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Yousuf Karsh (Paperback) - Portrait in Light and Shadow
Maria Tippett / House of Anansi Pr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말하고 싶은 책은 목록에는 뜨지 않으나, 먼저 유섭 카쉬 님 이야기를 적바림한 분이 있어, 뒤에 붙여서 적어 봅니다) 



 즐거운 삶이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18] 유섭 카쉬(Yousuf Karsh), 《American legends》(Little Brown & com,1992)


 1908년에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나 1924년에 캐나다로 건너가고, 1932년부터 사진길을 걷다가 2002년에 숨을 거둔 유섭 카쉬(Yousuf Karsh)라는 사진쟁이를 가리켜 ‘사람사진을 훌륭히 찍은 분’으로 일컫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섭 카쉬라는 분은 온누리에 손꼽히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다’기보다 ‘빛으로 담았다’고도 할 테며,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만, 더욱이 사진이라는 문화나 예술을 한껏 북돋우면서 ‘사진을 얕보’거나 ‘사진을 아무것 아닌 손재주’쯤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생각을 바꾸었다 할 텐데,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는 일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런 이름 저런 꾸밈말은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유섭 카쉬 님 사진을 바라보면서 가슴속으로 아무것을 느끼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덧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우러르는 말을 따를 노릇이 아니라, 유섭 카쉬 님이 훌륭히 사진을 찍을 뿐 아니라, 사진이 참말로 빛으로 그리는 문화요 예술이라고 느낀다면 내 삶에서 내가 사진기를 쥘 때에 나부터 늘 스스로 ‘빛으로 나누는 삶’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제대로 헤아리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제대로 살아갑니다. 제대로 헤아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입으로는 북돋우거나 섬기는 말을 읊을 수 있으나, 막상 나 스스로는 달라지거나 거듭나거나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많고, 유섭 카쉬 님이 내놓은 사진책 가운데 하나인 《American legends》(Little Brown & com,1992)에 담긴 사람들처럼 ‘이름나거나 손꼽히거나 훌륭하다 하는 사람을 담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유섭 카쉬 님이 찍은 사진이라든지 유섭 카쉬 님이 찍은 ‘이름나거나 훌륭하다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은 여느 사진쟁이나 퍽 이름난 다른 사진쟁이 사진하고 무척 다릅니다.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사진으로 담으려고 손가락을 움직여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손길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요? 사진으로 적바림해서 둘레 사람들한테 보여주거나 나누려는 마음이 다르다고 해야 할는지요?

 생각해 보면, 사진쟁이 가운데 남하고 똑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진기를 쥐어 같은 빛을 받으며 같은 모습을 찍어도 빈틈 하나 없이 똑같다 할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세발이를 세워 넣고 단추만 다른 사람이 누르면 똑같은 사진이 나오려나요?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를 놓고 전기불을 밝힌 곳에서 사진기 단추만 누르도록 하면 유섭 카쉬 님이 찍든 고든 파크스 님이 찍든 한결같다 싶은 사진이 나올까요? 어쩌면, 이렇게 억지로 만들어 똑같은 사진을 뽑을 수 있으니까 사진을 얕보거나 깎아내릴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계만 잘 다루면 똑같이 찍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포토샵을 잘 건드리면 사진기 없어도 사진을 얻는다고도 하니까, 사진은 문화도 예술도 아니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기계만 잘 다루는 사람은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포토샵만 잘 건드리는 사람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은 기계쟁이입니다. 포토샵을 잘 건드리는 사람은 포토샵쟁이예요.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사진쟁이란 사진을 하는 사람입니다.

