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와 글쓰기

 걸레를 손으로 빨아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훔치면, 내가 얼마만 한 방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좋을까를 알 수 있다. 연필을 손으로 깎아 조그마한 쪽종이 하나, 이를테면 껌종이라든지 부동산에서 골목마다 붙이는 전세방 알림종이를 길에서 주워 여기에 몇 줄 글월을 적바림해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글을 써서 나누어야 좋을까를 헤아릴 수 있다. 내가 땀흘려 일하여 번 돈을, 그러니까 텃밭농사를 지어 배추 몇 포기나 무 몇 뿌리를 저잣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를 얻어 길장사를 해서 번 돈을 손에 쥐고 다리품을 팔아 책방마실을 하는 가운데 책 하나를 장만해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 내 삶을 일구어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을 수 있다. (4343.10.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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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걷는 골목


 내 눈에만 어여삐 보일 수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언제나 어여쁘기 때문에 동네 골목 마실을 꾸준하게 오래오래 이어가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다른 사람은 지저분하게 바라보거나 아무것 아니라고 얕잡아 보더라도 내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골목길 삶자락은 가없이 아름다우니까 내가 느낀 이 아름다움을 글과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한다.

 내 마음에만 알차게 보일 수 있으나, 내가 읽기에는 노상 알차기 때문에 판이 끊어진 책이건 나라밖 책이건 거의 안 알려진 채 조용히 묻힌 책이건 기쁘게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쓴다. 다른 사람은 뭐 그런 책을 굳이 읽느냐고 묻는다. 잘 팔리거나 널리 사랑받는 책도 많은데 애써 뻘밭에 묻힌 책을 캐려 할 까닭이 있느냐고 말한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는 책도 좋아할 만하지만, 누구보다 내 가슴에 아로새길 수 있으면서 내 눈과 마음과 손으로 고이 껴안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싶다. (4343.10.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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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9 : 내 삶만큼 읽는 책


 어린이책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던 지난날, 제가 몸담은 일터가 아주 휼륭한 책을 몹시 훌륭한 매무새로 일군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무렵 해마다 장만하여 읽는 책이 천 권이 넘고, 따로 장만하지 않으며 읽는 책 또한 꽤 많았습니다만, 한 해 동안 읽는 책이 제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알 수 있는 책은 온누리에 쏟아져나온 책 숫자에 대면 매우 보잘것없습니다.

 2000년 6월 10일 낮, 서울 홍대 앞에 자리한 헌책방 〈온고당〉에서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平凡社,1974)라는 사진책 하나를 만납니다. 일본 사진쟁이 ‘竹田津 實’ 님이 내놓은 책으로, 이분 책은 이맘때까지 아직 나라안에 한 권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 비로소 이분이 글을 쓴 그림책 하나가 옮겨지고, 2007년부터 이분 사진책이 하나둘 옮겨집니다. 바로 ‘다케타쓰 미노루’ 님입니다. 제가 일하던 출판사 자료실에도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라는 사진책 하나 꽂혀 있었습니다. 이곳은 자연 그림책을 많이 냈는데, ‘한국에는 없는 여우’를 그리자니 어쩔 수 없이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일본 들짐승 여우를 담은 사진책을 들여다볼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한국땅에 없는 들짐승은 여우만이 아닙니다. 늑대도 없고 범도 없습니다. 곰도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러한 들짐승들 자취와 모습과 삶을 그림책으로 그려내자면 동물원에 가거나 일본사람이 찍은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새책방과 헌책방을 꾸준히 돌아다니며 나라 안팎 온갖 책을 바지런히 살피면서 하나둘 깨닫습니다. 나라안 적잖은 창작그림책에 실린 들짐승 모습은 나라밖 적잖은 사진책에 실린 모습을 들여다보며 베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제아무리 돈 많다는 출판사에서 큰돈을 들여 그림쟁이 한 분한테 힘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들짐승 모습 하나’를 잡아채어 그리도록 아프리카로 보내 주어 몇 달쯤 묵도록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범이나 사자가 아니더라도 다람쥐나 토끼를 그릴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 가두어 놓고 지켜보는 짐승이 아니라, 들판과 산자락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들풀과 산열매를 먹고 자라는 짐승을 오래도록 가까이하는 가운데 ‘한국 자연 터전 들짐승 모습’을 살가이 담아내도록 이끄는 출판사가 한 군데나마 있을까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돈을 대지 못한다면 그림쟁이 스스로 돈과 품과 긴 나날을 땀흘리고 바칠 분이 몇이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나 스스로 살아가는 만큼 쓰고 그리며 찍습니다. 내 삶만큼 글을 씁니다. 내 삶을 넘어서는 만큼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내 삶 테두리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책 만드는 일꾼 매무새도 매한가지입니다. 책 하나 마주하여 읽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만큼 쓰고 내 삶만큼 엮으며 내 삶만큼 읽습니다. 한결 아름다운 넋을 돌보며 사랑하고자 할 때에는 나날이 조금씩 거듭나는 빛깔과 내음과 소리가 글월 한 자락에 담깁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아름다이 거듭나는 만큼 알맹이와 속살을 한껏 깊고 넓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글 쓰기’나 ‘좋은 책 읽기’를 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삶 일구기’에 마음과 몸을 쏟습니다. (4343.10.7.나무.ㅎㄲㅅㄱ)
 

