면, 하다 못해 수도권이라는 틀에서 사람들과 만나 보기라도 했다면, 또한, ‘만드는’ 사진이 아니라 ‘꾸밈없는’ 사진을 조용히 찍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면, 이 책 《17+i, 사진의 발견》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한껏 뽐내거나 빛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사진비평을 더 기다립니다.


..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몇 날 며칠을, 길게는 수 년을 애통해 하고 술을 벗 삼아 지내면서도, 자신의 기록을 잃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기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다 ..  (193쪽)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겨우, 우리 사진밭에 발맞춤하는 사진비평 걸음마를 밟았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머나먼 갈 길을 앞두고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지만,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보다는, 좀더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걸려넘어지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사진비평 발자국을 아로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말하면서 사진을 말하는 이음고리를 사랑하고, 삶을 밝히면서 사진을 밝히는 이음쇠를 믿으며, 삶을 가꾸며 사진을 가꾸는 이음마당을 아끼는 길찾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여행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자, 카페에서 우유크림이 수북한 카푸치노 한 잔 마실 여유도 없는 숨가쁜 일정을 짜곤 한다. 그리고는 피곤에 지쳐 뭘 얻었는지 모르는 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관광지 사진만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 여행은 정신 수양을 위한 것도, 이야깃거리를 만들러 가는 것도 아니다. 가장 편안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로 돌아가서 자연의 나와 만나고 오는 시간이다 ..  (203쪽)


 저는 오늘 하루도 아기 사진 스무 장 남짓, 골목길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었습니다. 조금 뒤 낮밥을 느즈막히 먹은 다음, 또는 낮밥을 거른 다음 아기를 안고 동네 마실을 나가면 쉰 장이나 일흔 장쯤 골목길 사진을 더 찍으리라 봅니다. 내일쯤 서울마실을 나가면 헌책방에도 들러 헌책방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으니 날마다 즐겁고, 날마다 즐겁게 사진을 찍으니 내 사진을 내가 보면서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핑 돕니다.

 제 사진을 마음에 들어하는 동네 이웃한테는 거저로 주고, 제 사진을 좋아해 주는 도서관 손님한테는 사진 한 장에 천 원에 팔곤 합니다(조금 큰 판은 종이값이 드니까 이천 원이나 사천 원을 받곤 합니다). 누군가는 ‘작품사진을 고작 천 원에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못해도 10만 원은 받아야지요?’ 하고 도움말씀을 해 주시는데, 저로서는 ‘작품사진이라면 더더욱 천 원만 받으며 팔고’ 싶어요. 싸구려로 넘기는 사진이라기보다, 나도 천 원에 팔고 당신도 천 원에 팔면서, 서로 홀가분하게 수많은 사진을 언제나 듬뿍듬뿍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사진삶이 즐겁습니다. (4342.6.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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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09-07-13 20:44   좋아요 0 | URL
좀더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느낌글이 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아직은 제 마음그릇으로는 이만큼밖에는 느낌글을 못 쓴다고 헤아리며, 어줍잖으나마 느낌글을 걸쳤습니다.

부끄러운 글을 읽어 주시니 저로서 더 고마울 뿐입니다. 그나저나, 한 번 사진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신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새 이야기를 보태어 가신다면, 차근차근 한결 빛나며 사랑스러운 사랑이야기를 둘레에 고이 나누며, 김윤수 님 아이한테도 기쁘게 물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