 유섭 카쉬 님이 ‘사람을 사진으로 담던 여느 사진쟁이’하고 다른 대목이라면, 당신이 찍은 사진을 바라보면서 ‘그저 사진이기에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으로서 사진쟁이 길을 걷는다’고 당신 목소리를 담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당신 사진책 《American legends》를 한 번 볼 때, 두 번 세 번 볼 때에, 열 번째 볼 때에, 또 자꾸자꾸 볼 때에 곰곰이 웃으면서 생각합니다. 참말 당신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은 보드랍습니다. 부드럽지 않고 보드랍습니다. 웃어도 보드랍고 웃지 않아도 보드랍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이나 당신 사진기를 바라보아도 보드라우며, 당신이나 당신 사진기를 바라보지 않아도 보드라와요.

 어떤 사진은 틀이 좀 기울어집니다. 어느 사진은 팔 한 귀퉁이가 잘린다든지 신발이 잘립니다. 어느 사진은 비례가 살짝 어긋나거나 꽤 어긋납니다. 그러나, 이런 사진이든 저런 사진이든 사진이라는 틀에 깃든 사람을 맨 먼저 느끼며, 이 사진에 담긴 사진을 바라보면 즐겁기 때문에 이 사진은 이런 틀이거나 저런 틀이거나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초점이 덜 맞는다거나 아주 가늘게 떨린 느낌이 잡히더라도 괜찮을 뿐 아니라, ‘괜찮다기보다 이러한 느낌이 깃든 모습’이기에 이이 사진으로 한결 어울리는구나 싶어요.

 마땅한 노릇이지만, 사진을 잘 찍는 틀이란 없습니다. 사람을 잘 찍는 사진 또한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데요, 사랑을 잘 하는 길이란 없습니다. 사랑을 잘 하는 사람 또한 없어요.

 잘한다고 하면 잘한다고 하는 대로 즐겁고, 잘 못한다고 하면 잘 못한다고 하는 대로 즐거우며, 영 못하는구나 싶으면 영 못하는구나 싶은 대로 즐거운 삶입니다. 그렇지만, 사람 삶에는 점수를 매기지 못하고, 사진에도 점수를 붙이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빈틈 하나 없이 꽉 짜인 대로 살아가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겠지요. 누군가는 조금 풀어지거나 느슨한 대로 살아가는 곳에서 즐거움을 누리겠지요. 어느 때에는 이렇고 다른 때에는 또 요렇게 즐기면서 웃고 울 테지요.

 한길이란 없습니다. 한길을 걷는 사람이지만 한길이란 딱히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난 어느 한 사람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더 훌륭하거나 도드라지거나 멋스러이 담는 틀이란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똑같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보이도록 해야 이 사람을 담는 사진이 아닙니다. 유섭 카쉬 님이 찍을 때에는 유섭 카쉬 님이 알거나 사귀면서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목소리가 깃드는 ‘사람사진’입니다. 유진 스미스 님이 찍을 때에는 유진 스미스 님이 알거나 사귀면서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담기는 ‘사람사진’입니다. 레니 리펜슈탈 님이 찍을 때에는 레니 리펜슈탈 님이 알거나 사귀면서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넋이 스미는 ‘사람사진’이에요. 한편, 누가 찍든 찍는 사람 매무새와 삶과 넋이 드러나기만 하지 않습니다. 누가 찍든 찍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사진’이지만, 누가 찍더라도 ‘사진에 담기는 사람 삶’은 이이 삶결과 삶무늬 그대로입니다. 사진으로는 늘 달리 보이겠으나, 사진에 담기는 사람은 늘 스스로 제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황순원 님이 〈소나기〉를 썼다 해서 ‘소나기’는 황순원 님 소설대로 소나기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황순원 님이 〈소나기〉를 쓴 뒤로 소나기는 ‘황순원이 바라보며 느낀 소나기’가 하나 새로 태어났으며, ‘내가 황순원 님 마음이 되면서 느끼고픈 소나기’에다가 ‘소나기는 늘 그대로 소나기였기에, 소나기가 늘 소나기 그대로이던 마음’은 어떨까를 가만히 짚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은 사람을 가두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 한 장에 가두어, ‘이 한 장으로 한 사람 모습을 송두리째 말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한 장으로 이 사람 사진은 다 보여주었어!’ 하고 외치려 한다면,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쟁이가 아니라 겁쟁이라 하거나 푼수쟁이라 할 만합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사람을 사귀면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사진으로 이야기 나누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찍으면서 ‘이 사진 한 장’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두 번 찍으면 ‘한 사람한테 깃든 두 가지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백 번 찍으면 ‘한 사람한테 어린 백 가지 이야기’가 샘솟을 테지요.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진이 보여주는 모습이란, 사진으로 나누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이제까지 사진을 하던 사람이나 사진밥을 먹던 사람이나 사진밭을 일군 사람은 사진이 무엇이라고 여겼는가요.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람들이 늘 새롭구나 하고 느끼도록 손길을 내미는 삶이 곧 사진입니다. 멋진 문화나 놀라운 예술이 아닌 즐거운 삶이 사진입니다.