(일본 사진책을 베껴서 내놓은 그림책 이야기는 좀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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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고양이를 사랑하며 만화를 그리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3] 이와오카 히사에, 《고양이 동네》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가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 또한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가. 그저 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는가.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고 있으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을까.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며 만화로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권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우산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피며 그림이나 만화로 담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고양이 동네》를 펼칩니다. 1994년부터 즐겨찾는 만화가게 한켠에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잔뜩 쌓여 있는데, 이 가운데 이 녀석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왜 이다지도 고양이 만화가 쏟아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달지라도 이렇게 지나치게 고양이 만화에만 쏠리는 모습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고양이 만화이기에 으레 몇 권쯤 더 이어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 《고양이 동네》는 꼭 1권으로 끝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낱권책 하나 부피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2권이 없으니 아쉽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2권이 없기에 오래도록 더 뭉클함이 남을 수 있구나.’ 하고 함께 느낍니다. 애써 새 줄거리를 짜 넣어 2권까지 그리지 않더라도 1권 하나로 얼마든지 그린이가 하고픈 얘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새로운 줄거리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늘어질 수 있어요.


-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 (60쪽)


 두 달쯤 앞서 《고양이 동네》를 읽었습니다. 다 읽은 다음 책상맡에 그대로 두었더니 엊그제 옆지기가 읽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만화책이 보여 다시 꺼내어 주루룩 넘깁니다. 주루룩 넘기다가 내키는 자리에 멈추어 이 자리부터 천천히 새롭게 읽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좋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한 번 다 읽은 책은 두 번째 다시 읽을 때부터 마음껏 마음 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 (23쪽)


 앞에서 차근차근 읽던 맨 처음에는 이 만화 《고양이 동네》가 그예 고양이 만화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부터 앞으로 되넘기며 읽다 보니, 책이름만 “고양이 동네”일 뿐, 어쩌면 그린이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엄마 동네”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 삶과 모습과 말이 나오지만, 가장 자주 가장 속깊이 나오는 말은 바로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한테서 나옵니다.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식구와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만화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동네를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에 머물며 동네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 또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자들은 집에 머물며 애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함께 동네를 들여다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동네를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여자한테 주어집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장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동네를 함께 바라봅니다.

 
-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작품을 보면 늘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내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사랑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믿음일 수 있을 테지요.

 만화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잘 담아 주어 좋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좋습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 주어 좋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7.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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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1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만화를 만나고 싶어
 [만화책 즐겨읽기 2]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1∼5)》


 일본 만화는 일본사람 삶과 문화를 담습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한국 만화는 한국사람 삶과 문화를 담을 테지요. 그러면 일본 만화가 담는 일본사람 삶과 문화란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 만화가 담는 한국사람 삶과 문화는 또 어떠한 모습인가요.

 한국 만화를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잦습니다. 만화를 그린 분이 답답해서라기보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살아가야 하는 터전이 더없이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제도권 울타리에 갇힌 학교요,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할 때에도 제도권 테두리에 막힌 사회입니다. 하나도 홀가분하지 않은 한국 배움터이고 삶터입니다. 조금도 너그럽지 않은 한국 배움마당이요 삶마당입니다. 이런 가운데 나오는 한국 만화란 홀가분함이나 슬기로움이나 생각날개하고는 동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삶터부터 홀가분하지 못하도록 얽어매고 슬기로움을 뽐내지 못하도록 짓누르며 생각날개를 활짝 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스스럼없이 즐거울 삶일 때라야 스스럼없이 내 하루를 즐기는 만화를 그립니다. 거리낌없이 나누는 삶일 때라야 거리낌없이 사랑을 나누는 만화를 그립니다. 좋은 만화 하나라 한다면 그린이부터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일굴 때에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만화 하나라 한다면 만화쟁이부터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넋으로 아낄 때에 샘솟습니다.