 유섭 카쉬 님은 첫손가락 꼽을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유섭 카쉬 님을 ‘사람사진 아주 훌륭히 찍는 첫손’으로 꼽는 사람이란 사진을 볼 줄 모를 뿐 아니라, 유섭 카쉬 님을 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유섭 카쉬 님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 굳은 마음’을 녹이거나 풀면서 ‘사진이란 이렇게 즐겁습니다’ 하는 길을 조용히 넌지시 살며시 살가이 나누어 준 사람입니다. 사진이란 즐거운 삶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부터 즐겁고,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또한 즐거운 삶입니다. (4344.2.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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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할 : ‘일본 한자말’이라는 ‘역할’이지만, 이 일본 한자말을 거르거나 다듬거나 손질하면서 알맞게 우리말을 쓰는 어른이 퍽 적어요.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어른들은 ‘안 써야 좋은 말’이라고 이야기할 뿐 아니라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도 이런 말은 털자고 외치면서, 막상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까요. 어쩌면, 옳고 바르며 알맞게 쓸 우리말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역할(役割) :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 역할 분담을 하자
→ 일을 나누어 맡자
→ 일감을 나누자
→ 할 일을 나누자


2. 존재 : 아저씨가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붙던 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에 학교나 마을에서 ‘존재’라는 낱말을 들은 일은 거의 없다고 떠오릅니다. 어쩌면 이런 말을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초등학교에서도 이 낱말을 쓸 뿐 아니라, 어린이책이나 청소년책에도 이 낱말이 꽤 자주 나타납니다. 말사랑벗님, ‘존재’ 없이는 말을 못하는지, ‘존재’라는 한자말 때문에 정작 내가 나타내고픈 느낌이나 생각을 못 나타내는지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존재(存在) : 현실에 실제로 있음]
※ 신의 존재를 부인하다
→ 신이 있지 않다고 믿다
→ 신이 없다고 생각하다
→ 하느님은 없다고 여긴다
→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3. 시작 : “요이, 땅!”은 일본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준비, 시작!” 또한 일본 말투인 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일본사람이 한자를 일본 말소리로 담은 ‘요이’와 ‘땅(총소리를 빗대어 쓰는 말)’을 ‘준비’와 ‘시작’으로 바꾼다 해서 우리말이 되지 않아요. “이제, 간다!”라든지 “자, 가자!”처럼 말해야 올바릅니다. 생각해 보면, ‘처음’이라는 우리말이 있어도 ‘시작’이라는 일본 말투에 젖어들고 만 우리들입니다. 껍데기는 한자말이지만, 우리들이 즐겨쓰는 ‘시작’이라는 한자말은, 거의 일본사람이 일본글에 쓰던 투 그대로 따릅니다.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 수업은 9시에 시작한다
→ 수업은 9시에 한다
→ 수업은 9시부터이다
→ 수업은 9시이다
→ 수업은 9시에 처음 한다


4. 생활 : ‘살아감’을 뜻하는 낱말이 ‘생활’이라지만, ‘살아감’을 뜻하는 우리말은 ‘삶’입니다. 집살림과 나라살림과 마을살림이 있고, ‘내 삶’이 있으며, 이러한 삶은 ‘말삶’이나 ‘책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우리말 ‘살다-살아가다-살아숨쉬다’를 알맞춤하게 쓰는 말솜씨를 어릴 때부터 제대로 익히지 못합니다. ‘살아나다-살아내다’-살아남다‘를 곳에 따라 옳게 쓰도록 참다이 배우지 못합니다. 삶을 꾸리는 곳이기에 삶터요, 삶자리요, 삶마당입니다.