 한국땅에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숫자를 헤아린다면, 돈벌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살피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내 삶을 곱게 일구어 곱게 그리는 고운 만화 하나 내놓을 수 있습니다. 만화잡지에서 안 실어 주든, 만화책 전문 출판사에서 안 내어 주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화쟁이 스스로 즐겁게 그리며 두고두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만화를 실어 주는 자리가 없다면 밥벌이가 안 될 테고, 만화를 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야기 한 자락을 오래오래 잇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고, 좋은 읽는이 한 사람 있어야 만화를 그리는 기운을 얻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모두를 바랄 수 없어요. 다섯 해 배를 곯든 열 해 쪼들리며 살아가든 나부터 좋아하며 즐기는 만화를 사랑하여 그리는 흐름을 지키면 됩니다. 가난하다고 그림을 더 잘 그리지는 않고, 살림이 가멸다고 만화를 한결 부드러이 그리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그림 한 장 만화 한 칸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 그림이나 만화를 들여다보는 사람하고 마음을 맞춥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다스리는 일을 먼저 할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맑으며 밝게 다독이는 일을 노상 이어야 할 노릇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똑같습니다. 애써 쓴 글을 실어 줄 자리가 있다면 참 좋겠지요. 힘써 찍은 사진을 보여줄 자리가 있다면 아주 기쁘겠지요. 그런데 제아무리 잘 쓴 훌륭한 글이라 할지라도 선뜻 실어 주거나 책으로 엮어 주는 일은 드뭅니다. 그지없이 잘 찍은 거룩한 사진이라 하더라도 냉큼 사진잔치를 마련해 주거나 책으로 묶어 주는 일은 거의 없어요.

 굳이 배곯이 길을 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러 밥굶는 길을 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배를 곯아도 좋고, 다른 밥벌이 일을 해도 좋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든 맨 먼저 할 일이란 글을 하든 사진을 하든 만화를 하든, ‘쟁이 한 사람’이 되어 살아갈 마음바탕을 닦고 삶바탕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요. 이 다음에 ‘작품’입니다.

 일본 만화 《서점 숲의 아카리》를 읽습니다. 4권째 나오고서야 비로소 이 만화가 우리 말로 옮겨지는 줄 깨닫습니다. 이제 한창 자라나는 아이와 복닥이는 삶을 꾸리자니 만화가게 마실이 퍽 버겁니다. 여느 책방 마실 또한 꽤 힘듭니다. 오래도록 제때 찾아가지 못합니다. 제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만화책이 4권까지 나올 무렵에야 겨우 한 번 찾아가는군요.

 책을 펼칩니다. 제가 썩 안 좋아하는 그림결입니다. 그러나 내가 안 좋아하든 좋아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그림결이 다르고, 저마다 좋아하는 그림결이 다르니까요. 군데군데 좀 어설픈 그림결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책을 말하는’ 만화라는 대목이 반갑고, ‘책방을 다루는’ 만화라는 대목이 더욱 고맙습니다. “아카리 씨도 본점으로 온 지 반년이 됐군요. 슬슬 주문 같은 것도 해 보는 게 어때요? 주의할 점은, 본인이 좋아하는 책과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은 다르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책이 팔리면 물론 기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경우는 드물어요(1권 123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쩌면, 《서점 숲의 아카리》에서 다루는 ‘책’들은 만화쟁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일 수 있지만, 썩 안 좋아하는 책일 수 있으며, 잘 모르는 책일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서점 숲의 아카리》 같은 만화를 보면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 책마을 모습을 톺아볼 수 있다고 느끼지만, 다른 분들은 그냥저냥 재미로 읽는다거나 심심풀이로 보는 만화일 수 있어요.