[생활(生活) : 사람이나 동물이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 ]
※ 생활이 곤란하다
→ 살기가 힘겹다
→ 살아가기 벅차다
→ 살림이 힘들다
→ 살림살이가 버겁다
→ 삶이 고단하다
→ 삶이 힘에 부치다


5. 이별 : 만나니까 헤어집니다. ‘남만’과 ‘헤어짐’은 서로 맞선 낱말입니다. ‘이별’한다고 말해 버릇하면 ‘상봉’이나 ‘조우’나 ‘접촉’ 같은 또다른 한자말이 자꾸 들쑥날쑥 튀어나옵니다. 한자말을 즐겨쓰니 또다른 한자말을 즐겨쓰고, 우리말을 사랑하면 또다른 우리말을 사랑합니다.

[이별(離別) : 서로 갈리어 떨어짐]
※ 친구와 이별했다
→ 친구와 헤어졌다
→ 동무와 안 보기로 했다
→ 벗을 떠나 보냈다


6. 표현 : 우리는 우리 생각을 ‘나타냅’니다. 내 뜻을 ‘드러내’고,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내 사랑을 가만히 담아 ‘말하’기도 합니다. 내 느낌을 말할 때에는 이야기로 ‘들려주’기도 합니다. 언뜻선뜻 ‘비치’기도 하는 넋이요, 살며시 ‘내보이’는 얼이곤 합니다.

[표현(表現) :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냄]
※ 감사의 표현으로
→ 고맙다는 뜻으로
→ 고마운 마음으로
→ 고마운 나머지
→ 고맙기에
→ 고맙다는 뜻을 담아


7. 우려 : 누구나 국어사전을 곁에 놓고 틈틈이 펼친다면 ‘우려’처럼 알맞지 않을 뿐더러 쓸모가 없는 한자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말을 너무 모를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알아보려 하지 않아요. 어른들은 한결같이 우리말을 잘 모르는 바보라 할 만합니다. 어른들 때문에 말사랑벗까지 우리말에 마음을 쓰지 못하는 바보처럼 살아가고야 맙니다. 예쁘며 착한 말사랑벗들이 바보스러운 어른들을 잘 토닥여 주셔요. 고우며 씩씩한 말사랑벗님이 걱정스러운 어른들을 잘 일깨우며 이끌어 주셔요.

[우려(憂慮) : 근심하거나 걱정함]
※ 네 건강이 우려가 된다
→ 네 몸이 걱정스럽다
→ 네 몸이 근심스럽다
→ 네 몸이 걱정이다
→ 네 몸 때문에 걱정이다
→ 네 몸 생각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8. 정도 : “어느 정도 되는지 본다.” 같은 자리는 “어느 만큼 되는지 본다.”나 “얼마나 되는지 본다.”로 손질해야 알맞습니다. 이제는 아주 많은 곳에서 거의 누구나 ‘정도’ 같은 낱말을 쓰지만, 이 한자말이 우리 삶으로 스며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지난날 한겨레가 쓰던 말이란 ‘만큼’과 ‘쯤’입니다. 이야기 흐름에 따라 ‘만큼’조차 안 쓰면서 서로서로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정도(程度) : 그만큼가량의 분량]
※ 그 정도 일이야 뭐
→ 그런 일이야 뭐
→ 그쯤 되는 일이야 뭐
→ 그쯤이야 뭐
→ 그 따위 일이야 뭐
→ 그런 쉬운 일이야 뭐
→ 그만 한 일이야 뭐


9. 찬란 : ‘우아(優雅)하다’가 우리말인 줄 잘못 알던 적이 있습니다. ‘우아미 가구’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아’란 ‘아름다움’을 한자로 옮긴 낱말이요, ‘미’란 ‘아름다울 美’라는 한자입니다. ‘우아미’란 ‘아름답디아름다움’이랄 수 있지만,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은 겹말이에요. “화려(華麗)하고 아름답게”를 뜻한다는 ‘찬란’ 또한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회려하고 아름답게”이니 ‘여느 아름다움’과는 다르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화려’란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이에요. 그러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찬찬히 헤아릴 줄 안다면 ‘우아’이든 ‘찬란’이든 어설피 잘못 쓰거나 얄궂게 마구 쓰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찬란(燦爛) : 빛깔이나 모양 따위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움]
※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 아름다이 빛나는 해
→ 아리땁게 빛나는 해
→ 어여삐 빛나는 해
→ 밝고 환히 빛나는 해
→ 맑고 곱게 빛나는 해


10. 사용 : ‘사용법’이란 ‘쓰는법’입니다. ‘사용안내’란 ‘어떻게 써야 하나’를 밝히는 말이니 ‘길잡이’나 ‘알림글’이란 소리이기도 합니다. ‘사용시 주의사항’이란 ‘쓸 때 살필 대목’이에요. 말사랑벗이나 저나 돈을 ‘쓰’지 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사용을 제한하다”는 틀리게 쓰는 말입니다. “자동차를 타지 못하도록 막다”나 “자동차는 못 들어오도록 하다”라 고쳐써야 올발라요. “존댓말을 사용”할 우리들이 아니라 “높임말을 쓸” 우리들이며, “숙소로 사용”할 우리들이 아니요 “잠잘 곳으로 삼”거나 “잠자리로 쓸" 우리들입니다.

[사용(使用) : 일정한 목적이나 기능에 맞게 씀]
※ 우리말을 사용하다
→ 우리말을 쓰다
→ 우리말을 하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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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 잘못 쓰는 말 : 갖가지 한자말 (1)


 우리말 가운데 한자말이 차지하는 부피가 꽤 많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은 맞지만, 곰곰이 살피면 이 말은 그리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이 우리말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 숫자로만 헤아리기 때문이에요.

 말사랑벗님이 잘 살펴야 하는데, 국어사전은 국어학자가 엮습니다. 국어학자는 국어사전에 실을 낱말을 ‘보기글(용례)’을 모아서 ‘잦기(빈도수)’를 모읍니다. 보기글은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서 뽑습니다.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 어떠한 말이 쓰이는가에 따라 국어사전 올림말은 크게 바뀌어요.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 손쉬우면서 살갑고 아름답다 싶은 토박이말을 잘 쓴다면 국어사전도 이와 같이 엮겠지요. 그러나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 어렵거나 딱딱한 낱말을 많이 쓴다면 국어사전은 이와 같은 결을 따릅니다.

 ‘사고’ 같은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국어사전에 스무 가지 한자말 ‘사고’가 실립니다. 이 가운데 교통사고를 일컫는 ‘사고(事故)’하고 ‘생각’을 한자로 옮긴 ‘사고(思考)’를 뺀 열여덟 가지 한자말은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우리말이 있으니 굳이 ‘사고’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한편, 회사에서 내는 광고를 일컫는 ‘사고(社告)’는 푸름이가 쓰거나 들을 일이 없지만, 신문사나 회사에서 쓰니 그럭저럭 쓸 만하다 하더라도, ‘司庫-四考-四顧-死苦-私考-私稿-思顧-謝告’를 비롯한 한자말은 쓰임새도 없지만, 우리 삶하고 너무 동떨어진 한자말입니다.