 2권으로 접어듭니다. 2권에서는 낱권 하나 통째로 ‘작은 책방’ 이야기를 다룹니다. 만화책 주인공은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 일꾼이라 여길 만한데, 이 ‘큰 책방’ 일꾼이 동네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동네사람하고 어깨동무해 오던 ‘작은 책방’을 사귀면서 책이라는 읽을거리란 어떠한가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1947년에 상가로 출발했으니 올해로 꼭 60년이 되나? 이 서점은 상가의 일부입니다. 대형서점은 전국의 고객을 대상으로 코너를 꾸미지요. 하지만 우리는, 반경 500m 안에서 걸어서 찾아와 주는 고객을 소중히 여기며 서점을 꾸려 왔어요(2권 18쪽).” 같은 이야기를 작은 책방 할배한테서 들으며 ‘책방에서 일하는 매무새’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옷깃을 여민다고 할까요.

 책을 살짝 덮고 우리네 오늘 모습을 헤아립니다. 우리네 오늘 모습을 헤아려 보면, 큰 책방 일꾼이나 사장님은 작은 책방 일꾼이나 사장님을 살피지 않습니다. 작은 책방이 작은 동네에서 작은 크기로 오래도록 책삶을 이어오는 흐름을 살피지 않습니다. 작은 책방이 동네방네 한두 군데씩은 꼭 있던 지난날 책삶을 살피지 않습니다. 큰 책방은 큰 책방답게 더 많은 매출과 더 많은 이익을 살핍니다. 큰 책방은 온나라 곳곳에 새끼가게를 열 생각에 빠져 있지, 온나라 곳곳에 깃든 자그마한 책방들이 온나라 곳곳에서 그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노릇을 했으며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3권째에 이르니 어린이책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래, 어린이책을 다루어야 비로소 책을 다루는 이야기가 될 테지. 어린이책을 옳게 말하지 못한다면 책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못하는 셈이지. 그린이 이소야 유키 님은 책방 일꾼들 목소리를 빌어, “오야마 씨, 그림책은 다른 매장과 다르게 오래된 것일수록 잘 팔리잖아요. 소설은 하드커버가 나오고 문고판이 나오고 장정이 바뀌는 등,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지만, 그림책은 옛날 그대로예요(3권 35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이책 가운데 그림책은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는 ‘어린 애들이나 읽는’ 책쯤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그러나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덴마크이든 이탈리아이든 중국이든, 어린이책 가운데 그림책만큼은 겉그림이나 알맹이나 짜임새 어느 하나 건드리지 않습니다. 처음 내놓은 그대로 아이들 앞에 선보입니다. 겉그림이든 속그림이든 매만지지 않습니다. 속종이는 새로 꾸며 볼 수 있겠지요. 겉그림 한켠에 무슨무슨 말을 붙이거나 겉그림 뒤쪽에 무슨무슨 추천글을 더 적어 넣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림책처럼 ‘첫 모습 그대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고스란히 똑같이 만들어’ 나누는 책이란 없습니다.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는 책과 책방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마, 책이랑 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라면 지겹다거나 따분하다고 느낄 사람이 적잖이 있으리라 봅니다. 책을 좀 읽었다는 분들은 ‘뭐야, 뻔히 다 아는 얘기이잖아.’ 하며 흔하거나 너절한 책으로 여길 수 있겠지요.

 틀림없이 책과 책방을 다루는 《서점 숲의 아카리》인데, 무대와 줄거리가 책이랑 책방이지, 책 하나로 얽히고 설키는 사람 이야기가 한복판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믿음과 사랑이 이 만화에서 한가운데를 차지합니다. 책이란 무엇이고 책방이란 어떤 곳인가를 밝히는 학술책이 아니라, 책 하나를 아끼는 사람 삶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책사랑과 책방사랑을 외치는 광고지가 아니라, 책을 품에 안은 책방이 어떻게 따스하며 넉넉한가를 느낀 그대로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앞으로 몇 권까지 나올는지 궁금합니다. 짧게 끝맺는다면 참 아쉬울 텐데, 적어도 10권쯤은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린이 힘이 닿는다면 20권이나 30권쯤은 그린 다음 마무리를 지으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한국땅에서 한국 삶터를 돌아보며 한국책을 살피는 마음결로 한국사람 사랑과 믿음을 고이 담는 한국 만화 한 가지 태어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1∼5)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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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9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0-10-09 11:32   좋아요 0 | URL
다음에 만화가게에 들르면 <너에게 닿기를>을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