 ‘고사’ 같은 한자말은 국어사전에 자그마치 스물일곱 낱말이나 실립니다. 말사랑벗은 ‘고사’라는 한자말 가운데 아는 낱말이 있을까요? 나무가 말라죽는다는 ‘고사(枯死)’나 고사성어를 가리키는 ‘고사(故事)’쯤은 알는지 모릅니다. 옛절을 굳이 ‘古寺’로 적는다든지 ‘옛일’을 애써 ‘古事’로 적어야 하지 않아요. 아마, ‘기말고사’ 같은 데에 쓰는 ‘시험’을 가리키는 ‘고사(考査)’도 들었겠지만,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는 모르겠지요. 게다가, 굳이 ‘고사’라 하기보다는 ‘기말시험’이라 말하면 그만이기도 합니다. 국어사전에는 스물일곱 가지 ‘고사’가 실리지만, 막상 우리가 쓰는 낱말이나 쓸 만한 낱말은 서너 가지가 채 안 되고, 나무가 말라죽는 모습을 가리키는 ‘고사’도 ‘말라죽다’로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국사’ 같은 한자말은 어떨까요. 모두 열한 가지 한자말 ‘국사’가 국어사전에 실려요. 이 가운데 한 나라 역사를 가리키는 ‘국사(國史)’를 뺀 열 가지 낱말은 옛날 역사에서 쓰던 말, 이를테면 조선이나 고려 때 임금이나 신하가 쓰던 낱말인 한문입니다. 국어사전은 역사사전이 아니니까 이런 낱말을 국어사전에 실어서는 안 되지만, 한문을 쓰던 옛날 정치꾼들이 쓰던 낱말을 국어사전이나 역사사전에 실어야 옳으냐 그르냐도 짚어야 해요. 왜냐하면, 2007년부터 대통령을 맡은 분은 ‘비즈니스 프랜들리’ 같은 말을 쓰는 데다가 1998년부터 대통령을 맡은 분은 ‘태스크 포스’ 같은 말을 썼고 이 영어는 아직까지 널리 쓰입니다. 어쩌면 2100년이나 2200년 국어사전에서는 얼토당토않게 쓰던 오늘날 영어를 ‘역사 낱말’로 삼으면서 실을 수 있어요. 그런데, 참말 이런 오늘날 영어를 ‘역사 낱말’로 삼아야 할까요. 이런 오늘날 영어를 알맞게 다듬거나 털어야 할까요.

 부질없거나 쓸모없는 한자말을 국어사전에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에 ‘마치 한자말 없이는 우리말은 살아남을 수 없거나 쓸 수 없는 듯 잘못 알거나 생각’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쓸 만한 한자말이라면 써야 하고, 값있거나 뜻있는 한자말이라면 넉넉히 우리말로 삼아서 주고받을 노릇이지만, 쓸 만하지 않거나 값없거나 뜻없는 한자말을 함부로 국어사전에 싣는다든지 아무렇게나 아무 데나 마구 쓴다면 우리말은 살아남을 수 없어요.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을 하고, 1990년대에는 ‘新도시’를 만들다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newtown’을 꾸밉니다. 우리말은 ‘새마을’이고 한자말은 ‘新도시’이며 영어는 ‘newtown’입니다. 셋은 뜻이나 쓰임이 모두 같은 낱말이에요. 한자말을 쓰고플 때에는 써야 할 테고, 영어가 좋다면 영어를 써야겠지요.

 그러면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파출소’를 ‘치안센터’로 바꿀 까닭이란 무엇이고,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고쳐야 할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치안지킴터’라든지 ‘동주민마당’처럼 우리말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결을 나누지 못해야 하나요. 인천에는 ‘선화여자상업고등학교’라는 곳이 ‘비즈니스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상업고등학교’ 이름이 낡거나 나쁘다 여겨 ‘비즈니스고등학교’로 바꾸었을 텐데, ‘비즈니스’ 같은 영어를 써야 한결 아름답거나 알맞거나 좋은 이름이 될는지요. ‘상업’이나 ‘비즈니스’란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요. ‘장사꾼’은 나쁜 낱말이고 ‘상인(商人)’은 좋은 말이 되려나요. ‘비즈니스맨(businessman)’이라 하면 뭔가 남다른 낱말이 되는가요.

 잘못 쓰는 한자말을 살피는 까닭은 ‘한자말이니까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대문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잘못 쓰기 때문에 다듬거나 손질하거나 털어야 하는 한자말입니다. 쓸 만하다면 옳게 쓰고, 쓸 만하지 않다면 안 써야 맞으며, 예부터 곱거나 바르게 잘 쓰던 우리말이 있으면 우리말을 슬기롭게 살찌우거나 살려야 훌륭합니다. 말사랑벗을 비롯한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우리말을 싱그러이 보듬으며 알맞게 즐기고 기쁘게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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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마누엘라 올텐 글 그림, 조국현 옮김 / 토마토하우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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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놀이 아닌 총칼놀이 하면 진짜 사나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 마누엘라 올텐, 《진짜 사나이》(토마토하우스,2005)



 그림책 《진짜 사나이》는 “여자 애들은 정말 지루해! 걔들은 하루 종일 인형이나 만지작거리며 놀잖아.” 하는 말로 첫머리를 엽니다. 우리 집 딸아이한테도 인형이 제법 있기는 한데, 우리 집 딸아이는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놀지 않습니다. 하도 아무 데나 굴려서 “벼리야, 인형이 아야 하네.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예뻐해 주어야지.” 하고 말하면 그제서야 인형을 처음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살며시 쥐어 “아이, 예뻐.”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다른 놀이에 빠진다든지 콩콩 총총 뛰며 놀기를 더 즐깁니다.

 그림책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사내아이는 무엇을 하며 놀기에 ‘따분하지’ 않을까 궁금하지만, 막상 사내아이들 놀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사내아이 둘은 계집아이가 인형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비웃기만 할 뿐입니다.

 인형을 만지작거리지 않아야 따분하지 않을 놀이요, 어쩌면 개굴창에서 뒹군다든지 공을 차거나 던진다든지 나무로 총을 삼아 싸움놀이를 해야 재미있다고 여길 놀이가 될까요.

 싸움놀이라 하지만, 눈싸움은 싸움이라기보다 눈을 던지는 눈놀이, 곧 눈던지기입니다. 눈굴리기나 눈사람빚기도 눈놀이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려는 싸움, 이른바 전쟁놀이가 싸움놀이인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나 겨레일 때에 이 싸움놀이를 즐기고 맙니다. 사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냥을 익히려는 틀에 따라 놀이를 한다거나, 거칠거나 메마른 깊은 멧자락이라든지 너른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퍽 투박하게 부대끼는 놀이는 싸움놀이가 아닙니다. 이러할 때에는 삶놀이입니다. 살아가는 길을 찬찬히 몸으로 받아들이는 놀이가 되니까요.

 그림책 《진짜 사나이》 사내아이 둘은 “여자 애들은 곰인형을 끌어안고 잔대. 걔들은 겁이 많잖아!” 하고 놀립니다.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든 어머니나 아버지를 끌어안고 자든, 따스한 사람 곁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잠드는 일은 하나도 나쁘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끌어안고 자든 개를 끌어안고 자든, 저마다 사랑하거나 아끼는 님하고 함께 잘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누군가는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겠지만, 누군가는 베개라든지 대아가씨든 살뜰히 끌어안고 잘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책에 나오는 두 사내아이는 놀림말을 그치지 않습니다. “걔들은 밤에 오줌도 싼다지?” 저런, 계집아이만 밤에 오줌을 싸고 사내아이는 밤에 오줌을 안 쌀까요. 글쎄요, 아이들은 제법 철이 들 무렵까지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기 마련이잖아요. 이렇게 말하다가 나중에 저희들이 오줌을 싸면 벌개질 얼굴을 어찌하려고 그런담.

 이리하여 사내아이들은 “여자 애들은 귀신을 무서워해!” 하는 말을 나누다가 그만 저희들도 무섭다고 느낍니다. “에이, 귀신이 어딨냐?” 하고 “그럼, 없고 말고.” 하지만 무서움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마주치지 않았으나, 귀신이나 도깨비라는 이름을 꺼냈을 뿐이나 그만 질리고 맙니다.

 예부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귀신이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무서울 일이 없다 했습니다. 참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귀신한테든 도깨비한테든 홀리지 않는다 했어요.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아름다운 빛을 나누어 주면서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했지요.

 그러니까, 사내아이들이 계집아이를 착하게 마주하고 참다이 사귀며 아름다이 어울리려는 매무새라 한다면,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아니, 누군가 무서워 한다면 씩씩하게 나서서 지키거나 보살피도록 해야지요. 남자라서 여자를 지키고, 여자가 더 씩씩하게 남자를 지키거나 보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람으로서 서로를 살뜰히 마주하면서 보듬을 노릇이에요. 사랑할 사람이고 사랑받을 사람이에요. 믿을 사람이며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계집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한다고들 하지만, 놀이로 인형을 만지작거린다뿐이지, 인형이란 ‘아이보다 작은 사람’입니다. 저보다 작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인형놀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몸피도 작고 힘도 여립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저희랑 몸뚱이가 그닥 작지 않은 아기나 더 어린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달랜다든지 보살피는 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애가 애를 업는다고도 하지만, 우리 겨레도 예부터 애가 애를 업으며 키우거나 돌보았습니다. 어른도 애를 업지만 애도 애를 업습니다. 나보다 몸피가 작으며 힘조차 여린데, 더 사랑하고 더 아끼며 더 돌보아야지, 모른 척하거나 놀리거나 비웃을 수 없어요.

 우리 누리에는 “진짜 사나이”란 없습니다. ‘진짜’에서 ‘眞’은 한자이니까 “참 사나이”라고도 할 만하지만, “진짜 사나이”이든 “참 사나이”이든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짜 계집”이든 “참 계집”이든 없어요. 그저 ‘참사람’ 하나만 있습니다.

 나 스스로 참다운 사람인가 아닌가만 있습니다. 성별로 남자와 여자를 가르지만, 성별로 가르기 앞서 누구나 사람입니다. 또한, 목숨 갈래로 나누기 앞서 사람이 되든 나무가 되든 고양이가 되든, 한결같이 고운 목숨이에요.

 사람은 흙하고 같으며, 흙은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은 새와 같으며, 새는 사람과 같아요. 사람은 물하고 같으며, 물은 사람과 같아요. 사람은 시금치와 같고, 시금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진짜 사나이”가 되고 싶으면 먼저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어 옳고 바르게 사랑을 나누는 한편,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씨를 살가이  보듬어야 합니다. 그림책 《진짜 사나이》는 바보스럽지만 예쁜 아이들이 아직 예쁜 넋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모습을 제법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이런 그림책을 보면서 ‘내가 좀 바보스럽지?’ 하고 쑥쓰러워 하면서 깨닫기라도 한다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쩌지요? 군인이 되려 하거나, 총칼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갖은 범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데다가, 애국충성 충군보국 같은 말을 주워섬기면서 옳고 바른 평화와 꿈과 삶을 잊거나 내동댕이치는 우리 어른들은 어쩌지요? (4344.2.19.흙.ㅎㄲㅅㄱ)


― 진짜 사나이 (마누엘라 올텐 글·그림,조국현 옮김,토마토하우스 펴냄,2005.4.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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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6. 

노려보기를 어디에서 배웠을까. 

아이여도 네가 노려보면 참 무섭단다... -_-;;; 

 

밥먹을 때에는 웃도리를 벗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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